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안 하위헌스(Christiaan Huygens)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로, 처음 인쇄된 확률(probability) 책에서 기댓값(expected value)을 계산의 중심에 세우고, 진자시계(pendulum clock)를 발명해 사이클로이드(cycloid)가 정확한 등시곡선(tautochrone)임을 증명했으며, 원심력(centrifugal force)의 크기와 빛의 파동 이론을 세워 뉴턴과 라이프니츠 사이의 세대를 잇고 파리 과학 아카데미의 기둥이 된 사람.
크리스티안 하위헌스는 1629년 네덜란드 공화국의 헤이그에서 태어났습니다. 에스파냐에서 독립(independence)하려는 80년 전쟁의 끝 무렵, 네덜란드는 동인도 회사의 무역으로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되어 있었고, 렌즈를 가는 장인과 인쇄소와 대학이 모인 학문의 중심이었습니다. 아버지 콘스탄테인 하위헌스는 오라녜 공의 비서로 일한 외교관이자 시인이었고, 데카르트와 메르센과 편지를 나누는 사이였습니다. 크리스티안은 집에서 가정교사에게 배웠고, 아버지는 재능을 보인 아들을 '나의 아르키메데스'라고 불렀다고 전합니다. 그는 뉴턴보다 열세 살 위였고, 갈릴레이와 데카르트의 세대와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세대 사이를 이은 사람이었습니다. 확률, 시계, 역학, 광학, 천문학에서 그가 남긴 것은 오늘날의 교과서 곳곳에 들어 있습니다.
나이
데카르트의 집안에서. 1645년부터 레이던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며, 데카르트의 『기하학』을 라틴어로 옮기고 해설한 프란스 판스호턴에게 수학을 배웠습니다. 데카르트는 하위헌스 집안을 드나들었고, 젊은 크리스티안은 좌표로 곡선을 다루는 새 기하학을 일찍 익혔습니다. 열일곱 살이던 1646년, 그는 파리의 메르센과 편지를 나누며 늘어뜨린 사슬이 그리는 곡선이 갈릴레이가 짐작한 포물선(parabola)이 아니라는 것을 보였습니다. 그 곡선의 정체는 반세기 뒤에 현수선(catenary)으로 밝혀집니다. 1651년에는 원의 넓이(area)를 정확히 구했다고 주장한 벨기에의 수학자 생뱅상의 책에서 오류를 찾아냈고, 1654년에는 원주율(pi)을 가두는 아르키메데스의 방법을 날카롭게 다듬었습니다. 그가 증명한 부등식 하나에 따르면, 원에 내접하는 정
토성의 고리와 철자 수수께끼. 1655년 그는 형과 함께 직접 간 렌즈로 만든 망원경으로 토성 둘레를 도는 위성 타이탄을 발견했습니다. 갈릴레이는 토성 양옆에 '귀'가 달린 것처럼 보인다며 어리둥절해했는데, 하위헌스는 그것이 토성을 둘러싼 얇고 평평한 고리이고 어디에서도 토성에 닿지 않으며 황도면에 기울어져 있어서, 지구에서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 바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1656년 이 설명을 라틴어 문장의 글자를 알파벳 순서로 늘어놓은 철자 수수께끼로 먼저 발표하고, 1659년 『토성계』에서 풀어 보였습니다. 결과를 확신하기 전에 우선권만 확보하는 이 방식은 편지 공화국의 관행이었습니다.
첫 확률 책. 1655년 처음 파리에 간 그는 두 해 전 파스칼과 페르마가 편지로 다룬 판돈 나누기 문제를 전해 들었지만, 두 사람을 만나지는 못했고 그들의 풀이도 보지 못했습니다. 네덜란드로 돌아와 스스로 푼 결과를 1657년 스승 판스호턴의 책에 부록으로 실은 것이 『주사위 놀이의 계산에 대하여』입니다. 카르다노가 한 세기 앞서 쓴 도박의 원고가 1663년에야 인쇄되었으니, 확률을 다룬 책으로 인쇄된 것은 이것이 처음입니다. 이 책의 중심 개념이 기댓값입니다. 첫 명제는 똑같은 가능성으로
교과서가 된 소책자. 이 책은 반세기 가까이 확률의 거의 유일한 교과서였습니다. 야코프 베르누이는 『추측술』(1713)의 1부에 이 책을 통째로 싣고 주석을 달았고, 그 위에 큰 수의 법칙(law of large numbers)을 세웠습니다. 드무아브르도 이 책으로 확률에 입문했습니다. 1669년 하위헌스는 동생 로데베이크와 편지를 나누며, 런던의 그라운트가 사망 기록으로 만든 생명표(life table)에서 사람이 앞으로 몇 년을 더 살지를 따졌습니다. 그는 여기서 두 가지 물음을 구분했습니다. 남은 수명의 평균(mean), 곧 기댓값을 묻는 것과, 절반의 사람이 살아남는 나이를 묻는 것은 다른 물음이며, 목숨을 거는 내기라면 뒤쪽이 알맞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말로 기댓값과 중앙값(median)의 구분입니다.
