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개념 지도
인물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독일의 철학자·수학자·외교관. 뉴턴과 따로 미적분⁠(calculus)⁠을 만들고 dx와 ∫ 기호를 지었으며, 이진법⁠(binary)⁠과 계산하는 기계, 추론을 계산으로 바꾸는 꿈을 남겼다.

dydx=dydu dudx,d(xy)=x dy+y dx\frac{dy}{dx} = \frac{dy}{du}\,\frac{du}{dx}, \qquad d(xy) = x\,dy + y\,dx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는 30년 전쟁이 끝나기 두 해 전인 1646년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났습니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독일은 크고 작은 영방으로 쪼개져 있었고, 학문의 중심은 파리와 런던이었습니다. 도덕철학 교수였던 아버지는 그가 여섯 살 때 죽었지만 서재를 남겼고, 소년은 그 책들로 라틴어와 철학을 혼자 익혔습니다. 열네 살에 대학에 들어가 스무 살에 법학 박사가 되었지만 교수 자리는 사양하고, 평생 궁정의 외교관, 법률가, 사서, 역사가로 일했습니다. 수학은 그가 한 일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굵은 막대가 이 사람의 생애이고, 흰검은 점은 페이지 끝 연표에 적은 일들입니다. 가는 막대는 같은 시대를 산 이 위키의 인물들입니다. 나이를 끌어 보세요.

나이 세 ·

스무 살 무렵의 『결합술』(1666)에서 그는 순열⁠(permutation)⁠과 조합을 다루며 큰 꿈을 폈습니다. 모든 개념을 기본 개념의 조합으로 적는 '보편 문자⁠(characteristica universalis)⁠'와, 그 기호를 규칙대로 다루어 결론을 끌어내는 '추론 계산⁠(calculus ratiocinator)⁠'이 있다면 논쟁은 계산 실수를 찾는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투는 사람들이 "계산해 봅시다"라고 말하면 된다는 그의 말은 지금도 자주 인용됩니다. 그는 이 꿈을 기계로도 옮기려 했습니다. 파스칼의 계산기가 덧셈과 뺄셈에 머물렀다면, 1673년 런던 왕립학회에 들고 간 그의 나무 모형은 계단처럼 길이가 다른 톱니를 붙인 원통으로 곱셈과 나눗셈까지 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다만 그 모형은 아직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고, 기계를 완성하는 데는 그 뒤로도 여러 해가 걸렸습니다.

