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뮤얼 모스(Samuel Morse)
초상화가에서 발명가로 돌아서 미국의 전자석 전신을 실용화했고, 흔한 글자에 짧은 부호를 주는 점과 선의 부호에 이름을 남긴 사람.
새뮤얼 모스는 1791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찰스타운에서 목사이자 지리책 저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원래 화가였습니다. 19세기 초 먼 곳에 소식을 보내는 가장 빠른 방법은 여전히 말과 배였고, 유럽에서는 탑 위의 팔을 움직여 신호를 이어 보내는 광학 신호기(optical telegraph)가 쓰이고 있었습니다. 전기로 신호를 보내려는 시도는 여럿 있었지만, 쓸 만한 장치와 그 장치로 글을 적는 방법이 함께 필요했습니다. 모스는 그 둘을 묶어 미국 전역에 전신망이 깔리게 한 사람이고, 그의 이름은 지금도 점과 선의 부호에 남아 있습니다.
나이
예일 대학에서 전기에 관한 강의를 들었지만, 졸업 뒤 그가 택한 길은 그림이었습니다. 1811년부터 4년 동안 런던에서 그림을 배웠고, 돌아와서는 초상화가로 일했습니다. 1825년 워싱턴에서 미국 독립(independence) 전쟁의 영웅인 프랑스 장군 라파예트의 초상을 그리던 그는 아내가 위독하다는 편지를 받았지만, 뉴헤이븐 집에 닿았을 때 아내는 이미 묻힌 뒤였습니다. 소식이 너무 느리게 온다는 이 경험이 그의 마음에 남았다고 흔히 이야기됩니다. 이듬해 그는 뉴욕의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를 세우고 초대 회장이 되었고, 1830년대에는 뉴욕 대학에서 미술을 가르쳤습니다.
흔히 전하는 이야기로는 1832년 유럽에서 돌아오는 배 위에서 전자석 이야기를 듣고 전신을 구상했다고 합니다. 그는 과학자 조지프 헨리의 전자석 연구와 동료들의 조언에 기대어 장치를 만들었고, 기계 솜씨와 자금을 보탠 동업자 앨프리드 베일과 함께 1838년 초 뉴저지주 모리스타운에서 시연했습니다. 비슷한 무렵 괴팅겐에서는 가우스와 물리학자 베버가 1833년 천문대와 물리 연구소 사이에 전신선을 놓고 신호를 주고받았고, 영국에서는 발명가 쿡과 물리학자 휘트스톤의, 바늘이 글자를 가리키는 전신이 철도를 따라 깔리고 있었습니다. 1843년 미국 의회가 3만 달러를 지원했고, 1844년 5월 24일 모스는 워싱턴의 의사당에서 볼티모어로 "What hath God wrought"라는 첫 공개 전보를 보냈습니다.
시험 선로는 볼티모어–오하이오 철도의 선로를 따라 놓였습니다. 첫 전보보다 사람들을 더 놀라게 한 것은 며칠 뒤의 일이었습니다. 볼티모어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의 소식이 기차보다 먼저 워싱턴에 닿았고,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정치인이 지명을 사양하는 답이 워싱턴에서 전선을 타고 되돌아갔습니다. 그 무렵 미국은 서쪽으로 영토를 넓히며 철도를 놓는 중이었고, 전신은 철도와 짝을 이루어 퍼졌습니다. 외줄 선로에서 열차가 서로 비켜 가도록 지시하는 일, 먼 도시의 곡물 값과 주가를 맞추는 일, 전쟁 소식을 신문에 싣는 일이 모두 전신에 기대게 되었습니다. 1846년 뉴욕의 신문들이 멕시코 전쟁의 소식을 함께 받으려고 손잡은 것이 AP 통신의 시작으로 꼽히고, 1856년 여러 회사가 합쳐 생긴 웨스턴 유니언은 1861년 대륙 횡단 전신을 완성해 말을 갈아타며 우편을 나르던 포니 익스프레스를 곧바로 문 닫게 했습니다. 전신과 해저 케이블의 시대가 이렇게 열렸습니다.
수학이 들어오는 것은 부호입니다. 처음 모스는 낱말마다 번호를 매긴 사전을 만들고 번호를 보내려 했지만, 1838년 무렵 글자마다 점과 선의 짧은 줄을 주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부호를 누가 얼마나 만들었는지는 지금도 논쟁거리입니다. 핵심은 흔한 글자일수록 짧게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영어에서 가장 흔한 E는 점 하나, 그다음인 T는 선 하나이고, 드문 Q나 Z는 네 개짜리입니다. 인쇄소의 활자 상자에서 글자별 활자 수를 세어 빈도를 알아냈다는 이야기가 전하지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글자 i의 확률(probability)을
모스 부호(Morse code)에는 눈에 덜 띄는 셋째 기호가 있습니다. 쉼입니다. 점과 선만으로는 E(·) 두 개와 I(··)를 가를 수 없으니, 글자 사이에 긴 쉼을 넣어 경계를 알립니다. 다른 부호의 앞부분이 되는 부호가 없도록 짜면 쉼 없이도 끊어 읽을 수 있는데, 이런 접두 부호(prefix code) 가운데 평균 길이가 가장 짧은 것을 만드는 방법이 1952년의 허프만 부호(Huffman coding)입니다. 끊어 읽는 방법이 한 가지로 정해지는 부호라면 평균 길이가 엔트로피(entropy)보다 짧아질 수 없다는 한계는 1948년 섀넌의 원천 부호화 정리(source coding theorem)가 밝혔습니다. 모스와 베일은 흔한 글자를 짧게 하면 좋다는 것은 알았지만, 얼마나 짧게 할 수 있는지는 한 세기 뒤에야 답이 나왔습니다.
