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개념 지도
인물

레온하르트 오일러(Leonhard Euler)

18세기 스위스의 수학자. 페테르부르크와 베를린의 학술원에서 해석학⁠(mathematical analysis)⁠, 정수론⁠(number theory)⁠, 그래프 이론⁠(graph theory)⁠, 역학을 넓혔고, e·i·π·f(x) 같은 기호를 오늘날의 뜻으로 굳혔다.

eix=cos⁡x+isin⁡xe^{ix} = \cos x + i\sin x

레온하르트 오일러는 1707년 스위스 바젤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파울은 젊은 시절 야코프 베르누이의 강의를 들은 사람이었고, 아들도 목사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열세 살에 바젤 대학에 들어간 오일러는 야코프의 동생 요한 베르누이에게 토요일마다 어려운 대목을 물으며 배웠고, 요한이 아버지를 설득해 수학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미적분⁠(calculus)⁠이 나온 지 한 세대, 이 새 도구로 할 수 있는 일이 끝없이 열려 있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할 자리는 대학보다 왕들이 세운 학술원에 있었습니다.

굵은 막대가 이 사람의 생애이고, 흰검은 점은 페이지 끝 연표에 적은 일들입니다. 가는 막대는 같은 시대를 산 이 위키의 인물들입니다. 나이를 끌어 보세요.

나이 세 ·

바젤 대학의 자리를 얻지 못한 오일러는 1727년 스무 살에 표트르 대제가 세운 상트페테르부르크 과학 아카데미로 갔습니다. 거기서 풀어낸 첫 대사건이 바젤 문제⁠(Basel problem)⁠입니다. 그의 착상은 대담했습니다. 0이 아닌 근 a, b를 가진 다항식⁠(polynomial)⁠은 (1−x/a)(1−x/b)(1 - x/a)(1 - x/b)처럼 근으로 인수분해됩니다. 오일러는 sin⁡x/x\sin x / x를 근이 ±π,±2π,±3π,…\pm\pi, \pm 2\pi, \pm 3\pi, \ldots인 '무한 차수 다항식'으로 보고 똑같이 (1−x2π2)(1−x24π2)(1−x29π2)⋯(1 - \tfrac{x^2}{\pi^2})(1 - \tfrac{x^2}{4\pi^2})(1 - \tfrac{x^2}{9\pi^2})\cdots로 썼습니다. 이 곱을 전개하면 x2x^2의 계수는 −1π2(1+14+19+⋯ )-\tfrac{1}{\pi^2}(1 + \tfrac14 + \tfrac19 + \cdots)입니다. 한편 사인⁠(sine)⁠의 테일러 급수⁠(Taylor series)⁠로는 sin⁡x/x=1−x26+⋯\sin x / x = 1 - \tfrac{x^2}{6} + \cdots이니 같은 계수가 −1/6-1/6입니다. 둘을 같게 놓으면 1+14+19+⋯=π2/61 + \tfrac14 + \tfrac19 + \cdots = \pi^2/6이 나옵니다. 무한 곱으로 인수분해해도 되는지는 그 뒤에야 엄밀하게 확인되었습니다. 1737년에는 모든 자연수⁠(natural number)⁠가 소수⁠(prime number)⁠의 곱으로 한 가지로만 쪼개진다는 사실을, s가 1보다 큰 수일 때 성립하는 ∑1/ns=∏p(1−p−s)−1\sum 1/n^s = \prod_p (1 - p^{-s})^{-1}이라는 식으로 옮겼습니다. 오른쪽의 각 인수 (1−p−s)−1=1+1ps+1p2s+⋯(1 - p^{-s})^{-1} = 1 + \tfrac{1}{p^s} + \tfrac{1}{p^{2s}} + \cdots는 소수 p마다 하나씩인 등비급수⁠(geometric series)⁠입니다. 이 급수⁠(series)⁠들을 모두 곱해 전개하면, 12=22×312 = 2^2 \times 3에 해당하는 1/12s1/12^s처럼 모든 자연수 n의 1/ns1/n^s이 꼭 한 번씩 나옵니다. 소인수분해⁠(prime factorization)⁠가 한 가지뿐이니 두 번 나오지도 빠지지도 않는 것입니다. s를 1로 가까이 가져가면 왼쪽은 끝없이 커지는 조화급수⁠(harmonic series)⁠에 다가갑니다. 만약 소수가 유한개라면 오른쪽은 s = 1에서도 유한한 수들의 곱이라 유한할 테니, 소수는 무한히 많아야 합니다. 같은 식을 조금 더 밀고 가면 소수의 역수⁠(inverse)⁠ 합 12+13+15+17+⋯\tfrac12 + \tfrac13 + \tfrac15 + \tfrac17 + \cdots마저 발산⁠(divergence)⁠한다는 것까지 나옵니다. 이 곱이 훗날 리만 제타 함수⁠(Riemann zeta function)⁠가 됩니다.

