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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분에서 회전까지 · 1편 · 미분

순간의 속도⁠(instantaneous velocity)⁠

자동차 속도계는 '지금 이 순간'의 속도⁠(velocity)⁠를 보여 줍니다. 그런데 순간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습니다. 속도계는 도대체 무엇을 재는 걸까요?

이 글의 처럼 점선이 그어진 숫자는 좌우로 끌 수 있고(키보드 ←/→도 됩니다), 밑줄 친 말에 마우스를 올리면 그림에서 그 부분이 빛납니다. 그림 속 점들도 직접 끌 수 있습니다. 휴대폰에서는 마우스를 올리는 대신 누르면 됩니다.

속도는 움직인 거리 ÷ 걸린 시간입니다. 그런데 한 '순간' 동안 걸린 시간은 0초이고, 그동안 움직인 거리도 0m입니다. 0 ÷ 0은 아무 값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속도계의 바늘은 분명히 어떤 값을 가리킵니다. 이 작은 모순을 풀다 보면 미분⁠(differentiation)⁠이 저절로 만들어집니다.

이 모순은 오래되었습니다. 기원전 5세기 남이탈리아의 철학자 엘레아의 제논은 화살의 역설을 내놓았습니다. 날아가는 화살은 매 순간 제 길이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그 순간에는 멈춰 있고, 멈춰 있는 순간들을 아무리 모아도 움직임은 나오지 않는다는 논증입니다. 제논 자신의 글은 남아 있지 않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을 통해 전해집니다. 화살의 역설에는 6절에서 다시 답하겠습니다.

1 · 위치를 그림으로언제, 어디에

속도를 묻기 전에, 먼저 '움직임'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적어 두어야 합니다. 이 절은 차가 언제 어디에 있었는지를 그래프 하나로 적는 법을 봅니다. 뒤의 모든 절이 이 그래프 위에서 진행됩니다.

한 자동차가 곧은 도로를 5초 동안 달립니다. 출발한 지 tt초 뒤 출발점에서 떨어진 거리를 s(t)s(t)('에스 오브 티')라고 합시다. 괄호 안에 시각을 넣으면 그때의 위치가 나온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수 하나를 넣으면 수 하나가 정해져 나오는 규칙을 함수⁠(function)⁠라고 부릅니다.

이 차는 처음엔 천천히, 중간에 가장 빠르게, 마지막엔 서서히 멈춥니다. 궁금한 분을 위해 적어 두면 이 차의 규칙은 s(t)=3t2−0.4t3s(t) = 3t^2 - 0.4t^3(m)입니다. 예를 들어 2초 뒤에는 s(2)=3×4−0.4×8=12−3.2=8.8s(2) = 3 \times 4 - 0.4 \times 8 = 12 - 3.2 = 8.8이니 8.8 m 지점에 있고, 5초 뒤에는 s(5)=75−50=25s(5) = 75 - 50 = 25이니 25 m 지점에 섭니다. 식을 몰라도 글을 따라오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식은 그림 속 숫자를 손으로 확인하고 싶을 때만 쓰면 됩니다.

왼쪽 세로 띠가 도로입니다. 차가 올라간 높이가 바로 달린 거리입니다. 그래프의 가로축은 시간, 세로축은 거리입니다.

아래 숫자를 좌우로 끌어 시각을 바꾸거나 단추를 눌러 차를 달리게 해 보세요. 그때 도로 위의 차와 그래프 위의 점이 함께 움직이는 것을 보면 됩니다. 지금은 t=t = 초이고, 차는 출발점에서 떨어져 있습니다. ▶ 처음부터 달리기

도로 위의 차와 그래프 위의 점은 같은 정보입니다. 점은 '언제'(가로)와 '어디'(세로)를 한 자리에 적어 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가로 2, 세로 8.8인 점은 "2초에 8.8 m 지점"이라는 기록입니다. 그래서 그래프 전체는 차가 움직인 역사 전체입니다.

정리하면, 위치의 그래프에서 곡선이 가파를수록 차가 빠릅니다. 남은 일은 이 '가파름'을 숫자로 재는 것입니다.

2 · 평균 속도두 점을 이으면 기울기⁠(slope)⁠

한 순간의 속도는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두 시각 사이의 평균⁠(mean)⁠ 속도는 초등학교 나눗셈으로 구할 수 있습니다. 이 절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평균 속도⁠(average velocity)⁠는 그래프에서 무엇으로 보일까요? 답은 '두 점을 잇는 직선의 기울기'이고, 이것이 순간 속도로 가는 발판이 됩니다.

먼저 손으로 한 번 계산해 봅시다. 1절에서 본 대로 2초에 차는 8.8 m 지점에 있습니다. 1초 뒤인 3초에는 s(3)=27−10.8=16.2s(3) = 27 - 10.8 = 16.2이니 16.2 m 지점에 있습니다. 그러니 이 1초 동안 16.2−8.8=7.416.2 - 8.8 = 7.4 m를 움직였고, 평균 속도는 7.4÷1=7.47.4 \div 1 = 7.4 m/s입니다.

같은 계산을 기호로 적겠습니다. 처음 시각을 tt, 구간의 길이를 hh라고 하면, 나중 시각은 t+ht + h입니다. Δ(그리스 문자 '델타')는 '차이'를 뜻하는 기호로, Δs=s(t+h)−s(t)\Delta s = s(t+h) - s(t)('델타 에스')는 나중 위치에서 처음 위치를 뺀 값, 곧 그동안 움직인 거리입니다. 위의 예에서는 t=2t = 2, h=1h = 1, Δs=7.4\Delta s = 7.4입니다.

