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개념 지도
인물

페터 구스타프 르죈 디리클레(Peter Gustav Lejeune Dirichlet)

푸리에 급수⁠(Fourier series)⁠의 수렴⁠(convergence)⁠을 처음 엄밀하게 증명하고, 해석학⁠(mathematical analysis)⁠의 도구로 등차수열⁠(arithmetic progression)⁠ 속 소수⁠(prime number)⁠의 무한함을 보여 해석적 정수론⁠(analytic number theory)⁠을 연 독일의 수학자.

gcd⁡(a,d)=1  ⇒  ∑p≡a (mod d)1p=∞\gcd(a, d) = 1 \;\Rightarrow\; \sum_{p \equiv a \ (\mathrm{mod}\ d)} \frac{1}{p} = \infty

페터 구스타프 르죈 디리클레는 1805년 라인강 서쪽의 뒤렌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이 지역은 나폴레옹의 프랑스에 속해 있었습니다. 집안의 성은 할아버지가 벨기에의 리슐레트 마을 출신이라 붙은 '리슐레트의 젊은이(le jeune de Richelette)'라는 말에서 왔습니다. 그가 자랄 무렵 수학의 중심은 파리였고, 독일에는 괴팅겐의 가우스가 거의 홀로 서 있었습니다. 디리클레는 파리에서 배운 해석학을 독일로 가져가, 가우스의 정수론⁠(number theory)⁠과 푸리에의 급수⁠(series)⁠를 엄밀한 논증으로 잇는 일을 평생의 과제로 삼았습니다.

굵은 막대가 이 사람의 생애이고, 흰검은 점은 페이지 끝 연표에 적은 일들입니다. 가는 막대는 같은 시대를 산 이 위키의 인물들입니다. 나이를 끌어 보세요.

나이 세 ·

열일곱 살에 파리로 간 그는 장군 푸아의 집에서 가정교사로 지내며 강의를 들었고, 푸리에를 비롯한 파리의 수학자들과 가까워졌습니다. 1825년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Fermat's Last Theorem)⁠에서 n = 5인 경우에 관한 논문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그가 남긴 나머지 경우는 곧 르장드르가 채웠습니다. 박물학자이자 탐험가 알렉산더 폰 훔볼트의 도움으로 프로이센에 자리를 얻어 1828년 베를린으로 옮겼고, 이후 27년 동안 베를린 대학과 사관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1832년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의 누이 레베카와 결혼했습니다.

그가 돌아간 프로이센은 나폴레옹에게 패한 뒤 나라를 다시 세우는 중이었습니다. 1810년 빌헬름 폰 훔볼트의 구상으로 세워진 베를린 대학은 가르침과 연구를 한 몸으로 묶는 새 대학의 본보기였고, 그 동생 알렉산더 폰 훔볼트는 파리에서 쌓은 인맥으로 젊은 과학자들을 프로이센에 불러들였습니다. 걸림돌은 자격이었습니다. 디리클레에게는 박사 학위가 없었고, 교수 자격을 얻으려면 라틴어로 강의하고 토론해야 했는데 그는 라틴어에 서툴렀습니다. 명예 박사 학위를 받고 라틴어 문제로 곡절을 겪은 끝에 1827년 브레슬라우에서 가르치기 시작했고, 이듬해 베를린으로 옮겨 1831년 베를린 학술원 회원이 되었습니다. 그의 논문 다수는 1826년 베를린의 기술자이자 수학 후원자 크렐레가 창간한 『순수·응용 수학 저널』에 실렸습니다. 파리의 회보와 겨룰 만한 학술지가 독일어권에 막 생겨, 독일 수학자들이 자기 무대를 갖게 된 때였습니다.

멘델스존 집안과의 결혼은 그를 베를린 문화계의 한가운데로 이끌었습니다. 레베카의 언니 파니 헨젤이 집에서 여는 일요 음악회에는 음악가와 학자들이 드나들었습니다. 수학에서 가장 가까운 벗은 쾨니히스베르크의 수학자 야코비였습니다. 1843년 야코비가 병을 얻자 디리클레는 가족과 함께 그를 따라 이탈리아로 가서 1년 넘게 머물렀고, 이듬해 야코비도 베를린으로 옮겨 왔습니다. 1847년 괴팅겐에서 온 스무 살의 리만이 배운 사람이 바로 이 두 사람이었습니다.