페테르부르크 아카데미는 표트르 대제가 라이프니츠의 권유를 받아들여 구상하고, 그가 죽은 1725년에 문을 연 기관이었습니다(과학 아카데미). 러시아에는 아직 학자가 거의 없어서 교수들은 대부분 독일과 스위스에서 불려 왔고, 요한 베르누이의 두 아들 니콜라우스와 다니엘이 먼저 가서 오일러를 추천했습니다. 처음 그에게 주어진 자리는 생리학 분과였습니다. 학술원은 연구만 하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오일러는 러시아 제국의 지도를 만드는 일을 맡아 1745년의 러시아 지도책에 손을 보탰고, 배의 구조와 항해를 다룬 『선박학』(1749)을 썼으며, 파리 아카데미의 현상 공모에 처음 낸 논문도 배의 돛대를 세우는 문제였습니다. 궁정의 권력이 바뀔 때마다 외국인 학자들의 처지는 흔들렸고, 1741년 그가 베를린의 초청을 받아들인 것도 그 불안 때문이었습니다. 베를린에서 왜 그렇게 말이 없느냐는 왕대비의 물음에, 말을 하면 목이 매달리는 나라에서 왔기 때문이라고 답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정수론은 그가 페르마에게서 물려받은 숙제였습니다. 페르마가 22n+12^{2^n} + 1 꼴의 수는 모두 소수라고 짐작한 데 대해, 오일러는 1732년 232+1=641×67004172^{32} + 1 = 641 \times 6700417임을 보였습니다. 1736년 무렵 페르마의 소정리⁠(Fermat's little theorem)⁠에 처음으로 출판된 증명을 주었고(라이프니츠가 앞서 증명했지만 원고로만 남았습니다), 1763년에는 이를 소수가 아닌 법으로 넓혀, n과 공약수가 없는 a에 대해 aφ(n)≡1(modn)a^{\varphi(n)} \equiv 1 \pmod n을 얻었습니다. 여기서 φ(n)\varphi(n)은 1부터 n까지에서 n과 공약수가 1뿐인 수의 개수입니다(오일러 피 함수⁠, Euler's totient function⁠). n = 10이면 1, 3, 7, 9의 넷이라 φ(10)=4\varphi(10) = 4이고, 실제로 34=813^4 = 81은 10으로 나누면 1이 남습니다(모듈러 연산⁠, modular arithmetic⁠). 두 세기 뒤 이 정리가 RSA 암호⁠(RSA cryptosystem)⁠의 자물쇠가 됩니다. 그는 원시근⁠(primitive root)⁠을 연구하고 이차 상호 법칙⁠(quadratic reciprocity)⁠을 짐작했습니다. 이차 상호 법칙은 서로 다른 두 홀수 소수 p, q에 대해 '제곱수⁠(perfect square)⁠ 가운데 q로 나눈 나머지⁠(remainder)⁠가 p인 것이 있는가'와 '제곱수 가운데 p로 나눈 나머지가 q인 것이 있는가'가 언제나 같은 답을 가진다는 법칙입니다(p = 5, q = 11이면 16은 11로 나누어 5가 남고, 1은 5로 나누어 11과 같은 1이 남으니 둘 다 '있다'). 단 하나의 예외로, p와 q가 둘 다 4로 나누어 3이 남으면 두 답은 언제나 엇갈립니다(p = 3, q = 7이면 7로 나눈 제곱수의 나머지는 0, 1, 2, 4뿐이라 앞쪽은 '없다'이지만, 3으로 나누면 7은 1과 같은 나머지를 남기고 1은 제곱수이니 뒤쪽은 '있다'). 또 n=0n = 0부터 39까지 40개의 소수를 내놓는 n2+n+41n^2 + n + 41도 찾았습니다(울람 나선⁠, Ulam spiral⁠).