이제 숫자를 끌어 바꿔 보세요. 시각 초부터 h = 초 동안 차는 Δs = 움직였습니다. 평균 속도는 움직인 거리를 걸린 시간으로 나눈 값이므로, 이 구간의 평균 속도(단위 m/s)는 다음과 같습니다.

노란 점은 시각 t, 초록 점은 시각 t + h입니다. 둘 다 끌 수 있습니다.

그림에서 보면 이 나눗셈은 두 점을 잇는 직선(할선⁠, secant line⁠)의 기울기입니다(기울기). 할선은 곡선 위의 두 점을 지나며 곡선을 가르는 직선이라는 뜻의 이름입니다. 직선의 기울기는 (세로로 오른 양) ÷ (가로로 간 양)입니다. 할선은 가로로 h만큼 가는 동안 세로로 Δs만큼 오르니, 기울기가 바로 Δs ÷ h입니다. 1절에서 본 "가파를수록 빠르다"를 숫자로 적은 것입니다. 이처럼 한 양이 변한 만큼을 다른 양이 변한 만큼으로 나눈 값을 일반적으로 평균변화율⁠(average rate of change)⁠이라 부릅니다.

h가 음수여도 됩니다. 그때는 초록 점이 노란 점보다 왼쪽인 더 이른 시각에 있고, Δs도 음수가 되어 나눈 값은 여전히 그 구간의 평균 속도입니다.

정리하면, 두 시각 사이의 평균 속도는 위치 그래프에서 두 점을 잇는 할선의 기울기입니다. h를 줄일수록 할선은 시각 t 한 점 근처의 모양만 반영합니다.

평균 속도를 수학으로 다룬 첫 무대는 14세기 옥스퍼드의 머튼 칼리지였습니다. 훗날 캔터베리 대주교가 된 신학자 토머스 브래드워딘, 그리고 윌리엄 헤이츠베리 같은 그곳의 '계산가'들은 속도를 열이나 밝기처럼 세지고 약해지는 성질로 보았습니다. 이 발상의 뿌리는 뜻밖에도 신학에 있었습니다. 성질의 세기가 어떻게 늘고 주는가는 본래 신학자들이 묻던 문제였습니다. 12세기 파리의 신학자 페트루스 롬바르두스가 쓴 『명제집』은 중세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는 교재였는데, 이 책은 사랑(카리타스)이 한 사람 안에서 더 커질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역사가들은 이 논쟁에서 세기의 늘고 줆을 다루는 논리가 자라났다고 봅니다. 그 열매 가운데 하나가 '평균 속도 정리'(머튼 규칙이라고도 합니다)입니다. 고르게 빨라지는 물체가 간 거리는 중간 순간의 속도로 줄곧 간 거리와 같다는 규칙입니다. 이것이 넓이⁠(area)⁠ 이야기와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거리를 되찾기」에서 봅니다.

3 · h를 0으로한 값을 보는 대신, 모든 값을 한 번에

2절 끝에서 h를 줄이면 할선이 곡선에 거의 붙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절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h를 줄여 가면 평균 속도는 어떤 값에 다가갈까요? 그리고 그 값을 왜 '그 순간의 속도'라고 불러도 될까요?

걸림돌은 하나입니다. h = 0을 그냥 넣을 수는 없습니다. 걸린 시간이 0이면 움직인 거리도 0이라 0 ÷ 0이 되니까요. 그래서 0은 넣지 않고, 0에 가까운 h를 차례로 넣어 봅니다. 2절처럼 시각 2초에서 계산하면 평균 속도(m/s)는 이렇습니다. 반올림하지 않은 정확한 값입니다.

h−0.1−0.010.010.11평균 속도7.1367.193967.205967.2567.4\begin{array}{c|ccccc} h & -0.1 & -0.01 & 0.01 & 0.1 & 1 \\ \hline \text{평균 속도} & 7.136 & 7.19396 & 7.20596 & 7.256 & 7.4 \end{array}

h가 양수 쪽에서 0으로 줄어들 때도, 음수 쪽에서 0으로 다가갈 때도 값이 7.2로 모여듭니다. 계산하는 동안 h = 0은 한 번도 넣지 않았습니다.

왜 하필 7.2인지 식으로 보기시각 2초에서 h만큼 지난 위치를 펼쳐 씁니다. (2+h)2=4+4h+h2(2+h)^2 = 4 + 4h + h^2, (2+h)3=8+12h+6h2+h3(2+h)^3 = 8 + 12h + 6h^2 + h^3이므로 s(2+h)=3(4+4h+h2)−0.4(8+12h+6h2+h3)=8.8+7.2h+0.6h2−0.4h3s(2+h) = 3(4 + 4h + h^2) - 0.4(8 + 12h + 6h^2 + h^3) = 8.8 + 7.2h + 0.6h^2 - 0.4h^3입니다. 여기서 s(2)=8.8s(2) = 8.8을 빼면 Δs=7.2h+0.6h2−0.4h3\Delta s = 7.2h + 0.6h^2 - 0.4h^3입니다. h가 0이 아니므로 h로 나눌 수 있고, 평균 속도는 7.2+0.6h−0.4h27.2 + 0.6h - 0.4h^2입니다. 예로 h = 1을 넣으면 7.2 + 0.6 − 0.4 = 7.4로, 2절의 계산과 같습니다. h를 0에 가깝게 하면 0.6h0.6h와 0.4h20.4h^2은 얼마든지 작아지니, 남는 것은 7.2입니다.

