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개념 지도
인물

야코프 베르누이(Jacob Bernoulli)

바젤의 수학자. 라이프니츠의 미적분⁠(calculus)⁠을 가장 먼저 익혀 넓혔고, 『추측술』에서 큰 수의 법칙⁠(law of large numbers)⁠을 처음 증명해 확률⁠(probability)⁠을 경험의 비율과 이었다.

lim⁡n→∞P ⁣(∣Snn−p∣>ε)=0\lim_{n\to\infty} P\!\left(\left|\frac{S_n}{n} - p\right| > \varepsilon\right) = 0

야코프 베르누이는 1655년 스위스의 대학 도시 바젤에서 향신료 무역으로 자리 잡은 상인 집안에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목사가 되기를 바랐고, 그는 1676년 신학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몰래 수학과 천문학을 공부했고, "아버지의 뜻을 거슬러 나는 별을 돌린다"는 라틴어 문구를 자신의 표어로 삼았습니다. 그가 서른 즈음이던 1684년, 라이프니츠가 라이프치히의 학술지에 여섯 쪽짜리 미분법 논문을 실었습니다. 너무 짧아 거의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 이 논문을 제대로 읽어 낸 첫 사람들이 바젤의 베르누이 형제였습니다.

굵은 막대가 이 사람의 생애이고, 흰검은 점은 페이지 끝 연표에 적은 일들입니다. 가는 막대는 같은 시대를 산 이 위키의 인물들입니다. 나이를 끌어 보세요.

나이 세 ·

베르누이 집안은 원래 안트베르펜의 개신교도였습니다. 16세기 후반 스페인 왕의 군대가 네덜란드의 개신교도를 박해하자 가족은 고향을 떠나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17세기 초 바젤에 자리 잡았습니다. 바젤은 종교 개혁 이후 개신교 도시였고, 한때 네덜란드의 인문학자 에라스뮈스가 머물렀던 인쇄와 대학의 도시였습니다. 이 가문에서는 세 대에 걸쳐 여덟 명쯤의 수학자가 나왔고, 야코프는 그 첫 사람입니다. 망명객의 후손으로 상업 도시에 뿌리내린 집안이 18세기 유럽 수학의 한 축이 된 것입니다.

1676년부터 몇 해 동안 제네바,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을 돌며 데카르트파의 수학과 영국 학자들을 만난 그는 1687년 바젤 대학의 수학 교수가 되어 죽을 때까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열세 살 아래의 동생 요한에게 수학을 가르쳤고, 두 형제는 라이프니츠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새 미적분으로 곡선 문제를 잇달아 풀었습니다. 1690년 그는 한 논문에서 라이프니츠의 합을 '적분(integral)'이라 불렀는데, 이 낱말이 인쇄된 첫 사례로 꼽힙니다(정적분⁠, definite integral⁠).

여행길에서 그는 제네바에서 앞 못 보는 소녀에게 글과 셈을 가르쳤고, 프랑스에서는 철학자 말브랑슈 주변의 데카르트파 학자들과, 네덜란드와 영국에서는 암스테르담 시장이자 수학자인 요하네스 후더, 런던의 화학자 보일과 실험가 훅 같은 이들과 사귀었습니다. 편지 공화국의 그물 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1680년 큰 혜성이 나타나자 그는 혜성이 정해진 궤도⁠(orbit)⁠를 따라 되돌아오는 천체라는 소책자를 써, 혜성을 하늘의 경고로 읽던 오랜 믿음과 거리를 두었습니다. 1687년 말 라이프니츠에게 처음 편지를 보냈을 때 답장은 몇 해 뒤에야 왔습니다. 라이프니츠가 이탈리아 여행 중이었기 때문인데, 그동안 형제는 여섯 쪽짜리 논문을 스스로 해독하고 넓혔습니다.

도전 문제는 이 시대 학자들이 새 방법의 힘을 겨루는 방식이었습니다. 1690년 야코프는 양 끝을 매단 사슬이 늘어진 곡선, 곧 현수선⁠(catenary)⁠의 모양을 물었습니다. 갈릴레이는 이 곡선을 포물선⁠(parabola)⁠에 가깝다고 보았지만 정확한 답은 아니었습니다. 이듬해 라이프니츠와 하위헌스, 그리고 동생 요한이 올바른 답을 내놓았습니다. 오늘날의 말로 그 모양은, 길이의 단위를 알맞게 고르면 (ex+e−x)/2(e^{x} + e^{-x})/2, 곧 지수함수⁠(exponential function)⁠ 두 개의 평균입니다. 문제를 낸 야코프 자신은 풀지 못했고, 요한은 형이 못 푼 문제를 자기는 하룻밤을 새워 풀었다고 뒤에까지 자랑했습니다. 스승이던 형은 자존심을 다쳤습니다.

