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개념 지도
인물

헤르만 민코프스키(Hermann Minkowski)

격자점⁠(lattice point)⁠과 볼록한 도형으로 정수론⁠(number theory)⁠을 푸는 수의 기하학⁠(geometry of numbers)⁠을 세우고, 특수 상대성 이론⁠(special relativity)⁠을 시간과 공간이 하나로 묶인 4차원 시공간⁠(spacetime)⁠의 기하⁠(geometry)⁠로 다시 쓴 독일의 수학자.

s2=(ct)2−x2−y2−z2s^2 = (ct)^2 - x^2 - y^2 - z^2

헤르만 민코프스키는 1864년 러시아 제국의 카우나스 근처 알렉소타스(오늘날 리투아니아)에서 유대계 상인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러시아의 유대인 차별을 피해 가족은 그가 여덟 살 무렵 동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로 옮겼습니다. 칸트와 야코비의 도시였던 이곳의 대학은 작지만 수학의 전통이 깊었습니다. 그의 형 오스카 민코프스키는 뒷날 이자를 떼어 낸 개가 당뇨병에 걸린다는 것을 보여 인슐린 연구의 길을 연 의학자가 됩니다. 그 무렵 수학의 큰 물음 하나는 가우스 이래의 이차 형식⁠(quadratic form)⁠, 곧 x² + xy + 3y²처럼 변수의 제곱과 곱으로 된 식이 어떤 정수⁠(integer)⁠ 값을 가질 수 있는가였습니다. 피타고라스 정리⁠(Pythagorean theorem)⁠의 x² + y²가 가장 간단한 예입니다.

굵은 막대가 이 사람의 생애이고, 흰검은 점은 페이지 끝 연표에 적은 일들입니다. 가는 막대는 같은 시대를 산 이 위키의 인물들입니다. 나이를 끌어 보세요.

나이 세 ·

1881년 파리 과학 아카데미는 정수 하나를 다섯 개의 제곱수⁠(perfect square)⁠의 합으로 나타내는 방법이 몇 가지인지를 구하라는 현상 문제를 냈습니다. 열일곱 살의 민코프스키는 규정과 달리 독일어로 쓴 긴 논문을 보내, 문제를 훨씬 넘어 이차 형식의 일반 이론을 세웠습니다. 1883년 아카데미는 그에게 대상을 주었는데, 같은 결과를 1867년에 이미 발표했던 영국의 헨리 스미스와 공동 수상이었습니다. 스미스는 그 몇 주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프랑스의 일부 신문은 외국의 어린 학생에게 상을 준 것을 비난했지만, 심사위원 카미유 조르당은 그를 격려하는 편지를 보냈다고 전합니다.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서 그는 두 살 위의 다비트 힐베르트, 젊은 교수 아돌프 후르비츠와 날마다 오후 다섯 시에 '사과나무까지' 산책하며 수학을 이야기했습니다. 힐베르트는 뒷날 이 산책에서 자신들이 수학의 거의 모든 구석을 훑었다고 회고했습니다. 1885년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그는 본(1887), 쾨니히스베르크(1894),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1896)으로 옮겨 다녔고, 떨어져 있는 동안에는 힐베르트와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독일 수학회가 정수론의 현황 보고서를 두 사람에게 함께 맡겼을 때 그는 도중에 빠졌고, 1897년 힐베르트 혼자 이름으로 나온 『수론 보고서』는 20세기 대수적 정수론⁠(algebraic number theory)⁠의 교과서가 되었습니다.

1896년에 첫 부분이 나온 『수의 기하학』에서 그는 정수론의 문제를 그림으로 바꾸었습니다. 좌표가 모두 정수인 점, 곧 격자점을 생각합시다. 민코프스키의 정리는 원점에 대해 대칭이고 볼록한 평면 도형의 넓이⁠(area)⁠가 4보다 크면, 그 안에 원점이 아닌 격자점이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n차원에서는 부피가 2ⁿ보다 크면). 4라는 수는 더 줄일 수 없습니다. −1 < x < 1, −1 < y < 1인 열린 정사각형은 넓이가 정확히 4인데, 원점 말고는 격자점이 없습니다. 이 단순한 사실이 놀라운 힘을 가집니다. 예를 들어 4로 나눈 나머지⁠(remainder)⁠가 1인 소수⁠(prime number)⁠ p(5, 13, 17, …)는 모두 두 제곱수의 합이라는 페르마의 정리를 봅시다. a² + 1이 p로 나누어떨어지는 a를 하나 잡으면, y ≡ ax (mod p)인 점 (x, y)들이 넓이 p짜리 칸으로 된 격자를 이룹니다(모듈러 연산⁠, modular arithmetic⁠). 반지름 √(2p)인 원은 넓이가 2πp로 4p보다 크니 그 안에 원점 아닌 격자점이 있고, 그 점에서 x² + y²는 p로 나누어떨어지면서 2p보다 작으므로 정확히 p입니다. 이 방법은 대수적 정수론에서 이데알류의 개수가 유한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표준 도구가 되었습니다(소수, 정수론).