이제 같은 일을 그림으로, 모든 시각에서 해 봅시다. h를 하나씩 바꿔 보는 대신 모든 h를 한꺼번에 보겠습니다. 왼쪽은 여러 h의 할선을 겹쳐 그린 것이고, 오른쪽은 각 h의 평균 속도를 이어 그린 새 그래프입니다. 오른쪽 그래프의 가로축은 h, 세로축은 그 h로 계산한 평균 속도입니다. 지금 고른 h 값()은 오른쪽의 초록 점입니다. 초록 점을 0 쪽으로 끌면서, 왼쪽의 굵은 분홍 할선이 청록 점선에 겹쳐 가는 것을 보세요.

시각 t 근처의 할선들
h에 따른 평균 속도
음수 h는 시각 t 이전 구간의 평균 속도입니다.

오른쪽 곡선은 h = 0에서 구멍이 나 있습니다. 거기서는 계산할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구멍의 양쪽에서 곡선은 한 높이, 를 향해 모입니다. h가 양수든 음수든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이 값이 시각 초의 순간 속도입니다. 시각이 2초일 때 이 값은 위에서 손으로 구한 7.2입니다.

이렇게 h가 0에 다가갈 때 값들이 모여드는 목표를 수학에서는 극한⁠(limit)⁠이라고 부릅니다. 흔히 극한을 '다가가기만 하고 끝내 닿지 못하는 값'으로 생각하지만, 닿느냐 마느냐는 상관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h를 0이 아닌 채로 0에 충분히 가깝게 잡으면 값이 그 목표에 원하는 만큼 가까워진다는 점입니다. 위의 표에서 h를 ±0.01로 잡으면 7.2와의 차이가 0.01보다 작아진 것처럼요.

왼쪽 그림에서 점 근처 확대를 눌러 보세요. 이 차의 곡선처럼 매끄러운 곡선은 한 점 근처를 충분히 확대하면 직선처럼 보입니다. 모든 곡선이 그런 것은 아니어서, 5절의 ∣x∣|x|는 꼭짓점⁠(vertex)⁠을 아무리 확대해도 꺾인 채로 남습니다. 확대해서 나타나는 그 직선이 접선⁠(tangent line)⁠이고, 기울기가 방금 구한 순간 속도입니다. 접선은 곡선의 한 점을 스치듯 지나며, 그 점 근처에서 곡선과 가장 잘 맞는 직선입니다. 확대하면 직선이 되는 이 성질을 국소 선형성⁠(local linearity)⁠이라고 합니다. 미분이 쓸모 있는 이유의 대부분이 여기서 나옵니다. 복잡한 곡선도 한 점 근처에서는 다루기 쉬운 직선으로 바꿔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한 일을 식 하나로 적으면 이렇습니다.

v(t)=lim⁡h→0s(t+h)−s(t)hv(t) = \lim_{h \to 0} \frac{s(t + h) - s(t)}{h}

분수는 2절의 평균 속도 그대로이고, 앞에 붙은 lim⁡h→0\lim_{h \to 0}('리밋, h가 0으로 갈 때')는 "h를 0이 아닌 채로 0에 한없이 가깝게 할 때 이 값이 향하는 곳"이라고 읽습니다. 왼쪽의 v(t)v(t)는 시각 t의 순간 속도입니다(v는 속도를 뜻하는 영어 velocity의 머리글자입니다).

이제 처음 질문에 답할 수 있습니다. 속도계는 0 ÷ 0을 계산하지 않습니다. 점점 짧아지는 구간의 평균 속도가 향하는 값을 보여 줄 뿐입니다. 이 값을 시각 t에서의 미분계수⁠(derivative)⁠라고 부릅니다. 향하는 값이 하나로 정해지지 않는 곳도 있는데, 5절의 ∣x∣|x|가 그 예입니다. 정리하면, 순간 속도는 할선 기울기의 극한이고, 그림으로는 접선의 기울기입니다.

1335년 무렵 헤이츠베리는 한 순간의 빠르기를, 그 빠르기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일정한 시간 동안 갈 거리로 재자고 제안했습니다. 곡선 대신 접선을 따라가 본다는 말과 같습니다. 무엇을 재야 하는지는 이미 알았던 셈입니다. 그 빠르기를 위치의 기록에서 계산해 내는 방법이 없었을 뿐입니다.

'향하는 값'이라는 생각을 처음 말로 적은 사람 가운데 하나는 뉴턴 자신이었습니다. 1687년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프린키피아』) 1권 첫머리에서 그는 무한소⁠(infinitesimal)⁠를 쓰지 않으려고 '처음 비와 마지막 비'라는 방법을 세웠습니다. 무한소는 0은 아니지만 어떤 양수보다도 작다고 여긴 양으로, 당시 미적분⁠(calculus)⁠ 계산의 재료였습니다(6절에서 다시 나옵니다). 비는 두 양을 나눈 값, 이 글로 치면 Δs ÷ h입니다. 이 방법을 설명하는 주석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사라지는 양들의 '마지막 비'란 마지막 순간의 양들끼리의 비가 아니라, 한없이 줄어드는 양들의 비가 늘 다가가는 한계다. 그 비는 한계에 어떤 주어진 차이보다도 가까워지지만, 양이 한없이 줄어들기 전에는 한계를 넘지도 닿지도 않는다. 이 절의 오른쪽 그림을 말로 적은 셈입니다. 이 책은 왕립학회에 돈이 떨어지는 바람에 천문학자 에드먼드 핼리가 인쇄비를 대서 런던에서 나왔습니다. 6절에서 버클리가 겨냥한 '믿음 없는 수학자'로 흔히 꼽히는 바로 그 핼리입니다. 다만 "어떤 주어진 차이보다도 가까워진다"를 계산으로 확인할 수 있는 조건으로 적는 일은 130년 넘게 미뤄졌습니다.

