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드 페르마(Pierre de Fermat)
툴루즈의 법관으로 일하며 여가에 수학을 해, 정수론(number theory)과 해석기하(analytic geometry), 극값 구하기, 확률(probability)에서 앞선 결과를 편지와 책 여백에 남긴 프랑스의 수학자.
페르마는 프랑스 남서부의 작은 도시 보몽드로마뉴에서 부유한 가죽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출생 연도는 1601년이라는 설과 1607년 무렵이라는 설이 있는데, 같은 이름의 이복형이 1601년에 태어나 일찍 죽었다는 연구가 나오면서 1607년 무렵이 유력해졌습니다. 법학을 공부한 그는 1631년 툴루즈 고등법원의 법관이 되어 평생 그 일을 했고, 수학은 여가에 했습니다. 그는 결과를 편지에 적거나 책 여백에 메모할 뿐 증명은 좀처럼 남기지 않았고, 출판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수학은 대부분 남이 보관한 편지와 그가 죽은 뒤 아들이 모은 원고로 전합니다.
나이
보르도에서 배운 대수. 1620년대 후반 페르마는 보르도에서 지냈습니다. 그곳에는 16세기 말 문자로 방정식을 쓰는 '해석술(analytic art)'을 세운 프랑수아 비에트의 원고를 가진 사람들이 있었고, 페르마는 그 원고로 비에트의 대수를 익혔습니다. 그의 글은 평생 비에트의 표기, 곧 모르는 양은 모음, 아는 양은 자음으로 쓰는 방식을 따랐습니다. 그 뒤 오를레앙에서 법학 학위를 받고 1631년 툴루즈 고등법원의 법관 자리를 샀습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관직을 돈으로 사고팔 수 있었고, 고등법원의 법관은 '법복 귀족'이 되어 이름에 '드'를 붙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청원을 다루는 부서에서 시작해 형사 사건(event)을 맡는 법정으로 옮겼고, 신교도가 관련된 사건을 다루는 카스트르의 특별 법정에도 여러 차례 나가 일했습니다.
편지로만 아는 수학자. 그 시대에는 학술지가 없었습니다. 최초의 학술지인 파리의 『주르날 데 사방』과 런던 왕립학회의 『철학 회보』가 나온 것은 그가 죽은 해인 1665년입니다(왕립학회와 과학 아카데미). 유럽의 학자들은 편지로 결과를 나누었고, 그 한가운데에서 파리의 수도사 메르센이 편지를 베껴 돌렸습니다(편지 공화국). 툴루즈 고등법원의 동료였던 카르카비가 1636년 파리로 옮기면서 그를 메르센과 파리의 수학자 로베르발에게 소개했고, 그때부터 페르마의 편지가 파리로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거의 평생 툴루즈 지방을 떠나지 않았고 파리의 학자들을 직접 만난 일도 드물었습니다. 유럽에서 손꼽히는 수학자가 동료들에게는 편지 속의 이름으로만 존재했던 셈입니다.
곡선을 식으로. 출발점은 고대 그리스의 책이었습니다. 그는 4세기의 수학자 파포스가 줄거리만 전한 아폴로니오스의 사라진 책 『평면 자취』를 복원하다가, 자취를 방정식으로 다루는 방법에 이르렀습니다. 1636년 무렵부터 돌기 시작한 그의 원고 「평면 자취와 입체 자취 입문」은 미지수 두 개의 1차방정식이 직선을, 2차방정식이 원뿔곡선(원, 타원(ellipse), 포물선(parabola), 쌍곡선(hyperbola))을 나타낸다고 보였습니다.
극값과 접선(tangent line). 그는 최댓값을 구하는 방법도 편지로 알렸습니다. 길이 b인 선분을 두 조각 x와 b − x로 나누어 곱
정수(integer)의 성질. 그의 가장 깊은 사랑은 정수였습니다. 3세기 알렉산드리아의 수학자 디오판토스의 『산술』을, 1621년 바셰가 그리스어 원문과 라틴어 번역을 함께 펴낸 판으로 읽으며 그는 수많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1640년 파리의 아마추어 수학자 프레니클 드 베시에게 보낸 편지에 증명 없이 적은 페르마 소정리(Fermat's little theorem)는, 소수(prime number) p와 p의 배수(multiple)가 아닌 정수 a에 대해
영국에 보낸 도전장. 1657년 그는 정수론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고 여기며 유럽의 수학자들, 특히 옥스퍼드의 수학자 존 월리스와 뒷날 왕립학회 초대 회장이 되는 브라운커 경에게 도전 문제를 보냈습니다. 제곱수가 아닌 양의 정수 N에 대해
가장 유명한 메모는 디오판토스 책의 여백에 있었습니다. n이 3 이상이면
확률의 편지. 1654년 파스칼은 중단된 내기의 판돈을 어떻게 나눌지를 두고 그와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페르마는 승부가 날 때까지 남은 판을 모두 한다고 치고, 일어날 수 있는 승패의 순서를 빠짐없이 적어 세었습니다. 파스칼은 한 판씩 되짚어 올라갔습니다. 두 방법은 파스칼의 삼각형(Pascal's triangle)과 이항계수(binomial coefficient)에서 만나고, 이 편지들이 확률론의 출발점으로 꼽힙니다. 우연을 세는 일이 수학이 된 순간입니다(무작위성). 두 사람은 한 번도 직접 만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듬해 파리에 온 네덜란드의 하위헌스가 이 문제들을 전해 듣고 1657년 확률에 관한 첫 인쇄된 책을 썼습니다.