그가 파리에 간 까닭은 수학이 아니라 외교였습니다. 마인츠 선제후의 신하로 일하던 그는, 루이 14세의 군대가 독일과 네덜란드로 향하지 않도록 프랑스가 그 대신 이집트를 치게 하자는 계획서를 들고 1672년 파리에 갔습니다. 왕을 만나지는 못했고 계획은 흐지부지되었지만, 그는 4년을 파리에 머물렀습니다. 1666년 루이 14세의 재상 콜베르가 세운 왕립 과학 아카데미에는 네덜란드의 하위헌스가 있었고, 파스칼의 유고는 조카 페리에의 손에 남아 있었습니다(과학 아카데미). 1673년 첫 런던 방문에서 그는 왕립학회 회원이 되었지만, 수열의 이웃한 항끼리의 차를 거듭 구해 수열을 다루는 결과를 자랑하다, 그것이 이미 리옹의 신부 가브리엘 무통이 발표한 것이라는 지적을 받는 곤욕도 치렀습니다. 1676년 두 번째 런던 방문 때는 수학자들의 편지를 중개하던 존 콜린스에게서 뉴턴의 원고 『해석에 관하여』를 보고 일부를 베껴 적었는데, 이 일은 훗날 표절 의혹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남은 노트를 보면 그때 그는 이미 자신의 기호와 방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미적분은 1672–76년 외교 임무로 파리에 머무는 동안 만들어졌습니다. 그곳에서 하위헌스는 이 젊은 외교관에게 삼각수⁠(triangular number)⁠의 역수⁠(inverse)⁠ 합 1+13+16+110+⋯1 + \tfrac13 + \tfrac16 + \tfrac1{10} + \cdots을 구해 보라고 했습니다. 라이프니츠는 각 항을 2n(n+1)=2(1n−1n+1)\tfrac{2}{n(n+1)} = 2\bigl(\tfrac1n - \tfrac1{n+1}\bigr)처럼 이웃한 두 수의 차로 쓰면 합이 줄줄이 지워져 2만 남는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차들을 더하면 양 끝의 차가 된다는 것, 곧 합과 차는 서로 거꾸로라는 이 관찰이 그의 미적분의 씨앗입니다. 여기에 파스칼의 글에서 얻은 '특성 삼각형⁠(characteristic triangle)⁠', 곧 곡선의 무한히 작은 조각을 빗변⁠(hypotenuse)⁠으로 하는 삼각형을 더하자, 넓이⁠(area)⁠는 가느다란 막대들의 합(리만 합⁠(Riemann sum)⁠)이 되고 접선⁠(tangent line)⁠의 기울기⁠(slope)⁠는 무한히 작은 차의 비가 되었습니다. 1675년 가을의 원고에 합(summa)의 S를 늘인 ∫와 차(differentia)의 d가 처음 나옵니다. 넓이를 구하는 일과 기울기를 구하는 일이 거꾸로라는 미적분의 기본정리⁠(fundamental theorem of calculus)⁠가 기호 안에 들어 있는 셈입니다. 같은 무렵 그는 원주율⁠(pi)⁠의 급수⁠(series)⁠ π4=1−13+15−⋯\tfrac\pi4 = 1 - \tfrac13 + \tfrac15 - \cdots를 찾았는데, 이는 인도의 마다바가 이미 알던 급수였습니다.

좋은 기호가 생각의 일을 덜어 준다는 믿음 때문에 그는 기호를 공들여 골랐습니다. dydx\tfrac{dy}{dx}는 분수처럼 다룰 수 있어서, 연쇄법칙⁠(chain rule)⁠은 약분하는 모양으로(위의 식) 기억됩니다. 곱의 미분⁠(differentiation)⁠ d(xy)=x dy+y dxd(xy) = x\,dy + y\,dx는 가로 x, 세로 y인 직사각형이 조금 커질 때 늘어나는 두 띠의 넓이이고, 두 띠가 만나는 작은 모서리 dx dydx\,dy는 더 작은 무한소라 버립니다. 1684년 라이프치히의 학술지 『악타 에루디토룸』에 실린 첫 미분법 논문은 여섯 쪽 남짓으로 너무 짧아 읽기 어려웠지만, 바젤의 야코프 베르누이와 동생 요한이 이를 해독해 넓혔고, 1696년 프랑스의 귀족 수학자 로피탈이 쓴 첫 미적분 교과서를 거쳐 그의 기호가 대륙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곡선에 딸린 양을 가리키는 '함수(functio)'라는 낱말을 쓰기 시작한 사람도 라이프니츠로 꼽힙니다(함수).

라이프니츠는 편지 공화국의 가장 부지런한 시민이었습니다. 그가 평생 편지를 주고받은 상대는 천 명이 넘고, 남은 편지만 1만 5천 통쯤 됩니다. 예수회 선교사와 왕족, 철학자와 광산 기술자까지 상대가 다양했습니다. 편지는 느리고 사사로웠기 때문에 그는 학술지를 중시했습니다. 1682년 라이프치히에서 창간된 『악타 에루디토룸』을 처음부터 도왔고, 미적분의 첫 논문들도 여기 실었습니다. 이 학술지와 바젤의 베르누이 형제, 파리의 로피탈 사이를 오간 편지와 도전 문제들을 타고, 새 계산법은 불과 10여 년 만에 대륙 수학의 공용어가 되었습니다.

