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17세기 프랑스의 수학자·물리학자·사상가. 페르마와의 편지로 확률론을 열었고, 파스칼의 삼각형(Pascal's triangle)과 수학적 귀납법(mathematical induction)을 정리했다.
블레즈 파스칼은 1623년 프랑스 중부 오베르뉴의 클레르몽에서 태어났습니다. 세 살 때 어머니를 잃었고, 세무 관리이자 아마추어 수학자였던 아버지 에티엔이 학교 대신 집에서 직접 가르쳤습니다. 1631년 가족이 파리로 옮긴 뒤 아버지는 아들을 메르센 신부가 이끌던 학자들의 모임에 데려갔습니다. 네덜란드의 데카르트와 툴루즈의 페르마가 파리에 오지 않고도, 이 모임을 거쳐 오가는 편지로 좌표와 접선(tangent line)과 넓이(area)를 두고 겨루던 곳입니다. 수학이 대학보다 편지와 모임 속에서 자라던 시대였습니다.
나이
메르센은 파리 미님회 수도원의 방에서 유럽 곳곳의 학자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받은 문제와 결과를 베껴 다른 사람에게 다시 보내는 사람이었습니다. 학술지가 아직 없던 시절 그의 방은 사실상 유럽 학계의 우체국이었고, 이렇게 편지로 이어진 학자들의 세계를 흔히 편지 공화국이라 부릅니다. 소년 파스칼이 쓴 원뿔 곡선(conic section)의 결과도 이 그물을 타고 데카르트에게까지 전해졌고, 파스칼은 원근법을 연구하다 사영기하(projective geometry)를 연 리옹 출신의 건축가 데자르그의 방법에 크게 빚졌다고 스스로 밝혔습니다. 집안의 형편은 궁정의 정치에 따라 흔들렸습니다. 1638년 에티엔은 국채 이자를 깎은 정부에 항의하는 소동에 얽혀 몸을 숨겨야 했고, 딸 자클린이 추기경 리슐리외 앞에서 연극을 해 용서를 얻어 낸 뒤 1639년 말 노르망디 루앙의 세무 감독관으로 보내졌습니다.
첫 업적은 열여섯 살에 나왔습니다. 1640년의 짧은 『원뿔 곡선 시론』에는 원이나 타원(ellipse) 같은 원뿔 곡선 위에 여섯 점을 잡아 육각형을 만들면, 마주 보는 세 쌍의 변을 늘인 교점 셋이 한 직선 위에 놓인다는 정리가 실렸습니다. 오늘날 파스칼의 정리라 부르는 이 결과는 길이나 각을 재지 않고 점과 직선이 만나는 관계만 따지는 사영기하의 초기 결과입니다. 원을 한 점의 불빛으로 비춰 벽에 드리운 그림자는 벽의 기울기(slope)에 따라 타원, 포물선(parabola), 쌍곡선(hyperbola)이 되어 길이와 각이 모두 바뀝니다. 그래도 '세 점이 한 직선 위에 있다'는 관계는 그대로 남으니, 원에서 증명하면 모든 원뿔 곡선에서 성립합니다. 1642년 무렵에는 루앙에서 세금 장부를 계산하던 아버지를 돕느라 톱니바퀴로 덧셈과 뺄셈을 하는 계산기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몇 해 동안 여러 대를 만든 이 기계는 30년 뒤 라이프니츠가 곱셈까지 하는 계산기를 궁리하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1640년대 후반에는 갈릴레이의 제자 토리첼리가 1643년에 한 수은 기둥 실험을 되풀이하며 자연에 진공이 있는지를 따졌습니다. 한쪽이 막힌 긴 유리관에 수은을 가득 채워 수은 그릇에 거꾸로 세우면, 수은이 조금 내려오다 약 76 cm 높이에서 멈추고 관 꼭대기에 빈 공간이 생기는 실험입니다. 1647년 가을 데카르트가 파리에서 그를 두 번 찾아왔지만, 진공을 부정한 데카르트와는 생각이 맞지 않았습니다. 1648년 파스칼의 부탁으로 매형 플로랭 페리에가 퓌드돔산 아래와 꼭대기에서 수은 기둥을 재어, 높이 오를수록 기둥이 낮아진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공기에 무게가 있다는 증거였고, 압력의 단위 파스칼(Pa)이 여기서 이름을 얻었습니다.
