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개념 지도
인물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떨어지는 물체와 던진 물체의 운동을 수로 적고 망원경으로 하늘을 관측해, 자연을 수학으로 읽는 근대 과학의 길을 연 이탈리아의 과학자.

d∝t2,1:3:5:7:⋯d \propto t^2, \qquad 1 : 3 : 5 : 7 : \cdots

갈릴레이는 1564년 토스카나의 피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빈첸초 갈릴레이는 류트 연주자이자 음악 이론가로, 줄의 길이와 장력을 바꾸어 가며 소리의 높이를 실험한 사람이었습니다. 갈릴레이 자신도 훗날 『새로운 두 과학』 첫째 날 대화에서 피타고라스 학파가 전한 줄 길이의 비 2:1, 3:2를 진동수⁠(frequency)⁠의 비로 다시 설명했습니다. 갈릴레이는 피사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다 수학으로 돌아섰고, 1586년에는 아르키메데스를 본받아 물속 무게로 금속의 비율을 가리는 저울에 관한 짧은 글을 썼습니다. 그 무렵 유럽의 대학은 여전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을 가르쳤습니다. 물체는 저마다 본래의 자리로 가려 하고, 무거운 것이 더 빨리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1543년 폴란드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가 태양 중심의 우주를 내놓았지만, 그것은 아직 계산의 도구로 여겨졌습니다. 그는 1589년 피사, 1592년부터 18년 동안 베네치아 공화국의 파도바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쳤습니다.

굵은 막대가 이 사람의 생애이고, 흰검은 점은 페이지 끝 연표에 적은 일들입니다. 가는 막대는 같은 시대를 산 이 위키의 인물들입니다. 나이를 끌어 보세요.

나이 세 ·

베네치아의 18년. 파도바 대학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대학이었고, 공화국은 교황청의 간섭에서 비교적 자유로웠습니다. 갈릴레이는 훗날 이 시기를 생애에서 가장 좋은 때로 회고했습니다. 대학 봉급만으로는 모자라 그는 하숙생을 받고 개인 교습을 했으며, 집에 공방을 두고 기술자를 고용해 측량과 포술에 쓰는 계산 도구인 '기하학적·군사적 컴퍼스'를 만들어 팔았습니다. 1606년 그 사용 설명서를 펴냈고, 이듬해에는 그것을 표절한 학생과 다툼을 벌여 이겼습니다. 베네치아의 국영 조선소 아르세날레도 그의 역학에 문제를 던졌습니다. 『새로운 두 과학』은 등장인물들이 아르세날레의 장인들이 하는 일을 이야기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배를 짓는 장인들은 작은 모형에서 버티던 구조가 크게 지으면 무너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고, 갈릴레이는 그 까닭을 수학으로 따졌습니다.

떨어지는 물체. 그는 무거운 물체가 더 빨리 떨어진다는 주장을 생각 실험으로 반박했습니다. 무거운 돌과 가벼운 돌을 묶으면, 가벼운 돌이 무거운 돌을 붙잡아 더 느려져야 하지만 둘을 합친 것은 더 무거우니 더 빨라야 합니다. 모순입니다. 피사의 사탑에서 공을 떨어뜨렸다는 이야기는 제자 비비아니가 훗날 전한 것으로 실제로 했는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확실한 것은 그가 빗면에서 공을 굴려 낙하를 느리게 만들어 재 보았다는 것입니다. 같은 시간 간격마다 공이 간 거리는 1 : 3 : 5 : 7 : …처럼 연속한 홀수의 비로 늘었고, 그 합은 1, 4, 9, 16, …, 곧 시간의 제곱입니다(1+3+⋯+(2n−1)=n21 + 3 + \cdots + (2n-1) = n^2). 그는 1604년 편지에 이 법칙을 적었고 1638년 『새로운 두 과학』에서 속도⁠(velocity)⁠가 시간에 비례해 고르게 느는 운동으로 설명했습니다. 시간을 가로축, 속도를 세로축에 놓은 그래프가 원점에서 출발하는 직선이면, 그 아래 삼각형의 넓이⁠(area)⁠가 간 거리입니다. 속도가 1초마다 10 m/s씩 는다면 3초 뒤의 속도는 30 m/s이고, 그동안 간 거리는 밑변 3, 높이 30인 삼각형의 넓이 45 m입니다. 시간이 두 배가 되면 밑변과 높이가 함께 두 배가 되어 넓이는 네 배가 되니, 거리는 시간의 제곱에 비례합니다. 속도와 거리의 이 관계가 미분⁠(differentiation)⁠과 적분⁠(integral)⁠, 그리고 둘을 잇는 미적분의 기본정리⁠(fundamental theorem of calculus)⁠의 뿌리입니다.

