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좌표로 곡선을 방정식으로 바꾸어 기하(geometry)와 대수를 하나로 묶고, 모든 것을 의심하는 데서 출발해 근대 철학을 연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
데카르트는 1596년 프랑스 투렌 지방의 라에(오늘날 그의 이름을 따 '데카르트'로 바뀐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그가 한 살 무렵 세상을 떠났습니다. 라플레슈의 예수회 학교에서 스콜라 철학과 수학을 배우고 푸아티에 대학에서 법학 학위를 받은 뒤, 1618년 네덜란드 독립(independence) 전쟁을 이끌던 나사우 공 마우리츠의 군대에 자원해 브레다로 갔습니다. 유럽은 곧 30년 전쟁에 휩싸였고, 학문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르는 대학의 자연학과 갈릴레이의 새 과학이 맞서고 있었습니다. 데카르트는 흔들리지 않는 토대 위에 학문 전체를 다시 세우고 싶어 했고, 수학의 확실성이 그 본보기였습니다.
나이
예수회의 학생. 라플레슈 학교는 1604년 앙리 4세가 예수회에 맡겨 세운 학교였습니다. 예수회는 1599년 교육 규정을 정해 유럽 곳곳의 학교에서 같은 교과를 가르쳤고, 수학은 로마의 예수회 수학자 클라비우스가 쓴 교과서로 배웠습니다. 데카르트는 뒤에 『방법서설』에서 이 학교의 교육을 돌아보며, 여러 학문 가운데 수학만이 그 추론의 확실성과 명증함으로 그를 기쁘게 했지만 그토록 단단한 토대 위에 더 높은 것을 짓지 않은 것이 놀라웠다고 적었습니다. 파리의 수도사 마랭 메르센도 같은 학교 출신으로, 뒷날 데카르트의 가장 중요한 편지 상대가 됩니다.
브레다에서 만난 네덜란드의 학자 이사크 베이크만은 그에게 수학으로 자연을 다루는 문제들을 던졌고, 두 사람은 떨어지는 물체와 현의 진동 같은 문제를 함께 따졌습니다. 이듬해 1619년 11월 10일 밤, 독일 울름 근처의 겨울 숙소에서 그는 새로운 학문의 길을 보았다는 세 개의 꿈을 꾸었다고 스스로 적었습니다. 그 뒤 그는 방법을 다듬었습니다. 확실히 참이라고 알 수 있는 것만 받아들이고, 어려운 문제는 풀 수 있을 만큼 작은 부분으로 나누며, 가장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차례대로 나아가고, 빠뜨린 것이 없는지 모두 헤아린다는 것입니다.
관용의 공화국. 1628년 무렵 그는 네덜란드 공화국으로 옮겼습니다. 17세기의 네덜란드는 스페인에서 독립하는 전쟁을 치르면서도 해상 무역으로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되었고, 출판과 사상의 자유가 비교적 넓었습니다. 레이던과 암스테르담은 유럽의 인쇄 중심지였습니다. 데카르트는 이곳에서 20년 가까이 여러 도시로 거처를 옮기며 방해받지 않고 일했고, 파리와의 연락은 거의 모두 메르센을 거쳤습니다. 1637년 『방법서설』은 레이던의 인쇄업자 얀 마이러가 저자 이름 없이 펴냈습니다. 그러나 관용에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1642년 위트레흐트 대학은 신학자 푸티위스의 주도로 데카르트의 새 철학을 가르치지 못하게 했고, 레이던에서도 비슷한 다툼이 일었습니다.