1676년부터 죽을 때까지 그는 하노버 공작가를 섬겼습니다. 궁정 도서관을 맡고, 가문의 역사를 쓰고, 하르츠 산지의 광산에서 풍차로 물을 퍼내는 사업을 몇 해 동안 벌였다가 실패했습니다. 그 틈틈이 쓴 편지와 원고에는 훗날의 수학이 여럿 들어 있습니다. 1693년 편지에는 연립방정식의 계수에서 해가 하나로 정해지는지를 판별하는 식, 곧 행렬식⁠(determinant)⁠이 나옵니다. 미지수가 둘인 ax+by=eax + by = e, cx+dy=fcx + dy = f라면 그 식은 ad−bcad - bc이고, 이 값이 0이 아니면 해가 꼭 하나 있습니다. 일본 에도 시대의 수학자 세키 다카카즈가 10년 앞서 따로 이른 생각입니다. 1679년 하위헌스에게는 길이와 각 대신 무엇이 무엇과 이어져 있는가 같은 위치 관계를 직접 계산하는 '위치 해석⁠(analysis situs)⁠'을 제안했습니다. 오늘날 위상수학⁠(topology)⁠의 먼 조상이 된 생각이고, 반세기 뒤 오일러는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 문제가 바로 이 분야에 속한다고 썼습니다(오일러 경로⁠(Euler path)⁠, 그래프). 1703년에는 0과 1만으로 모든 수를 적는 이진법(6 = 4 + 2 = 110₂)을 발표하며, 베이징의 예수회 선교사 부베가 보내 준 『주역』 64괘의 배열이 0부터 63까지의 이진수 차례와 같다는 설명을 붙였습니다. 그는 중국의 소식을 모은 책을 펴낼 만큼 중국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는 학문이 흩어진 개인이 아니라 나라가 세운 기관에서 자라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파리와 런던을 본 그는 독일에도 학술원을 세우자고 여러 군주를 설득했고, 이듬해 프로이센 왕비가 되는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비 조피 샤를로테의 후원으로 1700년 베를린에 과학 협회를 세워 초대 원장이 되었습니다. 드레스덴과 빈에도 같은 계획을 올렸지만 이루지 못했습니다. 1711년부터 몇 차례 표트르 대제를 만나 러시아에 학술원을 세우라고 권했는데, 그 구상은 그가 죽은 뒤 1724년 상트페테르부르크 과학 아카데미의 설립 칙령으로 열매를 맺었습니다. 반세기 뒤 오일러가 평생을 보낸 두 학술원, 베를린과 페테르부르크가 모두 그의 구상에서 싹튼 셈입니다.

우선권 다툼의 불씨는 뉴턴의 추종자들이 댕겼습니다. 1699년 스위스 출신의 파시오 드 뒤이에가 뉴턴이 몇 해나 먼저였다며 라이프니츠가 빌려 간 것은 아니냐고 넌지시 물었고, 1708년에 쓰여 1710년 왕립학회 회보에 실린 글에서 옥스퍼드의 존 케일은 라이프니츠가 뉴턴의 방법을 이름과 기호만 바꿔 발표했다고 썼습니다. 라이프니츠가 학회에 바로잡아 달라고 청하자, 학회는 위원회를 꾸려 옛 편지들을 모은 『서간집』을 판정의 근거로 냈습니다. 라이프니츠는 변론할 기회를 얻지 못했고,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장짜리 전단으로 맞섰습니다. 대륙의 수학자들, 특히 요한 베르누이는 라이프니츠 편에 섰고, 다툼은 영국과 대륙의 싸움이 되었습니다.

