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개념 지도
인물

조제프 푸리에(Joseph Fourier)

프랑스의 수학자·물리학자·행정가. 열방정식⁠(heat equation)⁠을 세우고, 온도 분포를 사인과 코사인⁠(sine and cosine)⁠의 합으로 쪼개는 푸리에 급수⁠(Fourier series)⁠로 풀었다. 어떤 함수⁠(function)⁠까지 그렇게 쓸 수 있는지는 뒤의 해석학⁠(mathematical analysis)⁠이 가렸다.

f(x)=a02+∑k=1∞(akcos⁡kx+bksin⁡kx),bk=1π∫−ππf(x)sin⁡kx dxf(x) = \frac{a_0}{2} + \sum_{k=1}^{\infty}\bigl(a_k\cos kx + b_k \sin kx\bigr), \qquad b_k = \frac1\pi\int_{-\pi}^{\pi} f(x)\sin kx\,dx

조제프 푸리에는 1768년 프랑스 부르고뉴의 오세르에서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 부모를 모두 잃고 주변의 추천으로 베네딕트회가 운영하던 오세르의 군사 학교에서 공부했는데, 여기서 수학에 빠졌습니다. 수도회에 들어갈 준비를 하던 그를 1789년의 혁명이 다른 길로 이끌었습니다. 그가 평생 붙든 문제는 열이었습니다. 금속 막대의 한쪽을 데우면 열은 어떻게 퍼지는가? 증기기관이 세상을 바꾸기 시작하던 시대의 물리학 문제였고, 동시에 오일러와 라그랑주가 떨리는 줄을 두고 벌인 논쟁, 곧 '임의의 함수'를 사인⁠(sine)⁠들로 쓸 수 있느냐는 질문의 연장이었습니다.

굵은 막대가 이 사람의 생애이고, 흰검은 점은 페이지 끝 연표에 적은 일들입니다. 가는 막대는 같은 시대를 산 이 위키의 인물들입니다. 나이를 끌어 보세요.

나이 세 ·

혁명기에 그는 고향의 혁명 위원회에서 일하다 1794년 공포 정치 때 체포되었고, 로베스피에르가 몰락한 뒤 풀려났습니다. 곧 새로 세운 사범학교에 뽑혀 라그랑주, 라플라스, 몽주의 강의를 들었고, 곧 에콜 폴리테크니크의 교사가 되어 1797년에는 라그랑주의 뒤를 이어 해석학과 역학을 맡았습니다. 1798년에는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에 학자로 따라가 카이로에 세운 이집트 학사원의 서기를 맡았습니다. 돌아온 뒤 1802년부터 1815년까지 알프스 기슭 그르노블에서 이제르 도의 지사로 일하며 늪지를 말리는 공사를 감독하고 원정의 기록인 『이집트 지』의 서문을 썼습니다. 그르노블에서 그는 이집트 유물에 빠진 소년 샹폴리옹, 뒷날 이집트 상형 문자를 해독한 그 사람을 격려했다고 전합니다.

나폴레옹과의 인연은 끝까지 복잡했습니다. 1815년 엘바 섬을 빠져나온 나폴레옹이 그르노블로 다가오자, 부르봉 왕정에 충성을 맹세한 지사 푸리에는 도시를 떠나 리옹으로 갔습니다. 나폴레옹은 그를 벌하지 않고 오히려 론 도의 지사로 삼았지만, 그는 몇 달 만에 물러났습니다. 워털루 뒤 돌아온 왕정에서 그는 자리도 연금도 없는 처지가 되었고, 에콜 폴리테크니크 시절의 제자였던 센 도 지사 샤브롤이 파리 통계국의 일을 맡겨 그를 살렸습니다. 그는 파리의 인구와 출생, 사망을 정리한 통계⁠(statistics)⁠ 보고서를 엮으며, 많은 관측을 평균⁠(mean)⁠할 때 오차가 어떻게 줄어드는지를 설명하는 글을 붙였습니다. 1816년 과학 아카데미가 그를 회원으로 뽑았지만 루이 18세는 나폴레옹의 사람이었다는 이유로 승인하지 않았고, 이듬해 다시 뽑힌 뒤에야 회원이 되었습니다.