1735년에는 쾨니히스베르크의 일곱 다리를 한 번씩만 건너는 산책이 불가능하다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땅을 점으로, 다리를 선으로 바꾸고 크기와 모양을 모두 지운 뒤, 땅마다 이어진 다리 수의 홀짝만 세면 답이 나온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중간에 지나가는 땅은 들어가는 다리와 나오는 다리가 짝을 이루니 다리 수가 짝수여야 하고, 홀수인 땅은 출발점과 도착점 둘까지만 있을 수 있습니다. 쾨니히스베르크에서는 네 땅이 모두 홀수이니 불가능합니다. 그래프 이론과 오일러 경로⁠(Euler path)⁠의 시작이고, 그는 이 문제가 라이프니츠가 말한 '위치의 기하학⁠(geometry of position)⁠'에 속한다고 썼습니다. 뒤에 그가 찾은 다면체 공식⁠(polyhedron formula)⁠ V−E+F=2V - E + F = 2는 볼록한 다면체라면 꼭짓점⁠(vertex)⁠ 수 V에서 모서리 수 E를 빼고 면 수 F를 더하면 늘 2라는 것입니다(정육면체는 8 − 12 + 6 = 2). 길이도 각도 따지지 않는 이 공식은 4색 정리⁠(four color theorem)⁠의 증명에서 출발점이 되고, 뒷날 위상수학⁠(topology)⁠의 첫 불변량⁠(invariant)⁠이 됩니다.

1741년 프리드리히 2세의 초청으로 베를린 아카데미에 가서 25년을 일했습니다. 1748년의 『무한 해석 입문』은 곡선이 아니라 함수⁠(function)⁠를 해석학의 주인공으로 세운 책입니다. 여기서 그는 지수함수⁠(exponential function)⁠와 로그를 서로의 역함수⁠(inverse function)⁠로 정의하고, 지수함수의 급수에 ixix를 넣어 eix=cos⁡x+isin⁡xe^{ix} = \cos x + i\sin x를 이끌어 냈습니다(위의 식, 오일러 공식⁠(Euler's formula)⁠). 허수⁠(imaginary number)⁠를 곱하는 일이 회전⁠(rotation)⁠이 되고, 삼각함수⁠(trigonometric function)⁠의 공식들이 지수법칙 하나로 모이는 순간입니다(극형식⁠(polar form)⁠, 덧셈정리⁠(addition formula)⁠). 같은 책은 수를 순서 없이 자연수의 합으로 쪼개는 방법의 수를 셉니다. 4는 4, 3 + 1, 2 + 2, 2 + 1 + 1, 1 + 1 + 1 + 1의 다섯 가지로 쪼개집니다(분할수⁠, partition number⁠). 오일러는 곱 ∏k1/(1−xk)\prod_k 1/(1 - x^k)을 전개했을 때 xnx^n의 계수가 바로 n을 쪼개는 방법의 수라는 것을 보였습니다. 1740년 베를린의 수학자 나우데가 물은 문제에서 시작한 이 방법, 곧 세고 싶은 수들을 한 식의 계수로 묶어 식의 계산으로 세는 방법이 생성함수⁠(generating function)⁠입니다. 1751년 페테르부르크의 벗인 수학자 골드바흐에게 보낸 편지에는 볼록 다각형⁠(convex polygon)⁠을 대각선으로 삼각형들로 나누는 방법의 수 1, 2, 5, 14, 42, …(사각형은 2가지, 오각형은 5가지)가 나옵니다(카탈랑 수⁠(Catalan number)⁠). 그가 쓰면서 뜻이 굳어진 기호도 많습니다. 함수의 f(x), 자연로그⁠(natural logarithm)⁠의 밑 e, 합의 Σ, 허수 단위 i⁠(imaginary unit i)⁠, 그리고 원주율⁠(pi)⁠ π가 그렇습니다.