진자시계. 1656년 성탄절 무렵 그는 진자로 톱니바퀴의 빠르기를 고르게 하는 시계를 만들었고, 이듬해 특허를 받아 헤이그의 시계공이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하루에 몇 분씩 틀리던 시계가 이제 훨씬 작은 오차로 시간을 지켰습니다. 그가 노린 것은 바다에서의 경도였습니다. 배가 동서로 얼마나 왔는지 알려면 출발지의 시각을 정확히 지니고 다녀야 하는데, 동인도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이것은 돈과 목숨이 걸린 문제였습니다. 1660년대에 그의 해상 시계를 배에 싣고 시험했지만, 흔들리는 배 위에서 진자는 믿을 만하지 않았습니다. 바다의 경도 문제는 18세기 영국의 해리슨이 만든 태엽 시계로 풀렸습니다. 시계를 더 정확하게 만들려던 그는 진자 자체의 결함에 부딪혔습니다. 갈릴레이는 진자가 크게 흔들리든 작게 흔들리든 한 번 왕복하는 시간이 같다고 했지만, 이것은 흔들림이 작을 때만 맞습니다. 원호를 따라 움직이는 추를 되돌리는 힘은 기울어진 각
감기는 실이 그리는 곡선. 추를 사이클로이드 위로 움직이게 하려고 그는 진자의 실이 매달린 곳 양옆에 휘어진 금속판을 댔습니다. 실이 흔들리며 판에 감겼다 풀리면 추가 그리는 곡선이 바뀝니다. 그는 판을 사이클로이드 모양으로 만들면 추가 그리는 곡선도 똑같은 크기의 사이클로이드가 된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이 문제를 일반화한 것이 1673년 『진자시계』의 축폐선(evolute)과 신개선(involute) 이론입니다. 곡선에 감긴 실을 팽팽하게 풀어 갈 때 실 끝이 그리는 곡선이 신개선이고, 거꾸로 한 곡선의 각 점에서 그 점 근처를 가장 잘 흉내 내는 원, 곧 곡률원(osculating circle)의 중심들이 그리는 곡선이 축폐선입니다. 그는 곡선이 얼마나 휘었는지를 그 원의 반지름으로 재는 곡률(curvature)의 개념을 체계적으로 다룬 가장 이른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반지름이 작을수록 많이 휜 것이고, 곡률은 그 반지름의 역수입니다. 한 세기 반 뒤 가우스는 이 생각을 곡면의 휘어짐으로 넓혔습니다(가우스 곡률, Gaussian curvature). 같은 책에서 그는 흔들림이 작을 때 진자의 주기가
원심력과 충돌. 1659년 그는 원운동을 하는 물체가 바깥으로 벗어나려는 힘을 계산해, 그 크기가 속력의 제곱에 비례하고 반지름에 반비례한다는 것, 곧
파리의 12년. 1666년 루이 14세의 재상 콜베르가 파리 과학 아카데미를 세우며 그를 불렀습니다. 그는 넉넉한 연금과 왕립 도서관 안의 거처를 받고 아카데미의 물리학 연구를 이끌었습니다(왕립학회와 과학 아카데미). 1672년 프랑스가 네덜란드를 침공해 전쟁이 벌어졌을 때도 그는 파리에 머물렀습니다. 같은 해 외교 임무로 파리에 온 스물여섯 살의 라이프니츠를 만나, 삼각수(triangular number)의 역수(inverse)를 모두 더한
