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비루니(Al-Bīrūnī)
가즈니 왕조의 궁정에서 도시들의 경도와 위도를 천문 관측으로 정하고 구면삼각법(spherical trigonometry)으로 메카의 방향을 계산했으며, 산꼭대기에서 지평선을 내려다본 각으로 지구의 반지름을 구하고 『인도지』로 인도의 학문을 소개한 호라즘 출신의 박식가.
알비루니는 973년 아랄해 남쪽, 아무다리야강 하류의 호라즘 지방에 있던 도시 카트(오늘날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났습니다. '비루니'는 페르시아어로 '바깥'을 뜻하는 말에서 왔다고 흔히 풀이하는데, 그가 도시의 성 밖에서 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젊어서 호라즘의 왕족이자 수학자인 아부 나스르 만수르에게 배웠고, 두 사람은 평면과 구면 위의 삼각형에서 각의 사인(sine)과 마주 보는 변 사이의 관계를 다듬었습니다. 그는 평생 천문학, 수학, 지리, 역사, 광물, 약물을 넘나들었습니다. 그래서 박식가라 불립니다.
나이
떠도는 학자. 10세기 말 이슬람 세계에서 학문의 후원은 바그다드의 칼리프에게서 지방의 여러 궁정으로 흩어져 있었습니다(지혜의 집). 알비루니의 삶도 그 궁정들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995년 호라즘에 내란이 일자 고향을 떠났고, 1000년 무렵에는 카스피해 남동쪽 고르간의 군주 카부스에게 여러 민족의 달력과 기념일을 견준 『연대학』을 바쳤습니다. 1004년 무렵 호라즘으로 돌아와 궁정에서 일했고, 같은 시대의 철학자이자 의사 이븐 시나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을 두고 편지로 논쟁했습니다.
1017년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의 가즈니를 수도로 한 가즈니 왕조의 마흐무드가 호라즘을 정복했고, 알비루니는 다른 학자들과 함께 가즈니로 끌려갔습니다. 마흐무드는 북인도로 거듭 원정했는데, 그는 1020년대 그 원정을 따라가 산스크리트어를 배웠습니다. 1030년 무렵 쓴 『인도지』는 인도의 철학, 종교, 달력, 천문학, 수학을 이슬람 세계에 소개한 책으로, 브라마굽타와 아리아바타의 학설을 자주 인용합니다.
도시의 좌표와 메카의 방향. 하루 다섯 번의 예배는 메카를 향해 드립니다. 어느 도시에서 메카의 방향(키블라)을 구하려면 두 도시의 위도와 경도를 알고, 지구 위에서 두 도시와 북극이 이루는 삼각형을 풀어야 합니다(구면기하, spherical geometry). 위도는 북극성이나 한낮의 해의 높이로 잴 수 있지만, 경도는 어렵습니다. 그가 쓴 방법의 하나는 같은 월식을 두 곳에서 보는 것입니다. 월식은 어디서나 같은 순간에 시작하지만, 각 도시의 시계는 그곳의 해를 따릅니다. 지구는 24시간에 360°를 도니 한 시간의 차이는 경도 15°의 차이입니다. 한 도시에서 밤 9시에 시작한 월식이 다른 도시에서 밤 10시에 시작했다면, 둘째 도시가 15° 동쪽에 있습니다. 1025년 무렵 가즈니에서 완성한 책 『도시 사이의 거리를 바로잡기 위한 장소들의 좌표 결정』은 이렇게 정한 좌표로 가즈니에서 메카의 방향을 계산합니다. 두 지점의 좌표로 구면 위의 거리를 구하는 오늘날의 하버사인 공식(haversine formula)도 같은 물음의 후손입니다.
산 위에서 잰 지구. 그는 에라토스테네스와 다른 방법으로 지구를 재기도 했습니다. 그의 기록에 따르면 오늘날 파키스탄 펀자브의 난다나 산성 근처에서, 높이 h를 아는 산꼭대기에 올라 지평선이 수평보다 얼마나 아래로 보이는지(내려본각 α)를 쟀습니다. 지평선으로 가는 시선은 지구에 접하므로, 지구 중심과 접점과 산꼭대기가 직각삼각형(right triangle)을 이룹니다. 빗변(hypotenuse)이 R + h이고 각 α에 붙은 변이 반지름 R이니 cos α = R/(R + h)입니다. 이를 R에 대해 풀면 위의 식이 나옵니다. 두 도시 사이를 걸어서 잴 필요 없이 산 하나와 코사인(cosine) 하나로 반지름이 나오는 셈입니다. 다만 각이 아주 작습니다. 높이 500 m의 산에서 실제 지구의 내려본각을 계산하면 0.72° 남짓에 불과합니다. 그가 쓴 길이 단위의 환산도 불확실해서, 그의 값이 얼마나 정확했는지는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1030년 마흐무드의 아들 마수드가 술탄이 되자 그는 더 나은 대접을 받았고, 마수드에게 바친 큰 천문서 『마수드 정전』에는 수백 곳의 좌표가 실렸습니다. 그는 광물의 비중을 재고 약물을 정리한 책도 남겼습니다. 1050년 무렵 가즈니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어지는 곳. 그의 좌표 책과 구면 위의 거리는 「까마귀와 택시」에, 메카의 방향과 예배 시각이 구면삼각법을 키운 이야기와 산 위에서 잰 지구는 「원에서 파동으로」에 있습니다. 바탕이 되는 구면기하, 사인과 코사인(sine and cosine), 하버사인 공식, 그리고 그가 소개한 인도 천문학의 아리아바타와 브라마굽타도 함께 보세요.
관계.
- 영향을 받음 프톨레마이오스 — 도시의 좌표를 모으고 천문표를 엮는 일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과 『알마게스트』의 전통 위에 있었습니다. 그는 그 값들을 새 관측으로 고쳐 나갔습니다.
- 영향을 받음 브라마굽타 — 『인도지』에서 인도의 학문을 소개하며 브라마굽타의 책을 가장 많이 인용했습니다.
- 영향을 받음 아리아바타 — 『인도지』에서 아리아바타와 그 뒤 인도 천문학자들의 학설을 자주 소개했습니다.
연표.
- 973년 호라즘의 카트(오늘날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나다
- 995년 호라즘의 내란을 피해 고향을 떠나다
- 1000년 고르간의 군주 카부스에게 여러 민족의 달력을 견준 『연대학』을 바치다(무렵)
- 1004년 호라즘으로 돌아와 궁정에서 일하다(무렵)
- 1017년 가즈니의 마흐무드가 호라즘을 정복하자 가즈니로 끌려가다
- 1022년 마흐무드의 인도 원정을 따라가다(1026년 무렵까지)
- 1025년 『도시 사이의 거리를 바로잡기 위한 장소들의 좌표 결정』을 완성하다(무렵)
- 1030년 『인도지』를 쓰다(무렵). 마수드가 술탄이 되다
- 1050년 가즈니에서 세상을 떠나다(무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