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개념 지도
인물

조제프루이 라그랑주(Joseph-Louis Lagrange)

토리노에서 태어나 베를린과 파리에서 일한 수학자. 곡선 전체를 바꿔 가며 최적을 찾는 변분법⁠(calculus of variations)⁠과, 에너지 함수⁠(function)⁠ 하나로 운동을 적는 해석역학⁠(analytical mechanics)⁠을 세웠고, 조건 아래 최댓값을 찾는 라그랑주 승수⁠(Lagrange multiplier)⁠, 삼체 문제⁠(three-body problem)⁠의 특수해, 도함수⁠(derivative function)⁠ 기호 f′을 남겼다.

∇f=λ ∇g\nabla f = \lambda\,\nabla g

조제프루이 라그랑주는 1736년 사르데냐 왕국의 수도 토리노에서 태어났습니다. 이탈리아어 이름은 주세페 루이지 라그랑자로, 프랑스계 집안이었습니다. 아버지가 투기로 재산을 잃어 집안은 넉넉지 않았는데, 훗날 그는 부자였다면 수학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고 전합니다. 열일곱 살 무렵 영국의 천문학자 핼리가 쓴 글 한 편을 읽고 수학에 빠져 거의 혼자 공부했고, 열아홉 살인 1755년 토리노 포병 학교의 교사가 되었습니다. 그 무렵 유럽의 해석학⁠(mathematical analysis)⁠은 베를린의 오일러가 이끌고 있었습니다.

굵은 막대가 이 사람의 생애이고, 흰검은 점은 페이지 끝 연표에 적은 일들입니다. 가는 막대는 같은 시대를 산 이 위키의 인물들입니다. 나이를 끌어 보세요.

나이 세 ·

같은 해 그는 오일러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둘레가 정해진 곡선 가운데 넓이⁠(area)⁠가 가장 큰 것, 가장 빨리 미끄러져 내려가는 곡선처럼 수가 아니라 곡선 전체를 바꿔 가며 가장 좋은 것을 찾는 문제들을, 곡선을 조금씩 흔드는 변분 δ의 계산 하나로 푸는 방법이었습니다. 이런 문제는 곡선 y(x)의 점마다 높이 y와 기울기⁠(slope)⁠ y′으로 정해지는 양 L을 곡선을 따라 모두 더한 값, 곧 적분⁠(integral)⁠ ∫L(y,y′) dx\int L(y, y')\,dx을 가장 작게(또는 크게) 하는 곡선을 찾는 문제로 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L=1+y′2L = \sqrt{1 + y'^2}이면 이 적분은 곡선의 길이입니다. 가장 좋은 곡선이라면 그것을 아주 조금 흔들어도 적분값이 (흔든 양에 비례하는 만큼은) 변하지 않아야 하고, 이 조건을 식으로 쓰면 ddx∂L∂y′=∂L∂y\tfrac{d}{dx}\tfrac{\partial L}{\partial y'} = \tfrac{\partial L}{\partial y}가 됩니다. 오늘날의 오일러–라그랑주 방정식⁠(Euler–Lagrange equation)⁠이고, 길이의 경우에 풀면 답은 예상대로 곧은 직선입니다. 오일러는 이 방법이 자기 것보다 낫다고 보고 '변분법'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베르누이 형제가 다투던 문제들이 한 방법으로 모인 것이고, 함수 전체를 변수로 삼는 최적화⁠(optimization)⁠의 시작입니다. 1759년에는 떨리는 줄을 다룬 논문으로 달랑베르, 오일러, 다니엘 베르누이(요한 베르누이의 아들)의 논쟁(파동방정식⁠, wave equation⁠)에 뛰어들었는데, 줄의 모양을 사인⁠(sine)⁠들의 합으로 본 베르누이에게는 끝내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토리노는 유럽 학계의 변두리였습니다. 스무 살을 갓 넘긴 라그랑주는 1757년 귀족 살루초, 의사 치냐와 함께 작은 학회를 꾸리고 논문집 『토리노 잡록』을 펴냈습니다. 이 사사로운 모임이 뒤에 토리노 왕립 과학 아카데미가 됩니다(과학 아카데미). 변방의 젊은이가 이름을 알리는 길은 편지와 논문집, 그리고 파리 아카데미의 현상 공모였습니다. 그는 1764년 달이 늘 같은 면을 보이면서도 조금씩 흔들려 보이는 칭동⁠(libration)⁠의 문제로 첫 상을 받았고, 그 뒤로도 목성의 위성들, 삼체 문제, 혜성의 궤도⁠(orbit)⁠로 여러 번 상을 탔습니다. 하늘의 문제는 항해용 천체력과 이어진 나라의 문제였기에 아카데미는 넉넉한 상금을 걸었습니다.

