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릭스 클라인(Felix Klein)
기하학을 변환의 군과 그 아래에서 변하지 않는 성질로 분류한 에를랑겐 강령(Erlangen program)을 내놓고, 괴팅겐을 세계 수학의 중심으로 조직한 독일의 수학자.
펠릭스 클라인은 1849년 프로이센의 라인 지방 뒤셀도르프에서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가 자란 19세기 중반, 기하학은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었습니다. 유클리드 기하(geometry)가 있고, 원근법에서 자라 길이 대신 '한 직선 위에 있는가'만 따지는 사영기하(projective geometry)가 있고, 로바쳅스키와 보여이의 쌍곡기하(hyperbolic geometry)와 1868년에야 출판된 리만의 휘어진 공간이 있었습니다. 이것들이 서로 어떤 관계인지, 도대체 '기하학'이란 무엇인지를 한마디로 말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클라인은 스물세 살에 그 답을 내놓았고, 뒤에는 괴팅겐을 세계 수학의 중심으로 조직했습니다. 1871년 통일된 독일 제국이 과학과 산업으로 영국과 프랑스를 따라잡으려던 시대가 그 배경이었습니다.
나이
본 대학에서 그는 물리학자이자 기하학자인 플뤼커의 조수로 일하며 직선들을 원소(element)로 삼는 기하를 연구해 1868년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해 플뤼커가 죽자 스승이 남긴 책을 마무리했습니다. 1869년 베를린에서 노르웨이의 소푸스 리를 만났고, 이듬해 둘은 파리로 가서 카미유 조르당이 막 펴낸 치환군 이론을 접했습니다. 1870년 7월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이 터지자 클라인은 급히 돌아왔고, 프랑스에 남은 리는 기하 도형을 적은 노트 때문에 간첩으로 몰려 한동안 갇혔습니다. 두 젊은이가 파리에서 나눈 생각, 곧 기하를 변환의 군으로 보자는 생각이 둘의 평생 일이 되었습니다.
1871년 논문 「이른바 비유클리드 기하(non-Euclidean geometry)에 대하여」에서 클라인은 영국의 케일리가 1859년 내놓은 사영 계량을 비유클리드 기하에 적용했습니다. 원판 하나를 우주 전체로 보고, 원판 안의 현을 '직선'이라 부르고, 두 점 사이의 거리를 그 두 점과 현의 양 끝점이 이루는 복비(cross-ratio)의 로그로 정의합니다. 그러면 가장자리로 갈수록 거리가 한없이 늘어나 가장자리는 어떤 유한한 거리로도 닿을 수 없는 곳이 되고, 현 밖의 한 점을 지나며 그 현과 만나지 않는 현이 무수히 많습니다. 로바쳅스키의 공리(axiom)가 유클리드 평면 안의 그림으로 그대로 실현된 것입니다. 그러니 유클리드 기하에 모순이 없다면 쌍곡기하에도 모순이 없습니다(평행선 공준(parallel postulate)). 그는 곡률(curvature)이 음수, 0, 양수인 기하에 쌍곡, 포물, 타원(ellipse) 기하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원판은 오늘날 클라인 모형(Klein model)이라 불리고(이탈리아의 벨트라미가 1868년 같은 모형을 다른 길로 얻었기에 벨트라미–클라인 모형(Beltrami–Klein model)이라고도 합니다), 각을 그대로 보존하는 푸앵카레 원판(Poincaré disk)과 짝을 이룹니다.
