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프누티 체비쇼프(Pafnuty Chebyshev)
소수(prime number)의 개수를 처음으로 단단한 부등식 사이에 가두고, 가장 큰 오차를 가장 작게 하는 근사와 확률(probability)의 부등식으로 페테르부르크 학파를 세운 러시아의 수학자.
파프누티 체비쇼프는 1821년 모스크바 남서쪽 칼루가 지방의 마을 오카토보에서 지주 귀족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시대 러시아의 과학은 표트르 대제가 세운 페테르부르크 과학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자랐는데, 그곳을 빛낸 오일러와 베르누이 집안 사람들은 모두 외국에서 온 학자들이었습니다. 러시아에서 태어난 수학자가 이끄는 학파가 세계 수학의 한 중심이 된 것은 체비쇼프 때부터입니다. 그가 붙든 문제는 세 갈래였습니다. 가우스와 르장드르가 짐작만 해 둔 소수의 분포, 증기기관 시대의 기계 장치가 던진 근사의 문제, 그리고 아직 느슨하던 확률론의 기초(basics)였습니다. 세 문제 모두에서 그는 막연한 짐작을 정확한 부등식으로 바꾸었습니다.
나이
그는 태어날 때부터 한쪽 다리가 불편해 절며 걸었고, 어린 시절 뛰어노는 대신 공부와 기계 만들기에 몰두했다고 전합니다. 1832년 가족이 모스크바로 옮긴 뒤 집에서 가정교사에게 배웠고, 1837년 모스크바 대학에 들어가 역학과 수학을 가르친 브라슈만에게 배웠습니다. 1841년 방정식의 근을 구하는 방법에 관한 학생 논문으로 은메달을 받았지만, 그해 기근으로 집안 형편이 기울어 이후로는 검소하게 살아야 했습니다. 1846년 확률론의 기초를 다룬 석사 논문을 내고, 이듬해 페테르부르크 대학으로 옮겨 평생 그 도시에서 일했습니다.
페테르부르크에서 그가 맨 먼저 맡은 일 하나는 과학 아카데미의 서고에 남은 오일러의 정수론(number theory) 논문을 선배 수학자 부냐콥스키와 함께 모아 펴내는 것이었습니다. 1849년 두 권으로 나온 이 논문집을 엮으며 그는 정수론에 깊이 들어갔고, 같은 해 박사 논문 『합동(congruence)의 이론』을 썼습니다. 나머지만 보는 셈, 곧 모듈러 연산(modular arithmetic)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이 책은 수십 년 동안 러시아 대학의 정수론 교과서였습니다.
이 무렵 그는 소수의 개수에 손을 댔습니다. x 이하의 소수가 몇 개인지를 π(x)라고 적으면, 가우스와 르장드르는 π(x)가 대략 x/ln x라고 짐작했습니다(자연로그, natural logarithm). "대략"의 정확한 뜻은 두 수의 비율이 x가 커질수록 1에 다가간다는 것입니다. 체비쇼프는 1848년 이 비율이 어떤 값에 다가간다면 그 값은 반드시 1이어야 함을 증명했고, 1850년에는 충분히 큰 x에서 π(x)가 x/ln x의 0.92배보다 작아지지도, 1.11배보다 커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소수가 아무리 드문드문해져도 이 좁은 띠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방법은 n!을 소인수분해(prime factorization)했을 때 각 소수가 몇 번 들어가는지를 세고, 계승(factorial) 몇 개를 곱하고 나눈 식의 크기를 위아래에서 어림하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논문의 부산물로, 1보다 큰 모든 n에 대해 n과 2n 사이에 소수가 적어도 하나 있다는 베르트랑 공준(Bertrand's postulate)도 증명되었습니다. 프랑스의 베르트랑이 1845년 300만 아래에서 확인만 해 둔 추측이었습니다.
