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노시 보여이(János Bolyai)
평행선 공준(parallel postulate) 없이 성립하는 기하(geometry)와 그 반대를 가정한 쌍곡기하(hyperbolic geometry)를 로바쳅스키와 따로 세워 1832년 아버지의 교과서 부록으로 발표한 트란실바니아의 헝가리계 수학자이자 합스부르크 군대의 공병 장교.
야노시 보여이는 1802년 트란실바니아의 콜로즈바르에서 태어나 마로시바샤르헤이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 퍼르커시 보여이는 그곳 칼뱅파 학교의 수학 교사였고, 괴팅겐에서 공부하던 젊은 시절 가우스와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퍼르커시 자신도 평생 평행선 공준을 증명하려 애쓰다 실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같은 문제에 빠지자 1820년 무렵의 편지에서, 이 문제는 인생의 모든 기쁨과 시간을 빼앗을 것이니 제발 손을 떼라고 간곡히 말렸다고 전합니다.
나이
야노시는 1818년부터 빈의 군사 공병 학교에서 공부하고 합스부르크 군대의 공병 장교가 되었습니다. 그는 공준(postulate)을 증명하려는 대신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평행선 공준을 쓰지 않고도 성립하는 정리들, 그가 '절대 기하(absolute geometry)'라고 부른 부분을 먼저 가려내고, 그 위에 공준을 받아들이면 유클리드 기하가, 그 반대를 받아들이면 새 기하가 선다는 구조를 본 것입니다. 1823년 11월 3일 근무지 테메스바르에서 그는 아버지에게 "무에서 새롭고 다른 세계를 만들어 냈다"고 썼습니다.
그 결과는 1832년 아버지가 펴낸 라틴어 수학 교과서 『시론』에 스무 쪽 남짓한 「부록」으로 실렸습니다. 이 짧은 글에는 새 기하의 삼각법(trigonometry)과, 한 점에서 직선까지의 거리 d에 따라 평행각(angle of parallelism)이
아버지가 옛 친구 가우스에게 「부록」을 보냈을 때 돌아온 답은, 이 일을 칭찬하면 자기 자신을 칭찬하는 셈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내용이 30여 년 동안 자기가 해 온 생각과 거의 같다는 뜻이었습니다. 가우스는 젊은이의 재능에 감탄했다고도 썼지만, 야노시는 발견의 영예를 빼앗겼다고 느껴 깊이 낙담했습니다. 1833년 그는 건강 문제로 군에서 물러났고, 그 뒤로 수학 논문을 거의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1837년에는 복소수(complex number)를 실수(real number)의 순서쌍(ordered pair)으로 다루는 원고를 라이프치히의 현상 공모에 냈지만 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1848년 로바쳅스키가 1840년에 독일어로 낸 책을 읽고는 같은 기하가 먼 러시아에서도 나왔다는 것을 알고 그 책에 대한 긴 비평 메모를 남겼습니다. 그가 남긴 원고는 수천 쪽에 이릅니다.
그의 발견이 알려진 것은 죽은 뒤였습니다. 1860년대 가우스의 편지가 출판되고 1867–68년 쥘 우엘이 「부록」을 프랑스어로 옮기면서, 보여이와 로바쳅스키의 이름이 함께 쌍곡기하의 창시자로 알려졌습니다. 오늘날 헝가리 과학 아카데미의 보여이 상과, 클루지나포카의 바베슈–보여이 대학이 그의 이름을 기립니다.
이어지는 곳. 그가 세운 기하는 쌍곡기하와 푸앵카레 원판(Poincaré disk)에서, 그 출발점인 평행선 공준의 2,000년 역사는 긴 글 「평행선의 반란」 4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같은 기하를 따로 세운 로바쳅스키, 앞서 예각 가설을 끝까지 계산한 사케리의 페이지도 함께 보세요. 작도할 수 있는 수가 무엇인지는 작도 가능한 수(constructible number)에 있습니다.
관계.
- 편지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 1832년 아버지가 보낸 「부록」에 가우스는 칭찬하면 자기 자신을 칭찬하는 셈이라며 오래전부터 같은 생각을 해 왔다고 답했고, 이 답장은 야노시를 깊이 낙담시켰습니다.
연표.
- 1802년 트란실바니아의 콜로즈바르(오늘날 루마니아의 클루지나포카)에서 수학자 퍼르커시 보여이의 아들로 태어나다
- 1818년 빈의 군사 공병 학교에 들어가다
- 1820년 평행선 문제에 빠진 아들에게 아버지가 손을 떼라고 간곡히 편지하다
- 1823년 11월 3일 테메스바르에서 '무에서 새롭고 다른 세계를 만들어 냈다'고 아버지에게 쓰다
- 1832년 아버지의 교과서 『시론』에 라틴어 「부록」으로 새 기하를 싣다. 가우스의 답장에 크게 낙담하다
- 1833년 건강 문제로 군에서 물러나 연금을 받다
- 1837년 복소수를 실수의 쌍으로 다루는 원고를 라이프치히의 현상 공모에 냈으나 상을 받지 못하다
- 1848년 로바쳅스키의 1840년 독일어 책을 읽고 긴 비평 메모를 남기다
- 1860년 마로시바샤르헤이에서 세상을 떠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