베를린의 학술원은 프리드리히 2세가 1740년대에 다시 일으켜 세운 곳이었습니다. 원장은 라플란드에서 지구가 극 쪽으로 납작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온 프랑스인 모페르튀이였고, 학술원의 공용어는 프랑스어였습니다. 오일러는 수학 부장으로서 천문대와 식물원, 출판, 학술원 재정의 큰 몫이던 달력 판매까지 챙기며 실제 살림을 도맡았습니다. 1751년 스위스의 수학자 쾨니히가, 자연의 운동은 '작용'이라는 양을 가장 작게 하는 길을 따른다는 모페르튀이의 '최소 작용 원리⁠(principle of least action)⁠'는 라이프니츠가 먼저 말한 것이라며 편지 사본을 내밀자, 오일러는 원장 편에 서서 그 편지가 믿을 수 없다고 판정했고, 볼테르는 풍자문으로 모페르튀이를 유럽의 웃음거리로 만들었습니다. 재치 있는 문인을 좋아한 왕은 소박하고 경건한 오일러를 그리 아끼지 않았고, 모페르튀이가 죽은 뒤 원장 자리를 파리의 수학자 달랑베르에게 맡기려 했습니다. 달랑베르는 사양했지만, 끝내 원장이 되지 못한 오일러는 1766년 베를린을 떠났습니다.

그는 자연을 푸는 수학자이기도 했습니다. 떨리는 줄을 두고 달랑베르, 그리고 요한 베르누이의 아들 다니엘 베르누이와 다툰 논쟁(파동방정식⁠, wave equation⁠)에서 그는 손가락으로 튕긴 뾰족한 모양도 줄의 처음 모양이 될 수 있다고 했지만, 그런 모양을 사인들의 합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은 믿지 않았습니다. 이 물음의 답이 반세기 뒤 푸리에의 푸리에 급수⁠(Fourier series)⁠입니다. y′′−3y′+2y=0y'' - 3y' + 2y = 0 같은 상수 계수 선형 미분방정식⁠(linear differential equation)⁠에 y=erxy = e^{rx}를 넣으면 r2−3r+2=0r^2 - 3r + 2 = 0이라는 보통의 방정식(특성방정식⁠, characteristic equation⁠)이 되어 r = 1, 2, 곧 해 exe^x, e2xe^{2x}를 얻는 방법, 운동 법칙을 미분방정식⁠(differential equation)⁠으로 적는 방식, 유체의 운동 방정식, 달의 운동 이론(이 공로로 영국 의회가 300파운드를 주었습니다)이 모두 그에게서 나왔습니다. 1755년 토리노의 열아홉 살 라그랑주가 곡선 전체를 변수로 삼아 최적의 곡선을 찾는 새 방법을 편지로 보내자, 오일러는 그 방법이 자기 것보다 낫다고 보고 '변분법⁠(calculus of variations)⁠'이라는 이름을 붙여 널리 알렸습니다. 베를린 시절 그는 왕의 조카딸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빛과 소리, 논리를 풀어 쓴 『독일 공주에게 보내는 편지』도 남겼습니다.

