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개념 지도
시대와 장소(Times and places)

괴팅겐(Göttingen)

독일 중부의 대학 도시. 가우스가 천문대장으로 온 1807년부터 디리클레, 리만, 클라인, 힐베르트, 뇌터로 이어지며 한 세기 넘게 수학의 중심이었고, 1933년 나치 정권의 추방으로 몇 달 만에 무너졌다.

괴팅겐은 독일 중부의 작은 대학 도시입니다. 영국 왕이자 하노버 선제후였던 조지 2세가 1734년 세우고 1737년 문을 연 게오르크 아우구스트 대학이 도시의 거의 전부였습니다. 이 도시가 한 세기 넘게 수학의 중심이 된 것은 도시가 커서가 아니라 사람과 제도가 끊기지 않고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가우스에서 디리클레와 리만으로, 클라인과 힐베르트로, 에미 뇌터와 젊은 폰 노이만으로 이어진 이 줄은 1933년 나치 정권의 추방으로 몇 달 만에 끊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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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년 후원자인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나폴레옹 군대와 싸우다 입은 상처로 죽자, 가우스는 이듬해 괴팅겐 천문대장이 되어 평생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는 강의를 즐기지 않았고 제자도 적었지만, 그가 있다는 것만으로 이 대학은 수학의 지도에 올랐습니다. 1820년대 하노버 왕국의 삼각측량⁠(triangulation)⁠을 이끌며 수많은 관측을 최소제곱⁠(least squares)⁠으로 맞추었고(최소제곱 회귀⁠(least-squares regression)⁠, 정규분포⁠(normal distribution)⁠), 그 경험에서 곡면의 휘어짐을 곡면 위의 길이만으로 재는 가우스 곡률⁠(Gaussian curvature)⁠과 측지선⁠(geodesic)⁠의 이론이 나왔습니다. 1831년 물리학자 빌헬름 베버가 오자 두 사람은 지구 자기장을 함께 재고 1833년 전선으로 신호를 주고받았습니다. 1837년 새 하노버 왕이 헌법을 폐지하자 베버는 동화 수집과 언어학으로 이름난 야코프 그림과 빌헬름 그림 형제와 함께 항의한 '괴팅겐 7교수'로 쫓겨났습니다. 대학의 자유가 정치 앞에서 얼마나 약한지를 보여 준 사건⁠(event)⁠이었습니다.

1855년 가우스가 죽자 베를린의 디리클레가 자리를 이었습니다. 파리에서 배운 엄밀한 해석학⁠(mathematical analysis)⁠과 가우스의 정수론⁠(number theory)⁠을 잇던 그는 푸리에 급수⁠(Fourier series)⁠의 수렴⁠(convergence)⁠을 증명하며 오늘날의 함수⁠(function)⁠ 개념을 다듬은 사람입니다. 4년 뒤 그가 죽자 제자 리만이 정교수가 되었습니다. 리만은 이미 1854년 교수 자격 논문에서 리만 합⁠(Riemann sum)⁠으로 적분⁠(integral)⁠을 새로 정의했고, 가우스가 골라 준 강연 주제로, 곡면 위에서처럼 점마다 짧은 거리를 재는 규칙만 주면 차원이 몇이든 휘어진 공간의 기하⁠(geometry)⁠를 다룰 수 있게 하는 리만 기하⁠(Riemannian geometry)⁠를 세웠습니다(거리 함수⁠(metric)⁠, 쌍곡기하⁠(hyperbolic geometry)⁠). 60년 뒤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이 이 언어로 쓰였습니다. 1859년의 짧은 논문은 제타 함수⁠(zeta function)⁠의 영점⁠(zero)⁠과 소수⁠(prime number)⁠의 분포를 이었습니다. 가우스의 마지막 박사 제자 리하르트 데데킨트는 리만의 친구이자 디리클레 강의의 편집자로서, 실수⁠(real number)⁠를 유리수⁠(rational number)⁠의 자름으로 정의해 무리수⁠(irrational number)⁠에 논리적 토대를 주었습니다. 유리수 전체를 '아래쪽'과 '위쪽' 두 무더기로 가르는 방법 하나하나를 실수 하나로 보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음수와 제곱이 2보다 작은 유리수를 아래쪽에, 나머지를 위쪽에 두면 그 경계에 유리수는 없지만 자름은 분명히 있고, 이 자름이 곧 √2입니다(수 체계⁠, number system⁠). 1866년 프로이센이 하노버를 병합했고, 그해 리만이 요양지 이탈리아에서 죽었습니다.