그의 이름이 붙은 수 가운데 하나는 돈 계산에서 나왔습니다. 원금 1에 연이율 100%를 1년에 한 번 붙이면 2가 되고, 반년마다 50%씩 두 번 붙이면 (1+12)2=2.25(1 + \tfrac12)^2 = 2.25, n번 나누어 붙이면 (1+1n)n(1 + \tfrac1n)^n이 됩니다. 1683년 무렵 그는 이 값이 n과 함께 커지지만 3을 넘지 않는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그 극한⁠(limit)⁠이 오늘날 e라 부르는 2.718…이고, 지수함수의 밑입니다. 그는 또 로그 나선⁠(logarithmic spiral)⁠, 곧 한 바퀴 돌 때마다 중심에서의 거리가 같은 비율로 커지는 나선(앵무조개 껍데기와 비슷한 모양)에 매혹되어, 모양이 변해도 다시 같은 모습으로 살아난다는 뜻의 문구와 함께 묘비에 새겨 달라고 했습니다. 바젤 대성당에 남은 그의 묘비에는 석공의 실수로 로그 나선이 아니라, 한 바퀴마다 같은 거리만큼 커져 간격이 일정한 아르키메데스 나선⁠(Archimedean spiral)⁠이 새겨져 있습니다.

1689년부터 여러 편으로 낸 무한급수⁠(infinite series)⁠ 논문에는 동생의 증명을 빌려 조화급수⁠(harmonic series)⁠ 1+12+13+⋯1 + \tfrac12 + \tfrac13 + \cdots이 끝없이 커진다는 사실이 실렸습니다. 반면 제곱수⁠(perfect square)⁠ 역수⁠(inverse)⁠의 합 1+14+19+⋯1 + \tfrac14 + \tfrac19 + \cdots은 2보다 작다는 것까지는 쉽게 보이지만 정확한 값을 몰랐고, 그는 누구든 답을 알면 알려 달라고 청했습니다. 이 바젤 문제⁠(Basel problem)⁠는 45년 뒤 동생의 제자인 오일러가 π2/6\pi^2/6이라는 답으로 풀었습니다.