볼록한 도형은 거리도 정합니다. 원점에 대칭인 볼록 도형 하나를 '반지름 1인 공'으로 정하면, 점까지의 거리를 그 도형을 몇 배로 키워야 점에 닿는지로 잴 수 있습니다. 원을 고르면 보통의 유클리드 거리⁠(Euclidean distance)⁠, 마름모를 고르면 맨해튼 거리⁠(Manhattan distance)⁠, 정사각형을 고르면 체비쇼프 거리⁠(Chebyshev distance)⁠가 나오고, 그 사이를 잇는 것이 Lp 노름⁠(Lp norm)⁠입니다. 이런 거리가 삼각 부등식⁠(triangle inequality)⁠을 지킨다는 민코프스키 부등식⁠(Minkowski inequality)⁠도 이 책에 있습니다(거리 함수⁠(metric)⁠). 그는 또 두 이차 형식이 유리수⁠(rational number)⁠ 계수의 변수 바꾸기로 서로 옮겨 가는지를, 실수⁠(real number)⁠에서의 정보와 각 소수 p에 대한 나머지 정보만으로 판정할 수 있음을 보였습니다. 1921년 헬무트 하세는 이를 넓혀, x² + y² − 3z² = 0 같은 이차 형식 방정식이 0 아닌 유리수 해를 가질 필요충분조건은 실수에서 풀리고 모든 소수 p에 대해 p의 모든 거듭제곱을 법으로 (모두 p의 배수⁠(multiple)⁠는 아닌) 해가 있는 것임을 증명했습니다. 이 예는 9를 법으로 보면 막힙니다. x² + y²가 3의 배수이려면 x와 y가 모두 3의 배수여야 하고, 그러면 3z²가 9의 배수가 되어 z도 3의 배수가 되니, 모두 3의 배수는 아닌 해가 없습니다. 그래서 0 아닌 유리수 해가 없습니다. 하세–민코프스키 정리라 불리는 이 결과는, 국소적인 정보를 모두 모으면 전체를 알 수 있다는 생각의 본보기입니다(국소에서 전체로).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에서 그의 학생 가운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그의 친구 마르셀 그로스만이 있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강의를 자주 빼먹었고, 민코프스키는 뒷날 막스 보른에게 그가 그런 이론을 내놓을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고 전합니다. 1902년 힐베르트는 프로이센 교육부를 설득해 괴팅겐에 그를 위한 교수 자리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1905년 두 사람은 물리학자들과 함께 전자와 전자기학에 관한 세미나를 열어 헨드릭 로렌츠와 푸앵카레의 논문을 읽었습니다. 움직이는 물체의 전자기 현상을 어떻게 기술할지가 그 무렵 물리학의 가장 뜨거운 문제였습니다.

