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퐁 백작(Georges-Louis Leclerc, comte de Buffon)
프랑스의 박물학자. 36권의 『박물지』로 계몽 시대의 자연관을 바꾸었고, 바늘을 던져 π를 재는 '뷔퐁의 바늘(Buffon's needle)'로 기하학적 확률(geometric probability)의 문을 열었다.
조르주루이 르클레르, 훗날의 뷔퐁 백작은 1707년 프랑스 부르고뉴의 몽바르에서 지방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 쪽에서 큰 유산이 들어오면서 집안은 부유해졌고, 아버지는 근처의 뷔퐁 영지를 사들였습니다. 그는 디종의 예수회 학교에서 법학을 배웠지만 마음은 수학과 자연에 가 있었습니다. 앙제에서 공부하던 1730년 무렵 결투에 휘말려 그 도시를 떠났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그가 자란 루이 15세의 프랑스는 데카르트의 자연학과 뉴턴의 새 물리학이 부딪히던 곳이었고, 파리의 과학 아카데미는 국왕이 봉급을 주는 학자들의 기관이었습니다. 그는 1733년 이 아카데미에 수학 논문을 들고 나타났고, 마흔 무렵부터 반세기 동안은 자연의 역사 전체를 쓰는 일에 매달렸습니다.
나이
1733년 그가 아카데미에 낸 논문은 당시 파리 사람들의 내기 놀이에서 출발했습니다. '프랑 카로'라는 놀이에서는 네모난 타일이 깔린 바닥에 동전을 던지고, 동전이 타일 하나 안에 온전히 들어가느냐, 이음선에 걸치느냐에 돈을 겁니다. 어느 쪽에 걸어야 공평한가? 동전의 반지름을 r, 타일의 한 변을 a라 하면, 동전이 선에 걸치지 않을 조건은 동전의 중심이 타일의 네 변에서 모두 r 이상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런 중심의 자리는 한 변이 a − 2r인 작은 정사각형이고, 중심이 타일 안 어디에나 똑같이 떨어진다면 걸치지 않을 확률(probability)은 넓이(area)의 비
같은 논문에서 그는 더 어려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간격 d로 평행선이 그어진 마룻바닥에 길이 l(d보다 짧은)인 바늘을 던지면 바늘이 선에 걸칠 확률은 얼마인가(뷔퐁의 바늘). 동전과 달리 바늘에는 방향이 있습니다. 바늘이 선과 이루는 각을 θ라 하면, 바늘이 선에 수직인 방향으로 차지하는 폭은
그 사이 그의 경력은 수학에서 자연사로 옮겨 갔습니다. 1734년 아카데미에 들어간 뒤 그는 영국의 식물학자 헤일스의 『식물 정역학』(1735)과 뉴턴의 『유율법』(1740)을 프랑스어로 옮겼습니다. 『유율법(method of fluxions)』의 번역에는 미적분(calculus)이 어떻게 발견되었는지를 다룬 긴 서문을 붙였는데,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우선권 다툼이 아직 식지 않은 때였습니다. 그리고 1739년, 그는 파리의 왕립 식물원 관리자로 임명되어 죽을 때까지 49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약초원이던 식물원은 그의 손에서 표본실과 온실, 연구실을 갖춘 자연사 연구의 중심이 되었고, 혁명 뒤 국립 자연사 박물관으로 이어졌습니다.
1749년 그는 『박물지』의 첫 세 권을 냈습니다. 지구의 이론, 인간의 자연사, 동물의 일반 이론을 담은 이 책은 1788년 그가 죽을 때까지 36권으로 늘어났고, 18세기 유럽에서 가장 많이 읽힌 과학책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는 생물을 사람이 정한 분류표에 끼워 맞추는 린네의 방식에 반대하고, 종은 짝지어 대를 이을 수 있는 무리로 정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1751년 파리 대학 신학부가 성경의 창조 이야기와 어긋나는 대목을 문제 삼자, 그는 다음 권의 앞머리에 성경의 서술을 거스를 뜻이 없다는 글을 실어 물러섰습니다. 1753년 아카데미 프랑세즈에 들어갈 때 한 연설에서 그는 "문체는 사람 그 자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수학자로서 그의 관심은 마지막까지 확률이 사람의 결정과 어떻게 이어지느냐에 있었습니다. 『도덕 산술 시론』은 제목 그대로 확률을 삶의 판단에 쓰는 법을 다룹니다. 그는 너무 작은 확률은 실제로는 0으로 여겨도 된다고 보고, 그 문턱(threshold)을 1만분의 1로 정했습니다. 사망 기록에 따르면 건강한 56세 남자가 하루 안에 죽을 확률이 그쯤인데, 그런 일을 두려워하며 사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 근거였습니다. 또 동전을 던져 처음 앞면이 나올 때까지 판돈이 두 배씩 불어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게임(St. Petersburg game)'도 다루었습니다. k번째에 처음 앞면이 나오면
1778년의 『자연의 시대』는 그의 실험 정신을 가장 잘 보여 줍니다. 그는 지구가 녹은 상태로 태어나 식어 왔다고 보고, 크기가 다른 쇠공들을 뜨겁게 달군 뒤 손으로 만질 수 있을 때까지 식는 시간을 쟀습니다. 그 결과를 지구 크기로 늘려, 지구가 지금 온도가 되기까지 약 7만 5천 년이 걸렸다고 발표했습니다. 성경의 연대로 계산하던 6천 년 남짓보다 훨씬 긴 시간이었고, 그가 원고에서는 이보다 훨씬 긴 시간도 따져 보았다는 것이 알려져 있습니다. 식는 물체의 온도를 방정식으로 다룬 것은 반세기 뒤 푸리에의 열방정식(heat equation)이고, 같은 질문을 그 방정식으로 다시 푼 사람이 19세기의 윌리엄 톰슨입니다.