1829년 논문은 해석학의 전환점이었습니다. 푸리에는 어떤 함수든 사인과 코사인⁠(sine and cosine)⁠의 합으로 쓸 수 있다고 했지만, 그 합이 정말 함수⁠(function)⁠로 수렴하는지는 누구도 증명하지 못했습니다. 디리클레는 함수가 한 주기⁠(period)⁠ 안에서 유한 번만 끊어지고 유한 번만 오르내리면 푸리에 급수가 수렴하고, 끊어진 점에서는 양쪽 값의 평균⁠(mean)⁠으로 간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같은 논문에서 그는 유리수⁠(rational number)⁠에서 한 값, 무리수⁠(irrational number)⁠에서 다른 값을 갖는 함수를 예로 들었습니다. 식 하나로 쓰이지 않아도, 입력마다 출력이 하나씩 정해지기만 하면 함수라는 오늘날의 생각이 이런 예에서 자랐습니다. 이 함수는 구간을 아무리 잘게 나누어도 막대 합이 한 값으로 모이지 않습니다. 어느 작은 칸에나 유리수와 무리수가 함께 있어서, 막대 높이를 어디서 재느냐에 따라 합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함수는 뒤에 적분⁠(integral)⁠의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유리수 전체는 길이가 0인 집합⁠(set)⁠이라는 점을 이용해 이런 함수도 적분할 수 있게 한 것이 20세기의 르베그 적분⁠(Lebesgue integral)⁠입니다.

1837년의 정리는 더 큰 길을 열었습니다. a와 d가 서로소⁠(coprime)⁠이면 등차수열 a, a + d, a + 2d, …에 소수가 끝없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4로 나눠 1이 남는 소수도, 3이 남는 소수도 무한히 많습니다. 오일러는 소수 역수⁠(inverse)⁠의 합이 발산⁠(divergence)⁠한다는 것을 제타 함수⁠(zeta function)⁠의 곱 공식으로 보였는데, 디리클레는 이 곱을 나머지별로 쪼개는 도구를 만들었습니다. 수마다 d로 나눈 나머지⁠(remainder)⁠에 따라 정해진 부호나 복소수⁠(complex number)⁠ 값(오늘날의 디리클레 지표⁠(Dirichlet character)⁠)을 붙여 제타 함수를 변형한 것으로, 오늘날 L-함수라 부릅니다. d = 4라면 4로 나눠 1이 남는 수에 +1, 3이 남는 수에 −1, 짝수에 0을 붙여 1−13+15−17+⋯1 - \tfrac13 + \tfrac15 - \tfrac17 + \cdots이 되는데, 이 값이 0이 아닌 π/4라는 사실이 증명의 열쇠입니다. 지표마다 만든 이런 급수의 합이 모두 0이 아님을 보여, 그는 각 나머지 줄의 소수 역수의 합도 발산함을 증명했습니다. 소수가 살 수 있는 줄의 개수는 오일러 피 함수⁠(Euler's totient function)⁠ φ(d)이고, 줄을 나누는 언어는 모듈러 연산⁠(modular arithmetic)⁠입니다. 정수⁠(integer)⁠에 대한 질문을 연속적인 함수의 극한⁠(limit)⁠으로 푼 이 방법이 해석적 정수론의 시작으로 꼽히고, 그 길은 제자 리만의 제타 함수 논문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아주 단순한 논법도 강력하게 썼습니다. 둥지보다 비둘기가 많으면 어느 둥지엔가 둘이 들어간다는 비둘기집 원리⁠(pigeonhole principle)⁠를 독일에서는 오래 '디리클레의 서랍 원리⁠(drawer principle)⁠'라고 불렀습니다. 1842년 그는 이것으로 모든 무리수 α에 대해 ∣α−p/q∣<1/q2|\alpha - p/q| \lt 1/q^2인 분수 p/q가 무한히 많다는 근사 정리를 증명했습니다. 분모가 q인 분수는 1/q 간격으로 늘어서 있으니 보통은 1/q의 절반쯤까지 오차를 각오해야 하는데, 그보다 훨씬 작은 1/q21/q^2 안으로 들어오는 분수가 끝없이 있다는 뜻입니다. 2≈17/12\sqrt2 \approx 17/12의 오차는 약 0.0025로 1/144≈0.00691/144 \approx 0.0069보다 작습니다. 증명은 이렇습니다. 0, α, 2α, …, Nα의 소수 부분⁠(fractional part)⁠ N + 1개를 길이 1/N인 칸 N개에 넣으면 두 개가 한 칸에 들어갑니다. 그 두 배수⁠(multiple)⁠의 차 qα(q ≤ N)는 어떤 정수 p와 1/N보다 가까우니, ∣α−p/q∣<1/(qN)≤1/q2|\alpha - p/q| \lt 1/(qN) \le 1/q^2입니다. 그런 좋은 근사는 연분수⁠(continued fraction)⁠가 차례로 내놓습니다. 1850년에는 ax2+bxy+cy2ax^2 + bxy + cy^2 꼴의 식(이차 형식⁠, quadratic form⁠)을 연구하며, 격자점⁠(lattice point)⁠마다 그 점에 가장 가까운 영역으로 평면을 나누는 방법을 썼습니다. 오늘날의 보로노이 다이어그램⁠(Voronoi diagram)⁠입니다.

