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개념 지도
인물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30년 전쟁 시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실 수학자로, 티코 브라헤의 관측에서 행성이 해를 한 초점에 둔 타원⁠(ellipse)⁠을 따라 돈다는 세 법칙을 찾아내 2,000년 동안의 원운동 천문학을 끝내고 뉴턴의 중력 이론이 설명할 과녁을 만든 천문학자이자 수학자.

T2a3=일정\frac{T^2}{a^3} = \text{일정}

요하네스 케플러는 1571년 신성 로마 제국 남서부, 뷔르템베르크 공국에 둘러싸인 작은 자유 제국 도시 바일데어슈타트에서 루터파 집안의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용병으로 떠돌다 집을 나갔고, 어린 케플러는 천연두를 앓아 시력과 손이 약해졌습니다. 그래도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1577년의 큰 혜성을, 아버지와 함께 1580년의 붉게 물든 월식을 본 기억을 평생 간직했습니다. 가톨릭과 개신교가 영토마다 신앙을 강요하던 시대였고, 그의 생애 후반은 1618년에 시작된 30년 전쟁에 휩쓸렸습니다. 천문학자는 무엇보다 달력과 점성 예언을 만드는 사람이었고, 케플러도 평생 운세 달력을 써서 생계를 보탰습니다. 이런 세계에서 그는 신이 수학적 조화로 우주를 지었다는 믿음 하나로, 2,000년 동안 천문학의 전제였던 원운동을 버리고 행성의 참된 궤도⁠(orbit)⁠를 찾아냈습니다.

굵은 막대가 이 사람의 생애이고, 흰검은 점은 페이지 끝 연표에 적은 일들입니다. 가는 막대는 같은 시대를 산 이 위키의 인물들입니다. 나이를 끌어 보세요.

나이 세 ·

정다면체⁠(regular polyhedron)⁠ 우주. 장학금을 받아 튀빙겐 대학에서 루터파 목사가 되려고 공부하던 그는, 천문학 교수 미하엘 메스틀린에게서 해가 중심에 있다는 코페르니쿠스의 체계를 따로 배웠습니다. 1594년 목사 대신 그라츠의 개신교 학교 수학 교사가 된 그는 왜 행성이 여섯 개이고 왜 그 간격인지를 물었습니다. 그의 답은 플라톤의 다섯 정다면체였습니다. 토성의 천구 안에 정육면체를 넣고 그 안에 접하는 구가 목성의 천구, 그 안에 정사면체, 다시 화성의 천구, 정십이면체, 지구, 정이십면체, 금성, 정팔면체, 수성의 순서로 끼우면 여섯 천구 사이의 간격이 대체로 관측과 몇 퍼센트 안팎에서 맞았습니다. 정다면체가 다섯뿐이니 행성은 여섯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1596년 『우주의 신비』로 펴낸 이 생각은 틀렸지만, 그는 이 책에서 바깥 행성일수록 느린 까닭이 해에서 나오는 힘이 거리에 따라 약해지기 때문이라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천문학에 물리적 원인을 묻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이 책을 티코 브라헤와 갈릴레이에게 보냈습니다.

티코의 관측. 덴마크의 귀족 티코 브라헤는 벤섬의 천문대에서 20년 넘게 망원경 없이 행성의 위치를 1–2분(1분은 1도의 60분의 1)의 정밀도⁠(precision)⁠로 쟀습니다. 그때까지의 어떤 관측보다 몇 배 정확한 자료였습니다. 그는 1599년 황제 루돌프 2세의 궁정 수학자가 되어 프라하로 왔고, 1600년 그라츠에서 반종교개혁으로 개신교도가 쫓겨나자 케플러는 티코에게 갔습니다. 두 사람의 동거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티코는 자료를 쉽게 내주지 않았고, 해와 달은 지구를 돌고 다른 행성은 해를 돈다는 자기 체계를 증명해 주기⁠(period)⁠를 바랐습니다. 1601년 티코가 갑자기 죽자 케플러는 그의 자리와 관측 기록을 이어받았습니다. 기록의 소유권을 두고 티코의 상속인들과 다투기도 했습니다.