바늘 문제는 그 뒤 스스로의 삶을 살았습니다. 라플라스는 1812년 『확률의 해석적 이론』에서 가로선과 세로선이 겹친 격자로 문제를 넓히고, 거꾸로 바늘을 많이 던져 걸친 비율로 π를 어림할 수 있다고 적었습니다. 확률
그래도 이 방법의 뜻은 남았습니다. 구하기 어려운 수를 무작위 실험의 평균으로 어림하는 방법은 1940년대 로스앨러모스에서 울람과 폰 노이만이 전자계산기로 돌릴 수 있는 방법으로 다듬고, 동료 메트로폴리스가 몬테카를로 방법(Monte Carlo method)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계산 과학의 기본 도구가 되었습니다. 바늘 문제 자체도 적분기하학(integral geometry)이라는 분야로 자랐습니다. 평면 위의 곡선에 무작위 직선들을 던져 만나는 횟수를 세면 곡선의 길이를 알 수 있다는 크로프턴 공식(Crofton formula)이 그 후손입니다.
뷔퐁은 1788년 파리에서 죽었습니다. 혁명이 한 해 앞이었고, 아들은 몇 해 뒤 공포 정치 때 단두대에서 죽었습니다. 『박물지』가 제기한 질문들, 곧 지구는 얼마나 오래되었는가, 종은 변하는가는 그의 식물원에서 일한 라마르크를 거쳐 다윈에게로 이어졌습니다. 수학사에서 그의 자리는 작지만 뚜렷합니다. 확률을 셈의 문제에서 기하(geometry)와 적분의 문제로 옮겼고, 이론이 말하는 값을 손으로 되풀이해 확인해 보는 습관을 남겼습니다.
이어지는 곳. 바늘 문제의 풀이와 실험은 뷔퐁의 바늘에서 직접 해 볼 수 있습니다. 무작위 실험으로 값을 어림하는 생각은 몬테카를로 방법과 큰 수의 법칙(law of large numbers)으로, 기댓값이 한없이 커지는 게임은 기댓값과 도박꾼의 파산(gambler's ruin)으로 이어집니다. 우연에서 π 같은 상수가 나오는 이야기는 무작위성에, 어림값의 정확도를 따지는 이야기는 근사와 오차에 있습니다.
관계.
- 영향을 받음 아이작 뉴턴 — 1740년 뉴턴의 『유율법』을 프랑스어로 옮기고 미적분의 발견 과정을 설명하는 서문을 붙였습니다.
- 영향을 줌 피에르시몽 라플라스 — 라플라스는 1812년 『확률의 해석적 이론』에서 뷔퐁의 바늘을 가로세로 두 겹의 선으로 넓히고, 바늘을 던져 π를 어림하는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연표.
- 1733년 바닥 타일 놀이와 바늘 문제를 다룬 논문을 과학 아카데미에 내다
- 1734년 과학 아카데미에 들어가다
- 1739년 왕립 식물원의 관리자가 되다
- 1740년 뉴턴의 『유율법』을 프랑스어로 옮기다
- 1749년 『박물지』의 첫 세 권을 내다
- 1753년 아카데미 프랑세즈에 들어가 문체에 관한 연설을 하다
- 1777년 『도덕 산술 시론』에 바늘 문제와 풀이를 싣다
- 1778년 『자연의 시대』에서 지구의 나이를 실험으로 어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