1766년 오일러가 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가자, 오일러와 달랑베르의 추천으로 라그랑주가 베를린 아카데미의 수학 부장 자리를 이어받아 21년을 일했습니다. 프리드리히 2세는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왕의 궁정에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수학자가 있어야 한다며 그를 불렀다고 전합니다. 조용하고 정중한 그는 왕과 부딪치지 않았고, 날마다 정해진 분량만 연구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파리의 달랑베르와 오랫동안 편지로 결과를 나누었습니다(편지 공화국). 이 시기 정수론⁠(number theory)⁠에서 그는 모든 자연수⁠(natural number)⁠가 네 제곱수⁠(perfect square)⁠의 합이라는 정리(예: 7=4+1+1+17 = 4 + 1 + 1 + 1)를 처음 증명했습니다. 페르마가 증명 없이 주장했던 것입니다. 또 2\sqrt{2}처럼 이차방정식의 근인 무리수⁠(irrational number)⁠를 연분수⁠(continued fraction)⁠로 펼치면 어느 자리부터는 반드시 같은 무늬가 끝없이 되풀이된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2=1+12+12+⋯\sqrt2 = 1 + \cfrac{1}{2 + \cfrac{1}{2 + \cdots}}에서는 2가 끝없이 되풀이됩니다. 1770–71년에는 2차, 3차, 4차 방정식의 풀이법이 왜 통하는지를, 근들의 자리를 서로 바꾸는 순열⁠(permutation)⁠의 관점에서 다시 살폈습니다. 근의 합이나 곱처럼 근들을 어떻게 뒤섞어도 값이 그대로인 식은 방정식의 계수로 바로 적힙니다. 라그랑주는 근들을 뒤섞으면 몇 가지 값만 오가는 보조식을 만들고, 그 값들을 근으로 하는 보조 방정식을 먼저 풀면 원래 방정식이 풀린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3차방정식⁠(cubic equation)⁠에서는 보조 방정식이 2차, 4차방정식⁠(quartic equation)⁠에서는 3차로 차수가 낮아져서 풀이가 통합니다. 그런데 5차방정식에서는 같은 방식의 보조 방정식이 6차로 오히려 높아졌습니다. 이 분석은 반세기 뒤 아벨과 갈루아가 5차방정식에는 근호만으로 쓰는 일반 해법이 없음을 보이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하늘의 문제도 그의 몫이었습니다. 1772년 파리 아카데미 현상 논문에서 그는 세 물체의 운동(삼체 문제)을 일반적으로 풀 수는 없지만, 세 물체가 정삼각형이나 한 직선을 이룬 채 함께 도는 특별한 해가 있음을 보였습니다. 태양과 목성과 함께 정삼각형을 이루는 두 자리에는 실제로 소행성 무리가 모여 있다는 것이 1906년부터 관측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오늘날 이 자리들(정삼각형의 두 꼭짓점⁠(vertex)⁠과 일직선 위의 세 곳, 모두 다섯)을 라그랑주 점⁠(Lagrange point)⁠이라 부르고, 우주 망원경을 보내는 자리로도 씁니다. 그는 라플라스와 함께 행성 궤도의 느린 변화가 한없이 쌓이지 않고 오르내린다는 계산으로 태양계의 안정성⁠(stability)⁠을 따졌습니다. 삼체 문제의 일반적인 어려움은 한 세기 뒤 푸앵카레의 혼돈⁠(chaos)⁠으로 드러납니다.