말년은 쓸쓸했습니다. 뉴턴과의 우선권 다툼은 나라의 자존심 싸움이 되었고, 1714년 그의 주군이 영국 왕 조지 1세가 되어 런던으로 떠났을 때 라이프니츠는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1715–16년에는 왕세자비 캐럴라인을 사이에 두고 뉴턴 편의 신학자이자 철학자 새뮤얼 클라크와 공간과 시간, 신의 역할을 두고 편지로 다투었습니다. 신이 만들 수 있는 세계 가운데 이 세계가 최선이라는 『변신론』(1710)의 주장은 반세기 뒤 볼테르의 소설 『캉디드』에서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결혼하지 않았던 그가 1716년 하노버에서 죽었을 때 궁정 사람은 거의 장례에 오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그의 꿈은 뒤늦게 이루어졌습니다. 1854년 조지 불은 '그리고'와 '또는'을 곱셈과 덧셈으로 적는 불 대수⁠(Boolean algebra)⁠로 추론 계산의 한 조각을 실현했고, 1930년대 튜링은 '기계적 계산'을 튜링 기계⁠(Turing machine)⁠로 정의한 뒤 모든 수학 문제를 기계로 판정할 수는 없다는 것(정지 문제⁠, halting problem⁠)을 보였습니다. 라이프니츠와 거의 같은 해에 태어나고 죽은 조선의 최석정도 수의 배열과 조합에 몰두했습니다.

이어지는 곳. 그가 지은 dy/dx와 ∫는 미분계수⁠(derivative)⁠, 정적분⁠(definite integral)⁠, 연쇄법칙에서 지금도 매일 쓰입니다. 같은 미적분에 다른 길로 이른 이야기는 아이작 뉴턴에 있습니다. 1693년 편지의 행렬식은 해가 하나로 정해지는지를 가리는 도구로 연립일차방정식⁠(system of linear equations)⁠에서, 그 해를 실제로 구하는 절차는 가우스 소거법⁠(Gaussian elimination)⁠에서 이어집니다. 『결합술』의 조합 세기는 이항계수⁠(binomial coefficient)⁠와, 수열 전체를 한 식으로 묶어 세는 생성함수⁠(generating function)⁠로 자랐습니다. 계산하는 기계의 꿈은 '기계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의한 처치–튜링 논제⁠(Church–Turing thesis)⁠로 이어집니다. 추론을 계산으로 바꾸려던 꿈이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히는 이야기는 자기 참조⁠(self-reference)⁠와 대각선에, 그가 말년에 '쓸모 있는 허구'라 부른 무한소⁠(infinitesimal)⁠의 운명은 무한을 다루는 법에, 좋은 기호와 이진법처럼 적는 방식을 바꾸어 생각을 쉽게 만드는 일은 표현 바꾸기에 모았습니다.

관계.

가운데가 이 사람, 둘레가 이어진 인물들입니다. 선의 색은 관계의 종류(초록 스승·제자, 파랑 함께 연구, 보라 편지, 빨강 논쟁, 주황 영향)이고, 다른 인물의 페이지에 적힌 관계도 함께 모았습니다.

  • 편지 아이작 뉴턴 — 1676년 왕립학회 서기 올덴부르크를 거쳐 두 통씩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뉴턴은 유율법⁠(method of fluxions)⁠의 핵심을 철자를 뒤섞은 암호문⁠(ciphertext)⁠으로만 적어 보냈습니다.
  • 영향을 받음 르네 데카르트 — 파리에서 데카르트의 미출간 원고를 베껴 읽을 만큼 깊이 공부했지만, 1686년에는 보존되는 것이 데카르트의 '운동의 양'(mv)이 아니라 mv²이라고 공격해 데카르트파와 긴 논쟁을 벌였습니다.
  • 영향을 받음 아리스토텔레스 — 『결합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syllogism)⁠ 형식들을 조합으로 세어 보는 데서 출발했고, 그는 평생 이 논리학을 계산으로 바꾸려 했습니다.

연표.

  • 1661년 열네 살에 라이프치히 대학에 들어가다
  • 1666년 『결합술』을 내다
  • 1667년 알트도르프에서 법학 박사가 되다
  • 1672년 외교 임무로 파리에 가서 하위헌스에게 새 수학을 배우다
  • 1673년 런던 왕립학회에서 계산기 모형을 보이다
  • 1675년 파리의 원고에 ∫와 d를 처음 쓰다
  • 1676년 하노버 공작가의 궁정 고문이자 사서가 되다
  • 1684년 『악타 에루디토룸』에 첫 미분법 논문을 싣다
  • 1700년 베를린 학술원을 세우고 초대 원장이 되다
  • 1703년 이진법 논문을 파리 과학 아카데미 논문집에 싣다
  • 1711년 토르가우에서 표트르 대제를 처음 만나 러시아에 학술원을 세우라고 권하다
  • 1714년 주군이 영국 왕 조지 1세가 되어 런던으로 떠나다