빛은 물결이다. 1679년 그는 아카데미에서 빛의 파동 이론을 발표했고, 1690년 『빛에 관한 논고』로 펴냈습니다. 빛이 우주를 채운 매질 속을 퍼져 나가는 물결이라면, 한 순간의 물결 앞면 위의 모든 점이 저마다 작은 둥근 물결을 새로 내보내고, 잠시 뒤의 앞면은 그 작은 물결들을 모두 감싸는 곡면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위헌스의 원리(Huygens' principle)'입니다. 국소적인 규칙 하나로 물결 전체의 모양을 한 걸음씩 지어 가는 이 생각으로(국소에서 전체로), 그는 반사의 법칙(law of reflection)과, 빛이 두 물질의 경계에서 꺾일 때 입사각과 굴절각의 사인(sine)의 비가 두 물질에서의 빛의 속도의 비와 같다는 굴절의 법칙을 이끌어 냈습니다. 이 설명대로라면 빛은 유리나 물속에서 더 느려야 하는데, 이는 빛을 알갱이로 본 뉴턴의 설명이 예측한 것과 반대였습니다. 1850년 프랑스의 푸코가 물속에서 빛이 더 느리다는 것을 재어 이 물음에 답했습니다. 그는 같은 원리로 아이슬란드 방해석을 지난 빛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복굴절(double refraction)도 설명했습니다(파동방정식(wave equation)).
뉴턴과의 거리. 1687년 뉴턴의 『프린키피아』가 나오자 하위헌스는 그 수학에 감탄했고, 1689년 런던을 찾아 뉴턴을 직접 만났습니다. 그러나 멀리 떨어진 물체끼리 아무 매개 없이 당긴다는 만유인력은 데카르트식 기계론에 익숙한 그에게 설명이 아니라 신비한 성질을 끌어들이는 일로 보였고, 1690년 『중력의 원인에 관한 논고』에서 소용돌이치는 미세한 물질로 무게를 설명하려 했습니다. 빛에 대해서도 뉴턴의 1704년 『광학』이 입자설로 18세기를 지배하는 바람에, 그의 파동설은 1800년대 초 영국의 영과 프랑스의 프레넬이 간섭 현상으로 되살릴 때까지 한 세기 동안 뒷전으로 밀렸습니다. 프레넬은 하위헌스의 원리에 간섭을 더해 오늘날 '하위헌스–프레넬 원리'라 부르는 형태로 완성했습니다.
연분수(continued fraction)로 깎은 톱니. 말년에 그는 행성들이 실제 주기의 비율대로 도는 태양계 모형을 만들었습니다. 톱니바퀴로 이 비율을 흉내 내려면 톱니 수의 비가 주기의 비에 가까워야 하는데, 톱니를 수만 개씩 깎을 수는 없습니다. 그는 주기의 비를 연분수로 펼쳐, 작은 수로 이루어진 가장 좋은 근삿값을 골랐습니다. 토성의 공전 주기와 1년의 비 약 29.43에 대해서는 206 : 7을 썼는데, 이것은 206/7 ≈ 29.429로 분모가 작은 분수 가운데 매우 좋은 근삿값입니다. 그는 또 다른 행성에도 사람이 산다면 그들은 어떤 과학을 가질지를 상상한 『우주를 바라보는 사람』을 썼고, 이 책은 그가 1695년 헤이그에서 죽은 뒤 1698년에 나왔습니다. 그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이어지는 곳. 그의 확률 책은 기댓값, 확률, 도박꾼의 파산에서, 그 뒤를 이은 사람은 야코프 베르누이와 드무아브르입니다. 진자의 작은 흔들림은 선형화로, 사이클로이드는 변분법으로, 축폐선과 곡률원은 곡면의 가우스 곡률로, 빛의 물결은 파동방정식과 국소에서 전체로로, 톱니의 비는 연분수로 이어집니다. 그가 일한 기관은 파리 과학 아카데미이고, 그가 가르친 사람은 라이프니츠, 그가 끝내 동의하지 않은 사람은 뉴턴입니다.
관계.
- 영향을 받음 르네 데카르트 — 아버지의 친구였던 데카르트가 집에 드나들었고, 레이던에서 데카르트 기하학의 편집자 판스호턴에게 배웠습니다. 그러나 뒷날 데카르트의 충돌 법칙이 틀렸음을 보였습니다.