프로이센의 대학이 된 괴팅겐을 다시 일으킨 사람은 1886년 라이프치히에서 온 펠릭스 클라인입니다. 그는 1872년 에를랑겐 강령⁠(Erlangen program)⁠에서, 기하학이란 정해진 변환들 아래에서 변하지 않는 성질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유클리드 기하는 옮기고 돌리고 뒤집어도 변하지 않는 길이와 각도를, 사영기하⁠(projective geometry)⁠는 그림자로 비추어도 변하지 않는 성질(세 점이 한 직선 위에 있다는 것 같은)을 다룹니다. 그래서 유클리드 기하, 사영기하, 쌍곡기하가 어떤 변환들의 모임, 곧 어떤 군을 택하느냐에 따라 하나의 틀로 정리되었습니다. 1880년대 초 푸앵카레와 벌인 치열한 경쟁 뒤 건강이 무너지자 그는 조직가로 변신했습니다. 학술지 『수학 연보』를 이끌고, 프로이센 문교부의 실력자 프리드리히 알트호프와 손잡고 인재를 모으고, 1898년에는 산업가들과 응용 수학·물리학 진흥 협회를 만들어 기업의 돈으로 연구소를 세웠습니다. 1904년 수치 계산의 카를 룽게가 독일 첫 응용수학 교수로 오고 루트비히 프란틀이 공기역학 연구를 시작한 것이 그 결과입니다. 여성에게도 문을 열어, 1895년 영국의 그레이스 치즘이 그의 지도로 정규 절차를 거친 독일 첫 여성 박사가 되었습니다.

클라인이 부른 가장 큰 인물이 1895년에 온 힐베르트입니다. 1899년 『기하학의 기초⁠(basics)⁠』는 점과 직선이 무엇인지 정의하지 않고 그들 사이의 관계를 정한 공리⁠(axiom)⁠만으로 유클리드 기하를 다시 세웠습니다. 이로써 평행선 공준⁠(parallel postulate)⁠이 나머지 공리들로부터 증명될 수 없다는 것(독립성)이, 나머지 공리는 모두 만족하면서 평행선 공준만 어기는 모형을 보이면 되는 정확한 수학의 문장이 되었습니다. 1900년 파리에서 발표한 문제 목록은 연속체 가설⁠(continuum hypothesis)⁠과 리만 가설⁠(Riemann hypothesis)⁠을 새 세기의 과제로 올렸습니다. 1904년부터 적분방정식을 연구하며 함수를 무한히 많은 좌표를 가진 벡터⁠(vector)⁠처럼 다루었고, 그때 그가 쓴 독일어 Eigenwert가 고유값⁠(eigenvalue)⁠이라는 이름으로 굳었습니다(내적⁠(dot product)⁠, 정사영⁠(orthogonal projection)⁠). 1902년에는 쾨니히스베르크 시절의 친구 헤르만 민코프스키가 합류해, 1908년 시간과 공간을 하나의 4차원 시공간⁠(spacetime)⁠으로 보는 강연을 했습니다. 1909년 민코프스키가 맹장염으로 갑자기 죽자 정수론의 에드문트 란다우가 그 자리를 이었고, 란다우는 그해 소수 정리⁠(prime number theorem)⁠와 소수 분포에 관한 두 권짜리 교과서를 냈습니다.