화성과의 전쟁. 케플러가 맡은 것은 궤도가 원에서 가장 많이 벗어난 화성이었습니다. 그는 프톨레마이오스의 동시심⁠(equant)⁠을 쓴 원 궤도를 정교하게 맞추어 화성의 경도를 2분 안쪽으로 맞혔지만, 다른 관측과는 최대 8분이 어긋났습니다. 옛 천문학이라면 무시했을 차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티코의 관측이 8분이나 틀릴 수는 없으니 바로 이 8분이 천문학 전체를 고치는 길을 가리킨다고 썼습니다. 그는 먼저 지구의 궤도를 정밀하게 구했습니다. 화성은 687일마다 같은 자리로 돌아오니, 그때마다 서로 다른 자리에 있는 지구에서 같은 화성을 바라본 방향들로 삼각측량⁠(triangulation)⁠을 하면 지구의 위치를 구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 행성의 빠르기가 해에서의 거리에 반비례한다는 가정에서, 거리들을 잘게 나누어 더하는 계산을 거쳐 해와 행성을 잇는 선분이 같은 시간에 같은 넓이⁠(area)⁠를 쓴다는 둘째 법칙에 먼저 이르렀습니다. 그 뒤 달걀 모양의 궤도들을 시험하다 1605년 무렵 궤도가 타원이라는 결론에 닿았고, 1609년 『새로운 천문학』으로 발표했습니다. 책의 부제는 '원인에 근거한, 또는 천체 물리학'이었습니다.

세 법칙. 첫째 법칙은 행성이 해를 한 초점에 둔 타원을 따라 돈다는 것입니다. 타원은 두 점, 곧 두 초점까지의 거리의 합이 일정한 점들의 모임입니다(원뿔곡선⁠, conic section⁠). 둘째 법칙은 해와 행성을 잇는 선분이 같은 시간에 같은 넓이를 쓸고 지나간다는 것이어서, 행성은 해에 가까울 때 빠르고 멀 때 느립니다. 화성 궤도의 이심률⁠(eccentricity)⁠은 약 0.093으로, 짧은 지름이 긴 지름보다 겨우 0.4퍼센트쯤 짧을 뿐입니다. 눈으로 그리면 거의 원입니다. 결정적인 차이는 찌그러짐보다 해가 타원의 중심에서 긴반지름의 9퍼센트 넘게 비켜나 있다는 데 있었고, 이 작은 차이가 8분의 어긋남을 만들었습니다. 셋째 법칙은 1619년 『세계의 조화』에서 나왔습니다. 공전 주기 TT의 제곱이 궤도 긴반지름 aa의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입니다. 지구를 기준으로 주기 1년, 거리 1이라 하면 화성은 거리 1.524이니 1.5243≈3.541.524^3 \approx 3.54, 그 제곱근 약 1.88년, 곧 687일입니다. 그는 1618년 3월 8일에 이 생각이 떠올랐다가 계산 실수로 버렸고, 5월 15일에 다시 확인했다고 적었습니다.

풀 수 없는 방정식. 둘째 법칙은 한 가지 어려운 문제를 남겼습니다. 어느 날짜에 행성이 궤도의 어디에 있는지 알려면, 쓸고 지나간 넓이가 흐른 시간에 비례하도록 궤도 위의 점을 찾아야 합니다. 오늘날의 기호로 흐른 시간에 비례하는 각 MM과 궤도 위의 위치를 나타내는 각 EE 사이에 M=E−esin⁡EM = E - e\sin E(ee는 이심률)라는 관계가 있는데, MM을 알 때 EE를 사칙연산과 거듭제곱근으로 적는 방법은 없습니다. 케플러는 이 방정식을 푸는 길을 보여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자신에게 위대한 아폴로니오스일 것이라고 썼습니다. 오늘날 '케플러 방정식⁠(Kepler's equation)⁠'이라 불리는 이 식은 어림값에서 시작해 되풀이하며 고쳐 가는 방법으로 풀고, 그 대표가 뉴턴 방법⁠(Newton's method)⁠입니다(근사와 오차).

빛과 초점. 1604년의 광학 책에서 그는 빛의 세기가 광원에서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고 밝혔습니다. 빛이 퍼져 나가는 구면의 넓이가 반지름의 제곱에 비례해 커지기 때문입니다. 그는 또 눈의 수정체가 망막에 거꾸로 선 상을 맺는다는 것을 처음 옳게 설명했고, 반사된 빛이 모이는 원뿔곡선의 특별한 점에 라틴어로 '화덕'이라는 뜻의 '초점'(focus)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같은 책에서 그는 타원, 포물선⁠(parabola)⁠, 쌍곡선⁠(hyperbola)⁠이 끊김 없이 이어진 한 가족이며 포물선의 둘째 초점은 무한히 먼 곳에 있다고 보았는데, 이 생각은 뒤의 사영기하⁠(projective geometry)⁠로 이어졌습니다. 1610년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목성의 위성을 발견하자 케플러는 곧바로 그를 지지하는 공개 서한을 펴냈고, 이듬해에는 볼록 렌즈 두 개로 만드는 새 망원경의 원리를 담은 『굴절 광학』을 썼습니다. 목성의 위성을 가리키는 '위성'(satellite)이라는 말도 그가 처음 썼습니다. 데카르트는 뒷날 케플러가 광학에서 자신의 첫 스승이었다고 썼습니다.

