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로언 해밀턴(William Rowan Hamilton)
복소수(complex number)를 실수(real number)의 순서쌍(ordered pair)으로 정의하고, 곱셈의 교환법칙(commutative law)을 버린 사원수(quaternion)로 공간의 회전(rotation)을 적었으며, 역학을 에너지 함수(function) 하나로 다시 쓴 아일랜드의 수학자.
윌리엄 로언 해밀턴은 1805년 더블린에서 태어나, 스물한 살부터 죽을 때까지 도시 북서쪽 던싱크 천문대에서 산 아일랜드의 수학자입니다. 어려서 성직자인 삼촌에게 맡겨져 여러 언어를 익혔고, 열 살 남짓에 이미 여러 고전어와 동방 언어를 읽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그의 시대에 복소수는 계산에는 잘 쓰였지만
나이
열세 살 무렵 그는 더블린을 찾은 미국의 암산 신동 제라 콜번과 셈을 겨루었고, 이 만남 뒤로 수학에 깊이 빠져들었다고 합니다. 열일곱 살에는 라플라스의 『천체역학(celestial mechanics)』을 읽다가 한 증명의 잘못을 찾아내어, 아일랜드 왕립 천문관 브링클리의 눈에 들었습니다. 당시 아일랜드는 1801년 연합법으로 영국에 합쳐져 있었고,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는 영국 국교회를 믿는 지배층의 대학이었습니다. 가톨릭 다수의 나라에서 개신교 소수(prime number)가 운영하는 이 대학에서, 해밀턴은 고전과 과학 두 분야에서 모두 최고 등급의 평가를 받아 이름을 떨쳤습니다.
그는 1823년 트리니티 칼리지에 들어가 학부생이던 1827년, 스물한 살에 천문학 교수 겸 아일랜드 왕립 천문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첫 큰 업적은 광학이었습니다. 빛살의 무리를 한 함수로 다루는 이론을 세웠고, 1832년에는 어떤 결정 속에서 빛 한 줄기가 원뿔 모양으로 퍼져 나가야 한다고 예측했습니다. 동료 험프리 로이드가 곧 실험으로 확인해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습니다. 1834–35년에는 같은 생각을 역학으로 옮겼습니다. 계의 에너지를 위치 q와 운동량(momentum) p(가장 단순한 경우 질량 × 속도(velocity))의 함수 H(q, p)로 쓰면, 운동은
해밀턴은 더블린 과학계의 얼굴이었습니다. 1835년 더블린에서 열린 영국과학진흥협회 모임에서 기사 작위를 받았고, 1837년부터 1846년까지 아일랜드 왕립 아카데미의 회장을 지냈습니다. 런던의 왕립학회처럼 회원들이 모여 논문을 읽고 회보를 내는 학회였고, 그의 큰 발표들은 대부분 이 모임에서 처음 나왔습니다. 그의 회장 임기 끝 무렵인 1845년에는 대기근이 시작되어, 그 뒤 몇 해 동안 아일랜드 인구가 굶주림과 이민으로 크게 줄었습니다. 천문대장으로서 관측을 소홀히 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의 관심은 망원경보다 기호 쪽에 있었습니다.
