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개념 지도
인물

지롤라모 카르다노(Gerolamo Cardano)

밀라노의 의사이자 점성가, 수학자로, 1545년 『아르스 마그나』에 3차·4차방정식⁠(quartic equation)⁠의 풀이를 실으며 음수의 제곱근을 계산에 끌어들인 첫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주사위의 경우를 세어 확률⁠(probability)⁠을 체계적으로 다룬 가장 이른 책으로 꼽히는 글을 남겼다.

x=q2+q24+p3273+q2−q24+p3273x = \sqrt[3]{\tfrac q2 + \sqrt{\tfrac{q^2}{4} + \tfrac{p^3}{27}}} + \sqrt[3]{\tfrac q2 - \sqrt{\tfrac{q^2}{4} + \tfrac{p^3}{27}}}

카르다노는 1501년 이탈리아 북부의 파비아에서 밀라노의 법률가 파치오 카르다노의 혼외자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기하⁠(geometry)⁠에 밝아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도 알고 지낸 사람이었습니다. 16세기 북이탈리아는 프랑스와 합스부르크가 싸우는 전쟁터였지만, 인쇄술이 책을 퍼뜨리고 상업 도시마다 셈법 학교가 번성하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셈법 교사와 대학 강사의 명성은 공개 문제 대결로 판가름 나곤 해서, 새 풀이법은 발표할 것이 아니라 숨겨 둘 무기였습니다(르네상스 이탈리아의 대수학 경연). 카르다노는 파비아와 파도바에서 의학을 공부해 1525년 박사가 되었지만, 혼외자라는 이유로 밀라노 의사회에 오랫동안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그는 수학을 가르치고, 점성술로 별점을 치고, 도박으로 생계를 보탰습니다.

굵은 막대가 이 사람의 생애이고, 흰검은 점은 페이지 끝 연표에 적은 일들입니다. 가는 막대는 같은 시대를 산 이 위키의 인물들입니다. 나이를 끌어 보세요.

나이 세 ·

자리를 얻기까지. 1534년 그는 밀라노의 피아티 재단이 마련한 공개 수학 강좌를 맡아 기하와 산술, 천문을 가르쳤고, 의사로서 이름을 쌓아 1539년 마침내 밀라노 의사회에 받아들여졌습니다. 같은 해 나온 『실용 산술』은 그의 첫 수학책으로, 앞선 셈법 교사들의 오류를 지적하며 그의 이름을 알렸습니다. 뒤에는 파비아와 볼로냐 대학의 의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는 평생 200편이 넘는 글을 썼습니다. 1550년 뉘른베르크에서 나온 백과사전식 책 『섬세함에 관하여』와 1557년의 『사물의 다양성에 관하여』는 기계, 자석, 광물, 암호, 기이한 현상까지 담아 여러 번 다시 찍힌 인기 책이었고, 인문학자 율리우스 카이사르 스칼리제르가 수백 쪽의 반박서를 쓸 만큼 논쟁도 불렀습니다. 『섬세함에 관하여』에는 구멍 뚫린 판을 편지 위에 겹쳐 숨은 글자만 읽게 하는 암호 격자도 나오는데, 오늘날 '카르다노 격자'라고 부릅니다.

3차방정식⁠(cubic equation)⁠. 3차방정식은 미지수 x의 세제곱이 들어 있는 방정식입니다(다항식⁠, polynomial⁠). 2차방정식은 오늘날의 근의 공식⁠(quadratic formula)⁠과 같은 풀이 절차가 바빌로니아 시대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3차방정식의 계수에서 해를 계산해 내는 공식은 16세기 초까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1515년 무렵 볼로냐 대학의 수학 교수 스키피오네 델 페로가 x3+px=qx^3 + px = q 꼴(예를 들어 x3+6x=20x^3 + 6x = 20)의 3차방정식을 푸는 법을 찾았지만 비밀로 했고, 1535년 베네치아의 니콜로 타르탈리아가 문제 대결에서 같은 풀이를 스스로 찾아냈습니다. 카르다노는 1539년 타르탈리아를 설득해 풀이를 운문으로 전해 들었습니다. 타르탈리아는 비밀을 지키겠다는 맹세를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1543년 카르다노는 제자 로도비코 페라리와 함께 볼로냐에서 델 페로가 남긴 원고를 확인했고, 1545년 뉘른베르크의 인쇄업자 페트레이우스를 통해 『아르스 마그나』를 펴내 풀이를 실었습니다. 책에는 델 페로와 타르탈리아의 공이 적혀 있었습니다. 페라리가 찾은 4차방정식의 풀이도 같은 책에 실렸습니다.

도전장의 전쟁. 타르탈리아는 1546년 『여러 가지 질문과 발명』을 펴내 1539년 카르다노의 집에서 오간 대화를 자기 쪽에서 적고, 카르다노가 맹세를 깼다고 비난했습니다. 카르다노 대신 스물다섯 살 남짓의 페라리가 나섰습니다. 1547년 2월부터 이듬해까지 두 사람은 인쇄한 공개 도전장을 여섯 번씩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31개씩의 문제를 냈고, 도전장은 이탈리아의 학자와 귀족들에게 두루 뿌려졌습니다. 1548년 8월 밀라노의 한 수도원 정원에서 열린 공개 논쟁에서 타르탈리아는 첫날이 끝나자 떠났고, 그 뒤 고향 브레시아에서 얻었던 강사 자리를 잃었습니다. 학문의 명성이 청중 앞의 대결로 결정되던 시대의 풍경입니다.

