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개념 지도
시대와 장소(Times and places)

전신과 해저 케이블의 시대(The Age of the Telegraph and the Submarine Cable)

전선이 철도를 따라, 이어서 바다 밑으로 대륙을 이은 19세기. 낱말마다 요금을 매긴 전신 사업과 부호집⁠(codebook)⁠, 대서양 케이블의 실패와 성공, 톰슨의 제곱 법칙⁠(law of squares)⁠이 메시지를 짧게, 빨리, 틀림없이 보내는 셈을 낳았고, 그 셈이 20세기의 정보 이론이 되었다.

19세기 중반까지 소식은 사람과 말과 배가 나르는 만큼만 빨랐습니다. 전신은 처음으로 정보를 물건에서 떼어 냈습니다. 1830–40년대에 전선이 철도를 따라 깔리고, 1850–60년대에는 바다 밑으로 대륙을 이었습니다. 전선 위의 시간이 돈이 되자 사람들은 메시지를 얼마나 짧게, 얼마나 빨리, 얼마나 틀리지 않게 보낼지를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계산과 실패와 소송이 쌓여 20세기의 정보 이론이 되었습니다.

초록 띠가 이 페이지가 다루는 시대이고, 막대는 본문에 나오는 인물들의 생애입니다. 연도를 끌어 보세요.

년 ·

먼 곳에 신호를 보내는 장치는 전기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1794년 혁명기 프랑스는 언덕마다 탑을 세우고 팔의 모양으로 신호를 이어 보내는 클로드 샤프의 광학 신호기⁠(optical telegraph)⁠로 전선의 소식을 파리에 전했습니다. 전기 신호는 1833년 괴팅겐의 가우스와 물리학자 빌헬름 베버가 천문대와 실험실 사이 1킬로미터 남짓한 선으로 주고받은 것이 이른 예입니다. 사업으로 자리 잡은 것은 철도 덕분이었습니다. 1837년 특허를 낸 영국의 쿡과 휘트스톤은 바늘이 가리키는 글자를 읽는 전신을 철도 선로를 따라 깔았습니다. 기차의 운행을 알리고 선로를 안전하게 쓰는 데 신호가 필요했고, 전선은 선로 옆에 놓기가 가장 쉬웠습니다. 1845년 슬라우에서 기차를 타고 달아난 살인 용의자가 앞서 도착한 전보 때문에 런던 패딩턴역에서부터 경찰의 미행을 받다 붙잡히자, 사람들은 전신이 무엇을 바꾸는지 실감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초상화가였던 새뮤얼 모스가 동업자 앨프리드 베일과 함께 1838년 전신을 시연했고, 1844년 5월 워싱턴에서 볼티모어로 첫 공개 전보를 보냈습니다. 처음 모스는 낱말마다 번호를 매긴 사전을 만들어 번호를 보내려 했지만, 곧 글자마다 점과 선의 짧은 줄을 주는 부호로 바뀌었습니다. 흔한 E는 점 하나, T는 선 하나, 드문 Q는 네 개입니다. 베일이 인쇄소의 활자 상자에서 글자별 활자 수를 세어 빈도를 알아냈다는 이야기가 전하지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글자의 확률⁠(probability)⁠이 pip_i이고 부호 길이가 ℓi\ell_i이면 평균⁠(mean)⁠ 길이는 ∑piℓi\sum p_i \ell_i이고, 흔한 글자를 짧게 할수록 줄어듭니다. 얼마나 짧게 할 수 있는지의 답은 한 세기 뒤의 엔트로피⁠(entropy)⁠와 허프만 부호⁠(Huffman coding)⁠가 주었습니다. 1856년 여러 회사를 합쳐 생긴 웨스턴 유니언은 1861년 대륙 횡단선을 이었고, 말을 갈아타며 우편을 나르던 포니 익스프레스는 그 직후 문을 닫았습니다.

전신 회사들은 보낸 낱말 수대로 요금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상인들은 자주 쓰는 문장 하나하나에 짧은 부호어⁠(codeword)⁠를 붙인 두꺼운 상업 부호집을 샀습니다. '오늘 시세로 1,000부셸을 사라' 같은 문장이 낱말 하나로 줄었고, 부호집은 같은 사전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통한다는 점에서 비밀을 지키는 데도 쓰였습니다. 공유된 사전을 가리키는 짧은 이름으로 줄이는 이 방식은 사전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렘펠–지브 압축⁠(Lempel–Ziv compression)⁠의 조상입니다. 1865년 파리에서 여러 나라가 국제전신연합을 만들어 요금과 규칙을 맞췄고, 어떤 부호어를 한 낱말로 쳐 줄지를 두고 규칙을 거듭 고쳤습니다. 뉴스도 전선을 탔습니다. 1850년 비둘기로 전신망의 끊긴 구간을 잇던 파울 율리우스 로이터는 이듬해 런던으로 옮겨 통신사를 차렸습니다.