열에 관한 연구는 지사 시절의 밤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열이 온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온도가 가파르게 변하는 곳일수록 빠르게 흐른다고 보았습니다. 막대의 짧은 한 토막은 왼쪽에서 들어오는 열과 오른쪽으로 나가는 열의 차만큼 데워집니다. 두 흐름이 같으면 온도가 그대로이고, 차이가 생기는 것은 온도의 기울기⁠(slope)⁠가 자리마다 달라질 때, 곧 온도 곡선이 휠 때뿐입니다. 그래서 한 점의 온도가 오르내리는 빠르기는 그 자리에서 온도 곡선이 얼마나 휘었는지, 곧 두 번 미분⁠(differentiation)⁠한 값에 비례합니다. 이것이 열방정식 ut=k uxxu_t = k\,u_{xx}입니다. u(x, t)는 시각 t에 막대의 자리 x에서의 온도, utu_t는 그 온도가 시간에 따라 변하는 빠르기, uxxu_{xx}는 온도 곡선의 휨, k는 재료마다 다른 상수입니다. 양옆보다 차가운 점에서는 온도 곡선이 골짜기처럼(아래로 볼록하게) 휘어 uxx>0u_{xx} \gt 0이니 온도가 오르고, 양옆보다 뜨거운 점은 식습니다. 그는 온도 분포가 사인 모양일 때 계산이 놀랍도록 쉬워진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sin⁡nx\sin nx를 두 번 미분하면 자기 자신의 −n2-n^2배이므로, 사인 모양의 온도는 모양을 그대로 유지한 채 높이만 e−kn2te^{-kn^2 t}로 줄어듭니다(지수함수⁠, exponential function⁠). 진동수⁠(frequency)⁠가 높은 들쭉날쭉한 온도 차이일수록 먼저 사라지는 까닭입니다. 그렇다면 처음 온도가 어떤 모양이든 사인들의 합으로 쪼갤 수만 있으면, 조각마다 따로 줄어들게 한 뒤 다시 더하면 됩니다.

푸리에는 그럴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계수를 구하는 방법도 보였습니다. 진동수가 다른 두 사인(또는 사인과 코사인)을 곱해 한 주기⁠(period)⁠에서 적분⁠(integral)⁠하면 0이 되므로, 함수에 sin⁡kx\sin kx를 곱해 적분하면 다른 모든 항은 사라지고 k번째 계수만 남습니다(위의 식). 오늘날의 말로 사인과 코사인은 무한 차원 공간의 서로 수직인 축이고, 계수는 함수가 각 축에 드리운 그림자, 곧 정사영⁠(orthogonal projection)⁠입니다. 계수를 구하는 적분은 곱해서 더하기, 곧 내적⁠(dot product)⁠입니다. 끊어진 네모파조차 매끄러운 사인들의 합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이 푸리에 급수는 오일러의 직관이 틀린 곳이었습니다. 끊어진 곳 근처에서는 항을 아무리 늘려도 합이 목표를 끊긴 높이의 9%쯤 넘쳐 출렁이는데, 이것이 깁스 현상⁠(Gibbs phenomenon)⁠입니다.

학계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1807년 파리 학사원에 낸 논문은 라그랑주, 라플라스, 몽주, 수학자 라크루아의 심사를 거쳐 출판되지 못했습니다. 특히 라그랑주는 임의의 함수를 삼각급수⁠(trigonometric series)⁠로 나타낸다는 대목에 반대했습니다. 1811년 학사원이 열의 전파를 주제로 현상 공모를 걸자 푸리에는 수정한 논문으로 이듬해 상을 받았지만, 심사평에는 엄밀함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붙었습니다. 차가운 반응에는 수학 말고도 까닭이 있었습니다. 당시 파리 물리학의 주류는 라플라스와 그 제자들로, 열도 입자들 사이의 짧은 힘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푸리에는 열이 무엇인지 묻지 않고 열이 어떻게 흐르는지만 적었습니다. 입자 가설 없이 잴 수 있는 양만으로 방정식을 세운 것입니다. 라플라스의 제자인 물리학자 비오는 1804년 막대의 열전도를 먼저 다루었다고 여겼고, 푸아송은 푸리에의 결과를 자기 방식으로 다시 유도해 발표하며 여러 해 동안 그와 우선권을 다투었습니다. 그의 이론은 1822년 『열의 해석적 이론』으로 출판되었고, 그해 그는 과학 아카데미의 종신 서기가 되었습니다. 그 책의 서론에서 그는 자연을 깊이 연구하는 것이 수학적 발견의 가장 풍부한 원천이라고 썼습니다. 1824년에는 대기가 지표의 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다는 생각을 적어, 오늘날 온실효과⁠(greenhouse effect)⁠ 연구의 선구로 꼽힙니다.

