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개념 지도
인물

니콜 오렘(Nicole Oresme)

속도⁠(velocity)⁠나 열처럼 세지고 약해지는 성질을 도형으로 그려 거리를 넓이⁠(area)⁠로 읽고, 조화급수⁠(harmonic series)⁠가 끝없이 커짐을 증명한 14세기 파리의 학자. 국왕 샤를 5세의 조언자로 화폐론을 쓰고 아리스토텔레스를 프랑스어로 옮겼으며, 리지외의 주교로 생을 마쳤다.

1+12+(13+14)+(15+⋯+18)+⋯  >  1+12+12+12+⋯1 + \tfrac12 + \bigl(\tfrac13 + \tfrac14\bigr) + \bigl(\tfrac15 + \cdots + \tfrac18\bigr) + \cdots \;>\; 1 + \tfrac12 + \tfrac12 + \tfrac12 + \cdots

니콜 오렘은 1320–25년 무렵 노르망디의 캉 근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공부한 파리 대학에서 자연철학은 신학, 논리학과 한데 얽혀 있었습니다. 성질의 세기가 어떻게 늘고 주는가는 본래 신학자들이 사랑(카리타스) 같은 덕이 한 사람 안에서 커질 수 있느냐를 두고 벌인 논쟁에서 나온 물음이었고, 옥스퍼드 머튼 칼리지의 '계산가'들이 이것을 속도와 열 같은 성질의 문제로 옮겨 논리학의 연습 문제처럼 다루고 있었습니다. 오렘은 그 말의 논증을 그림으로 바꾼 사람입니다.

굵은 막대가 이 사람의 생애이고, 흰검은 점은 페이지 끝 연표에 적은 일들입니다. 가는 막대는 같은 시대를 산 이 위키의 인물들입니다. 나이를 끌어 보세요.

나이 세 ·

1350년대 무렵의 『성질과 운동의 배치에 관하여』에서 그는 대상의 폭(시간이나 물체의 길이)을 가로 선분으로, 그 점에서 성질의 세기를 세로 선분으로 세워 하나의 도형을 만들었습니다. 속도라면 가로가 시간, 세로가 속도이고, 도형의 넓이가 간 거리입니다. 고르게 빨라지는 운동은 삼각형이 되고, 그 넓이는 중간 순간의 속도⁠(instantaneous velocity)⁠를 높이로 하는 직사각형과 같습니다. 머튼 학파의 '평균 속도 정리⁠(mean speed theorem)⁠'를 넓이 하나로 증명한 것입니다. 곡선을 식으로 적는 좌표평면⁠(coordinate plane)⁠은 300년 가까이 뒤 데카르트와 페르마의 몫이었지만, 두 양의 관계를 도형으로 읽는다는 생각은 여기서 먼저 나왔습니다. 이 그림이 갈릴레이의 『새로운 두 과학』(1638)의 삼각형 논증에 얼마나 직접 이어졌는지는 역사가들 사이에서 지금도 논쟁거리입니다.

무한한 합에서도 그는 한 걸음 앞서 있었습니다. 유클리드 기하학에 관한 문제집에서 오렘은 1+12+13+⋯1 + \tfrac12 + \tfrac13 + \cdots의 항들을 둘, 넷, 여덟 개씩 묶으면 묶음마다 12\tfrac12보다 커지므로 합이 어떤 수도 넘어선다는 것을 보였습니다(위의 식). 항이 0으로 줄어드는데도 합이 끝없이 커지는 조화급수의 발산입니다. 거꾸로 1+12+14+⋯1 + \tfrac12 + \tfrac14 + \cdots처럼 등비급수⁠(geometric series)⁠가 유한한 값을 가진다는 것도 그는 도형으로 다루었습니다. 『비율의 비율에 관하여』에서는 분수 지수에 해당하는 비율도 다루었습니다.