이 인물이 나오는 긴 글

미분에서 회전까지 · 1편 · 미분 순간의 속도 속도계는 '지금 이 순간'의 속도를 보여 준다. 순간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데, 무엇을 재는 걸까? 미분에서 회전까지 · 2편 · 적분 거리를 되찾기 속도계 기록만 남았다. 차가 어디까지 갔는지 되찾을 수 있을까? 미분에서 회전까지 · 3편 · 테일러 급수 한 점에서 전부를 한 점에서의 값과 기울기, 휘는 정도만으로 함수 전체를 다시 그릴 수 있을까? 미분에서 회전까지 · 4편 · 오일러 공식 원을 그리는 지수함수 지수함수에 허수를 넣으면 원이 된다. 가장 유명한 등식은 어디서 왔을까? 미분에서 회전까지 · 5편 · 복소수와 행렬 곱셈은 회전이다 복소수를 곱하는 일과 행렬로 평면을 돌리는 일은 같은 일이다. 확률 도박판에서 온 편지 1654년, 도중에 멈춘 내기의 판돈을 어떻게 나눌까? 두 수학자가 주고받은 편지에서 확률론이 태어났다. 정수론과 암호 나머지로 지키는 비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두 사람이 모두가 엿듣는 통신망에서 비밀 열쇠를 맞출 수 있을까? 답은 시계의 산수와 1640년 페르마의 정리에 있다. 집합론 무한에도 크기가 있다 자연수와 짝수는 어느 쪽이 많을까? 칸토어는 무한을 세는 법을 찾았고, 무한이 하나가 아님을 보였다. 최소제곱과 선형대수 잃어버린 소행성 1801년, 발견 몇 주 만에 태양 뒤로 사라진 세레스. 스물네 살의 가우스는 흩어진 관측값에서 궤도를 되찾았다. 그래프 이론 일곱 다리의 도시 쾨니히스베르크의 일곱 다리를 한 번씩만 건너 산책할 수 있을까? 오일러는 지도를 지우고 점과 선만 남겼다. 혼돈 나비의 날갯짓 방정식이 정해져 있으면 미래도 정해질까? 소수점 아래 몇 자리를 버린 계산이 날씨 예보의 한계를 드러냈다. 계산 이론 기계가 풀 수 없는 문제 모든 수학 문제를 기계적으로 풀 수 있을까? 러셀의 역설에서 괴델과 튜링까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오'였고, 그 증명이 컴퓨터를 낳았다. 조합론 세지 않고 세기 시의 운율을 세던 인도의 운율학자부터 오일러의 생성함수까지. 하나하나 늘어놓지 않고 경우의 수를 세는 법은 어떻게 자라났을까? 정보 이론과 압축 짧게 보내기 모스 부호는 왜 E를 점 하나로 보낼까? 섀넌의 엔트로피가 정한 압축의 한계와, 허프만 부호에서 JPEG까지 그 한계에 다가간 방법들. 압축과 과학 압축하는 것이 이해하는 것이다 튀코 브라헤가 20년 동안 적은 행성의 위치를 케플러는 법칙 세 줄로 줄였다. 짧게 적는 일과 이해하는 일은 정말 같은 일일까? 오컴의 면도날을 비트로 재는 법, 과적합을 압축의 실패로 읽는 법, 그리고 그 말이 정리인 곳과 철학인 곳. 범주론 화살표만으로 본 수학 최대공약수와 교집합과 '그리고'는 같은 것이고, 화살표를 뒤집으면 최소공배수와 합집합과 '또는'이 된다.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묻지 않고 어떻게 이어지는지만 보는 언어로, '자연스럽다'는 말의 뜻, 관계만으로 대상을 알아보는 요네다의 생각, 함자로 본 연쇄법칙, 어디에나 있는 수반까지 사이트의 여러 분야를 가로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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