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개념 지도
인물

후고 슈타인하우스(Hugo Steinhaus)

르부프에서 바나흐를 발견해 함께 함수⁠(function)⁠해석학의 르부프 학파를 세우고, 전쟁 뒤 브로츠와프에서 폴란드 수학을 다시 일으켰으며, 공정한 나누기, 최소 비교 정렬⁠(comparison sort)⁠, 무한 게임의 결정성 공리⁠(axiom of determinacy)⁠ 같은 문제를 던진 폴란드의 수학자.

sup⁡n∥Tn∥<∞⟸sup⁡n∥Tnx∥<∞    모든 x에 대해\sup_{n} \|T_n\| \lt \infty \quad \Longleftarrow \quad \sup_{n} \|T_n x\| \lt \infty \;\; \text{모든 } x \text{에 대해}

후고 슈타인하우스는 1887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한 갈리치아의 작은 도시 야스워에서 유대계 집안에 태어났습니다. 르부프에서 공부를 시작한 그는 곧 괴팅겐으로 가서 힐베르트의 지도로 1911년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17년 르부프 대학에서 강의할 자격을 얻은 그는, 1920–30년대 바르샤바와 함께 폴란드 수학의 두 중심이 된 르부프의 수학을 세운 사람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굵은 막대가 이 사람의 생애이고, 흰검은 점은 페이지 끝 연표에 적은 일들입니다. 가는 막대는 같은 시대를 산 이 위키의 인물들입니다. 나이를 끌어 보세요.

나이 세 ·

1916년 여름 크라쿠프의 공원을 걷던 그는 벤치에 앉은 두 젊은이가 '르베그 적분⁠(Lebesgue integral)⁠'이라는 말을 주고받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거의 혼자 수학을 익힌 스테판 바나흐였습니다. 슈타인하우스는 자기가 풀지 못하던 문제를 바나흐에게 이야기했고, 바나흐는 며칠 만에 답을 가져왔습니다. 두 사람의 첫 공동 논문이 여기서 나왔고, 슈타인하우스는 뒤에 바나흐를 자신의 가장 큰 발견이라고 불렀다고 전합니다. 1920년 르부프 대학의 교수가 된 그는 바나흐와 함께 무한 차원의 공간에서 해석학⁠(mathematical analysis)⁠을 하는 함수해석학의 르부프 학파를 이끌었습니다. 위의 식은 1927년 두 사람이 발표한 균등 유계성 원리입니다. 모든 점 xx에서 값 TnxT_n x들의 크기가 nn에 대해 유계이면(오른쪽), 연산자⁠(operator)⁠들의 크기 ∥Tn∥\|T_n\|도 한꺼번에 유계라는 것입니다(왼쪽). 단, 연산자들이 완비된 노름⁠(norm)⁠ 공간, 곧 바나흐 공간⁠(Banach space)⁠ 위에서 정의된 연속 선형 연산자여야 합니다. 이 정리로 푸리에 급수⁠(Fourier series)⁠가 발산⁠(divergence)⁠하는 연속함수가 있다는 것이 짧게 증명됩니다. 1929년 두 사람은 이 분야의 학술지 『스투디아 마테마티카』를 창간했고, 르부프의 수학자들이 카페 탁자에서 문제를 주고받던 '스코틀랜드 책'에도 그의 문제가 여럿 실렸습니다.

그는 수학을 일상의 물음에서 끌어내는 데 남다른 재주가 있었습니다. 1938년의 그림책 『수학의 만화경』과 그 영어판 『수학의 스냅 사진』의 1950년판에는 물건 nn개를 둘씩 비교해 순위를 매기려면 최소 몇 번이면 늘 충분한지 같은 물음이 실렸고, 이 물음은 1959년 포드와 존슨의 병합 삽입⁠(merge insertion)⁠ 정렬로 이어졌습니다(비교 정렬의 하한⁠(comparison sorting lower bound)⁠). 빵과 햄과 치즈를 칼질 한 번으로 모두 똑같이 이등분할 수 있느냐는 '햄 샌드위치' 문제도 그가 던졌고, 바나흐가 풀었습니다. 1941년 독일군이 르부프를 점령하자 그는 가짜 신분으로 시골에 숨어 전쟁을 견뎠고, 그동안 여러 사람이 케이크를 나눌 때 누구나 자기 몫이 전체의 1/n1/n 이상이라고 여기게 하는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1948년 『이코노메트리카』에 실린 「공정한 나누기의 문제」는 오늘날 공정 분할⁠(fair division)⁠ 이론의 출발점으로 꼽힙니다.

