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되찾기
창문을 모두 가리고 속도계만 볼 수 있다면, 차가 얼마나 달렸는지 알 수 있을까요?
1편 「순간의 속도」에서는 위치 그래프에서 속도(velocity)를 꺼냈습니다. 이번에는 거꾸로 갑니다. 점선 숫자는 끌 수 있고, 밑줄 친 말은 그림을 비춥니다.
1편의 자동차를 다시 탑니다. 이번에는 창밖이 보이지 않고, 계기판의 속도계만 보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매 순간의 속도(instantaneous velocity)
1 · 속도가 일정할 때거리는 넓이다
속도계만 보고 거리를 알아내려면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요? 가장 쉬운 경우, 곧 속도가 변하지 않는 경우에 답을 구하고, 그 답이 그래프에서 무엇으로 보이는지 확인합니다. 이 절의 답이 글 전체의 열쇠가 됩니다.
예를 들어 속도계가 줄곧 4 m/s를 가리킨 채 3초 동안 달렸다면, 1초에 4 m씩 세 번이니
그림은 가로축이 시간, 세로축이 속도인 속도 그래프입니다. 속도가 일정하니 그래프는 수평선입니다. 이 그래프에서 속도 × 시간이라는 곱셈은
정리하면, 속도가 일정할 때 거리는 속도 그래프 아래 직사각형의 넓이입니다. 남은 질문은 속도가 변해서 그래프가 곡선일 때도 이 말이 맞느냐입니다.
속도를 세로로, 시간을 가로로 그려 거리를 넓이로 읽는 이 그림은 1350년 무렵 파리의 학자 니콜 오렘이 체계적으로 다듬어 널리 알렸습니다. 곡선을 식으로 적는 좌표평면(coordinate plane)이 데카르트와 페르마에게서 나오기 300년 가까이 전의 일입니다. 오렘은 이 그림으로 "고르게 빨라지는 물체가 간 거리는, 중간 순간의 속도로 줄곧 간 거리와 같다"는 옥스퍼드 머튼 칼리지 학자들의 정리를 삼각형 넓이 하나로 증명했습니다. 그의 그림은 속도만이 아니라 열이나 밝기처럼 세지고 약해지는 모든 성질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림을 그린 사람의 삶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오렘은 파리 대학의 학자이면서 국왕 샤를 5세의 조언자였고, 왕이 주화의 가치를 함부로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는 화폐론을 썼으며, 리지외의 주교로 생을 마쳤습니다. 중세 대학의 자연철학은 이렇게 한 사람 안에서 신학, 정치와 섞여 있었습니다.
2 · 속도가 변할 때잘게 쪼개기
속도가 계속 바뀌면 속도 × 시간을 한 번에 할 수 없습니다. 이 절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1절의 직사각형을 여러 개 써서 변하는 속도의 거리를 어림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림을 점점 정확하게 하면 어떤 값에 이를까요?
진짜 자동차의 속도는 계속 바뀝니다. 그래도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는 속도가 거의 일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짧은 조각으로 나누고, 조각마다 1절의 직사각형 계산을 합니다. 5초를
이렇게 막대 넓이를 더한 것을 리만 합(Riemann sum)이라고 부릅니다. 이 값은 1편에서 본 실제 거리
정리하면, 변하는 속도의 거리는 막대들의 넓이 합으로 어림하고, 막대를 한없이 잘게 할 때 그 합이 향하는 값, 곧 곡선 아래 넓이가 정확한 거리입니다. 이 차에서는 그 값이 25 m입니다.
3 · 모든 끝 시각에 대해넓이를 쌓으면 위치가 된다
2절에서는 5초 동안의 거리 하나만 구했습니다. 하지만 처음 질문은 매 순간 차가 어디에 있는지, 곧 위치 전체를 되찾는 것이었습니다. 이 절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끝 시각을 바꿔 가며 넓이를 모두 구하면, 그 값들이 위치 그래프를 그대로 되살릴까요?
끝나는 시각
그림에서 할 일은 이것입니다. 위 그림의 점을 끌어
아래에 그려지는 곡선이 낯익지 않나요?
