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개념 지도
인물

엘레아의 제논(Zeno of Elea)

남이탈리아 엘레아의 철학자로, '있는 것은 하나이고 움직이지 않는다'는 스승 파르메니데스를 변호하려고 아킬레우스와 거북, 날아가는 화살 같은 역설을 만들어 무한을 다루는 법을 2,000년 넘게 수학의 숙제로 남긴 사람.

12+14+18+⋯=1\tfrac12 + \tfrac14 + \tfrac18 + \cdots = 1

제논은 기원전 5세기 남이탈리아 서해안의 그리스 도시 엘레아에서 살았습니다. 엘레아는 기원전 540년 무렵 페르시아의 침공을 피해 소아시아의 포카이아를 떠난 사람들이 세운 식민 도시였습니다. 이곳의 철학자 파르메니데스는 한 편의 시에서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는 데서 출발해, 생겨남과 사라짐, 움직임과 여럿은 모두 감각이 꾸며 낸 겉모습이며 참으로 있는 것은 하나이고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상식에 정면으로 맞선 이 주장은 조롱을 샀고, 제자 제논은 스승을 변호하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은 사라졌고, 우리는 그의 논증을 주로 플라톤의 대화편 『파르메니데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 그리고 1,000년 뒤인 6세기의 심플리키오스가 남긴 주석 속의 인용으로 압니다. 생몰 연도도 플라톤의 대화편 설정에서 거꾸로 짐작한 값입니다.

굵은 막대가 이 사람의 생애이고, 흰검은 점은 페이지 끝 연표에 적은 일들입니다. 가는 막대는 같은 시대를 산 이 위키의 인물들입니다. 나이를 끌어 보세요.

나이 세 ·

되받아치는 논증. 『파르메니데스』에서 제논은 자기 책의 목적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스승을 비웃는 사람들에게, '여럿이 있다'는 그들 자신의 가정에서 출발하면 '하나만 있다'는 가정보다 더 우스운 결론이 나온다는 것을 보여 그대로 되갚아 주려 했다는 것입니다. 상대의 가정을 받아들인 뒤 거기서 모순을 끌어내는 이 방식은 오늘날 수학의 귀류법⁠(proof by contradiction)⁠과 같은 모양입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제논을 '변증술의 창시자'라 불렀다고 전하고, 5세기의 프로클로스는 그의 책에 이런 논증이 40개 있었다고 적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움직임에 관한 네 가지 역설입니다.

이분법 역설⁠(dichotomy paradox)⁠. 어떤 지점까지 가려면 먼저 그 절반을 가야 하고, 남은 거리의 절반을 또 가야 하며, 이 일은 끝없이 계속됩니다. 끝없이 많은 일을 다 마칠 수는 없으니 출발한 사람은 결코 도착하지 못한다는 것이 제논의 논증입니다. 전체 거리를 1이라 하면 지나야 할 구간은 12,14,18,…\tfrac12, \tfrac14, \tfrac18, \ldots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무한히 많은 수의 합이 1이라고 말하는데, 그 뜻은 정확히 이렇습니다. 앞에서부터 차례로 더한 부분합⁠(partial sum)⁠은 12,34,78,…\tfrac12, \tfrac34, \tfrac78, \ldots이고 nn번째 부분합은 1−12n1 - \tfrac1{2^n}이어서, 1과의 차이를 아무리 작게 정해도 어느 단계부터는 그보다 작아지고, 한 번도 1을 넘지 않습니다. 이렇게 부분합이 한 값에 한없이 다가갈 때 그 값을 급수⁠(series)⁠의 합이라고 정의합니다(등비급수⁠(geometric series)⁠, 급수의 수렴과 발산⁠(convergence and divergence of series)⁠). 이 정의는 1821년 코시의 『해석학⁠(mathematical analysis)⁠ 강의』에서야 분명하게 적혔습니다. 무한히 많은 구간이 유한한 거리를 채울 수 있다는 것, 제논이 불가능하다고 본 바로 그것이 극한⁠(limit)⁠이라는 말의 내용입니다.