1651년 아버지가 죽은 뒤 몇 해 동안 파스칼은 로아네즈 공작 같은 파리 사교계 사람들과 어울렸습니다. 흔히 그의 '세속 시기'라 부르는 때입니다. 카드와 주사위 내기는 귀족 살롱의 흔한 오락이었고, 파스칼에게 판돈 나누기와 주사위 문제를 가져온 사람은 문필가 슈발리에 드 메레였다고 전합니다. 1654년 그는 메르센이 죽은 뒤 르 파이외르의 집에서 이어지던 파리의 학자 모임에 앞으로 낼 글들의 목록을 라틴어로 보내면서, 그 가운데 하나를 '우연의 기하학'이라 불렀습니다. 불확실한 것을 기하학처럼 엄밀하게 다루겠다는, 당시로서는 거의 모순처럼 들리는 이름이었습니다.
1654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파스칼은 툴루즈의 페르마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분배 문제(problem of points)'를 풀었습니다. 세 판을 먼저 이기면 판돈을 가져가는 내기를 2 : 1에서 멈추었을 때 판돈을 어떻게 나눌까요? 파스칼은 지나간 판이 아니라 남은 판을 보았습니다. A가 r판, B가 s판을 더 이겨야 할 때 A의 몫을
두 방법이 만나는 곳이 같은 해에 쓴 『산술 삼각형론』의 삼각형입니다. 각 수가 바로 위 두 수의 합인 파스칼의 삼각형은 내기의 경우를 세는 표이기도 합니다. n판 가운데 A가 k판을 이기는 승패 순서의 수는, 마지막 판을 A가 이긴 경우(앞의 n − 1판에서 k − 1판을 이김)와 B가 이긴 경우(앞의 n − 1판에서 k판을 이김)로 나뉘니, 바로 윗줄의 두 수를 더한 것입니다. 그래서 삼각형의 수들이 곧 n개에서 k개를 고르는 방법의 수, 이항계수(binomial coefficient)입니다. 삼각형 자체는 인도, 페르시아, 중국에서 훨씬 먼저 알려져 있었지만, 파스칼은 그 성질을 한 권으로 정리하면서 "첫 줄에서 성립하고, 한 줄에서 성립하면 다음 줄에서도 성립한다"는 두 단계의 논증을 분명하게 적었습니다. 오늘날의 수학적 귀납법입니다. 이 책은 그가 죽은 뒤인 1665년에 나왔습니다. 파산할 때까지 내기를 계속하는 도박꾼의 파산(gambler's ruin) 문제도 두 사람 사이에서 다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편지가 끝나고 한 달 남짓 뒤인 1654년 11월 23일 밤, 파스칼은 두 시간가량의 강렬한 종교 체험을 했고 그 기록을 옷 안감에 꿰매어 평생 지녔습니다. 그 뒤로 그는 누이 자클린이 수녀로 있던 포르루아얄 수도원 쪽의 얀센주의에 섰고, 1656–57년 가명으로 낸 『시골 친구에게 보낸 편지』로 예수회를 공격했습니다. 그가 죽은 뒤 친구들이 유고를 엮은 『팡세』(1670)의 '내기' 단편은, 신이 있는지 이성으로 가릴 수 없더라도 걸 수밖에 없다면 얻을 것과 잃을 것의 크기와 가능성을 함께 따지라고 논합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선택지마다 기댓값을 계산해 비교하고 고르는 오늘날 결정 이론(decision theory)의 먼 조상으로 꼽힙니다.
