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비트 이븐 쿠라(Thābit ibn Qurra)
9세기 바그다드에서 그리스 수학책을 아랍어로 옮기고 다듬으며, 친화수(amicable numbers)를 만드는 규칙과 폭이 서로 다른 조각으로 포물선(parabola) 아래 넓이(area)를 구하는 방법을 남기고, 실제로 무한한 모임끼리도 크기가 다를 수 있다고 논한 하란 출신의 수학자.
타비트 이븐 쿠라는 836년 무렵(826년이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상부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하란에서 태어났습니다. 하란은 오늘날 튀르키예 남동부에 있던 옛 도시로, 별을 섬기는 오래된 종교를 지킨 사비교도의 중심지였고 그리스어 학문의 전통이 남아 있던 곳입니다. 그는 시리아어와 그리스어와 아랍어를 함께 다루었습니다. 바그다드의 부유한 학자 형제인 무사의 세 아들(바누 무사) 가운데 무함마드가 하란에 들렀다가 그의 언어 재능을 알아보고 바그다드로 데려가 수학을 가르쳤다고 전합니다. 그곳은 칼리프와 부유한 집안들이 돈을 대어 그리스의 과학과 철학을 아랍어로 옮기던 번역 운동(translation movement)의 한가운데였습니다(지혜의 집).
나이
옮기고 다듬다. 그는 이스하크 이븐 후나인이 옮긴 유클리드 『원론』의 아랍어 번역을 다듬었고, 그 뒤의 아랍어판은 모두 이 판에서 나왔습니다. 아르키메데스, 아폴로니오스, 프톨레마이오스의 책도 옮기거나 다듬었습니다. 그리스어 원본이 사라져 아랍어로만 남은 책도 있습니다. 그 하나가 그가 아르키메데스의 것이라며 소개한 『보조정리(lemma)의 책』으로, 눈금 자로 각을 삼등분하는 작도가 실려 있습니다. 번역하는 사람이 곧 연구하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원론』을 다듬으면서 평행선 공준(parallel postulate)을 나머지 공준(postulate)으로 증명하려 했고, 직각삼각형(right triangle)에만 성립하는 피타고라스 정리(Pythagorean theorem)를 아무 삼각형에서나 성립하는 꼴로 넓혔습니다.
친화수. 220의 약수(divisor) 가운데 220 자신을 뺀 것은 1, 2, 4, 5, 10, 11, 20, 22, 44, 55, 110이고, 이를 더하면 284입니다. 284의 약수 가운데 284를 뺀 것은 1, 2, 4, 71, 142이고, 더하면 220입니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의 '약수의 합'이 되는 두 수를 친화수라 합니다. 피타고라스학파 이래 알려진 쌍은 이것 하나뿐이었습니다. 타비트는 친화수를 만드는 규칙을 찾았습니다. 위의 식처럼 세 수 p, q, r이 모두 소수(prime number)이면 두 수 2npq와 2nr이 친화수입니다. n = 2를 넣으면 p = 5, q = 11, r = 71이 모두 소수이고, 4 × 5 × 11 = 220과 4 × 71 = 284가 나옵니다. n = 4이면 p = 23, q = 47, r = 1151이 모두 소수라서 17296과 18416이 나오는데, 이 쌍은 14세기 이슬람 세계에서 알려졌고 1636년 페르마가 다시 찾았습니다. 1300년 무렵 타브리즈의 카말 앗딘 알파리시는 이 규칙을 새로 증명하려고 약수의 합을 소인수분해(prime factorization)로 계산하는 길을 택했고, 그 과정에서 모든 수가 소수의 거듭제곱의 곱으로 쪼개진다는 것을 명제로 적었습니다.