정리하면, 속도 그래프 아래 넓이를 0초부터 쌓으면 위치 그래프가 됩니다. 그림으로는 확인했지만, 왜 그런지는 아직 모릅니다. 다음 절에서 그 까닭을 봅니다.
4 · 왜 그럴까얇은 띠 하나의 넓이
넓이를 쌓으면 왜 위치가 될까요? 이 절은 그 까닭을 한 단계씩 봅니다. 방법은 1편과 같습니다. 넓이 함수(area function)
속도는 끊김 없이 변하므로, 띠가 얇을수록 그 윗변은 거의 평평해져서 띠는
'거의 같아진다'를 조금 더 정확히 말할 수 있습니다. 띠는 그 구간에서 가장 낮은 속도를 높이로 한 직사각형보다 크고, 가장 높은 속도를 높이로 한 직사각형보다 작습니다. 예를 들어
위 식의 왼쪽은 1편에서 본 바로 그 모양, A의 평균변화율입니다(평균변화율, average rate of change). h를 0으로 보내면
1편에서는 위치의 기울기가 속도였습니다. 그러니 넓이 함수와 위치는 같은 기울기로 움직이고, 기울기가 어디서나 같은 두 곡선은 높이 차이가 늘지도 줄지도 않습니다. 차이의 기울기가 늘 0이기 때문입니다(당연해 보이는 이 사실을 엄밀하게 증명할 때는 평균값 정리(mean value theorem)가 쓰입니다). 평균값 정리는, 미분(differentiation)할 수 있는 곡선 위의 두 점을 잇는 할선이 있으면 그 두 점 사이 어딘가에 그 할선과 기울기가 같은 접선이 있다는 정리입니다. 차이의 그래프에서는 접선의 기울기가 어디서나 0이니, 어떤 두 점을 이은 할선의 기울기도 0이고, 차이는 변하지 않습니다. 둘 다 0에서 출발했으니(
이것이 미적분의 기본정리(미적분의 기본정리, fundamental theorem of calculus)입니다. 한 문장으로 적으면, 끊김 없이 변하는 함수(function)의 그래프 아래 넓이를 쌓은 함수를 미분하면 원래 함수가 됩니다. 미분(기울기 구하기)과 적분(넓이 쌓기)은 서로를 되돌립니다. 반대 방향은 한 가지를 조심해야 합니다. 위치를 미분해 얻은 속도를 다시 쌓으면 위치 그 자체가 아니라 '위치에서 출발점의 값을 뺀 것', 곧 그동안 움직인 양이 나옵니다. 이 글의 차는 0에서 출발해서 둘이 같았을 뿐입니다.
그래서 넓이를 구하는 어려운 문제가 미분해서 v가 되는 함수를 찾는 문제, 곧 도함수에서 거꾸로 원래 함수를 찾는 문제로 바뀝니다.
예를 들어 1편의 속도
기호로는 아래처럼 씁니다.
정리하면, 넓이 함수 A의 기울기도 v이고 위치 s의 기울기도 v이며, 둘 다 0에서 출발하므로 A와 s는 같은 함수입니다.
5 · 다른 여행들뒤로 가면 넓이도 음수
지금까지 본 차는 줄곧 앞으로만 갔습니다. 이 절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속도가 음수가 되어 차가 뒤로 갈 때도 '넓이를 쌓으면 위치'라는 규칙이 통할까요? 통하려면 넓이를 어떻게 세야 할까요?