얀센주의는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오직 신의 은총에 달렸다는 4–5세기 교부 아우구스티누스의 엄격한 해석을 따르는 가톨릭 안의 흐름이었고, 예수회와 교황청, 그리고 왕권과 부딪쳤습니다. 1656년 소르본 신학부가 포르루아얄의 신학자 앙투안 아르노를 단죄하려 하자, 파스칼은 그를 변호하려고 『시골 친구에게 보낸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짧고 날카로운 이 편지들은 몰래 찍혀 파리에서 날개 돋친 듯 읽혔고 프랑스어 산문의 고전이 되었지만, 교황청은 금서 목록에 올렸고 1660년 루이 14세의 명으로 불태워졌습니다. 1662년 아르노와 포르루아얄의 신학자 피에르 니콜이 낸 『포르루아얄 논리학』의 마지막 장들은 어떤 일을 두려워하거나 바랄 때 그 일의 크기뿐 아니라 일어날 가능성도 함께 따져야 한다고 가르치는데, 파스칼의 생각이 짙게 배어 있다고 여겨집니다. 가능성을 수로 재어 판단에 쓰자는 생각이 인쇄된 이른 예로 꼽힙니다.
수학을 거의 떠났던 그는 1658년 사이클로이드(굴러가는 바퀴 위의 한 점이 그리는 곡선)의 넓이와 무게중심 문제로 돌아왔습니다. 누이 질베르트가 남긴 전기에는 심한 치통을 잊으려고 이 문제를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그는 곡선 아래를 가느다란 조각으로 잘라 더하는 방법으로 이 문제들을 풀어 공개 경연에 부쳤습니다. 이때 쓴 원의 사분면에 관한 글을 파리에서 읽은 라이프니츠는, 곡선의 아주 작은 조각을 빗변(hypotenuse)으로 하는 삼각형을 떠올린 계기가 이 글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적분(integral)으로 가는 길목입니다. 1662년 파스칼은 파리 시내를 정해진 노선으로 도는 5수짜리 합승 마차 사업을 열었고, 그해 8월 서른아홉 살로 죽었습니다.
1658년의 사이클로이드(cycloid) 경연은 이름을 밝히지 않고 걸렸고(파스칼은 뒤에 '아모스 데통빌'이라는 가명으로 자신의 풀이를 펴냈습니다), 영국의 수학자 존 월리스와, 뒷날 런던 세인트폴 대성당을 설계한 천문학자 크리스토퍼 렌도 답을 보냈습니다. 렌은 이때 사이클로이드 한 아치의 길이가 굴러가는 원 지름의 꼭 네 배라는 것을 보였습니다. 파스칼은 상을 아무에게도 주지 않았고, 월리스 등은 심사가 공정하지 않았다고 항의했습니다. 그가 죽고 4년 뒤인 1666년, 루이 14세의 재상 콜베르가 파리 왕립 과학 아카데미를 세웠습니다(과학 아카데미). 메르센의 방과 르 파이외르의 집에서 열리던 사사로운 모임이 왕이 연금을 주는 기관이 된 것입니다. 1655년 파리에 들렀다가 파스칼과 페르마의 문제를 전해 들은 네덜란드의 하위헌스가 그 첫 회원 가운데 하나였고, 그가 1657년에 낸 짧은 확률 책은 반세기 가까이 이 분야의 거의 유일한 교과서였습니다. 파스칼의 원고 가운데 상당수는 흩어졌고, 『산술 삼각형론』과 『팡세』는 모두 그가 죽은 뒤 친구들과 가족의 손으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이어지는 곳. 1655년 파리에서 이 문제들을 전해 들은 하위헌스가 첫 확률 책을 썼고, 야코프 베르누이는 실험을 오래 되풀이하면 성공한 비율이 확률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가능성이 0으로 줄어든다는 큰 수의 법칙(law of large numbers)을 증명했습니다. 이항계수의 분포는 이항분포(binomial distribution)이고, 드무아브르는 그 윤곽이 종 모양의 정규분포(normal distribution)로 다가간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못이 삼각형으로 박힌 판에 구슬을 떨어뜨리면 구슬이 못마다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반반씩 튀어, 바닥 칸마다 쌓이는 개수가 삼각형의 한 줄을 닮습니다. 이것이 골턴의 구슬 판입니다. 격자에서 오른쪽과 위쪽으로만 가는 길의 수, 똑같은 물건을 여러 상자에 나눠 담는 방법의 수(별과 막대, stars and bars)도 모두 이항계수로, 곧 같은 삼각형으로 셉니다. 우연을 계산의 대상으로 삼은 긴 이야기는 무작위성에 모았습니다.