최소 시간과 반발. 1662년 그는 빛이 두 점 사이를 가장 짧은 시간이 걸리는 길로 간다는 원리에서 굴절의 사인(sine) 법칙을 이끌어 냈습니다. 데카르트와 같은 법칙에 전혀 다른 이유로 이른 것입니다. 데카르트의 설명은 빛이 밀한 물질 속에서 더 빠르다는 가정을 썼고, 페르마의 설명은 더 느리다는 가정을 썼습니다. 데카르트의 제자이자 유고 관리인이던 클레르슬리에는 자연이 무언가를 '의도'해서 가장 짧은 시간의 길을 고른다는 생각은 물리학이 될 수 없다고 반박했고, 페르마는 자연의 비밀을 안다고 주장하지는 않겠다며 물러서면서도 계산이 맞는다는 점은 굽히지 않았습니다. 빛이 물속에서 더 느리다는 것은 1850년 프랑스의 물리학자 푸코의 실험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자연이 무언가를 가장 작게 하는 길을 고른다는 이 생각은 뒷날 어떤 양을 가장 작게 하는 곡선이나 함수(function)를 찾는 변분법(calculus of variations)으로 자랐고, 물리학에서는 물체가 '작용'이라는 양을 가장 작게(정확히는 조금 흔들어도 변하지 않게) 하는 경로로 움직인다는 최소 작용 원리(principle of least action)가 되었습니다.
그는 조용한 법관이었습니다. 1650년대 초 툴루즈에 페스트가 돌 때 그도 병에 걸렸고, 1653년 무렵 그가 죽었다는 소식이 잘못 퍼졌다가 바로잡힌 일이 있었습니다. 1665년 1월 재판 일로 가 있던 카스트르에서 죽었습니다. 그가 남긴 수많은 주장을 증명하거나 반박하는 일은 오일러, 라그랑주, 가우스에게 넘어갔고, 그 과정에서 정수론이 하나의 분야로 자랐습니다.
이어지는 곳. 그의 소정리는 오일러가 소수가 아닌 법으로 넓힌 오일러 피 함수(Euler's totient function)와 페르마 소정리로 이어지고, 그 정리를 어기는 수는 소수가 아니라는 소수 판정의 기초(basics)가 되며, 큰 수의 거듭제곱 나머지로 잠그고 여는 RSA 암호와 디피–헬먼 키 교환(Diffie–Hellman key exchange)을 떠받칩니다. 조금 옮긴 값과 비교해 극값을 찾는 방법은 최적화와 미분계수로, 판돈을 나누던 확률의 편지는 확률과, 돈이 떨어질 때까지 내기를 계속하는 도박꾼의 파산(gambler's ruin) 문제로 이어집니다. 같은 때 좌표에 이른 사람은 데카르트, 확률을 함께 연 편지 상대는 파스칼입니다. 여백의 메모가 350여 년 뒤 어떻게 증명되었는지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Fermat's Last Theorem)에 있습니다.
관계.
- 편지 블레즈 파스칼 — 1654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파리와 툴루즈 사이에 오간 편지로 중단된 내기의 분배 문제(problem of points)를 서로 다른 방법으로 풀었습니다.
- 영향을 줌 레온하르트 오일러 — 오일러는 페르마 소정리와 두 제곱수의 합 정리를 증명하고, 페르마 수가 모두 소수라는 추측을 641이라는 약수(divisor)로 깨뜨렸습니다.
- 영향을 줌 조제프루이 라그랑주 — 라그랑주는 페르마가 도전 문제로 낸 x² − Ny² = 1(N은 제곱수가 아닌 양의 정수)에 y ≠ 0인 정수해가 늘 있음을 증명하고, 모든 양의 정수는 제곱수 네 개의 합으로 쓸 수 있다(7 = 4 + 1 + 1 + 1)는 페르마의 주장도 1770년에 증명했습니다.
연표.