디리클레는 말수가 적고 편지 쓰기를 싫어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강의는 명료하기로 이름났습니다. 가우스의 『산술 연구』를 늘 곁에 두고 되풀이해 읽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그 어려운 책을 읽을 수 있는 강의로 풀어낸 사람이 바로 그였고, 그의 강의는 뒤에 제자 데데킨트가 『정수론 강의』(1863)로 엮었습니다. 리만과 데데킨트, 수학자 크로네커와 아이젠슈타인이 모두 그에게서 배웠습니다. 1855년 가우스가 죽자 괴팅겐으로 옮겨 그 자리를 이었지만, 4년 뒤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괴팅겐에서 보낸 4년은 짧았지만 흔적은 깊었습니다. 강의를 즐기지 않은 가우스와 달리 디리클레는 베를린에서 하던 대로 정기 강의를 이어 갔고, 이미 강사였던 데데킨트도 그의 강의실에 앉았습니다. 괴팅겐이 가르치는 대학으로 바뀌는 첫걸음이었습니다. 중력이나 전기가 만드는 위치 에너지(퍼텐셜⁠, potential⁠)를 다루는 퍼텐셜 이론 강의에서 나온 한 논법은 특히 멀리 갔습니다. 라플라스 방정식⁠(Laplace's equation)⁠은 테두리 온도를 고정한 쇠판이 더는 변하지 않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의 온도처럼, 각 점의 값이 둘레 값들의 평균이 되는 함수가 따르는 방정식입니다. 디리클레의 논법은 경계에서 값이 정해졌을 때 에너지 적분(함수가 얼마나 가파르게 변하는지를 모두 더한 값)을 가장 작게 만드는 함수를 찾으면, 그것이 곧 라플라스 방정식의 해라는 것입니다. 리만은 이것을 '디리클레 원리⁠(Dirichlet principle)⁠'라 부르며 복소함수론의 기둥으로 썼습니다. 1870년 바이어슈트라스는 가장 작은 값이 실제로 있다는 보장이 없다며 빈틈을 지적했고, 1900년 무렵 힐베르트가 조건을 달아 이 원리를 되살렸습니다. 가장 작은 것을 찾아 방정식을 푸는 이 생각은 가장 좋은 것 고르기의 역사에서 한 매듭이고, 다리나 날개 같은 모양을 작은 조각들로 나누고 에너지를 가장 작게 하는 근사해를 찾는 오늘날 공학의 유한 요소법⁠(finite element method)⁠도 같은 뿌리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이름은 뜻밖의 곳에서도 만납니다. 1839년 그는 여러 변수에 걸친 적분 하나를 계산했는데, 뒤에 이 적분에서 '디리클레 분포⁠(Dirichlet distribution)⁠'라는 확률⁠(probability)⁠ 분포가 이름을 얻었습니다. 합이 1인 비율들, 예컨대 한 문서에서 여러 주제가 차지하는 몫에 대한 분포여서, 2003년 문서 속 주제를 찾아내는 기계 학습⁠(machine learning)⁠ 모형 '잠재 디리클레 할당'의 뼈대가 되었습니다. 경계의 값을 정해 주는 조건은 공학에서 디리클레 경계 조건⁠(boundary condition)⁠이라 불리고, 등차수열 속 소수를 세려고 만든 L-함수⁠(L-function)⁠는 지금도 정수론의 중심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쉽게 알 수 있는 몇몇을 뺀 영점⁠(zero)⁠들이 모두 실수부⁠(real part)⁠가 1/2인 한 직선 위에 있으리라는 일반화된 리만 가설입니다. 푸리에의 급수를 엄밀하게 만들며 함수가 무엇인지 다시 묻게 한 일은 표현 바꾸기의 역사에서, 서랍 원리로 무리수를 분수로 붙잡은 일은 근사와 오차의 역사에서 자기 자리를 갖습니다.

이어지는 곳. 그의 수렴 정리⁠(convergence theorem)⁠는 푸리에 급수에서, 끊어진 점 근처에서 급수가 넘쳐 출렁이는 모습은 깁스 현상⁠(Gibbs phenomenon)⁠에서 볼 수 있습니다. 등차수열 속 소수는 소수에서, 소수가 살 수 있는 줄의 개수는 오일러 피 함수에서, 줄마다 소수가 고르게 나뉜다는 더 정밀한 결과는 소수 정리⁠(prime number theorem)⁠에서 이어집니다. 서랍 원리는 비둘기집 원리로, 평면을 가장 가까운 점별로 나누는 생각은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으로 이어집니다. 그의 스승 격인 푸리에와 가우스, 그의 제자 리만을 함께 읽으면 좋습니다.