그의 주장이 정확히 어디까지 참인지를 묻는 일이 이후 해석학의 뼈대가 되었습니다. 파리에서 그와 가까이 지낸 디리클레는 1829년 급수⁠(series)⁠가 수렴⁠(convergence)⁠하는 조건을 처음 엄밀하게 증명하면서, 입력마다 출력이 하나씩 정해지기만 하면 된다는 오늘날의 함수 개념을 다듬었습니다. 푸리에의 주장이 그대로 참은 아니라는 것도 드러났습니다. 1873년 뒤부아레몽은 연속함수인데도 푸리에 급수가 어떤 점에서 발산⁠(divergence)⁠하는 예를 만들었습니다. 리만은 삼각급수를 연구하다 적분을 새로 정의했고(리만 합⁠, Riemann sum⁠), 칸토어는 삼각급수 표현이 하나뿐인지를 따지다 무한 집합⁠(set)⁠의 이론에 이르렀습니다. 이집트에서 돌아온 뒤 몸이 약해진 그는 방을 몹시 덥게 하고 두꺼운 옷을 껴입고 지냈다고 전합니다.

말년의 그는 과학 아카데미 종신 서기로서 젊은 학자들의 뒤를 봐주었습니다. 독일에서 온 디리클레, 제네바 출신의 스튀름 같은 젊은이들이 그의 곁에 있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방정식의 실근이 어떤 구간에 몇 개 있는지 세는 방법을 연구했는데, 스튀름은 1829년 이 문제를 완전히 푸는 정리를 내놓으며 푸리에의 연구에서 출발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1830년 파리에서 죽었고, 방정식에 관한 그의 책은 이듬해에 나왔습니다.

그의 방정식은 열 밖에서 먼저 쓸모를 찾았습니다. 1827년 독일의 물리학자 옴은 전선 속 전기의 흐름을 푸리에의 열 흐름에 빗대어, 전류가 전압의 차에 비례한다는 법칙을 세웠습니다. 1840년 열여섯 살의 윌리엄 톰슨은 『열의 해석적 이론』을 몇 주 만에 읽고, 영국의 한 교수가 이 책을 틀렸다고 비판하자 그 비판이 틀렸음을 보이는 논문으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톰슨은 1862년 같은 방정식으로, 뜨겁게 태어난 지구가 지금의 온도로 식기까지 걸린 시간을 계산해 지구의 나이를 어림했습니다. 방사능이 알려지기 전의 가정에 기댄 그 답(수천만 년에서 수억 년)은 틀렸지만, 지질학과 진화론을 두고 긴 논쟁을 불렀습니다.

이어지는 곳. 1850년대 윌리엄 톰슨은 해저 전신선 속의 신호가 열처럼 번진다는 것을 푸리에의 방정식으로 보였습니다. 신호를 진동수로 쪼개는 눈은, 신호가 담은 진동수의 범위('대역폭⁠(bandwidth)⁠')로 신호를 다루는 표본화 정리⁠(sampling theorem)⁠와 섀넌–하틀리 정리⁠(Shannon–Hartley theorem)⁠로 이어집니다. 코사인⁠(cosine)⁠만 쓰는 변형은 사진을 줄이는 JPEG의 이산 코사인 변환⁠(discrete cosine transform)⁠이 되었습니다. 급수의 재료인 사인파⁠(sinusoid)⁠ 하나하나는 사인파와 사인과 코사인에서, 오일러와 라그랑주가 다투던 떨리는 줄은 파동방정식⁠(wave equation)⁠에서 볼 수 있습니다. 푸리에 급수에 특별한 값을 넣으면 1+14+19+⋯=π2/61 + \tfrac14 + \tfrac19 + \cdots = \pi^2/6이 다시 나오는데, 그 계산은 바젤 문제⁠(Basel problem)⁠에 있습니다. 어려운 대상을 계산하기 쉬운 조각들로 다시 적는 그의 한 수는 표현 바꾸기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관계.

가운데가 이 사람, 둘레가 이어진 인물들입니다. 선의 색은 관계의 종류(초록 스승·제자, 파랑 함께 연구, 보라 편지, 빨강 논쟁, 주황 영향)이고, 다른 인물의 페이지에 적힌 관계도 함께 모았습니다.