1833년 그는 복소수 a + bi를 실수 두 개의 순서쌍 (a, b)로 보고, 덧셈은 칸끼리, 곱셈은
그다음 10년 동안 그는 세 칸짜리 수를 찾았습니다. 공간의 회전을 곱셈으로 적는 수 a + bi + cj가 있을까? 아무리 해도 곱의 크기가 크기의 곱이 되는 규칙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복소수에서는 크기 5인 3 + 4i를 제곱하면 크기 25인 −7 + 24i가 되듯 크기가 곱해지는데, 세 칸짜리 수로는 이 성질을 지키는 곱셈을 만들 수 없었습니다. 뒤에 알려졌듯 그런 곱셈은 아예 없습니다. 3 = 1² + 1² + 1²과 5 = 2² + 1² + 0²은 세 제곱수(perfect square)의 합이지만 곱 15는 그렇게 쓸 수 없으니, 적어도 정수(integer) 계수의 곱셈 규칙으로는 크기의 제곱이 곱해지게 할 수 없습니다(계수를 실수로 넓혀도 불가능하다는 것은 1898년 후르비츠가 증명했습니다). 1843년 10월 16일, 아내와 로열 운하를 따라 걷던 그는 칸이 셋이 아니라 넷이어야 하고 곱셈의 순서를 바꾸면 부호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브룸 다리의 돌에 칼로
사원수는 곧바로 새 수들을 불렀습니다. 발견 이튿날 해밀턴은 친구 존 그레이브스에게 편지를 썼고, 그레이브스는 그해 12월 여덟 칸짜리 수를 찾았습니다. 케일리도 1845년 같은 수를 발표했고, 오늘날 팔원수라 부릅니다. 이번에는 곱셈의 결합법칙(associativity), 곧 (ab)c = a(bc)마저 깨졌습니다. 영국에서는 케임브리지의 대수학자 피콕과 런던의 논리학자 드모르간이 대수의 법칙을 수에서 떼어 기호의 규칙으로 보자고 말해 왔는데, 사원수는 그 말이 빈말이 아님을 보여 준 뚜렷한 사례였습니다. 몇 해 뒤 불이 논리를 대수로 적은 것도 같은 흐름 위에 있습니다. 교환법칙 하나를 버리자 수학자들은 어떤 법칙을 남기고 어떤 법칙을 버릴지 고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것이 수 대신 연산의 법칙 자체를 연구하는 추상대수(abstract algebra)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군).
해밀턴은 남은 생을 사원수에 바쳤습니다. 1853년 700쪽이 넘는 『사원수 강의』를 냈고, 이 대수의 선형 함수가 자기 특성방정식(characteristic equation)을 만족한다는 사실을 보였습니다. 오늘날 케일리–해밀턴 정리라 부르는 행렬(matrix)의 성질입니다. 고유값(eigenvalue)을 구하는 방정식
그의 이름은 그래프에도 남았습니다. 1852년 불의 친구이기도 한 드모르간이 4색 문제를 편지로 알려 왔을 때, 해밀턴은 당분간 '색의 사원수'를 시도할 생각이 없다고 짧게 답했습니다. 1857년에는 정십이면체의 꼭짓점(vertex) 20개를 모두 한 번씩 들러 돌아오는 놀이 '이코시안 게임'을 만들었고, 1859년 런던의 장난감 회사에 팔았습니다. 모든 변을 한 번씩 지나는 오일러 경로(Euler path)는 차수만 세면 판정되지만, 모든 꼭짓점을 한 번씩 도는 해밀턴 회로(Hamiltonian cycle)는 답을 받으면 맞는지 확인하기는 쉽지만 답을 빠르게 찾는 방법은 알려져 있지 않은 문제들, 곧 NP 완전(NP-complete) 문제의 대표입니다. 그는 1865년 던싱크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원수의 운명은 굴곡졌습니다. 해밀턴이 죽은 뒤 에든버러의 물리학자 테이트가 사원수를 물리학의 언어로 밀었지만, 1890년대 『네이처』 지면에서 벌어진 논쟁 끝에 깁스와 헤비사이드의 벡터 해석(vector analysis)이 이겼고, 사원수는 한동안 수학사의 골동품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러다 20세기 후반 우주선의 자세 제어와 컴퓨터 그래픽에서 되살아났습니다. 회전을 사원수 네 칸으로 적으면 행렬보다 계산이 가볍고, 두 자세 사이를 매끄럽게 잇기 쉬우며, 각도 셋으로 적을 때 두 회전축이 겹쳐 한 방향의 회전을 잃어버리는 '짐벌 잠김(gimbal lock)'도 없기 때문입니다. 게임 엔진과 스마트폰의 방향 센서가 지금도 사원수로 회전을 셉니다. 공간의 회전을 곱셈으로 적으려던 그의 꿈은 대칭과 불변량(invariant)의 이야기에, 복소수를 순서쌍으로 다시 쓴 일은 표현 바꾸기의 이야기에 속합니다. 그의 역학은 양자역학에서 에너지를 나타내는 연산자(operator)의 이름, 해밀토니언(Hamiltonian)으로 남았습니다.