관계.
- 편지 피에르 드 페르마 — 1654년 여름과 가을, 파리와 툴루즈 사이의 편지로 분배 문제를 서로 다른 두 방법으로 풀어 확률론의 출발점을 만들었습니다.
- 논쟁 르네 데카르트 — 1647년 파리에서 두 번 만났지만 진공이 있다는 파스칼과 없다는 데카르트는 뜻이 맞지 않았고, 데카르트는 뒤에 퓌드돔 실험을 자기가 먼저 권했다고 주장했습니다.
- 영향을 줌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 파리에서 파스칼의 유고를 읽은 라이프니츠는 거기서 '특성 삼각형'(곡선의 아주 작은 조각을 빗변으로 하는 작은 직각삼각형(right triangle))의 착상을 얻었고, 덧셈 계산기를 곱셈까지 하는 기계로 넓혔습니다.
연표.
- 1640년 열여섯 살에 『원뿔 곡선 시론』을 내다
- 1642년 아버지의 세금 계산을 돕는 톱니바퀴 계산기를 만들기 시작하다
- 1646년 루앙에서 온 가족이 얀센주의 신앙에 기울다
- 1647년 파리에서 데카르트를 만나 진공을 두고 이야기하다
- 1648년 매형 페리에가 퓌드돔산에서 수은 기둥 실험을 하다
- 1651년 아버지가 죽고, 파리 사교계와 어울리기 시작하다
- 1654년 페르마와 분배 문제를 편지로 풀고, 11월 23일 밤 종교 체험을 하다
- 1656년 가명으로 『시골 친구에게 보낸 편지』를 내기 시작하다
- 1658년 사이클로이드의 넓이와 무게중심 문제를 풀어 공개 경연에 부치다
- 1662년 파리에 정해진 노선을 도는 합승 마차를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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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본공간 자체가 좁아지는데, 그것이 조건부 확률입니다. 확률을 수학으로 다루는 전통은 흔히 1654년파스칼과 페르마가 주고받은 편지에서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도박이 중간에 멈췄을 때 판돈을 어떻게 나눌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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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훨씬 높아서 전체 성공률로는 A가 뒤지는 심슨의 역설이 그 예입니다. 기댓값이라는 생각은 1654년파스칼과 페르마가 멈춘 도박의 판돈을 나누던 편지에서 싹텄고, 1657년 네덜란드의 하위헌스가 『주사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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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되면 파산, N이 되면 목표를 이루고 그만둡니다. 돈의 변화는 양 끝에 벽이 있는 무작위 행보입니다.파스칼과 페르마 사이에서 다루어진 문제로 알려져 있고, 네덜란드의 하위헌스가 1657년, 처음 출판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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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워진다는 것이 사영기하의 전형적인 생각입니다. 파스칼의 육각형. 데자르그의 원고를 읽은 열여섯 살의블레즈 파스칼은 1640년 짧은 인쇄물 『원뿔곡선 시론』에서 다음 정리를 발표했습니다. 원뿔곡선 위에 여섯 점을 잡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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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률변수
… 위에서 X를 르베그 적분한 값이 되어, 이산과 연속이 하나의 식으로 묶입니다. 역사. 1654년파스칼과 페르마가 편지로 푼 판돈 나누기 문제는 앞으로 받을 돈이라는 확률변수의 기댓값을 묻는 문제였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