다른 속도 그래프로도 해 봅시다. 고른 여행:
아래 식의 왼쪽은 고른 속도, 오른쪽은 그 넓이를 쌓은 함수입니다. 오른쪽 식을 미분하면 왼쪽 식이 되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 등가속도: 속도가 직선으로 늘면 쌓인 넓이는 삼각형이고, 위치는 포물선(parabola)
입니다. 속도가 이면 0부터 T까지의 삼각형은 밑변이 T, 높이가 2T이니 넓이가 입니다. 예를 들어 3초 동안 9 m를 갑니다. 등가속도는 같은 시간마다 속도가 같은 양만큼 느는 운동입니다. 갈릴레이가 빗면에서 굴린 공이 이랬습니다. - 브레이크 후 후진: 속도가 0 아래로 내려가면 차가 뒤로 갑니다. 이때 넓이를
음수(빨강) 로 세면, 쌓인 넓이는 차가 출발점에서 앞쪽으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정확히 따라갑니다. 이 값을 변위(displacement)라고 하며, 차가 출발점 뒤에 있으면 음수입니다. 이 예에서 속도는라 2.5초에 0이 됩니다. 그때까지 쌓인 넓이는 밑변 2.5, 높이 6인 삼각형이라 이고, 그 뒤 2.5초 동안 같은 크기의 삼각형이 가로축 아래에 생겨 7.5를 뺍니다. 그래서 5초에 쌓인 넓이는 0, 곧 차는 출발점으로 돌아와 있습니다. 질문: 쌓인 넓이가 가장 큰 순간은?
속도가 0이 되는 순간입니다. 그때까지는 앞으로 가다가 그 뒤로는 되돌아오니까요. 아래 그래프의 꼭대기는 위 그래프가 0을 지나는 곳과 같은 시각에 있습니다. 1편의 "기울기가 0인 곳"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 진동: 앞뒤로 흔들리는 속도라면 위치도 흔들립니다. 속도가 사인(sine) 모양이면 위치는 코사인(cosine)을 위아래로 뒤집어 올린
모양입니다. 이 예에서 쌓인 넓이는 0과 3 사이를 오가고 음수가 되지 않습니다. 차가 출발점과 3 m 앞 사이를 왕복하는 것입니다. 이 짝(사인과 코사인, sine and cosine)은 3편 「한 점에서 전부를」에서 급수(series)로, 4편 「원을 그리는 지수함수」에서 원 위를 도는 점의 두 좌표로 다시 만납니다.
흔히 넓이는 늘 양수라고 생각하지만, 여기서 쌓는 것은 '부호 있는 넓이'입니다. 가로축 위는 더하고 아래는 뺍니다. 그래서 쌓인 넓이는 달린 거리의 합이 아니라 출발점에서 떨어진 위치(변위)를 줍니다. 후진하는 차가 실제로 달린 거리의 합을 원하면 빨간 넓이도 양수로 세어 더하면 되고, 위의 예에서는 7.5 + 7.5 = 15 m입니다.
정리하면, 속도가 음수인 구간의 넓이를 음수로 세면 '넓이를 쌓으면 위치'라는 규칙은 뒤로 가는 차에도 그대로 통합니다.
6 · 넓이의 역사나일강에서 리만까지
2절의 막대와 4절의 기본정리는 어디서 왔을까요? 이 절은 사람들이 곡선으로 둘러싸인 넓이를 어떻게 구하려 했는지, 그리고 왜 그 일이 그토록 오래 어려웠는지를 따라갑니다.
넓이는 수학에서 가장 오래된 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기하학'의 그리스어 게오메트리아는 말 그대로 '땅 재기'입니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역사』에서 그 기원을 이렇게 전합니다. 이집트의 왕이 땅을 똑같은 네모로 나눠 주고 세금을 매겼는데, 나일강이 땅의 일부를 쓸어 가면 사람을 보내 줄어든 넓이를 재고 세금을 줄여 주었다는 것입니다. 헤로도토스는 기하학이 여기서 생겨 그리스로 건너왔다고 여겼습니다.
물론 한 그리스 여행자의 설명일 뿐입니다. 그래도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 남은 문제집에는 밭의 넓이와 곡식 창고의 부피를 재는 문제가 많이 나오니, 넓이가 오래전부터 토지와 곡식을 관리하는 일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계산 솜씨도 상당했습니다. 기원전 1550년 무렵의 이집트 문제집인 린드 파피루스는 원의 넓이를 지름의 8/9를 한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으로 계산합니다. 이 값을 원의 넓이 공식과 맞춰 보면 원주율(pi)을 256/81, 약 3.16으로 쓴 셈입니다(참값은 3.14159…).
