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개념 지도
인물

오귀스트 콩트(Auguste Comte)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대신 '어떻게' 일어나는지의 법칙만 찾자는 실증주의를 세우고, 그 본보기로 푸리에의 열 이론을 꼽아 『실증 철학 강의』를 푸리에에게 바친 프랑스의 철학자. '사회학'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오귀스트 콩트는 1798년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의 가톨릭 왕당파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1814년 혁명기에 세워진 이공계 학교 에콜 폴리테크니크에 4등으로 들어가 수학과 역학을 배웠지만, 1816년 왕정복고 정부가 학교를 잠시 닫으면서 학생들이 흩어졌습니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이 지나간 뒤의 프랑스는 옛 질서도 새 질서도 자리 잡지 못한 사회였습니다. 콩트가 평생 붙든 물음은, 과학이 자연을 설명하듯 사회도 믿을 만한 지식 위에 다시 세울 수 있는가였습니다.

굵은 막대가 이 사람의 생애이고, 흰검은 점은 페이지 끝 연표에 적은 일들입니다. 가는 막대는 같은 시대를 산 이 위키의 인물들입니다. 나이를 끌어 보세요.

나이 세 ·

1817년 그는 사회 개혁 사상가 생시몽의 비서가 되어 7년 동안 함께 일하다 1824년 갈라섰습니다. 그 무렵 그는 인간의 생각이 세 단계를 거친다는 '세 단계의 법칙'을 내놓았습니다. 물건이 왜 떨어지는가를 예로 들면, 첫째 신학적 단계에서는 신이나 정령의 뜻으로 설명합니다. 둘째 형이상학적 단계에서는 '무거운 것은 본래 아래로 가려는 성질이 있다'처럼 보이지 않는 본질로 설명합니다. 셋째 실증적 단계에서는 '왜'를 내려놓고, 떨어지는 거리가 시간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갈릴레이의 법칙처럼 현상들 사이의 관계만 관찰로 찾습니다. 이 셋째 태도가 실증주의입니다.

『실증 철학 강의』. 1826년 그는 자기 집에서 실증 철학 강의를 시작했고, 수학자 푸리에, 박물학자 훔볼트, 수학자 푸앵소 같은 이름난 학자들이 들으러 왔습니다. 그러나 과로와 집안 문제가 겹친 정신의 위기로 강의는 곧 끊겼고, 1829년에야 다시 열렸습니다. 이 강의를 다듬은 『실증 철학 강의』 여섯 권이 1830년부터 1842년까지 나왔습니다. 그는 과학을 수학, 천문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사회학의 차례로 늘어놓았습니다. 앞의 것일수록 일반적이고 단순하며, 뒤의 것은 앞의 것에 기대므로 수학이 맨 아래 바탕입니다. 사회를 다루는 맨 위의 과학에 '사회학'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이 책입니다.

푸리에의 열. 그는 『강의』를 푸리에와 동물학자 블랭빌에게 바쳤습니다. 푸리에의 열 이론이 그가 말한 실증 과학의 본보기였기 때문입니다. 열이 물질인지 운동인지는 당시 답이 없던 물음이었습니다. 푸리에는 그 물음을 비켜 두고, 두 곳의 온도 차이에 비례해 열이 흐른다는 규칙 하나에서 열이 어떻게 퍼지는지를 열방정식⁠(heat equation)⁠으로 적었습니다. 그리고 그 방정식을 사인과 코사인⁠(sine and cosine)⁠의 합으로 풀었습니다(푸리에 급수⁠(Fourier series)⁠). 덕분에 그의 방정식은 열을 물질로 본 열소설이 무너진 뒤에도 그대로 살아남았습니다. 콩트는 이것을 현상의 법칙만 찾는 과학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보여 준 예로 꼽았습니다.

