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구스타프 야코프 야코비(Carl Gustav Jacob Jacobi)
독일의 수학자. 아벨과 함께 타원함수(elliptic function)의 이론을 세우고, 행렬식(determinant)과 야코비 행렬(Jacobian matrix), 해밀턴–야코비 역학, 고유값(eigenvalue)을 구하는 회전법을 남겼으며, 쾨니히스베르크의 세미나로 독일 연구 대학의 교육을 바꾸었다.
카를 구스타프 야코프 야코비는 1804년 프로이센의 포츠담에서 유대인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두 해 뒤 프로이센은 나폴레옹에게 참패했고, 그 충격 속에서 나라는 교육부터 새로 세웠습니다. 1810년 훔볼트가 세운 베를린 대학은 가르치는 일과 연구하는 일을 하나로 묶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수학에서 독일은 아직 파리의 변방이었습니다. 괴팅겐에는 가우스가 있었지만 제자를 거의 두지 않았습니다. 독일에 연구하는 수학자들의 공동체가 생긴 것은 야코비와 그의 벗 디리클레의 세대부터입니다. 유대인에게 대학 교수 자리가 막혀 있던 시대여서, 야코비는 학위를 받을 무렵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형 모리츠 헤르만 야코비는 러시아에서 전기 도금을 발명한 물리학자가 되었습니다.
나이
어린 그는 포츠담의 김나지움에서 열두 살에 이미 최고 학년에 올랐지만, 대학에 들어갈 나이가 될 때까지 몇 해를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 사이 혼자 오일러와 라그랑주를 읽었습니다. 1821년 베를린 대학에 들어가 1825년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듬해 프로이센 동쪽 끝의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으로 옮겼습니다. 이곳에는 천문학자 베셀과 물리학자 프란츠 노이만이 있었습니다. 그는 거의 20년을 이 도시에서 보내며 가장 중요한 연구를 했습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타원함수였습니다. 1827년 무렵 그는 노르웨이의 아벨과 거의 동시에, 서로 모른 채 같은 발견을 했습니다. 타원 적분(elliptic integral)을 적분(integral)의 끝값에 대한 함수(function)로 보지 말고 뒤집어 보자는 것입니다. 진자로 그 뜻을 볼 수 있습니다. 조금만 흔들리는 진자의 각도는 시간에 대해 거의 사인파입니다(사인파(sinusoid)). 흔들림이 작다고 보고 식을 선형 미분방정식(linear differential equation)으로 바꾸었기 때문입니다(선형화, linearization). 그러나 크게 흔들리는 진자를 그대로 풀면, 어떤 각도에 이르는 데 걸리는 시간이 타원 적분으로 나옵니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거꾸로 시간이 주어졌을 때의 각도이니, 적분을 뒤집어야 합니다. 그렇게 얻은 함수가 야코비의 타원함수 sn이고, 이것이 큰 진폭(amplitude)의 진자를 정확히 기술합니다. 흔들림이 작아지면 sn은 사인(sine)으로 돌아갑니다. 1829년의 『타원함수 이론의 새로운 기초(basics)』는 이 이론을 체계로 묶었고, 평생 타원 적분을 연구한 르장드르는 편지로 그를 아낌없이 칭찬했습니다. 뒤집어라, 언제나 뒤집어 보라는 말이 그가 즐겨 했다고 전하는 말입니다.
이 책에는 정수론(number theory)의 보석도 들어 있습니다. 야코비는 타원함수를 '세타 함수(theta function)'라는 급수(series)들로 나타냈는데, 가장 간단한 것은 제곱수(perfect square)들을 지수에 올린
쾨니히스베르크에서 그는 가르치는 방식도 바꾸었습니다. 그는 완성된 교과서를 읽어 주는 대신 자신이 지금 연구하는 내용을 강의했고, 1834년 노이만과 함께 수학·물리학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학생들이 스스로 연구 문제를 붙들고 발표하고 토론하는 이 방식은 독일 대학 전체로 퍼져, 연구하면서 배우는 오늘날 대학원 교육의 한 원형이 되었습니다. 그의 곁에서 헤세, 보르하르트 같은 수학자들이 자랐습니다. 1842년에는 베셀과 함께 영국 과학진흥협회의 맨체스터 모임에 가서 영국의 수학자들과 교류했습니다.