그는 던진 물체의 운동을 옆으로 고르게 가는 운동과 아래로 점점 빨라지는 운동으로 나누어, 두 운동을 합친 길이 포물선⁠(parabola)⁠임을 보였습니다. 운동을 방향별 성분으로 나누어 따로 다루는 생각은 벡터⁠(vector)⁠의 출발점입니다. 진자도 그의 관심사였습니다. 그는 진자가 크게 흔들리든 작게 흔들리든 한 번 왕복하는 시간이 같고, 그 시간은 줄 길이의 제곱근에 비례한다고 적었습니다. 줄을 네 배로 늘이면 왕복 시간은 두 배가 됩니다. 그러나 왕복 시간이 흔들림의 크기와 상관없다는 앞부분은 흔들림이 작을 때만 거의 맞는다는 것이 뒤에 밝혀졌습니다. 진자를 되돌리는 힘은 기운 각 θ의 사인값 sin⁡θ\sin\theta에 비례하는데, 각이 작으면 sin⁡θ\sin\theta가 θ(라디안⁠, radian⁠) 자체와 거의 같습니다(θ = 0.1이면 sin⁡θ=0.0998…\sin\theta = 0.0998\ldots). 이렇게 휘어진 관계를 곧은 관계로 바꿔 놓는 것을 선형화⁠(linearization)⁠라 하고, 그러면 진자의 운동을 적는 식이 선형 미분방정식⁠(linear differential equation)⁠이 되어 그 해가 흔들림의 크기와 상관없이 주기⁠(period)⁠가 같은 사인파⁠(sinusoid)⁠로 나옵니다. 흔들림이 크면 이 바꿔 놓기가 어긋나 주기가 조금씩 길어집니다. 1641년 그는 진자로 시계의 빠르기를 고르게 하는 장치를 구상해 아들 빈첸초와 비비아니에게 설명했지만, 실제 진자시계⁠(pendulum clock)⁠는 1656년 네덜란드의 하위헌스가 만들었습니다. 피사 대성당의 흔들리는 등을 보고 진자의 성질을 알아냈다는 이야기도 비비아니가 전하는 것이라 확실하지 않습니다.

거인은 왜 없나. 『새로운 두 과학』의 둘째 과학은 재료의 강도였습니다. 물체를 모든 방향으로 두 배 키우면 무게는 부피를 따라 8배가 되지만, 뼈나 들보가 버티는 힘은 단면적을 따라 4배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같은 모양으로 한없이 키우면 결국 제 무게를 못 이기고 부러집니다. 갈릴레이는 큰 동물의 뼈가 몸에 비해 훨씬 굵어야 하는 까닭, 전설 속 거인이 사람 모양 그대로는 서 있을 수 없는 까닭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길이의 제곱과 세제곱이 다르게 자란다는 이 단순한 관찰은 생물의 크기에서 배와 다리의 설계까지 두루 쓰입니다.

망원경. 1609년 네덜란드에서 망원경이 발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직접 렌즈를 갈아 망원경을 만들었습니다. 그해 8월 베네치아 원로원 앞에서 망원경을 시연해 종신 교수직과 크게 오른 봉급을 약속받았습니다. 멀리서 오는 배를 먼저 보는 도구는 해상 공화국에 귀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달 표면의 산과 골짜기, 은하수를 이루는 수많은 별, 목성 둘레를 도는 네 위성을 보았고, 1610년 『별의 전령』으로 알렸습니다. 위성들에 메디치 가문의 이름을 붙인 그는 그해 피렌체 대공의 궁정 수학자이자 철학자가 되었습니다. 프라하의 케플러는 곧바로 그의 관측을 지지하는 글을 펴냈습니다. 금성이 달처럼 차고 이지러진다는 관측은 금성이 태양 둘레를 돈다는 강한 증거였습니다. 1611년 그는 로마의 귀족 페데리코 체시가 세운 린체이 아카데미('살쾡이의 눈'이라는 뜻)의 회원이 되었고, 아카데미는 그의 『태양 흑점에 관한 편지』(1613)와 『시금저울』(1623)을 펴냈습니다. 학자들이 모여 서로의 책을 펴내 주는 이런 모임은 뒤의 왕립학회와 과학 아카데미의 앞선 형태였습니다.