1907년 괴팅겐 수학회의 강연과 1908년 9월 쾰른의 독일 자연과학자·의사 대회 강연 「공간과 시간」에서 그는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을 기하로 다시 썼습니다. 한 사건⁠(event)⁠은 시각 t와 위치 (x, y, z), 네 개의 좌표를 가집니다. 서로 움직이는 두 관찰자는 두 사건 사이의 시간 간격에도, 공간 거리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s² = (ct)² − x² − y² − z²에는 모두 동의합니다. 평면에서 축을 돌리면 x와 y는 바뀌어도 x² + y²는 그대로인 것과 같은 구조입니다(회전 행렬⁠(rotation matrix)⁠). 다만 부호 하나가 달라서, 시공간의 '회전⁠(rotation)⁠'인 로렌츠 변환⁠(Lorentz transformation)⁠은 점을 원 대신 쌍곡선⁠(hyperbola)⁠을 따라 옮깁니다(원뿔곡선⁠(conic section)⁠). s²이 양수인 두 사건은 어떤 관찰자에게는 같은 장소에서 차례로 일어나고, 음수인 두 사건은 어떤 신호로도 이을 수 없으며, 0인 두 사건은 빛으로 이어집니다. 한 사건에서 빛이 퍼져 나가는 원뿔, 곧 빛원뿔⁠(light cone)⁠이 원인과 결과의 경계가 됩니다. 강연 첫머리에는 널리 알려진 문장이 있습니다. "이제부터 공간 그 자체와 시간 그 자체는 그림자 속으로 사라질 운명이고, 둘의 어떤 결합만이 독립⁠(independence)⁠된 실재를 지킬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처음에 이 수학을 쓸데없이 현학적인 것으로 여겼다고 전하지만, 몇 해 뒤 중력 이론을 세우면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1915년의 일반 상대성 이론⁠(general relativity)⁠은 민코프스키 시공간을 휘게 만든 것입니다. 작은 영역만 보면 휜 시공간도 민코프스키 시공간처럼 보이고, 자유 낙하하는 물체는 휜 시공간에서 가장 곧은 길인 측지선⁠(geodesic)⁠을 따릅니다. 그러나 민코프스키는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1909년 1월 맹장염으로 마흔넷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힐베르트는 추도 연설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를 잃은 슬픔을 털어놓았습니다. 몇 해 뒤 힐베르트가 물리학으로 눈을 돌린 데에는 친구와 함께 시작한 이 관심도 한몫했다고 여겨집니다. 그 자리는 정수론의 에드문트 란다우가 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두 갈래는 모두 오늘날 살아 있습니다. '민코프스키 공간⁠(Minkowski space)⁠'은 물리학의 기본 무대가 되었고, 시간과 공간을 한 내적⁠(dot product)⁠으로 묶는 그의 방식은(시간 쪽 부호가 반대라 제곱이 음수도 될 수 있는 '내적'입니다) 대칭으로 물리 법칙을 찾는 20세기 물리학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대칭과 불변량⁠(invariant)⁠). 수의 기하학은 격자와 공 쌓기의 수학으로 자랐고, 격자에서 가장 짧은 벡터⁠(vector)⁠를 찾는 문제는 오늘날 양자 컴퓨터⁠(quantum computer)⁠에도 견딜 암호의 기초⁠(basics)⁠로 연구됩니다. 거리를 볼록한 도형 하나로 정하는 그의 생각은 기계 학습⁠(machine learning)⁠에서 여러 거리를 골라 쓰는 일에까지 이어집니다.

이어지는 곳. 볼록한 도형이 정하는 거리는 Lp 노름, 거리 함수, 맨해튼 거리에서, 시공간의 기하는 일반 상대성 이론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서 이어집니다. 평생의 친구 힐베르트와 함께한 괴팅겐, 국소 정보로 전체를 아는 방법은 국소에서 전체로에서 이어집니다.

관계.

가운데가 이 사람, 둘레가 이어진 인물들입니다. 선의 색은 관계의 종류(초록 스승·제자, 파랑 함께 연구, 보라 편지, 빨강 논쟁, 주황 영향)이고, 다른 인물의 페이지에 적힌 관계도 함께 모았습니다.

  • 함께 연구 다비트 힐베르트 — 쾨니히스베르크 시절부터 날마다 함께 걸으며 수학을 이야기한 평생의 친구였고, 1902년 힐베르트의 주선으로 괴팅겐에 와서 1905년 전자 이론 세미나를 함께 열었습니다.
  • 제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에서 그를 가르쳤고, 1908년 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을 4차원 시공간의 기하로 다시 썼습니다.
  • 영향을 받음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 가우스가 『산술 연구』에서 시작한 이차 형식의 이론을 이어받아 첫 연구를 했고, 그것을 격자와 볼록한 도형의 기하로 바꾸었습니다.
  • 영향을 받음 앙리 푸앵카레 — 푸앵카레가 1905–06년 시간을 허수⁠(imaginary number)⁠ 좌표로 넣은 4차원 표현을 먼저 썼고, 그는 이를 시공간의 기하 전체로 넓혔습니다.

연표.

  • 1872년 가족이 쾨니히스베르크로 옮기다
  • 1883년 다섯 제곱수의 합에 관한 연구로 파리 과학 아카데미 대상을 받다
  • 1885년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박사 학위를 받다
  • 1887년 본 대학에서 가르치기 시작하다
  • 1896년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으로 옮기고 『수의 기하학』 첫 부분을 펴내다
  • 1902년 괴팅겐 대학 교수가 되다
  • 1905년 힐베르트와 전자 이론 세미나를 열다
  • 1907년 괴팅겐 수학회에서 상대성 원리에 관해 강연하다
  • 1908년 쾰른에서 '공간과 시간' 강연을 하다
관련된 시대와 장소괴팅겐

이 인물이 나오는 긴 글

거리와 유사도 까마귀와 택시 까마귀는 곧장 날고 택시는 블록을 돌아간다. '얼마나 먼가'에는 답이 하나가 아니고, 어떤 거리를 고르느냐가 통계와 기계 학습의 답을 바꾼다. 매칭과 흐름 짝을 찾는 알고리즘 의대 졸업생과 병원, 신장 기증자와 환자, 철도와 화물. 누구를 누구와 이을지 정하는 수학은 냉전의 철도 지도에서 노벨 경제학상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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