원에서 파동으로
별의 위치를 재던 현의 표(chord table)가 사인(sine)이 되고, 열의 흐름을 풀던 푸리에가 모든 파동을 사인으로 쪼갰습니다. 원 하나가 어떻게 소리와 열과 빛을 설명하는 도구가 되었을까요?
점선 밑줄이 그어진 숫자는 좌우로 끌 수 있고(키보드 ←/→도 됩니다),
밤하늘을 오래 지켜본 사람은 해와 달과 행성이 제멋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들은 이 움직임을 원으로 설명했습니다. 행성은 원을 따라 돌고, 그 원의 중심이 또 다른 원을 따라 돕니다. 이 모형으로 다음 달 화성이 어디에 있을지, 언제 월식이 일어날지 예측하려면 계산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계산을 가로막는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잴 수 있는 것은 각도입니다. 두 별 사이가 몇 도인지, 해가 지평선에서 몇 도 올라왔는지. 반면 기하학이 계산하는 것은 길이입니다. 삼각형을 풀고 거리를 구하려면 각도를 길이로 바꿔 줄 다리가 필요합니다. 각도 하나를 넣으면 길이 하나가 나오는 표 말입니다. 그 표가 2,000년 동안 이름과 모양을 바꿔 가며 오늘날의 사인이 되었고, 19세기에는 소리와 열, 온갖 떨림을 푸는 열쇠가 되었습니다. 이 글은 그 길을 따라갑니다.
이 글의 물음은 둘입니다. 각도를 길이로 바꾸던 표가 어떻게 사인이라는 함수(function)가 되었을까? 그리고 원에서 나온 그 함수가 왜 소리와 열처럼 원과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을 푸는 열쇠가 될까? 삼각함수(trigonometric function), 미분(differentiation), 적분(integral) 같은 말은 나올 때마다 그 자리에서 다시 설명합니다.
1 · 그림자 두 개막대 하나로 잰 지구
이 절의 물음은 이것입니다. 막대 하나와 각도 하나로 지구의 둘레를 어떻게 잴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계산에서 왜 '각도를 길이로 바꾸는 표'가 필요해질까? 각도가 길이로 바뀌는 가장 유명한 장면부터 봅시다. 기원전 3세기,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이끌던 에라토스테네스는 지구의 둘레를 쟀습니다. 소수(prime number)를 걸러 내는 에라토스테네스의 체(sieve of Eratosthenes)로도 이름이 남은 사람입니다.
그가 지구를 잰 까닭은 지도에 있었습니다. 오늘날 리비아 동부의 키레네에서 태어난 에라토스테네스는 당시 이집트를 다스리던 왕 프톨레마이오스 3세의 부름을 받아 도서관을 맡았습니다. 왕실이 모은 두루마리에는 원정대와 상인, 측량사가 적어 온 거리와 여정이 가득했고, 그는 이것을 엮어 『지리학』 세 권을 썼습니다. '지리학'(게오그라피아, 곧 '땅을 그리기')이라는 말을 처음 쓴 사람으로도 꼽힙니다. 로도스를 지나는 동서의 기준선과 알렉산드리아를 지나는 남북의 기준선을 긋고 그 위에 사람이 사는 세계를 배치하려면, 먼저 지구가 얼마나 큰지 알아야 했습니다.
그가 이용한 사실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남쪽 도시 시에네(오늘날의 아스완)에서는 하짓날 정오에 해가 머리 바로 위에 온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깊은 우물 바닥까지 햇빛이 닿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다른 하나는 같은 시각 북쪽의 알렉산드리아에서는 해가 꼭대기에서 조금 비껴 있어서, 똑바로 세운 막대가 짧은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것입니다. 해는 아주 멀리 있으니 두 도시에 닿는 햇빛은 평행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 도시가 같은 남북선 위에 있다는 가정도 필요했는데, 이집트는 나일강을 따라 거의 남북으로 뻗어 있어서 이 가정에 큰 무리가 없었습니다. 실제로는 두 도시의 경도가 3°쯤 다릅니다.
그림에서 볼 것은 노란 각 θ('세타') 두 개가 늘 같은 크기라는 점입니다. 하나는 막대 끝에, 하나는 지구 중심에 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원 한 바퀴는 360°이고, 호의 길이는 중심각(central angle)에 정비례합니다. 그러니 두 도시 사이의
에서 지구 둘레
여기서 계산은 비례식 하나로 끝났습니다. 거리를 원의 호를 따라 쟀기 때문입니다. 호의 길이는 각도에 정비례합니다. 각도가 두 배면 호도 두 배입니다. 하지만
이 배율, 곧 직각삼각형(right triangle)에서 '각 θ의 맞은편 변 ÷ 각 θ에 붙은 변'이 오늘날의 탄젠트(tangent)입니다. 그림에서는 막대가 θ에 붙은 변, 그림자가 맞은편 변입니다. 그림자, 두 점 사이의 직선거리, 삼각형의 변처럼 곧게 뻗은 길이를 각도에서 얻으려면 비례식으로는 부족합니다. 각도마다 값을 미리 계산해 둔 표가 필요합니다.
정리하면, 호를 따라 잰 거리는 비례식으로 각도와 이어지지만, 그림자처럼 곧은 길이는 각도와 비례하지 않아서 표가 있어야 계산할 수 있습니다.
이 측정은 몇 세기 뒤의 그리스 천문 저술가 클레오메데스의 책으로 전합니다. 클레오메데스가 정확히 언제 활동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가 전하는 바로는 에라토스테네스가 쓴 각도는 원의 50분의 1인 7.2°, 거리는 5,000스타디온이었고, 결과는 250,000스타디온이었습니다. 252,000스타디온으로 전하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 값이 얼마나 정확했는지는 지금도 답하기 어렵습니다. 1스타디온이 몇 미터였는지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설정으로 1스타디온을 157.5 m로 잡으면
2 · 현의 표히파르코스와 프톨레마이오스
이 절의 물음은 이것입니다. 각도를 넣으면 곧은 길이가 나오는 표를, 계산기도 없던 시대에 어떻게 만들었을까?
원 위의 두 점을 곧게 이은 선분을 현이라고 합니다. 활의 몸통이 원호라면 현은 활시위입니다. 원의 중심에서 현의 두 끝을 바라보는 각을 그 현의 중심각이라 합니다. 반지름이 정해져 있으면 중심각을 알 때 현의 길이가 정해지고, 현의 길이를 알면 중심각이 정해집니다.
몇 개는 손으로 바로 구할 수 있습니다. 중심각이 60°이면 두 반지름과 현이 이루는 삼각형은 두 변이 같고 끼인각이 60°이므로 세 각이 모두 60°인 정삼각형이고, 현의 길이는 반지름과 같습니다. 중심각이 180°이면 현은 지름, 곧 반지름의 두 배입니다. 그 사이의 모든 각에 대해 이런 값을 적어 둔 것이 현의 표입니다.
