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개념 지도
인물

야코프 그림(Jacob Grimm)

게르만어의 자음이 다른 인도유럽어⁠(Indo-European languages)⁠와 규칙적으로 어긋난다는 '그림의 법칙⁠(Grimm's law)⁠'을 정리해 언어의 변화에도 법칙이 있다는 생각을 열고, 동생 빌헬름과 민담을 모은 독일의 언어학자.

p→f,t→θ,k→h\text{p} \to \text{f}, \quad \text{t} \to \theta, \quad \text{k} \to \text{h}

야코프 그림은 1785년 헤센카셀 방백령의 도시 하나우에서 법률가의 맏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열한 살에 아버지를 잃어 집안은 가난해졌고, 그는 평생 한 살 아래 동생 빌헬름과 함께 살며 일했습니다. 그가 자란 독일어권은 수백 개의 나라로 쪼개져 있었고, 곧 나폴레옹의 군대가 신성 로마 제국을 무너뜨렸습니다. 나라가 없던 사람들에게 언어와 옛 노래와 민담은 '독일인'이 누구인지를 묻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한편 학문에서는 1786년 영국의 윌리엄 존스가 산스크리트어와 그리스어, 라틴어가 우연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닮았다고 지적한 뒤, 언어들이 한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생각이 퍼지고 있었습니다. 언어는 제멋대로 변하는가, 아니면 변화에도 법칙이 있는가? 그림은 게르만어의 자음에서 그 답의 첫 조각을 찾았습니다.

굵은 막대가 이 사람의 생애이고, 흰검은 점은 페이지 끝 연표에 적은 일들입니다. 가는 막대는 같은 시대를 산 이 위키의 인물들입니다. 나이를 끌어 보세요.

나이 세 ·

1802년 마르부르크 대학에 법학을 공부하러 간 그는 젊은 법학자 사비니를 만났습니다. 사비니는 법이 한 민족의 역사 속에서 언어처럼 자라난다고 보는 '역사 법학'을 이끌었고, 그의 서재에서 그림은 중세 독일의 시를 처음 읽었습니다. 1805년 사비니를 도와 파리의 도서관에서 옛 필사본을 조사한 뒤, 그는 카셀로 돌아와 1808년 나폴레옹의 동생 제롬이 다스린 베스트팔렌 왕국의 궁정 사서가 되었습니다. 나폴레옹이 물러난 뒤에는 1814–15년 빈 회의에 헤센 사절단의 서기로 참석했고, 카셀의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했습니다.

이 무렵 형제는 옛이야기를 모았습니다. 1812년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민담』 첫 권이, 1815년 둘째 권이 나왔습니다. 헨젤과 그레텔, 백설공주, 라푼첼이 여기 실렸습니다. 흔히 농민의 입에서 그대로 받아 적은 이야기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이야기꾼 가운데에는 카셀의 교양 있는 중산층 집안 젊은 여성들이 많았고, 판을 거듭하며 빌헬름이 문체를 다듬고 내용을 고쳤다는 것이 오늘날 연구로 밝혀져 있습니다.

야코프의 본업은 언어였습니다. 1819년 『독일어 문법』 첫 권을 펴냈는데, 이것은 바른 독일어를 가르치는 책이 아니라 고트어, 고대 고지 독일어, 고대 노르드어, 고대 영어 같은 게르만어들을 나란히 놓고 그 역사를 비교한 책이었습니다(비교 언어학⁠, comparative linguistics⁠). 1822년 첫 권을 전면 개정하며 그는 게르만어의 자음이 다른 인도유럽어와 규칙적으로 어긋난다는 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했습니다. 동사를 강변화와 약변화로 나누고, 모음이 바뀌는 현상에 움라우트⁠(umlaut)⁠와 아블라우트⁠(ablaut)⁠라는 이름을 붙여 퍼뜨린 것도 이 책입니다.