오늘날 가장 자주 불리는 그의 이름은 야코비 행렬과 야코비안입니다. 1841년 그는 행렬식을 체계적으로 다룬 논문들을 내면서, 여러 변수의 함수들이 이루는 함수 행렬식을 연구했습니다. 평면의 점 (x, y)를 (u, v)로 옮기는 함수가 있으면, 한 점 근처에서 이 함수는 거의 일차 변환처럼 움직입니다(국소 선형성, local linearity). 그 일차 변환을 나타내는 편미분(partial derivative)들의 행렬(matrix)이 야코비 행렬이고, 그 행렬식은 작은 네모의 넓이(area)가 몇 배로 늘거나 주는지를 알려 줍니다. 극좌표(polar coordinates)
역학에서는 해밀턴의 뒤를 이었습니다. 1830년대 아일랜드의 해밀턴은 역학 전체를 하나의 함수로 적는 틀을 세웠고, 야코비는 1837년 이를 넓혀, 한 편미분방정식(partial differential equation)을 만족하는 함수 하나만 찾으면 계의 모든 운동이 거기서 나온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오늘날 해밀턴–야코비 이론(Hamilton–Jacobi theory)이라 부르는 이 방법으로 그는 1839년 세 축의 길이가 모두 다른 타원체 위에서 가장 짧은 길, 곧 측지선(geodesic)을 구하는 오래된 문제를 풀었습니다(변분법, calculus of variations). 1836년에는 두 큰 천체 둘레를 도는 작은 천체의 운동에서 보존되는 양, 오늘날 야코비 적분(Jacobi integral)이라 부르는 양을 찾았습니다(삼체 문제(three-body problem)). 그의 역학 강의는 그가 죽은 뒤 1866년 책으로 나왔고, 해밀턴–야코비 방정식은 20세기에 슈뢰딩거가 양자역학의 파동방정식(wave equation)을 찾는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그는 계산의 방법도 남겼습니다. 1845년에는 연립일차방정식(system of linear equations)을 한 번에 푸는 대신 근삿값을 되풀이해 고쳐 가는 방법을, 1846년에는 대칭 행렬(symmetric matrix)의 고유값을 구하는 방법을 발표했습니다(연립일차방정식). 뒤의 방법은 행성 궤도(orbit)가 서서히 바뀌는 섭동을 계산하려고 만든 것입니다. 대칭 행렬에서 대각선 밖의 가장 큰 원소(element) 하나를 골라, 그 원소가 0이 되도록 두 좌표축을 알맞은 각도로 돌립니다(회전 행렬(rotation matrix)). 돌리기를 한 번 할 때마다 대각선 밖 원소들의 제곱의 합이 줄어들고, 되풀이하면 행렬은 대각 행렬(diagonal matrix)에 다가가며 대각선에 고유값이 남습니다(대각화, diagonalization). 손으로 하기에는 고된 이 방법은 1950년대 전자계산기가 나오면서 되살아나 지금도 쓰입니다(주성분 분석, principal component analysis). 그가 죽은 뒤 1890년 출판된 라틴어 유고에서는, 2000년대에 들어 사람과 일을 짝짓는 배정 문제(assignment problem)를 푸는 헝가리안 방법(Hungarian method)과 사실상 같은 절차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방법에 헝가리안이라는 이름을 붙인 해럴드 쿤은 말년에 이 발견을 직접 소개했습니다.
그는 수학을 쓸모로 재는 태도에 맞섰습니다. 1830년 파리 아카데미에서 푸아송이 그의 책에 대해 쓴 보고서에는, 아벨과 야코비가 열의 운동 같은 자연 현상보다 타원함수에 매달린다는 푸리에의 나무람이 인용되어 있었습니다. 야코비는 르장드르에게 보낸 편지에서, 과학의 유일한 목적은 인간 정신의 명예이며 그런 관점에서는 수에 관한 질문도 세계의 체계에 관한 질문만큼 값지다고 답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의 순수한 연구들은 역학과 수치 계산과 오늘날의 기계 학습(machine learning)에서 쓸모를 찾았습니다.
1843년 그는 당뇨병으로 쓰러졌습니다. 왕의 지원으로 이탈리아에 요양을 갔는데, 디리클레가 가족과 함께 따라가 1년 넘게 곁에 머물렀습니다. 이듬해 그는 베를린으로 옮겨 학술원 회원으로 연구하며 대학에서 강의했고, 젊은 리만과 아이젠슈타인이 그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1848년 혁명 때 한 정치 모임에서 한 연설로 왕의 눈 밖에 나 연금을 잠시 잃고 가족을 고타로 보내야 했지만, 연금은 곧 되돌아왔습니다. 그는 1851년 베를린에서 천연두로 마흔여섯에 죽었습니다.