이 대응을 표로 만들어 두면 어떤 삼각형이든 원 안에 넣어서 풀 수 있습니다. 삼각형의 세 꼭짓점(vertex)은 언제나 한 원 위에 있으니까요. 그 원에서 삼각형의 각 변은 현입니다. 그리고 원 위의 한 점에서 어떤 현의 두 끝을 바라본 각(원주각)은, 그 점의 맞은편에 놓인 호를 중심에서 바라본 각(중심각)의 절반입니다. 삼각형의 한 꼭짓점은 마주 보는 변의 두 끝을 원 위에서 바라보고 있으니, 그 변의 중심각은 꼭짓점의 각의 두 배입니다. 예를 들어 세 각이 모두 60°인 정삼각형이면 각 변의 중심각은 120°입니다. 그래서 삼각형의 각을 알면 표에서 변의 길이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런 표를 처음 만든 사람은 기원전 2세기 로도스섬에서 활동한 천문학자 히파르코스로 알려져 있습니다. 4세기 알렉산드리아의 주석가 테온은 그가 현에 관한 책을 열두 권 썼다고 전하지만, 책도 표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오늘날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완전한 현의 표는 2세기 알렉산드리아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쓴 『알마게스트』에 있습니다. 반지름을 60으로 잡고, 0.5°부터 180°까지 0.5° 간격으로 현의 길이를 60진법(진법, positional notation)으로 적은 표입니다. 바빌로니아에서 물려받은 60진법(sexagesimal)은 분수를 적기 편해서 천문학자들이 즐겨 썼고, 1시간이 60분인 것도 그 흔적입니다.
중심각
프톨레마이오스는 이 표를 어떻게 계산했을까요? 먼저 정육각형, 정사각형, 정오각형, 정십각형의 변에서 60°, 90°, 72°, 36° 같은 몇몇 현을 구했습니다. 꼭짓점이 모두 원 위에 놓인 정다각형(regular polygon)을 '원에 내접한다'고 하는데, 원에 내접한 정육각형의 한 변은 중심각 60°의 현이고, 정사각형의 한 변은 90°의 현인 식입니다.
그다음에는 원에 내접한 사각형에서 "두 대각선의 곱은 마주 보는 변끼리 곱한 두 값의 합과 같다"는 정리를 썼습니다. 지금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정리(Ptolemy's theorem)라고 부릅니다. 사각형이 직사각형이면 두 대각선은 모두 지름 d이고 마주 보는 변은 같으니, 정리는 d × d = a × a + b × b가 되는데, 이것이 바로 피타고라스 정리입니다. 이 정리로 두 각의 현에서 그 합과 차의 현을 구했습니다. 이것을 오늘날의 말로 옮기면 삼각함수의 덧셈정리(angle addition formulas)입니다. 예를 들어 72°와 60°의 현에서 그 차인 12°의 현이 나옵니다.
각을 반으로 나누는 식도 썼습니다. 12°에서 반으로 나누기를 거듭해 6°, 3°, 1.5°, 0.75°까지 내려간 뒤, 1°의 현은 부등식으로 위아래를 막아 어림했습니다. 쓴 사실은 "각이 커질수록 현은 각보다 느리게 자란다", 다시 말해 '현 ÷ 각'이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1°는 0.75°보다 크니 (1°의 현) ÷ 1 < (0.75°의 현) ÷ 0.75입니다. 0.75로 나누는 것은 4/3을 곱하는 것과 같으니(1 ÷ 0.75 = 4/3), 1°의 현 < (4/3) × (0.75°의 현)입니다. 같은 식으로 1.5°는 1°보다 크니 (1.5°의 현) ÷ 1.5 < (1°의 현) ÷ 1이고, 1.5로 나누는 것은 2/3을 곱하는 것과 같으니 1°의 현 > (2/3) × (1.5°의 현)입니다. 그래서 1°의 현은 0.75°의 현의 4/3배보다는 작고 1.5°의 현의 2/3배보다는 큽니다. 두 값이 60진법의 둘째 자리까지 같다는 데서 1°의 현을 정한 것입니다.
정리하면, 현의 표는 정다각형에서 얻은 몇몇 값에서 출발해 합, 차, 절반의 공식으로 촘촘히 채우고, 남는 틈은 부등식으로 메워 만든 것입니다.
덤으로 원주율(pi)도 보입니다. 1°의 현이 1 ; 2, 50이면 원에 내접한 정360각형의 둘레는 그 360배인 377이고, 이를 지름 120으로 나누면 3 ; 8, 30, 곧 약 3.14167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가 『알마게스트』에서 쓴 원주율이 바로 이 값입니다.
3 · 반쪽 현사인이라는 이상한 이름
이 절의 물음은 이것입니다. 현의 표가 있는데 왜 굳이 '반쪽 현'이 필요했을까? 그리고 그 반쪽 현은 어떻게 '사인'이라는 이상한 이름을 얻었을까? 먼저 수학을 보고, 이름이 걸어온 길은 그 뒤에 따라갑니다.
그림을 다시 보면
반지름을 1로 두고, 현의 중심각 α('알파')의 절반을 θ라 합시다. 이 직각삼각형에서 빗변(hypotenuse)은 반지름 1입니다. 각 θ의 맞은편 변인 반쪽 현(줄여서 반현(half-chord))의 길이를
예를 들어 α = 60°이면 θ = 30°입니다. 2절에서 본 대로 60°의 현은 반지름과 같은 1이니 반쪽 현은 0.5이고,
코사인의 '코'는 여각(complementary angle), 곧 90°에서 모자란 각을 뜻합니다. 직각삼각형의 세 각을 더하면 180°이니, 직각도 θ도 아닌 나머지 한 각은 90° − θ입니다. 그림의 직각삼각형에서
반지름을 1로 두면 이 직각삼각형 하나가 삼각법(trigonometry)의 기본을 거의 다 품습니다. 세 변은 1,
직각이 아닌 삼각형도 이 조각들로 풉니다. 세 변과 한 각의 관계인 코사인 법칙(law of cosines)은 유클리드의 『원론』 2권에 이미 도형의 언어로 들어 있었고(명제 12, 13), 코사인을 쓰면 한 줄의 식이 됩니다.
여기서 a, b, c는 삼각형의 세 변이고, C는 변 c의 맞은편 각입니다. C가 직각이면 cos 90° = 0이라 마지막 항이 사라지고 피타고라스 정리 c² = a² + b²가 됩니다. 마지막 항은 C가 직각에서 벗어난 만큼을 바로잡는 몫입니다. 예를 들어 a = b = 1이고 C = 60°이면 cos 60° = 0.5이므로 c² = 1 + 1 − 1 = 1이고 따라서 c = 1이며, 세 변이 모두 1인 정삼각형이 맞습니다.
정리하면, 현을 반으로 접으면 직각삼각형이 생기고, 반지름 1인 원에서 그 두 변이 사인과 코사인입니다. 이 두 값만 있으면 직각삼각형도, 직각이 아닌 삼각형도 풀립니다.