성서와 자연. 트렌토 공의회(1545–63) 뒤의 가톨릭교회는 성서 해석의 권한을 교회에 두려 했습니다. 갈릴레이는 1613년 제자 카스텔리에게, 1615년 토스카나의 대공비 크리스티나에게 보낸 편지에서, 성서는 하늘이 어떻게 가는지가 아니라 하늘에 어떻게 가는지를 가르친다는 바로니오 추기경의 말을 빌려 자연에 관한 문제는 관찰과 증명으로 가려야 한다고 썼습니다. 1616년 교황청은 코페르니쿠스의 책을 '수정될 때까지' 금지하고, 갈릴레이에게 그 설을 옹호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1623년 그를 아끼던 마페오 바르베리니 추기경이 교황 우르바노 8세가 되자 그는 다시 희망을 품고 『두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를 써 1632년 펴냈습니다. 그러나 책 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대변하는 우둔한 인물 심플리치오의 입에 교황이 아끼던 논변을 넣은 것이 교황을 조롱했다는 의심을 샀고, 1633년 로마 종교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주장을 철회한 뒤 피렌체 남쪽 아르체트리의 집에 연금되어 여생을 보냈습니다. 재판정을 나서며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중얼거렸다는 이야기는 그가 살았을 때의 기록에는 없고, 책으로는 1757년에 처음 나타난 전설입니다.

수학의 언어. 1623년 『시금저울』에서 그는 우주라는 큰 책은 수학의 언어로 쓰여 있고 그 글자는 삼각형과 원 같은 도형이어서, 그 언어를 모르면 한 낱말도 알아들을 수 없다고 썼습니다. 연금 중에 완성한 『새로운 두 과학』에는 수학자들이 오래 곱씹을 역설도 있습니다. 자연수⁠(natural number)⁠ n마다 제곱수⁠(perfect square)⁠ n2n^2이 꼭 하나씩 있어 둘을 남김없이 짝지을 수 있으니, 제곱수는 자연수의 일부인데도 개수가 같아 보입니다. 그는 '같다, 크다, 작다'는 말이 무한한 양에는 맞지 않는다고 결론지었습니다. 250년 뒤 칸토어는 바로 이 짝짓기, 곧 전단사⁠(bijective)⁠로 집합의 크기⁠(cardinality)⁠를 정의했습니다(무한을 다루는 법). 이 책과 따로 쓴 짧은 글에서는, 세 주사위의 합이 10이 되는 경우(216가지 가운데 27가지)가 9가 되는 경우(25가지)보다 많다는 것을 세어 보이기도 했습니다(확률⁠, probability⁠). 『새로운 두 과학』은 이탈리아에서 낼 수 없어 네덜란드 레이던에서 인쇄되었고, 그 무렵 그는 두 눈의 시력을 거의 잃었습니다.

알프스 너머로. 그의 생각은 편지와 번역을 타고 퍼졌습니다. 1597년 케플러가 첫 책을 보내오자 갈릴레이는 자신도 여러 해 전부터 코페르니쿠스의 편이었다고 답장했습니다. 파리의 수도사 메르센은 그의 역학 강의록을 1634년 프랑스어로 옮겼고, 1639년에는 『새로운 두 과학』의 내용을 프랑스어로 풀어 펴냈습니다. 메르센의 편지망을 통해 이 책을 읽은 데카르트는 1638년 편지에서 갈릴레이가 첫 원인을 따지지 않고 현상만 기술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연금된 노인이 쓴 책이 네덜란드에서 인쇄되고 파리에서 번역되어 토론되는 이 연결망이 편지 공화국이었습니다.