이어지는 곳. 순서쌍으로서의 복소수는 복소수와 허수 단위, 곱셈이 회전이라는 생각은 복소수의 곱과 회전 행렬로 이어집니다. 사원수의 곱에서 갈라져 나온 내적(dot product)은 내적에서, 공간의 회전을 네 칸 수로 적는 방법은 사원수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정십이면체 위의 여행 놀이는 그래프의 문제이고, 변을 한 번씩 지나는 쉬운 짝 문제는 오일러 경로에 있습니다. 같은 시대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수의 법칙을 기호의 규칙으로 보고 새로 고른 사람으로, 논리를 대수로 적은 조지 불이 있습니다.
관계.
- 영향을 받음 피에르시몽 라플라스 — 열일곱 살에 라플라스의 『천체역학』을 읽다가 한 증명의 잘못을 찾아내어 아일랜드 왕립 천문관 브링클리의 눈에 들었습니다.
- 영향을 받음 조제프루이 라그랑주 — 라그랑주의 『해석 역학』을 '과학의 시'처럼 여겼고, 1834–35년 그 역학을 에너지 함수 하나로 다시 써서 해밀턴 역학(Hamiltonian mechanics)을 세웠습니다.
- 영향을 줌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 맥스웰은 『전기자기론』에서 사원수의 기호와 발상을 일부 빌려 전자기량을 적었습니다.
- 영향을 줌 윌리엄 톰슨 — 톰슨과 테이트의 『자연철학론』(1867)은 해밀턴의 변분 원리를 역학의 기둥으로 삼았지만, 톰슨의 반대로 사원수는 싣지 않았습니다.
연표.
- 1823년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하다
- 1827년 학부생으로 아일랜드 왕립 천문관에 임명되다
- 1832년 결정 속 빛의 원뿔 굴절(conical refraction)을 예측하다
- 1833년 복소수를 실수의 순서쌍으로 정의하다
- 1834년 역학의 일반적인 방법(해밀턴 역학)을 발표하다
- 1835년 더블린에서 열린 영국과학진흥협회 모임에서 기사 작위를 받다
- 1837년 아일랜드 왕립 아카데미 회장이 되다(1846년까지)
- 1843년 브룸 다리에서 사원수의 곱셈 규칙을 떠올리고, 11월 아카데미에서 발표하다
- 1852년 드모르간에게서 4색 문제를 전해 듣다
- 1853년 『사원수 강의』를 펴내다
- 1857년 정십이면체 위의 여행 놀이 '이코시안 게임'을 만들다
이 인물이 나오는 긴 글
이 인물을 언급하는 페이지
- 복소수 곱셈
… 곱셈 하나로 평면 회전을 나타냅니다. 3차원 회전에도 같은 일을 하는 수가 있을까요? 1843년 아일랜드의해밀턴은 허수 단위를 i, j, k 셋으로 늘린 사원수를 만들어 답했습니다. 사원수의 곱셈은 순서를 바꾸면 …
- 오일러 경로
… 보이는 '모든 꼭짓점 을 한 번씩 지나는 길'은 해밀턴 경로라고 부릅니다. 1857년 아일랜드의 수학자해밀턴이 정십이면체의 꼭짓점을 한 번씩 도는 퍼즐을 만든 데서 붙은 이름입니다. 해밀턴 경로에는 차수의 홀짝 …
- 수 체계: 자연수에서 실수까지
… i < 0이면 (−i)·(−i) > 0이어서, 어느 쪽이든 −1 > 0이 되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간해밀턴의 사원수(1843)는 곱셈의 교환법칙마저 내려놓습니다. 앞 단계들도 공짜는 아니었습니다. ℤ에는 가장 …
- 변분법
… 내세웠고, 같은 해 오일러는 이를 입자의 운동에 정확히 적용했습니다. 라그랑주의 『해석 역학』(1788)과해밀턴의 1834–35년 논문을 거쳐 오늘날의 형태가 되었습니다. 운동 에너지에서 위치 에너지를 뺀 값을 시간에 …
- 사원수
… 크기 1인 복소수 e^{i\theta} 를 곱하면 θ만큼 돕니다(오일러 공식). 아일랜드 더블린의윌리엄 로언 해밀턴은 1830년대에 복소수를 실수 두 개의 순서쌍으로 정리한 뒤, 같은 일을 3차원에서 해 줄 '세 쌍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