넓이를 잘게 쪼개 더한다는 생각을 논증으로 다듬은 것은 그리스였습니다. 기원전 4세기 크니도스의 에우독소스는 '실진법(method of exhaustion)'을 세웠습니다. 곡선 도형의 안쪽과 바깥쪽에 다각형을 그려 넣고, 변의 수를 늘리면 두 다각형의 넓이 차이를 원하는 만큼 작게 만들 수 있음을 먼저 보입니다. 그런 다음 곡선 도형의 넓이가 어떤 값보다 크다고 해도, 작다고 해도 모순이 생긴다는 것을 보여 그 값을 확정합니다. 무한을 입에 올리지 않고 극한에 다가가는, 2절 막대들의 조상입니다. 그 뒤 유클리드는 『원론』에서 이 방법으로 원의 넓이가 지름의 제곱에 비례함을 증명했습니다. 다만 쪼개어 더하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곡선마다 새로운 꾀가 필요했습니다.
실진법이 이렇게 에둘러 간 데에는 철학의 사정도 있었습니다. 에우독소스보다 한 세대 앞서, 세상이 더 나눌 수 없는 알갱이(원자)로 이루어졌다고 본 압데라의 데모크리토스는 원뿔의 부피가 밑면과 높이가 같은 원기둥의 3분의 1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르키메데스는 데모크리토스가 이것을 증명 없이 먼저 말했고, 증명은 에우독소스가 했다고 전합니다. 플루타르코스가 전하는 데모크리토스의 물음은 이렇습니다. 원뿔을 밑면과 나란한 평면으로 잘랐을 때 맞닿은 두 단면의 넓이는 같은가, 다른가? 같다면 원뿔은 원기둥처럼 굵기가 변하지 않아야 하고, 다르다면 원뿔의 옆면은 계단처럼 울퉁불퉁해야 합니다. 도형을 아주 얇은 조각으로 쪼갤 때 그 조각이 정말 '더 나눌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이 물음은, 아래에서 볼 17세기의 불가분량(indivisibles) 논쟁에서 다시 살아납니다. 그사이 아리스토텔레스는 크기가 더 나눌 수 없는 조각들로 이루어진다는 생각과 완결된 무한을 모두 물리쳤고, 그리스의 엄밀한 증명은 그런 조각을 입에 올리지 않는 실진법을 썼습니다.
위: 넓이에 얽힌 사건(event)들의 연표(흐린 점은 같은 시대의 세계사입니다). 아래: 그 일이 일어난 곳. 주황 선은 그리스 문헌이 바그다드를 거쳐 톨레도에서 라틴어로 옮겨진 길이고, 옥스퍼드–파리와 볼로냐로 향하는 선은 중세 대학과 17세기 불가분량 논쟁입니다. 나일강과 시라쿠사에서 중국 남조의 수도까지, 넓이를 쪼개는 생각이 여러 곳에서 따로 자랐습니다.
아르키메데스는 알렉산드리아가 아니라 시칠리아의 시라쿠사에서 일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결과는 알렉산드리아의 도시테오스나 에라토스테네스 같은 학자들에게 보낸 글로 남았습니다. 기원전 212년은 로마와 카르타고가 지중해의 패권을 두고 싸운 2차 포에니 전쟁 중이었습니다. 그해 로마군이 오랜 포위 끝에 시라쿠사를 함락했고, 그 와중에 아르키메데스가 죽었습니다. 포위 동안 그가 만든 기계들이 로마군을 괴롭혔다는 이야기는 그리스의 역사가 폴리비오스와 전기 작가 플루타르코스를 통해 전해집니다. 모래 위의 도형을 들여다보다 병사의 손에 죽었다는 유명한 장면은, 플루타르코스도 여러 이야기 가운데 하나로 전할 만큼 확실하지 않은 전설입니다.
