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개념 지도
인물

피에르시몽 라플라스(Pierre-Simon Laplace)

프랑스의 수학자·천문학자. 『천체역학⁠(celestial mechanics)⁠』으로 뉴턴의 체계를 완성하고, 『확률⁠(probability)⁠의 해석적 이론』에서 결과로 원인의 확률을 거꾸로 따지는 역확률⁠(inverse probability)⁠과, 작은 요인들의 합이 종 모양이 된다는 중심극한정리⁠(central limit theorem)⁠를 세웠다. 모든 것을 아는 지성, '라플라스의 악마⁠(Laplace's demon)⁠'를 상상했다.

Sn−nμσn  ⟶  N(0,1)\frac{S_n - n\mu}{\sigma\sqrt n} \;\longrightarrow\; \mathcal N(0, 1)

피에르시몽 라플라스는 1749년 프랑스 노르망디의 작은 마을 보몽앙오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캉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다 수학으로 돌아섰고, 1769년 열아홉 살에 추천장을 들고 파리의 수학자 달랑베르를 찾아가 파리 사관학교의 수학 교사 자리를 얻었습니다. 그 무렵 천문학의 큰 물음은 뉴턴의 만유인력 하나로 하늘의 모든 움직임이 설명되느냐였습니다. 목성은 조금씩 빨라지고 토성은 느려지는 것처럼 보였고, 뉴턴 자신도 행성들이 서로 당겨 생기는 어긋남이 쌓이면 신이 바로잡아야 할지 모른다고 내비쳤습니다.

굵은 막대가 이 사람의 생애이고, 흰검은 점은 페이지 끝 연표에 적은 일들입니다. 가는 막대는 같은 시대를 산 이 위키의 인물들입니다. 나이를 끌어 보세요.

나이 세 ·

그의 무대는 루이 14세 때 세워진 왕립 과학 아카데미였습니다(과학 아카데미). 회원은 왕에게서 연금을 받는 대신 정부가 묻는 기술 문제에 답했고, 아카데미는 해마다 현상 공모를 걸어 유럽의 수학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젊은 라플라스는 몇 해 동안 논문을 잇달아 냈지만 1771년과 이듬해 선거에서 연거푸 밀렸고, 실망한 그를 두고 달랑베르가 베를린의 라그랑주에게 그곳 학술원이 받아 줄 수 있는지 편지로 물을 정도였습니다. 1773년 준회원이 되면서 그는 파리에 남았습니다. 파리에서 확률은 수학자들의 놀이를 넘어 사회를 다루는 도구로 논의되고 있었습니다. 아카데미의 서기 콩도르세는 배심원의 수와 다수결이 옳은 판결을 낼 확률을 따졌고, 라플라스도 증언의 신뢰도와 재판의 오류, 인구 조사의 정확도를 확률로 계산했습니다.

라플라스는 그 어긋남을 계산으로 풀었습니다. 1785–86년 그는 목성과 토성의 공전 주기⁠(period)⁠가 거의 2 : 5의 비를 이루어(목성이 다섯 바퀴 도는 약 59년 동안 토성은 거의 두 바퀴를 돕니다) 서로의 당김이 900년 가까운 주기로 쌓였다 풀린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빨라지고 느려지는 것은 한없이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긴 주기의 흔들림이었습니다. 라그랑주와 함께 그는 행성 궤도⁠(orbit)⁠의 느린 변화가 주기적으로 오르내린다는 결과를 모아 태양계가 안정하다고 주장했고, 1799년부터 1825년까지 다섯 권의 『천체역학』으로 뉴턴 이후 한 세기의 성과를 집대성했습니다. 1796년의 대중서 『우주 체계 해설』에는 태양계가 돌면서 식어 가는 기체 구름에서 생겼다는 성운설⁠(nebular hypothesis)⁠이 실렸습니다. 이 책을 두고 나폴레옹이 신은 어디 있느냐고 묻자 그런 가설은 필요 없었다고 답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1802년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의 일기에 두 사람이 신을 두고 나눈 대화가 적혀 있기는 하지만, 이 문장 그대로의 기록은 없습니다.

