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개념 지도
인물

스리니바사 라마누잔(Srinivasa Ramanujan)

대학을 마치지 못한 채 거의 혼자 힘으로 수천 개의 공식을 찾아낸 인도의 수학자. 하디와 함께 분할수⁠(partition number)⁠와 소인수에 대한 깊은 결과를 남겼다.

1π=229801∑k=0∞(4k)! (1103+26390k)(k!)4 3964k\frac{1}{\pi} = \frac{2\sqrt2}{9801} \sum_{k=0}^{\infty} \frac{(4k)!\,(1103 + 26390k)}{(k!)^4\, 396^{4k}}

스리니바사 라마누잔은 1887년 영국령 인도 남부의 에로드에서 태어나 쿰바코남에서 자랐습니다. 가난한 브라만 집안이었고 아버지는 옷감 가게의 점원이었습니다. 당시 인도의 대학은 영국식 시험 제도를 따랐고, 수학만 뛰어난 학생이 설 자리는 좁았으며, 유럽의 수학계와 이어질 길도 거의 없었습니다. 열여섯 살 무렵 그가 손에 넣은 조지 카의 『순수·응용 수학의 기초⁠(basics)⁠ 결과 요약』은 증명 없이 공식 수천 개를 늘어놓은 수험서였습니다. 라마누잔은 이 책의 공식들을 혼자 증명하고 넘어서며 자기만의 수학을 쌓았고, 증명보다 결과를 먼저 적는 그의 방식도 이 책에서 비롯되었다고들 합니다.

굵은 막대가 이 사람의 생애이고, 흰검은 점은 페이지 끝 연표에 적은 일들입니다. 가는 막대는 같은 시대를 산 이 위키의 인물들입니다. 나이를 끌어 보세요.

나이 세 ·

그는 수학에만 몰두하다 다른 과목에서 낙제해 1904년에 받은 장학금을 이듬해 잃었고, 마드라스의 대학에서도 학위를 마치지 못했습니다. 그 뒤 몇 년 동안 가난 속에서 공책에 공식을 채웠고, 1911년 인도 수학회지에 첫 논문을 실었으며, 1912년 마드라스 항만청의 서기가 되었습니다.

이 몇 해를 버티게 한 것은 식민지 인도에서 막 자라던 작은 수학 공동체였습니다. 1907년 세무 공무원 라마스와미 아이야르가 인도인 수학자들의 모임인 인도 수학회를 세웠고, 1910년 공책을 들고 찾아온 라마누잔을 알아본 그는 넬로르의 지방 장관이던 라마찬드라 라오에게 소개했습니다. 라오는 한동안 매달 생활비를 대 주었고, 항만청의 영국인 청장 프랜시스 스프링과 인도인 관리 나라야나 아이야르는 그가 일하면서 연구할 수 있게 배려했습니다. 영국의 교육 제도와 행정 조직은 그를 대학에서 밀어냈지만, 같은 제도 안의 인도인 관리들과 몇몇 영국인이 그를 붙잡아 준 셈입니다. 그는 케임브리지의 다른 수학자 두 사람에게도 편지를 보냈지만 반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1913년 1월 그는 케임브리지의 수학자 G. H. 하디에게 혼자 찾은 결과들을 빼곡히 적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어떤 것은 이미 알려진 것이었고, 소수⁠(prime number)⁠의 개수에 대한 공식처럼 틀린 것도 있었습니다(소수 정리⁠(prime number theorem)⁠). 그러나 연분수⁠(continued fraction)⁠에 관한 공식 몇 개에 대해 하디는 어떻게 증명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고 회고하며, 이런 공식은 참이 아니라면 아무도 지어낼 상상력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하디의 답장을 받고 2월에 보낸 두 번째 편지에는 1 + 2 + 3 + 4 + ⋯ = −1/12처럼 얼핏 터무니없어 보이는 식도 있었습니다. 항을 더해 갈수록 합이 한없이 커지는 급수⁠(series)⁠, 곧 발산⁠(divergence)⁠하는 급수(급수의 수렴과 발산⁠(convergence and divergence of series)⁠)에도 일정한 규칙으로 값을 주는 그 나름의 방법이었고, 오늘날의 말로는 리만 제타 함수⁠(Riemann zeta function)⁠의 값 ζ(−1)=−1/12\zeta(-1) = -1/12에 해당합니다. 흔히 자연수⁠(natural number)⁠를 다 더하면 정말 −1/12가 된다고 오해하지만, 이것은 s > 1에서만 수렴⁠(convergence)⁠하는 ∑1/ns\sum 1/n^s를 매끄럽게 이어 붙인 함수⁠(function)⁠에 s = −1을 넣은 값이지 보통의 뜻의 합이 아닙니다.

