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개념 지도
인물

찰스 배비지(Charles Babbage)

사람이 만든 수표의 오류를 없애려고 덧셈만으로 표를 계산하는 차분기관을, 이어 명령 카드를 바꿔 끼워 무엇이든 계산하는 해석기관⁠(Analytical Engine)⁠을 설계해 컴퓨터의 구조를 한 세기 앞서 그린 영국의 수학자.

Δ2(n2)=(n+2)2−2(n+1)2+n2=2\Delta^2\big(n^2\big) = (n+2)^2 - 2(n+1)^2 + n^2 = 2

찰스 배비지는 1791년 런던에서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가 자란 영국은 증기기관과 방적기로 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한 산업혁명의 한가운데 있었고, 바다를 누비는 해군과 상선은 달과 별의 위치를 적은 항해 수표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로그표, 삼각함수표, 천문표는 모두 사람이 손으로 계산하고 베끼고 활자로 짠 것이어서 곳곳에 오류가 있었습니다. 배비지는 계산을 공장처럼 기계에 맡기면 오류를 뿌리부터 없앨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을 좇다가 오늘날 컴퓨터의 기본 구조, 곧 기억 장치와 계산 장치와 바꿔 끼울 수 있는 명령을 한 세기 앞서 설계했습니다.

굵은 막대가 이 사람의 생애이고, 흰검은 점은 페이지 끝 연표에 적은 일들입니다. 가는 막대는 같은 시대를 산 이 위키의 인물들입니다. 나이를 끌어 보세요.

나이 세 ·

1810년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에 들어간 그는 영국 수학이 뉴턴의 점 기호에 매여 대륙에 뒤처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1812년 친구 존 허셜, 조지 피콕과 '해석학회'를 만들어 라이프니츠의 d 기호와 대륙의 해석학⁠(mathematical analysis)⁠을 들여오자고 나섰고, 1816년 셋이 함께 라크루아의 프랑스어 미적분⁠(calculus)⁠ 교과서를 영어로 옮겼습니다. 같은 해 왕립학회 회원이 되었고, 1820년에는 허셜 등과 천문학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귀족 애호가들이 좌우하는 왕립학회를 못마땅해했고, 1830년 『영국 과학의 쇠퇴에 관한 성찰』에서 이를 거세게 비판했습니다. 이 논쟁은 이듬해 영국과학진흥협회가 생기는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회고록에 따르면 1821년 무렵 허셜과 함께 천문 계산표를 대조하다 오류가 쏟아지자, 그는 이 계산을 증기로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탄식했다고 합니다. 실마리는 프랑스에 있었습니다(혁명기 파리와 에콜 폴리테크니크). 1790년대 파리의 공학자 프로니는 새 십진 각도에 맞춘 거대한 로그와 삼각함수⁠(trigonometric function)⁠ 표를 만들면서, 애덤 스미스가 묘사한 핀 공장의 분업을 계산에 들였습니다. 몇몇 수학자가 공식을 고르고, 가운데 층이 그것을 덧셈만으로 계산하는 절차로 바꾸면, 맨 아래 수십 명의 계산원은 덧셈과 뺄셈만 했습니다. 배비지는 맨 아랫단의 일이 기계적이라면 기계에 맡길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 절차가 차분법입니다. 제곱수⁠(perfect square)⁠ 1, 4, 9, 16, 25, …를 늘어놓고 이웃한 수의 차를 적으면 3, 5, 7, 9, …가 되고, 그 차의 차는 늘 2입니다. 그러니 첫 몇 개의 값만 알면, 2를 더해 다음 차를 얻고 그 차를 더해 다음 제곱수를 얻는 식으로 덧셈만으로 표를 끝없이 이어 갈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k차 다항식⁠(polynomial)⁠은 k번째 차가 일정합니다(점화식⁠, recurrence relation⁠). 로그나 사인⁠(sine)⁠처럼 다항식이 아닌 함수⁠(function)⁠도 좁은 구간에서는 다항식으로 아주 가깝게 흉내 낼 수 있으니(테일러 급수⁠(Taylor series)⁠), 구간마다 다항식을 바꿔 가며 덧셈만으로 표를 만들 수 있습니다. 1822년 그는 이 계산을 톱니바퀴로 하는 '차분기관'을 발표했습니다. 기계는 계산만이 아니라 결과를 인쇄판에 직접 찍어, 베끼고 조판하며 생기는 오류까지 없애도록 설계되었습니다(알고리즘⁠(algorithm)⁠, 근사와 오차).

