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미트리 예고로프(Dmitri Egorov)
점마다 따로 수렴(convergence)하는 함수열이 원하는 만큼 작은 예외만 빼면 한꺼번에 수렴한다는 예고로프 정리(Egorov's theorem)를 증명하고, 제자 루진과 함께 모스크바에 실함수론(real analysis) 학파를 연 러시아의 수학자. 신앙 때문에 체포되어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드미트리 예고로프는 1869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습니다. 19세기 러시아 수학의 중심은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였고, 체비쇼프와 그 제자 마르코프가 정수론(number theory), 확률론, 근사 이론(approximation theory)처럼 구체적인 계산으로 끝나는 문제를 날카롭게 다루었습니다. 옛 수도 모스크바의 수학은 결이 달랐습니다. 1864년에 세워진 모스크바 수학회는 미분기하학과 역학을 주로 다루었고, 그 중심에 있던 니콜라이 부가예프는 연속보다 불연속을 세계의 바탕으로 보는 철학을 수학과 엮어 설교하던 사람이었습니다(그는 시인 안드레이 벨리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신앙과 철학과 수학이 한 방에서 이야기되던 이 도시에서, 예고로프는 부가예프의 제자로 1891년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나이
그의 첫 연구는 모스크바의 전통대로 곡면과 좌표계를 다루는 미분기하학이었고, 1901년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02–03년 그는 베를린, 파리, 괴팅겐을 돌며 서유럽의 수학을 보고 왔습니다. 파리에서는 에밀 보렐, 르네 베르, 르베그가 집합(set)과 측도(measure)의 언어로 함수(function)와 적분(integral)을 새로 세우고 있었습니다(르베그 적분과 측도(Lebesgue integral and measure)). 1903년 모스크바 대학 교수가 된 그는 이 '실함수론'을 모스크바로 가져왔습니다. 엄격하고 말수가 적으며 신앙이 깊은 사람이었지만, 학생들의 재능을 알아보고 끝까지 돌보았습니다. 1900년대 중반 정치적 격변 속에서 수학을 떠나려던 학생 니콜라이 루진을 붙들어 둔 것도 그였습니다.
1911년 그는 오늘날 예고로프 정리라 불리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함수 f₁, f₂, f₃, …이 줄지어 있고, 점마다 따로 보면 그 값이 어떤 함수 f의 값에 다가간다고 합시다. 이것을 점별 수렴(pointwise convergence)이라고 합니다. 이때 다가가는 빠르기는 점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구간 [0, 1) 위의 함수 xⁿ을 보면, x = 0.5에서는 n = 10이면 이미 0.001보다 작아지지만(0.5¹⁰ ≈ 0.00098), x = 0.999에서는 0.001 아래로 내려가는 데 n이 약 6,900이나 되어야 합니다. 1에 더 가까운 점일수록 더 오래 걸리니, 모든 점을 한꺼번에 0.001 안으로 들여보내는 n은 없습니다. 모든 점이 같은 n에서 함께 따라붙는 더 강한 수렴을 균등 수렴(uniform convergence)이라 합니다. 예고로프는 길이(측도)가 유한한 곳에서라면, 원하는 만큼 작게 정한 '느린 점들의 자리' 하나만 빼면 나머지에서는 언제나 균등 수렴이 일어난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xⁿ의 경우 1 바로 앞의 짧은 구간 (1 − δ, 1)만 빼면, 남은 점들에서 가장 큰 값이 (1 − δ)ⁿ이고 이것이 0으로 가므로 모두 함께 0에 다가갑니다.
조건 하나하나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정리는 점별 수렴이 '거의 모든 점(almost everywhere)', 곧 측도 0(measure zero)인 예외를 빼고 일어나기만 해도 성립하고, 함수들은 르베그의 뜻에서 측도를 잴 수 있는 함수여야 합니다(값이 어떤 수보다 큰 점들의 집합에 늘 길이를 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가장 중요한 조건은 전체 길이가 유한하다는 것입니다. 실수(real number) 전체 위에서, 구간 [n, n + 1]에서만 1이고 나머지에서 0인 함수 fₙ을 생각해 봅시다. 어느 점 x에서나 n이 x를 지나가면 값이 0이 되므로 fₙ은 점마다 0으로 수렴합니다. 그러나 길이가 1보다 작은 집합을 아무렇게나 빼도 각 구간 [n, n + 1]에는 남은 점이 있고 그 점에서 fₙ = 1이니, 남은 곳에서 균등 수렴은 끝내 일어나지 않습니다. 1년 먼저 이탈리아의 카를로 세베리니도 비슷한 정리를 발표했기 때문에 세베리니–예고로프 정리라고도 부릅니다.
이 정리가 중요한 것은 르베그의 새 세계와 옛 해석학(mathematical analysis) 사이에 다리를 놓았기 때문입니다. 균등 수렴은 19세기 해석학이 극한(limit)과 적분의 순서를 바꾸거나 연속성(continuity)을 지키려 할 때 요구하던 조건이었습니다. 예고로프 정리는 점별 수렴만 알아도 '작은 예외를 빼면' 그 강력한 조건을 쓸 수 있게 해 주었고, 르베그 적분(Lebesgue integral)에서 극한과 적분의 순서를 바꾸는 정리들을 증명하는 기본 도구가 되었습니다. 30여 년 뒤 영국의 리틀우드는 실해석의 '세 원리' 가운데 하나로 이 정리를 꼽았습니다. 측도가 있는 세계의 새로운 대상들은 작은 예외만 빼면 우리가 아는 옛 대상과 거의 같다는 생각입니다(근사와 오차).
