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하르트 리만(Bernhard Riemann)
적분(integral)을 막대 합의 극한(limit)으로 정의하고, 휘어진 공간의 기하(geometry)를 세웠으며, 소수(prime number)의 분포를 제타 함수(zeta function)의 영점(zero)과 이은 독일의 수학자.
베른하르트 리만은 1826년 하노버 왕국의 시골 마을 브레젤렌츠에서 가난한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수줍음이 많고 몸이 약했던 그는 짧은 생애 동안 논문을 많이 쓰지 않았지만, 그 몇 편이 해석학(mathematical analysis)과 기하학과 정수론(number theory)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그의 시대는 코시가 극한으로 미적분(calculus)을 다시 세운 직후였고, 푸리에의 급수(series)와 가우스의 곡면 이론이 아직 끝까지 파헤쳐지지 않은 채 놓여 있었습니다.
나이
김나지움 시절 교장이 빌려준 르장드르의 두꺼운 정수론 책을 엿새 만에 읽고 돌려주었다는 일화가 데데킨트가 쓴 전기에 전합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1846년 괴팅겐 대학에 신학을 공부하러 들어갔다가 곧 수학으로 옮겼고, 1847년부터 두 해 동안 베를린에서 디리클레와 야코비에게 배웠습니다. 괴팅겐으로 돌아와 가우스의 지도로 1851년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가 오간 두 대학은 성격이 달랐습니다. 괴팅겐은 하노버 왕국의 대학으로, 1837년 새 왕이 헌법을 폐기하자 이에 항의한 '괴팅겐 7교수'가 쫓겨나 물리학자 베버도 자리를 잃었고, 늙은 가우스는 기초(basics) 강의만 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베를린에는 디리클레와 야코비, 기하학자 슈타이너, 젊은 아이젠슈타인이 모여 있어 독일 수학의 활력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1848년 3월 베를린에 혁명이 일어났을 때 리만은 학생 부대에 들어가 왕궁을 지키는 일을 섰다고 데데킨트의 전기는 전합니다. 1849년 괴팅겐으로 돌아오자 복직한 베버가 있었고, 리만은 그의 수리물리 세미나에서 조교로 일하며 물리학에 깊이 빠졌습니다.
그 박사 논문은 복소함수(complex function)를 새로 보는 법을 내놓았습니다. 복소수(complex number) 함수(function)
같은 해 6월 10일의 교수 자격 강연은 기하학을 바꾸었습니다. 후보 주제 셋 가운데 가우스가 고른 것은 리만이 가장 덜 준비한 기하학의 기초였다고 전합니다. 「기하학의 바탕에 놓인 가설에 대하여」에서 리만은 가우스의 곡면 이론을 바깥 공간 없이, 차원이 몇이든 쓸 수 있게 넓혔습니다. 점마다 아주 짧은 거리를 재는 규칙, 곧 계량
그의 관심은 순수 수학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중력과 전기와 빛을 공간을 채운 하나의 매질로 설명하려는 자연철학의 꿈을 품었고, 1854년 강연 끝에서 공간의 계량이 그 안에서 작용하는 힘과 이어져 있을지 모른다고 암시한 것도 그 꿈의 한 자락이었습니다. 1858년에는 전기 작용이 유한한 속도(velocity)로 퍼진다는 생각을 담은 논문을 학회에 냈다가 거둬들였고, 이 논문은 그가 죽은 뒤에 출판되었습니다. 1860년에는 공기 속을 지나는 파동이 진폭(amplitude)이 크면 앞머리가 점점 가팔라져 끊어진 면을 이룬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오늘날 충격파라 부르는 것으로, 초음속 비행과 폭발을 다루는 기체 역학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입니다.