비율이 정말로 1에 다가간다는 소수 정리(prime number theorem)는 체비쇼프의 부등식만으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1859년 리만이 소수의 개수를 제타 함수(zeta function)의 영점(zero)과 이은 뒤, 1896년 아다마르와 드 라 발레 푸생이 그 길로 증명을 마쳤습니다. 그래도 계승의 소인수를 세는 체비쇼프의 초등적인 방법은 살아남았습니다. 1932년 열아홉 살의 에르되시는 이항계수(binomial coefficient)
1852년 그는 프랑스, 영국, 벨기에, 독일을 여행하며 수학자들을 만나고 공장의 기계를 살폈습니다. 파리에서 사귄 확률론자 비에네메는 뒤에 그의 연구가 프랑스에 알려지도록 도운 오랜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가 특히 파고든 것은 증기기관의 '평행 운동' 장치였습니다. 피스톤의 막대는 곧게 오르내려야 하는데, 이를 붙잡는 들보의 끝은 원호를 그립니다. 제임스 와트는 막대 몇 개를 이어 한 점이 거의 곧게 움직이도록 만들었지만, '거의'에는 늘 오차가 남습니다. 체비쇼프는 막대의 길이를 어떻게 골라야 움직이는 동안 곧은 선에서 벗어나는 가장 큰 오차가 가장 작아지는지를 물었습니다. 평균(mean) 오차가 아니라 최악의 오차를 줄이는 이 기준은 기계가 한 번이라도 크게 벗어나면 안 된다는 공학의 요구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는 이 질문을 함수(function)의 언어로 옮겼습니다. 구간 위의 함수 f를 차수가 n 이하인 다항식(polynomial) p로 흉내 낼 때, 구간 전체에서 |f(x) − p(x)|의 최댓값이 가장 작은 p를 찾는 것입니다. 1854년 논문 「평행사변형이라 불리는 기계 장치의 이론」에서 시작된 연구로 그는 답의 모양을 알아냈습니다. 가장 좋은 다항식의 오차는 같은 크기의 최댓값에 적어도 n + 2번 닿으며, 닿을 때마다 부호가 +와 −로 번갈아 바뀝니다. 예를 들어 구간 [0, 1]에서 x²을 직선(n = 1)으로 흉내 내면 가장 좋은 직선은 x − 1/8이고, 오차 x² − x + 1/8은 x = 0에서 +1/8, x = 1/2에서 −1/8, x = 1에서 다시 +1/8로, 같은 크기로 세 번 번갈아 닿습니다. 직선을 조금이라도 옮기면 이 세 곳 가운데 어딘가의 오차가 1/8보다 커집니다. 두 함수 사이의 거리를 가장 크게 벌어진 곳 하나로 재는 이 방식은 오늘날 근사 이론(approximation theory)의 출발점이고, 좌표 차이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재는 체비쇼프 거리(Chebyshev distance)도 같은 생각에서 이름을 얻었습니다.
이 연구에서 그의 이름이 붙은 다항식이 나왔습니다.
그는 이론을 직접 기계로 시험했습니다. 평생 수십 가지 기계 장치를 설계했고, 막대만으로 한 점을 거의 곧게 움직이는 연결 장치와, 그런 장치로 다리를 움직여 걷는 '걸음 기계'는 1878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전시되었습니다. 덧셈과 뺄셈을 연속으로 하는 계산기도 만들었습니다. 이론과 실제가 하나로 묶일 때 수학이 가장 크게 자란다는 것이 그가 자주 한 이야기였다고 제자들은 전합니다.
