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개념 지도
인물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Carl Friedrich Gauss)

독일의 수학자·천문학자·물리학자. 『산술 연구』로 정수론⁠(number theory)⁠을 세우고, 사라진 소행성 세레스의 궤도⁠(orbit)⁠를 계산해 되찾게 했으며, 최소제곱법⁠(method of least squares)⁠을 오차의 법칙으로 정당화하고, 곡면의 곡률⁠(curvature)⁠과 비유클리드 기하⁠(non-Euclidean geometry)⁠, 전자기학까지 넓혔다.

φ(Δ)=hπ e−h2Δ2\varphi(\Delta) = \frac{h}{\sqrt\pi}\, e^{-h^2\Delta^2}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는 1777년 독일 브라운슈바이크 공국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정원사, 벽돌공 같은 일을 전전했고 어머니는 글을 거의 몰랐습니다. 초등학교 교사가 1부터 100까지 더하라는 문제를 내자 어린 가우스가 1 + 100, 2 + 99, …처럼 짝을 지어 101이 50개, 곧 5050이라고 곧바로 답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전하지만, 세부는 뒤에 부풀려진 것입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사람들 덕에 1791년부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학비를 댔습니다. 이 무렵 그를 가르친 조교 바르텔스는 뒤에 러시아 카잔 대학의 교수가 되어 로바쳅스키를 가르칩니다.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이 유럽을 흔들던 시대였습니다.

굵은 막대가 이 사람의 생애이고, 흰검은 점은 페이지 끝 연표에 적은 일들입니다. 가는 막대는 같은 시대를 산 이 위키의 인물들입니다. 나이를 끌어 보세요.

나이 세 ·

그를 키운 것은 계몽 군주의 후원이었습니다. 브라운슈바이크의 카를 빌헬름 페르디난트 공작은 열네 살의 가우스를 궁정에서 만난 뒤 학비를 댔고, 가우스는 브라운슈바이크의 콜레기움 카롤리눔을 거쳐 1795년 이웃 하노버 선제후국의 괴팅겐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하노버의 선제후가 곧 영국 왕이었던 덕에 괴팅겐은 영국과 이어진 대학이었고, 그 도서관은 독일에서 손꼽히게 풍부했습니다. 가우스는 거기서 오일러와 라그랑주의 논문을 빌려 읽었습니다. 1799년의 박사 학위는 공국 안의 헬름슈테트 대학에서 받았고, 『산술 연구』의 인쇄비도 공작이 대 주어 책은 그에게 바쳐졌습니다. 공작의 연금 덕에 그는 20대를 가르치는 일 없이 연구에만 쓸 수 있었습니다.

1796년 3월, 괴팅겐 대학의 열여덟 살 학생은 정17각형⁠(regular heptadecagon)⁠을 자와 컴퍼스만으로 그릴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유클리드 이후 2,000년 동안 아무도 새 정다각형⁠(regular polygon)⁠을 더하지 못했던 문제입니다. 열쇠는 z17=1z^{17} = 1의 근, 곧 단위원⁠(unit circle)⁠을 17등분한 1의 거듭제곱근⁠(roots of unity)⁠이었습니다. 17은 소수⁠(prime number)⁠이고 17−1=16=2417 - 1 = 16 = 2^4입니다. 3의 거듭제곱 3, 9, 27, …을 17로 나눈 나머지⁠(remainder)⁠는 3, 9, 10, 13, 5, 15, 11, 16, 14, 8, 7, 4, 12, 2, 6, 1로 1부터 16까지를 한 번씩 모두 지납니다. 이런 수를 법 17의 원시근⁠(primitive root)⁠이라 합니다. 가우스는 1이 아닌 16개의 근을 이 순서대로 늘어놓고, 홀수 번째와 짝수 번째로 번갈아 두 무리(8개씩)로 나누었습니다. 두 무리 각각의 합은 어떤 이차방정식의 두 근이 됩니다. 각 무리를 다시 같은 방식으로 둘로 나누기를 모두 네 번(16 = 2⁴이니까) 되풀이하면, 매 단계가 이차방정식 하나로 풀립니다. 이차방정식의 근은 제곱근이고 제곱근은 자와 컴퍼스로 그릴 수 있으니, cos⁡(2π/17)\cos(2\pi/17)도 제곱근을 겹겹이 써서 적을 수 있습니다. 같은 논리로 그는 변의 수가 3, 5, 17, 257, 65537처럼 22k+12^{2^k} + 1 꼴의 소수(페르마 소수)인 정다각형은 작도할 수 있음을 보였습니다. 그 밖의 소수로는 안 된다는 것은 1837년 프랑스의 방첼이 증명했습니다. 이 발견으로 그는 언어학 대신 수학의 길을 택했고, 이날부터 짧은 수학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넉 달 뒤의 일기에는 "유레카! 모든 수는 삼각수⁠(triangular number)⁠ 세 개의 합"이라는 한 줄이 있습니다. 삼각수는 0, 1, 3, 6, 10, 15, …이고, 예를 들어 20 = 10 + 10 + 0, 23 = 10 + 10 + 3입니다.