  • 논쟁 조제프루이 라그랑주 — 1795년 사범학교에서 그의 강의를 들었지만, 1807년 열 논문의 심사에서 라그랑주는 임의의 함수를 삼각급수로 쓴다는 대목에 끝내 반대했습니다.
  • 스승 피에르시몽 라플라스 — 1795년 사범학교에서 라플라스의 강의를 들었고, 뒤에는 열을 입자 사이의 힘으로 설명하려던 라플라스 학파와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 영향을 줌 페터 구스타프 르죈 디리클레 — 파리에 머물던 젊은 디리클레를 아꼈고, 디리클레는 1829년 푸리에 급수가 수렴하는 조건을 처음으로 엄밀하게 증명했습니다.
  • 영향을 줌 윌리엄 톰슨 — 열여섯 살에 『열의 해석적 이론』을 읽은 톰슨은 그 책을 변호하는 논문으로 연구를 시작했고, 같은 방정식으로 해저 전신선의 신호와 지구의 나이를 계산했습니다.

연표.

  • 1794년 공포 정치 때 체포되었다가 풀려나고, 새로 세운 사범학교의 학생으로 뽑히다
  • 1795년 에콜 폴리테크니크에서 가르치기 시작하다
  • 1798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에 학자로 따라가 이집트 학사원의 서기가 되다
  • 1802년 그르노블에서 이제르 도 지사가 되다
  • 1807년 열의 전파에 관한 논문을 학사원에 내다
  • 1812년 수정한 논문으로 학사원 현상 공모의 상을 받다
  • 1815년 백일 천하 동안 론 도 지사를 지내다 물러나다
  • 1816년 과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뽑혔지만 왕이 승인하지 않다
  • 1817년 과학 아카데미 회원이 되다
  • 1822년 『열의 해석적 이론』을 내고, 아카데미 종신 서기가 되다
  • 1824년 대기가 지표의 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다는 생각을 적다

이 인물이 나오는 긴 글

소수 소수를 세는 사람들 소수는 제멋대로 흩어져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멀리서 세어 보면 로그가 보인다. 삼각함수 원에서 파동으로 별의 위치를 재던 현의 표가 사인이 되고, 열의 흐름을 풀던 푸리에가 모든 파동을 사인으로 쪼갰다. 최소제곱과 선형대수 잃어버린 소행성 1801년, 발견 몇 주 만에 태양 뒤로 사라진 세레스. 스물네 살의 가우스는 흩어진 관측값에서 궤도를 되찾았다. 혼돈 나비의 날갯짓 방정식이 정해져 있으면 미래도 정해질까? 소수점 아래 몇 자리를 버린 계산이 날씨 예보의 한계를 드러냈다. 정보 이론과 압축 짧게 보내기 모스 부호는 왜 E를 점 하나로 보낼까? 섀넌의 엔트로피가 정한 압축의 한계와, 허프만 부호에서 JPEG까지 그 한계에 다가간 방법들. 통신과 잡음 잡음 너머로 대서양 바닥의 케이블은 왜 신호를 뭉갰을까? 잡음이 있어도 오류 없이 보낼 수 있다는 섀넌의 정리와, 그 한계를 50년 동안 쫓은 부호들. 역문제 거꾸로 푸는 문제는 왜 어려운가 원인에서 결과를 계산하기는 쉽다. 흐린 사진, CT, 블랙홀 사진은 왜 결과에서 원인을 되찾기 어려웠을까? 작은 특잇값이 잡음을 키우는 벽과, 정규화·릿지 회귀·베이즈 사전확률이 사실은 같은 처방이라는 이야기. 라플라시안 라플라시안, 가장 많이 재사용된 식 이웃의 평균에서 나를 뺀다. 이 한 줄이 열의 법칙이고, 도박꾼이 이길 확률이고, 전기 회로와 나무 세기이고, 북의 음색이고, 사진의 윤곽선이고, 그래프를 가르는 칼이고, 잡음에서 그림을 빚는 확산 모델의 밑그림이다. 수학의 오류 틀린 증명이 만든 수학 틀린 증명은 흔하다. 드물게, "정확히 어디가 틀렸는가"라는 물음이 새 분야를 낳는다. 코시의 합 정리와 균등 수렴, 라메의 증명과 아이디얼, 켐프의 사슬, 푸앵카레의 회수된 논문과 혼돈, 프레게의 법칙과 러셀의 편지, 보예보츠키와 증명 보조기까지. 오류는 대개 서로 다른 두 가지를 하나로 여긴 자리에 있었다. 불가능성 정리 불가능의 증명 각의 삼등분, 5차방정식의 근의 공식, 모든 파일을 줄이는 압축, 멈춤을 판정하는 프로그램, 공정한 투표 규칙. 없다는 것은 어떻게 증명할까? 서로 먼 분야의 불가능성 증명들은 거의 모두 불변량, 세기, 대각선이라는 세 가지 무기 가운데 하나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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