1766년 예카테리나 2세의 초청으로 페테르부르크에 돌아온 뒤 남은 눈마저 흐려졌고, 1771년에는 큰불로 집을 잃고 거의 완전히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놀라운 기억력과 암산으로 아들들과 조수들에게 받아쓰게 하며 연구를 이어 갔고, 논문의 양은 줄지 않았습니다. 1765년의 강체⁠(rigid body)⁠ 역학과 1775년의 회전 정리, 곧 한 점을 고정한 공간의 어떤 회전도 한 축을 중심으로 한 회전이라는 결과(오늘날의 말로는 그 축이 고유값⁠(eigenvalue)⁠ 1의 고유벡터⁠(eigenvector)⁠입니다)(회전 행렬⁠, rotation matrix⁠), 1782년 최석정의 방진과 이어지는 36명의 장교 문제⁠(thirty-six officers problem)⁠가 이 시기의 것입니다. 1783년 9월 그는 그날도 열기구가 오르는 높이를 계산하고 새로 발견된 천왕성의 궤도⁠(orbit)⁠를 이야기하다가 쓰러졌습니다. 수학자이자 철학자 콩도르세는 추도문에서 그가 계산하기를 멈추고, 삶을 멈추었다고 썼습니다.

그는 역사상 가장 많은 논문을 쓴 수학자로 꼽히며, 1911년부터 나오기 시작한 그의 전집은 70권을 훌쩍 넘습니다. 열세 명의 자식 가운데 다섯만 어린 시절을 넘겼고, 그는 평생 경건한 칼뱅파 신자였습니다. 그의 뒤를 라그랑주가 베를린에서 이었고, 그가 짐작만 한 이차 상호 법칙은 르장드르를 거쳐 가우스가 증명했습니다. 그가 일한 페테르부르크 아카데미에서 한 세기 반 뒤 마르코프가 연쇄를 발표했고, 그의 제타 함수⁠(zeta function)⁠에 복소수⁠(complex number)⁠를 넣은 사람이 리만입니다.

오일러의 생각은 학술원 논문집과 편지를 타고 퍼졌습니다. 페테르부르크와 베를린의 논문집은 그의 글로 채워졌고, 그가 죽은 뒤에도 쌓인 원고를 싣느라 반세기 가까이 새 논문이 나왔습니다. 파리 아카데미의 현상 공모에서는 열두 번 상을 받았습니다. 30년 넘게 이어진 골드바흐와의 편지에는 2보다 큰 모든 짝수가 두 소수의 합이라는 추측이 들어 있습니다. 골드바흐가 1742년 편지에 적은 추측을 오일러가 답장에서 이 꼴로 다듬은 것입니다(편지 공화국). 무엇보다 그는 교과서를 썼습니다. 『무한 해석 입문』, 미분학(1755)과 적분학(1768–70)의 교본, 앞을 보지 못하게 된 뒤 받아쓰게 한 『대수학 입문』(1770)은 여러 나라 말로 옮겨져 한 세기 동안 유럽의 학생들이 해석학과 대수를 배우는 길이 되었습니다. "오일러를 읽어라, 그는 우리 모두의 스승이다"라는 라플라스의 말이 전하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이어지는 곳. 오일러의 손길은 이 위키 곳곳에 있습니다. 해석학에서는 지수함수와 삼각함수를 잇는 오일러 공식, 그가 해석학의 중심에 놓은 지수함수와 테일러 급수, 그가 푼 바젤 문제로 이어집니다. 조화급수의 합과 ln n의 차가 다가가는 수 0.5772…에는 오일러 상수⁠(Euler–Mascheroni constant)⁠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의 곱 공식은 제타 함수가 되어, 소수가 얼마나 흔한지를 말하는 소수 정리⁠(prime number theorem)⁠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정수론에서는 소정리를 넓힌 오일러 정리⁠(Euler's theorem)⁠, 거듭제곱의 나머지가 모든 값을 도는 원시근, 나머지들을 짜 맞추는 중국인의 나머지 정리⁠(Chinese remainder theorem)⁠가 모두 그의 연구와 이어지고, 이것들이 RSA 암호의 수학이 됩니다. 조합과 그래프에서는 다리 문제의 오일러 경로, 다면체 공식에서 출발한 4색 정리, 생성함수로 센 분할수와 카탈랑 수로 이어지고, 점과 선의 그림은 최단 경로⁠(shortest path)⁠ 문제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회전의 축이 고유값 1의 고유벡터라는 정리는 고유벡터와 회전 행렬에서, 특성방정식의 풀이는 선형 미분방정식에서 이어집니다. eixe^{ix}가 그리는 원의 그림은 복소수와, 원 위에 고르게 놓인 1의 거듭제곱근⁠(roots of unity)⁠에서 볼 수 있습니다. 무한 곱과 무한 급수를 거침없이 다룬 그의 방식과 그 대가는 무한을 다루는 법에, 다리를 점과 선으로 바꾼 한 수는 표현 바꾸기에 모았습니다.