압축에는 대가가 있었습니다. 1887년 필라델피아의 양모상 프림로즈가 대리인에게 보낸 부호 전보에서 '샀다'는 뜻의 BAY가 전송 중에 '사라'는 뜻의 BUY로 바뀌었고, 그는 법원 기록에 따르면 2만 달러가 넘는 손해를 보았습니다. 1894년 미국 대법원은 전보를 되돌려 받아 대조하는 추가 요금을 내지 않았으니 회사의 책임은 전보 요금까지라고 판결했습니다. BAY와 BUY는 한 글자만 다릅니다. 두 부호어 사이의 해밍 거리⁠(Hamming distance)⁠가 1이면 한 글자 오류가 다른 뜻의 멀쩡한 부호어를 만듭니다. 그래서 뒤의 부호집 가운데에는 모든 부호어가 적어도 두 글자씩 다르게 짜서 한 글자 오류를 알아챌 수 있게 한 것들이 나왔습니다. 부호어 사이를 벌려 오류를 막는다는 생각은 20세기의 오류 정정 부호⁠(error-correcting code)⁠에서 수학이 됩니다.

가장 극적인 무대는 대서양이었습니다. 미국 사업가 사이러스 필드의 회사가 놓은 첫 케이블은 1858년 8월 16일 빅토리아 여왕의 축하 전보를 뉴펀들랜드로 보냈지만, 98낱말을 보내는 데 16시간이 걸렸고 9월에는 완전히 끊어졌습니다. 케이블의 절연재 구타페르카는 말레이반도의 나무 수지로, 영국 제국이 그 공급을 쥐고 있었습니다. 1854년 글래스고의 윌리엄 톰슨은 절연재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구리 속심과 바닷물이 전기를 머금는 거대한 축전기⁠(capacitor)⁠를 이룬다는 데 주목해, 케이블 속 전압이 푸리에의 열방정식⁠(heat equation)⁠을 따른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신호가 도착하는 시간은 길이의 제곱에 비례하고, 빨리 보낸 펄스일수록 서로 뭉개져 겹칩니다. 회사의 전기 기사 화이트하우스는 이 '제곱 법칙'을 부정하고 수천 볼트의 전압으로 신호를 밀어붙이다 절연을 망가뜨렸고, 조사 위원회는 실패의 책임 대부분을 그에게 돌렸습니다.

1866년 거대한 증기선 그레이트이스턴호가 구리 속심을 훨씬 굵게 한 새 케이블을 놓았고, 전해에 끊어졌던 케이블까지 건져 이어 두 가닥이 대서양을 건넜습니다. 아주 약한 전류를 빛줄기의 움직임으로 읽는 톰슨의 거울 검류계⁠(mirror galvanometer)⁠가 수신을 맡았고, 톰슨은 그해 기사 작위를 받았습니다. 1870년대 초에는 케이블이 인도와 오스트레일리아까지 닿아 런던이 제국의 소식을 하루 안에 받았습니다. 케이블을 저항으로 사고팔게 되자 전기의 단위를 정해야 했고, 1860년대 영국 과학진흥협회의 위원회에서 톰슨과 맥스웰이 저항의 표준, 오늘날의 옴을 정하는 일에 참여했습니다. 전기와 자기를 하나의 파동으로 묶은 맥스웰의 1865년 이론은 뒤에 헤르츠의 전파 실험과 1901년 마르코니의 대서양 무선 통신으로 이어졌습니다.

전신은 과학의 자료도 바꾸었습니다. 여러 곳의 날씨를 같은 시각에 모을 수 있게 되자 영국에서는 1861년부터 폭풍 경보가 나갔고, 프랜시스 골턴은 1863년 유럽 각지의 기상 관측을 지도에 그려 고기압의 바람이 도는 방향을 찾아냈습니다. 1875년 『타임스』에 실린 첫 신문 일기도도 골턴이 준비한 것이었습니다. 천문대들은 전보로 시각 신호를 주고받아 두 도시의 경도 차이를 쟀고, 철도 회사들은 전신으로 한 표준시를 퍼뜨렸습니다. 수많은 관측을 한곳에 모아 평균과 흩어짐을 보는 통계⁠(statistics)⁠의 일도 이런 통신망 위에서 커졌습니다.