그가 정리한 대응은 세 줄의 사슬입니다. 첫째, 라틴어나 그리스어의 p, t, k 자리에 게르만어에서는 f, θ(영어 th), h가 옵니다. 라틴어 pater와 영어 father, 라틴어 tres와 영어 three, 라틴어 centum과 영어 hundred가 그 예입니다. 둘째, b, d, g 자리에 p, t, k가 옵니다. 라틴어 decem과 영어 ten, 라틴어 genu와 영어 knee(k는 지금 소리 나지 않지만 옛 영어에서는 소리 났습니다)가 그렇습니다. 셋째, 산스크리트어에 남은 bʰ, dʰ, gʰ 자리에 b, d, g가 옵니다. 산스크리트어 bhrātar와 영어 brother가 그 예입니다. 소리 하나하나가 따로 바뀐 것이 아니라, p, t, k가 f, θ, h로 옮겨 가며 빈 자리를 b, d, g가 채우고, 그렇게 빈 자리를 다시 bʰ, dʰ, gʰ가 채운 것처럼 체계 전체가 한 칸씩 밀린 것입니다. 수학의 말로 하면 옛 소리 하나에 새 소리 하나를 대응시키는 함수⁠(function)⁠이고, 이 함수를 알면 한 언어의 낱말에서 다른 언어의 짝 낱말을 상당 부분 예측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아래에서 보듯 예외가 남았고, 그 예외를 설명하려면 소리의 환경이라는 조건이 더 필요했습니다. 영어 ten과 독일어 zehn, 영어 water와 독일어 Wasser처럼 고지 독일어에서 한 번 더 일어난 자음 추이도 그는 함께 다루었습니다.

이 대응이 우연이 아니라는 논증은 확률⁠(probability)⁠의 논증입니다. 낱말 몇 개가 비슷한 것은 우연일 수 있지만, 수백 개의 낱말에서 같은 소리가 같은 방식으로 어긋난다면 우연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그 가능성이 작아집니다. 대응을 먼저 알아챈 사람은 덴마크의 라스크로, 1814년에 쓴 논문이 1818년 출판되었고 그림도 이를 읽었습니다. 그림 자신은 이것을 예외가 남는 '경향'으로 보았고, '그림의 법칙'이라는 이름은 뒤에 붙었습니다. 남은 예외는 1875년 덴마크의 베르너가 풀었습니다. 라틴어 pater에 대응하는 고트어가 법칙대로의 θ가 아니라 d를 가진 것은 옛 강세의 위치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자 1878년 라이프치히의 이른바 소장 문법학파⁠(Neogrammarians)⁠는 '소리 법칙⁠(sound law)⁠에는 예외가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인문학의 한 분야가 물리학처럼 예외 없는 법칙을 요구한 순간이었습니다.

1830년 그는 동생과 함께 괴팅겐 대학의 교수이자 사서가 되었습니다. 동료 가운데에는 가우스와 전신을 함께 만든 물리학자 빌헬름 베버가 있었습니다. 1837년 새 하노버 왕 에른스트 아우구스트가 즉위하자마자 1833년의 헌법을 폐기했고, 그림 형제와 베버를 포함한 교수 일곱 명은 헌법에 한 서약을 저버릴 수 없다며 공개적으로 항의했습니다. 일곱 명은 모두 해임되었고, 야코프를 비롯한 셋은 사흘 안에 나라를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괴팅겐 7교수'는 독일 자유주의 운동의 상징이 되었고, 대학의 자유가 정치 앞에서 얼마나 약한지를 보여 준 사건⁠(event)⁠으로 남았습니다.

1841년 형제는 새 프로이센 왕의 초청으로 베를린으로 옮겨 학술원 회원으로 강의하고 연구했습니다. 1838년 라이프치히의 출판사와 계약한 『독일어 사전』은 모든 독일어 낱말의 역사를 문헌의 용례로 보여 주려는 사업이었는데, 몇 해면 끝나리라던 예상과 달리 야코프가 186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F 항목의 Frucht(열매)에 이르렀을 뿐입니다. 사전은 여러 세대의 학자들이 이어 받아 1961년에야 32권으로 완성되었습니다. 1848년 혁명 때 그는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 의원으로 뽑혀, 독일 땅에서는 누구도 예속되지 않는다는 조항을 기본권에 넣자고 제안했습니다.

