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리앵마리 르장드르(Adrien-Marie Legendre)
프랑스의 수학자. 최소제곱법(method of least squares)을 처음 출판했고, 소수(prime number)의 개수를 어림하는 공식과 이차 상호 법칙(quadratic reciprocity)의 이름을 내놓았으며, 한 세기 동안 쓰인 기하학 교과서를 썼다.
아드리앵마리 르장드르는 1752년 파리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마자랭 학교에서 수학과 물리를 공부했고, 1775년부터 몇 해 동안 파리 사관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그의 시대 프랑스 과학의 큰일은 지구와 하늘을 재는 것이었습니다. 지구가 극 쪽으로 얼마나 납작한지, 혜성이 어떤 궤도(orbit)를 도는지를 정밀한 관측과 계산으로 가려내야 했고, 과학 아카데미의 현상 공모가 젊은 수학자들의 무대였습니다.
나이
1782년 공기 저항을 받는 포탄의 궤적을 다룬 논문으로 베를린 아카데미의 상을 받자 베를린의 라그랑주가 이 젊은이를 눈여겨보았고, 이듬해 그는 파리 과학 아카데미에 들어갔습니다. 1787년에는 파리 천문대와 그리니치 천문대의 위치를 삼각측량(triangulation)으로 잇는 영불 공동 측량에 참여했습니다. 이 일에서 나온 것이 르장드르의 정리입니다. 지구 표면의 삼각형은 구면 위의 삼각형이라 내각의 합이 180°보다 조금 큽니다. 변이 지구 반지름에 비해 작으면, 세 각에서 그 초과분의 3분의 1씩을 빼고 평면 삼각형처럼 계산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측량사들의 계산을 크게 덜어 준 이 정리는 곡률(curvature)이 넓이(area)에 비례해 각의 합을 바꾼다는 가우스 곡률(Gaussian curvature)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습니다.
같은 무렵 그는 행성과 지구의 모양이 만드는 인력을 계산했습니다. 스스로 도는 행성은 완전한 구가 아니어서, 바깥의 한 점이 받는 끌림을 적으려면 거리의 역수(inverse)를 각도에 따라 급수(series)로 전개해야 했습니다. 거리의 역수를, 두 거리의 비의 거듭제곱과 각도에만 달린 다항식(polynomial)들을 곱해 더한 급수로 풀어 쓰는 것입니다. 1780년대 중반 그가 이 전개에서 얻은 다항식들(
혁명 정부가 새 길이 단위 미터를 자오선(meridian) 측량으로 정하기로 하자 그는 준비 위원회에서 일했고,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재산을 잃었습니다. 1794년에는 『기하학 원론』을 냈습니다. 유클리드를 쉽고 엄밀하게 다시 쓴 이 책은 판을 거듭하며 유럽과 미국에서 한 세기 가까이 기하학 교과서로 쓰였습니다. 부록에서 그는 π뿐 아니라 π²도 무리수(irrational number)임을 증명했습니다. π가 무리수라는 것은 1760년대에 요한 하인리히 람베르트가 먼저 증명했고, π²까지 나아간 것이 르장드르의 몫입니다. 그는 이 책의 여러 판에서 평행선 공준(parallel postulate)을 다른 공준(postulate)들로 증명하려고 거듭 시도했지만, 그 증명들은 모두 어딘가에서 같은 내용을 몰래 가정하고 있었습니다.
혁명 정부는 길이만이 아니라 각도도 십진법으로 바꾸려 했습니다. 직각을 100그라드로 나누는 새 단위에 맞추어, 1790년대 드 프로니가 이끄는 계산 사무소가 로그와 삼각함수(trigonometric function)의 거대한 표를 만들었습니다. 프로니는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 적은 핀 공장의 분업을 본떠 일을 세 층으로 나누었습니다. 공식을 고르는 몇 명의 수학자, 그것을 한 단계씩의 계산 절차로 바꾸는 사람들, 그리고 덧셈과 뺄셈만 하는 수십 명의 계산원입니다. 르장드르는 맨 윗단의 수학자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표는 끝내 완전한 모습으로 인쇄되지 못했지만, 영국의 배비지는 이 분업을 자세히 소개하며, 맨 아랫단 계산원의 일을 기계에 맡기는 자신의 차분 기관(difference engine)이 같은 생각 위에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차분 기관은 다항식의 값을 이웃한 값들의 차를 되풀이해 더하는 방식으로, 덧셈만으로 표를 계산해 내는 기계입니다. 계산을 기계적인 단계들로 쪼개는 이 생각이 알고리즘(algorithm)입니다.