아르키메데스가 실제로는 어떻게 답을 찾았는지는 오랫동안 수수께끼였습니다. 답은 기구한 길을 거친 양피지 한 권에 있었습니다. 10세기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그의 글들이 베껴졌습니다. 그런데 1229년 필경사 이오안네스 미로나스가 그 글을 긁어내고 그 위에 기도문을 덮어 썼습니다. 이 기도서는 예루살렘 근처 마르 사바 수도원에 오래 있다가 19세기에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겨졌습니다. 1906년 덴마크의 문헌학자 하이베르는 기도문 밑의 희미한 글이 아르키메데스의 것이고, 그 가운데 다른 어디에도 남지 않은 편지 『방법』이 있음을 알아냈습니다. 사본은 20세기에 행방이 묘연했다가 1998년 뉴욕 경매에 나왔습니다. 그 뒤 다중 스펙트럼 촬영, 곧 여러 파장의 빛으로 찍어 지워진 잉크 자국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하이베르가 읽지 못한 부분까지 판독되었습니다.
『방법』의 내용은 이 글과 곧바로 이어집니다. 에라토스테네스에게 보낸 이 글에서 아르키메데스는 도형을 얇은 띠로 잘라 저울에 달아 보는 방식으로 답을 먼저 얻었다고 털어놓습니다. 증명은 엄밀하게, 발견은 얇은 띠로. 이 글의 막대들과 같은 생각입니다.
『방법』이 걸어온 길. 시라쿠사에서 알렉산드리아로 보낸 글이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베껴지고, 기도서가 되어 유대 광야의 수도원에 머물다 돌아와 코펜하겐의 학자에게 읽혔습니다. 지명에 마우스를 올리면 그곳에서 일어난 일이 나옵니다.
도형을 잘게 나눠 넓이와 부피에 다가가는 생각은 그리스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263년 중국 위나라의 수학자 유휘는 중국의 오래된 수학 교과서 『구장산술』에 주석을 달며 원에 내접하는 정다각형(꼭짓점(vertex)이 모두 원 위에 있고 변의 길이가 모두 같은 다각형)의 변의 수를 두 배씩 늘려 원의 넓이에 다가갔습니다. 5–6세기 무렵 중국 남조에서는 원주율 계산으로 이름난 조충지의 아들인 수학자 조긍이 구의 부피를 구했습니다. 두 입체를 같은 높이에서 잘랐을 때 단면의 넓이가 늘 같으면 두 입체의 부피도 같다는 원리를 썼습니다. 9세기 아바스 왕조의 수도 바그다드에서는 그리스 문헌을 아랍어로 옮기는 일이 한창이었습니다(지혜의 집). 그곳에서 유클리드 『원론』의 번역을 다듬은 타비트 이븐 쿠라는 포물선 아래 넓이를 구하며, 넓이를 위로 넘치는 막대들의 합과 아래로 모자라는 막대들의 합 사이에 끼워 넣었습니다. 이때 구간을 폭이 서로 다른 조각으로 나누었는데(2절의 막대는 폭이 모두 같았습니다), 알려진 것으로는 이것이 처음입니다. 그는 포물선에 관한 아르키메데스의 결과는 알았지만 그 논문들은 손에 넣지 못했던 것으로 보여, 같은 답에 제 길로 이른 셈입니다. 빛과 시각을 연구한 『광학』의 저자 이븐 알하이삼은 1000년 무렵 카이로에서 일한 학자입니다. 그는 1⁴ + 2⁴ + ⋯ + n⁴ 같은 자연수(natural number)의 네제곱 합을 구하는 공식을 찾아, 포물선 조각을 그 축에 수직인 직선 둘레로 돌려 만든 입체의 부피를 얻었습니다.
한편 그리스의 방법이 라틴 유럽에 닿기까지는 먼 길을 돌았습니다. 그리스 문헌은 9세기 바그다드에서 아랍어로, 12세기 톨레도에서 다시 라틴어로 옮겨졌습니다. 아르키메데스의 『원의 측정』 같은 글이 그렇게 중세 유럽의 대학에 닿았습니다. 1절에서 본 오렘의 삼각형도 그 대학들에서 나왔습니다. 300년쯤 뒤 갈릴레이는 『새로운 두 과학』(1638)에서 떨어지는 물체의 거리가 시간의 제곱에 비례함을 같은 모양의 논증으로 보였습니다. 5절의 등가속도 그래프가 바로 그 삼각형입니다.