4 · 모든 순간속도의 그래프

3절에서는 한 시각의 속도를 구했습니다. 이 절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모든 시각의 속도를 한꺼번에 모으면 무엇이 되고, 그것이 원래의 위치 그래프와 어떻게 맞물릴까요?

3절의 방법은 어느 시각에서나 쓸 수 있습니다. 같은 계산을 여러 시각에서 하면, 이 차의 순간 속도는 1초에 4.8 m/s, 2초에 7.2 m/s, 2.5초에 7.5 m/s, 4초에 4.8 m/s, 5초에 0 m/s입니다. 시각마다 속도가 하나씩 정해지니, 이것도 시각을 넣으면 속도가 나오는 함수입니다. 그 값을 모두 모아 새 그래프로 그려 봅시다.

그림에서 할 일은 이것입니다. 위 그래프에서 점을 옮기면서, 위의 접선이 가파를 때 아래의 점이 높이 있는지 보세요. 그림 아래의 '모든 t에 대해 그리기' 단추를 누르면 시각이 0초에서 5초까지 저절로 흐르며 아래 점이 지나간 자취가 남는데, 그 자취 전체가 속도의 그래프 v(t)v(t)입니다.

위: 위치 s(t)와 접선. 아래: 속도 v(t). 두 그래프의 시간축은 위아래로 맞춰져 있습니다.

위 그림의 노란 점을 끌어 시각을 초로 옮기면, 그 순간의 접선 기울기 가 아래 그림에 점으로 찍히고 자취가 남습니다. 모든 t에 대해 그리기

이렇게 얻은 그래프 v(t)v(t)를 s(t)s(t)의 도함수(도함수⁠, derivative function⁠)라 부르고 s′(t)s'(t)로 씁니다('에스 프라임 티'라고 읽습니다). 두 낱말을 구분해 둡시다. 3절의 미분계수는 한 시각에서의 수 하나(예: 2초에서 7.2)이고, 도함수는 그 수들을 모든 시각에 대해 모은 함수입니다. 도함수를 구하는 일을 '미분한다'고 합니다. 궁금한 분을 위해 적으면 이 차의 도함수는 s′(t)=6t−1.2t2s'(t) = 6t - 1.2t^2이고, 2를 넣으면 12−4.8=7.212 - 4.8 = 7.2입니다.

두 그래프를 번갈아 보며 답해 보세요.

정리하면, 도함수의 높이는 원래 그래프의 기울기입니다. 원래 그래프가 가파르면 도함수가 크고, 평평하면 도함수가 0이고, 내려가면 도함수가 음수입니다.

5 · 모든 함수같은 방법, 다른 곡선

지금까지는 자동차 한 대의 위치만 미분했습니다. 이 절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같은 방법이 아무 곡선에나 통할까요? 대부분은 통하지만, 통하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 둘 다 직접 확인해 봅니다.

이제부터는 시각 t 대신 가로축의 수를 xx로, 위치 s 대신 그래프의 높이를 f(x)f(x)('에프 엑스')로 씁니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xx를 넣으면 높이 하나가 나오는 함수라는 점은 같습니다. 미분계수를 구할 한 점은 x0x_0('엑스 제로')라고 부르겠습니다. 할 일도 같습니다. x0x_0와 x0+hx_0 + h를 잇는 할선의 기울기 f(x0+h)−f(x0)h\tfrac{f(x_0 + h) - f(x_0)}{h}를 구하고, h를 0으로 보낼 때 그 값이 향하는 곳을 봅니다.

함수를 바꿔 보세요: f(x)=f(x) = , 점의 위치는 x0=x_0 = 입니다. 세 그림 가운데 왼쪽은 고른 함수와 x0x_0에서의 접선입니다. 가운데는 3절의 오른쪽 그림과 같은 것으로, 가로축이 h, 세로축이 할선의 기울기입니다. 오른쪽은 도함수 f′(x)f'(x)('에프 프라임 엑스')의 그래프이고, 노란 점선이 지금 고른 x0x_0의 자리입니다. 왼쪽 그림의 노란 점을 끌면서, 왼쪽 접선의 기울기가 오른쪽 그래프의 높이로 옮겨 적히는 것을 보세요.

f(x)와 접선
x₀에서 h에 따른 평균 기울기
도함수 f′(x)

위 식의 왼쪽은 고른 함수, 오른쪽은 컴퓨터가 계산한 그 도함수입니다. 함수마다 무엇을 보면 좋은지 적어 둡니다.

정리하면, 할선 기울기의 극한이라는 정의는 어느 함수에나 똑같이 적용됩니다. 극한이 하나로 정해지는 점에서는 미분할 수 있고 접선이 있으며, 양쪽이 다른 값을 향하는 꺾인 점에서는 미분할 수 없습니다.