1914년 파리와 괴팅겐에서 돌아온 루진이 세미나를 열자, 예고로프는 한 발 물러서 학파의 후원자이자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루진의 제자들이 스스로를 '루시타니아'라 부르며 모인 곳에서 집합론(set theory), 실함수론, 위상수학(topology), 확률론의 젊은 수학자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모스크바 수학 학파). 이반 프리발로프와 뱌체슬라프 스테파노프도 그의 제자였습니다. 혁명과 내전의 굶주림 속에서 그는 대학과 학회를 지키는 일을 떠맡았습니다. 1923년 모스크바 수학회 회장이 되었고, 학회지 『수학 논집』을 편집했으며, 대학의 수학·역학 연구소를 이끌었습니다.
그는 러시아 정교회의 독실한 신자였고 그 사실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와 가까운 수학자이자 사제인 파벨 플로렌스키와 함께, 신의 이름을 부르는 일 자체를 신성하게 여기는 '이름 숭배' 운동에 공감했습니다. 이 운동은 1913년 교회 지도부에게 이단으로 정죄되었습니다. 미국의 과학사가 로렌 그레이엄과 수학자 장미셸 캉토르는 무한 집합에 '이름'을 주어 존재하게 만드는 루진 학파의 태도가 이 신앙과 이어져 있다고 해석했지만, 이 해석에는 반론도 많습니다. 분명한 것은, 과학을 사회주의 건설의 도구로 보면서 종교를 적으로 삼은 새 국가에서 그가 점점 눈에 띄는 표적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1929–30년 에른스트 콜만 같은 이념가들이 예고로프와 모스크바 수학회를 '반동적'이라며 공격했고, 류스테르니크, 시니렐만 같은 젊은 수학자들이 끼인 '주도 그룹'이 학회를 넘겨받아 새 체제에 대한 충성을 선언했습니다. 1930년 가을 예고로프는 교회 관련 반혁명 조직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고, 유배형을 받아 볼가강 가의 카잔으로 보내졌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단식을 벌였고, 쇠약해져 병원으로 옮겨진 뒤 1931년 9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카잔의 수학자 니콜라이 체보타료프의 가족이 그의 마지막 날들을 돌보았다고 전합니다. 플로렌스키는 1937년 처형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오랫동안 소련의 공식 역사에서 조용히 지워졌지만, 그가 연 세미나는 한 세기 동안 이어졌습니다. 다섯 해 뒤 제자 루진이 '루진 사건(event)'으로 공개 규탄을 받았을 때 체포까지 가지 않은 것은 드문 일이었습니다. 오늘날 예고로프 정리는 세계 어느 실해석 교과서에나 실려 있고, 그 이름을 외우는 학생 대부분은 이 정리를 증명한 사람이 신앙 때문에 유배되어 단식 끝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모릅니다. 콜모고로프, 알렉산드로프, 힌친 같은 그의 학문적 손자들이 20세기 수학을 이끌었습니다.
이어지는 곳. 점별 수렴과 균등 수렴(pointwise and uniform convergence)의 차이는 점별 수렴과 균등 수렴에서, '거의 모든 점'의 뜻은 측도 0과 르베그 적분과 측도에서 이어집니다. 그가 모스크바로 들여온 수학의 출처는 앙리 르베그, 그 뒤를 이은 사람은 니콜라이 루진이고, 학파 전체의 이야기는 모스크바 수학 학파에 있습니다.
관계.
- 영향을 받음 앙리 르베그 — 르베그가 막 세운 측도의 언어로 1911년 정리를 증명했고, 이 정리는 르베그 적분의 수렴 정리(convergence theorem)들을 다루는 기본 도구가 되었습니다.
- 제자 니콜라이 루진 — 대학 시절 방황하던 루진을 수학에 붙들어 두었고, 1914년 이후 함께 실함수론 세미나를 이끌며 모스크바 수학 학파를 열었습니다.
- 영향을 줌 J. E. 리틀우드 — 리틀우드는 1944년 실해석의 '세 원리' 가운데 셋째, 곧 수렴하는 함수열은 거의 균등 수렴한다는 원리로 이 정리를 꼽았습니다.
연표.
- 1887년 모스크바 대학에 들어가다
- 1891년 모스크바 대학을 졸업하고 부가예프 밑에서 연구를 시작하다
- 1901년 박사 학위를 받다
- 1902년 베를린, 파리, 괴팅겐을 돌며 새 해석학을 접하다
- 1903년 모스크바 대학 교수가 되다
- 1911년 예고로프 정리를 발표하다
- 1914년 제자 루진이 유럽에서 돌아와 함께 세미나를 이끌다
- 1923년 모스크바 수학회 회장이 되다
- 1930년 이념 공격 끝에 체포되다
- 1931년 카잔의 유배지에서 단식을 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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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별 수렴과 균등 수렴
… 예고로프 정리: 조금만 빼면 균등 수렴. 점별 수렴은 균등 수렴보다 얼마나 약할까요? 1911년 모스크바의드미트리 예고로프가 답을 냈습니다(이탈리아의 카를로 세베리니도 1910년에 같은 사실을 따로 얻었습니다). xⁿ에서 수렴이 …
- 기술 집합론
… 대해서는 르베그 적분과 측도와 측도 0을, 그 무대였던 세미나에 대해서는 모스크바 수학 학파와드미트리 예고로프를 보세요. 열린 집합의 개념을 실수 너머로 넓힌 것이 위상수학입니다. 논리의 '어떤'과 '모든'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