전쟁은 도시의 국적도 바꾸었습니다. 르부프는 소련 땅이 되고, 독일의 브레슬라우는 폴란드의 브로츠와프가 되었습니다. 1945년 11월 슈타인하우스는 이 도시로 옮겨 대학의 수학·물리·화학 학부를 세우고 첫 학장이 되었습니다. 르부프의 폴란드인 학자들이 대거 브로츠와프로 옮겨 오면서, 그의 연구실은 르부프 학파의 전통을 새 도시에 옮겨 심은 곳이 되었습니다. 그는 확률과 통계⁠(probability and statistics)⁠를 의학과 법정의 증거, 산업에 쓰는 일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1962년에는 제자 얀 미치엘스키와 함께, 끝나지 않는 두 사람 게임에서도 언제나 한쪽에 이기는 전략⁠(winning strategy)⁠이 있다고 가정하는 결정성 공리를 제안했습니다. 이 공리⁠(axiom)⁠는 선택공리⁠(axiom of choice)⁠와 함께 쓸 수 없지만 실수⁠(real number)⁠의 모든 부분집합⁠(subset)⁠을 르베그 측도⁠(Lebesgue measure)⁠로 잴 수 있다는 깔끔한 결과를 줍니다(게임의 결정성). 그는 1972년 브로츠와프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짧고 날카로운 경구로도 이름났던 그의 말들은 뒤에 따로 책으로 묶였습니다.

이어지는 곳. 르부프의 카페에서 나온 바나흐–마주르 게임과 브로츠와프의 결정성 공리, 그리고 그가 던진 최소 비교 정렬의 물음은 글 「이기는 쪽이 존재한다」 7절과 「줄 세우기의 한계」 6절에 있습니다. 무한 게임이 결정되느냐는 물음은 게임의 결정성과 기술 집합론⁠(descriptive set theory)⁠으로, 정렬의 한계는 비교 정렬의 하한으로, 푸리에 급수의 발산은 푸리에 급수로 이어집니다. 그의 스승 힐베르트와 괴팅겐의 학풍은 괴팅겐에 있습니다.

관계.

가운데가 이 사람, 둘레가 이어진 인물들입니다. 선의 색은 관계의 종류(초록 스승·제자, 파랑 함께 연구, 보라 편지, 빨강 논쟁, 주황 영향)이고, 다른 인물의 페이지에 적힌 관계도 함께 모았습니다.

  • 스승 다비트 힐베르트 — 1911년 괴팅겐에서 힐베르트의 지도로 디리클레 원리⁠(Dirichlet principle)⁠의 새 응용에 관한 논문을 써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연표.

  • 188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갈리치아의 야스워에서 태어나다
  • 1911년 괴팅겐에서 힐베르트의 지도로 박사 학위를 받다
  • 1916년 크라쿠프의 공원에서 르베그 적분을 이야기하던 바나흐를 만나다
  • 1920년 르부프 대학의 교수가 되다
  • 1927년 바나흐와 함께 균등 유계성 원리(바나흐–슈타인하우스 정리)를 발표하다
  • 1929년 바나흐와 학술지 『스투디아 마테마티카』를 창간하다
  • 1938년 수학 그림책 『수학의 만화경』을 펴내다(영어판 『수학의 스냅 사진』)
  • 1941년 독일 점령 아래 가짜 신분으로 숨어 지내기 시작하다
  • 1945년 브로츠와프로 옮겨 대학의 수학과를 새로 꾸리다
  • 1948년 「공정한 나누기의 문제」를 발표하다
  • 1962년 미치엘스키와 결정성 공리를 제안하다
  • 1972년 브로츠와프에서 세상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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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와 유사도 까마귀와 택시 까마귀는 곧장 날고 택시는 블록을 돌아간다. '얼마나 먼가'에는 답이 하나가 아니고, 어떤 거리를 고르느냐가 통계와 기계 학습의 답을 바꾼다. 알고리즘과 복잡도 줄 세우기의 한계 카드 천 장을 가장 빨리 줄 세우는 방법은? 인구조사의 천공 카드에서 퀵정렬까지, 그리고 어떤 방법도 넘을 수 없는 n log n의 벽. 측정의 수학 재는 순간 바뀐다 해안선의 길이는 자에 따라, 평균은 누구에게 묻느냐에 따라, 지표는 목표가 되는 순간 달라진다. 리처드슨의 국경과 프랙털 차원, 스티븐스의 척도, 버스 정류장과 타율의 역설, 스피어먼의 요인, 굿하트의 법칙과 보상 해킹을 한 줄로 꿴다. 게임과 증명 이기는 쪽이 존재한다 "이 판은 백이 이겼다"는 흑이 어떻게 두든 백에게 답이 있다는 말이다. 체스의 체르멜로 정리, ε–δ, 님의 이진법, 폰 노이만의 최소최대와 쌍대성, 논리의 한계를 재는 게임, 끝나지 않는 게임과 선택공리, 대화로 읽는 증명, 겨루며 배우는 신경망까지. 수학의 참을 두 사람의 게임으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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