정수론(number theory)에서 그는 오일러가 짐작한 규칙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서로 다른 홀수 소수 p와 q가 있을 때 "어떤 제곱수(perfect square)를 p로 나눈 나머지(remainder)가 q와 같아질 수 있는가"와 "어떤 제곱수를 q로 나눈 나머지가 p와 같아질 수 있는가"의 답이, p와 q가 둘 다 4로 나누어 3이 남을 때는 언제나 엇갈리고 그 밖에는 언제나 같다는 이차 상호 법칙입니다(모듈러 연산(modular arithmetic)). 오늘날 쓰는 르장드르 기호(Legendre symbol)도 이 물음의 답을 +1과 −1로 적으려고 그가 만든 것입니다. 1785년과 1798년 『수론 시론』에서 증명을 내놓았지만 빈틈이 있었고, 첫 완전한 증명은 1801년 가우스의 것입니다. 같은 책에서 그는 x 이하 소수의 개수가
그의 이름을 가장 널리 남긴 것은 1805년 혜성 궤도에 관한 책의 부록입니다. 관측식이 미지수보다 많아 모든 식을 동시에 맞출 수 없을 때, 각 식의 오차를 제곱해 더한 값이 가장 작게 되도록 미지수를 고르자는 것입니다(위의 식). 제곱 합은 매끄러운 이차식이어서 미지수마다 미분(differentiation)해 0으로 놓으면 곧바로 연립일차방정식(정규방정식, normal equations)이 나오고, 그것을 풀면 됩니다. 그는 이 방법이 오차들 사이에 일종의 평형을 세워 극단적인 오차가 지배하지 못하게 한다고 썼고, 예제로 미터를 정하려고 잰 프랑스 자오선의 측량 자료를 썼습니다. 오늘날의 말로 하면 이렇습니다. 관측값 여러 개를 한 벡터(vector)로 보면, 미지수를 어떻게 골라도 모형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값들의 벡터는 공간 속의 한 평면(열공간, column space)을 이룹니다. 최소제곱(least squares)의 답은 그 평면 위에서 관측 벡터와 가장 가까운 점, 곧 관측 벡터를 평면에 수직으로 내린 그림자(정사영(orthogonal projection))입니다(최소제곱 회귀, least-squares regression). 절댓값(absolute value) 합을 쓰는 중앙값(median) 쪽 기준과 달리 공식 하나로 풀린다는 것이 이 방법이 퍼진 큰 이유였습니다. 1809년 가우스가 이 원리를 1795년부터 써 왔다고 적자 르장드르는 몹시 불쾌해했고, 두 사람 사이에는 앙금이 남았습니다. 오늘날에는 두 사람이 각자 발견했고, 먼저 출판하고 이름을 붙인 사람은 르장드르라고 정리합니다.
나폴레옹 시대에 그는 에콜 폴리테크니크에서 포병 장교가 될 졸업생들의 수학 시험관으로 10여 년을 일했고, 1813년에는 라그랑주의 뒤를 이어 경도국 위원이 되었습니다. 그의 『기하학 원론』은 프랑스 밖에서 더 오래 살았습니다. 1824년 에든버러에서 나온 영어판은 뒷날 역사가이자 작가로 이름난 젊은 토머스 칼라일이 옮긴 것이었고, 미국에서는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의 교수 찰스 데이비스가 고친 판이 19세기 내내 대학 교과서로 쓰였습니다. 유클리드를 그대로 가르치던 영국과 달리, 미국의 기하(geometry) 교육은 한동안 르장드르의 책을 뼈대로 삼았습니다.