이듬해 1872년 에를랑겐 대학 교수로 취임하며 그는 「최근의 기하학 연구에 대한 비교 고찰」이라는 소책자를 내놓았습니다. 오늘날 '에를랑겐 강령'이라 부르는 이 글의 생각은 간단합니다. 공간과, 그 공간을 옮기는 변환들의 모임(군)을 하나 정하면, 그 모든 변환 아래에서 변하지 않는 성질을 연구하는 것이 하나의 기하학이라는 것입니다. 밀고 돌리고 뒤집는 변환만 허락하면 길이와 각과 넓이(area)가 변하지 않고, 이것이 유클리드 기하입니다. 확대와 축소까지 허락하면 길이는 변하지만 각과 비율은 남습니다. 비스듬히 늘이는 변환(선형 변환)까지 허락하면 각도 무너지고 평행, 한 직선 위의 길이의 비, 넓이의 비 같은 것만 남아, 모든 삼각형이 같아집니다. 원근법으로 비추는 변환까지 허락하면 평행마저 무너지고 '한 직선 위에 있다'는 것과 위에 적은 복비만 남는데, 이때는 원, 타원, 포물선(parabola), 쌍곡선(hyperbola)이 모두 같은 도형이 됩니다(원뿔곡선(conic section)). 허락하는 변환이 많을수록 남는 성질은 적고 기하학은 더 일반적입니다. 쌍곡기하는 사영 변환 가운데 원 하나를 제자리에 두는 것들의 기하이고, 연속적으로 늘이고 구부리는 변환까지 허락하면 위상수학(topology)이 됩니다. 이 강령은 처음에는 조용히 읽혔지만 1890년대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영어로 옮겨지며 기하학의 지도가 되었습니다(대칭과 불변량(invariant)).
뮌헨과 라이프치히에서 그는 복소함수(complex function)로 눈을 돌렸습니다. 사인(sine) 함수(function)가 2π만큼 밀어도 같은 값을 주듯, 원판을 제자리로 옮기는 변환들의 군 아래에서 변하지 않는 함수, 곧 보형 함수(automorphic function)가 그의 주제였습니다. 1881년 파리의 젊은 푸앵카레가 같은 대상을 다루며 독일 수학자 푹스의 이름을 붙이자, 클라인은 편지로 이의를 제기했고, 두 사람은 1881–82년 정중하지만 날 선 편지를 주고받으며 경주하듯 논문을 냈습니다. 클라인은 1882년 가을 이 경쟁의 긴장 속에서 건강을 크게 해쳤고, 그 뒤로 이전 같은 창조적 연구는 하지 못했다고 스스로 회고했습니다. 같은 해 그는 안팎의 구별이 없는 닫힌 곡면을 소개했습니다. 오늘날 클라인 병(Klein bottle)이라 부르는 이 곡면은 3차원 공간에서는 스스로를 뚫지 않고는 만들 수 없습니다. 독일어로 '곡면'(Fläche)이 '병'(Flasche)으로 잘못 옮겨져 이름이 굳었다는 이야기가 전하지만 확실하지 않습니다(위상수학).
1884년의 『정이십면체 강의』는 그의 방식을 가장 잘 보여 줍니다. 아벨과 갈루아는 5차 방정식에 근의 공식(quadratic formula)이 없음을 보였습니다(다항식(polynomial)). 클라인은 정이십면체를 제자리에 겹치는 60가지 회전(rotation)이 이루는 군이, 5차 방정식의 근을 뒤섞는 대칭(갈루아의 군)의 핵심 부분과 같은 구조라는 것을 이용해, 근호 대신 정이십면체의 대칭에서 나온 함수로 5차 방정식을 푸는 방법을 보였습니다. 정다면체(regular polyhedron)의 기하, 방정식의 대수, 복소함수가 한 권의 책에서 만났습니다(1의 거듭제곱근(roots of unity), 복소수(complex number)).