6 · 2,000년짜리 질문화살에서 극한까지

이 절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3절에서 쓴 '향하는 값'은 정확히 무슨 뜻이며, 0 ÷ 0을 피하는 그 방법이 정말 믿을 만할까요? 답에 이르기까지 2,000년이 넘게 걸렸고, 이 절은 그 길을 따라갑니다. 계산은 3절에서 이미 다 했으니, 여기서는 사람들이 무엇에서 막혔는지를 보면 됩니다.

우리가 방금 한 일, 다시 말해 "구간을 줄여 가며 평균이 향하는 값을 본다"는 생각은 한 사람이 한 번에 떠올린 것이 아닙니다. 여러 세기에 걸쳐 여러 도시와 대학과 궁정을 거치며 조금씩 다듬어졌습니다. 그동안 수학자들은 꽤 오래 논리적으로 불안한 땅 위에 서 있었습니다.

위: 분야별 연표(점에 마우스를 올리면 설명과 장소가 나타나고, 흐린 점은 같은 시대의 세계사입니다). 아래: 그 일이 일어난 곳. 남이탈리아와 아테네에서 옥스퍼드·파리의 중세 대학을 거쳐 17세기 북서유럽으로 무대가 옮겨 가는 것을 보세요.

중세의 규칙을 실제 운동에 대어 본 사람은 갈릴레이였습니다. 1604년 베네치아 공화국의 파도바 대학에 있던 그는 떨어지는 물체의 거리가 시간의 제곱에 비례한다고 편지에 적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두 과학』(1638)에서 등가속 운동⁠(uniformly accelerated motion)⁠, 곧 같은 시간마다 속도가 같은 양만큼 늘어나는 운동을 다루었습니다. 그는 시간을 한 직선 위의 길이로, 각 순간의 속도를 그 직선에 수직인 선분으로 그렸습니다. 그러면 선분들의 끝이 비스듬한 직선을 이루고, 간 거리는 그렇게 생긴 삼각형의 넓이와 같다고 보았습니다. 그 삼각형은 중간 순간의 속도를 높이로 하는 직사각형과 넓이가 같습니다. 2절의 평균 속도 정리(머튼 규칙)를 그림으로 증명한 셈입니다. 비슷한 그림 증명은 14세기 파리의 니콜 오렘도 남겼습니다. 갈릴레이가 옥스퍼드와 파리의 전통을 직접 읽었는지는 지금도 논쟁거리입니다.

책이 나온 곳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갈릴레이는 1633년 로마 종교재판에서 지구가 태양 둘레를 돈다는 지동설⁠(heliocentrism)⁠을 옹호한 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그 뒤로 피렌체 근처 아르체트리에 가택 연금되어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새 책을 낼 길은 막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고는 알프스를 넘어 네덜란드 공화국의 레이던에서 인쇄되었습니다.

같은 무렵 프랑스 툴루즈의 법관 피에르 드 페르마는 곡선의 최댓값과 접선을 구하는 방법을 원고와 편지로 알렸습니다. 그의 방법을 요즘 말로 옮기면 이 글의 3절과 거의 같습니다. 최댓값이 되는 곳에서는 조금 옮겨도 값이 거의 변하지 않으니, 그 차이를 옮긴 양으로 나눈 뒤 옮긴 양을 0으로 보내면 0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울기가 0인 곳에서 최댓값·최솟값을 찾는 최적화⁠(optimization)⁠의 원리가 미분보다 먼저 있었던 셈입니다.

페르마는 이 방법을 책으로 내지 않았습니다. 그의 원고는 파리의 수도사 마랭 메르센에게 보내졌고, 메르센이 유럽 곳곳의 학자들과 주고받던 편지망을 타고 퍼졌습니다. 학술지가 생기기 전, 새 결과는 이렇게 편지로 돌았습니다(편지 공화국). 데카르트는 1637년 『기하학』에서 자기 나름의 접선 구하는 법을 막 내놓은 참이었습니다. 1638년 메르센을 거쳐 페르마의 방법을 받아 본 그는 그 방법이 틀렸다고 공격했고, 두 사람의 다툼은 몇 달 동안 편지로 이어졌습니다. 아래에서 볼 우선권 다툼처럼, 새 계산법은 처음부터 편지와 논쟁 속에서 자랐습니다.

순간의 빠르기를 따로 생각해야 했던 곳은 유럽만이 아니었습니다. 인도의 천문학자들은 제사의 날짜를 정하고 일식과 월식을 예보하려고 행성의 위치를 계산했는데, 행성은 하늘에서 빨라졌다 느려졌다 합니다. 1150년 인도 중부 우자인 천문대의 책임자였던 바스카라 2세는 천문서 『시단타 시로마니』에서 행성의 '순간 운동'(탓칼리카 가티)을 따로 다뤘습니다. 그는 두 각이 아주 가까우면 사인값의 차이가 각의 차이에 코사인을 곱한 값과 거의 같다는 규칙도 적었습니다. 5절에서 본 "사인의 도함수는 코사인"을 어림의 규칙으로 쓴 셈입니다. 행성 운동에서 어떤 양이 가장 커지는 곳에서는 그 순간의 변화가 0이 된다는 관찰도 그의 것으로 전해집니다. 위에서 본 페르마의 원리와 같은 생각입니다. 다만 바스카라는 이것을 어느 곡선에나 쓰는 일반적인 방법인 도함수라는 개념으로 세우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책에 주석을 단 남인도 케랄라의 천문학자들이 같은 천문 계산에서 무한급수⁠(infinite series)⁠로 나아간 이야기는 3편 「한 점에서 전부를」 6절에 있습니다.

