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마굽타(Brahmagupta)
7세기 북서 인도 빌라말라의 천문학자로, 628년의 『브라마스푸타싯단타』에서 0과 음수의 셈법을 규칙으로 적은 알려진 가장 이른 기록을 남기고, 2차방정식의 근의 공식(quadratic formula)과 펠 방정식(Pell equation)을 푸는 합성법을 남겨 그 책이 바그다드를 거쳐 이슬람 세계의 천문학과 대수학의 바탕이 된 사람.
브라마굽타는 598년 인도 북서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자기 책에, 샤카 기원 550년(서기 628년) 차파 왕조의 브야그라무카 왕 때 서른 살의 나이로 이 책을 지었다고 적었습니다. 그가 살던 빌라말라는 오늘날 라자스탄주의 빈말로, 구르자라 지방의 중심 도시였습니다. 북인도에서는 하르샤 왕이 큰 왕국을 이루었다가 그가 죽은 뒤 다시 흩어졌습니다. 인도의 천문학자들은 제사의 날짜와 달력, 일식과 월식을 계산하는 일을 맡았고, 그 지식을 산스크리트어 운문으로 된 '싯단타'(확립된 체계)라는 책에 담았습니다. 한 세기 앞선 499년의 아리아바타가 이 전통의 큰 이정표였고, 브라마굽타는 그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자기 체계를 세웠습니다. 그가 서부 인도의 천문 중심지 우자인의 천문대를 이끌었다는 말이 흔히 전하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습니다.
나이
운문으로 된 교과서. 그의 주저 『브라마스푸타싯단타』는 '바르게 세운 브라마의 체계'라는 뜻으로, 1,000개가 넘는 시구로 된 스물다섯 장의 책입니다. 대부분은 행성의 평균(mean) 위치와 실제 위치, 일식과 월식, 관측 기구를 다루는 천문학이고, 12장(가니타, 셈)과 18장(쿠타카(kuttaka), 대수)이 수학을 따로 다룹니다. 외우기 좋게 운율을 맞춘 짧은 시구에 규칙을 담고 예제를 붙이는 방식이어서, 그리스식 증명은 없고 해설은 뒤의 주석가들이 붙였습니다. 이 책은 4세기 뒤의 페르시아 학자 알비루니가 인도의 학문을 소개하면서 가장 많이 인용한 책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0과 빚과 재산. 인도에서는 이미 아홉 개의 숫자와 빈자리를 나타내는 점이나 작은 동그라미로 수를 적는 자릿값 표기가 쓰이고 있었습니다(진법, positional notation). 브라마굽타는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0을 빈자리 표시가 아닌 하나의 수로 보고 그 셈법을 규칙으로 적었습니다. 알려진 가장 이른 기록입니다. 그는 양수를 '재산', 음수를 '빚'이라 부르며 이렇게 썼습니다. 재산과 빚을 더하면 그 차이이고 둘이 같으면 0이다. 빚에서 0을 빼면 빚, 0에서 빚을 빼면 재산이다. 빚과 재산을 곱하면 빚, 두 빚을 곱하면 재산이며, 어떤 수든 0을 곱하면 0이다. 중국의 『구장산술』에도 양수와 음수를 더하고 빼는 규칙이 있었지만, 곱셈의 부호 규칙(rule of signs)과 0의 셈법을 한데 적은 것은 그가 처음으로 꼽힙니다(수 체계(number system)).
0으로 나누기. 나눗셈에서는 그도 헤맸습니다. 그는 0을 0으로 나누면 0이라고 했고, 0이 아닌 수를 0으로 나눈 것은 '0을 분모로 가진 수'라고만 적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두 경우 모두 값을 정하지 않습니다.
근의 공식. 18장에서 그는 2차방정식을 푸는 규칙을 말로 적었습니다. 오늘날의 기호로
1년 안에 풀면 수학자. 그가 가장 공들인 것은 오늘날 '펠 방정식'이라 부르는
합성이라는 열쇠. 그의 방법은 '바바나'(합성)라는 규칙입니다.