17세기 들어 이 생각은 먼저 실용의 문제로 돌아왔습니다. 1613년 오스트리아 린츠에 살던 요하네스 케플러는 재혼 잔치에 쓸 포도주를 들이다가, 상인이 통 옆구리의 주입구로 막대 하나를 비스듬히 꽂아 넣고 젖은 길이만 보고 값을 매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양이 제각각인 통에 이 한 가지 셈법이 맞을 리 있느냐는 의문에서, 그는 통을 얇은 원판들로 쪼개 부피를 구하는 책 『포도주 통의 새로운 입체 측정』(1615)을 썼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아르키메데스의 엄밀한 이중 귀류법(double reductio ad absurdum), 곧 넓이가 어떤 값보다 크다고 해도 작다고 해도 모순임을 보이는 방법 대신 무한히 작은 조각을 대담하게 다뤘습니다. 원을 꼭짓점이 중심에 모인 무수히 얇은 삼각형들로 보는 식입니다. 케플러는 행성의 궤도(orbit)가 타원(ellipse)임을 밝힌 바로 그 천문학자이고, 행성이 같은 시간에 같은 넓이를 쓸고 지나간다는 그의 둘째 법칙도 넓이의 언어였습니다(「압축하는 것이 이해하는 것이다」).
17세기에는 넓이를 쪼개는 방법이 신학과 정치의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쪽에는 볼로냐 대학의 수학자 보나벤투라 카발리에리가 있었습니다. 그는 1635년 『불가분량의 기하학』에서 평면 도형을 두께 없는 선들, 곧 더는 나눌 수 없는 '불가분량'의 모임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두 도형의 선을 하나씩 짝지어 넓이를 비교했습니다. 조긍의 원리와 같은 생각입니다. 카발리에리는 예수회와는 다른 작은 수도회인 예수아티회의 수도자였고, 갈릴레이의 추천으로 교수가 되었습니다.
반대편에는 예수회가 있었습니다. 1632년 로마의 예수회 검열관들은 선이나 면처럼 끊김 없이 이어진 것(연속체, continuum)이 더 나눌 수 없는 조각들로 이루어진다는 명제를 가르치지 못하게 했습니다. 스위스 출신의 예수회 수학자 파울 굴딘은 카발리에리의 방법이 엄밀하지 않다고 공격했습니다. 역사가 아미르 알렉산더는 이 싸움을 유클리드식의 확실한 질서를 지키려던 예수회와 새 방법을 밀던 쪽의 대립으로 읽습니다. 나아가 종교개혁 이후 권위를 둘러싼 다툼의 일부로 봅니다. 이 해석이 지나치다는 비판도 있고, 예수회 안의 사정도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안트베르펜의 예수회 수학자 그레구아르 드 생뱅상은 1647년 쌍곡선(hyperbola)
영국에서는 넓이가 수의 합이 되었습니다. 옥스퍼드의 존 월리스는 1656년 『무한의 산술』에서 곡선
월리스의 방법에 가장 끈질기게 맞선 사람은 수학자가 아니라 철학자였습니다. 『리바이어던』(1651)에서 대학과 성직자의 권위를 비판한 토머스 홉스는, 수학의 바탕은 기하학이어야 한다며 넓이를 수의 합과 기호로 다루는 월리스의 길을 공격했습니다. 두 사람은 1650년대 중반부터 1670년대까지 20년 넘게 책과 팸플릿으로 다투었습니다. 월리스는 장로교도였고, 내전 때 의회파 편에 섰으며, 옥스퍼드의 교수였습니다. 그래서 이 싸움에는 넓이를 어떻게 구하느냐는 물음 말고도 종교와 정치, 대학이 무엇을 가르쳐야 하느냐는 다툼이 함께 실려 있었습니다. 홉스는 원과 넓이가 같은 정사각형을 자와 컴퍼스로 작도했다는 '증명'을 여러 번 내놓았고, 월리스는 그때마다 오류를 짚었습니다. 넓이를 구하는 17세기의 새 방법들은 대륙에서는 예수회와, 영국에서는 홉스와 부딪힌 셈입니다.