형제는 곧 경쟁자가 되었습니다. 1696년 요한이 최단 강하선⁠(brachistochrone)⁠ 문제, 곧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가장 빨리 미끄러져 내려가는 곡선을 묻자 야코프는 답이 사이클로이드⁠(cycloid)⁠임을 보이고, 곡선 전체를 바꿔 가며 가장 좋은 것을 찾는 더 어려운 문제(둘레가 일정한 곡선 가운데 어떤 넓이⁠(area)⁠를 가장 크게 하는 것)로 되받았습니다. 두 사람의 다툼은 학술지 지면에서 험하게 이어졌지만, 그 문제들이 라그랑주와 오일러의 변분법⁠(calculus of variations)⁠, 곧 수 하나가 아니라 곡선이나 함수⁠(function)⁠ 전체를 바꿔 가며 가장 좋은 것을 찾는 최적화⁠(optimization)⁠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가 20년 가까이 매달린 책 『추측술』은 그가 죽고 8년 뒤인 1713년 조카 니콜라우스의 손을 거쳐 바젤에서 나왔습니다. 2부는 순열⁠(permutation)⁠과 조합의 이론이고, 여기서 자연수⁠(natural number)⁠의 거듭제곱의 합 1m+2m+⋯+nm1^m + 2^m + \cdots + n^m을 n의 다항식⁠(polynomial)⁠으로 주는 공식이 나옵니다. 1+2+⋯+n=12n2+12n1 + 2 + \cdots + n = \tfrac12 n^2 + \tfrac12 n, 12+22+⋯+n2=13n3+12n2+16n1^2 + 2^2 + \cdots + n^2 = \tfrac13 n^3 + \tfrac12 n^2 + \tfrac16 n처럼 m이 얼마든 한 가지 규칙으로 계수를 정하는데, 그 규칙에 들어가는 수열 1, 1/2, 1/6, 0, −1/30, …을 오늘날 베르누이 수라 부릅니다(둘째 수는 관례에 따라 −1/2로 쓰기도 합니다). 그는 이 공식으로 1부터 1000까지 열제곱의 합을 7분 반도 안 되어 구했다고 적었습니다. 4부가 그가 가장 자랑한 정리입니다. 흰 공 3,000개와 검은 공 2,000개가 든 항아리에서 공을 꺼내고 돌려놓기를 되풀이하면, 뽑은 공 가운데 흰 공의 비율이 3/5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확률은 뽑는 횟수를 늘릴수록 얼마든지 0에 가까워진다(위의 식). 위의 식에서 SnS_n은 n번 뽑아 흰 공이 나온 횟수, p는 참된 비율 3/5, ε은 허용하는 벗어남(예를 들어 1/50)이고, 식은 '벗어날 확률이 n이 커지면 0으로 간다'는 뜻입니다. 확률을 모르는 항아리에서도 충분히 오래 뽑아 보면, 원하는 만큼 높은 확률로 원하는 만큼 가깝게 그 비율로 확률을 어림할 수 있다는 뜻이고, 오늘날의 큰 수의 법칙입니다. 그의 계산으로는 비율이 3/5에서 1/50 안에 들 확률을 1001분의 1000 이상으로 하려면 25,550번을 뽑아야 했습니다. 실제로는 훨씬 적어도 되어서, 뒤에 나온 종 모양 어림으로 계산하면 6,500번쯤이면 충분합니다. 그 차이를 줄인 것이 흩어짐의 크기가 n\sqrt n에 비례한다는 드무아브르의 발견입니다.

베르누이는 이 계산을 도박판 너머, 법정과 일상의 판단에 쓰려 했습니다. 확률이 1000분의 999쯤 되는 것을 '도덕적 확실성⁠(moral certainty)⁠'이라 부르고, 판사가 따를 이런 기준을 나라가 정해 두자고 제안했습니다. 성공과 실패 두 결과만 있는 시행을 지금도 '베르누이 시행⁠(Bernoulli trial)⁠'이라 부르고, 그 성공 횟수의 분포가 이항분포⁠(binomial distribution)⁠입니다. 1705년 그가 쉰 살로 죽자 바젤의 교수 자리는 동생 요한이 이었습니다.

『추측술』의 4부를 쓰던 1703–05년, 그는 라이프니츠와 편지로 이 정리를 놓고 다투었습니다. 라이프니츠는 가능한 경우가 무한히 많고 자연이 늘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지는 않으니, 유한한 관찰로는 확률을 정할 수 없다고 반대했습니다. 베르누이는 항아리의 예로 답했고, 확률을 모르는 곳에서도 결과를 세어 그것을 알아낼 수 있다는 이 '사후의' 추정이 책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책의 4부 제목은 이 방법을 시민의 일과 도덕과 경제에 쓰겠다고 밝힙니다. 그가 죽은 뒤 원고는 몇 해를 묵었고, 그사이 파리의 수학자 몽모르(1708)와 런던의 드무아브르(1711)가 확률의 책과 논문을 냈습니다. 확률은 도박의 문제에서 인구와 보험, 증언의 신뢰를 따지는 학문으로 넓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두 세기 뒤인 1913년 페테르부르크 학술원은 마르코프의 주도로 큰 수의 법칙 200주년을 기념했습니다.

이어지는 곳. 큰 수의 법칙이라는 이름은 1830년대 프랑스의 푸아송이 붙였고, 1906년 마르코프는 이 법칙이 서로 기대는 사건⁠(event)⁠들에서도 성립함을 보이려다 마르코프 연쇄⁠(Markov chain)⁠를 만들었습니다. 오래 되풀이한 비율로 확률을 재는 생각은 몬테카를로 방법⁠(Monte Carlo method)⁠과 뷔퐁의 바늘⁠(Buffon's needle)⁠로 이어집니다. 확률의 출발점은 파스칼과 페르마의 편지이고, 편지 n통을 봉투 n개에 넣을 때 하나도 제 봉투에 들어가지 않을 확률을 따진 교란순열⁠(derangement)⁠ 문제는 조카 니콜라우스가 몽모르와 편지로 다룬 것이고, 떨리는 줄의 움직임을 사인파⁠(sinusoid)⁠들의 합으로 쓸 수 있다고 주장해 달랑베르, 오일러와 논쟁한 다른 조카 다니엘도 이 가문 사람입니다(파동방정식⁠, wave equation⁠). 우연 속의 규칙성은 무작위성에서, 곡선 전체를 바꿔 가며 가장 좋은 것을 찾는 문제는 가장 좋은 것 고르기에서 이어집니다.