폭이 다른 막대. 그는 포물선 아래 넓이를 구하며, 넓이를 위로 넘치는 막대들의 합과 아래로 모자라는 막대들의 합 사이에 끼워 넣었습니다. 막대를 잘게 할수록 두 합의 차이가 얼마든지 작아지니, 넓이는 그 사이의 하나뿐인 값입니다. 이때 그는 구간을 폭이 서로 다른 조각으로 나누었는데, 알려진 것으로는 이것이 처음입니다. 오늘날 말로 하면 √x의 정적분(definite integral)을 구한 셈이고, 포물선을 축 둘레로 돌린 입체의 부피도 구했습니다. 그는 포물선에 관한 아르키메데스의 결과는 알았지만 그 논문들은 손에 넣지 못했던 것으로 보여, 같은 답에 제 길로 이른 셈입니다. 오늘날의 리만 합(Riemann sum)도 조각의 폭이 같을 필요가 없습니다.
실제로 무한한 것. 아리스토텔레스는 무한을 '끝없이 더 나아갈 수 있음'으로만 인정하고, 무한히 많은 것이 한꺼번에 다 있는 '실무한(actual infinity)'은 없다고 보았습니다. 같은 바그다드의 알킨디는 이 원칙으로 세계에 시작이 있었다고 논했습니다. 타비트는 반대로, 실제로 무한한 것들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무한한 수라는 것은 없다고 하면서도, 수들의 무한한 모임끼리는 크기가 다를 수 있다고 논했습니다. 이를테면 홀수와 짝수는 저마다 수 전체의 절반이라는 것입니다. '부분은 전체보다 작다'를 무한에까지 밀고 간 셈입니다. 19세기의 칸토어는 다른 길을 택해, 짝수와 자연수(natural number)처럼 남김없이 짝지어지는 두 모임을 크기가 같다고 정했습니다(집합의 크기, cardinality). 오늘날 철학자들은 칸토어의 길만이 유일한 길이었는지를 물으며 타비트를 그 반대편의 오래된 예로 다시 읽습니다(무한을 다루는 법).
말년에 그는 칼리프 알무타디드(재위 892–902)의 궁정 천문학자로 일했습니다. 별을 기준으로 잰 한 해의 길이를 정밀하게 구했고, 지렛대의 평형을 증명한 역학 책도 남겼습니다. 150편 남짓의 글을 썼다고 하지만 남은 것은 그 일부입니다. 그는 901년 바그다드에서 세상을 떠났고, 아들 시난과 손자 이브라힘 이븐 시난도 이름난 학자가 되었습니다.
이어지는 곳. 폭이 다른 막대로 포물선 넓이를 구한 이야기는 「거리를 되찾기」에, 친화수와 알파리시의 소인수분해는 「소수를 세는 사람들」에, 실무한에 관한 그의 생각과 칸토어의 길은 「무한에도 크기가 있다」에 있습니다. 『보조정리의 책』이 전한 눈금 자 삼등분은 「불가능의 증명」에서, 그가 다듬은 『원론』과 평행선 공준을 둘러싼 이슬람 세계의 시도는 「평행선의 반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일한 도시와 후원망은 바그다드 지혜의 집에 있습니다.
관계.
- 영향을 받음 유클리드 — 이스하크 이븐 후나인이 아랍어로 옮긴 『원론』을 다듬었고, 그 뒤의 아랍어판은 모두 그가 다듬은 판에서 나왔습니다. 평행선 공준의 증명도 시도했습니다.
- 영향을 받음 아르키메데스 — 아르키메데스의 책들을 아랍어로 옮겼고, 그리스어 원본이 사라진 『보조정리의 책』을 아르키메데스의 것이라며 소개했습니다.
- 영향을 받음 페르가의 아폴로니오스 — 바누 무사가 옮기게 한 『원뿔곡선론』의 번역에 참여해, 그리스어 원본이 사라진 뒷부분이 아랍어로 남는 데 한몫했습니다.
연표.
- 836년 상부 메소포타미아의 하란에서 사비교도 집안에 태어나다(826년이라는 기록도 있다)
- 870년 바누 무사의 후원 아래 바그다드에서 『원론』 번역을 다듬고, 친화수 규칙과 포물선 넓이의 논문을 쓰다(무렵)
- 892년 알무타디드가 칼리프가 되고, 그 궁정의 천문학자로 일하다
- 901년 바그다드에서 세상을 떠나다
- 1300년 타브리즈의 알파리시가 그의 친화수 규칙을 새로 증명하려고 소인수분해를 명제로 적다(무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