1886년 괴팅겐으로 온 그는 연구자에서 조직가로 변신했습니다. 학술지 『수학 연보』를 이끌고, 프로이센 문교부의 실력자 알트호프와 손잡아 1895년 힐베르트를, 1902년 민코프스키를 불러왔습니다. 1898년에는 화학 회사를 이끈 뵈팅거 같은 기업가들과 응용 수학·물리학 진흥 협회를 만들어 기업의 돈으로 연구소를 세웠고, 그 결과 1904년 룽게가 독일 첫 응용수학 교수로, 프란틀이 공기역학 연구자로 괴팅겐에 왔습니다. 수학의 모든 분야를 정리하는 『수리과학 백과사전』도 그가 1898년 시작한 사업입니다.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의 수학 대회에 독일 대표로 가서 에번스턴에서 강의한 뒤로 미국 학생들이 괴팅겐으로 몰려왔고, 여성에게도 문을 열어 1895년 영국의 그레이스 치즘이 그의 지도로 정규 절차를 거친 독일 첫 여성 박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학교 수학에도 손을 댔습니다. 김나지움의 수학이 옛 유클리드 기하와 계산 연습에 머물러 있다고 본 그는, 변하는 양 사이의 관계, 곧 함수의 생각을 학교 수학의 중심에 놓고 고등학교에서 미적분(calculus)의 기초(미분계수(derivative))를 가르치자고 주장했습니다. 1905년 독일 자연과학자 협회가 메란에서 채택한 교육 과정 안이 이 생각을 담았습니다. 1908년 로마의 국제 수학자 대회에서 국제 수학 교육 위원회가 생기자 초대 위원장이 되었고, 같은 해 교사들을 위해 『높은 관점에서 본 초등 수학』을 펴냈습니다. 학교에서 대학으로 갈 때 한 번, 대학을 마치고 교사로 학교에 돌아갈 때 또 한 번 배운 수학이 끊긴다는 그의 '이중 단절' 진단은 지금도 수학 교육에서 인용됩니다.
1914년 10월 독일 지식인 93명이 독일군의 벨기에 침공을 변호하는 선언을 냈을 때 그는 서명했고, 힐베르트는 서명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1915년 두 사람은 대학 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에미 뇌터를 괴팅겐에 불렀습니다. 그와 힐베르트가 일반 상대성 이론(general relativity)에서 에너지 보존 법칙이 어떻게 되는지 묻자, 뇌터는 1918년 연속적인 대칭 하나마다 보존되는 양이 하나씩 따른다는 정리와 그 짝이 되는 정리로 답했고, 여성이 학회 회원이 될 수 없던 때라 클라인이 그 논문을 괴팅겐 학회에 대신 소개했습니다. 같은 무렵 그는 아인슈타인과 편지로 상대성 이론의 수학을 따졌고, 1910년에는 상대성 이론을 로렌츠 변환(Lorentz transformation)의 군에 대한 불변량 이론이라 부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에를랑겐의 생각이 물리학으로 건너간 것입니다. 그는 1925년 괴팅겐에서 세상을 떠났고, 그가 계획한 괴팅겐 수학 연구소 건물은 록펠러 재단의 지원으로 1929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에를랑겐 강령은 리의 연속군과 카르탕의 기하로 이어졌고, 오늘날 물리학이 이론을 그 대칭의 군으로 분류하는 방식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무엇이 변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이 변하지 않는지로 대상을 정의하는 그의 방법은 대칭과 불변량의 가장 분명한 선언입니다. 그가 모은 괴팅겐의 사람들은 1933년 나치 정권의 추방으로 흩어져 프린스턴 같은 곳에서 다음 세기의 수학을 이끌었습니다.
이어지는 곳. 그의 원판은 쌍곡기하와 푸앵카레 원판으로, 에를랑겐 강령은 군, 사영기하, 원뿔곡선, 위상수학으로 이어집니다. 그의 괴팅겐은 괴팅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사영 계량을 준 케일리, 경쟁자 푸앵카레, 그가 부른 힐베르트와 에미 뇌터를 함께 읽으면 좋습니다.
관계.
- 영향을 받음 니콜라이 로바쳅스키 — 1871년 논문에서 로바쳅스키의 기하를 원 안의 모형으로 그려, 유클리드 기하에 모순이 없다면 이 기하에도 모순이 없음을 보였습니다.
- 영향을 받음 베른하르트 리만 — 1882년 리만 곡면(Riemann surface) 위의 함수를 곡면 위를 흐르는 전류의 그림으로 해설한 책 『리만의 대수 함수론에 대하여』를 썼습니다.
- 논쟁 앙리 푸앵카레 — 1881–82년 보형 함수의 이름과 우선권을 두고 정중하지만 날 선 편지를 주고받으며 경주하듯 논문을 냈고, 푸앵카레는 한 부류의 함수에 '클라인 군'이라는 이름을 붙여 응수했습니다.