하디의 편지 덕분에 마드라스 대학은 1913년 그에게 연구 장학금을 주었고, 이듬해 초 마드라스에 강의하러 온 트리니티 칼리지의 에릭 네빌이 그를 설득해 1914년 케임브리지로 데려왔습니다. 바다를 건너는 것을 금기로 여기던 집안의 반대를 넘어서야 했는데, 어머니가 집안의 여신 나마기리가 허락하는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가 집안에 전합니다. 두 사람의 협업은 독특했습니다. 라마누잔이 직관으로 공식을 내놓으면, 하디는 엄밀한 증명을 요구하며 어디가 맞고 어디가 틀렸는지 가려냈습니다. 그 결과 가운데 하나가 정수⁠(integer)⁠의 분할입니다. 자연수 n을 자연수들의 합으로 쓰는 방법의 수 p(n)p(n)은 오일러의 생성함수⁠(generating function)⁠로 적을 수 있지만, 그 크기를 계산하기는 어려웠습니다. 1918년 두 사람은 생성함수를 복소평면⁠(complex plane)⁠의 단위원⁠(unit circle)⁠ 근처에서 조각조각 어림하는 새 방법으로 p(n)p(n)을 거의 정확히 주는 공식을 얻었고, 영국의 수학자 퍼시 맥마흔이 손으로 계산한 p(200)=3,972,999,029,388p(200) = 3{,}972{,}999{,}029{,}388과 맞추어 보았습니다. 라마누잔은 p(4),p(9),p(14),…p(4), p(9), p(14), \ldots가 모두 5의 배수⁠(multiple)⁠라는 규칙도 찾아 증명했습니다(모듈러 연산⁠(modular arithmetic)⁠). 1917년에는 보통의 수 n이 대략 ln⁡ln⁡n\ln \ln n개의 서로 다른 소인수를 가진다는 것을 함께 증명했는데(소인수분해⁠, prime factorization⁠), 이 결과는 뒤에 에르되시와 마크 카츠의 정리, 곧 소인수의 개수가 평균⁠(mean)⁠ ln ln n 둘레에 종 모양으로 흩어진다는 정리로 자라, 정수의 성질을 확률⁠(probability)⁠처럼 다루는 확률론적 정수론⁠(number theory)⁠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분할수를 셀 때 쓴 방법, 곧 생성함수의 특이점(함수 값이 무한대로 치솟는 점) 근처마다 주된 항을 뽑아 더하고 나머지 오차는 따로 작다고 눌러 두는 방법은 근사와 오차의 전형입니다. 이 방법은 뒤에 '원 방법⁠(circle method)⁠'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자연수를 정해진 개수의 k제곱수⁠(perfect square)⁠의 합으로 쓸 수 있느냐는 워링 문제⁠(Waring's problem)⁠에 대한 하디와 리틀우드의 연구, 충분히 큰 홀수는 세 소수의 합이라는 러시아의 수학자 이반 비노그라도프의 1937년 정리로 이어졌습니다.