1786년 프리드리히 2세가 죽자 그는 이듬해 파리로 옮겼고, 1788년 『해석역학』을 냈습니다. 머리말에서 그는 이 책에는 그림이 하나도 없으며 오직 대수적인 계산만 있다고 밝혔습니다. 힘과 도르래를 그리는 대신, 운동 에너지⁠(kinetic energy)⁠에서 위치 에너지를 뺀 함수(오늘날의 라그랑지안⁠(Lagrangian)⁠) 하나에서 앞의 오일러–라그랑주 방정식으로 모든 운동 방정식을 끌어내는 방식입니다. 이 책에는 제약이 있는 문제를 다루는 방법도 들어 있습니다. 조건 g=cg = c를 지키면서 f를 가장 크게 하는 문제입니다. 함수의 기울기 벡터⁠(gradient vector)⁠ ∇f\nabla f는 f가 가장 빨리 커지는 방향을 가리키고 f의 등고선에 수직입니다. 가장 큰 점에서는 f의 등고선이 조건의 곡선에 접해야 하므로(접하지 않고 가로지르면 곡선을 따라 조금 더 가서 f를 키울 수 있으니까), 두 기울기 벡터가 평행합니다(위의 식). 이것은 가장 큰 점이 만족해야 할 조건이지 충분조건⁠(sufficient condition)⁠은 아니고, ∇g\nabla g가 0이 아닌 점에서만 쓸 수 있습니다. 둘레가 20인 직사각형 가운데 넓이 f=xyf = xy가 가장 큰 것을 찾는다면, 조건은 g=2x+2y=20g = 2x + 2y = 20이고 ∇f=(y,x)\nabla f = (y, x), ∇g=(2,2)\nabla g = (2, 2)가 평행해야 하니 x = y = 5, 곧 정사각형입니다. 이 비례 상수 λ가 라그랑주 승수이고, 지금도 경제학과 기계 학습⁠(machine learning)⁠, 최대 엔트로피 원리⁠(principle of maximum entropy)⁠의 계산에서 매일 쓰입니다.

그를 파리로 부른 루이 16세는 루브르 궁 안에 거처를 내주었습니다. 그러나 『해석역학』을 낸 뒤 그는 몇 해 동안 수학에 흥미를 잃고 화학과 식물학, 의학 같은 다른 분야를 기웃거렸다고 전합니다. 1792년에는 천문학자 르모니에의 딸과 두 번째 결혼을 했습니다. 그를 다시 칠판 앞으로 불러낸 것은 혁명이었습니다. 혁명 정부는 옛 대학과 아카데미를 없애는 대신, 가문이 아니라 시험 성적으로 학생을 뽑아 나라에 필요한 기술자와 교사를 기르는 새 학교들을 세웠고, 당대 최고의 학자들에게 직접 강의를 맡겼습니다(혁명기 파리와 에콜 폴리테크니크).

혁명기의 파리에서 그는 미터법 위원회에 참여해 십진법 단위를 지지했습니다. 1793년 외국 출신을 체포하라는 법령이 나왔을 때 근대 화학을 세운 라부아지에가 나서서 그를 예외로 해 주었지만, 이듬해 라부아지에는 단두대에서 처형되었습니다. 1794년 세워진 에콜 폴리테크니크의 첫 해석학 교수가 되었고, 1797년의 『해석함수론』에서는 무한소⁠(infinitesimal)⁠ 대신 테일러 급수⁠(Taylor series)⁠를 미적분⁠(calculus)⁠의 기초⁠(basics)⁠로 삼으려 했습니다. 함수의 급수⁠(series)⁠ 전개에서 일차항의 계수를 '도함수'라 부르고 f′(x)f'(x), f′′(x)f''(x)로 적은 것(도함수)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f를 n + 1번 미분⁠(differentiation)⁠할 수 있으면, 0에서의 급수를 n차 항에서 끊었을 때 남는 오차가 정확히 f(n+1)(c) xn+1/(n+1)!f^{(n+1)}(c)\,x^{n+1}/(n+1)!(c는 0과 x 사이의 어떤 수)라는 나머지항⁠(remainder term)⁠ 공식도 이 책에서 나왔습니다. 그 사이에서 f(n+1)f^{(n+1)}의 크기를 어림할 수 있으면, 급수를 몇 항까지 더했을 때 오차가 얼마 이하인지 보장할 수 있습니다. 1795년 강의에서 내놓은 보간 공식⁠(interpolation formula)⁠은 주어진 점들을 모두 지나는 다항식⁠(polynomial)⁠을 곧바로 적어 주는데, 점이 많을 때 그 다항식이 크게 출렁이는 모습은 과적합⁠(overfitting)⁠에서 볼 수 있습니다.