가루 내기. 18장의 제목이 된 '쿠타카'는 '가루 내기'라는 뜻으로,
원에 내접하는 사각형. 12장에서 그는 네 변이
표 사이를 채우는 법. 예순일곱 살에 지은 『칸다카디아카』는 실제 계산을 위한 간편한 교본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는 사인(sine) 표의 두 값 사이에 있는 값을 구할 때, 두 점을 직선으로 잇는 대신 이웃한 차이들의 변화까지 반영하는 규칙을 적었습니다. 연속한 세 표 값을 지나는 포물선(parabola)으로 사이를 메우는 셈이며, 1,000년 뒤 뉴턴과 스털링이 일반화한 보간 공식(interpolation formula)의 2차 항과 같습니다. 표가 성기더라도 곡선의 휘어짐을 고려하면 훨씬 정확한 값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근사와 오차, 사인과 코사인(sine and cosine)). 12세기의 바스카라 2세는 그를 '셈하는 이들의 둥근 무리의 보석'이라 불렀습니다.
바그다드로 간 책. 770년대 인도에서 온 사절단의 한 천문학자가 아바스 왕조 칼리프 알만수르의 궁정에 천문서를 가져왔고, 이것이 알파자리 등의 손을 거쳐 아랍어 천문표 『신드힌드』가 되었습니다(바그다드 지혜의 집). 그 바탕이 브라마굽타의 체계였다고 봅니다. 『칸다카디아카』도 『아르칸드』라는 이름으로 아랍어로 옮겨졌습니다. 다음 세기의 알콰리즈미는 『신드힌드』를 바탕으로 천문표를 만들었고, 인도에서 온 숫자로 셈하는 법을 책으로 써 서쪽으로 전했습니다. 인도 안에서는 그의 전통이 바스카라 2세를 거쳐 이어졌고, 남인도에서는 케랄라 학파가 무한급수(infinite series)로 사인을 계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영어권에는 1817년 영국의 동양학자 콜브룩이 그와 바스카라의 수학 장들을 옮기면서 알려졌습니다.
이어지는 곳. 0과 음수의 셈법은 수 체계와 진법에서, 근의 공식은 다항식에서, 펠 방정식과 합성은 연분수와 정수론에서 이어집니다. 쿠타카는 유클리드 호제법과 중국인의 나머지 정리의 사촌이고, 2차 보간(interpolation)은 근사와 오차로 이어집니다. 그의 책이 건너간 곳은 바그다드 지혜의 집과 알콰리즈미이고, 같은 방정식을 1,000년 뒤 유럽에서 다시 만난 사람은 페르마입니다.
관계.
- 영향을 줌 알콰리즈미 — 770년대 바그다드에 전해진 그의 계열의 천문서가 아랍어 천문표 『신드힌드』가 되었고, 알콰리즈미는 이를 바탕으로 자기 천문표를 만들었습니다.
연표.
- 606년 하르샤가 북인도의 왕위에 올라 큰 왕국을 세우다
- 628년 서른 살에 빌라말라에서 『브라마스푸타싯단타』를 짓다
- 632년 무함마드가 죽고 이슬람 세력이 서아시아로 뻗어 나가기 시작하다
- 647년 하르샤가 죽고 북인도가 다시 여러 왕국으로 나뉘다
- 665년 예순일곱 살에 계산용 천문 교본 『칸다카디아카』를 짓다
이 인물을 언급하는 페이지
- 수 체계: 자연수에서 실수까지
… 이 책에 주석을 단 유휘는 붉은 산가지와 검은 산가지로 둘을 구별한다고 설명했습니다. 628년 인도의브라마굽타는 재산과 빚과 0으로 셈하는 규칙을 적었습니다. 0에서 빚을 빼면 재산이 된다는 식입니다. 유럽에서는 …
- 정수론
… (17, 12), (99, 70), …처럼 끝없이 많은 해를 갖고, 이런 꼴의 펠 방정식을 628년 인도의브라마굽타가 체계적으로 다루었습니다. 그는 x^2 - 92y^2 = 1 의 해 (1151, 120)을 1년 안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