그가 도착한 지 넉 달 만에 1차 세계대전이 터졌습니다. 케임브리지의 젊은이들은 전선으로 떠났고, 하디의 공동 연구자 리틀우드도 포병 장교로 불려 갔으며, 반전 운동을 하던 러셀은 1916년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쫓겨났습니다. 반쯤 빈 대학에서 라마누잔은 주로 하디와 함께 연구했습니다. 엄격한 채식주의자이자 독실한 힌두교도인 그는 식량이 모자란 전시의 영국에서 직접 쌀과 채소를 구해 요리했고, 친구들에 따르면 자기 공식이 여신이 꿈에 알려 준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무신론자인 하디는 그런 말을 믿지 않았고, 두 사람이 서로의 삶을 얼마나 이해했는지에 대해서는 전기 작가들의 평가가 엇갈립니다. 1916년 3월 그는 고합성수⁠(highly composite number)⁠, 곧 12, 24, 36, 48처럼 자기보다 작은 어떤 수보다도 약수⁠(divisor)⁠가 많은 수에 관한 긴 논문으로 연구 학사 학위를 받았는데, 이 학위가 뒤에 케임브리지의 박사 학위로 이름을 바꿉니다.

위의 식은 1914년 논문에 실린 원주율⁠(pi)⁠의 급수입니다. 항을 하나 더할 때마다 원주율의 정확한 자리가 여덟 개쯤 늘어날 만큼 빨리 수렴해서, 1985년 빌 고스퍼가 원주율을 1,700만 자리 넘게 계산할 때 쓰였습니다. 케임브리지 시절의 친구 가운데는 캘커타에서 온 유학생 마할라노비스도 있었습니다. 마할라노비스의 회고에 따르면, 그가 잡지에 실린 퍼즐을 내밀자 라마누잔은 그 자리에서 그 문제의 모든 경우를 한꺼번에 답하는 연분수를 불러 주었다고 합니다. 하디가 전한 택시 이야기도 유명합니다. 병문안을 가며 탄 택시의 번호 1729가 따분한 수 같다고 하자, 라마누잔은 두 세제곱수의 합으로 나타내는 방법이 두 가지인 가장 작은 수라서 아주 흥미로운 수라고 답했다는 것입니다(1729=13+123=93+1031729 = 1^3 + 12^3 = 9^3 + 10^3).

영국의 추운 날씨와 전쟁 중에 채식을 지키기 어려운 형편 속에서 그는 1917년 병을 얻었습니다. 당시에는 결핵으로 여겨졌지만 간의 아메바 감염이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요양원을 옮겨 다니던 1918년 그는 영국 왕립학회 회원이 되었고, 그해 가을 인도인으로는 처음으로 트리니티 칼리지의 펠로로 뽑혔습니다. 1919년 인도로 돌아갔지만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고, 1920년 4월 서른두 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지막 해에 하디에게 보낸 편지에는 그가 '모의 세타 함수⁠(mock theta function)⁠'라 부른 새로운 함수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가 남긴 공책들은 그 뒤 한 세기 동안 수학자들의 연구 과제가 되었습니다. 1976년 미국의 수학자 조지 앤드루스는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에서 마지막 해의 원고 뭉치, 이른바 '잃어버린 공책'을 찾아냈고, 모의 세타 함수가 무엇인지는 2000년대에 들어서야 제대로 이해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공식은 결국 참으로 밝혀졌고, 증명하는 데 새로운 이론이 필요한 것도 많았습니다.