1807년 푸리에가 열의 전파에 관한 논문을 냈을 때, 심사를 맡은 라그랑주는 임의의 함수를 삼각급수⁠(trigonometric series)⁠로 나타낸다는 대목에 반대했습니다. 반세기 전 베르누이에게 동의하지 않던 그 자리 그대로였습니다. 나폴레옹은 그를 상원 의원과 백작으로 삼았고, 1813년 파리에서 죽은 그는 팡테옹에 묻혔습니다. 급수를 미적분의 기초로 삼으려던 그의 계획은 코시의 반례로 무너졌지만, 그가 세운 기호와 방법은 남았습니다.

그의 영향은 제자보다 책과 기호를 타고 퍼졌습니다. 그는 어린 코시의 아버지에게, 열일곱 살이 되기 전에는 수학책을 펴지 못하게 하고 먼저 문학을 탄탄히 가르치라고 충고했다고 전합니다. 코시는 뒤에 그의 급수 기초론을 무너뜨리면서도, 미적분을 튼튼한 바닥 위에 세우겠다는 그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았습니다. 『해석역학』의 방식은 아일랜드의 해밀턴에게로 가서, 1830년대 운동을 에너지 함수 하나로 적는 해밀턴 역학⁠(Hamiltonian mechanics)⁠이 되었습니다. 해밀턴은 라그랑주의 책을 일종의 과학의 시라고 불렀고, 이 틀은 다시 20세기 양자역학의 언어가 됩니다. 1770년의 방정식 연구에서 근들을 뒤섞는 방법을 셈한 일은 갈루아를 거쳐, 뒤섞기들이 이루는 구조를 연구하는 오늘날의 군론으로 이어졌습니다. 나폴레옹은 그를 수학의 우뚝 솟은 피라미드라고 불렀다고 전합니다.

이어지는 곳. 라그랑주 승수는 조건을 지키며 가장 좋은 값을 찾는 최적화와, 그런 문제를 한 걸음씩 푸는 경사 하강법⁠(gradient descent)⁠의 제약 문제로 이어집니다. 나머지항은 급수를 어디서 끊어도 되는지 알려 주어 테일러 급수와, 급수가 통하는 범위인 수렴반경⁠(radius of convergence)⁠의 이야기와 짝을 이룹니다. 그가 끝내 반대한 '줄의 모양은 사인들의 합'이라는 생각은 푸리에 급수⁠(Fourier series)⁠와 파동방정식에서 옳은 것으로 밝혀집니다. 제곱수의 합을 다룬 네 제곱수 정리⁠(Lagrange's four-square theorem)⁠는 피타고라스 세 쌍⁠(Pythagorean triples)⁠과, 되풀이되는 펼침은 연분수에서 이어집니다. 베를린의 자리를 물려준 오일러, 태양계의 안정성을 함께 따진 라플라스, 에콜 폴리테크니크에서 함께 일하고 그가 죽은 뒤 경도국 자리를 이어받은 르장드르가 그의 동료였습니다. 제약 아래에서 가장 좋은 것을 찾는 긴 이야기는 가장 좋은 것 고르기에, 근을 뒤섞어도 변하지 않는 것을 보는 눈은 대칭과 불변량⁠(invariant)⁠에 모았습니다.

관계.

가운데가 이 사람, 둘레가 이어진 인물들입니다. 선의 색은 관계의 종류(초록 스승·제자, 파랑 함께 연구, 보라 편지, 빨강 논쟁, 주황 영향)이고, 다른 인물의 페이지에 적힌 관계도 함께 모았습니다.