결정적인 한 걸음은 넓이와 접선을 한데 묶은 것이었습니다. 1670년 케임브리지의 수학자 아이작 배로는 넓이 문제와 접선 문제가 서로 거꾸로라는 사실을 기하학의 언어로 적었습니다. 배로는 뉴턴에 앞서 루카스 석좌 교수를 지냈고, 1669년 그 자리를 뉴턴에게 물려주었습니다. 뉴턴의 급수 원고를 런던의 콜린스에게 전한 사람도 배로입니다(3편 6절). 2년 앞서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그레고리도 같은 관계를 증명했습니다.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이 관계를 계산의 도구로 만들었습니다. 넓이를 구하려면 미분해서 그 함수가 되는 함수를 찾으면 됩니다(4절의 25 m 계산이 그 예입니다). 라이프니츠가 1675년 파리에서 처음 쓴
마지막 조각인 정의는 150년쯤 뒤에 나왔습니다. 먼저 1823년 프랑스의 코시가 연속함수, 곧 그래프가 끊김 없이 이어진 함수의 적분을 막대 합의 극한으로 정의했습니다. 1854년 괴팅겐의 리만은 이 정의를 연속이 아닌 함수에까지 넓혔습니다. 조각을 잘게 할 때 막대 높이를 조각의 어디서 재든 합이 한 값으로 모이면, 그 값을 넓이로 정한 것입니다. 이 글의 2절을 다듬은 정의입니다. 모든 함수가 이 조건을 만족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1829년 디리클레는 푸리에 급수(Fourier series), 곧 함수를 사인파(sinusoid)들의 합으로 쓴 식이 언제 원래 함수로 모이는지를 다룬 논문에서 유리수(rational number)에서 1, 무리수(irrational number)에서 0인 함수를 들었습니다. 유리수는 ½이나 −3처럼 분수로 쓸 수 있는 수, 무리수는 √2처럼 그렇게 쓸 수 없는 수입니다. 어떤 조각에도 두 종류의 수가 다 들어 있으므로, 이 함수는 높이를 어디서 재느냐에 따라 합이 0도 되고 전체 폭도 됩니다. 리만은 베를린 유학 시절 디리클레의 강의를 들은 제자였습니다. 이 정의는 사인파들의 합, 곧 삼각급수(trigonometric series)를 다룬 교수 자격 논문(독일 대학에서 강의할 자격을 얻으려고 내는 논문)에서 나왔습니다. 들쭉날쭉한 함수도 사인파로 쓸 수 있는지 따지려면 넓이가 무엇인지부터 정확히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원에서 파동으로」).
리만의 정의도 끝이 아니었습니다. 1902년 파리의 앙리 르베그는 학위 논문 「적분, 길이, 넓이」에서 막대를 세우는 방향을 바꿨습니다. 가로축을 잘게 나누는 대신 세로축, 곧 함숫값의 범위를 나누고, 값이 각 범위에 드는 점들이 가로축에서 차지하는 '크기'를 잽니다. 르베그는 이것을 빚을 갚을 때 주머니의 동전을 꺼내는 순서대로 더하는 대신, 액면가별로 모아 세는 일에 빗댔다고 전합니다. 이 르베그 적분(Lebesgue integral)으로는 디리클레의 함수도 넓이가 정해집니다. 값이 1인 점, 곧 유리수는 자연수처럼 하나씩 셀 수 있을 만큼만 있어서, 가로축에서 차지하는 크기가 0이기 때문입니다(측도 0, measure zero). 그래서 넓이는 0입니다. 셀 수 있는 무한과 셀 수 없는 무한의 차이는 「무한에도 크기가 있다」에서 다룹니다.
곡선마다 새 꾀가 필요했던 이유는 넓이를 직접 더했기 때문입니다. 뉴턴과 라이프니츠 이후로는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기본정리 덕분에 넓이 문제는 "미분하면 이 함수가 되는 함수 찾기"로 바뀌었고, 많은 경우 그 일은 공식 몇 개로 기계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7 · 이어지는 길넓이가 답이 되는 곳
'쌓인 양'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서나 넓이가 답으로 나옵니다. 아래는 이 연재와 다른 글에서 이어지는 길들입니다.