미국에서 쓰인 처음의 모스 부호에는 길이가 다른 선들과 글자 안의 쉼까지 섞여 있어 익히기 까다로웠습니다. 1848년 독일의 게르케가 이것을 점과 한 가지 길이의 선만 쓰도록 다듬었고, 이 '대륙 부호'가 1865년 파리에서 창립된 국제전신연합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나라마다 제각각이던 부호와 요금을 하나로 맞추려고 만든 이 연합은 오늘날 국제전기통신연합(ITU)으로 이어지는, 가장 오래된 국제기구 가운데 하나입니다. 부호는 무선 시대에도 살아남았습니다. 1906년 베를린의 국제 무선 전신 회의는 조난 신호로 SOS(··· −−− ···)를 정했습니다. 글자의 뜻이 아니라 셋, 셋, 셋으로 반복되는 모양이 잡음 속에서도 알아듣기 쉬워서 고른 부호입니다.
모스의 삶에는 그늘도 있습니다. 그는 1830년대에 이민자와 가톨릭을 공격하는 글을 쓰고 이민 배척을 내건 후보로 뉴욕 시장 선거에 나섰으며, 남북 전쟁 무렵에는 노예제를 옹호했습니다. 전신의 특허를 두고 긴 소송을 치렀고, 1854년 미국 대법원은 그의 특허를 대부분 인정했습니다. 다만 전자기력으로 멀리 글자를 찍는 모든 방법을 자기 것이라 한 여덟째 청구는, 발명하지 않은 것까지 독점하려 한다며 무효로 했습니다. 이 판결은 지금도 특허법에서 지나치게 넓은 청구를 가르는 사례로 인용됩니다. 1832년 배 위에서 전신의 착상을 자기가 먼저 말해 주었다는 의사 찰스 잭슨, 전자석을 먼저 연구한 조지프 헨리와도 공로를 두고 다퉜습니다. 1839년 파리에서 사진술을 발명한 다게르를 만나 그 사진술을 미국에 소개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1872년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을 때 전신은 이미 대서양 밑을 건너 대륙들을 잇고 있었습니다.
모스의 전신이 수학에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신호를 몇 가지 기호의 줄로 바꾼다는 생각 그 자체입니다. 20세기 초 전신 회사와 전화 회사의 기술자들은 전선 한 가닥으로 글자를 얼마나 많이 보낼 수 있는지를 물었고, 1924년 나이퀴스트는 여러 전신 부호를 견주며 전송 속도를 정하는 요인을 따졌습니다. 1948년 섀넌은 점, 선, 글자 사이의 쉼, 낱말 사이의 쉼으로 이루어진 전신을 '제약이 있는 이산 통로'의 첫 예로 들었습니다. 몇 가지 기호를 줄지어 보내되 기호를 잇는 순서에 규칙이 있는(예를 들어 쉼 다음에 곧바로 쉼이 올 수 없는) 통로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런 통로가 1초에 실어 나를 수 있는 정보의 양을 계산했습니다. 말과 글을 기호의 줄로 바꿔 적는 일이 공학이 되고 다시 수학이 된 길의 첫머리에 모스의 전신이 있고, 그 길의 한가운데에 벨 연구소가 있습니다.
이어지는 곳. 흔한 기호에 짧은 부호를 주는 생각은, 평균 길이가 가장 짧은 접두 부호를 만드는 허프만 부호와, 글자 하나에 정수(integer) 개의 기호를 줄 필요 없이 확률에 꼭 맞춰 줄이는 산술 부호화(arithmetic coding)로 이어집니다.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의 한계는 엔트로피와 원천 부호화 정리가 정합니다. 전신선이 대서양을 건널 때 신호가 열처럼 번져 뭉개진 이야기는 윌리엄 톰슨과 열방정식(heat equation)에, 부호의 수학을 완성한 사람들은 클로드 섀넌과 데이비드 허프만에 있습니다.
관계.
- 함께 연구 윌리엄 톰슨 — 1857년 대서양 전신 회사의 첫 케이블 부설 원정에 모스와 톰슨이 함께 나섰지만, 케이블은 바다 한가운데서 끊어졌습니다.
- 영향을 줌 해리 나이퀴스트 — 1924년 나이퀴스트는 모스 부호를 비롯한 여러 전신 부호를 견주며, 한 줄의 전선으로 글자를 얼마나 빨리 보낼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요인을 따졌습니다.
- 영향을 줌 클로드 섀넌 — 섀넌은 1948년 논문에서 점, 선, 글자 사이의 쉼, 낱말 사이의 쉼으로 이루어진 전신을 '제약이 있는 이산 통로'의 첫 예로 들어 그 용량(capacity)을 계산했습니다.
연표.
- 1810년 예일 대학을 졸업하다
- 1811년 그림을 배우러 런던으로 건너가다
- 1825년 워싱턴에서 아내의 부고를 뒤늦게 받다
- 1826년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를 세우고 초대 회장이 되다
- 1832년 유럽에서 돌아오는 배에서 전신을 구상하다
- 1836년 이민 배척을 내건 후보로 뉴욕 시장 선거에 나서다
- 1837년 전신의 특허를 신청하다
- 1838년 베일과 함께 모리스타운에서 전신을 시연하다
- 1839년 파리에서 다게르를 만나 사진술을 미국에 들여오다
- 1843년 의회가 시험 선로에 3만 달러를 지원하다
- 1844년 워싱턴에서 볼티모어로 첫 공개 전보를 보내다
- 1854년 미국 대법원에서 전신 특허를 대부분 인정받다
- 1857년 첫 대서양 케이블 부설 원정에 전기 자문으로 참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