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개념 지도
인물

콜린 매클로린(Colin Maclaurin)

버클리의 비판에 맞서 뉴턴의 유율법⁠(method of fluxions)⁠을 기하학의 논증 위에 다시 세운 『유율론』(1742)을 쓰고, 0에서의 급수⁠(series)⁠ 전개에 이름을 남긴 스코틀랜드의 수학자. 열아홉 살에 교수가 되었고, 목사 미망인을 위한 연금 기금을 계산했으며, 1745년 에든버러의 성벽 방어를 맡았다.

f(x)=f(0)+f′(0) x+f′′(0)2! x2+f′′′(0)3! x3+⋯f(x) = f(0) + f'(0)\,x + \frac{f''(0)}{2!}\,x^2 + \frac{f'''(0)}{3!}\,x^3 + \cdots

콜린 매클로린은 1698년 2월 스코틀랜드 서부 아가일의 킬모단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그가 갓난아기일 때 세상을 떠났고, 형과 함께 삼촌 손에서 자랐습니다. 열한 살에 글래스고 대학에 들어갔고, 1717년 열아홉 살에 애버딘의 머리셜 칼리지 수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1719년 런던에서 뉴턴을 만난 뒤 그는 평생 뉴턴의 수학과 자연철학을 스코틀랜드에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1725년 에든버러 대학으로 옮길 때 뉴턴은 추천서를 쓰고, 자리가 마련될 때까지 봉급의 일부를 자기가 대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굵은 막대가 이 사람의 생애이고, 흰검은 점은 페이지 끝 연표에 적은 일들입니다. 가는 막대는 같은 시대를 산 이 위키의 인물들입니다. 나이를 끌어 보세요.

나이 세 ·

그의 이름을 남긴 책은 방어를 위해 쓰였습니다. 1734년 조지 버클리 주교가 『분석가』에서 미적분⁠(calculus)⁠의 무한소⁠(infinitesimal)⁠를 '사라진 양들의 유령'이라 비판하자, 매클로린은 뉴턴의 유율법을 고대 그리스식 기하학의 논증, 곧 에우독소스와 아르키메데스처럼 '크다고 해도 작다고 해도 모순'을 보이는 방식 위에 다시 세우려 했습니다. 그 결과가 두 권, 700쪽이 넘는 『유율론』(1742)입니다. 책은 무겁고 읽기 어려웠지만, 그 안에는 합을 적분⁠(integral)⁠으로(거꾸로 적분을 합으로) 어림하는 오일러–매클로린 공식에 해당하는 식, 그리고 0을 기준점으로 한 전개(위의 식)가 들어 있었습니다. 매클로린 자신은 이 전개가 브룩 테일러의 일반 공식(1715)의 특별한 경우라고 밝혔지만, 이 모양은 그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테일러 급수⁠(Taylor series)⁠).

그는 수학을 쓸모와 떼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1740년 파리 아카데미가 밀물과 썰물을 주제로 건 현상 논문에서 오일러, 다니엘 베르누이와 함께 상을 나눠 받았고, 지구가 도는 유체라면 어떤 모양이 되는지를 다룬 그의 논증은 뒤에 이 분야의 고전이 되었습니다. 1740년대에는 스코틀랜드 교회 목사와 대학 교수의 미망인과 자녀를 위한 연금 기금의 계산을 도왔습니다. 가입자들이 얼마나 오래 살고 가족이 얼마나 남을지를 추정해 기금이 버틸 수 있는 부담금을 정하는 일로, 오늘날 계리 계산의 초기 사례로 꼽힙니다. 세상을 떠난 뒤인 1748년에 나온 『대수론』에는 연립일차방정식⁠(system of linear equations)⁠의 해를 행렬식⁠(determinant)⁠의 비로 적는 규칙이 실려 있는데, 이 규칙은 2년 뒤 이를 발표한 스위스의 가브리엘 크라메르의 이름으로 불립니다(연립일차방정식).

1745년 스튜어트 왕가의 복위를 내건 재커바이트 반란군이 에든버러로 다가오자, 매클로린은 낡은 성벽을 고쳐 도시를 지키는 일을 앞장서 맡았습니다. 도시는 싸움 없이 반란군에 넘어갔고, 그는 잉글랜드의 요크로 피했습니다. 그해 11월 돌아왔지만 고된 피란길로 몸이 상했고, 1746년 6월 14일 마흔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어지는 곳. 그가 답한 버클리의 비판과 그 뒤 극한⁠(limit)⁠으로 이어진 이야기는 「순간의 속도⁠(instantaneous velocity)⁠」에서, 0에서의 전개와 그 앞뒤의 급수 이야기는 테일러 급수와 「한 점에서 전부를」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가 따르던 기하학의 엄밀함이 무엇이었는지는 에우독소스의 실진법⁠(method of exhaustion)⁠에서, 『대수론』의 규칙이 선 자리는 행렬식에서 이어집니다.

관계.

가운데가 이 사람, 둘레가 이어진 인물들입니다. 선의 색은 관계의 종류(초록 스승·제자, 파랑 함께 연구, 보라 편지, 빨강 논쟁, 주황 영향)이고, 다른 인물의 페이지에 적힌 관계도 함께 모았습니다.

  • 영향을 받음 아이작 뉴턴 — 1719년 런던에서 뉴턴을 만났고, 1725년 에든버러 교수로 갈 때 뉴턴이 추천서를 쓰고 봉급 일부를 대겠다고까지 제안했습니다.
  • 논쟁 조지 버클리 — 버클리가 『분석가』(1734)에서 무한소를 '사라진 양들의 유령'이라 비판하자, 『유율론』(1742)으로 유율법을 무한소 없이 기하학의 논증 위에 다시 세워 답했습니다.

연표.

  • 1709년 열한 살에 글래스고 대학에 들어가다
  • 1717년 열아홉 살에 애버딘 머리셜 칼리지의 수학 교수가 되다
  • 1719년 런던에서 뉴턴을 만나고 왕립학회 회원이 되다
  • 1725년 뉴턴의 추천으로 에든버러 대학의 수학 교수가 되다
  • 1740년 밀물과 썰물에 관한 논문으로 오일러, 다니엘 베르누이와 함께 파리 아카데미 상을 나눠 받다
  • 1742년 『유율론』을 펴내다
  • 1745년 재커바이트 반란군을 막으려 에든버러 성벽 방어를 지휘하다가 요크로 피하다
  • 1746년 에든버러로 돌아와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다
  • 1748년 유고 『대수론』이 출판되다

이 인물이 나오는 긴 글

미분에서 회전까지 · 1편 · 미분 순간의 속도 속도계는 '지금 이 순간'의 속도를 보여 준다. 순간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데, 무엇을 재는 걸까? 미분에서 회전까지 · 3편 · 테일러 급수 한 점에서 전부를 한 점에서의 값과 기울기, 휘는 정도만으로 함수 전체를 다시 그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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