관계.

가운데가 이 사람, 둘레가 이어진 인물들입니다. 선의 색은 관계의 종류(초록 스승·제자, 파랑 함께 연구, 보라 편지, 빨강 논쟁, 주황 영향)이고, 다른 인물의 페이지에 적힌 관계도 함께 모았습니다.

  • 영향을 받음 아이작 뉴턴 — 『프린키피아』의 기하학적 논증을 미분방정식으로 다시 써서, 운동 법칙을 '힘 = 질량 × 가속도'의 꼴로 문제마다 풀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 영향을 받음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 라이프니츠의 기호로 해석학을 넓혔고,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 문제가 라이프니츠가 말한 '위치의 기하학'에 속한다고 썼습니다.
  • 영향을 받음 피에르 드 페르마 — 1729년 골드바흐의 편지로 페르마의 주장들을 알게 된 뒤, 페르마가 증명 없이 남긴 정수론의 명제들을 하나씩 증명하거나 반박했습니다.

연표.

  • 1727년 스무 살에 상트페테르부르크 과학 아카데미로 가다
  • 1735년 바젤 문제를 풀고, 쾨니히스베르크의 일곱 다리 문제를 발표하다
  • 1737년 자연수의 합을 소수의 곱으로 바꾸는 곱 공식을 찾다
  • 1738년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어 가기 시작하다
  • 1741년 프리드리히 2세의 초청으로 베를린 아카데미로 옮기다
  • 1742년 골드바흐의 추측을 편지로 받고, 짝수를 두 소수의 합으로 쓰는 꼴로 다듬어 답하다
  • 1748년 『무한 해석 입문』을 내다
  • 1749년 배의 구조와 항해를 다룬 『선박학』을 내다
  • 1752년 최소 작용 원리의 우선권 논쟁에서 모페르튀이 편에 서다
  • 1755년 열아홉 살 라그랑주의 편지를 받고 그 방법에 '변분법'이라는 이름을 붙이다
  • 1766년 예카테리나 2세의 초청으로 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가다
  • 1770년 받아쓰게 한 『대수학 입문』을 내다
  • 1771년 집이 불타고, 남은 눈의 시력도 거의 잃다
  • 1782년 36명의 장교 문제를 내다