1799년의 학위 논문에서는 상수가 아닌 모든 다항식⁠(polynomial)⁠이 복소수⁠(complex number)⁠ 안에 근을 가진다는 대수학의 기본정리⁠(fundamental theorem of algebra)⁠를 증명했습니다. x2+1=0x^2 + 1 = 0은 실수⁠(real number)⁠ 근이 없지만 복소수 근 ±i를 가지는 것처럼, 복소수까지 넓히면 더 넓힐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 첫 증명에는 곡선이 어떻게 만나는지에 관해 증명 없이 기댄 대목이 있어 오늘날 기준으로는 빈틈이 있었고, 그는 뒤에 다른 증명들을 더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1801년 스물네 살에 『산술 연구』를 냈습니다. 첫머리에서 그는 n으로 나눈 나머지가 같은 두 수를 '합동⁠(congruence)⁠'이라 부르고 기호 ≡로 적어(시계에서 17시가 5시이듯 17≡5(mod12)17 \equiv 5 \pmod{12}), 흩어져 있던 정수론을 하나의 산수로 세웠습니다(모듈러 연산⁠, modular arithmetic⁠). 오일러 피 함수⁠(Euler's totient function)⁠의 기호 φ, 소수인 법에는 원시근이 늘 있다는 증명, 중국인의 나머지 정리⁠(Chinese remainder theorem)⁠의 체계적인 서술이 이 책에 있고, 그가 '황금 정리⁠(theorema aureum)⁠'라 부른 이차 상호 법칙⁠(quadratic reciprocity)⁠의 첫 완전한 증명이 실렸습니다. 오일러가 짐작하고 르장드르가 빈틈 있게 증명한 정리로, 그는 평생 여러 가지 다른 증명을 내놓았습니다. 1830년대에는 정수⁠(integer)⁠ 좌표의 복소수 m+nim + ni, 곧 가우스 정수⁠(Gaussian integer)⁠의 산수를 세웠습니다. 이 안에서는 소수 5도 (2+i)(2−i)(2 + i)(2 - i)로 쪼개지고, (2+i)2=3+4i(2 + i)^2 = 3 + 4i에서 세 변이 3, 4, 5인 직각삼각형⁠(right triangle)⁠이 나오듯 피타고라스 세 쌍⁠(Pythagorean triples)⁠이 복소수 곱셈⁠(complex multiplication)⁠으로 만들어집니다. 열다섯 살 무렵부터는 한가한 15분이 생길 때마다 천 개씩 끊어 소수를 세어, x 근처에서 소수가 나타나는 빈도가 대략 1/ln⁡x1/\ln x라고 짐작했습니다. 이 밀도를 2부터 x까지 쌓은 넓이⁠(area)⁠ Li(x)=∫2xdt/ln⁡t\mathrm{Li}(x) = \int_2^x dt/\ln t가 소수 정리⁠(prime number theorem)⁠의 가장 좋은 어림입니다(소수, 자연로그⁠(natural logarithm)⁠). 100만 이하의 소수 78,498개에 대해 이 넓이는 약 78,626으로, 0.2%쯤밖에 틀리지 않습니다.

