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콰리즈미(Muhammad ibn Musa al-Khwarizmi)
9세기 바그다드에서 칼리프 알마문을 섬긴 학자로, 방정식을 여섯 꼴로 나누어 각각의 풀이 절차와 그림 증명을 준 책으로 '대수학'(algebra)이라는 이름을, 인도 숫자로 셈하는 법을 다룬 책으로 '알고리즘(algorithm)'이라는 낱말을 남긴 사람.
무함마드 이븐 무사 알콰리즈미는 9세기 전반 아바스 왕조의 수도 바그다드에서 일한 학자입니다. '알콰리즈미'는 '호라즘 사람'이라는 뜻으로, 호라즘은 아랄해 남쪽 아무다리야강 하류,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에 걸친 오아시스 지방입니다. 10세기의 역사가 알타바리는 그의 이름에 바그다드 근처의 지명과 조로아스터교 집안을 암시하는 말을 덧붙여 적었는데, 이것이 그의 출신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지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갈립니다. 그는 칼리프 알마문(재위 813–833) 아래에서 천문학자로 일했고, 그리스와 인도와 페르시아의 과학이 아랍어로 옮겨지던 흐름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바그다드 지혜의 집). 생애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지만, 그가 남긴 두 권의 수학책은 두 개의 낱말로 오늘날의 모든 언어에 살아 있습니다.
나이
무엇을 위한 대수학인가. 820년대 무렵 알마문에게 바친 『복원과 대비의 계산에 관한 요약서』의 머리말에서, 그는 이 책이 상속과 유언, 재산 분할과 소송, 교역, 토지 측량과 운하 공사에서 사람들이 늘 필요로 하는 계산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슬람 상속법은 유산을 아내, 딸, 아들, 부모에게 정해진 분수대로 나누게 했고, 유언으로 남에게 떼어 줄 몫까지 얽히면 계산이 금세 복잡해졌습니다. 책의 뒷부분 절반가량이 이런 상속 문제이고, 그 대부분은 분수가 섞인 1차방정식으로 풀립니다. 대수학은 처음부터 법정과 시장의 수학이었습니다.
재산, 근, 수. 그는 기호를 전혀 쓰지 않았습니다. 수까지 모두 낱말로 적었습니다. 미지수는 '근'(지드르), 그 제곱은 '재산'(말), 그냥 수는 '디르함'이라는 은화 단위로 불렀습니다. 풀이의 두 기본 동작이 책 이름이 되었습니다. '알자브르'(복원)는 한쪽에서 빠진 항을 반대편에 더해 되살리는 일입니다. '재산은 근 마흔에서 재산 넷을 뺀 것과 같다'면, 빠진 재산 넷을 양쪽에 더해 '재산 다섯은 근 마흔과 같다'로 만듭니다. 오늘날의 기호로
여섯 가지 꼴. 그에게는 음수도, 계수가 0인 항도 없었습니다. 모든 항은 양수여야 했으니, 오늘날 한 줄로 쓰는 2차방정식이 여섯 가지 꼴로 나뉩니다. 재산이 근과 같은 꼴(
근이 둘인 꼴. 다섯째 꼴에서 그는 근이 두 개일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재산과 스물한 디르함이 근 열과 같다', 곧
그림으로 보이는 증명. 그는 절차가 왜 맞는지를 그림으로 보였습니다. '재산과 근 열이 서른아홉 디르함과 같다', 곧
인도 숫자로 셈하기. 그의 또 다른 책은 인도에서 온 숫자로 셈하는 법을 다루었습니다. 아홉 개의 숫자와 빈자리를 나타내는 작은 동그라미만으로 어떤 수든 적고, 자리마다 10배씩 커지는 규칙으로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 제곱근을 하는 방법입니다(진법, positional notation). 아랍어 원본은 사라졌고 12세기의 라틴어 번역만 남았는데, 그 번역이 '알고리즈미가 말하기를'(Dixit Algorizmi)로 시작합니다. 중세 유럽에서 인도 숫자로 셈하는 법은 그의 이름을 따 알고리스무스(algorismus)라 불렸고, 이 말이 그리스어 아리트모스(수)와 뒤섞여 오늘날의 algorithm이 되었습니다. 같은 수라도 어떻게 적느냐에 따라 셈이 쉬워지기도 하고 불가능해지기도 한다는 것, 로마 숫자로는 어려운 긴 곱셈이 자릿값 표기로는 한 자리 곱셈표와 받아올림으로 쪼개진다는 것이 이 책이 유럽에 가져다준 선물이었습니다(표현 바꾸기).