좌표와 방정식. 『방법서설』에는 세 편의 부록이 붙어 있었고, 그 가운데 『기하학』이 수학을 바꾸었습니다. 그는 4세기 알렉산드리아의 수학자 파포스가 전한 문제, 곧 주어진 여러 직선까지의 거리가 정해진 비를 이루는 점들이 그리는 자취를 찾는 문제에서 출발했습니다. 기준선을 따라 잰 길이 하나를 x, 그 점에서 기준선까지 잰 길이를 y라고 이름 붙이면, 조건이 x와 y 사이의 방정식 하나가 됩니다. 곡선은 방정식이 되고, 두 곡선이 만나는 점은 두 방정식을 함께 만족하는 해가 됩니다. 두 직선이 만나는지 묻는 것은 연립일차방정식(system of linear equations)을 푸는 것이고, 중심이
작지만 오래 남은 발명도 많습니다. 모르는 양은 알파벳 끝의 x, y, z로, 아는 양은 앞의 a, b, c로 쓰고,
라틴어로 퍼진 『기하학』. 『기하학』은 프랑스어로 쓰였고 설명을 일부러 아껴서 읽기 어려웠습니다. 데카르트는 책 끝에서, 뒷사람들이 스스로 찾아내는 즐거움을 남겨 두려고 많은 것을 일부러 생략했다고 적었습니다. 이 책을 유럽의 교과서로 만든 사람은 레이던의 프란스 반 스호텐입니다. 그는 1649년 라틴어 번역과 해설을 냈고, 1659–61년의 두 권짜리 둘째 판에는 드 본, 휘더, 얀 더 빗 같은 수학자들의 보충 논문을 함께 실었습니다. 젊은 뉴턴이 1664년 무렵 붙들고 씨름한 것이 바로 이 판입니다. 도형의 문제를 방정식의 문제로 옮겨 풀고 답을 다시 도형으로 읽는 이 방법은 표현 바꾸기의 가장 큰 사례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같은 생각에 거의 같은 때 이른 사람이 툴루즈의 페르마였습니다. 페르마의 원고는 1636년 무렵부터 메르센을 통해 돌았고, 두 사람은 메르센을 사이에 두고 접선(tangent line) 구하는 법과 빛의 굴절을 두고 날 선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메르센의 방은 유럽 학자들의 편지가 모이고 베껴져 다시 흩어지는 우체국 같은 곳이었고, 데카르트는 네덜란드에 숨어 지내면서도 그 연결망, 곧 편지 공화국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는 『굴절광학』에서 굴절 법칙(law of refraction)을 발표했습니다. 빛이 공기에서 물로 들어갈 때처럼 꺾이면, 경계면에 수직인 선과 들어오는 빛이 이루는 각(입사각)의 사인(sine)과 꺾인 빛이 이루는 각(굴절각)의 사인의 비가 두 물질에 따라 정해진 값(공기에서 물로는 약 1.33)으로 늘 일정하다는 법칙입니다. 네덜란드의 스넬이 1621년 무렵 먼저 찾았지만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또 『기상학』에서는 무지개가 약 42°의 각도에서 보이는 까닭을 물방울 속 빛의 경로로 설명했습니다.
반박과 답변. 1641년 『성찰』을 펴낼 때 데카르트는 메르센에게 원고를 돌려 학자들의 반박을 모으게 했고, 여러 묶음의 반박과 자기의 답변을 본문과 함께 실었습니다. 반박을 쓴 사람 가운데는 『리바이어던』을 쓴 영국의 철학자 홉스, 신학자 아르노, 원자론자 가상디가 있었습니다. 책 한 권이 공개 토론의 기록이 된 셈입니다. 1643년부터는 망명한 팔츠 선제후의 딸 엘리자베트 공주와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엘리자베트는 생각하는 영혼이 어떻게 공간을 차지하는 몸을 움직일 수 있느냐고 날카롭게 물었고, 데카르트는 『철학의 원리』를 그에게 바쳤으며 감정을 다룬 마지막 책 『정념론』(1649)을 쓰게 되었습니다. 1647년에는 파리에 들러 스물네 살의 파스칼을 만났는데, 진공이 있을 수 있느냐를 두고 두 사람의 생각은 갈렸습니다.
관성(inertia)과 소용돌이. 1644년 『철학의 원리』에서 그는 자연의 법칙을 셋으로 적었습니다. 그 가운데 물체는 외부의 원인이 없으면 같은 상태를 유지하고, 움직이는 물체는 곧은 선을 따라 계속 움직이려 한다는 두 법칙은 갈릴레이보다 한 걸음 나아간 관성의 원리였고, 뉴턴의 제1법칙에 거의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반면 우주를 물질의 소용돌이들로 채우고 행성이 그 소용돌이에 실려 돈다고 한 그림은 뉴턴의 만유인력과 맞서다 18세기 중엽에 밀려났습니다. 이 소용돌이들이 공간을 나누어 가진 그림이, 평면을 가장 가까운 중심점별로 나눈 오늘날의 보로노이 다이어그램(Voronoi diagram)을 닮았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운동의 양을 물체의 크기와 빠르기의 곱으로 보고 그 합이 보존된다고 한 그의 주장은 1686년 라이프니츠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라이프니츠는 보존되는 것이 질량과 속도(velocity)의 제곱의 곱('활력')이라고 맞섰습니다. 이 다툼은 뒤에 두 사람이 저마다 반쯤 옳았다는 쪽으로 정리되었습니다. 방향까지 따진 질량 × 속도(운동량, momentum)는 보존되지만, 데카르트처럼 방향을 빼고 빠르기만 곱하면 보존되지 않습니다. 질량 × 속도²의 절반(운동 에너지, kinetic energy)은 튕기는 충돌에서는 그대로 보존되고, 열 같은 다른 형태까지 합치면 에너지 전체는 늘 보존됩니다.