현을 반으로 접는 이 한 걸음을 역사에서 처음 내디딘 것은 인도의 천문학자들이었습니다. 499년 아리아바타는 『아리아바티야』에 현 대신 반현의 값을 실었습니다. 반지름을 3438로 잡고 3.75°(225분) 간격으로 24개의 값을 적었습니다. 3438이라는 수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원 한 바퀴를 각도의 분 단위로 재면 21,600분이고, 이를
산스크리트어로 현은 '지야' 또는 '지바'로, 본래 활시위라는 뜻입니다. 반현은 '아르다지야'(반쪽 활시위)였는데, 뒤에는 이것도 줄여서 그냥 지야나 지바라고 불렀습니다. 이 낱말이 걸어간 길에 번역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8세기 후반, 인도 천문학이 새 도시 바그다드에 닿습니다. 770년 무렵 인도에서 온 천문학자가 아바스 왕조 칼리프 알만수르의 궁정에 천문서를 가져왔고, 그 책이 아랍어로 옮겨져 『신드힌드』라 불렸다고 전합니다. 아랍 학자들은 '지바'를 소리 나는 대로 옮겨 새 낱말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랍어는 보통 모음을 적지 않아서 글자로는 j‑y‑b 세 자음만 남았습니다. 이 세 글자가 뒤에 사인이라는 이름의 씨앗이 됩니다.
같은 도시에서 『알마게스트』도 아랍어로 옮겨졌으니, 그리스의 현과 인도의 반현이 바그다드에서 만난 셈입니다. 9–10세기 유프라테스 강가의 라카에서 관측한 알바타니를 비롯한 천문학자들은 현 대신 반현을 본격적으로 쓰고, 막대 그림자의 길이를 적은 표(오늘날의 탄젠트, 코탄젠트(cotangent))도 다듬었습니다.
이슬람 세계에서 이 표는 천문학자만의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하루 다섯 번의 예배 시각은 해의 높이로 정해지고, 예배는 메카를 향해 드립니다. 어느 도시에서 메카의 방향(키블라)을 구하는 일은 두 도시의 위도와 경도로 구면 위의 삼각형을 푸는 문제입니다(구면기하, spherical geometry). 예배 시각을 구하는 일은 해의 높이각을 시각으로 바꾸는 문제입니다. 둘 다 사인 표 없이는 풀 수 없습니다. 11세기 초 박식가 알비루니는 가즈니(오늘날 아프가니스탄)에서 메카의 방향을 구하려고 도시들의 경위도를 정리한 책을 썼습니다. 14세기 다마스쿠스의 우마이야 대모스크에서는 이븐 알샤티르가 예배 시각을 맡은 천문학자(무와키트)로 일했습니다. 날마다의 신앙생활에 정밀한 수표가 필요했고, 그 필요 속에서 구면 위의 삼각형을 푸는 삼각법, 곧 구면삼각법(spherical trigonometry)이 자랐습니다.
알비루니는 에라토스테네스와 다른 방법으로 지구를 재기도 했습니다. 그의 기록에 따르면 오늘날 파키스탄 펀자브의 난다나 산성 근처에서, 높이
1085년 카스티야가 톨레도를 차지한 뒤, 이 도시는 아랍어 과학서를 라틴어로 옮기는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12세기의 번역자는 j‑y‑b를 모음이 붙은 흔한 낱말 '자이브'(주머니, 옷의 접힌 곳, 품)로 읽고, 같은 뜻의 라틴어 sinus로 옮겼습니다. 흔히 1175년 톨레도에서 『알마게스트』를 라틴어로 옮긴 크레모나의 제라르도가 이 이름을 퍼뜨린 번역자로 꼽히지만, 그보다 앞선 번역자를 드는 견해도 있습니다. 1145년 알콰리즈미의 대수학 책을 옮긴 영국의 체스터의 로버트 등이 그렇습니다.
번역의 길은 다른 이름에도 자국을 남겼습니다. '알마게스트'라는 제목부터가 그렇습니다. '가장 위대한 책'이라는 뜻의 아랍어 이름 알마지스티가 라틴어로 굳은 것입니다. 코사인이라는 이름은 1620년 영국의 수학자 에드먼드 건터가 '여각의 사인'을 줄여 co.sinus라 적은 데서 시작되었다고 흔히 알려져 있습니다.
결국 사인은 뜻을 따지면 이상한 이름입니다. '활시위의 반쪽'이 소리 옮김과 오독을 거쳐 '주머니'나 '굽은 곳'이 되었으니까요.
삼각법이 천문학의 부속을 벗어나 독립(independence)된 분야로 정리된 것은 13세기 페르시아의 천문학자 나시르 알딘 알투시, 유럽에서는 15세기 독일의 천문학자 레기오몬타누스의 『삼각형에 대하여』에 이르러서입니다. '삼각법(trigonometria, 삼각형 재기)'이라는 이름 자체는 1595년 독일의 바르톨로메우스 피티스쿠스가 책 제목으로 쓴 것이 처음으로 꼽힙니다.
레기오몬타누스의 책은 1464년 무렵 쓰였지만 1533년 뉘른베르크에서야 인쇄되었습니다. 필사본과 달리 인쇄된 수표는 수백 부가 같은 숫자로 퍼졌고, 그 무렵 대서양으로 나가던 항해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그런 표였습니다. 먼바다에서 위도를 구하는 방법은 에라토스테네스의 방법을 거꾸로 쓴 것입니다. 먼저 정오에 해가 수평선에서 몇 도 올라왔는지 재고, 90°에서 그 각을 뺍니다. 해가 머리 위에서 비껴 있는 각입니다. 여기에 그날 해가 천구의 적도(celestial equator)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 곧 적위(declination)를 표에서 찾아 더하거나 빼면 위도가 나옵니다. 천구의 적도는 지구의 적도를 하늘로 넓혀 그린 큰 원입니다. 적위는 사인으로 계산합니다.
그런 표 가운데 하나는 추방의 길을 따라 바다로 나갔습니다. 살라망카의 유대인 천문학자 아브라함 자쿠투는 1492년 스페인이 유대인을 추방하자 포르투갈로 건너갔고, 1496년 레이리아에서 그의 『영구 역서』가 인쇄되었습니다. 1498년 인도 서해안의 캘리컷에 닿은 바스쿠 다 가마의 선단도 그의 표를 가져갔다고 흔히 전합니다. 인도에서 태어난 반현의 표가 천 년을 돌아 배를 타고 인도 바다로 돌아간 셈입니다.
반현의 표는 동쪽으로도 갔지만 그곳에서는 뿌리내리지 못했습니다. 8세기 초 당나라 수도 장안에서 여러 대째 살아온 인도계 천문학자 집안의 구담실달(고타마 싯다)이 천문서 『개원점경』을 엮으며 인도 역법을 한문으로 옮겼고, 아리아바타의 반현 표도 이 책에 실렸습니다. 그러나 이 표는 중국 역법의 전통에 자리 잡지 못했습니다. 『개원점경』은 10세기 이후 베껴 쓰이지 않다가 1616년에야 다시 주목받았고, 그사이 11세기의 심괄과 13세기의 곽수경은 호와 현의 관계를 나름의 근사식으로 다루었습니다. 중국 학계에 삼각법과 로그가 본격적으로 들어간 것은 17세기였습니다. 마테오 리치와 함께 유클리드를 한문으로 옮긴 서광계 같은 학자와 예수회 선교사들이 서양의 수학서와 천문서를 번역하면서였습니다. 같은 표가 바그다드에서는 예배와 천문학의 쓸모를 만나 자랐지만, 장안에서는 오래 잊혔던 것입니다.