- 로그: 곡선
아래 넓이를 1부터 쌓으면 자연로그(natural logarithm)가 됩니다. 생뱅상이 보인 이 넓이의 성질, 곧 곱셈을 덧셈으로 바꾼다는 사실(6절)을 1649년 그의 제자 알퐁스 드 사라사가 로그의 성질 ('두 수를 곱한 것의 로그는 각각의 로그를 더한 것')로 읽었습니다. 예를 들어 1부터 6까지의 넓이는 1부터 2까지와 1부터 3까지의 넓이의 합입니다. - 확률(probability): 연속적인 값의 확률은 곡선 아래 넓이입니다. 확률이 어떻게 태어났는지는 「도박판에서 온 편지」에서 다룹니다. 키나 측정 오차처럼 평균(mean) 근처에 많이 몰리고 멀어질수록 드물어지는 값은 종 모양 정규분포(normal distribution)를 따릅니다. 이 곡선 아래의 전체 넓이가 1이 되게 하는 계산이 가우스 적분(Gaussian integral)입니다.
- 무작위로 재기: 점을 무작위로 뿌려 곡선 아래에 떨어지는 비율을 세면 넓이를 어림할 수 있습니다(몬테카를로 방법, Monte Carlo method). 막대 대신 우연을 쓰는 적분입니다. 18세기 프랑스의 박물학자 뷔퐁이 바닥에 바늘을 던져 선에 걸칠 확률을 계산한 문제(뷔퐁의 바늘, Buffon's needle)가 그 먼 조상이고, '몬테카를로'라는 이름은 1940년대 미국 로스앨러모스의 핵무기 연구에서 붙었습니다.
- 무한히 더하기: 넓이를 더하는 일과 수를 무한히 더하는 일은 서로를 비춥니다. 조화급수(harmonic series)
가 발산(divergence)한다는 사실, 곧 항을 더할수록 합이 어떤 수도 넘어 끝없이 커진다는 사실은 아래 넓이가 끝없이 커지는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 평면을 늘일 때: 평면 전체를 늘이거나 기울이는 변환을 하면 모든 도형의 넓이가 같은 배수(multiple)로 바뀝니다. 그 배수를 행렬식(determinant)이 알려 줍니다. 5편 「곱셈은 회전이다」에서 다시 만납니다.
- 넓이에서 계수로: 주기적인 신호를 사인파들로 쪼갤 때 각 사인파의 몫(푸리에 계수)은 신호에 사인파를 곱한 곡선 아래 넓이로 구합니다. 리만이 넓이의 정의를 다듬은 것도 이 계산 때문이었습니다(푸리에 급수, 「원에서 파동으로」).
- 적분에서 거꾸로: CT 촬영기는 몸을 지나는 직선마다 X선이 얼마나 흡수되었는지, 곧 직선을 따라 쌓은 합(적분)만 잽니다. 그 적분들의 표에서 몸속의 모습을 되찾는 일은 이 글처럼 "쌓인 것에서 원래를 되찾는" 문제이지만, 잡음 때문에 훨씬 까다롭습니다(라돈 변환(Radon transform), 「거꾸로 푸는 문제는 왜 어려운가」).
- 연재 속의 역사: 오렘과 머튼 학파, 갈릴레이의 삼각형은 1편 「순간의 속도」 2·6절에서 속도 쪽으로, 월리스의 표에서 나온 뉴턴의 이항급수와 마다바의 급수는 3편 「한 점에서 전부를」 6절에서 급수 쪽으로 이어집니다.
정리. 속도 그래프 아래의 넓이를 0부터 쌓으면 위치가 돌아옵니다. 쌓인 넓이의 기울기가 다시 속도이기 때문입니다. 1편과 2편은 같은 사실의 양면입니다.
그런데 넓이를 쌓으려면 모든 순간의 속도를 알아야 했습니다. 만약 한 순간에 대해서만, 위치와 속도와 속도가 변하는 빠르기, 그 변화의 빠르기… 를 끝까지 안다면요? 그것만으로 전체 여행을 되살릴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