항해 수표의 정확성이 걸린 일이었기에 영국 정부는 1823년부터 돈을 댔습니다. 그러나 수만 개의 부품을 당시 기술로 정밀하게 깎는 일은 어려웠고, 1832년 기술자 조지프 클레멘트가 전체의 일부를 조립해 시연 부분을 완성했을 뿐입니다. 이듬해 비용과 도구의 소유권을 둘러싼 분쟁으로 클레멘트가 떠나면서 작업이 멈추었고, 정부는 1만 7천 파운드를 쓴 끝에 1842년 지원을 끊었습니다. 그 사이 배비지는 1828년부터 11년 동안 뉴턴이 앉았던 케임브리지의 루카스 석좌교수 자리에 있었지만 강의는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1832년의 『기계와 제조업의 경제에 대하여』는 공장을 돌아다니며 관찰한 분업과 비용을 분석한 책으로, 경제학자들에게도 널리 읽혔습니다. 스웨덴의 쇼이츠 부자는 그의 차분기관에 관한 글을 읽고 더 작은 기계를 실제로 만들어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작업이 멈춘 1834년 무렵 그는 훨씬 더 큰 생각⁠(big ideas)⁠에 이르렀습니다. 차분기관은 한 가지 계산만 합니다. 배비지는 계산의 종류 자체를 바꿔 끼울 수 있는 '해석기관'을 구상했습니다. 수를 보관하는 '저장소'(그는 50자리 수 1,000개를 생각했습니다)와 계산을 하는 '공장'이 따로 있고, 어떤 연산을 어떤 수에 할지는 구멍 뚫린 카드로 줍니다. 카드는 1804년 프랑스의 자카르가 만든 직기에서 빌려 왔습니다. 자카르 직기⁠(Jacquard loom)⁠에서는 카드의 구멍이 어떤 날실을 들어 올릴지를 정해 비단에 복잡한 무늬를 짰습니다. 해석기관은 계산 결과의 부호에 따라 다음에 읽을 카드를 바꿀 수 있게 설계되었는데, 오늘날의 조건문과 반복문에 해당합니다. 저장소, 공장, 명령의 흐름이라는 이 구조는 1940년대 전자식 컴퓨터의 구조와 놀랄 만큼 닮았습니다.

해석기관은 끝내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1840년 그는 이탈리아 토리노의 학자 모임에 초청받아 설계를 설명했고, 그 자리에 있던 젊은 공학 장교 메나브레아(뒤에 이탈리아 총리가 됩니다)가 1842년 프랑스어로 해설을 썼습니다. 이 글을 영어로 옮기고 원문의 세 배 가까운 주석을 붙인 사람이 에이다 러브레이스였습니다. 그녀는 해석기관이 베르누이 수⁠(Bernoulli numbers)⁠를 계산하는 절차를 한 단계씩 적었고, 기계가 수만이 아니라 기호라면 무엇이든 다룰 수 있으리라고 내다보았습니다. 1847–49년 배비지는 차분기관을 더 적은 부품으로 다시 설계한 '차분기관 2호'를 그렸는데, 1991년 런던 과학박물관이 그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이 설계대로 기계를 만들었고, 기계는 31자리까지 정확히 계산했습니다. 그의 설계가 당시 기술로도 원리상 가능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는 계산 기계 밖에서도 부지런했습니다. 1834년 런던 통계학회 창립에 참여해 사회를 수로 이해하려는 흐름에 섰고, 보험 수명표를 계산했으며, 1850년대에는 당시 풀 수 없다던 비즈네르 암호를 깼지만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방법은 1863년 프로이센의 카지스키가 따로 발표해 그의 이름으로 알려졌습니다. 1837년 비공식 『제9 브리지워터 논고』에서는, 계산 기계가 수백만 번 한 규칙을 따르다 미리 짜 둔 순간에 다른 규칙으로 넘어갈 수 있듯이 기적도 창조자가 처음부터 짜 둔 법칙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노년에는 거리의 손풍금 악사들과 벌인 소음 싸움으로 신문에 오르내렸습니다. 1871년 런던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설계는 한동안 잊혔습니다. 아들 헨리가 해석기관의 공장 일부를 만들어 보았고, 1937년 하버드의 에이킨은 대학 창고에서 그 조각을 발견하고 자신이 만들던 전기 기계식 계산기 마크 I을 배비지의 꿈을 잇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튜링은 1950년 논문에서 해석기관을 완성되지 못한 만능 디지털 컴퓨터로 소개하며, 배비지의 기계가 전기가 아닌 톱니바퀴로 움직인다는 것은 본질이 아니라고 적었습니다. 어떤 계산이든 적절한 명령만 주면 한 기계가 해낸다는 생각은 튜링 기계⁠(Turing machine)⁠와 처치–튜링 논제⁠(Church–Turing thesis)⁠로 정확한 모습을 얻었고, 계산을 사람의 분업에서 기계의 절차로 옮긴 그의 발상은 표현 바꾸기의 한 장면입니다.