이 인물이 나오는 긴 글

미분에서 회전까지 · 1편 · 미분 순간의 속도 속도계는 '지금 이 순간'의 속도를 보여 준다. 순간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데, 무엇을 재는 걸까? 미분에서 회전까지 · 3편 · 테일러 급수 한 점에서 전부를 한 점에서의 값과 기울기, 휘는 정도만으로 함수 전체를 다시 그릴 수 있을까? 미분에서 회전까지 · 4편 · 오일러 공식 원을 그리는 지수함수 지수함수에 허수를 넣으면 원이 된다. 가장 유명한 등식은 어디서 왔을까? 미분에서 회전까지 · 5편 · 복소수와 행렬 곱셈은 회전이다 복소수를 곱하는 일과 행렬로 평면을 돌리는 일은 같은 일이다. 확률 도박판에서 온 편지 1654년, 도중에 멈춘 내기의 판돈을 어떻게 나눌까? 두 수학자가 주고받은 편지에서 확률론이 태어났다. 소수 소수를 세는 사람들 소수는 제멋대로 흩어져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멀리서 세어 보면 로그가 보인다. 정수론과 암호 나머지로 지키는 비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두 사람이 모두가 엿듣는 통신망에서 비밀 열쇠를 맞출 수 있을까? 답은 시계의 산수와 1640년 페르마의 정리에 있다. 삼각함수 원에서 파동으로 별의 위치를 재던 현의 표가 사인이 되고, 열의 흐름을 풀던 푸리에가 모든 파동을 사인으로 쪼갰다. 비유클리드 기하 평행선의 반란 유클리드의 다섯 번째 공준은 2,000년 동안 증명되지 않았다. 증명을 포기한 사람들이 찾은 것은 새로운 우주였다. 그래프 이론 일곱 다리의 도시 쾨니히스베르크의 일곱 다리를 한 번씩만 건너 산책할 수 있을까? 오일러는 지도를 지우고 점과 선만 남겼다. 혼돈 나비의 날갯짓 방정식이 정해져 있으면 미래도 정해질까? 소수점 아래 몇 자리를 버린 계산이 날씨 예보의 한계를 드러냈다. 계산 이론 기계가 풀 수 없는 문제 모든 수학 문제를 기계적으로 풀 수 있을까? 러셀의 역설에서 괴델과 튜링까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오'였고, 그 증명이 컴퓨터를 낳았다. 조합론 세지 않고 세기 시의 운율을 세던 인도의 운율학자부터 오일러의 생성함수까지. 하나하나 늘어놓지 않고 경우의 수를 세는 법은 어떻게 자라났을까? 매칭과 흐름 짝을 찾는 알고리즘 의대 졸업생과 병원, 신장 기증자와 환자, 철도와 화물. 누구를 누구와 이을지 정하는 수학은 냉전의 철도 지도에서 노벨 경제학상까지 이어진다. 램지 이론 완전한 무질서는 없다 여섯 명이 모이면 서로 아는 세 사람이나 서로 모르는 세 사람이 반드시 있다. 충분히 크면 어디에나 질서가 숨어 있다는 이론과, 그것을 동전 던지기로 증명한 에르되시. 라플라시안 라플라시안, 가장 많이 재사용된 식 이웃의 평균에서 나를 뺀다. 이 한 줄이 열의 법칙이고, 도박꾼이 이길 확률이고, 전기 회로와 나무 세기이고, 북의 음색이고, 사진의 윤곽선이고, 그래프를 가르는 칼이고, 잡음에서 그림을 빚는 확산 모델의 밑그림이다. 수학의 오류 틀린 증명이 만든 수학 틀린 증명은 흔하다. 드물게, "정확히 어디가 틀렸는가"라는 물음이 새 분야를 낳는다. 코시의 합 정리와 균등 수렴, 라메의 증명과 아이디얼, 켐프의 사슬, 푸앵카레의 회수된 논문과 혼돈, 프레게의 법칙과 러셀의 편지, 보예보츠키와 증명 보조기까지. 오류는 대개 서로 다른 두 가지를 하나로 여긴 자리에 있었다. 불가능성 정리 불가능의 증명 각의 삼등분, 5차방정식의 근의 공식, 모든 파일을 줄이는 압축, 멈춤을 판정하는 프로그램, 공정한 투표 규칙. 없다는 것은 어떻게 증명할까? 서로 먼 분야의 불가능성 증명들은 거의 모두 불변량, 세기, 대각선이라는 세 가지 무기 가운데 하나를 쓴다. 범주론 화살표만으로 본 수학 최대공약수와 교집합과 '그리고'는 같은 것이고, 화살표를 뒤집으면 최소공배수와 합집합과 '또는'이 된다.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묻지 않고 어떻게 이어지는지만 보는 언어로, '자연스럽다'는 말의 뜻, 관계만으로 대상을 알아보는 요네다의 생각, 함자로 본 연쇄법칙, 어디에나 있는 수반까지 사이트의 여러 분야를 가로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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