아킬레우스와 거북. 가장 빠른 영웅 아킬레우스도 앞서 출발한 거북을 따라잡지 못합니다. 거북이 있던 곳에 닿으면 거북은 그새 조금 더 가 있고, 거기에 닿으면 또 조금 더 가 있기 때문입니다. 숫자를 넣어 보면 무엇이 틀렸는지 보입니다. 아킬레우스가 1초에 10m, 거북이 1m를 가고 거북이 100m 앞에서 출발한다고 합시다. 아킬레우스가 100m를 가는 10초 동안 거북은 10m를 가고, 그 10m를 가는 1초 동안 거북은 1m를 가고, 이렇게 따라잡아야 할 거리는 100, 10, 1, 0.1, …m로 줄고 걸리는 시간은 10, 1, 0.1, 0.01, …초로 줍니다. 단계는 끝없이 많지만 시간의 합은 10+1+0.1+⋯=100910 + 1 + 0.1 + \cdots = \tfrac{100}{9}초, 약 11.1초로 유한합니다. 둘 사이의 간격이 1초에 9m씩 줄어드니 100m를 좁히는 데 1009\tfrac{100}{9}초가 걸린다는 직접 계산과도 맞습니다. 제논의 논증에서 '단계가 무한히 많다'는 옳고, '그러니 시간도 무한히 걸린다'가 틀린 것입니다.

그것으로 끝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미 비슷한 답을 내놓았습니다. 거리가 무한히 나뉘는 만큼 시간도 무한히 나뉘니, 무한히 많은 구간을 무한히 많은 짧은 시간에 지나는 데 모순은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는 그 무한한 분할이 가능성으로만 있을 뿐 실제로 다 이루어진 무한은 아니라고 덧붙였습니다(무한을 다루는 법). 합이 유한하다는 계산이 모든 의문을 지우지는 못한다는 지적은 20세기에도 나왔습니다. 1954년 영국의 철학자 J. F. 톰슨은 1분 뒤, 30초 뒤, 15초 뒤, …마다 스위치를 누르는 전등을 상상했습니다. 누르는 시각들의 합은 2분으로 유한하지만, 2분이 되는 순간 전등이 켜져 있는지 꺼져 있는지는 정해지지 않습니다. 켜짐을 1, 꺼짐을 0으로 적으면 상태의 열 1, 0, 1, 0, …은 어떤 값에도 다가가지 않는, 곧 수렴⁠(convergence)⁠하지 않는 수열이기 때문입니다. 무한히 많은 일을 유한한 시간에 '마친다'는 말이 언제 뜻을 갖는지는 수렴이라는 조건에 달려 있습니다.

날아가는 화살. 셋째 역설은 순간을 겨눕니다. 어느 한 순간에 화살은 자기 길이와 꼭 같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그 순간에는 멈춰 있습니다. 날아가는 시간이 모두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화살은 날아가는 내내 멈춰 있는 셈입니다. 오늘날의 답은 속도⁠(velocity)⁠를 한 순간 안에서 찾지 않는 것입니다. 화살의 위치를 시각의 함수⁠(function)⁠ x(t)x(t)로 보고, 시각 tt에서의 속도는 tt를 포함하는 짧은 구간의 평균 속도⁠(average velocity)⁠가 구간을 줄여 갈 때 다가가는 값, 곧 미분계수⁠(derivative)⁠로 정의합니다. 한 순간에 화살이 한 자리에 있다는 것과 그 순간의 속도⁠(instantaneous velocity)⁠가 0이 아니라는 것은 이 정의 아래 아무 모순 없이 함께 성립합니다. 러셀은 1903년 『수학의 원리』에서 움직임이란 서로 다른 때에 서로 다른 곳에 있는 것일 뿐이라는 답을 내놓았고, 이것이 오늘날 물리학이 운동을 적는 방식입니다.