16세기 천문학자들은 사인 표를 곱셈 기계로도 썼습니다. 여러 자리 수 두 개를 손으로 곱하기는 고되지만, 덧셈정리(addition formula)를 뒤집은 공식
알렉산드리아와 파탈리푸트라에서 출발한 표가 바그다드에서 만나고, 톨레도에서 라틴어가 된 뒤, 배를 타고 인도로 돌아갑니다. 연표의 점을 누르면 지도에서 그 장소가 빛나고, 주황 선은 책과 표가 건너간 길입니다.
4 · 원을 펼치다도는 점의 그림자
이 절의 물음은 이것입니다. 각도를 넣으면 길이가 나오던 표가, 어떻게 시간에 따라 출렁이는 파동이 될까?
지금까지 사인은 표였습니다. 각도를 넣으면 길이가 나오는 정적인 대응이었지요. 표의 값도 반지름을 60으로 잡느냐 3438로 잡느냐에 따라 달랐습니다. 반지름을 1로 두어 사인을 길이가 아니라 비로, 곧 각도만으로 값이 정해지는 함수(수를 넣으면 수가 하나 나오는 규칙)로 굳힌 것은 오일러의 1748년 『무한 해석 입문』이었습니다. 같은 책에서 오일러는 사인과 코사인(sine and cosine)을 지수함수(exponential function)와 잇는 공식도 이끌어 냈습니다(「원을 그리는 지수함수」).
이 함수가 움직임을 만나면 모습이 달라집니다. 반지름 1인 원을 따라 일정한 빠르기로 도는 점을 생각해 봅시다. 시각 t에 점이 가로축에서 t라디안만큼 돌아가 있다면, 3절의 정의대로 점의 높이는 sin t, 가로 위치는 cos t입니다. 점의 높이는 시간에 따라 오르내리고, 이 높이를 시간에 대해 그리면 물결 모양 곡선이 나옵니다. 사인은 이제 각도의 함수일 뿐 아니라 시간의 함수이고, 원 운동이 드리운 그림자입니다(사인과 코사인).
아래 두 그림에서 노란 점 하나를 끌거나 버튼을 눌러 점을 돌려 보세요. 볼 것은 왼쪽의 빨간 선분(점의 높이)이 오른쪽에서 그대로 세로 막대가 되어, 그 끝이 곡선을 그려 나간다는 점입니다.
시각
왼쪽의
원의 크기와 도는 빠르기, 출발점을 바꾸면 곡선의 모양도 바뀝니다. 그 셋을 넣어 적은 식이 아래입니다.
세 수가 파동의 모양을 정합니다(사인파, sinusoid). 원의 반지름인 진폭(amplitude)
이 그림에서 미분도 읽을 수 있습니다. 미분은 어떤 양이 변하는 순간의 빠르기이고, 위치를 미분하면 속도(velocity)가 됩니다. 반지름 1인 원 위를 각속도 1로 도는 점의 속도는 언제나 반지름과 수직이고 크기가 1입니다. 수직인 까닭은 원 위를 도는 점이 원점에서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도 않고 원을 따라 옆으로만 움직이기 때문이고, 크기가 1인 까닭은 둘레 2π를 시간 2π 동안 돌기 때문입니다. 점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고 있으니, 속도는 원점에서 점까지의 위치 화살표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90° 돌린 화살표입니다.
화살표를 90° 돌리면 성분이 어떻게 바뀌는지 먼저 봅시다. 오른쪽을 향한 (1, 0)을 90° 돌리면 위를 향한 (0, 1)이 되고, (0, 1)을 다시 90° 돌리면 왼쪽을 향한 (−1, 0)이 됩니다. 일반적으로 (x, y)를 90° 돌리면 (−y, x)입니다. 옛 세로 성분이 부호가 바뀌어 가로로 가고, 옛 가로 성분이 세로로 갑니다. 그러니 위치가
높이 sin t가 변하는 빠르기는 이 속도의 세로 성분 cos t입니다. 확인해 봅시다. t = 0에서 점은 (1, 0)에 있고 곧장 위로 움직이니, 높이가 가장 빨리 늘어납니다. cos 0 = 1과 맞습니다. t = π/2에서 점은 꼭대기에서 왼쪽으로 움직이니, 그 순간 높이는 늘지도 줄지도 않습니다. cos(π/2) = 0과 맞습니다. 그러니
한 번 더 미분하면(위치를 두 번 미분한 것이 가속도입니다) 제자리로 돌아와 부호만 바뀝니다. sin t를 미분하면 cos t, 그것을 다시 미분하면 −sin t이기 때문입니다. 아래 식의
식을 말로 읽으면, 가속도는 위치의 반대 방향을 향하고, 그 크기는 위치에 비례합니다. 마찰과 저항을 무시하면 용수철에 매단 추도, 작게 흔들리는 진자도, 전기 회로의 진동도 이 법칙을 따릅니다. 그래서 이 운동들은 모두 사인파를 그립니다(선형 미분방정식, linear differential equation). 정리하면, 사인파는 원 위를 도는 점의 그림자이고, '가속도가 위치에 비례하되 반대 방향'인 모든 흔들림이 그리는 곡선입니다. 18세기의 수학자들은 머지않아 이보다 훨씬 어려운 문제를 만납니다. 점 하나가 아니라, 한 줄로 이어진 무수한 점들이 함께 떠는 문제입니다.
5 · 떨리는 줄18세기의 긴 논쟁
이 절의 물음은 이것입니다. 점 하나가 아니라 줄 전체가 떨 때, 그 모양도 사인으로 적을 수 있을까? 18세기 수학자들이 수십 년 동안 다툰 문제입니다.
떨리는 줄은 수학이 가장 오래 붙들어 온 대상 가운데 하나입니다. 남이탈리아 크로톤의 피타고라스 학파는 줄 길이를 절반으로 하면 한 옥타브(도에서 다음 도까지), 3분의 2로 하면 완전5도(도에서 솔까지), 4분의 3으로 하면 완전4도(도에서 파까지) 높은 소리가 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귀에 어울리는 소리가 작은 정수(integer)의 비에서 나온다는 발견은 '만물의 근원은 수'라는 그들의 믿음을 떠받쳤고, 행성들도 저마다의 비율로 돌며 들리지 않는 음악을 낸다는 '천구의 조화'로 이어졌습니다. 피타고라스가 대장간의 망치 소리에서 이 비율을 알아냈다는 이야기는 후대의 전설이고, 물리적으로도 맞지 않습니다.
수와 소리를 잇는 이 믿음은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중세 대학에서 음악은 산술, 기하(geometry), 천문과 함께 수학의 네 과목이었습니다. 1619년 독일의 천문학자 케플러는 『세계의 조화』에서 행성들의 빠르기 속에 숨은 음정을 찾다가 행성 운동의 제3법칙을 발표했습니다. 행성이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의 제곱이 태양까지의 평균(mean) 거리의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법칙입니다. 1636년 파리의 수도사이자 수학자 메르센은 줄의 진동수(1초에 떠는 횟수)가 줄의 길이에 반비례하고, 줄을 당기는 힘인 장력의 제곱근에 비례한다는 법칙을 정리했습니다. 줄을 반으로 줄이면 진동수(frequency)가 2배, 장력을 4배로 하면 진동수가 2배가 된다는 뜻입니다. 남은 질문은 줄이 어떤 모양으로 떠느냐였습니다.