닫힌 문. 원인을 묻지 말자는 태도는 탐구의 범위를 너무 일찍 닫을 수도 있습니다. 콩트는 같은 책에서, 별의 모양과 거리와 움직임은 알 수 있어도 별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는 결코 알 수 없으리라고 썼습니다. 그러나 몇십 년 뒤 별빛을 색깔별로 나누어 보는 분광학이 별의 성분을 읽어 내기 시작했습니다. 볼 수 없는 원자를 과학에 들이기를 꺼린 19세기 말의 화학자 오스트발트도 비슷한 태도였는데, 그는 1900년대 페랭의 실험을 보고 원자를 받아들였습니다. 실증주의는 그 뒤에도 모습을 바꾸어 이어졌습니다. 1892년 피어슨은 『과학의 문법』에서 과학은 현상이 어떻게 함께 일어나는지 기술할 뿐이라고 했고, 20세기 빈의 철학자들은 논리학을 더한 '논리 실증주의'를 내걸었습니다(카르나프).

1832년 그는 에콜 폴리테크니크의 조교가 되었지만 학계와 자주 부딪쳐 자리를 잃었고, 말년에는 제자들의 후원으로 살았습니다. 1844년 만난 클로틸드 드 보가 1846년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사상은 감정과 도덕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1851–54년의 『실증 정치 체계』에서 그는 신 대신 인류를 섬기는 '인류교'를 세웠고, 1857년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어지는 곳. 콩트가 푸리에의 열 이론을 실증 과학의 본보기로 꼽은 이야기와 원자 논쟁은 「라플라시안⁠(Laplacian)⁠, 가장 많이 재사용된 식」 1절과 그 뒤에, 열의 본성을 비켜 간 푸리에의 방정식과 별의 성분에 관한 그의 예언은 「원에서 파동으로」에 있습니다. 현상의 법칙만 적자는 태도가 통계학⁠(statistics)⁠에서 '원인 대신 상관'으로 이어진 이야기는 「담배와 폐암」에 있습니다.

관계.

가운데가 이 사람, 둘레가 이어진 인물들입니다. 선의 색은 관계의 종류(초록 스승·제자, 파랑 함께 연구, 보라 편지, 빨강 논쟁, 주황 영향)이고, 다른 인물의 페이지에 적힌 관계도 함께 모았습니다.

  • 영향을 받음 조제프 푸리에 — 열의 본성을 묻지 않고 열이 퍼지는 법칙만 방정식으로 적은 푸리에의 이론을 실증 과학의 본보기로 꼽고, 『실증 철학 강의』를 푸리에와 동물학자 블랭빌에게 바쳤습니다.

연표.

  • 1798년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에서 태어나다
  • 1814년 에콜 폴리테크니크에 4등으로 들어가다
  • 1816년 왕정복고 정부가 학교를 잠시 닫아 학생들이 흩어지다
  • 1817년 생시몽의 비서가 되다(1824년에 갈라서다)
  • 1826년 자기 집에서 실증 철학 강의를 시작해 푸리에와 훔볼트 등이 듣다. 곧 정신의 위기로 강의가 끊기다
  • 1829년 강의를 다시 열다
  • 1830년 『실증 철학 강의』 1권을 펴내다(1842년 6권으로 완결)
  • 1832년 에콜 폴리테크니크의 해석학⁠(mathematical analysis)⁠·역학 조교가 되다
  • 1844년 클로틸드 드 보를 만나다(그녀는 1846년 세상을 떠나다)
  • 1851년 『실증 정치 체계』를 펴내기 시작해 '인류교'를 세우다(1854년 완결)
  • 1857년 파리에서 세상을 떠나다

이 인물이 나오는 긴 글

삼각함수 원에서 파동으로 별의 위치를 재던 현의 표가 사인이 되고, 열의 흐름을 풀던 푸리에가 모든 파동을 사인으로 쪼갰다. 라플라시안 라플라시안, 가장 많이 재사용된 식 이웃의 평균에서 나를 뺀다. 이 한 줄이 열의 법칙이고, 도박꾼이 이길 확률이고, 전기 회로와 나무 세기이고, 북의 음색이고, 사진의 윤곽선이고, 그래프를 가르는 칼이고, 잡음에서 그림을 빚는 확산 모델의 밑그림이다.

이 페이지가 가리키는 개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