이어지는 곳. 넓이의 배율인 야코비 행렬식은 행렬식과 선형 변환에서, 회전(rotation)으로 고유값을 찾는 생각은 고유벡터(eigenvector)와 대각화에서 볼 수 있습니다. 국소적으로 일차식으로 바꾸어 푸는 야코비 행렬의 쓰임은 선형화에, 적분을 뒤집어 새 함수를 얻는 그의 한 수는 표현 바꾸기에 있습니다. 타원함수의 경쟁자는 아벨이고, 같은 시대 독일 수학의 벗들은 디리클레와 리만의 페이지에 있습니다.
관계.
- 편지 아드리앵마리 르장드르 — 1827년부터 여러 해 편지를 주고받았고, 늙은 르장드르는 타원함수에 관한 그의 새 관점을 아낌없이 칭찬했습니다.
- 영향을 받음 닐스 헨리크 아벨 — 같은 해에 따로 타원 적분을 뒤집어 경쟁했고, 아벨이 죽은 뒤 그의 정리를 높이 기리며 파리 아카데미에 묻힌 원고의 행방을 물었습니다.
- 함께 연구 페터 구스타프 르죈 디리클레 — 가장 가까운 수학의 벗이었고, 1843년 그가 병들자 디리클레가 가족과 함께 이탈리아까지 따라가 1년 넘게 머물렀습니다.
- 논쟁 조제프 푸리에 — 1830년 열 같은 자연 현상 대신 타원함수에 매달린다는 푸리에의 나무람이 푸아송의 보고서에 인용되자, 과학의 유일한 목적은 인간 정신의 명예라고 르장드르에게 써 보냈습니다.
- 영향을 받음 윌리엄 로언 해밀턴 — 해밀턴이 1830년대에 세운 역학의 틀을 넓혀, 편미분방정식 하나를 푸는 문제로 모든 운동을 구하는 해밀턴–야코비 이론을 만들었습니다.
- 제자 베른하르트 리만 — 리만은 1847년부터 두 해 동안 베를린에서 디리클레와 야코비에게 배웠습니다.
- 영향을 줌 카를 바이어슈트라스 — 야코비가 제기한 역문제(inverse problem), 곧 초타원 적분을 뒤집는 문제를 1850년대에 바이어슈트라스와 리만이 풀었습니다.
연표.
- 1821년 베를린 대학에 들어가다
- 1825년 베를린에서 박사 학위를 받다
- 1826년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으로 옮기다
- 1829년 『타원함수 이론의 새로운 기초』를 내다
- 1834년 물리학자 노이만과 함께 수학·물리학 세미나를 열다
- 1837년 해밀턴의 역학을 넓혀 오늘날 해밀턴–야코비 이론이라 부르는 방법을 세우다
- 1841년 행렬식과 함수 행렬식에 관한 논문들을 내다
- 1843년 당뇨병으로 쓰러져 디리클레와 함께 이탈리아에서 요양하다
- 1844년 베를린으로 옮겨 학술원 회원으로 연구하다
- 1846년 대칭 행렬의 고유값을 회전으로 구하는 방법을 발표하다
- 1848년 혁명기의 정치 연설로 왕의 눈 밖에 나 연금을 잠시 잃다
이 인물이 나오는 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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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쇄법칙
… 각 출력이 각 입력을 조금 바꿀 때 얼마나 변하는지(편미분)를 표로 늘어놓은 행렬로, 19세기 독일 수학자야코비의 이름을 따 야코비 행렬이라 부릅니다. 함수를 합성하면 이 행렬들이 곱해지니, 1변수 연쇄법칙은 …
- 역전파
… 보면 각 층의 국소 미분은 층의 출력 하나하나를 입력 하나하나로 미분한 값을 모은 행렬(독일 수학자야코비의 이름을 딴 야코비 행렬)이고 연쇄법칙은 그 행렬들의 곱입니다. 손실은 수 하나이므로 L 쪽부터 …
- 정수론
… 1이 남는 것의 개수 d_1(n) 에서 3이 남는 것의 개수 d_3(n) 를 뺀 값의 4배입니다(1829년야코비). 지금 n에서는 이제 n 하나가 아니라 1부터 N까지를 한꺼번에 봅시다. r(1) + r(2) + ⋯ …
- 기울기 벡터와 야코비 행렬
… 분해⟧). 이어지는 곳. 야코비 행렬과 행렬식은 1841년 이 행렬식을 체계적으로 다룬야코비의 이름을 땄습니다. 제약이 있는 최적화에서는 목표의 기울기가 제약의 기울기와 평행해야 한다는 조건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