무한과 논리의 토대를 둘러싼 싸움도 이곳이 중심이었습니다. 힐베르트의 동료 에른스트 체르멜로는 1900년 무렵 러셀과 따로 '자기 자신을 원소⁠(element)⁠로 갖지 않는 집합⁠(set)⁠들의 집합'의 모순을 알아챘고(러셀의 역설⁠(Russell's paradox)⁠), 1908년 모순을 피하도록 집합을 만드는 규칙을 공리로 적었습니다. 대학생 시절 정리 하나를 증명한 펠릭스 베른슈타인도 있었습니다. 집합 A를 B 안으로, B를 A 안으로 각각 겹치지 않게 넣는 사상이 있으면 A와 B 사이에 빠짐없는 짝짓기, 곧 일대일대응이 있다는 정리입니다. 그는 괴팅겐의 교수가 되어 1918년 수리통계 연구소를 세웠습니다(집합의 크기⁠, cardinality⁠). 1920년대 힐베르트는 제자 파울 베르나이스와 함께 수학 전체를 기호와 규칙만으로 된 형식 체계⁠(formal system)⁠로 적고, 그 체계에서 어떤 명제와 그 부정이 함께 증명되는 일이 없다는 것(무모순성⁠, consistency⁠)을 증명하자는 계획을 폈고(수학 기초론 논쟁⁠(debate on the foundations of mathematics)⁠), 1928년 제자 빌헬름 아커만과 함께 어떤 논리식이 논리 법칙만으로 증명되는지 기계적으로 판정하는 결정 문제⁠(decision problem)⁠를 중심 문제로 꼽았습니다. 이 계획은 1931년 빈의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incompleteness theorem)⁠와 1936년 케임브리지의 튜링의 정지 문제⁠(halting problem)⁠로 한계가 드러났습니다.

물리학도 괴팅겐의 수학과 섞였습니다. 1915년 여름 힐베르트는 아인슈타인을 초청해 중력을 시공간의 휘어짐으로 설명하는 일반 상대성 이론⁠(general relativity)⁠의 강연을 듣고, 거의 같은 때에 그 휘어짐과 물질을 잇는 장 방정식⁠(field equations)⁠에 이르렀습니다. 같은 해 그는 에를랑겐의 에미 뇌터를 불렀습니다. 여성의 교수 자격을 반대하는 교수들에게 그가 "대학은 목욕탕이 아니다"라고 했다는 말이 전하고, 뇌터는 몇 해 동안 힐베르트의 이름을 빌린 강의를 해야 했습니다. 1918년 뇌터는, 작용이라는 양을 가장 작게(정확히는 정류하게) 하는 원리로 적히는 물리 법칙이라면 연속적인 대칭마다 보존되는 양이 하나씩 있다는 정리를 증명했습니다. 시간에 따라 법칙이 변하지 않으면 에너지가 보존되고, 공간을 옮겨도 변하지 않으면 운동량⁠(momentum)⁠이 보존됩니다. 1919년 바이마르 공화국에서야 교수 자격을 얻은 그는 1920년대 환과 아이디얼⁠(ideal)⁠의 추상 대수학⁠(abstract algebra)⁠을 세웠습니다. 환은 정수⁠(integer)⁠나 다항식⁠(polynomial)⁠처럼 더하기와 곱하기가 있는 수 체계를 공통된 규칙만 남겨 추상화한 것이고, 아이디얼은 정수 안의 짝수 전체처럼 무엇을 곱해도 그 안에서 빠져나가지 않는 부분입니다. 그의 강의를 들은 '뇌터의 아이들' 가운데 네덜란드의 반 데르 바르던은 1930–31년의 『현대 대수학』으로 그 방식을 세계에 퍼뜨렸습니다. 그의 이름은 등차수열⁠(arithmetic progression)⁠에 관한 한 정리에도 남아 있습니다(반 데르 바르던 정리⁠(van der Waerden's theorem)⁠). 모스크바의 수학자들도 자주 찾아와, 1930년에는 콜모고로프가 괴팅겐에 머물렀습니다.