경기장. 넷째 역설은 경기장에 늘어선 세 줄의 물체를 다룹니다. 한 줄은 서 있고, 나머지 두 줄은 같은 빠르기로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움직이는 한 물체는 같은 시간에 서 있는 줄의 물체는 하나 지나치지만 반대로 오는 줄의 물체는 둘 지나치니, 그 시간의 절반이 그 시간 전체와 같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상대 속도를 무시한 단순한 착오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19세기 말부터 몇몇 학자는 이 역설을 다르게 읽었습니다. 시간과 공간이 더 쪼갤 수 없는 최소 단위로 이루어져 있다면, 한 물체가 최소 시간 한 칸 동안 반대편 물체를 두 칸 지나치는 사이에 한 칸만 지나친 '반 칸의 순간'이 있어야 하는데, 최소 단위라는 가정과 모순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읽으면 네 역설은 한 쌍의 덫이 됩니다. 이분법⁠(bisection method)⁠과 아킬레우스는 시간과 공간이 끝없이 나뉜다고 볼 때, 화살과 경기장은 더 나눌 수 없는 조각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때를 겨냥합니다.

여럿의 역설과 점의 길이. 심플리키오스는 제논 자신의 문장을 몇 줄 옮겨 두었습니다. 여럿이 있다면 그것들은 한없이 작기도 하고 한없이 크기도 해야 한다는 논증입니다. 어떤 것을 끝없이 나누면, 그 조각들이 크기를 가진다면 무한히 많은 조각이 모여 무한히 커지고, 크기가 없다면 아무리 모아도 크기가 없으니 처음부터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물음에 대한 20세기 수학의 답은 뜻밖에 섬세합니다. 선분의 점 하나하나는 길이가 0입니다. 그리고 칸토어가 대각선 논법⁠(diagonal argument)⁠으로 보였듯 선분의 점은 자연수⁠(natural number)⁠로 번호를 매길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집합의 크기⁠(cardinality)⁠). 20세기 초 르베그가 세운 측도론⁠(measure theory)⁠은 번호를 매길 수 있는 만큼의 조각에 대해서만 '전체 길이는 조각 길이의 합'이라는 규칙을 세웁니다. 그래서 유리수⁠(rational number)⁠ 전체처럼 번호를 매길 수 있는 점들의 모임은 길이가 0이고(측도 0⁠(measure zero)⁠), 길이 1인 선분이 길이 0인 점들로 이루어져 있어도 모순이 없습니다. 선분의 점은 번호를 매길 수 없을 만큼 많으니, 덧셈 규칙이 애초에 적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길이는 점의 길이를 더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 제논의 덫은 여기서 풀립니다.

혀를 깨문 철학자.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제논이 엘레아의 참주를 몰아내려다 붙잡혀 고문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공모자를 대라는 요구에 참주의 측근들을 지목했다거나, 스스로 혀를 깨물어 참주에게 뱉었다거나, 할 말이 있다며 참주의 귀를 물고 놓지 않았다는 여러 판본이 있고, 참주의 이름도 네아르코스, 디오메돈 등으로 엇갈립니다. 판본끼리 서로 어긋나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전설입니다. 『파르메니데스』가 그린 제논, 곧 마흔 살 가까운 키 크고 잘생긴 사람이 아테네에 와 자기 책을 읽어 주었다는 장면도 플라톤이 지어낸 무대일 수 있습니다.