그의 삶은 학문과 정치가 한 사람 안에서 섞이던 중세 말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1356년 나바르 학료의 학료장이 된 그는 1360년 무렵 『화폐론』을 써서, 주화는 군주의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것이므로 왕이 멋대로 금속 함량을 줄여 이득을 보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백년 전쟁과 흑사병 뒤의 혼란 속에서 주화의 가치가 거듭 떨어지던 때였습니다. 1364년 샤를 5세가 즉위하자 그는 왕의 조언자가 되었습니다. 1370년부터는 왕의 부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 『정치학』 『천체론』을 라틴어에서 프랑스어로 옮기며 주석을 달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프랑스어 학술 용어를 만들었습니다.

『천체론』 번역에 붙인 『천체와 세계에 관한 책』(1377)에서 그는 하늘이 도는 대신 지구가 하루에 한 바퀴 돈다고 해도 관측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논증들을 자세히 펼쳤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성서와 전통에 따라 지구가 멈춰 있다는 쪽을 택했습니다. 코페르니쿠스보다 170년쯤 앞선 이 논증은 결론보다, 확실해 보이는 믿음도 논증으로 따져 볼 수 있다는 태도로 기억됩니다. 그는 점성술이 별의 운동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는 전제도 비판했습니다. 1377년 리지외의 주교가 된 그는 1382년 7월 11일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어지는 곳. 오렘의 그림이 거리를 넓이로 읽는 정적분⁠(definite integral)⁠의 조상이 된 이야기는 「거리를 되찾기」에서, 그의 묶음 논증은 조화급수와 「한 점에서 전부를」에서, 그 앞의 머튼 학파와 갈릴레이로 이어지는 평균 속도⁠(average velocity)⁠의 이야기는 「순간의 속도」에서 볼 수 있습니다. 무한을 다루는 중세의 태도는 무한을 다루는 법에 있습니다.

관계.

가운데가 이 사람, 둘레가 이어진 인물들입니다. 선의 색은 관계의 종류(초록 스승·제자, 파랑 함께 연구, 보라 편지, 빨강 논쟁, 주황 영향)이고, 다른 인물의 페이지에 적힌 관계도 함께 모았습니다.

  • 영향을 받음 아리스토텔레스 — 평생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을 주석하고 프랑스어로 옮겼지만, 지구가 돌 수도 있다는 논증처럼 그의 결론을 여러 곳에서 따져 물었습니다.

연표.

  • 1348년 파리 대학 나바르 학료의 신학 장학생 명단에 이름이 오르다
  • 1350년 이 무렵 성질의 세기를 도형으로 그리는 방법과 조화급수의 발산⁠(divergence)⁠을 다루다
  • 1356년 나바르 학료의 학료장이 되다
  • 1360년 이 무렵 화폐의 가치를 함부로 바꾸지 말라는 『화폐론』을 쓰다
  • 1364년 루앙 대성당의 주임 사제가 되고, 즉위한 샤를 5세의 조언자가 되다
  • 1370년 왕의 부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 『정치학』 등을 프랑스어로 옮기기 시작하다
  • 1377년 『천체와 세계에 관한 책』을 마치고, 리지외의 주교로 임명되다
  • 1382년 리지외에서 세상을 떠나다
이 개념이 나오는 큰 생각무한을 다루는 법

이 인물이 나오는 긴 글

미분에서 회전까지 · 1편 · 미분 순간의 속도 속도계는 '지금 이 순간'의 속도를 보여 준다. 순간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데, 무엇을 재는 걸까? 미분에서 회전까지 · 2편 · 적분 거리를 되찾기 속도계 기록만 남았다. 차가 어디까지 갔는지 되찾을 수 있을까? 미분에서 회전까지 · 3편 · 테일러 급수 한 점에서 전부를 한 점에서의 값과 기울기, 휘는 정도만으로 함수 전체를 다시 그릴 수 있을까? 미분에서 회전까지 · 5편 · 복소수와 행렬 곱셈은 회전이다 복소수를 곱하는 일과 행렬로 평면을 돌리는 일은 같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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