1925년 물리학자 막스 보른의 조수였던 스물세 살의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원자의 관측량을 숫자의 배열로 적는 새 역학을 들고 왔고, 보른은 그 배열이 행렬⁠(matrix)⁠이며 곱하는 순서를 바꾸면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행렬의 곱⁠, matrix multiplication⁠). 이것이 행렬역학입니다. 1926–27년 록펠러 재단의 장학금으로 힐베르트에게 온 폰 노이만은 양자역학을 힐베르트의 무한 차원 공간 위에 다시 세워, 관측값을 연산자(함수를 다른 함수로 보내는 변환)의 고유값으로 읽는 틀을 만들었습니다. 미국 학생들이 유학을 오고 록펠러 재단의 돈으로 1929년 새 수학 연구소 건물이 문을 열었을 때, 괴팅겐은 수학과 물리학이 한 복도에 있는 세계의 중심이었습니다. 연구소를 이끈 리하르트 쿠란트는 슈프링거 출판사와 노란 표지의 교과서 총서를 만들어 괴팅겐의 강의를 책으로 퍼뜨렸습니다.

1933년 4월, 권력을 잡은 나치 정권은 유대계와 정치적으로 원치 않는 공무원을 몰아내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몇 주 사이에 쿠란트, 뇌터, 베른슈타인, 보른이 정직되었고, 물리학자 제임스 프랑크는 항의하며 스스로 물러났습니다. 그해 가을 란다우의 강의는 나치 학생들의 보이콧으로 막혔고, 부인이 유대계였던 수학자 헤르만 바일도 떠났습니다. 베르나이스도 자리를 잃었습니다. 유대인이 아니던 수학사가 오토 노이게바워는 충성 서약을 거부하고 코펜하겐으로 갔다가 미국에서 1940년 서평지 『수학 리뷰』를 창간했습니다. 괴팅겐의 수학이 유대인이 떠나서 피해를 입었느냐는 나치 교육부 장관의 물음에 힐베르트가 "괴팅겐에는 이제 수학이 없다"고 답했다는 이야기가 전하지만, 회고로만 남은 일화입니다. 뇌터는 미국의 브린마 대학으로 가서 1935년 세상을 떠났고, 힐베르트는 1943년 괴팅겐에서 몇 사람만 모인 장례식과 함께 묻혔습니다.

괴팅겐이 남긴 것은 떠난 사람들과 함께 퍼졌습니다. 쿠란트는 뉴욕 대학에 응용수학 연구소를 세웠고, 바일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로, 보른은 에든버러로 갔으며, 폰 노이만은 이미 1930년부터 프린스턴에 있었습니다. 20세기 중반 미국 수학이 세계의 중심이 된 데에는 이 이주가 컸습니다. 공리로 이론을 세우는 방식, 세미나와 연구소, 강의록을 교과서로 만드는 관행, 순수 수학과 물리학과 공학을 한 건물에 두는 구상이 이곳에서 굳었습니다. 전쟁 뒤 괴팅겐 대학은 다시 문을 열었지만 옛 자리를 되찾지는 못했습니다.

이어지는 곳. 괴팅겐을 떠난 사람들이 모인 곳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와 로스앨러모스에, 같은 시대 영국의 중심은 20세기 초 케임브리지에, 괴팅겐과 사람을 주고받은 동쪽의 학파들은 모스크바 수학 학파와 부다페스트의 수학자들에 있습니다. 가우스와 베버의 전선은 전신과 해저 케이블의 시대의 앞머리에 있습니다. 클라인과 뇌터가 기하와 물리를 정리한 방법은 대칭과 불변량⁠(invariant)⁠에서, 무한집합의 이론을 '칸토어가 만든 낙원'이라 부르며 아무도 우리를 그곳에서 쫓아내지 못하리라던 힐베르트의 싸움은 무한을 다루는 법과 자기 참조⁠(self-reference)⁠와 대각선에서, 휘어진 공간을 작은 조각에서 전체로 잇는 리만의 방법은 국소에서 전체로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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