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온하르트 오일러(Leonhard Euler)
18세기 스위스의 수학자. 페테르부르크와 베를린의 학술원에서 해석학(mathematical analysis), 정수론(number theory), 그래프 이론(graph theory), 역학을 넓혔고, e·i·π·f(x) 같은 기호를 오늘날의 뜻으로 굳혔다.
레온하르트 오일러는 1707년 스위스 바젤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파울은 젊은 시절 야코프 베르누이의 강의를 들은 사람이었고, 아들도 목사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열세 살에 바젤 대학에 들어간 오일러는 야코프의 동생 요한 베르누이에게 토요일마다 어려운 대목을 물으며 배웠고, 요한이 아버지를 설득해 수학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미적분(calculus)이 나온 지 한 세대, 이 새 도구로 할 수 있는 일이 끝없이 열려 있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할 자리는 대학보다 왕들이 세운 학술원에 있었습니다.
나이
바젤 대학의 자리를 얻지 못한 오일러는 1727년 스무 살에 표트르 대제가 세운 상트페테르부르크 과학 아카데미로 갔습니다. 거기서 풀어낸 첫 대사건이 바젤 문제(Basel problem)입니다. 그의 착상은 대담했습니다. 0이 아닌 근 a, b를 가진 다항식(polynomial)은
페테르부르크 아카데미는 표트르 대제가 라이프니츠의 권유를 받아들여 구상하고, 그가 죽은 1725년에 문을 연 기관이었습니다(과학 아카데미). 러시아에는 아직 학자가 거의 없어서 교수들은 대부분 독일과 스위스에서 불려 왔고, 요한 베르누이의 두 아들 니콜라우스와 다니엘이 먼저 가서 오일러를 추천했습니다. 처음 그에게 주어진 자리는 생리학 분과였습니다. 학술원은 연구만 하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오일러는 러시아 제국의 지도를 만드는 일을 맡아 1745년의 러시아 지도책에 손을 보탰고, 배의 구조와 항해를 다룬 『선박학』(1749)을 썼으며, 파리 아카데미의 현상 공모에 처음 낸 논문도 배의 돛대를 세우는 문제였습니다. 궁정의 권력이 바뀔 때마다 외국인 학자들의 처지는 흔들렸고, 1741년 그가 베를린의 초청을 받아들인 것도 그 불안 때문이었습니다. 베를린에서 왜 그렇게 말이 없느냐는 왕대비의 물음에, 말을 하면 목이 매달리는 나라에서 왔기 때문이라고 답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정수론은 그가 페르마에게서 물려받은 숙제였습니다. 페르마가
1735년에는 쾨니히스베르크의 일곱 다리를 한 번씩만 건너는 산책이 불가능하다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땅을 점으로, 다리를 선으로 바꾸고 크기와 모양을 모두 지운 뒤, 땅마다 이어진 다리 수의 홀짝만 세면 답이 나온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중간에 지나가는 땅은 들어가는 다리와 나오는 다리가 짝을 이루니 다리 수가 짝수여야 하고, 홀수인 땅은 출발점과 도착점 둘까지만 있을 수 있습니다. 쾨니히스베르크에서는 네 땅이 모두 홀수이니 불가능합니다. 그래프 이론과 오일러 경로(Euler path)의 시작이고, 그는 이 문제가 라이프니츠가 말한 '위치의 기하학(geometry of position)'에 속한다고 썼습니다. 뒤에 그가 찾은 다면체 공식(polyhedron formula)
1741년 프리드리히 2세의 초청으로 베를린 아카데미에 가서 25년을 일했습니다. 1748년의 『무한 해석 입문』은 곡선이 아니라 함수(function)를 해석학의 주인공으로 세운 책입니다. 여기서 그는 지수함수(exponential function)와 로그를 서로의 역함수(inverse function)로 정의하고, 지수함수의 급수에
베를린의 학술원은 프리드리히 2세가 1740년대에 다시 일으켜 세운 곳이었습니다. 원장은 라플란드에서 지구가 극 쪽으로 납작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온 프랑스인 모페르튀이였고, 학술원의 공용어는 프랑스어였습니다. 오일러는 수학 부장으로서 천문대와 식물원, 출판, 학술원 재정의 큰 몫이던 달력 판매까지 챙기며 실제 살림을 도맡았습니다. 1751년 스위스의 수학자 쾨니히가, 자연의 운동은 '작용'이라는 양을 가장 작게 하는 길을 따른다는 모페르튀이의 '최소 작용 원리(principle of least action)'는 라이프니츠가 먼저 말한 것이라며 편지 사본을 내밀자, 오일러는 원장 편에 서서 그 편지가 믿을 수 없다고 판정했고, 볼테르는 풍자문으로 모페르튀이를 유럽의 웃음거리로 만들었습니다. 재치 있는 문인을 좋아한 왕은 소박하고 경건한 오일러를 그리 아끼지 않았고, 모페르튀이가 죽은 뒤 원장 자리를 파리의 수학자 달랑베르에게 맡기려 했습니다. 달랑베르는 사양했지만, 끝내 원장이 되지 못한 오일러는 1766년 베를린을 떠났습니다.