그의 다른 큰 일은 확률이었습니다. 1774년 논문에서 그는 야코프 베르누이와 반대 방향의 질문을 던졌습니다. 확률을 알 때 결과를 예측하는 대신, 결과를 보고 원인의 확률을 거꾸로 추론하는 것입니다. 영국의 목사 토머스 베이즈가 먼저 비슷한 생각을 했지만 라플라스는 이를 독립적으로 얻고 훨씬 넓게 발전시켰습니다(베이즈 정리⁠(Bayes' theorem)⁠, 조건부 확률⁠(conditional probability)⁠). 예를 들어 그 일이 일어날 확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0과 1 사이의 모든 값이 똑같이 그럴듯하다고) 놓으면, n번 가운데 s번 일어난 일이 다음에 일어날 확률은 (s+1)/(n+2)(s+1)/(n+2)가 됩니다. 이것이 '계승 규칙'(rule of succession)입니다. 10번 던져 10번 모두 앞면이 나온 동전이라도 다음에 앞면일 확률을 1이 아니라 11/12로, 한 번도 안 나온 뒷면에는 1/12를 줍니다. 한 번도 못 본 일에 확률 0을 주지 않는 이 규칙은, 처음 보는 낱말 조합에도 작은 확률을 나눠 주는 언어 모델⁠(language model)⁠의 '스무딩'과, 글자를 읽어 가며 확률을 고쳐 쓰는 산술 부호화⁠(arithmetic coding)⁠의 적응 모형에 지금도 쓰입니다. 그는 파리와 런던의 출생 기록을 분석해 사내아이가 계집아이보다 조금 더 많이 태어난다는 것이 우연이 아님을 이 방법으로 따졌습니다.

1810년 그는 서로 독립⁠(independence)⁠인 작은 요인을 많이 더하면, 요인 하나하나의 분포가 무엇이든 그 합이 같은 종 모양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오늘날의 정확한 형태로는 요인들이 같은 분포를 따르고 분산⁠(variance)⁠이 유한해야 하며(분포가 서로 달라도 되는 더 넓은 조건도 있습니다), 그의 논증은 지금 기준으로 엄밀하지 않아 완전한 증명은 1901년 러시아의 랴푸노프 등에게서 나왔습니다. 위의 식에서 SnS_n은 n개 요인의 합, μ와 σ는 요인 하나의 평균⁠(mean)⁠과 표준편차입니다. 합에서 평균 nμn\mu를 빼고 흔들림의 크기 σn\sigma\sqrt n로 나누면, n이 클수록 그 분포가 평균 0, 표준편차⁠(standard deviation)⁠ 1인 종 모양 곡선 N(0,1)\mathcal N(0, 1)에 다가간다는 뜻입니다. 주사위 한 개의 눈은 1부터 6까지 고르게 나오지만, 주사위 100개의 눈을 더한 값은 350 근처에 몰린 종 모양으로 나옵니다. 드무아브르가 동전에서 찾은 곡선을 모든 합으로 넓힌 중심극한정리입니다. 측정 오차가 작은 원인 여럿이 더해진 결과라면 왜 정규분포⁠(normal distribution)⁠를 따르는지, 그래서 가우스와 르장드르의 최소제곱법⁠(method of least squares)⁠이 왜 좋은지(최소제곱 회귀⁠(least-squares regression)⁠)를 이 정리가 설명해 주었습니다. 계산의 도구로 그는 수열을 급수⁠(series)⁠의 계수로 담는 방법에 '생성함수⁠(generating function)⁠'라는 이름을 붙여 체계적으로 썼고(생성함수), 종 모양 곡선 아래 넓이⁠(area)⁠를 구하는 가우스 적분⁠(Gaussian integral)⁠의 값 π\sqrt\pi도 확률 계산에 썼습니다. 최소제곱⁠(least squares)⁠ 이전에는 관측값들과의 차의 절댓값⁠(absolute value)⁠을 더한 합을 가장 작게 하는 기준도 연구했는데, 그 답이 중앙값⁠(median)⁠입니다. 1812년의 『확률의 해석적 이론』이 이 모두를 모은 책입니다. 대중을 위해 쓴 『확률에 관한 철학적 시론』(1814)에서 그는 확률론은 결국 계산으로 옮긴 상식일 뿐이라고 썼습니다.