그의 제자와 후배들이 다음 세대를 열었습니다. 그의 추천으로 볼로냐 교수가 된 카발리에리는 도형을 선의 모임으로 보는 불가분량⁠(indivisibles)⁠의 방법을 세웠고, 마지막 몇 달을 곁에서 보낸 토리첼리는 수은 기둥으로 공기의 압력을 재는 기압계를 만들었습니다. 1633년 그의 유죄 소식을 들은 데카르트는 지구가 움직인다는 내용을 담은 자기 책 『세계』의 출판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1642년 1월 아르체트리에서 죽었고, 영국의 옛 달력으로 같은 해 성탄절에 뉴턴이 태어났습니다. 뉴턴은 『프린키피아』(1687)에서 운동의 처음 두 법칙과 던진 물체의 포물선 궤적을 갈릴레이가 이미 찾았다고 적었습니다. 20세기의 아인슈타인은 순수한 논리만으로 얻은 명제는 현실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과학에 새겨 넣은 사람으로 그를 꼽으며 근대 물리학, 나아가 근대 과학의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가톨릭교회는 1992년 그에 대한 판결이 잘못이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했습니다.

이어지는 곳. 낙하 운동의 수학은 일정 시간 동안의 평균 속도⁠(average velocity)⁠인 평균변화율⁠(average rate of change)⁠, 한순간의 속도인 미분계수, 속도 그래프 아래 넓이로 거리를 되찾는 적분으로 이어집니다. 작은 흔들림의 진자는 사인파로 움직이고, 그 까닭은 선형 미분방정식에 있습니다. 제곱수의 역설은 자연수와 짝지어지는 무한 집합⁠(set)⁠을 다루는 가산 집합⁠(countable set)⁠과, 짝짓기로 크기를 정의하는 집합의 크기에서 풀립니다. 그가 본받은 사람은 아르키메데스였고, 그가 무너뜨린 자연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것이었습니다. 주사위의 경우를 세어 확률을 따진 앞선 이야기는 카르다노에게 있습니다.

관계.

가운데가 이 사람, 둘레가 이어진 인물들입니다. 선의 색은 관계의 종류(초록 스승·제자, 파랑 함께 연구, 보라 편지, 빨강 논쟁, 주황 영향)이고, 다른 인물의 페이지에 적힌 관계도 함께 모았습니다.

  • 논쟁 아리스토텔레스 — 『대화』와 『새로운 두 과학』에서 무거운 것이 더 빨리 떨어진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생각 실험과 빗면 실험으로 반박했습니다.
  • 영향을 줌 르네 데카르트 — 1633년 갈릴레이의 유죄 소식에 데카르트는 『세계』의 출판을 거두었고, 1638년에는 『새로운 두 과학』을 읽고 편지로 비판했습니다.
  • 영향을 줌 아이작 뉴턴 — 뉴턴은 『프린키피아』에서 운동의 처음 두 법칙과 던진 물체의 포물선 궤적을 갈릴레이가 이미 찾았다고 적었습니다.

연표.

  • 1586년 아르키메데스를 본받아 『작은 저울』을 쓰다
  • 1589년 피사 대학의 수학 강사가 되다
  • 1592년 베네치아 공화국의 파도바 대학으로 옮기다
  • 1604년 낙하 거리가 시간의 제곱에 비례한다고 편지에 적다
  • 1609년 망원경을 직접 만들어 하늘을 관측하다
  • 1610년 『별의 전령』에서 목성의 위성 넷을 알리고 피렌체의 궁정 수학자가 되다
  • 1611년 로마의 린체이 아카데미 회원이 되다
  • 1616년 코페르니쿠스설을 옹호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다
  • 1623년 『시금저울』을 펴내다
  • 1632년 『두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를 펴내다
  • 1633년 종교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아르체트리에 연금되다
  • 1638년 레이던에서 『새로운 두 과학』을 펴내다
  • 1642년 1월 아르체트리에서 죽다

이 인물이 나오는 긴 글

미분에서 회전까지 · 1편 · 미분 순간의 속도 속도계는 '지금 이 순간'의 속도를 보여 준다. 순간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데, 무엇을 재는 걸까? 미분에서 회전까지 · 2편 · 적분 거리를 되찾기 속도계 기록만 남았다. 차가 어디까지 갔는지 되찾을 수 있을까? 확률 도박판에서 온 편지 1654년, 도중에 멈춘 내기의 판돈을 어떻게 나눌까? 두 수학자가 주고받은 편지에서 확률론이 태어났다. 집합론 무한에도 크기가 있다 자연수와 짝수는 어느 쪽이 많을까? 칸토어는 무한을 세는 법을 찾았고, 무한이 하나가 아님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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