그의 작업에는 그림자도 있습니다. 1846년 그는 한 민족이란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말했습니다. 언어로 민족을 묶으려는 이 생각은 통일되지 않은 독일에서 해방의 구호였지만, 19세기 후반 언어의 계통을 가리키던 '아리아인'이라는 말이 인종의 이름으로 오용되면서 끝내 나치의 인종주의에 동원되었습니다. 언어학자들은 언어의 족보가 사람의 혈통과 같지 않다고 거듭 지적해 왔습니다.

그가 연 길은 오늘날 수학과 계산의 언어로 이어집니다. 1860년대 예나의 슐라이허는 언어들의 계통을 순환이 없는 그래프, 곧 트리⁠(tree)⁠로 그렸고, 오늘날에는 기본 낱말 목록에서 동족어⁠(cognate)⁠를 공유하는 비율(일종의 자카드 지수⁠(Jaccard index)⁠)이나 낱말 사이의 편집 거리⁠(edit distance)⁠를 재어, 생물의 계통수⁠(phylogenetic tree)⁠를 짓는 베이즈 통계⁠(statistics)⁠ 방법으로 인도유럽어가 언제 갈라졌는지를 추정하기도 합니다. 소리 변화를 'p → f'처럼 조건이 붙은 바꿔 쓰기 규칙으로 적는 방식은 촘스키의 생성 음운론⁠(generative phonology)⁠이 이어받았는데, 이것은 촘스키 위계⁠(Chomsky hierarchy)⁠의 문법 규칙과 같은 꼴입니다. 1970–90년대 존슨, 카플란과 케이는 규칙이 자기 결과에 되풀이해 적용되지 않는 한 이런 음운 규칙들을 유한 오토마톤⁠(finite automaton)⁠을 넓힌 유한 상태 변환기⁠(finite-state transducer)⁠로 계산할 수 있음을 보였습니다. 한 언어의 낱말을 규칙으로 다른 언어의 낱말에 대응시키는 그림의 발상은 표현 바꾸기의 오래된 예입니다.

이어지는 곳. 그의 방법은 비교 언어학으로, 언어의 족보는 트리와 편집 거리로, 바꿔 쓰기 규칙은 촘스키 위계와 유한 오토마톤으로 이어집니다. 인도의 문법학자 파니니는 그보다 2,000년 넘게 앞서 산스크리트어의 소리 규칙을 적었고, 노엄 촘스키는 규칙으로 언어를 보는 전통을 20세기에 다시 세웠습니다. 그가 쫓겨난 대학 도시의 이야기는 괴팅겐에 있습니다.

연표.

  • 1802년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며 사비니를 만나다
  • 1805년 사비니를 도와 파리에서 옛 필사본을 조사하다
  • 1808년 베스트팔렌 왕 제롬 보나파르트의 사서가 되다
  • 1812년 동생 빌헬름과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민담』 첫 권을 펴내다
  • 1815년 빈 회의에 헤센 사절단의 서기로 참석하다
  • 1819년 『독일어 문법』 첫 권을 펴내다
  • 1822년 『독일어 문법』 첫 권의 개정판에서 게르만어의 자음 추이를 정리하다
  • 1830년 괴팅겐 대학의 교수이자 사서가 되다
  • 1835년 『독일 신화』를 펴내다
  • 1837년 '괴팅겐 7교수'의 항의로 대학에서 쫓겨나다
  • 1841년 베를린으로 옮겨 프로이센 학술원 회원으로 강의하다
  • 1848년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 의원이 되다
  • 1854년 『독일어 사전』 첫 권을 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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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언어학 말을 세는 기계 문법은 규칙일까, 확률일까? 파니니의 문법에서 촘스키의 위계, 섀넌의 영어 엔트로피, 오늘날의 언어 모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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