몇몇 추측은 20세기 수학의 한가운데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1916년 논문에서 타우 함수에 관한 추측을 내놓았습니다. 모듈러 형식⁠(modular form)⁠은 복소평면의 위쪽 절반에서 정의되어 특정한 변환들에 대해 정해진 대칭을 지니는 함수이고, 그 가운데 하나를 급수로 펼쳤을 때의 계수들이 타우 함수 τ(n)입니다. 그는 τ가 곱셈적이고(서로소⁠(coprime)⁠인 m, n에 대해 τ(mn) = τ(m)τ(n)) 소수 p에서의 크기가 ∣τ(p)∣≤2p11/2|\tau(p)| \le 2p^{11/2}을 넘지 않는다고 추측했는데, 앞의 성질은 이듬해 영국의 수학자 루이스 모델이 증명했지만 크기에 관한 추측은 1974년 벨기에의 수학자 피에르 들리뉴가 대수기하학의 깊은 추측인 베유 추측을 증명하면서야 풀렸습니다. 모의 세타 함수는 2002년 산더 츠베거르스의 박사 논문으로 비로소 제자리를 찾았고, 그 뒤 켄 오노와 동료들의 연구와 끈 이론의 블랙홀 계산에까지 등장했습니다. 인도에서 그는 식민지의 교육 제도를 넘어선 천재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1918년 그가 받은 왕립학회 회원 자격은 인도인으로서 두 번째였고, 인도 정부는 2012년부터 그의 생일인 12월 22일을 '국가 수학의 날'로 기념합니다. 하디는 1936년 하버드에서 그에 관한 연속 강연을 했고, 그 원고는 1940년 『라마누잔: 그의 삶과 업적이 시사하는 주제에 관한 열두 강의』로 나왔습니다.

이어지는 곳. 분할수와 그 그림은 정수의 분할에서, 소수가 얼마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소수, 소수 정리, 리만 제타 함수에서 이어집니다. 한 수를 여러 방식으로 쓰는 문제는 생성함수로, 수를 분수의 사다리로 적는 방법은 연분수로 이어집니다. 같은 종류의 문제를 앞 시대에 다룬 사람으로는 분할수의 오일러와, 그가 공책에서 여러 번 다시 찾아낸 초기하급수와 타원함수⁠(elliptic function)⁠의 가우스가 있습니다.

관계.

가운데가 이 사람, 둘레가 이어진 인물들입니다. 선의 색은 관계의 종류(초록 스승·제자, 파랑 함께 연구, 보라 편지, 빨강 논쟁, 주황 영향)이고, 다른 인물의 페이지에 적힌 관계도 함께 모았습니다.

  • 영향을 받음 레온하르트 오일러 — 오일러가 분할수의 생성함수와 오각수 정리⁠(pentagonal number theorem)⁠로 시작한 연구를 이어받아, 하디와 함께 분할수의 크기를 거의 정확히 계산했습니다.
  • 영향을 줌 에르되시 팔 — 하디와 함께 보인 소인수 개수의 정리를 에르되시와 카츠가 1939–1940년 정규분포⁠(normal distribution)⁠의 법칙으로 키웠습니다.

연표.

  • 1903년 카의 공식집을 손에 넣다
  • 1904년 장학금을 받아 쿰바코남의 정부 대학에 들어가다
  • 1909년 자나키와 혼인하다
  • 1910년 인도 수학회의 창립자 라마스와미 아이야르를 찾아가다
  • 1911년 인도 수학회지에 첫 논문을 싣다
  • 1912년 마드라스 항만청의 서기가 되다
  • 1913년 케임브리지의 하디에게 편지를 보내다
  • 1914년 케임브리지로 건너가다
  • 1916년 고합성수 연구로 학위를 받다
  • 1917년 하디와 함께 보통의 수가 가진 소인수의 개수를 밝히다
  • 1918년 분할수 공식을 발표하고 왕립학회 회원과 트리니티 칼리지 펠로가 되다
  • 1919년 병을 안고 인도로 돌아가다
  • 1920년 하디에게 모의 세타 함수를 알리는 마지막 편지를 보내다
관련된 시대와 장소20세기 초 케임브리지

이 인물이 나오는 긴 글

소수 소수를 세는 사람들 소수는 제멋대로 흩어져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멀리서 세어 보면 로그가 보인다. 조합론 세지 않고 세기 시의 운율을 세던 인도의 운율학자부터 오일러의 생성함수까지. 하나하나 늘어놓지 않고 경우의 수를 세는 법은 어떻게 자라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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