1859년 베를린 학술원 회원이 된 것을 계기로 쓴 10쪽이 채 안 되는 논문 「주어진 수보다 작은 소수의 개수에 대하여」는 그가 정수론에 쓴 유일한 논문입니다. 오일러는
그가 증명을 그저 '미뤄 둔' 것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은 70년 뒤에 드러났습니다. 1932년 독일의 수학자 지겔은 괴팅겐에 보관된 리만의 유고를 뒤져, 그가 제타 함수의 영점 몇 개를 손으로 꽤 정밀하게 계산해 두었고 거기 쓴 공식이 당시 누구도 모르던 강력한 방법이라는 것을 찾아냈습니다. 오늘날 리만–지겔 공식이라 부르는 이 방법은 컴퓨터로 수조 개의 영점을 확인하는 데 쓰였고, 확인된 영점은 모두 실수부가 1/2인 직선 위에 있었습니다. 1972년에는 영점 사이의 간격이 무거운 원자핵의 에너지 준위 간격과 같은 통계(statistics)를 따르는 듯하다는 것이, 수학자 몽고메리와 물리학자 다이슨의 우연한 대화에서 알려졌습니다. 2000년 클레이 수학 연구소는 이 가설을 상금 100만 달러의 7대 문제 가운데 하나로 꼽았습니다. 소수의 불규칙한 계단을 파동의 합으로 다시 적는 그의 공식은 지금도 정수론의 한가운데 있습니다.
1859년 그는 디리클레의 뒤를 이어 괴팅겐의 정교수가 되었고, 1862년 결혼했지만 곧 결핵을 앓아 여러 차례 이탈리아로 요양을 떠났습니다. 1866년 프로이센과 하노버의 전쟁으로 괴팅겐이 어수선해지자 다시 떠났다가, 그해 7월 마조레 호숫가의 셀라스카에서 서른아홉 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정부가 원고 일부를 버렸다고 전하지만, 남은 유고는 괴팅겐 대학에 보관되었습니다.
그의 유산은 동료들의 손으로 정리되었습니다. 데데킨트는 1854년의 강연과 교수 자격 논문을 1867–68년에 출판했고, 1876년 수학자 하인리히 베버와 함께 전집을 펴냈습니다. 이 글들이 나오자 물리학자 헬름홀츠와 이탈리아의 벨트라미가 곧바로 공간의 기하를 다시 따졌고, 독일의 크리스토펠과 이탈리아의 리치, 레비치비타는 그의 계량에서 곡률을 계산하는 방법을 텐서 해석(tensor analysis)이라는 체계로 다듬었습니다. 텐서(tensor)는 좌표를 바꿀 때 정해진 규칙에 따라 함께 바뀌는 수들의 배열로, 계량의 계수
이어지는 곳. 막대 넓이 합의 극한으로 정의한 그의 적분은 리만 합과 정적분에서 직접 볼 수 있고, 그 정의로도 다룰 수 없는 함수들을 위해 20세기에 르베그 적분(Lebesgue integral)이 나왔습니다. 함수를 삼각급수로 나타내는 질문은 푸리에 급수(Fourier series)에서, 그 질문을 이어받아 무한 집합(set)에 이른 칸토어에게서 이어집니다. 휘어진 공간은 곡률을 재는 가우스 곡률, 휘어진 공간의 직선인 측지선(geodesic), 곡률이 음수인 쌍곡기하에 있습니다. 소수의 계단을 영점의 파동으로 적는 이야기는 제타 함수와 소수 정리, 소수에 있고, 복소평면의 영점과 극(zeros and poles)은 도메인 컬러링(domain coloring)으로 볼 수 있습니다.
관계.
- 스승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 1851년 가우스의 지도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1854년 교수 자격 강연의 주제로 기하학의 기초를 고른 사람도 가우스였습니다.
- 영향을 받음 오귀스탱루이 코시 — 코시가 합의 극한으로 세운 적분을 더 넓은 함수까지 다루도록 다듬었고, 복소함수의 미분 가능 조건은 두 사람의 이름을 따 코시–리만 방정식이라 불립니다.
- 영향을 받음 레온하르트 오일러 — 모든 자연수(natural number)에 대한 합이 모든 소수에 대한 곱과 같다는 오일러의 곱 공식에 복소수를 넣어, 제타 함수를 s = 1 한 점을 뺀 복소평면 전체로 넓혔습니다.
- 영향을 받음 아드리앵마리 르장드르 — 김나지움 시절 교장에게 빌린 르장드르의 정수론 책을 엿새 만에 읽었다는 일화가 전하고, 소수의 개수를 어림한 르장드르와 가우스의 질문은 그의 1859년 논문의 출발점이었습니다.