철학에서 그는 의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의심해 보자고 했습니다. 감각도, 수학의 증명도 속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의심하는 나 자신이 있다는 것만은 의심할 수 없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방법서설』의 이 문장에서 근대 철학이 시작했다고 흔히 말합니다. 개인사로는, 네덜란드에서 얻은 딸 프랑신이 다섯 살에 병으로 죽은 일을 그는 평생의 가장 큰 슬픔으로 여겼다고 전합니다. 1649년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이 그를 스톡홀름으로 불렀고, 새벽마다 여왕에게 철학을 가르치던 그는 이듬해 2월 폐렴으로 죽었습니다. 1663년 교황청은 그의 저작을 금서 목록에 올렸지만, 그 무렵 그의 철학은 이미 네덜란드와 프랑스의 대학과 살롱에 퍼져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곳. 곡선을 방정식으로 바꾼 그의 생각이 없었다면 함수(function)의 그래프도, 그 기울기(slope)를 구하는 미분(differentiation)도 오늘의 모양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좌표 위의 두 점 사이 거리를 피타고라스 정리로 재는 것은 유클리드 거리(Euclidean distance)에서, 곡선이 만나는 점을 찾을 때 생기는 연립방정식을 체계적으로 푸는 방법은 가우스 소거법(Gaussian elimination)에서 이어집니다. 사람은 경험 이전에 타고난 생각의 틀을 가진다는 그의 합리론을, 모든 아이가 타고나는 문법 능력이라는 생각으로 언어학에서 되살린 사람이 촘스키입니다.
관계.
- 논쟁 피에르 드 페르마 — 1637–38년 메르센을 사이에 두고 페르마의 접선법과 극대·극소법을 공격하며 편지로 다투었습니다.
- 논쟁 블레즈 파스칼 — 1647년 9월 파리에서 젊은 파스칼을 찾아가 진공을 두고 의견이 갈렸고, 뒤에 퓌드돔 실험(산 아래와 꼭대기에서 수은 기둥의 높이를 재어 공기의 압력이 높이에 따라 줄어드는지 본 1648년의 실험)의 착상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 영향을 줌 아이작 뉴턴 — 젊은 뉴턴은 반 스호텐의 라틴어판 『기하학』으로 해석기하(analytic geometry)를 익혔고, 뒤에 그의 소용돌이 우주를 반박하며 『프린키피아』를 썼습니다.
- 영향을 줌 노엄 촘스키 — 촘스키는 1966년 『데카르트 언어학』에서 언어의 창조성을 강조한 데카르트 전통을 생성 문법(generative grammar)의 선구로 되살렸습니다.
연표.
- 1616년 푸아티에 대학에서 법학 학위를 받다
- 1618년 브레다에서 이사크 베이크만을 만나 수학과 자연학을 함께 연구하다
- 1619년 11월 10일 밤 새로운 학문에 대한 꿈을 꾸다
- 1628년 네덜란드 공화국으로 옮겨 20년 가까이 살다
- 1633년 갈릴레이의 유죄 소식을 듣고 『세계』의 출판을 거두다
- 1637년 레이던에서 『방법서설』과 부록 『기하학』을 펴내다
- 1641년 반박과 답변을 함께 실은 『성찰』을 펴내다
- 1642년 위트레흐트 대학이 그의 새 철학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다
- 1643년 팔츠의 엘리자베트 공주와 편지를 시작하다
- 1644년 『철학의 원리』를 펴내다
- 1647년 파리에서 젊은 파스칼을 만나 진공을 두고 이야기하다
- 1649년 반 스호텐이 『기하학』의 라틴어판을 내다. 스웨덴 크리스티나 여왕의 초청으로 스톡홀름에 가다
- 1650년 2월 스톡홀름에서 폐렴으로 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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