그는 40년 가까이 타원 적분(타원(ellipse)의 둘레 같은 계산에서 나오는 적분(integral))을 연구해 1825–28년 『타원 함수론』으로 묶었습니다. 그런데 책이 나오자마자 젊은 아벨과 야코비가 적분 대신 그 역함수(inverse function)를 연구하는 완전히 새로운 관점으로 문제를 바꿔 놓았고, 일흔을 넘긴 르장드르는 두 사람의 업적을 아낌없이 칭찬했습니다. 1827년부터 그는 쾨니히스베르크의 야코비와 여러 해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그 편지에는 가우스가 자신이 먼저 알았다고 말할 뿐 증거는 내놓지 않는다는 오랜 불만도 적혀 있습니다(편지 공화국). 계승(factorial)
이어지는 곳. 최소제곱의 정규방정식을 푸는 절차는 가우스 소거법(Gaussian elimination)으로, 답을 그림자로 보는 눈은 열공간으로 이어집니다. 오차들이 서로 독립(independence)이고 같은 폭의 정규분포(normal distribution)를 따르면 최소제곱의 답이 곧 관측을 가장 그럴듯하게 만드는 답(최대가능도법, maximum likelihood)이 되고, 오차가 왜 정규분포를 따르는지는 중심극한정리(central limit theorem)가 설명합니다. 오늘날 기계 학습(machine learning)의 경사 하강법(gradient descent)도 같은 제곱 오차를 줄이는 일에서 출발합니다. 소수의 어림은 소수 정리와 리만 제타 함수(Riemann zeta function)로, 평행선 공준의 운명은 쌍곡기하(hyperbolic geometry)와 로바쳅스키로 이어집니다. 오차의 제곱 합을 가장 작게 하는 생각이 여러 분야로 퍼진 이야기는 가장 좋은 것 고르기와 근사와 오차에 모았습니다.
관계.
- 영향을 받음 조제프루이 라그랑주 — 1782년 베를린 아카데미 상을 받은 논문으로 라그랑주의 눈에 들었고, 1813년 경도국에서 라그랑주의 자리를 이었습니다.
- 논쟁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 1805년 먼저 출판한 최소제곱법을 가우스가 1809년 '1795년부터 써 온 원리'라고 적자 몹시 불쾌해했고, 그 앙금은 평생 남았습니다.
- 영향을 받음 레온하르트 오일러 — 오일러가 짐작한 이차 상호 법칙에 이름을 주고 증명을 시도했으며, 계승을 넓힌 오일러의 적분에 Γ라는 기호를 붙였습니다.
- 함께 연구 페터 구스타프 르죈 디리클레 — 1825년 스무 살의 디리클레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5제곱 경우의 증명 일부를 파리 아카데미에 내자, 그것을 읽은 르장드르가 남은 경우를 채웠습니다.
- 영향을 받음 유클리드 — 유클리드의 『원론』을 쉽고 엄밀하게 다시 쓴 『기하학 원론』으로, 유럽과 미국에서 한 세기 가까이 쓰인 교과서를 만들었습니다.
연표.
- 1782년 공기 저항 속 포탄의 궤적에 관한 논문으로 베를린 아카데미 상을 받다
- 1785년 이차 상호 법칙을 처음 증명하려 하다
- 1787년 파리와 그리니치 천문대를 잇는 삼각측량에 참여하다
- 1794년 『기하학 원론』을 내고, π²이 무리수임을 증명하다
- 1798년 『수론 시론』에서 소수의 개수를 어림하는 공식을 내놓다
- 1799년 에콜 폴리테크니크의 포병 졸업생 시험관이 되다
- 1805년 혜성 궤도에 관한 책의 부록으로 최소제곱법을 발표하다
- 1813년 라그랑주의 뒤를 이어 경도국 위원이 되다
- 1824년 정부가 민 후보에게 투표하기를 거부해 연금을 잃다
- 1825년 『타원 함수론』을 내기 시작하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의 5제곱 경우를 증명하다
이 인물이 나오는 긴 글
이 인물을 언급하는 페이지
- 최소제곱 회귀
… 쓰는 것처럼 동떨어진 이상값 하나에 덜 흔들리는 직선이 나옵니다. 최소제곱법은 1805년 프랑스의르장드르가 혜성 궤도 계산에 쓰면서 처음 발표했습니다. 가우스는 1809년, 자신은 1795년부터 이 방법을 …
- 정수론
… 2가 남습니다. 오일러는 이 정리를 소수가 아닌 법으로 넓혔고(오일러 피 함수), 가우스는 오일러와르장드르가 추측한 이차 상호 법칙을 1796년에 처음 증명해 이 책에 실었습니다. 셋째 기둥은 정수 해 입니다. …
- 통계학
… 천문학에서 나온 물음은 '같은 별의 위치를 여러 번 쟀더니 값이 조금씩 다를 때 무엇을 믿을까'였습니다.르장드르(1805)와 가우스(1809)는 관측값과의 어긋남을 제곱해 모두 더한 값이 가장 작아지도록 답을 …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 귀납법⟧을 거꾸로 쓴 논법). n = 3은 18세기에 오일러가, n = 5는 1825년 디리클레와르장드르가, n = 7은 1839년 가브리엘 라메가 증명했습니다. 모든 n을 하나씩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