관계.

가운데가 이 사람, 둘레가 이어진 인물들입니다. 선의 색은 관계의 종류(초록 스승·제자, 파랑 함께 연구, 보라 편지, 빨강 논쟁, 주황 영향)이고, 다른 인물의 페이지에 적힌 관계도 함께 모았습니다.

  • 영향을 받음 조제프 푸리에 — 파리 시절 가까이 지낸 푸리에의 열 이론과 삼각급수⁠(trigonometric series)⁠가 1829년 수렴 논문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 영향을 받음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 가우스의 『산술 연구』를 평생 곁에 두고 읽으며 강의로 풀어냈고, 1855년 가우스가 죽은 뒤 괴팅겐에서 그 자리를 이었습니다.
  • 논쟁 오귀스탱루이 코시 — 1829년 푸리에 급수 논문은 코시가 1823년에 낸 수렴 증명이 틀렸음을 지적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 영향을 받음 레온하르트 오일러 — 오일러가 곱 공식으로 소수 역수의 합이 발산함을 보인 논증을 나머지별로 쪼개어 등차수열 속 소수 정리를 증명했습니다.
  • 제자 베른하르트 리만 — 1847–49년 베를린에서 그의 정수론과 퍼텐셜 이론 강의를 들은 리만은 뒤에 '디리클레 원리'라는 이름을 붙였고, 1859년 괴팅겐에서 그의 자리를 이었습니다.

연표.

  • 1822년 파리로 가서 공부하며 푸리에와 가까워지다
  • 1825년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서 n = 5인 경우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다
  • 1827년 브레슬라우 대학에서 가르치기 시작하다
  • 1828년 베를린으로 옮겨 가르치기 시작하다
  • 1829년 푸리에 급수가 수렴하는 조건을 증명하다
  • 1831년 베를린 학술원 회원이 되다
  • 1832년 레베카 멘델스존과 결혼하다
  • 1837년 등차수열 속에 소수가 끝없이 있음을 증명하다
  • 1839년 뒤에 디리클레 분포의 이름이 된 다중 적분을 계산하다
  • 1842년 서랍 원리로 무리수의 유리수 근사 정리를 증명하다
  • 1843년 병을 얻은 야코비와 함께 이탈리아로 떠나다
  • 1855년 괴팅겐에서 가우스의 자리를 잇다

이 인물이 나오는 긴 글

미분에서 회전까지 · 2편 · 적분 거리를 되찾기 속도계 기록만 남았다. 차가 어디까지 갔는지 되찾을 수 있을까? 소수 소수를 세는 사람들 소수는 제멋대로 흩어져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멀리서 세어 보면 로그가 보인다. 삼각함수 원에서 파동으로 별의 위치를 재던 현의 표가 사인이 되고, 열의 흐름을 풀던 푸리에가 모든 파동을 사인으로 쪼갰다. 거리와 유사도 까마귀와 택시 까마귀는 곧장 날고 택시는 블록을 돌아간다. '얼마나 먼가'에는 답이 하나가 아니고, 어떤 거리를 고르느냐가 통계와 기계 학습의 답을 바꾼다. 램지 이론 완전한 무질서는 없다 여섯 명이 모이면 서로 아는 세 사람이나 서로 모르는 세 사람이 반드시 있다. 충분히 크면 어디에나 질서가 숨어 있다는 이론과, 그것을 동전 던지기로 증명한 에르되시. 라플라시안 라플라시안, 가장 많이 재사용된 식 이웃의 평균에서 나를 뺀다. 이 한 줄이 열의 법칙이고, 도박꾼이 이길 확률이고, 전기 회로와 나무 세기이고, 북의 음색이고, 사진의 윤곽선이고, 그래프를 가르는 칼이고, 잡음에서 그림을 빚는 확산 모델의 밑그림이다. 수학의 오류 틀린 증명이 만든 수학 틀린 증명은 흔하다. 드물게, "정확히 어디가 틀렸는가"라는 물음이 새 분야를 낳는다. 코시의 합 정리와 균등 수렴, 라메의 증명과 아이디얼, 켐프의 사슬, 푸앵카레의 회수된 논문과 혼돈, 프레게의 법칙과 러셀의 편지, 보예보츠키와 증명 보조기까지. 오류는 대개 서로 다른 두 가지를 하나로 여긴 자리에 있었다. 불가능성 정리 불가능의 증명 각의 삼등분, 5차방정식의 근의 공식, 모든 파일을 줄이는 압축, 멈춤을 판정하는 프로그램, 공정한 투표 규칙. 없다는 것은 어떻게 증명할까? 서로 먼 분야의 불가능성 증명들은 거의 모두 불변량, 세기, 대각선이라는 세 가지 무기 가운데 하나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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