확률론에서 그의 이름이 붙은 부등식은 1867년 논문 「평균값에 대하여」에 나옵니다. 평균이 μ, 표준편차(standard deviation)가 σ인 확률변수(random variable) X가 평균에서 kσ 이상 벗어날 확률은 1/k²을 넘지 않습니다. k = 2라면 분포가 어떤 모양이든 평균에서 표준편차 두 배 넘게 떨어진 값이 나올 확률은 25%를 넘지 않습니다. 정규분포(normal distribution)라면 실제 확률은 5%도 안 되니 거친 어림이지만, 분포에 대해 기댓값(expected value)과 분산(variance) 말고는 아무것도 몰라도 된다는 것이 힘입니다. 프랑스의 비에네메가 1853년 비슷한 부등식을 먼저 적었기 때문에 비에네메–체비쇼프 부등식(Chebyshev's inequality)이라고도 부릅니다. 체비쇼프는 이것으로 큰 수의 법칙(law of large numbers)을 몇 줄로 증명했습니다. 서로 독립(independence)인 확률변수 n개의 분산이 모두 C 이하라면 그 평균의 분산은 C/n 이하입니다. 그러므로 평균이 자기 기댓값에서 ε 이상 벗어날 확률은 C/(nε²) 이하이고, n이 커지면 0으로 갑니다. 야코프 베르누이가 동전 던지기 같은 한 가지 시행에 대해 20년을 들여 증명한 법칙이, 분산만 통제되면 서로 다른 시행을 섞어도 성립한다는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1887년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독립인 확률변수를 많이 더하면 그 분포가 정규분포에 다가간다는 중심극한정리(central limit theorem)를 모멘트, 곧 X, X², X³, …의 기댓값을 차례로 맞추는 방법으로 증명하려 했습니다. 증명에는 빈 곳이 있었고, 그것을 메운 사람이 제자 마르코프였습니다. 또 다른 제자 랴푸노프는 1901년 전혀 다른 도구로 더 일반적인 조건에서 이 정리를 증명했습니다. 구체적인 문제에서 출발해 정확한 부등식과 근사로 끝을 맺는 이 스타일이 '페테르부르크 학파'의 표지였고, 코르킨, 졸로타료프, 마르코프, 랴푸노프가 그 아래에서 자랐습니다. 이 학파는 20세기 초 집합론(set theory) 위에서 함수론을 세우던 모스크바 학파의 예고로프와 루진을 추상적이라며 못마땅해했지만, 큰 수의 법칙을 가장 넓은 조건에서 마무리한 것은 결국 모스크바의 힌친과 콜모고로프였습니다.
그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모은 돈의 많은 부분을 기계 모형을 만드는 데 썼습니다. 1882년 대학에서 물러난 뒤에도 아카데미에서 연구를 이어 갔고, 파리와 베를린의 학술원, 런던의 왕립학회가 그를 외국인 회원으로 뽑았습니다. 1894년 페테르부르크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이름은 러시아어를 로마자로 옮기는 방식에 따라 Chebyshev, Tchebychef, Tschebyscheff 등 수십 가지로 적히는데, 그 자신은 프랑스어 논문에 주로 Tchebychef라고 썼습니다. 가장 나쁜 경우를 가장 좋게 만든다는 그의 기준은 근사와 오차와 가장 좋은 것 고르기가 만나는 자리에 있습니다.
이어지는 곳. 소수의 띠는 소수와 소수 정리로, 최악의 오차를 줄이는 근사는 근사 이론, 다항식, 체비쇼프 거리로 이어집니다. 그의 부등식은 분산, 큰 수의 법칙, 중심극한정리에서 쓰입니다. 제자 안드레이 마르코프, 같은 시대 베를린에서 닫힌 구간 위의 연속함수는 다항식으로 얼마든지 가깝게 근사할 수 있음을 보인 바이어슈트라스, 그의 증명을 다시 쓴 에르되시를 함께 읽으면 좋습니다.
관계.
- 제자 안드레이 마르코프 — 1874년 페테르부르크 대학에 들어온 마르코프는 그의 강의를 들었고, 스승이 1887년 모멘트로 시도한 중심극한정리의 증명에서 빈 곳을 메웠습니다.
- 영향을 받음 레온하르트 오일러 — 1849년 부냐콥스키와 함께 페테르부르크 아카데미에 남은 오일러의 정수론 논문들을 모아 펴냈고, 같은 해 그 전통 위에서 박사 논문 『합동의 이론』을 썼습니다.
- 영향을 받음 아드리앵마리 르장드르 — 르장드르가 내놓은 소수 개수의 어림식 x/(ln x − 1.08366)을 따져, 그런 꼴의 식에서 상수가 어떤 값으로 모인다면 그 값은 1.08366이 아니라 1이어야 함을 보였습니다.