같은 1801년, 그는 발견 몇 주 만에 태양 뒤로 사라진 소행성 세레스의 궤도를 몇 개의 관측만으로 계산해, 그해 말 천문학자들이 그의 예측 가까이에서 세레스를 다시 찾게 했습니다. 그 자신의 말로는 이때 쓴 방법이 오차의 제곱 합을 가장 작게 하는 최소제곱법입니다(최소제곱 회귀⁠, least-squares regression⁠). 다만 세레스 계산에서 이 방법이 어떤 몫을 했는지는 그가 남긴 기록만으로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1809년 『천체 운동론』에서 그는 거꾸로 추론했습니다. 같은 양을 여러 번 재어 평균⁠(mean)⁠을 내는 것이 늘 가장 그럴듯한 값이려면 오차는 어떤 분포를 따라야 할까? 답이 위의 종 모양 곡선(Δ는 오차, h는 측정이 얼마나 정밀한지를 나타내는 상수), 오늘날 가우스 분포⁠(Gaussian distribution)⁠라고도 부르는 정규분포⁠(normal distribution)⁠이고, 오차가 이 법칙을 따르면 최소제곱⁠(least squares)⁠의 답이 가장 그럴듯한 답이 됩니다. 1820년대에는 정규분포라는 가정 없이도 최소제곱이 가장 낫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관측값들에 일정한 가중치⁠(weight)⁠를 곱해 더하는 방식(일차 추정)으로 만든 추정 가운데, 평균적으로 참값을 맞히는 것(치우침 없는 추정⁠, unbiased estimator⁠)만 놓고 보면 최소제곱의 답이 가장 덜 흔들린다는 것입니다. 뒤에 마르코프가 다시 다듬어 가우스–마르코프 정리라 부릅니다. 정규방정식⁠(normal equations)⁠을 풀려고 체계적으로 쓴 소거 절차에 그의 이름이 붙었습니다(가우스 소거법⁠(Gaussian elimination)⁠). 1805년 무렵 소행성 궤도를 보간⁠(interpolation)⁠하려고 쓴 계산법은, 값 N개의 푸리에 계수를 N² 번이 아니라 N log N 번쯤의 계산으로 구하는 고속 푸리에 변환⁠(fast Fourier transform)⁠과 같은 방법이었습니다. 큰 문제를 절반 크기의 문제 둘로 나누기를 되풀이하는 분할 정복⁠(divide and conquer)⁠의 방법인데, 그는 이것을 출판하지 않았고, 1965년 쿨리와 튜키가 다시 찾아냈습니다. 최소제곱의 우선권을 두고는 1805년 먼저 출판한 르장드르와 앙금이 남았습니다.

1806년 후원자인 공작이 나폴레옹 군대와의 전투에서 입은 상처로 죽자, 브라운슈바이크와 괴팅겐은 곧 나폴레옹이 동생 제롬을 왕으로 세운 베스트팔렌 왕국에 들어갔습니다. 그보다 앞서 페테르부르크 학술원이 그를 부르려 했을 때 브레멘의 의사이자 천문학자 올베르스는 그가 독일에 남도록 애썼고, 결국 1807년 괴팅겐 천문대장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부임하자마자 점령 당국은 교수들에게 무거운 전쟁 분담금을 매겨 가우스에게는 2,000프랑이 떨어졌습니다. 파리의 라플라스와 올베르스가 대신 내겠다고 나섰지만 가우스는 도움을 사양했고, 결국 이름을 밝히지 않은 후원자가 그 돈을 냈다고 전합니다.

괴팅겐에서 그는 평생 천문대장 자리를 지켰습니다. 1820년대 전반에는 여름마다 하노버 왕국의 들판과 산꼭대기를 옮겨 다니며 삼각측량⁠(triangulation)⁠을 이끌었고, 먼 측점을 보이게 하려고 햇빛을 거울로 되쏘는 회광기⁠(heliotrope)⁠를 발명했습니다. 수많은 각의 측정값을 서로 모순 없이 맞추는 일에는 최소제곱법이 쓰였습니다. 브로켄, 호어하겐, 인젤스베르크 세 산꼭대기를 잇는 큰 삼각형의 각을 재어 공간이 정말 평평한지 시험했다는 이야기도 전하지만, 그 측량의 목적이 그것이었는지는 역사가들 사이에 의견이 갈립니다. 이 경험에서 나온 1827년의 『곡면에 대한 일반적 연구』 한가운데에 그가 '빼어난 정리⁠(Theorema Egregium)⁠'라 부른 결과가 있습니다. 곡면이 얼마나 휘었는지를 나타내는 가우스 곡률⁠(Gaussian curvature)⁠은 곡면 밖에서 보지 않아도 곡면 위에서 잰 길이만으로 정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면은 한 조각도 늘이거나 줄이지 않고 평면에 펼 수 없고, 모든 세계 지도는 무언가를 희생합니다(구면기하⁠(spherical geometry)⁠, 측지선⁠(geodesic)⁠). 그는 평행선 공준⁠(parallel postulate)⁠을 버려도 모순 없는 기하⁠(geometry)⁠가 생긴다는 것도 일찍 알았지만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1832년 헝가리의 옛 친구 보여이 퍼르카시가 아들 보여이 야노시의, 같은 기하를 담은 글을 보내오자, 이것을 칭찬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칭찬하는 셈이라고 답해 젊은이를 낙담시켰습니다(쌍곡기하⁠, hyperbolic geometry⁠).