같은 책의 서문에는 훗날 '라플라스의 악마'라 불린 상상이 있습니다. 어느 순간 자연을 움직이는 모든 힘과 모든 것의 위치를 알고 그것을 분석할 수 있는 지성이 있다면, 그에게는 불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고 미래도 과거처럼 눈앞에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그에게 우연은 세계가 아니라 우리의 무지에 있었고, 확률은 모르는 만큼을 셈하는 도구였습니다. 이 꿈은 푸앵카레의 삼체 문제⁠(three-body problem)⁠와 로렌츠의 날씨 방정식에서, 처음의 작은 오차가 지수적으로 커지는 혼돈⁠(chaos)⁠ 앞에 멈춥니다(로렌츠 끌개⁠, Lorenz attractor⁠).

라플라스는 격동의 시대를 영리하게 건넜습니다. 1780년대에는 근대 화학을 세운 라부아지에와 함께 얼음이 녹는 양으로 열을 재는 열량계를 만들었고, 1785년에는 포병 시험관으로 열여섯 살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시험했습니다. 혁명기에는 미터법 위원회에서 일했고, 1799년 나폴레옹의 내무 장관이 되었다가 6주 만에 물러났습니다. 나폴레옹은 훗날 그가 행정에 무한소⁠(infinitesimal)⁠의 정신을 들여왔다고 회고했다고 전합니다. 제정에서 백작, 왕정복고 뒤에는 후작이 되었습니다. 1807년 푸리에의 열 논문을 심사한 사람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혁명은 학문의 제도를 뒤엎었습니다. 1793년 국민공회는 왕의 기관이던 아카데미를 없앴고, 그해 말 공안위원회는 라플라스를 라부아지에, 수학자 보르다, 전기력의 법칙을 찾은 물리학자 쿨롱과 함께 도량형 위원회에서 쫓아냈습니다. 공화주의의 미덕과 왕에 대한 증오가 모자란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는 가족과 함께 파리를 떠나 몇 달을 숨죽여 지냈습니다. 공포 정치가 끝난 1795년, 새로 세운 국립 학사원과 경도국, 사범학교가 그를 불렀습니다. 경도국은 항해에 쓰일 천체력을 만들고 관측을 이끄는 기관이었고, 사범학교에서 한 확률 강의가 뒤에 『확률에 관한 철학적 시론』으로 자랐습니다. 시험으로 학생을 뽑는 새 학교들과 그 교수진이 혁명기 파리를 유럽 수학의 중심으로 만들었고, 라플라스는 그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혁명기 파리와 에콜 폴리테크니크).

제정 시기에 그는 파리 과학계의 실력자였습니다. 1807년 무렵부터 파리 근교 아르쾨유의 집에서 이웃한 화학자 베르톨레와 함께 모임을 열어 푸아송, 물리학자 비오와 아라고, 화학자 게이뤼삭 같은 젊은 과학자들을 키웠습니다. 그의 계획은 빛과 열과 모세관 현상(가는 관 속에서 액체가 저절로 올라가는 현상)까지 모든 현상을 입자들 사이의 아주 짧은 거리에서 작용하는 힘으로 설명하는 것, 곧 하늘의 뉴턴 역학을 분자의 세계로 옮기는 것이었습니다. 이 계획은 제자들에게 자리를 나누어 주는 인맥이기도 했습니다. 그 바깥에서 입자 가설 없이 열의 흐름만 적은 푸리에와 빛을 파동으로 본 물리학자 프레넬이 1810–20년대에 이 학파와 부딪쳤고, 결국 두 사람의 방식이 이겼습니다.