두 사람은 각자 따로 같은 도구에 이르렀지만, 누가 먼저인가를 두고 유럽의 수학계가 둘로 갈라졌습니다. 일이 꼬인 데에는 뉴턴의 습관도 한몫했습니다. 그는 발견을 오래 출판하지 않고 원고와 편지로만 돌렸습니다. 1676년 왕립학회 서기 올덴부르크를 거쳐 라이프니츠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핵심은 철자를 뒤섞은 암호문⁠(ciphertext)⁠으로 감췄습니다. 한편 라이프니츠가 런던에서 뉴턴의 미출간 원고 사본 일부를 베껴 적은 일은 뒤에 표절 의혹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판정도 공정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1712년 왕립학회는 뉴턴의 손을 들어 주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그런데 당시 학회장이던 뉴턴이 그 보고서의 초안을 직접 썼다는 사실이 나중에 알려졌습니다. 오늘날에는 두 사람이 각자 발견했다고 봅니다. 보고서를 낸 위원회에는 뒤에 테일러 급수(함수를 한 점에서의 미분값들로 펼쳐 쓰는 방법)에 이름을 남긴 브룩 테일러도 있었습니다(「한 점에서 전부를」 6절).

우선권과 별개로, 새 계산법을 실제로 퍼뜨린 것은 라이프니츠 쪽이었습니다. 1684년 라이프치히의 학술지 『악타 에루디토룸』에 실린 그의 첫 논문 「극대와 극소를 위한 새로운 방법」은 몇 쪽 되지 않는 분량에 규칙만 늘어놓고 증명은 거의 없는, 수수께끼 같은 글이었습니다. 이 글을 풀어낸 것이 스위스 바젤의 야코프 베르누이와 요한 베르누이 형제였습니다. 동생 요한은 1691–92년 파리에서 귀족 수학자 로피탈 후작에게 새 계산을 가르쳤고, 로피탈은 1694년부터 해마다 돈을 주고 요한의 새 결과를 편지로 받기로 약속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1696년 첫 미적분 교과서 『곡선의 이해를 위한 무한소 해석』이 나왔습니다. 0 ÷ 0 꼴이 되는 극한을 분자와 분모의 미분계수로 계산하는 규칙, 오늘날 '로피탈의 정리⁠(L'Hôpital's rule)⁠'라 부르는 규칙도 이 책에 실렸는데, 실은 요한의 편지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글이 부딪힌 것과 같은 0 ÷ 0 꼴의 극한을, 이번에는 미분을 도구로 써서 계산하는 규칙이 첫 교과서에 벌써 실린 셈입니다. 다만 이 규칙은 미분계수를 이미 구할 수 있다고 놓고 쓰는 것이어서, 미분계수 자체를 정의하는 3절의 0 ÷ 0에 쓰면 제 꼬리를 무는 논증이 됩니다.

17세기 미적분의 연결망. 원고와 편지는 케임브리지–런던–파리를 오갔고, 라이프니츠의 기호는 라이프치히의 학술지와 바젤의 베르누이 가문을 거쳐 대륙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지명에 마우스를 올리면 그곳에서 일어난 일이 나옵니다.

논쟁은 곧 수학 밖의 일이 되었습니다. 1714년 라이프니츠의 주군인 하노버 선제후가 영국 왕 조지 1세로 즉위했지만, 라이프니츠는 런던으로 불려 가지 못했습니다. 이듬해부터 그는 왕세자비 캐럴라인을 사이에 두고 뉴턴 편의 신학자 새뮤얼 클라크와 편지로 다투었습니다. 주제는 공간과 시간, 그리고 신이 세계에 얼마나 손을 대는가였습니다. 우선권 다툼이 철학과 신학, 나라의 자존심 싸움으로 번진 것입니다.

그 여파는 기호에 남았습니다. 이후 영국 수학자들은 뉴턴의 점 기호와 기하학식 서술을 지켰습니다. 점 기호는 시간에 대한 변화율을 x˙\dot{x}처럼 문자 위에 점을 찍어 적는 방식입니다. 한편 대륙에서는 베르누이 형제(야코프와 요한)와 오일러가 라이프니츠의 기호로 해석학(미적분을 바탕으로 한 수학 분야)을 빠르게 넓혔습니다. 영국에도 테일러 급수⁠(Taylor series)⁠에 이름을 남긴 브룩 테일러나 스코틀랜드의 콜린 매클로린 같은 뛰어난 수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역사가는 이 고립을 18세기 영국 해석학⁠(mathematical analysis)⁠이 대륙에 뒤처진 한 원인으로 꼽습니다. 결국 1812년 케임브리지의 학생들이 해석학회를 만들어 대륙의 d 기호를 들여오자고 나섰습니다. 앞장선 세 사람은 뒤에 계산 기계를 설계한 찰스 배비지, 천문학자가 된 존 허셜, 대수학자가 된 조지 피콕입니다. 배비지의 기계가 왜 필요했는지는 3편 「한 점에서 전부를」 6절에서 이어집니다.