관계.

가운데가 이 사람, 둘레가 이어진 인물들입니다. 선의 색은 관계의 종류(초록 스승·제자, 파랑 함께 연구, 보라 편지, 빨강 논쟁, 주황 영향)이고, 다른 인물의 페이지에 적힌 관계도 함께 모았습니다.

  • 편지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 1687년부터 편지를 주고받으며 여섯 쪽짜리 미분법 논문을 해독해 넓혔고, 1703–05년에는 유한한 관찰로 확률을 알아낼 수 있는지를 두고 다투었습니다.
  • 영향을 줌 레온하르트 오일러 — 그가 1689년 풀지 못해 공개적으로 물은 바젤 문제를 동생의 제자 오일러가 1735년 풀었고, 오일러의 아버지 파울은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이었습니다.
  • 영향을 줌 안드레이 마르코프 — 마르코프는 큰 수의 법칙을 서로 기대는 사건으로 넓히다 마르코프 연쇄를 만들었고, 1913년 페테르부르크 학술원의 『추측술』 200주년 기념을 이끌었습니다.

연표.

  • 1676년 신학 학위를 받고 제네바·프랑스·네덜란드·영국으로 여행을 떠나다
  • 1682년 혜성이 궤도를 도는 천체라는 소책자를 내다
  • 1683년 복리⁠(compound interest)⁠ 계산에서 (1 + 1/n)ⁿ의 극한을 따지다
  • 1687년 바젤 대학의 수학 교수가 되고, 라이프니츠에게 첫 편지를 보내다
  • 1689년 무한급수 논문에서 제곱수 역수의 합(바젤 문제)을 묻다
  • 1690년 논문에 '적분'이라는 낱말을 처음 쓰고, 현수선의 모양을 묻다
  • 1697년 최단 강하선 문제를 풀고, 동생 요한과 공개적으로 다투기 시작하다
  • 1703년 라이프니츠와 관찰로 확률을 알아낼 수 있는지를 두고 편지로 다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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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물이 나오는 긴 글

미분에서 회전까지 · 1편 · 미분 순간의 속도 속도계는 '지금 이 순간'의 속도를 보여 준다. 순간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데, 무엇을 재는 걸까? 미분에서 회전까지 · 4편 · 오일러 공식 원을 그리는 지수함수 지수함수에 허수를 넣으면 원이 된다. 가장 유명한 등식은 어디서 왔을까? 확률 도박판에서 온 편지 1654년, 도중에 멈춘 내기의 판돈을 어떻게 나눌까? 두 수학자가 주고받은 편지에서 확률론이 태어났다. 소수 소수를 세는 사람들 소수는 제멋대로 흩어져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멀리서 세어 보면 로그가 보인다. 삼각함수 원에서 파동으로 별의 위치를 재던 현의 표가 사인이 되고, 열의 흐름을 풀던 푸리에가 모든 파동을 사인으로 쪼갰다. 계산 이론 기계가 풀 수 없는 문제 모든 수학 문제를 기계적으로 풀 수 있을까? 러셀의 역설에서 괴델과 튜링까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오'였고, 그 증명이 컴퓨터를 낳았다. 조합론 세지 않고 세기 시의 운율을 세던 인도의 운율학자부터 오일러의 생성함수까지. 하나하나 늘어놓지 않고 경우의 수를 세는 법은 어떻게 자라났을까? 언어 모델 다음 단어를 맞히는 기계 다음 낱말을 짐작하는 일만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마르코프의 글자 세기에서 섀넌의 추측 게임, 트랜스포머와 규모의 법칙, 사람의 선호까지. 밑바닥에는 확률의 곱셈 규칙과 로그 하나가 있고, 그 수학은 모델이 왜 그럴듯하게 틀리는지도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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