포도주 통과 무한히 얇은 조각. 1613년 린츠에서 재혼한 그는 결혼 잔치에 쓸 포도주 통을 사면서, 상인이 통의 마개 구멍에 막대를 비스듬히 꽂아 넣은 길이 하나로 부피를 정하는 것을 보고 그 방법이 정당한지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1615년의 『포도주 통의 새로운 입체 측정』에서 그는 아르키메데스의 방법을 이어받되 엄밀한 실진법⁠(method of exhaustion)⁠ 대신 도형을 무한히 많은 얇은 조각으로 나누어 더하는 대담한 계산으로 여러 회전체의 부피를 구했습니다(적분⁠(integral)⁠). 그리고 오스트리아에서 쓰던 통의 비율이, 막대 길이가 같을 때 부피가 가장 큰 비율에 가깝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가장 좋은 비율 근처에서는 비율을 조금 바꿔도 부피가 거의 변하지 않으니, 막대 하나로 재는 관습이 실용적으로는 충분했다는 것입니다. 가장 큰 곳에서 변화가 멈춘다는 이 관찰은 최적화⁠(optimization)⁠에서 기울기⁠(slope)⁠가 0인 곳을 찾는 생각의 싹입니다(가장 좋은 것 고르기).

로그와 루돌프 표. 1614년 스코틀랜드의 네이피어가 곱셈을 덧셈으로 바꾸는 로그를 발표하자, 케플러는 곧 그 가치를 알아보고 1624년 스스로 로그의 이론을 세운 책을 냈습니다(로그). 그리고 티코의 관측과 자기 법칙으로 만든 행성 위치표 『루돌프 표』를 로그로 계산해 1627년 울름에서 자기 돈을 들여 펴냈습니다. 이 표는 이전의 어떤 표보다 훨씬 정확했습니다. 표가 예고한 대로 1631년 수성이 해 앞을 지나가는 것을 파리의 가상디가 실제로 관측했고, 1639년에는 영국의 호록스가 이 표를 스스로 고쳐 계산해 예측한 금성의 태양면 통과를 관측했습니다. 법칙 자체보다 이 표의 정확함이 사람들을 타원으로 설득했습니다.

눈송이와 석류. 1611년 새해 선물로 후원자에게 바친 짧은 글 『육각형 눈송이에 대하여』에서 그는 눈송이가 왜 늘 여섯 갈래인지를 물었습니다. 답을 찾다가 그는 석류 알이나 쌓아 올린 포탄처럼 같은 크기의 공을 쌓는 방법을 생각했고, 층마다 공을 삼각형 격자로 놓고 윗층 공을 아래층의 오목한 자리에 얹는 방식이 가장 빽빽하다고 추측했습니다. 공간의 약 74퍼센트(π/18\pi/\sqrt{18})를 채우는 배열입니다. 이 '케플러 추측⁠(Kepler conjecture)⁠'은 1998년 미국의 토머스 헤일스가 컴퓨터 계산에 크게 기대어 증명했고, 그 증명이 옳다는 것을 컴퓨터 증명 보조기⁠(proof assistant)⁠로 확인하는 작업이 2014년에 끝났습니다(대칭과 불변량⁠(invariant)⁠). 같은 글에서 그는 5 : 8, 8 : 13처럼 이웃한 피보나치 수의 비가 신성한 비례, 곧 황금비⁠(golden ratio)⁠에 점점 다가간다고 적었습니다(피보나치 수열⁠, Fibonacci sequence⁠).

전쟁과 재판 속에서. 1611년 그는 아내와 아들을 잃었고, 이듬해 후원자 루돌프 2세가 죽자 린츠로 옮겨 지방 수학자가 되었습니다. 루터파의 신앙 고백문에 서명하기를 거부해 1612년부터 성찬에서 배제되었고, 가톨릭 쪽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1615년 고향에서 어머니 카타리나가 마녀로 고발되었고, 1620년 투옥되자 케플러는 직접 가서 변호했습니다. 어머니는 고문 도구 앞에서 위협을 받고도 자백하지 않아 1621년 풀려났고 이듬해 죽었습니다. 1626년 린츠가 농민군에게 포위되자 그는 울름으로, 다시 황제군 사령관 발렌슈타인의 영지 자간으로 옮겼습니다. 1630년 밀린 봉급을 받으러 가던 길에 레겐스부르크에서 병으로 죽었고, 그의 무덤은 전쟁 중에 사라졌습니다. 그가 스스로 지은 묘비명은 하늘을 재던 사람이 이제 땅의 그림자를 잰다는 뜻의 두 줄이었습니다. 달로 여행하는 꿈을 그린 그의 소설 『꿈』은 그가 죽은 뒤 1634년에 나왔는데, 초기의 과학 소설로 꼽힙니다.