그는 자연을 푸는 수학자이기도 했습니다. 떨리는 줄을 두고 달랑베르, 그리고 요한 베르누이의 아들 다니엘 베르누이와 다툰 논쟁(파동방정식, wave equation)에서 그는 손가락으로 튕긴 뾰족한 모양도 줄의 처음 모양이 될 수 있다고 했지만, 그런 모양을 사인들의 합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은 믿지 않았습니다. 이 물음의 답이 반세기 뒤 푸리에의 푸리에 급수(Fourier series)입니다.
1766년 예카테리나 2세의 초청으로 페테르부르크에 돌아온 뒤 남은 눈마저 흐려졌고, 1771년에는 큰불로 집을 잃고 거의 완전히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놀라운 기억력과 암산으로 아들들과 조수들에게 받아쓰게 하며 연구를 이어 갔고, 논문의 양은 줄지 않았습니다. 1765년의 강체(rigid body) 역학과 1775년의 회전 정리, 곧 한 점을 고정한 공간의 어떤 회전도 한 축을 중심으로 한 회전이라는 결과(오늘날의 말로는 그 축이 고유값(eigenvalue) 1의 고유벡터(eigenvector)입니다)(회전 행렬, rotation matrix), 1782년 최석정의 방진과 이어지는 36명의 장교 문제(thirty-six officers problem)가 이 시기의 것입니다. 1783년 9월 그는 그날도 열기구가 오르는 높이를 계산하고 새로 발견된 천왕성의 궤도(orbit)를 이야기하다가 쓰러졌습니다. 수학자이자 철학자 콩도르세는 추도문에서 그가 계산하기를 멈추고, 삶을 멈추었다고 썼습니다.
그는 역사상 가장 많은 논문을 쓴 수학자로 꼽히며, 1911년부터 나오기 시작한 그의 전집은 70권을 훌쩍 넘습니다. 열세 명의 자식 가운데 다섯만 어린 시절을 넘겼고, 그는 평생 경건한 칼뱅파 신자였습니다. 그의 뒤를 라그랑주가 베를린에서 이었고, 그가 짐작만 한 이차 상호 법칙은 르장드르를 거쳐 가우스가 증명했습니다. 그가 일한 페테르부르크 아카데미에서 한 세기 반 뒤 마르코프가 연쇄를 발표했고, 그의 제타 함수(zeta function)에 복소수(complex number)를 넣은 사람이 리만입니다.