양 끝을 고정한 줄을 튕기면 줄은 어떤 모양으로 떨까요? 1747년 파리의 수학자 달랑베르는 줄의 각 점이 따르는 방정식, 오늘날 파동방정식(wave equation)이라 부르는 식을 세우고 그 해를 구했습니다. 말로 하면 "줄의 한 점이 받는 가속도는 그 자리에서 줄이 얼마나 휘었는지에 비례한다"는 식입니다. 봉우리처럼 솟은 곳은 아래로, 골짜기처럼 파인 곳은 위로 당겨지고, 곧게 펴진 곳은 힘을 받지 않습니다. 해는 줄을 따라 왼쪽과 오른쪽으로 달려가는 두 모양의 합이었습니다. 오일러는 얼마 뒤 이 결과를 받아들이면서, 처음 모양이 손가락으로 튕긴 줄처럼 뾰족하게 꺾여 있어도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달랑베르는 그런 모양까지 허용하는 데 반대했습니다.
1753년 바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 다니엘 베르누이(야코프 베르누이의 조카)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답했습니다. 줄 하나가 기본음(fundamental tone)과 함께 그 두 배, 세 배 진동수의 음(배음, overtone)도 낸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습니다. 베르누이는 줄의 모든 운동이 이런 단순한 떨림들의 합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양 끝이 고정된 줄에서 가장 단순한 떨림은
여기서 줄의 길이를 1로 잡고, x는 왼쪽 끝(x = 0)에서 잰 위치입니다. 이 모양들이 고정된 줄에 맞는 까닭은 양 끝에서 값이 0이기 때문입니다. x = 0이면 sin 0 = 0이고, x = 1이면 sin kπ = 0입니다(사인은 π의 정수배에서 0입니다). 예를 들어 sin 2πx는 x = 1/4에서 sin(π/2) = 1로 봉우리, x = 3/4에서 −1로 골짜기가 되어, 줄 위에 봉우리와 골짜기가 하나씩 들어갑니다.
아래 그림에서 세 떨림의 세기를 바꿔 섞어 보고, 줄을 놓아 움직이게 해 보세요. 볼 것은 흐린 곡선 셋이 저마다 제자리에서 오르내리는 동안 노란 합이 모양을 바꾼다는 점입니다.
각 떨림은 모양을 바꾸지 않고 제자리에서 커졌다 작아지기만 합니다. 다만 k배 떨림은 기본 떨림보다 k배 빨리 오르내립니다. 그래서 떨림을 섞으면 줄의 모양은 쉬지 않고 바뀌지만, 기본 떨림이 한 번 오르내리는 동안 모든 떨림이 정수 번 오르내리고 함께 처음 모양으로 돌아옵니다. 여러 진동수가 섞여 있어도 줄의 소리가 하나의 뚜렷한 높이로 들리는 까닭입니다. 배음들의 파장(곡선이 한 번 출렁이고 제자리로 오는 길이)은 줄 길이의 2배에 1, 1/2, 1/3, …을 곱한 길이입니다. sin kπx는 x가 2/k만큼 늘 때마다 같은 모양을 되풀이하기 때문입니다.
- 두 배 떨림만 1로 두고 나머지를 0으로 하면 줄의 한가운데는 어떻게 움직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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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움직이지 않습니다.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늘 멈춰 있는 점을 마디라고 합니다. 기타 줄의 한가운데를 살짝 짚고 튕기면 기본음이 사라지고 한 옥타브 높은 소리가 나는 것이 이 때문입니다. - 세 배 떨림에서는 마디가 어디에 생기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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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끝 말고도 줄의 1/3과 2/3 지점에 생깁니다.
베르누이의 주장이 옳다면, 줄의 처음 모양이 무엇이든 사인 곡선들의 합으로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오일러는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사인 곡선은 몇 번을 미분해도 꺾이거나 끊어진 데가 없는, 한없이 매끄러운 곡선입니다. 그런 곡선들을 더해서 한 점이 뾰족하게 꺾인 모양을 만든다는 것은 믿기 어려웠습니다. 달랑베르도, 뒤늦게 이 문제에 뛰어든 젊은 라그랑주도 저마다의 이유로 베르누이에게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논쟁은 결론 없이 수십 년을 끌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임의의 함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진지하게 떠올랐고, 함수라는 말의 뜻은 조금씩 넓어졌습니다. 오일러 자신의 정의가 그 변화를 보여 줍니다. 1748년 『무한 해석 입문』에서 그는 함수를 변수와 수로 지은 하나의 식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논쟁을 거친 1755년의 미분학 책에서는 한 양이 다른 양에 따라 변하면 앞의 양을 뒤의 양의 함수라 부른다고 넓혔습니다. 함수가 '식'인가 '대응'인가라는 물음은 수학이 무엇을 대상으로 삼는가라는 물음이기도 했습니다. 1837년 디리클레는 x마다 y가 하나씩 정해지기만 하면, 그 대응이 한 가지 식으로 적히지 않아도 함수라고 못 박았습니다. 오늘날 교과서의 정의입니다.
정리하면, 사인 모양의 떨림 하나하나는 모양을 지킨 채 제자리에서 오르내리기만 하고, 베르누이는 줄의 모든 움직임이 이런 떨림들의 합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남은 물음은 '정말 어떤 모양이든 사인들의 합으로 쓸 수 있는가'입니다.
이 논쟁은 한 도시에서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달랑베르는 파리에, 오일러는 프리드리히 2세가 키운 베를린 학술원에, 베르누이는 바젤에, 라그랑주는 토리노에 있었습니다. 논문은 주로 베를린 학술원의 논집에 실렸고, 반박은 편지와 다음 논문으로 오갔습니다. 18세기의 학술원은 왕실의 후원을 받는 연구 기관이자 유럽을 잇는 우편망의 매듭이었습니다. 달랑베르는 같은 무렵 철학자 드니 디드로와 함께 『백과전서』를 엮으며 그 서론을 쓴 계몽사상가이기도 했습니다.
6 · 열의 이론푸리에의 대담한 주장
이 절의 물음은 5절에 남은 그 물음입니다. 끊어지거나 꺾인 모양까지, 정말 어떤 모양이든 매끄러운 사인들의 합으로 쓸 수 있을까?
논쟁에 새 국면을 연 것은 뜻밖에도 줄이 아니라 열이었습니다. 조제프 푸리에는 금속 막대나 판 안에서 열이 어떻게 퍼지는지를 연구했습니다. 그가 세운 열방정식(heat equation)은 파동방정식과 닮았습니다. 한 점의 온도가 변하는 빠르기가 그 자리에서 온도 곡선이 얼마나 휘었는지(두 번 미분한 값)에 비례합니다. 파동방정식의 '가속도' 자리에 '온도가 변하는 빠르기'가 들어간 모양입니다.