- 1631년 툴루즈 고등법원의 법관이 되다
- 1636년 메르센과 편지를 시작하고 극대·극소법과 자취론을 알리다
- 1637년 디오판토스 『산술』의 여백에 마지막 정리를 적다(무렵)
- 1638년 접선 구하는 법을 두고 데카르트와 편지로 논쟁하다
- 1640년 소정리와 두 제곱수의 합 정리를 편지에 적다
- 1654년 파스칼과 편지로 분배 문제를 풀다
- 1657년 영국 수학자들에게 정수론 도전 문제를 내다
- 1662년 최소 시간의 원리(principle of least time)로 빛의 굴절 법칙(law of refraction)을 이끌어 내다
- 1665년 1월 재판 일로 가 있던 카스트르에서 죽다
이 인물이 나오는 긴 글
이 인물을 언급하는 페이지
- 최적화
… 쌍이 함께 변하는 정도를 모은 표)의 고유벡터 가운데 고유값이 가장 큰 것입니다. 물리에도 있습니다.페르마는 1662년 빛이 두 점 사이를 가장 짧은 시간에 가는 길을 택한다는 원리를 세웠습니다. 공기에서 물로 …
- 확률
… 좁아지는데, 그것이 조건부 확률입니다. 확률을 수학으로 다루는 전통은 흔히 1654년 파스칼과페르마가 주고받은 편지에서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도박이 중간에 멈췄을 때 판돈을 어떻게 나눌지를 두고, 두 …
- 기댓값
… 전체 성공률로는 A가 뒤지는 심슨의 역설이 그 예입니다. 기댓값이라는 생각은 1654년 파스칼과페르마가 멈춘 도박의 판돈을 나누던 편지에서 싹텄고, 1657년 네덜란드의 하위헌스가 『주사위 놀이의 계산에 …
- 오일러 피 함수와 페르마 소정리
… = p - 1 이라 p 의 배수가 아닌 모든 a 에 대해 a^{p-1} \equiv 1 (페르마소정리)입니다. 단원끼리 곱하면 다시 단원이고, 1이 곱셈의 항등원 노릇을 하며, 단원마다 역수가 …
- 도박꾼의 파산
… N이 되면 목표를 이루고 그만둡니다. 돈의 변화는 양 끝에 벽이 있는 무작위 행보입니다. 파스칼과페르마사이에서 다루어진 문제로 알려져 있고, 네덜란드의 하위헌스가 1657년, 처음 출판된 확률 책으로 …
- 측지선
… 사이를 걸리는 시간이 가장 짧은 길(정확히는 길을 조금 바꿔도 시간이 1차로 변하지 않는 길)로 갑니다(페르마의 원리). 빛의 빠르기가 곳곳에서 다르면 이 길이 휘는데, 빛의 빠르기로 거리를 새로 잰 공간의 측지선을 …
- 유클리드 거리
… 두 점의 좌표만으로 거리를 계산하는 이 공식은 17세기에 데카르트(1637년 『기하학』)와페르마가 도형을 좌표와 식으로 다루는 길을 연 뒤에야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곳. 곧은 길이 …
- 무작위 알고리즘
… 판정할 때 1과 n 사이의 수 a(밑)를 무작위로 골라, n이 두 조건을 만족하는지 확인합니다. 하나는페르마의 소정리에서 나오는 거듭제곱 조건이고, 다른 하나는 소수를 법으로 하면 1의 제곱근이 ±1뿐이라는 …
- 원뿔곡선
… 깨는 의료 장비에, 쌍곡선 거울은 카세그레인식 반사 망원경에 쓰입니다. 식으로 본 원뿔곡선. 데카르트와페르마가 좌표를 도입하자 원뿔곡선은 이차방정식 Ax^2 + Bxy + Cy^2 + Dx + Ey + F = 0 …
- 정수론
… 나머지만 보면 끝없이 많은 정수가 m개의 칸으로 줄어들고, 덧셈과 곱셈은 칸 사이의 계산이 됩니다.페르마가 1640년 편지에 적은 정리(페르마의 소정리)에 따르면 p가 소수일 때 a^p \equiv a …
- 변분법
… 잃는 시간보다 깊은 곳에서 번 속도의 이득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요한 베르누이의 풀이는 빛을 빌렸습니다.페르마의 원리에 따르면 빛은 시간이 가장 적게 걸리는 길로 가고, 그래서 속도가 다른 층을 지날 때 …
- 확률변수
… X를 르베그 적분한 값이 되어, 이산과 연속이 하나의 식으로 묶입니다. 역사. 1654년 파스칼과페르마가 편지로 푼 판돈 나누기 문제는 앞으로 받을 돈이라는 확률변수의 기댓값을 묻는 문제였고, 1657년 …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 을 곱해 정수 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름의 사연은 이렇습니다. 17세기 프랑스의 법관이자 수학자피에르 드 페르마는 3세기 알렉산드리아의 디오판토스가 쓴 『산술』의 라틴어판을 읽으며 여백에 메모를 남겼습니다. 그 가운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