오일러의 생각은 학술원 논문집과 편지를 타고 퍼졌습니다. 페테르부르크와 베를린의 논문집은 그의 글로 채워졌고, 그가 죽은 뒤에도 쌓인 원고를 싣느라 반세기 가까이 새 논문이 나왔습니다. 파리 아카데미의 현상 공모에서는 열두 번 상을 받았습니다. 30년 넘게 이어진 골드바흐와의 편지에는 2보다 큰 모든 짝수가 두 소수의 합이라는 추측이 들어 있습니다. 골드바흐가 1742년 편지에 적은 추측을 오일러가 답장에서 이 꼴로 다듬은 것입니다(편지 공화국). 무엇보다 그는 교과서를 썼습니다. 『무한 해석 입문』, 미분학(1755)과 적분학(1768–70)의 교본, 앞을 보지 못하게 된 뒤 받아쓰게 한 『대수학 입문』(1770)은 여러 나라 말로 옮겨져 한 세기 동안 유럽의 학생들이 해석학과 대수를 배우는 길이 되었습니다. "오일러를 읽어라, 그는 우리 모두의 스승이다"라는 라플라스의 말이 전하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이어지는 곳. 오일러의 손길은 이 위키 곳곳에 있습니다. 해석학에서는 지수함수와 삼각함수를 잇는 오일러 공식, 그가 해석학의 중심에 놓은 지수함수와 테일러 급수, 그가 푼 바젤 문제로 이어집니다. 조화급수의 합과 ln n의 차가 다가가는 수 0.5772…에는 오일러 상수(Euler–Mascheroni constant)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의 곱 공식은 제타 함수가 되어, 소수가 얼마나 흔한지를 말하는 소수 정리(prime number theorem)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정수론에서는 소정리를 넓힌 오일러 정리(Euler's theorem), 거듭제곱의 나머지가 모든 값을 도는 원시근, 나머지들을 짜 맞추는 중국인의 나머지 정리(Chinese remainder theorem)가 모두 그의 연구와 이어지고, 이것들이 RSA 암호의 수학이 됩니다. 조합과 그래프에서는 다리 문제의 오일러 경로, 다면체 공식에서 출발한 4색 정리, 생성함수로 센 분할수와 카탈랑 수로 이어지고, 점과 선의 그림은 최단 경로(shortest path) 문제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회전의 축이 고유값 1의 고유벡터라는 정리는 고유벡터와 회전 행렬에서, 특성방정식의 풀이는 선형 미분방정식에서 이어집니다.
관계.
- 영향을 받음 아이작 뉴턴 — 『프린키피아』의 기하학적 논증을 미분방정식으로 다시 써서, 운동 법칙을 '힘 = 질량 × 가속도'의 꼴로 문제마다 풀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 영향을 받음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 라이프니츠의 기호로 해석학을 넓혔고,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 문제가 라이프니츠가 말한 '위치의 기하학'에 속한다고 썼습니다.
- 영향을 받음 피에르 드 페르마 — 1729년 골드바흐의 편지로 페르마의 주장들을 알게 된 뒤, 페르마가 증명 없이 남긴 정수론의 명제들을 하나씩 증명하거나 반박했습니다.
연표.
- 1727년 스무 살에 상트페테르부르크 과학 아카데미로 가다
- 1735년 바젤 문제를 풀고, 쾨니히스베르크의 일곱 다리 문제를 발표하다
- 1737년 자연수의 합을 소수의 곱으로 바꾸는 곱 공식을 찾다
- 1738년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어 가기 시작하다
- 1741년 프리드리히 2세의 초청으로 베를린 아카데미로 옮기다
- 1742년 골드바흐의 추측을 편지로 받고, 짝수를 두 소수의 합으로 쓰는 꼴로 다듬어 답하다
- 1748년 『무한 해석 입문』을 내다
- 1749년 배의 구조와 항해를 다룬 『선박학』을 내다
- 1752년 최소 작용 원리의 우선권 논쟁에서 모페르튀이 편에 서다
- 1755년 열아홉 살 라그랑주의 편지를 받고 그 방법에 '변분법'이라는 이름을 붙이다
- 1766년 예카테리나 2세의 초청으로 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가다
- 1770년 받아쓰게 한 『대수학 입문』을 내다
- 1771년 집이 불타고, 남은 눈의 시력도 거의 잃다
- 1782년 36명의 장교 문제를 내다
이 인물이 나오는 긴 글
이 인물을 언급하는 페이지
- 지수함수 eˣ
… 늘리면 이 값이 어디로 가는지 물었습니다. 답이 e = 2.71828\ldots 이고, e라는 이름은 뒤에오일러가 붙였습니다. 모든 도함수가 자기 자신이니 모든 미분값이 x=0 에서 1입니다. 그래서 ⟦테일러 …
- 허수 단위 i
… '상상의 수'라는 이름은 데카르트가 이런 수를 그렇게 부른 데서 왔습니다. i라는 기호는 1777년오일러의 논문에서 처음 쓰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판은 1794년).