뉴턴이 설명할 과녁. 케플러의 법칙은 곧바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갈릴레이조차 타원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루돌프 표』가 쌓은 신뢰 위에서 17세기 후반의 학자들은 왜 행성이 이 세 법칙을 따르는지를 물었습니다. 1684년 에드먼드 핼리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을 받는 행성은 어떤 궤도를 그리느냐고 묻자 뉴턴은 타원이라고 답했고, 1687년 『프린키피아』에서 중력 하나로 세 법칙을 모두 이끌어 냈습니다. 원 궤도라면 계산은 한 줄입니다. 원운동하는 물체에 필요한 힘은 하위헌스가 구한 대로 v2/rv^2/r에 비례하고 v=2πr/Tv = 2\pi r/T이니 힘은 r/T2r/T^2에 비례하는데, 셋째 법칙으로 T2T^2이 r3r^3에 비례하니 힘은 1/r21/r^2에 비례합니다. 케플러의 법칙은 해와 행성 둘만 있을 때 정확한 법칙입니다. 그때도 셋째 법칙의 비례 상수는 해와 행성의 질량의 합에 따라 조금씩 달라서, 행성이 해보다 아주 가볍다고 보아야 모든 행성에 같은 값이 됩니다. 행성들끼리 서로 당기는 효과까지 넣으면 삼체 문제⁠(three-body problem)⁠라는 훨씬 어려운 문제가 됩니다.

이어지는 곳. 타원과 초점은 원뿔곡선에, 케플러 방정식을 푸는 되풀이는 뉴턴 방법과 근사와 오차에, 얇은 조각으로 구한 부피는 적분에, 포도주 통의 가장 좋은 비율은 최적화에 있습니다. 로그는 로그, 눈송이와 공 쌓기는 대칭과 불변량, 두 천체를 넘어선 문제는 삼체 문제로 이어집니다. 그가 넘어선 체계는 프톨레마이오스의 것이고, 그의 법칙을 설명한 사람은 뉴턴입니다.

관계.

가운데가 이 사람, 둘레가 이어진 인물들입니다. 선의 색은 관계의 종류(초록 스승·제자, 파랑 함께 연구, 보라 편지, 빨강 논쟁, 주황 영향)이고, 다른 인물의 페이지에 적힌 관계도 함께 모았습니다.

  • 영향을 받음 플라톤 — 『티마이오스』의 다섯 정다면체를 행성 궤도 사이에 끼워 넣은 『우주의 신비』(1596)로 천문학자의 길을 시작했습니다.
  • 영향을 받음 피타고라스 — 행성의 빠르기에서 피타고라스 학파의 음정 비를 찾으려 한 『세계의 조화』(1619)에서 셋째 법칙을 발표했습니다.
  • 영향을 받음 아르키메데스 — 1615년 포도주 통 책은 아르키메데스의 『원의 측정』에서 출발하되, 그의 엄밀한 실진법 대신 무한히 많은 얇은 조각을 더하는 대담한 계산으로 부피를 구했습니다.
  • 편지 갈릴레오 갈릴레이 — 1597년 『우주의 신비』를 받은 갈릴레이가 자신도 코페르니쿠스 편이라고 답했고, 1610년 케플러는 망원경 발견을 지지하는 공개 서한을 펴냈습니다. 갈릴레이가 보낸 철자 수수께끼를 잘못 풀기도 했습니다.
  • 영향을 줌 르네 데카르트 — 데카르트는 1638년 메르센에게 보낸 편지에서 케플러가 광학에서 자신의 첫 스승이었다고 썼습니다.
  • 영향을 줌 아이작 뉴턴 — 뉴턴은 1687년 『프린키피아』에서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중력 하나로 케플러의 세 법칙을 모두 이끌어 냈습니다.

연표.

  • 1589년 튀빙겐 대학에 들어가 메스틀린에게서 코페르니쿠스의 체계를 배우다
  • 1594년 그라츠의 개신교 학교 수학 교사가 되다
  • 1596년 『우주의 신비』에서 행성 궤도 사이에 다섯 정다면체를 끼워 넣다
  • 1600년 프라하 근처로 가 티코 브라헤와 함께 일하다
  • 1601년 티코가 죽은 뒤 황제 루돌프 2세의 황실 수학자가 되다
  • 1604년 광학 책에서 빛의 세기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고 밝히고 '초점'이라는 말을 쓰다
  • 1609년 『새로운 천문학』에서 행성 운동의 첫째·둘째 법칙을 발표하다
  • 1611년 『육각형 눈송이에 대하여』에서 공을 가장 빽빽하게 쌓는 방법을 추측하다
  • 1615년 포도주 통의 부피를 재는 책을 펴내다. 같은 해 어머니가 마녀로 고발되다
  • 1619년 『세계의 조화』에서 셋째 법칙을 발표하다
  • 1627년 로그로 계산한 『루돌프 표』를 울름에서 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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