기계도 부호를 바꾸었습니다. 1874년 프랑스의 기술자 에밀 보도는 글자마다 다섯 칸짜리 신호를 주는 인쇄 전신⁠(printing telegraph)⁠을 만들었습니다. 칸마다 두 가지이니 25=322^5 = 32가지 글자를 적을 수 있고, 모든 글자가 같은 길이라 기계가 박자를 맞춰 읽기 쉬웠습니다(이진법⁠, binary⁠). 신호 속도⁠(velocity)⁠의 단위 보(baud)가 그의 이름입니다. 1876년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전화가 나오자 통신망은 사람의 목소리를 실어 나르게 되었고, 교환기의 수많은 계전기(전류로 스위치를 여닫는 부품)는 켜짐과 꺼짐의 회로가 되었습니다. 1937년 섀넌은 이 계전기⁠(relay)⁠ 회로를 불의 불 대수⁠(Boolean algebra)⁠로 설계할 수 있음을 보였습니다. 1917년 AT&T의 기술자 길버트 버냄은 다섯 칸 부호의 테이프에 무작위 열쇠 테이프를 칸마다 더하는 암호기를 만들었는데, 켜짐 두 번이 꺼짐이 되는 이 덧셈은 2로 나눈 나머지⁠(remainder)⁠의 모듈러 연산⁠(modular arithmetic)⁠입니다.

빠른 신호를 뭉개는 선로의 한계는 전화 시대에도 풀리지 않았습니다. 1880년대 영국의 전기 공학자 올리버 헤비사이드는 톰슨의 모형에 전류의 변화를 거스르는 인덕턴스⁠(inductance)⁠를 더해 파동방정식⁠(wave equation)⁠의 성질이 섞인 방정식을 얻었고, 20세기 초 장거리 전화선에는 그 생각에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코일을 달았습니다. 그래도 선로가 통과시키는 진동수⁠(frequency)⁠의 폭, 곧 대역폭⁠(bandwidth)⁠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1924년과 1928년 AT&T의 해리 나이퀴스트는 대역폭이 B헤르츠인 통로로는 1초에 서로 뒤섞이지 않고 구별되는 펄스를 2B개까지만 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였고(표본화 정리⁠, sampling theorem⁠), 1928년 벨 연구소의 랠프 하틀리는 정보를 가능한 메시지 수의 로그로 재자고 제안했습니다. 보도의 다섯 칸이 32가지를 가르는 것처럼, s가지 기호 n개는 nlog⁡sn \log s만큼의 정보를 나른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물음을 하나로 묶은 것이 1948년 벨 연구소의 섀넌입니다. 모스와 베일이 던진 '얼마나 짧게'는 원천 부호화 정리⁠(source coding theorem)⁠로, 톰슨의 케이블과 프림로즈의 전보가 던진 '뭉개지고 틀리는 선로로 얼마나 믿을 만하게'는 통로 용량⁠(channel capacity)⁠과 잡음 통로⁠(noisy channel)⁠ 부호화 정리, 섀넌–하틀리 정리⁠(Shannon–Hartley theorem)⁠로 답해졌습니다. 전신 자체는 전화와 텔렉스, 무선에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선박의 조난 통신은 1999년 모스 부호⁠(Morse code)⁠에서 위성 체계로 넘어갔고, 웨스턴 유니언은 2006년 전보 서비스를 끝냈습니다. 그러나 대양 밑의 케이블은 지금 광섬유가 되어 인터넷의 대부분을 나르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곳. 섀넌이 이 물음들을 정리한 연구소는 벨 연구소에, 톰슨이 빌려 온 열의 수학이 태어난 곳은 혁명기 파리와 에콜 폴리테크니크에, 가우스와 베버의 전선이 놓인 곳은 괴팅겐에 있습니다. 부호집의 비밀은 20세기의 암호 해독으로 이어져 블레츨리 파크에 닿습니다. 신호를 진동수로 쪼개는 생각은 푸리에 급수⁠(Fourier series)⁠와 사인파⁠(sinusoid)⁠에서, 오류를 막는 거리는 해밍 거리와 해밍에서 이어집니다. 같은 정보를 다른 부호로 다시 쓰는 일은 표현 바꾸기에, 잡음 속에서도 확실하게 보내는 법은 무작위성에 있습니다.

이 개념이 나오는 큰 생각선형화: 휘어진 것을 곧게 보기

이 장소이 나오는 긴 글

정보 이론과 압축 짧게 보내기 모스 부호는 왜 E를 점 하나로 보낼까? 섀넌의 엔트로피가 정한 압축의 한계와, 허프만 부호에서 JPEG까지 그 한계에 다가간 방법들. 통신과 잡음 잡음 너머로 대서양 바닥의 케이블은 왜 신호를 뭉갰을까? 잡음이 있어도 오류 없이 보낼 수 있다는 섀넌의 정리와, 그 한계를 50년 동안 쫓은 부호들.

이 페이지가 가리키는 개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