그것들을 사라진 양들의 유령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겠는가?— 조지 버클리, 『분석가』(1734). 0이 아니라며 나누었다가 0이라며 버리는 무한소를 두고

가장 날카로운 비판은 수학자가 아닌 성직자에게서 나왔습니다. 철학자 조지 버클리는 이 책을 낸 해에 아일랜드 국교회 클로인의 주교가 된 성직자였고, 『분석가』의 부제는 '믿음 없는 수학자에게 보내는 글'이었습니다. 그 수학자는 흔히 3절에서 본, 『프린키피아』의 인쇄비를 댄 에드먼드 핼리로 여겨집니다. 버클리의 과녁은 신학적이었습니다. 이렇게 흐릿한 양을 믿고 계산하는 사람들이 신앙의 신비는 증명되지 않았다며 물리칠 자격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무한소는 3절 곁글에서 본 '0은 아니지만 어떤 양수보다도 작은 양'입니다. 버클리의 비판은 정당했습니다. 계산은 맞는데 그 이유를 아무도 설명하지 못했으니까요. 5절의 x2x^2 계산에 대어 보면, h로 나눌 때는 h가 0이 아니라고 하고, 남은 h를 버릴 때는 0이라고 한 셈입니다. 영국에서는 매클로린이 두꺼운 『유율론』(1742)으로 답했습니다. 유율⁠(fluxion)⁠은 뉴턴이 시간에 따라 변하는 양의 변화율을 부른 이름입니다. 이 책에는 오늘날 매클로린 급수라 부르는 식도 실려 있습니다(「한 점에서 전부를」).

대륙에서도 기초⁠(basics)⁠를 둘러싼 불안은 남아 있었습니다. 계몽기 파리의 달랑베르는 디드로와 함께 펴낸 『백과전서』의 '미분' 항목(1754)에서 미분을 무한소가 아니라 극한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썼지만, 그 극한이 무엇인지 계산할 수 있는 정의는 내놓지 못했습니다. 1797년 라그랑주는 아예 무한소도 극한도 버리고 함수를 거듭제곱 급수⁠(power series)⁠로 펼쳤을 때의 계수로 미분을 정의하려 했습니다. 거듭제곱 급수는 a0+a1h+a2h2+⋯a_0 + a_1 h + a_2 h^2 + \cdots처럼 h의 거듭제곱에 수를 곱해 끝없이 더한 식입니다. 3절에서 시각 2초에 대해 구한 Δs=7.2h+0.6h2−0.4h3\Delta s = 7.2h + 0.6h^2 - 0.4h^3이 그 예로, 라그랑주는 h의 계수 7.2를 미분계수로 삼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시도가 왜 실패했는지는 3편 「한 점에서 전부를」 5–6절에 있습니다. 1817년 프라하의 신부이자 수학자 베른하르트 볼차노는 연속을 오늘날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정의했지만, 수학의 중심지였던 파리나 베를린에서 멀리 떨어진 프라하에서 낸 그의 소책자는 오랫동안 읽히지 않았습니다.

끝내 답을 준 것은 극한이었습니다. 코시는 혁명기 프랑스가 기술 관료를 기르려고 세운 에콜 폴리테크니크에서 가르쳤고, 그때 쓴 『해석학 강의』(1821)에서 극한을 중심에 놓았습니다. 2년 뒤의 강의록(1823)에서는 넓이도 막대 합의 극한으로 정의했습니다(2편 「거리를 되찾기」 6절). 같은 해에는 모든 미분값을 알아도 함수가 정해지지 않는 반례를 보였습니다(3편 5절). 그 뒤 바이어슈트라스는 베를린에서 이 극한을 ε–δ(엡실론–델타)의 언어로 다듬었습니다. 엄밀함은 학생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 고민하던 강의실에서 자랐습니다. 바이어슈트라스 자신도 1841년부터 15년 동안 프로이센 시골의 김나지움(중등학교) 교사로 일하며 혼자 연구했고, 1854년 학술지에 실은 논문으로 이름을 얻어 1856년에야 베를린으로 갔습니다. 그는 결과를 책으로 잘 내지 않아서, 그의 ε–δ는 학생들이 받아 적어 돌린 강의 노트를 통해 유럽에 퍼졌습니다.

ε–δ는 '한없이 다가간다'를 무한소 없이 유한한 문장으로 바꾼 것입니다. "h → 0일 때 평균 기울기의 극한이 v다"라는 말은 이렇게 풀립니다. 누가 아무리 작은 허용 오차(양수 ε)를 정해 와도, 다음 조건을 만족하는 양수 δ를 찾을 수 있다. h가 0이 아니면서 0과의 거리가 δ보다 작기만 하면, 평균 기울기와 v의 차이가 언제나 ε보다 작다. 예를 들어 5절의 x2x^2에서 평균 기울기는 2x+h2x + h이므로 v = 2x와의 차이는 정확히 |h|입니다. 오차를 0.001보다 작게 하고 싶으면 δ = 0.001로 잡으면 됩니다.

이 문장은 두 사람의 게임으로 읽으면 따라가기 쉽습니다. 상대가 먼저 허용 오차 ε('엡실론')를 내놓고, 나는 그에 맞춰 δ('델타')로 답합니다. h를 0이 아니면서 δ보다 0에 가깝게 잡은 모든 경우에 평균 기울기가 v에서 ε 안쪽에 들면 내가 이깁니다. 상대가 어떤 양수 ε를 내놓아도 내가 늘 이길 수 있을 때, 그리고 그때에만 "극한이 v다"라고 말합니다. 이 문장 어디에도 무한소는 없고, 0 ÷ 0도 없습니다.

그러니 버클리에게 주는 답은 이 글의 3절 그림에 들어 있습니다. h = 0을 대입하지 않는다. h가 0이 아닌 모든 값에서 평균 기울기를 계산하고, 그 값들이 어느 한 수로 모여드는지만 봅니다. 0 ÷ 0은 한 번도 계산하지 않습니다.