푸리에는 온도 분포가 사인 모양일 때 계산이 아주 쉬워진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사인 모양의 온도 분포는 퍼지는 동안 모양을 그대로 유지한 채 높이만 줄어듭니다. 5절에서 본 줄의 떨림이 모양을 유지하며 오르내리던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까닭은 사인을 두 번 미분하면 자기 자신의 상수배가 된다는 데 있습니다. 온도가 변하는 빠르기는 휜 정도(두 번 미분한 값)에 비례하는데, 사인 모양에서는 휜 정도가 그 자리의 온도에 비례합니다. 그래서 모든 점의 온도가 같은 비율로 줄어들고, 모양은 그대로 남습니다. sin kx는 sin x를 가로로 k배 촘촘하게 줄인 곡선이라 기울기(slope)가 k배 가파르므로, 한 번 미분하면 k cos kx, 두 번 미분하면 −k² sin kx가 됩니다.
상수
푸리에가 옳았는지 직접 확인해 봅시다. 목표는
물론 유한 개로는 끝나지 않습니다. 무한히 더한다는 말은 항을 늘려 갈 때 합이 향하는 극한(limit)을 뜻합니다. 끝없이 더한 식을 급수라 하고, 합이 한 값에 다가가면 급수(series)가 수렴(convergence)한다고 말합니다(급수의 수렴과 발산(convergence and divergence of series)).
사인파들을 이렇게 더해 쓴 급수를 푸리에 급수(Fourier series)라고 합니다.
그런데 절벽 바로 옆을 보세요. 합이 목표를 살짝 넘어 튀어 오릅니다. 지금 그 높이는 절벽 높이의
처음 n개 항까지만 더한 합을 부분합(partial sum)이라 합니다. 부분합 하나하나는 끝까지 절벽 옆에 뿔을 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절벽이 아닌 점마다 부분합은 n이 커질수록 분명히 목표값으로 다가갑니다. 그러면 두 사실이 모순처럼 보입니다.
두 사실은 모순이 아닙니다. 뿔이 점점 절벽 쪽으로 좁아지므로, 어느 한 점을 정해 두고 보면 언젠가 뿔이 그 점을 지나쳐 가고, 그 뒤로는 그 점에서 오차가 계속 줄어듭니다. 그리고 연속이 끊어진 바로 그 점에서는 합이 정확히 양쪽 값의 한가운데로 갑니다.
한편 뿔은 높이가 줄지 않아도 폭이 좁아지므로, 오차를 제곱해 한 주기 동안 적분한 값, 곧 오차의 제곱이 만드는 넓이(area)는 0으로 줄어듭니다.
점마다 가까워지는 것, 모든 점이 한꺼번에 가까워지는 것(균등 수렴, uniform convergence), 평균적으로 가까워지는 것은 서로 다른 말입니다. 수학자들은 푸리에 급수 때문에 이 셋을 구별해야 했습니다. 코시는 1821년에 연속함수들을 끝없이 더한 급수가 수렴하면 그 합도 연속이라는 정리를 내놓았는데, 이 구별을 놓친 탓에 푸리에 급수 하나로 무너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균등 수렴이라는 개념이 태어난 이야기는 「틀린 증명이 만든 수학」에 있습니다.
정리하면, 매끄러운 사인들을 끝없이 더해 끊어진 네모파에도 다가갈 수 있습니다. 다만 '다가간다'의 뜻은 조심해야 합니다. 점 하나하나에서는 다가가지만, 절벽 옆의 뿔은 폭만 좁아질 뿐 끝까지 남습니다.
학계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1807년 푸리에는 이 주장을 담은 논문을 파리의 프랑스 학사원에 제출했습니다. 심사를 맡은 라그랑주, 라플라스, 기하학자 몽주, 교과서 저자로 이름난 실베스트르 라크루아는 논문을 출판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라그랑주는 삼각급수(사인과 코사인을 끝없이 더한 식)로 임의의 함수를 나타낸다는 대목에 반대했습니다. 5절에서 베르누이에게 동의하지 않던 바로 그 라그랑주입니다. 1811년 학사원은 열의 전파를 주제로 현상 공모를 걸었습니다. 푸리에는 수정한 논문으로 이듬해 상을 받았지만, 심사평에는 엄밀함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붙었습니다. 그의 이론은 1822년 『열의 해석적 이론』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카이로에서 푸리에는 원정군이 세운 이집트 학사원의 서기를 맡았습니다. 1799년 나일강 하구의 라시드(로제타)에서 병사들이 세 가지 문자가 새겨진 돌을 찾아냈고, 이 로제타석은 1801년 프랑스군이 항복하면서 영국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르노블의 지사가 된 푸리에는 이집트 유물에 빠진 소년 장프랑수아 샹폴리옹을 격려했다고 전합니다. 1822년, 푸리에의 『열의 해석적 이론』이 나온 그해에 샹폴리옹은 파리에서 상형문자 해독을 발표했습니다.
자연을 깊이 연구하는 것은 수학적 발견의 가장 풍부한 원천이다.— 조제프 푸리에, 『열의 해석적 이론』 서론(1822)
같은 서론에서 푸리에는 근본 원인은 우리가 알 수 없지만 그 원인들은 단순하고 변하지 않는 법칙을 따르며, 그 법칙은 관찰로 찾을 수 있다고 썼습니다. 당시 학자들은 열이 '열소'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유체인지, 물질을 이루는 입자의 움직임인지를 두고 다투었습니다. 푸리에는 이 물음을 비켜 두고 열이 어떻게 퍼지는지만 방정식으로 적었습니다. 그 덕에 그의 방정식은 열소설이 무너진 뒤에도 그대로 살아남았습니다. 철학자 오귀스트 콩트가 이 태도를 현상의 법칙만 찾는 '실증' 과학의 본보기로 꼽은 이야기는 「라플라시안, 가장 많이 재사용된 식」 1절에 있습니다. 반대쪽의 경고도 새겨 둘 만합니다. 원인을 묻지 말자는 태도는 탐구의 범위를 너무 일찍 닫을 수 있습니다. 콩트는 『실증 철학 강의』(1835년 권)에서 별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는 결코 알 수 없으리라고 썼지만, 몇십 년 뒤 별빛을 색깔별로 나누어 보는 분광학이 그 성분을 읽어 내기 시작했습니다. 열의 본질도 19세기 후반에는 분자의 운동으로 설명되었습니다.
깁스 현상은 1848년 영국의 수학자 헨리 윌브러햄이 먼저 기록했지만 주목받지 못했고, 반세기 뒤 미국의 물리학자 조사이아 윌러드 깁스가 1898–99년 『네이처』에 쓴 글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 뿔이 다시 주목받은 계기로는 흔히 기계가 꼽힙니다. 1898년 미국의 물리학자 앨버트 마이컬슨은 새뮤얼 스트래턴과 함께, 용수철과 지렛대로 사인파 80개를 더해 곡선을 그려 주는 조화 분석기를 만들었습니다. 이 기계로 톱니파를 그리자 절벽 옆에 작은 뿔이 끝내 남았다고 흔히 전하고, 마이컬슨은 『네이처』에 편지를 보내 급수가 어떻게 수렴하는지 물었습니다. 깁스가 답장을 썼는데, 첫 편지의 설명에는 잘못이 있어 이듬해 편지에서 바로잡았습니다. 50년 앞선 윌브러햄의 논문은 그 뒤에야 다시 발견되었습니다.