1827년 그가 파리에서 죽은 뒤에도 그의 책은 바다를 건너 읽혔습니다. 미국 매사추세츠의 항해사 출신 수학자 너새니얼 보디치는 『천체역학』 네 권을 영어로 옮기면서, 라플라스가 '쉽게 알 수 있다'며 건너뛴 대목마다 풀이를 달았습니다. 스코틀랜드의 메리 서머빌은 1831년 이 책을 영국 독자를 위해 풀어 쓴 『하늘의 역학』을 냈고, 이 책은 케임브리지의 교재로 쓰였습니다. 뉴턴의 나라가 대륙의 해석학⁠(mathematical analysis)⁠으로 쓰인 뉴턴 역학을 다시 배우는 통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어지는 곳. 결과에서 원인의 확률을 거꾸로 따지는 역확률의 오늘 모습은 베이즈 정리입니다. 중심극한정리의 첫 경우인 동전 던지기는 이항분포⁠(binomial distribution)⁠에, 그 확률을 종 모양으로 바꾸는 열쇠인 n!의 어림은 스털링 공식⁠(Stirling's formula)⁠에 있습니다. 독립인 두 수의 합의 분포가 생성함수로는 두 식의 곱이 된다는 생각은, 파동을 주파수로 나누어 같은 일을 하는 푸리에 해석과 이어집니다. 법칙을 완전히 알아도 예측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은 혼돈과, 가장 단순한 식에서 그것이 일어나는 로지스틱 사상⁠(logistic map)⁠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오차를 다루는 일은 최소제곱 회귀와, 흩어짐을 재는 분산에서 이어집니다. 우연이 무지의 척도인지 세계의 성질인지를 묻는 이야기는 무작위성에, 작은 어긋남을 차례로 더해 가는 섭동 계산과 종 모양의 어림은 근사와 오차에 모았습니다.

관계.

가운데가 이 사람, 둘레가 이어진 인물들입니다. 선의 색은 관계의 종류(초록 스승·제자, 파랑 함께 연구, 보라 편지, 빨강 논쟁, 주황 영향)이고, 다른 인물의 페이지에 적힌 관계도 함께 모았습니다.

  • 영향을 받음 아이작 뉴턴 — 뉴턴이 신의 손이 필요할지 모른다고 남겨 둔 행성 궤도의 어긋남을 계산으로 풀어, 『천체역학』으로 그의 체계를 완성했습니다.
  • 영향을 받음 아브라암 드무아브르 — 드무아브르가 동전 던지기에서 찾은 종 모양 곡선을 독립인 요인들의 합 일반으로 넓혀 중심극한정리를 세웠고, 이항분포의 경우는 두 사람의 이름으로 불립니다.
  • 영향을 받음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 1810년 가우스의 『천체 운동론』을 읽고, 자신의 중심극한정리가 가우스의 오차 법칙과 최소제곱법에 근거를 준다는 것을 곧바로 보였습니다.

연표.