- 오일러 공식
… 1714년 영국의 로저 코츠는 로그를 써서 이와 같은 내용의 식을 발표했습니다. 지금의 꼴은 1748년오일러가 책 『무한 해석 입문』에서 발표했습니다. 다만 당시에는 복소수를 평면의 점으로 그리는 그림이 없었고, …
- 푸리에 급수
… 사인파를 더해 줄의 떨림을 나타내자는 생각은 1753년 스위스의 다니엘 베르누이가 내놓았고, 달랑베르와오일러는 그런 합으로 모든 모양을 나타낼 수는 없다며 반대했습니다. 떨리는 줄이 따르는 식이 …
- 소수와 에라토스테네스의 체
… 목록의 어느 p_i 로 나누어도 1이 남습니다. 그러니 목록 밖에 소수가 또 있어야 하고, 모순입니다.오일러는 더 강한 사실을 보였습니다. 소수의 역수의 합 \tfrac12 + \tfrac13 + \tfrac15 …
- 오일러 피 함수와 페르마 소정리
… \equiv 1 \pmod n 입니다( \equiv 는 n 으로 나눈 나머지가 같다는 뜻). 이것이오일러정리이고, n = p 가 소수이면 \varphi(p) = p - 1 이라 p 의 배수가 아닌 모든 a …
- 울람 나선
… 7 같은 작은 소수로 나누어떨어지는 경우가 드물어서, 다른 식보다 소수가 많이 걸립니다. 가장 유명한 것이오일러의 n^2 + n + 41 입니다. 이 식의 값은 41보다 작은 어떤 소수로도 나누어떨어지지 않고, n = …
- 바젤 문제
… 바젤의 야코프 베르누이가 1689년 책에 실어 널리 알려지면서 도시 이름이 붙었습니다. 1734년오일러가 찾은 답은 \pi^2/6 = 1.6449\ldots 이었습니다(발표는 1735년). 원도 각도도 없는 …
- 등비급수
… 의 거듭제곱의 계수로 담는 생성함수로 보면 1/(1-x) 는 수열 1, 1, 1, …을 담은 것입니다.오일러는 이 생각으로 분할수, 곧 자연수 n을 자연수들의 합으로 쓰는 방법의 수(4는 4, 3 + 1, 2 …
- 조화급수
… + \tfrac13 + \cdots 가 그렇습니다. n = 까지 더하면 , \ln n = 이고 차이는오일러의 이름을 딴 상수 \gamma \approx 0.5772 에 다가갑니다. 부분합이 한 값에 다가가지 …
- 리만 제타 함수
… N입니다. 주황 계단은 N까지의 합, 청록 계단은 N 이하 소수에 대한 곱, 노란 점선은 ζ(s)입니다.오일러는 이 합이 소수들에 대한 곱과 같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소수마다 등비급수 1 + p^{-s} + …
- 파동방정식
… 표준 언어가 됩니다. 1753년 다니엘 베르누이는 줄의 모든 운동이 이런 모드들의 합이라고 주장했습니다.오일러와 달랑베르는 꺾인 모양 같은 임의의 처음 모양을 매끄러운 사인들의 합으로 나타낼 수는 없다며 …
- 오일러 경로
… 일곱 개의 다리가 그 사이를 이었습니다. 모든 다리를 꼭 한 번씩 건너는 산책이 가능할까요? 1735년오일러는 땅의 모양과 다리의 길이를 모두 버리고, 어느 땅과 어느 땅이 다리 몇 개로 이어졌는지만 남겨 그런 …
- 4색 정리
… 원리⟧에 따라 두 나라가 같은 색이 될 테니까요. (이 사실 자체는 4색 정리 없이, 아래에 나오는오일러의 다면체 공식으로 쉽게 증명됩니다.) 흔히 '서로 모두 맞닿은 다섯 나라가 없으니 네 색이면 된다'고 …
- 정지 문제
… 소수의 합이다'(예: 10 = 3 + 7)라는 추측으로, 1742년 프로이센의 수학자 크리스티안 골드바흐와오일러가 주고받은 편지에서 나왔습니다. 이 프로그램 하나가 멈출지를 아는 것이 280년 넘게 풀리지 않은 난제를 …
- 생성함수