가우스는 가르치는 일을 즐기지 않았습니다. 천문대장이라 강의 의무가 적었고, 학생이 몇 명 되지 않는 강의를 드문드문 열었습니다. 그래도 그의 둘레에서 한 세대의 학자가 자랐습니다. 천문학을 배운 엥케와 뫼비우스(한 면뿐인 띠에 이름을 남긴 사람), 그리고 말년의 최소제곱 강의를 들은 데데킨트와 리만이 그들이고, 리만의 박사 논문과 교수 자격 강연은 모두 그가 심사했습니다. 가우스가 세상과 이어진 통로는 오히려 편지였습니다. 브레멘의 올베르스, 쾨니히스베르크의 천문학자 베셀, 알토나의 천문학자 슈마허와 수십 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고, 발표하지 않은 비유클리드 기하와 타원 함수⁠(elliptic function)⁠의 생각이 이 편지들 속에 흩어져 있습니다(편지 공화국). 그가 괴팅겐을 수학의 도시로 만든 것은 강의보다 이름이었고, 그 뒤를 디리클레와 리만, 그리고 한 세대 뒤의 클라인과 힐베르트가 이었습니다.

1831년 그는 복소수를 평면의 점으로 다루며 '복소수'라는 이름을 써서 이 그림을 널리 받아들여지게 했습니다. 같은 해 젊은 물리학자 빌헬름 베버가 괴팅겐에 오자 두 사람은 지구 자기장을 함께 연구했고, 1833년 천문대와 물리학 실험실을 1킬로미터 남짓한 전선으로 이어 전자기 신호로 글자를 주고받았습니다. 자기장의 옛 단위 가우스가 그의 이름입니다. 1837년 베버가 헌법 폐지에 항의한 '괴팅겐 7교수'의 한 사람으로 쫓겨나자 공동 연구는 끊겼습니다. 그는 적지만 무르익은 것만 내놓는다는 뜻의 라틴어 문구를 인장에 새겼고, 실제로 많은 결과를 서랍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의 수학 일기는 1898년에야 발견되었습니다. 프랑스 점령기에는 남자 이름으로 그와 편지를 주고받던 프랑스의 수학자 소피 제르맹이 프랑스 장군에게 그의 안전을 부탁한 일로 정체가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말년의 가우스는 1854년 리만의 교수 자격 강연 주제로 세 후보 가운데 가장 준비가 덜 된 기하학의 기초⁠(basics)⁠를 골랐고, 이 강연에서 곡률을 가진 n차원 공간의 기하가 태어났습니다. 1855년 괴팅겐에서 죽자 그의 자리는 디리클레가, 뒤이어 리만이 이었습니다. 정17각형을 묘비에 새겨 달라고 했지만 석공이 원과 구별되지 않을 것이라며 거절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데, 확실한 기록은 없습니다. 고향 브라운슈바이크의 기념비 받침에는 17개의 꼭짓점⁠(vertex)⁠을 가진 별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의 책은 너무 압축되어 있어서 퍼지는 데 해설자가 필요했습니다. 『산술 연구』를 처음 제대로 소화한 사람 가운데 하나가 디리클레로, 그는 이 책을 늘 곁에 두고 읽었다고 전하며, 그의 강의를 데데킨트가 엮은 『정수론 강의』가 다음 세대가 가우스를 배우는 길이 되었습니다. 가우스가 죽은 뒤 하노버 왕은 그를 '수학자들의 왕'이라 새긴 기념 메달을 만들게 했습니다. 서랍 속 원고와 편지가 전집으로 출판되면서, 사람들은 그가 비유클리드 기하, 타원 함수, 고속 푸리에 변환의 생각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이어지는 곳. 가우스의 손길은 이 위키 곳곳에 있습니다. 정수론에서는 그가 기호 ≡로 세운 모듈러 연산, 정17각형의 열쇠였던 원시근, 그가 체계적으로 정리한 페르마–오일러 정리⁠(Euler's theorem)⁠가, 오늘날 RSA 암호⁠(RSA cryptosystem)⁠의 수학이 됩니다. 소년 시절의 소수 세기는 소수 정리로 증명되었습니다. 데이터에서는 세레스를 찾은 최소제곱 회귀, 오차의 법칙인 정규분포, 그 곡선 아래 넓이를 구하는 가우스 적분⁠(Gaussian integral)⁠, 오차가 왜 그 법칙을 따르는지 설명하는 중심극한정리⁠(central limit theorem)⁠, 정규분포의 흩어짐을 고려해 거리를 재는 마할라노비스 거리⁠(Mahalanobis distance)⁠로 이어집니다. 선형대수⁠(linear algebra)⁠에서는 정규방정식을 푸는 가우스 소거법, 최소제곱의 답을 그림자로 보는 정사영⁠(orthogonal projection)⁠과 열공간⁠(column space)⁠으로 이어집니다. 기하에서는 '빼어난 정리'의 가우스 곡률, 곡면 위의 가장 짧은 길인 측지선, 그가 발표하지 않은 쌍곡기하와 그 모형인 푸앵카레 원판⁠(Poincaré disk)⁠, 둥근 지구 위의 측량과 이어지는 하버사인 공식⁠(haversine formula)⁠이 있습니다. 통신에서는 정규분포를 따르는 잡음(가우스 잡음⁠, Gaussian noise⁠)이 전송 속도⁠(velocity)⁠의 한계를 정하는 섀넌–하틀리 정리⁠(Shannon–Hartley theorem)⁠로 이어집니다. 그가 평면의 점으로 그린 수는 복소수에서, 정17각형의 꼭짓점은 1의 거듭제곱근에서 볼 수 있습니다. 곡면 위에서만 잰 것으로 휘어짐을 아는 '빼어난 정리'는 국소에서 전체로에, 1의 거듭제곱근을 뒤섞는 구조로 정17각형을 푼 일은 대칭과 불변량⁠(invariant)⁠에, 오차를 다스리는 최소제곱은 근사와 오차에 모았습니다.