- 함께 연구 다비트 힐베르트 — 1895년 힐베르트를 괴팅겐에 부른 뒤 두 사람은 한 세대 동안 그곳을 함께 이끌었고, 1915년 뇌터를 교수진에 들이려 함께 싸웠습니다.
- 함께 연구 에미 뇌터 —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에너지 보존이 어떻게 되느냐는 그와 힐베르트의 질문에 뇌터가 1918년 정리로 답했고, 그는 그 논문을 괴팅겐 학회에 대신 소개했습니다.
- 편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1917–18년 일반 상대성 이론의 에너지 보존과 우주의 모양을 두고 아인슈타인과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연표.
- 1866년 본 대학에서 플뤼커의 물리 실험 조수가 되다
- 1868년 플뤼커 아래에서 박사 학위를 받다
- 1870년 파리에서 소푸스 리와 지내다가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으로 돌아오다
- 1871년 「이른바 비유클리드 기하에 대하여」를 발표하다
- 1872년 스물세 살에 에를랑겐 대학 교수가 되어 에를랑겐 강령을 내놓다
- 1875년 뮌헨 공과대학으로 옮기고 안나 헤겔과 결혼하다
- 1880년 라이프치히 대학 교수가 되다
- 1882년 푸앵카레와의 경쟁 끝에 건강이 무너지고, 안팎이 없는 곡면을 소개하다
- 1884년 『정이십면체 강의』를 펴내다
- 1886년 괴팅겐 대학 교수가 되다
-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의 수학 대회에 참석하고 에번스턴에서 강의하다
- 1895년 힐베르트를 괴팅겐으로 부르다
- 1898년 기업가들과 응용 수학·물리학 진흥 협회를 세우다
- 1908년 국제 수학 교육 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이 되다
- 1913년 괴팅겐 대학에서 은퇴하다
- 1918년 뇌터의 보존 법칙 논문을 괴팅겐 학회에 대신 소개하다
이 인물이 나오는 긴 글
이 인물을 언급하는 페이지
- 푸앵카레 원판
… 벨트라미–클라인 모형은 원판 안에서 직선을 곧은 현으로 그리는 대신 각이 보이는 것과 달라집니다(펠릭스 클라인). 지도는 달라도 기하는 하나입니다. 어느 모형에서든 직선은 가장 짧은 길인 측지선이고, ⟦가우스 …
- 공리와 공준
… 쌍곡기하의 모형을 만들어, 유클리드 기하에 모순이 없다면 쌍곡기하에도 모순이 없음을 보였습니다. 뒤이어클라인과 푸앵카레도 모형을 냈습니다(푸앵카레 원판). 그러니 유클리드 기하에 모순이 없는 한, 다섯째 …
- 군
… '군'(groupe)이라는 말도 갈루아가 쓴 것입니다. 군은 곧 방정식을 넘어섰습니다. 1872년펠릭스 클라인은 에를랑겐 목록에서, 기하학이란 어떤 변환들의 군이 바꾸지 않는 성질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정리했습니다. …
- 위상수학
… 전체로⟧와 표현 바꾸기로 이어집니다. 도형을 그 모양을 보존하는 변환으로 분류하는 관점은 사영기하와펠릭스 클라인의 에를랑겐 프로그램에 있습니다. 위상수학의 생각은 논리와 프로그램으로도 건너갑니다. 열린 집합마다 '그 …
- 사영기하
… 세웠고, 1859년 아서 케일리는 '사영기하가 곧 모든 기하'라는 뜻의 말을 남겼습니다. 1872년펠릭스 클라인은 에를랑겐 프로그램에서 기하학이란 어떤 변환의 모임(군)으로 바뀌지 않는 성질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
- 일반 상대성 이론
… 변분법으로 같은 방정식에 이르렀고, 이 이론에서 에너지 보존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힐베르트와펠릭스 클라인의 질문에 답하면서 에미 뇌터는 1918년 대칭과 보존 법칙을 잇는 뇌터 정리를 증명했습니다. 세 가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