2,400년의 숙제. 그리스 수학자들은 제논 이후 무한히 많은 것을 더하는 일을 피했습니다. 유클리드는 소수⁠(prime number)⁠가 무한히 많다는 대신 '주어진 어떤 개수보다도 많다'고 썼고, 에우독소스와 아르키메데스는 넓이⁠(area)⁠를 구할 때 무한히 더하는 대신 '크다고 해도 작다고 해도 모순'이라는 실진법⁠(method of exhaustion)⁠을 썼습니다. 17세기의 미적분⁠(calculus)⁠은 무한히 작은 양을 대담하게 다루었고, 1734년 버클리 주교는 뉴턴의 유율⁠(fluxion)⁠을 '사라진 양의 유령'이라 비꼬며 그 논리적 빈틈을 공격했습니다(조지 버클리). 19세기에 코시와 바이어슈트라스가 극한을 부등식만으로 정의하고, 데데킨트와 칸토어가 실수⁠(real number)⁠와 무한 집합⁠(set)⁠을 세우면서 제논이 겨눈 빈틈은 수학 안에서 메워졌습니다. 철학자들 사이에서는 지금도 무한히 많은 일을 마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두고 논의가 이어집니다.

이어지는 곳. 이분법과 아킬레우스의 계산은 등비급수와 급수의 수렴과 발산에, 그 합을 정의하는 말은 극한에 있습니다. 화살의 순간 속도는 미분계수로, 점이 모여 길이가 되는 문제는 집합의 크기, 측도 0, 르베그 적분과 측도⁠(Lebesgue integral and measure)⁠로 이어집니다. 무한을 두려워하고 길들여 온 긴 이야기는 무한을 다루는 법에 모았고, 그의 역설에 대한 답으로 전하는 가장 오래되고 자세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것입니다.

관계.

가운데가 이 사람, 둘레가 이어진 인물들입니다. 선의 색은 관계의 종류(초록 스승·제자, 파랑 함께 연구, 보라 편지, 빨강 논쟁, 주황 영향)이고, 다른 인물의 페이지에 적힌 관계도 함께 모았습니다.

  • 영향을 줌 아리스토텔레스 —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학』 6권에서 네 가지 운동 역설을 소개하고, 시간도 거리처럼 무한히 나뉘며 선분 속의 무한한 분할은 가능성으로만 있다는 답을 내놓았습니다. 역설의 내용은 거의 이 책을 통해 전합니다.
  • 영향을 줌 플라톤 — 플라톤은 『파르메니데스』에서 마흔 살 가까운 제논이 자기 책을 읽어 주고 젊은 소크라테스와 '하나와 여럿'을 두고 토론하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 영향을 줌 버트런드 러셀 — 러셀은 1903년 『수학의 원리』에서 제논의 논증을 길게 다루며, 움직임이란 서로 다른 때에 서로 다른 곳에 있는 것일 뿐이라는 답을 칸토어와 바이어슈트라스의 수학 위에 세웠습니다.

연표.

  • 기원전 480년 살라미스 해전에서 그리스 연합 함대가 페르시아를 물리치다
  • 기원전 475년 스승 파르메니데스가 '있는 것은 하나이고 움직이지 않는다'는 시를 쓰다(무렵)
  • 기원전 460년 움직임과 여럿을 부정하는 논증 40개를 책으로 엮었다고 전하다(무렵)
  • 기원전 450년 플라톤의 대화편 설정으로는 스승과 함께 아테네에 가 젊은 소크라테스를 만나다
  • 기원전 431년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시작되다
이 개념이 나오는 큰 생각무한을 다루는 법

이 인물이 나오는 긴 글

미분에서 회전까지 · 1편 · 미분 순간의 속도 속도계는 '지금 이 순간'의 속도를 보여 준다. 순간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데, 무엇을 재는 걸까? 미분에서 회전까지 · 3편 · 테일러 급수 한 점에서 전부를 한 점에서의 값과 기울기, 휘는 정도만으로 함수 전체를 다시 그릴 수 있을까? 미분에서 회전까지 · 5편 · 복소수와 행렬 곱셈은 회전이다 복소수를 곱하는 일과 행렬로 평면을 돌리는 일은 같은 일이다. 집합론 무한에도 크기가 있다 자연수와 짝수는 어느 쪽이 많을까? 칸토어는 무한을 세는 법을 찾았고, 무한이 하나가 아님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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