… 합성곱이라 합니다. 합성곱은 푸리에 해석으로 옮기면 성분끼리의 그냥 곱셈으로 바뀝니다. 이어지는 곳.오일러는 1740년대에 자연수를 더 작은 수들의 합으로 쪼개는 분할 문제를 생성함수로 다루었고, …
- 카탈랑 수
… 다룬 벨기에 브뤼헤 태생의 수학자 외젠 카탈랑의 이름을 땄습니다. 다각형을 삼각형으로 나누는 방법으로는오일러가 1751년에 이미 이 수를 셌습니다. 이 수가 유명한 까닭은 전혀 달라 보이는 세기 문제 수백 가지의 …
- 분할수
… = 1 + x^k + x^{2k} + \cdots 들의 곱입니다(위의 식). 이 식으로오일러는 뜻밖의 사실을 보였습니다. 서로 다른 부분으로만 된 분할의 수와 홀수 부분으로만 된 분할의 수는 언제나 …
- 급수의 수렴과 발산
… 1 + ⋯은 발산합니다. 18세기 초 이탈리아의 수도사이자 수학자 귀도 그란디는 이 합이 ½이라고 주장했고오일러도 ½을 값으로 매겼지만, 부분합은 1과 0을 오갈 뿐 어디에도 다가가지 않습니다. 거꾸로는 성립하지 …
- 다항식
… 이것이 대수학의 기본정리입니다. 1629년 프랑스의 알베르 지라르가 처음 주장했고 달랑베르(1746)와오일러등이 증명을 시도했으며, 가우스가 1799년 박사 논문에서 증명을 냈습니다. 그 증명에는 오늘날 …
- 군
… = 1 을 (p − 1)/k번 곱한 것이어서 1입니다. RSA 암호는 이 정리를 두 소수의 곱으로 넓힌오일러의 정리 위에서 작동합니다. 군이라는 생각은 방정식에서 나왔습니다. 2차방정식에는 근의 공식이 있고 …
- 위상수학
1735년오일러는 쾨니히스베르크의 일곱 다리를 한 번씩만 건너는 산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이면서, 강의 폭이나 다리의 …
- 정수론
… 입니다. 실제로 2^7 = 128 = 7 \cdot 18 + 2 이니 128을 7로 나누면 2가 남습니다.오일러는 이 정리를 소수가 아닌 법으로 넓혔고(오일러 피 함수), 가우스는 오일러와 르장드르가 추측한 …
- 삼체 문제
… 적분하거나 궤도들의 전체 모양을 따지는 방식으로 다룹니다. 특별한 해와 그 안정성 특별한 해는 있습니다.오일러는 1767년 세 물체가 한 직선 위에 늘어선 채 도는 해를, 라그랑주는 1772년 세 물체가 …
- 변분법
… 두 문제의 답이라는 데 감탄했습니다. 오일러–라그랑주 방정식 빛에 기대지 않고 모든 문제에 통하는 방법은오일러와 라그랑주가 만들었습니다. 생각은 간단합니다. 곡선 y(x)가 최선이라면, 양 끝은 그대로 두고 …
- 사원수
… 인데 그 곱 15는 어떻게 해도 세 제곱수의 합이 되지 않습니다. 네 제곱수라면 이런 일이 없습니다.오일러가 1748년 편지에 적은 네 제곱수 항등식이 바로 사원수의 크기 공식이고, 라그랑주는 1770년 이를 …
- 라틴 방진
… 한 표를 라틴 방진 이라 합니다. 각 가로줄과 세로줄은 n가지 기호의 순열입니다. 이름은 1782년레온하르트 오일러가 기호로 라틴 문자를 쓴 데서 왔습니다. 직접 채워 보세요. 크기는 이고, 칸을 누르면 기호가 1, 2, …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 처음부터 해가 없었다는 '무한 강하법'입니다(수학적 귀납법을 거꾸로 쓴 논법). n = 3은 18세기에오일러가, n = 5는 1825년 디리클레와 르장드르가, n = 7은 1839년 가브리엘 라메가 …
- 가우스–보네 정리
… 평행선 공준과 얽힌 역사, 구면 위의 삼각형과 휘어진 공간의 이야기는 「평행선의 반란」 6절과 8절이,오일러의 V - E + F = 2 가 곡면을 가르는 수로 자라는 이야기는 「일곱 다리의 도시」 9절이 따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