  • 편지 레온하르트 오일러 — 1755년 열아홉 살에 변분의 새 방법을 편지로 보내자 오일러가 그 가치를 알아보고 이름을 붙였으며, 1766년 베를린의 자리를 물려주었습니다.
  • 함께 연구 피에르시몽 라플라스 — 1770–80년대에 행성 궤도의 느린 변화가 주기적으로 오르내린다는 결과를 주고받으며 함께 태양계의 안정성을 따졌습니다.
  • 영향을 줌 오귀스탱루이 코시 — 어린 코시의 재능을 알아보고 아버지에게 교육을 조언했고, 코시는 뒤에 그의 급수 기초론을 반례로 무너뜨리며 해석학을 새로 세웠습니다.
  • 영향을 줌 윌리엄 로언 해밀턴 — 에너지로 만든 함수 하나에서 운동 방정식을 끌어내는 『해석역학』의 방식이 1830년대 해밀턴 역학으로 이어졌고, 해밀턴은 이 책을 과학의 시라고 불렀습니다.

연표.

  • 1755년 토리노 포병 학교의 교사가 되고, 오일러에게 변분의 새 방법을 편지로 보내다
  • 1757년 토리노에서 작은 학회를 꾸리고 논문집을 펴내기 시작하다
  • 1759년 떨리는 줄과 소리의 전파에 관한 논문을 내다
  • 1764년 달이 조금씩 흔들려 보이는 칭동에 관한 논문으로 파리 아카데미 상을 처음 받다
  • 1766년 오일러의 뒤를 이어 베를린 아카데미 수학 부장이 되다
  • 1770년 네 제곱수 정리를 증명하고, 방정식의 근을 뒤섞는 방법을 연구하다
  • 1772년 삼체 문제의 특수해를 찾은 논문으로 파리 아카데미 상을 받다
  • 1787년 프리드리히 2세가 죽은 뒤 파리로 옮기다
  • 1788년 그림이 하나도 없는 『해석역학』을 내다
  • 1794년 에콜 폴리테크니크의 첫 해석학 교수가 되다
  • 1797년 『해석함수론』에서 f′(x) 기호와 테일러 나머지항 공식을 내놓다
  • 1807년 푸리에의 열 논문 심사에서 삼각급수에 반대하다
  • 1808년 나폴레옹에게서 제국 백작 작위를 받다

이 인물이 나오는 긴 글

미분에서 회전까지 · 1편 · 미분 순간의 속도 속도계는 '지금 이 순간'의 속도를 보여 준다. 순간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데, 무엇을 재는 걸까? 미분에서 회전까지 · 3편 · 테일러 급수 한 점에서 전부를 한 점에서의 값과 기울기, 휘는 정도만으로 함수 전체를 다시 그릴 수 있을까? 미분에서 회전까지 · 5편 · 복소수와 행렬 곱셈은 회전이다 복소수를 곱하는 일과 행렬로 평면을 돌리는 일은 같은 일이다. 삼각함수 원에서 파동으로 별의 위치를 재던 현의 표가 사인이 되고, 열의 흐름을 풀던 푸리에가 모든 파동을 사인으로 쪼갰다. 혼돈 나비의 날갯짓 방정식이 정해져 있으면 미래도 정해질까? 소수점 아래 몇 자리를 버린 계산이 날씨 예보의 한계를 드러냈다. 라플라시안 라플라시안, 가장 많이 재사용된 식 이웃의 평균에서 나를 뺀다. 이 한 줄이 열의 법칙이고, 도박꾼이 이길 확률이고, 전기 회로와 나무 세기이고, 북의 음색이고, 사진의 윤곽선이고, 그래프를 가르는 칼이고, 잡음에서 그림을 빚는 확산 모델의 밑그림이다. 불가능성 정리 불가능의 증명 각의 삼등분, 5차방정식의 근의 공식, 모든 파일을 줄이는 압축, 멈춤을 판정하는 프로그램, 공정한 투표 규칙. 없다는 것은 어떻게 증명할까? 서로 먼 분야의 불가능성 증명들은 거의 모두 불변량, 세기, 대각선이라는 세 가지 무기 가운데 하나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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