이어지는 곳. 차분법은 다항식, 점화식, 테일러 급수로, 명령을 바꿔 끼우는 기계는 알고리즘, 튜링 기계, 처치–튜링 논제로 이어집니다. 함께 해석기관을 해설한 에이다 러브레이스, 기계의 한계와 가능성을 정확히 그은 앨런 튜링, 같은 시대에 논리를 대수로 옮긴 조지 불을 함께 읽으면 좋습니다.

관계.

가운데가 이 사람, 둘레가 이어진 인물들입니다. 선의 색은 관계의 종류(초록 스승·제자, 파랑 함께 연구, 보라 편지, 빨강 논쟁, 주황 영향)이고, 다른 인물의 페이지에 적힌 관계도 함께 모았습니다.

  • 영향을 줌 앨런 튜링 — 튜링은 1950년 논문에서 해석기관을 완성되지 못한 만능 디지털 컴퓨터로 소개하며, 계산 기계가 전기를 쓰느냐는 본질이 아니라고 적었습니다.

연표.

  • 1810년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에 들어가다
  • 1812년 허셜, 피콕과 해석학회를 만들다
  • 1816년 왕립학회 회원이 되고, 라크루아의 미적분 교과서 번역을 함께 펴내다
  • 1820년 천문학회(뒤의 왕립 천문학회)를 세우는 데 앞장서다
  • 1822년 다항식의 차분⁠(finite difference)⁠으로 표를 계산하는 기계를 구상해 발표하다
  • 1823년 정부의 지원을 받아 차분기관 제작을 시작하다
  • 1828년 케임브리지 루카스 석좌교수가 되다
  • 1830년 『영국 과학의 쇠퇴에 관한 성찰』을 펴내다
  • 1832년 『기계와 제조업의 경제에 대하여』를 펴내고 차분기관의 시연 부분을 완성하다
  • 1833년 기술자 클레멘트와의 분쟁으로 제작이 멈추다
  • 1834년 해석기관을 구상하기 시작하고 런던 통계학회 창립에 참여하다
  • 1840년 토리노의 학자 모임에서 해석기관을 설명하다
  • 1842년 정부가 차분기관 지원을 끊다
  • 1847년 더 단순한 차분기관 2호를 설계하기 시작하다
  • 1864년 회고록 『한 철학자의 삶에서 뽑은 구절들』을 펴내다

이 인물이 나오는 긴 글

미분에서 회전까지 · 1편 · 미분 순간의 속도 속도계는 '지금 이 순간'의 속도를 보여 준다. 순간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데, 무엇을 재는 걸까? 미분에서 회전까지 · 3편 · 테일러 급수 한 점에서 전부를 한 점에서의 값과 기울기, 휘는 정도만으로 함수 전체를 다시 그릴 수 있을까? 미분에서 회전까지 · 5편 · 복소수와 행렬 곱셈은 회전이다 복소수를 곱하는 일과 행렬로 평면을 돌리는 일은 같은 일이다. 정수론과 암호 나머지로 지키는 비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두 사람이 모두가 엿듣는 통신망에서 비밀 열쇠를 맞출 수 있을까? 답은 시계의 산수와 1640년 페르마의 정리에 있다. 계산 이론 기계가 풀 수 없는 문제 모든 수학 문제를 기계적으로 풀 수 있을까? 러셀의 역설에서 괴델과 튜링까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오'였고, 그 증명이 컴퓨터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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