- 영향을 줌 게오르크 칸토어 — 그가 죽은 뒤 출판된 삼각급수 논문(교수 자격 논문)은 칸토어가 삼각급수 표현의 유일성을 연구하다 무한 집합에 이르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 영향을 줌 다비트 힐베르트 — 힐베르트는 1900년 파리의 국제 수학자 대회에서 리만 가설을 여덟째 문제로 내놓았고, 바이어슈트라스의 비판으로 흔들린 디리클레 원리를 되살렸습니다.
연표.
- 1846년 괴팅겐 대학에 신학생으로 들어갔다가 수학으로 옮기다
- 1847년 베를린으로 가서 디리클레와 야코비에게 배우다
- 1851년 복소함수에 관한 박사 논문을 내다
- 1854년 교수 자격 논문과 강연 「기하학의 바탕에 놓인 가설에 대하여」를 내놓다
- 1857년 리만 곡면으로 아벨 함수(타원 함수(elliptic function)를 넓힌 함수)를 다룬 논문을 발표하고 조교수가 되다
- 1858년 전기 작용의 전파에 관한 논문을 냈다가 거둬들이다
- 1859년 디리클레의 뒤를 이어 정교수가 되고 소수 논문을 쓰다
- 1860년 진폭이 큰 공기 파동, 곧 충격파(shock wave)에 관한 논문을 내다
- 1862년 엘리제 코흐와 결혼하다
- 1866년 요양하던 이탈리아 셀라스카에서 세상을 떠나다
이 인물이 나오는 긴 글
이 인물을 언급하는 페이지
- 리만 합
… 예). 1823년 프랑스의 코시가 연속함수의 적분을 이런 합의 극한으로 정의했습니다. 1854년 독일의베른하르트 리만은 막대 높이를 조각 안 어느 점에서 재도 되도록 정의를 넓히고, 어떤 함수가 적분 가능한지를 따졌습니다. …
- 리만 제타 함수
… 들을 곱해 전개하는 방법으로 자연수를 순서 없이 합으로 쪼개는 방법의 수(분할수)도 다루었습니다.리만은 s 에 복소수 \sigma + it 를 넣었습니다. n^{-s} = n^{-\sigma} …
- 가우스 곡률
… 곡률 0을 지켜야 하고, 한 방향으로 휘게 만들면 다른 방향은 곧게 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어지는 곳.리만은 1854년 이 생각을 3차원 이상으로 넓혔습니다. 공간 바깥에서 보지 않고 공간 안에서 길이를 재는 …
- 급수의 수렴과 발산
… 바꿔 더해도 합이 같다는 것을 보이면서, 조건 수렴하는 급수는 그렇지 않다는 예도 들었습니다. 1854년리만은 교수 자격 논문에서 훨씬 강한 사실을 보였습니다(논문은 그가 죽은 뒤인 1867년에 출판되었습니다). …
- 르베그 적분과 측도
리만이 1854년에 다듬은 정적분은 가로축을 잘게 나눕니다. 폭이 좁은 세로 막대를 세우고 막대 넓이를 …
- 정수론
… 수열 a, a + m, a + 2m, … 가운데 소수가 끝없이 많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리만은 1859년의 짧은 논문에서 소수의 개수를 제타 함수의 영점과 잇는 식을 내놓았고, 그 영점의 위치에 …
- 일반 상대성 이론
… 1827년, 곡면의 곡률을 곡면 밖으로 나가지 않고 길이만 재어도 알 수 있음을 보였습니다. 그의 제자리만은 1854년 괴팅겐 대학의 교수 자격 강연 「기하학의 바탕에 놓인 가설에 대하여」에서 이 생각을 …
- 조화 함수와 디리클레 문제
… u 는 u의 기울기, \iint 는 넓이 전체에 걸친 적분)을 가장 작게 하는 함수가 조화 함수입니다.리만은 이 사실을 스승의 이름을 따 디리클레 원리라 불렀습니다. 가장 작게 하는 함수가 늘 있다고 가정할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