글머리에서 본 제논의 화살에도 같은 답을 할 수 있습니다. 한 순간만 보면 화살은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도는 한 순간의 사진이 아니라 그 순간 주변의 짧은 구간들이 향하는 값입니다. 이 답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제논에게 한 답과 닮았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이 나눌 수 없는 '지금'들을 이어 붙인 것이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그에게 무한히 나누는 일은 언제까지나 계속할 수 있는 가능성일 뿐, 다 나누어 놓은 완결된 무한은 없었습니다.

끝없이 이어 갈 수 있다는 뜻의 무한을 '가능적 무한⁠(potential infinity)⁠', 이미 다 갖추어진 하나의 대상으로 보는 무한을 '실무한⁠(actual infinity)⁠'이라 부릅니다(무한을 다루는 법). 이 구분은 2,000년 넘게 수학자들이 무한히 작은 것을 대하는 태도를 정했습니다. ε–δ 정의에는 이미 다 갖추어진 무한히 작은 양이 하나도 나오지 않습니다. 어떤 ε가 와도 δ를 찾을 수 있다는, 끝없이 이어 갈 수 있는 약속만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 끝없이 줄여 가기만 할 뿐, 완결된 무한소는 필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무한 자체의 이야기는 「무한에도 크기가 있다」에서 이어집니다.

이 정의는 뜻밖의 결과도 낳았습니다. 1872년 바이어슈트라스는 어디서나 이어져 있지만 어느 점에서도 미분할 수 없는 함수를 발표했습니다. 이 곡선은 어느 점을 아무리 확대해도 직선으로 펴지지 않고, 계속 새로운 굴곡이 나타납니다. 5절의 ∣x∣|x|는 꼭짓점 한 곳에서만 미분할 수 없었지만, 이 곡선은 모든 점에서 그렇습니다.

이처럼 확대해도 비슷하게 복잡한 모양이 계속 나타나는 도형을 프랙털⁠(fractal)⁠이라 부릅니다. 바이어슈트라스의 곡선은 칸토어 집합⁠(Cantor set)⁠과 함께 훗날 프랙털이라 불리게 되는 도형의 초기 예가 되었습니다. 칸토어 집합은 선분에서 가운데 3분의 1을 지우고, 남은 두 토막에서 다시 가운데 3분의 1을 지우기를 끝없이 되풀이해 남은 점들입니다. 칸토어 집합 이야기는 「무한에도 크기가 있다」에서 이어집니다.

이 곡선이 불러온 반응은 엄밀함이 공짜가 아니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때까지 많은 수학자는 끊기지 않은 곡선이라면 몇몇 뾰족한 점을 빼고는 어디서나 접선이 있다고 믿었고, 그것을 '증명'했다는 교과서도 있었습니다. 정의를 정확히 하자 그 믿음이 틀렸음이 드러났습니다. 파리의 샤를 에르미트는 1893년 네덜란드 출신의 수학자 스틸체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도함수가 없는 함수라는 이 개탄스러운 역병 앞에서 두려움과 전율을 느끼며 고개를 돌린다고 썼습니다. 그러나 20세기에 이런 곡선은 괴물이 아니라 자연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해안선처럼 확대할수록 새 굴곡이 나오는 모양을 재는 법은 「재는 순간 바뀐다」의 프랙털 차원⁠(fractal dimension)⁠에서 이어집니다.

극한이 이겼다고 해서 무한소가 영영 쫓겨난 것은 아닙니다. 철학적으로 보면 버클리의 비판에도, 무한소를 쓰던 쪽에도 일리가 있었습니다. 라이프니츠 자신도 무한소를 세상에 실제로 있는 양이라기보다, 논증을 줄이고 통찰을 돕는 '쓸모 있는 허구'로 보았습니다. 버클리의 물음은 그 허구가 어떻게 참인 결과를 내느냐였던 셈입니다. 1961년 수리논리학자 에이브러햄 로빈슨은 무한히 작은 수와 무한히 큰 수를 보통의 수와 같은 계산 규칙으로 다루면서도 모순이 생기지 않는 체계를 세웠습니다. 이것을 비표준 해석학이라 부릅니다. 그는 이로써 라이프니츠의 생각을 온전히 되살릴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반면 이 방법을 미덥지 않게 여긴 이름난 수학자들도 있었고, 오늘날 대부분의 교과서는 여전히 ε–δ로 가르칩니다. 이 체계가 코시의 옛 증명을 다시 읽는 데 쓰인 이야기는 「틀린 증명이 만든 수학」에 있습니다.

7 · 이어지는 길미분이 여는 문

미분으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요? 미분은 "변화"가 나오는 곳이면 어디든 들어갑니다. 아래는 이 연재와 다른 글에서 이어지는 길들입니다.

정리. 미분은 한 문장으로 이렇습니다. 짧은 구간의 평균변화율(할선의 기울기)이, 구간을 줄여 갈 때 향하는 값.

f′(x)=lim⁡h→0f(x+h)−f(x)hf'(x) = \lim_{h \to 0} \frac{f(x + h) - f(x)}{h}

교과서의 공식들(예: (xn)′=nxn−1(x^n)' = n x^{n-1}, 'x의 n제곱을 미분하면 n 곱하기 x의 n−1제곱'. n = 2이면 5절의 2x2x입니다)은 이 그림들을 요약한 것입니다. 공식을 잊어도 그림은 다시 그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