7 · 계수를 찾는 법함수의 그림자를 재다
그런데 막대들의 높이, 곧 각 사인파의 세기
아래 그림에서
k = 1인 네모파는 손으로도 계산됩니다. 0에서 π까지는 f = 1이라 곱은 sin x 그대로이고, 사인 곡선 한 봉우리의 넓이는 2입니다. −π에서 0까지는 f = −1이고 sin x도 음수라 곱은 다시 양수이고, 넓이는 또 2입니다. 모두 4이니 π로 나누면 b₁ = 4/π ≈ 1.27입니다. 6절 그림의 첫 막대 높이와 같습니다.
이 방법이 통하는 이유는 내적(dot product)에 있습니다. 먼저 화살표로 봅시다. 평면의 화살표는 가로 성분과 세로 성분, 두 수로 적을 수 있고, 이렇게 수 몇 개를 나란히 적은 것을 벡터(vector)라 합니다. 두 벡터의 내적은 성분끼리 곱해서 더한 수입니다. 예를 들어 (1, 2)와 (3, 4)의 내적은 1×3 + 2×4 = 3 + 8 = 11입니다. 가로축 방향의 (1, 0)과 세로축 방향의 (0, 1)의 내적은 1×0 + 0×1 = 0입니다. 이 두 화살표는 서로 수직입니다. 일반적으로 두 화살표가 수직이면 내적이 0이고, 내적이 0이면 수직입니다. 그래서 '내적이 0'을 '수직'의 뜻으로 씁니다.
이제 함수를 'x마다 값이 하나씩 있는, 성분이 무한히 많은 벡터'로 봅시다. 성분끼리 곱해서 더하는 일은, 두 함수를 x마다 곱한 뒤 적분하는 일이 됩니다. 이것이 두 함수의 내적입니다. 그리고 진동수가 다른 사인파들은 이 내적이 0, 곧 서로 수직입니다. 아래 식은 '진동수가 j인 사인파와 k인 사인파를 곱해 한 주기 동안 적분하면, j와 k가 같을 때는 π, 다를 때는 0'이라고 읽습니다.
왜 이렇게 되는가
3절의 역사 노트에 나온 공식이 성질이 계수를 뽑아내는 까닭은 이렇습니다. 목표가
화살표로 돌아가 보면 이 계산의 그림이 보입니다. 화살표 (3, 4)에 위에서 햇빛을 비추면 가로축 위에 길이 3인 그림자가 생깁니다. 이 그림자가 가로 성분이고, (3, 4)와 (1, 0)의 내적 3×1 + 4×0 = 3으로 구해집니다. 세로 성분 4는 가로축과 수직이라 이 그림자에 섞여 들지 않습니다. 이렇게 축 위로 수직으로 내린 그림자를 정사영(orthogonal projection)이라 합니다.
그림자에는 쓸모가 하나 더 있습니다. 처음 n개 항까지의 합은, 사인파 n개만 섞어서 만들 수 있는 함수 가운데 목표와 가장 가까운 함수입니다. 여기서 '가깝다'는 두 함수의 차이를 제곱해 한 주기 동안 적분한 값이 가장 작다는 뜻입니다. 점들 사이에 직선을 그을 때 차이의 제곱의 합이 가장 작은 직선을 고르는 최소제곱(least squares)과 같은 원리입니다. 최소제곱이 태어난 이야기는 「잃어버린 소행성」에 있습니다.
정리하면, 계수
푸리에의 주장이 정확히 어디까지 참인지는 한동안 누구도 몰랐습니다. 이 질문과 씨름하는 가운데 해석학(mathematical analysis)의 뼈대 여럿이 세워졌습니다. 해석학은 극한을 써서 미적분(calculus)을 엄밀하게 다지는 수학 분야입니다. 젊은 시절 파리에서 푸리에와 가까이 지낸 디리클레는 1829년 베를린에서 급수가 수렴하는 조건을 처음으로 엄밀하게 증명했습니다. 함수가 유계이고(값이 어떤 범위 밖으로 끝없이 커지지 않고) 한 주기 안에서 유한 번만 끊어지고 유한 번만 오르내리면 급수는 각 점에서 함숫값으로 수렴하고, 끊어진 점에서는 양쪽 값의 평균으로 갑니다. 6절의 절벽 한가운데로 가던 합이 바로 이것입니다. 조건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도 드러났습니다. 1873년 독일의 파울 뒤부아레몽은 연속함수인데도 푸리에 급수가 어떤 점에서 발산(divergence)하는 예를 만들었습니다.
다음 세대는 이 질문을 더 깊이 팠습니다. 베를린에서 디리클레에게 배운 리만은 1854년 괴팅겐의 교수 자격 논문에서 삼각급수(trigonometric series)를 다루다가, 오늘날 리만 합(Riemann sum)으로 가르치는 적분의 정의를 내놓았습니다. 1870년대 초 할레의 칸토어는 한 함수를 나타내는 삼각급수가 하나뿐인지를 연구했습니다. 질문을 바꿔 말하면, 모든 점에서 0으로 수렴하는 삼각급수는 계수가 모두 0이어야 하는가입니다. 칸토어는 이것이 참임을 보인 뒤, 급수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는 예외 점이 몇 개 있어도 같은 결론이 나는지를 따졌습니다. 예외 점이 유한 개일 때를 넘어 무한히 많을 때까지 밀고 나가다 보니 "점들의 모임" 자체를 다루게 되었고, 이것이 집합(set)론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무한에도 크기가 있다」). 줄의 떨림을 두고 시작된 질문이 적분의 정의와 무한의 이론으로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푸리에의 방정식은 수학 안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열은 산업화 시대의 물리학 문제였습니다. 그의 책이 나온 지 2년 뒤인 1824년, 파리의 젊은 공학자 사디 카르노는 증기기관이 열에서 얻을 수 있는 일의 한계를 따진 『불의 동력에 관한 고찰』을 냈습니다. 같은 해 푸리에는 대기가 지표의 열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는다는 생각을 적었고, 그래서 오늘날 온실효과(greenhouse effect) 연구의 선구로 꼽힙니다.
이 방정식을 바다 밑으로 가져간 사람은 글래스고의 윌리엄 톰슨(뒤의 켈빈 경)이었습니다. 그는 10대에 푸리에의 책을 읽고 그 방법을 옹호하는 논문을 썼습니다. 1850년대에는 해저 전신선 속의 전기 신호가 열처럼 번지며 흐려진다는 것을 같은 방정식으로 보였습니다. 신호가 늦어지는 정도는 선 길이의 제곱에 비례했습니다. 1858년 아일랜드의 밸런시아섬과 뉴펀들랜드를 이은 첫 대서양 전신선은 몇 주 만에 끊겼고, 1866년에야 오래 쓰는 선이 놓였습니다.
톰슨은 같은 방정식을 지구 전체에도 적용했습니다. 1862년에는 뜨겁게 태어난 지구가 식어 온 과정을 열방정식으로 거꾸로 계산해 지구의 나이를 수천만에서 수억 년으로 어림했습니다. 이 값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필요한 시간보다 짧아서 지질학자들과 긴 논쟁을 불렀고, 지구 속에서 열을 내는 방사능이 알려진 뒤에야 힘을 잃었습니다.