하늘과 땅의 표. 그는 천문학자이기도 했습니다. 『신드힌드 천문표』는 770년대 인도에서 전해진 브라마굽타 계열의 천문서를 바탕으로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요소를 섞은 표로, 해와 달과 행성의 위치, 사인(sine) 값 등을 담았습니다. 이 표는 1000년 무렵 에스파냐 코르도바의 마슬라마 알마즈리티가 고쳤고, 1126년 바스의 애덜라드가 라틴어로 옮기면서 유럽에 온전히 전해진 첫 이슬람 천문표가 되었습니다. 『땅의 모습』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을 바탕으로 2,400곳 남짓한 곳의 경도와 위도를 고쳐 적은 책입니다. 그는 이 밖에 유대력의 계산, 천체 관측 기구 아스트롤라베와 해시계에 관한 글도 남겼습니다. 알타바리의 연대기는 847년 칼리프 알와시크가 병석에 눕자 점성가들이 그가 50년을 더 살 것이라고 점쳤는데 열흘 만에 죽었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그 점성가들 가운데 알콰리즈미가 있었다고 적었습니다.
라틴 유럽으로. 1145년 에스파냐의 세고비아에서 영국 출신의 체스터의 로버트가 그의 대수학을 라틴어로 옮겼고, 톨레도의 크레모나의 제라르도도 번역을 남겼습니다. 1202년 피보나치의 『산반서』가 인도 숫자와 함께 그의 방정식 풀이를 이탈리아 상인들에게 소개했고, 이탈리아의 셈법 학교에서 미지수는 '것'(cosa), 그 제곱은 '재산'(censo)이라 불렸습니다. 아랍어 '말'(재산)을 그대로 옮긴 이름입니다(르네상스 이탈리아의 대수학 경연). 1545년 카르다노는 3차방정식(cubic equation)의 풀이를 담은 『위대한 술법』을 열면서 이 술법이 아랍 사람 모세의 아들 마호메트에게서 시작되었다고 썼습니다. 에스파냐어에서는 한동안 algebrista가 부러진 뼈를 맞추는 사람을 뜻하기도 했는데, 알자브르의 원래 뜻인 '어긋난 것을 되돌려 맞추기'가 남은 것입니다.
기호 없는 대수에서 방정식의 이론으로. 그의 대수학에는 기호도, 음수도, 3차 이상의 방정식도 없습니다. 3세기 알렉산드리아의 디오판토스는 이미 미지수에 약어를 썼지만, 그의 책은 알콰리즈미보다 뒤에 아랍어로 옮겨졌습니다. 11세기의 오마르 하이얌은 그의 분류를 3차방정식까지 넓혔고, 16세기 비에트는 알파벳 글자로 미지수와 계수를 적었으며, 1637년 데카르트가 x, y, z를 쓰는 오늘날의 표기를 굳혔습니다. 그러나 미지수를 하나의 대상으로 놓고 규칙에 따라 옮기고 덜어 내며, 문제를 꼴로 나누고 꼴마다 풀이 절차를 주는 그의 방식은 그 모든 발전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어떤 꼴의 방정식에 그런 절차가 있는가라는 물음은 19세기 아벨이 일반적인 5차방정식에는 계수의 사칙연산과 거듭제곱근으로 된 근의 공식(quadratic formula)이 없음을 보이고, 갈루아가 어떤 방정식이 그렇게 풀리는지를 가르는 기준을 찾는 데까지 이어졌습니다.
이어지는 곳. 그의 이름은 알고리즘에, 그가 전한 숫자는 진법에 있습니다. 여섯 가지 꼴과 판별식은 다항식에서 이어지고, 적는 방식을 바꾸면 계산이 쉬워진다는 생각은 표현 바꾸기에 모았습니다. 그가 일한 도시는 바그다드 지혜의 집, 그의 천문표의 뿌리는 브라마굽타이고, 그의 대수학을 이어받은 사람은 오마르 하이얌, 피보나치, 카르다노입니다.
관계.
- 영향을 줌 레오나르도 피보나치 — 1202년 『산반서』의 대수 부분은 그의 여섯 가지 방정식 꼴과 풀이를 라틴어 세계에 옮긴 것이고, 알자브르와 알무카발라(al-muqabala)라는 이름도 함께 건너갔습니다.
- 영향을 줌 지롤라모 카르다노 — 카르다노는 1545년 『위대한 술법』 첫 장에서 이 술법이 '아랍 사람 모세의 아들 마호메트'에게서 시작되었다고 적었습니다.
- 영향을 줌 도널드 크누스 — 1979년 크누스는 소련의 예르쇼프와 함께 알콰리즈미의 고향 호라즘의 우르겐치에서 '현대 수학과 컴퓨터 과학의 알고리즘' 심포지엄을 열어 그 이름의 뿌리를 기렸습니다.
연표.
- 786년 하룬 알라시드가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가 되다
- 813년 내전 끝에 알마문이 칼리프가 되다
- 825년 『복원과 대비의 계산에 관한 요약서』를 알마문에게 바치다(무렵)
- 833년 알마문이 비잔틴 원정 중에 죽다
- 847년 죽어 가는 칼리프 알와시크의 운세를 점친 점성가들 사이에 있었다고 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