- 영향을 받음 야코프 베르누이 — 야코프 베르누이가 같은 시행을 되풀이하는 경우에 증명한 큰 수의 법칙을, 1867년 분산이 일정한 한도 아래에 있기만 하면 되는 훨씬 넓은 경우로 넓혔습니다.
- 영향을 줌 에르되시 팔 — 1932년 열아홉 살의 에르되시는 그가 1850년에 처음 증명한 베르트랑 공준에 이항계수의 소인수를 세는 짧은 새 증명을 내놓았습니다.
연표.
- 1841년 모스크바 대학을 마치고 방정식의 근을 구하는 논문으로 은메달을 받다
- 1846년 확률론에 관한 석사 논문을 내다
- 1847년 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가르치기 시작하다
- 1849년 오일러의 정수론 논문집을 함께 엮고 박사 논문 『합동의 이론』을 내다
- 1850년 소수의 개수를 위아래로 가두는 부등식과 베르트랑 공준의 증명을 발표하다
- 1852년 프랑스, 영국, 독일의 공장과 기계를 둘러보다
- 1854년 와트의 연결 장치에서 출발한 최선 근사(best approximation) 이론을 발표하다
- 1859년 페테르부르크 과학 아카데미의 정회원이 되다
- 1867년 오늘날 체비쇼프 부등식이라 부르는 부등식으로 큰 수의 법칙을 증명하다
- 1878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걸음 기계를 내놓다
- 1882년 대학에서 물러나 아카데미의 연구에 전념하다
- 1887년 모멘트를 써서 중심극한정리의 증명을 시도하다
이 인물이 나오는 긴 글
이 인물을 언급하는 페이지
- 큰 수의 법칙
… 말로 20년을 매달린 증명은 그가 죽은 뒤 1713년 『추측의 기술』에 실렸습니다. 1867년 러시아의체비쇼프는 분산이 유한하면 어떤 분포에서든 성립한다는 것을 짧게 보였습니다. 평균이 기댓값에서 ε 넘게 벗어날 …
- 맨해튼 거리
… 공간을 곱해 좌표 쌍의 공간을 만들 때, 좌표 거리를 어떻게 합칠지는 두 가지가 자연스럽습니다. 최댓값(체비쇼프)을 쓰면 범주론의 곱이 되고, 합(맨해튼)을 쓰면 '두 변수 함수를 한 변수씩 차례로 받는 함수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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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고, 이 거리로 가까워지는 것이 균등 수렴입니다. 체비쇼프 거리라는 이름은 19세기 러시아 수학자파프누티 체비쇼프에서 왔습니다. 그는 주어진 함수를 차수가 정해진 다항식으로 근사할 때, 가장 크게 벌어진 곳의 오차가 …
- 다항식
… 배치도 모든 연속함수에서 통하지는 않고, 체비쇼프 점이 확실히 통하는 것은 이 함수처럼 매끈한 함수입니다.체비쇼프가 기틀을 놓은 이 분야가 근사 이론입니다. 보간 다항식이 하나뿐이라는 사실은 뜻밖의 곳에 쓰입니다. …
- 근사 이론
… 큰 어긋남'을 체비쇼프 거리라고도 합니다. 이 물음을 처음 체계적으로 던진 사람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파프누티 체비쇼프였습니다. 그는 증기기관의 피스톤을 곧게 움직이는 제임스 와트의 연결 장치를 연구하다가, 1853년 무렵 …
- 정수론
… 1/φ(m)입니다. m = 4로 두면 흥미로운 일이 보입니다. 나머지 3 쪽이 거의 언제나 조금 앞섭니다.체비쇼프가 1853년 편지에서 처음 지적한 이 치우침은 N = 26,861에 이르러서야 처음 뒤집힙니다. 비율은 …
- 확률변수
… 내기의 '값'을 기댓값으로 정의했습니다. 확률변수를 이론의 한가운데 놓은 것은 19세기 페테르부르크의파프누티 체비쇼프였습니다. 그는 1867년, 분산 σ²이 유한한 어떤 확률변수든 기댓값에서 kσ 이상 벗어날 확률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