- 영향을 받음 블레즈 파스칼 — 1655년 파리에서 파스칼과 페르마가 다룬 판돈 나누기 문제를 전해 듣고, 두 사람을 만나지 못한 채 스스로 풀어 첫 확률 책을 썼습니다.
- 편지 피에르 드 페르마 — 1656년 카르카비를 사이에 두고 페르마와 확률 문제를 주고받았고, 페르마가 낸 문제 몇 개를 자기 책에 실었습니다.
- 영향을 받음 갈릴레오 갈릴레이 — 진자의 주기가 흔들림의 크기와 무관하다는 갈릴레이의 주장이 작은 흔들림에서만 맞는다는 것을 보이고, 정확히 성립하는 곡선인 사이클로이드를 찾았습니다.
- 제자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 1672년부터 파리에서 라이프니츠에게 삼각수의 역수 합 같은 문제를 내고 읽을 책을 골라 주며 그를 수학자로 이끌었습니다.
- 논쟁 아이작 뉴턴 — 『프린키피아』의 수학에는 감탄했지만, 떨어진 물체끼리 매개 없이 당긴다는 중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빛에 대해서는 뉴턴의 입자설에 맞서 파동설을 폈습니다.
- 영향을 줌 야코프 베르누이 — 야코프 베르누이의 『추측술』(1713) 1부는 하위헌스의 확률 책 전체를 다시 싣고 한 명제씩 주석을 단 것입니다.
- 영향을 줌 아브라암 드무아브르 — 드무아브르는 소뮈르의 학교에서 하위헌스의 확률 소책자를 처음 읽고 이 분야에 들어섰다고 전합니다.
연표.
- 1645년 레이던 대학에서 법학과 함께 판스호턴에게 수학을 배우다
- 1655년 직접 간 렌즈로 토성의 위성 타이탄을 발견하고, 처음 파리에 가다
- 1656년 진자로 빠르기를 고르게 하는 시계를 만들다
- 1657년 『주사위 놀이의 계산에 대하여』를 펴내다
- 1659년 사이클로이드가 등시곡선임을 발견하고, 토성의 고리를 설명한 책을 펴내다
- 1663년 런던 왕립학회 회원이 되다
- 1666년 파리 과학 아카데미의 창립 회원으로 파리에 자리 잡다
- 1672년 파리에 온 젊은 라이프니츠에게 수학을 가르치기 시작하다
- 1673년 『진자시계』를 펴내 등시곡선, 축폐선, 원심력의 정리들을 발표하다
- 1681년 병으로 헤이그에 돌아가 다시는 파리로 가지 않다
- 1689년 런던에서 뉴턴을 만나다
- 1690년 『빛에 관한 논고』에서 빛의 파동 이론을 펴내다
이 인물이 나오는 긴 글
이 인물을 언급하는 페이지
- 기댓값
… 1654년 파스칼과 페르마가 멈춘 도박의 판돈을 나누던 편지에서 싹텄고, 1657년 네덜란드의하위헌스가 『주사위 놀이의 계산에 관하여』에서 '공정한 판돈의 값'으로 체계적으로 다루었습니다. 이 책은 처음 …
- 도박꾼의 파산
… 벽이 있는 무작위 행보입니다. 파스칼과 페르마 사이에서 다루어진 문제로 알려져 있고, 네덜란드의하위헌스가 1657년, 처음 출판된 확률 책으로 꼽히는 『주사위 놀이의 계산에 관하여』의 마지막 문제로 …
- 변분법
… 가 일정한 곡선을 풀면 사이클로이드가 나옵니다. 사이클로이드에는 다른 성질도 있습니다. 1673년하위헌스는 사이클로이드 모양의 그릇 안에서는 어디서 구슬을 놓아도 바닥까지 같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등시성)을 …
- 확률변수
… 편지로 푼 판돈 나누기 문제는 앞으로 받을 돈이라는 확률변수의 기댓값을 묻는 문제였고, 1657년크리스티안 하위헌스는 『주사위 놀이의 계산에 관하여』에서 내기의 '값'을 기댓값으로 정의했습니다. 확률변수를 이론의 한가운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