  • 1769년 파리로 가서 달랑베르의 도움으로 사관학교 교사가 되다
  • 1773년 과학 아카데미 준회원이 되다
  • 1774년 관측에서 원인의 확률을 거꾸로 추론하는 논문을 내다
  • 1785년 포병 시험관으로 열여섯 살의 보나파르트를 시험하고, 목성과 토성의 궤도 어긋남을 풀기 시작하다
  • 1793년 공안위원회에 의해 도량형 위원회에서 쫓겨나 파리를 떠나다
  • 1795년 학사원과 경도국의 창립 회원이 되고, 사범학교에서 확률을 강의하다
  • 1796년 『우주 체계 해설』에서 태양계가 도는 성운에서 생겼다는 가설을 내다
  • 1799년 『천체역학』 1권을 내고, 6주 동안 내무 장관을 지내다
  • 1807년 베르톨레와 함께 아르쾨유 학회를 열다
  • 1810년 작은 요인들의 합이 종 모양에 가까워진다는 정리를 발표하다
  • 1812년 『확률의 해석적 이론』을 내다
  • 1814년 『확률에 관한 철학적 시론』의 서문에 모든 것을 아는 지성을 적다
  • 1817년 부르봉 왕정에서 후작이 되다
이 개념이 나오는 큰 생각무작위성표현 바꾸기

이 인물이 나오는 긴 글

미분에서 회전까지 · 5편 · 복소수와 행렬 곱셈은 회전이다 복소수를 곱하는 일과 행렬로 평면을 돌리는 일은 같은 일이다. 확률 도박판에서 온 편지 1654년, 도중에 멈춘 내기의 판돈을 어떻게 나눌까? 두 수학자가 주고받은 편지에서 확률론이 태어났다. 삼각함수 원에서 파동으로 별의 위치를 재던 현의 표가 사인이 되고, 열의 흐름을 풀던 푸리에가 모든 파동을 사인으로 쪼갰다. 최소제곱과 선형대수 잃어버린 소행성 1801년, 발견 몇 주 만에 태양 뒤로 사라진 세레스. 스물네 살의 가우스는 흩어진 관측값에서 궤도를 되찾았다. 혼돈 나비의 날갯짓 방정식이 정해져 있으면 미래도 정해질까? 소수점 아래 몇 자리를 버린 계산이 날씨 예보의 한계를 드러냈다. 통계와 인과 담배와 폐암 상관관계는 인과관계가 아니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담배가 폐암을 일으킨다는 것은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조합론 세지 않고 세기 시의 운율을 세던 인도의 운율학자부터 오일러의 생성함수까지. 하나하나 늘어놓지 않고 경우의 수를 세는 법은 어떻게 자라났을까? 언어 모델 다음 단어를 맞히는 기계 다음 낱말을 짐작하는 일만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마르코프의 글자 세기에서 섀넌의 추측 게임, 트랜스포머와 규모의 법칙, 사람의 선호까지. 밑바닥에는 확률의 곱셈 규칙과 로그 하나가 있고, 그 수학은 모델이 왜 그럴듯하게 틀리는지도 말해 준다. 역문제 거꾸로 푸는 문제는 왜 어려운가 원인에서 결과를 계산하기는 쉽다. 흐린 사진, CT, 블랙홀 사진은 왜 결과에서 원인을 되찾기 어려웠을까? 작은 특잇값이 잡음을 키우는 벽과, 정규화·릿지 회귀·베이즈 사전확률이 사실은 같은 처방이라는 이야기. 라플라시안 라플라시안, 가장 많이 재사용된 식 이웃의 평균에서 나를 뺀다. 이 한 줄이 열의 법칙이고, 도박꾼이 이길 확률이고, 전기 회로와 나무 세기이고, 북의 음색이고, 사진의 윤곽선이고, 그래프를 가르는 칼이고, 잡음에서 그림을 빚는 확산 모델의 밑그림이다. 압축과 과학 압축하는 것이 이해하는 것이다 튀코 브라헤가 20년 동안 적은 행성의 위치를 케플러는 법칙 세 줄로 줄였다. 짧게 적는 일과 이해하는 일은 정말 같은 일일까? 오컴의 면도날을 비트로 재는 법, 과적합을 압축의 실패로 읽는 법, 그리고 그 말이 정리인 곳과 철학인 곳.

이 인물을 언급하는 페이지

이 페이지가 가리키는 개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