톰슨은 푸리에의 분해를 놋쇠와 줄로 만든 기계로도 바꾸었습니다. 밀물과 썰물은 달과 해가 만드는, 주기가 서로 다른 여러 사인파가 겹친 것입니다. 그래서 한 항구에서 오래 잰 조위 기록을 성분별 사인파로 나누어 두면(조화 분석, harmonic analysis), 그 사인파들을 다시 더해 앞날의 조수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1872–73년 그가 설계한 조석 예측기에서는 도르래에 감긴 줄 하나가 여러 사인 운동을 한꺼번에 더했습니다. 사람이 하면 몇 주가 걸릴 한 해 치 계산을 이 기계는 몇 시간 만에 그려 냈습니다. 이런 기계는 20세기 중반까지 쓰였고, 1944년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조수도 영국 리버풀의 조석 연구소에서 이런 기계로 계산했습니다. 같은 작전을 두고 날씨 예보가 무엇을 할 수 있었고 무엇을 할 수 없었는지는 「나비의 날갯짓」 8절에 있습니다.
파리, 베를린, 바젤, 토리노를 잇는 학술원의 논쟁에서 이집트 원정과 그르노블을 거쳐 대서양 해저 전신까지. 같은 방정식이 증기기관, 전신, 지구의 나이 논쟁과 같은 시대에 놓여 있는 것을 보세요.
8 · 이어지는 길원과 파동이 여는 문
사인은 원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원이 나오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옵니다. 그리고 원은 생각보다 많은 곳에 숨어 있습니다.
- 복소수(complex number)로: 오일러 공식(Euler's formula)
는 원 위를 도는 점을 수 하나로 적습니다. 4절처럼 반지름과 각도로 점을 적는 방식을 복소수에서는 극형식(polar form)이라 부릅니다. 두 회전(rotation)을 이어 붙이는 것은 복소수 곱셈(complex multiplication)이고, 그 곱을 풀어 쓰면 프톨레마이오스가 현으로 힘들게 증명했던 덧셈정리가 한 줄로 나옵니다. 같은 회전을 행렬(matrix)로 적으면 성분이 와 인 회전 행렬(rotation matrix)입니다. 푸리에 급수도 대신 로 쓰면 훨씬 깔끔해집니다. 이 회전의 이야기는 「원을 그리는 지수함수」와 「곱셈은 회전이다」에서 더 자세히 다룹니다. - 다항식(polynomial)으로: 표를 계산하는 또 다른 길은 사인을 끝없는 다항식으로 쓰는 것입니다.
(테일러 급수, Taylor series). 14세기 무렵 인도 케랄라의 마다바가 이 급수를 알고 있었다는 기록이 후대 케랄라 학파의 문헌에 전합니다. 첫 항 는 아리아바타 표의 첫 값(225분의 호에 225)이 말해 주던 '작은 각에서는 반현이 호와 같다'는 사실 그대로입니다(「한 점에서 전부를」). - 정수론(number theory)으로: 벡터의 길이의 제곱은 성분의 제곱을 모두 더한 것입니다(피타고라스 정리). 함수를 벡터로 보면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함수의 '길이의 제곱'은 함수를 제곱해 한 주기 동안 적분한 값이고, 이 글의 두 파동처럼 사인 항만 있는 함수라면 그 값은 계수들의 제곱을 모두 더한 값의 π배와 같습니다. 파스발 등식(Parseval's identity)이라 불리는, 무한 차원의 피타고라스 정리입니다. 톱니파
의 계수는 이고 이므로, 양쪽을 맞추면 , 곧 바젤 문제(Basel problem)의 답이 파동에서 나옵니다. 제곱수(perfect square)의 역수(inverse)를 모두 더하는, 정수에 관한 문제(정수론)의 답이 열과 소리의 수학에서 나온 것입니다. - 선형대수(linear algebra)로:
는 '두 번 미분하기'라는 변환을 거쳐도 모양은 그대로이고 배만 됩니다. 어떤 변환을 거친 결과가 자기 자신의 상수배가 되는 것을 그 변환의 고유벡터(eigenvector), 그 상수를 고유값(eigenvalue)이라 합니다. 그러니 는 고유벡터이고 고유값은 입니다. 열방정식과 파동방정식이 사인으로 풀리는 진짜 이유가 이것입니다. 푸리에 계수가 정사영이라는 사실도 같은 그림의 다른 면입니다. 줄 대신 북이나 판, 그래프에서 사인의 자리를 무엇이 차지하는지, 클라드니의 모래 무늬가 왜 그 고유벡터의 마디선(nodal line)인지는 「라플라시안, 가장 많이 재사용된 식」에 있습니다. - 거꾸로 돌리면: 열은 촘촘한 사인 성분을
로 빨리 지웁니다. 그래서 식어 버린 막대의 온도에서 과거의 온도를 되찾으려 하면 측정의 작은 잡음이 배로 불어납니다. 흐린 사진이 선명해지지 않는 까닭과 그 처방은 「거꾸로 푸는 문제는 왜 어려운가」에 있습니다. 반대로 열방정식과 유체의 방정식을 푸리에 급수로 풀어 세 항만 남겼더니 혼돈(chaos)이 나타난 로렌츠의 이야기는 「나비의 날갯짓」에 있습니다. - 두 파동을 엇갈려 놓으면: 점의 가로 위치와 세로 위치를 서로 다른 사인파로 움직이면 리사주 곡선(Lissajous curve)이 그려집니다. 두 진동수가 정수비이면 곡선이 닫히는데, 언제 닫히는지는 두 수의 최대공약수(greatest common divisor)가 정합니다. 비가 무리수(irrational number)이면 곡선은 영원히 닫히지 않습니다.
- 컴퓨터로: 오늘날 소리 파일과 사진 파일의 상당수가 이런 분해를 거쳐 저장됩니다. MP3는 소리를, JPEG는 사진의 작은 조각들을 코사인파들의 세기로 바꾼 뒤(이산 코사인 변환, discrete cosine transform), 사람이 잘 알아채지 못하는 성분을 덜어 내 크기를 줄입니다. 8×8 블록의 코사인 계수를 직접 버려 보는 그림은 「짧게 보내기」 6절에 있습니다. 컴퓨터는 적분 대신 N개의 표본(sample)으로 계산하는데, 이때 쓰는 사인과 코사인 값들은 단위원(unit circle)을 N등분한 점, 곧 1의 거듭제곱근(roots of unity)에서 나옵니다. 이 계산을 빠르게 하는 고속 푸리에 변환(fast Fourier transform)은 문제를 반으로 나눠 풀고 합치는 분할 정복(divide and conquer)의 대표 예입니다. 1965년 쿨리와 튜키의 논문으로 널리 퍼졌는데, 1805년 무렵 가우스가 소행성 팔라스와 주노의 궤도(orbit)를 사인파로 보간(interpolation)하며 같은 방법을 원고에 적어 두었다는 것이 뒤에 밝혀졌습니다(「잃어버린 소행성」). 표본을 몇 개나 떠야 원래 파동을 완전히 되살릴 수 있는지는 「잡음 너머로」의 표본화 정리(sampling theorem)에서 다룹니다.
- 구 위의 삼각법: 메카의 방향과 항해에 쓰인 구면삼각법은 결국 평행선이 없는 기하였습니다. 「평행선의 반란」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