관계.

가운데가 이 사람, 둘레가 이어진 인물들입니다. 선의 색은 관계의 종류(초록 스승·제자, 파랑 함께 연구, 보라 편지, 빨강 논쟁, 주황 영향)이고, 다른 인물의 페이지에 적힌 관계도 함께 모았습니다.

  • 영향을 받음 레온하르트 오일러 — 괴팅겐 도서관에서 오일러를 빌려 읽으며 자랐고, 오일러가 짐작만 한 이차 상호 법칙을 1801년 처음으로 완전히 증명했습니다.
  • 제자 베른하르트 리만 — 리만의 박사 논문과 1854년 교수 자격 강연을 심사했고, 강연 주제로 기하학의 기초를 골라 곡률을 가진 n차원 공간의 기하가 태어나게 했습니다.
  • 영향을 줌 페터 구스타프 르죈 디리클레 — 디리클레는 압축된 『산술 연구』를 풀어 강의해 다음 세대에 전했고, 1855년 괴팅겐에서 가우스의 자리를 이었습니다.

연표.

  • 1791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만나 학비 후원을 받기 시작하다
  • 1795년 하노버 선제후국의 괴팅겐 대학에 들어가다
  • 1796년 정17각형을 자와 컴퍼스로 작도할 수 있음을 발견하고 수학 일기를 쓰기 시작하다
  • 1799년 대수학의 기본정리를 증명한 학위 논문으로 박사가 되다
  • 1801년 『산술 연구』를 내고, 사라진 소행성 세레스의 궤도를 예측하다
  • 1807년 후원자를 잃고 괴팅겐 천문대장이 되다
  • 1809년 『천체 운동론』에서 최소제곱을 오차의 확률⁠(probability)⁠ 법칙으로 정당화하다
  • 1821년 하노버 왕국의 측량을 이끌고 회광기를 발명하다
  • 1827년 『곡면에 대한 일반적 연구』에서 '빼어난 정리'를 발표하다
  • 1831년 복소수를 평면의 점으로 알리고, 물리학자 베버를 괴팅겐에 맞다
  • 1833년 베버와 함께 천문대와 실험실을 전선으로 이어 전신을 주고받다
  • 1851년 리만의 박사 논문을 심사하다
  • 1854년 리만의 교수 자격 강연 주제로 기하학의 기초를 고르다

이 인물이 나오는 긴 글

미분에서 회전까지 · 4편 · 오일러 공식 원을 그리는 지수함수 지수함수에 허수를 넣으면 원이 된다. 가장 유명한 등식은 어디서 왔을까? 미분에서 회전까지 · 5편 · 복소수와 행렬 곱셈은 회전이다 복소수를 곱하는 일과 행렬로 평면을 돌리는 일은 같은 일이다. 확률 도박판에서 온 편지 1654년, 도중에 멈춘 내기의 판돈을 어떻게 나눌까? 두 수학자가 주고받은 편지에서 확률론이 태어났다. 소수 소수를 세는 사람들 소수는 제멋대로 흩어져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멀리서 세어 보면 로그가 보인다. 정수론과 암호 나머지로 지키는 비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두 사람이 모두가 엿듣는 통신망에서 비밀 열쇠를 맞출 수 있을까? 답은 시계의 산수와 1640년 페르마의 정리에 있다. 삼각함수 원에서 파동으로 별의 위치를 재던 현의 표가 사인이 되고, 열의 흐름을 풀던 푸리에가 모든 파동을 사인으로 쪼갰다. 최소제곱과 선형대수 잃어버린 소행성 1801년, 발견 몇 주 만에 태양 뒤로 사라진 세레스. 스물네 살의 가우스는 흩어진 관측값에서 궤도를 되찾았다. 비유클리드 기하 평행선의 반란 유클리드의 다섯 번째 공준은 2,000년 동안 증명되지 않았다. 증명을 포기한 사람들이 찾은 것은 새로운 우주였다. 그래프 이론 일곱 다리의 도시 쾨니히스베르크의 일곱 다리를 한 번씩만 건너 산책할 수 있을까? 오일러는 지도를 지우고 점과 선만 남겼다. 혼돈 나비의 날갯짓 방정식이 정해져 있으면 미래도 정해질까? 소수점 아래 몇 자리를 버린 계산이 날씨 예보의 한계를 드러냈다. 거리와 유사도 까마귀와 택시 까마귀는 곧장 날고 택시는 블록을 돌아간다. '얼마나 먼가'에는 답이 하나가 아니고, 어떤 거리를 고르느냐가 통계와 기계 학습의 답을 바꾼다. 정보 이론과 압축 짧게 보내기 모스 부호는 왜 E를 점 하나로 보낼까? 섀넌의 엔트로피가 정한 압축의 한계와, 허프만 부호에서 JPEG까지 그 한계에 다가간 방법들. 신경망과 기계 학습 배우는 기계 예를 보여 주면 규칙을 스스로 찾는 기계. 1958년의 퍼셉트론에서 오늘의 심층 신경망까지, 그 밑바닥에는 미분과 연쇄법칙이 있다. 역문제 거꾸로 푸는 문제는 왜 어려운가 원인에서 결과를 계산하기는 쉽다. 흐린 사진, CT, 블랙홀 사진은 왜 결과에서 원인을 되찾기 어려웠을까? 작은 특잇값이 잡음을 키우는 벽과, 정규화·릿지 회귀·베이즈 사전확률이 사실은 같은 처방이라는 이야기. 라플라시안 라플라시안, 가장 많이 재사용된 식 이웃의 평균에서 나를 뺀다. 이 한 줄이 열의 법칙이고, 도박꾼이 이길 확률이고, 전기 회로와 나무 세기이고, 북의 음색이고, 사진의 윤곽선이고, 그래프를 가르는 칼이고, 잡음에서 그림을 빚는 확산 모델의 밑그림이다. 불가능성 정리 불가능의 증명 각의 삼등분, 5차방정식의 근의 공식, 모든 파일을 줄이는 압축, 멈춤을 판정하는 프로그램, 공정한 투표 규칙. 없다는 것은 어떻게 증명할까? 서로 먼 분야의 불가능성 증명들은 거의 모두 불변량, 세기, 대각선이라는 세 가지 무기 가운데 하나를 쓴다. 압축과 과학 압축하는 것이 이해하는 것이다 튀코 브라헤가 20년 동안 적은 행성의 위치를 케플러는 법칙 세 줄로 줄였다. 짧게 적는 일과 이해하는 일은 정말 같은 일일까? 오컴의 면도날을 비트로 재는 법, 과적합을 압축의 실패로 읽는 법, 그리고 그 말이 정리인 곳과 철학인 곳. 범주론 화살표만으로 본 수학 최대공약수와 교집합과 '그리고'는 같은 것이고, 화살표를 뒤집으면 최소공배수와 합집합과 '또는'이 된다.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묻지 않고 어떻게 이어지는지만 보는 언어로, '자연스럽다'는 말의 뜻, 관계만으로 대상을 알아보는 요네다의 생각, 함자로 본 연쇄법칙, 어디에나 있는 수반까지 사이트의 여러 분야를 가로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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