풀이의 핵심은 해를 두 수의 차 x=u−vx = u - v로 놓는 데 있습니다. 전개하면 (u−v)3=u3−v3−3uv(u−v)(u - v)^3 = u^3 - v^3 - 3uv(u - v), 곧 x3+3uv x=u3−v3x^3 + 3uv\,x = u^3 - v^3입니다. 이것을 x3+px=qx^3 + px = q와 맞춰 보면 3uv=p3uv = p, u3−v3=qu^3 - v^3 = q가 되도록 u, v를 고르면 됩니다. 그러면 두 수 u3u^3과 v3v^3은 차가 q, 곱이 p3/27p^3/27인 두 수이고, 차와 곱을 아는 두 수는 2차방정식으로 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3차방정식이 2차방정식 하나와 세제곱근 두 번으로 풀리고, 위의 공식이 그 결과입니다. x3+6x=20x^3 + 6x = 20이라면 공식은 10+1083+10−1083≈2.732−0.732=2\sqrt[3]{10 + \sqrt{108}} + \sqrt[3]{10 - \sqrt{108}} \approx 2.732 - 0.732 = 2를 주고, 실제로 8+12=208 + 12 = 20입니다. 그런데 공식 속 제곱근 안의 q2/4+p3/27q^2/4 + p^3/27이 음수가 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때도 실수⁠(real number)⁠ 해가 분명히 있는데 공식은 음수의 제곱근을 거쳐야만 했습니다. 이 경우를 뒷날 '환원 불능의 경우⁠(casus irreducibilis)⁠'라 불렀고, 19세기 말에는 이런 경우 해를 실수의 거듭제곱근만으로 적어 이 우회를 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1572년 볼로냐의 기술자 라파엘 봄벨리가 이 막다른 길을 뚫었습니다. x3=15x+4x^3 = 15x + 4의 해는 4인데(64 = 60 + 4), 공식은 x=2+−1213+2−−1213x = \sqrt[3]{2 + \sqrt{-121}} + \sqrt[3]{2 - \sqrt{-121}}을 줍니다. 봄벨리는 −1\sqrt{-1}을 보통 수처럼 계산 규칙대로 다루어 (2+−1)3=2+−121(2 + \sqrt{-1})^3 = 2 + \sqrt{-121}임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면 두 세제곱근은 2+−12 + \sqrt{-1}과 2−−12 - \sqrt{-1}이고, 더하면 음수의 제곱근이 서로 지워져 해 4가 나옵니다. 이렇게 복소수⁠(complex number)⁠가 실수 답을 얻기 위한 계산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카르다노 자신도 음수의 제곱근을 처음 종이에 적은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르스 마그나』에서 그는 합이 10이고 곱이 40인 두 수를 찾는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근의 공식은 5±−155 \pm \sqrt{-15}를 주고, 실제로 (5+−15)(5−−15)=25+15=40(5 + \sqrt{-15})(5 - \sqrt{-15}) = 25 + 15 = 40입니다. 그는 이 답을 교묘하지만 쓸모없는 것이라며 넘어갔습니다. 이 '쓸모없는' 수가 평면의 회전⁠(rotation)⁠이라는 뜻을 얻기까지는 250년이 더 걸렸습니다(허수 단위⁠(imaginary unit)⁠, 복소수 곱셈⁠(complex multiplication)⁠). 그는 음수 해도 '꾸며 낸 해'라 부르며 다루었습니다.

주사위를 세다. 평생 도박을 즐긴 그는 1560년대 무렵 『주사위 놀이에 관한 책』을 썼습니다. 두 주사위를 던지면 36가지 결과가 똑같이 일어날 만하고, 합이 7이 되는 경우는 그 가운데 6가지라는 식으로 '똑같이 일어날 만한 경우'를 세어 비율을 구했습니다. 오늘날 확률의 고전적 정의입니다. 한 판 한 판은 운이지만 많은 판을 모으면 경우의 비율이 드러난다는 생각은 무작위성을 수로 다루는 첫걸음이었습니다. 그는 공정한 내기라면 판돈이 이길 경우의 수⁠(number of cases)⁠에 비례해야 한다는 생각에도 이르렀고(기댓값⁠(expected value)⁠), 틀린 추론을 스스로 고쳐 가는 대목과 속임수를 알아보는 법도 적었습니다. 그는 1539년 『실용 산술』에서 분배 문제⁠(problem of points)⁠, 곧 몇 판을 먼저 이기면 판돈을 가져가기로 한 내기가 도중에 멈췄을 때 판돈을 어떻게 나눠야 공정한지도 다루었는데, 남은 판 수를 봐야 한다는 지적은 옳았지만 그가 낸 비율은 틀렸습니다.

늦게 도착한 책. 『주사위 놀이에 관한 책』은 그가 죽고 한참 뒤인 1663년 리옹에서 나온 열 권짜리 전집에 처음 실렸습니다. 그때는 이미 파스칼과 페르마의 1654년 편지가 오갔고 하위헌스의 확률 책(1657)도 나온 뒤여서, 이 책은 새 분야를 여는 대신 조용히 묻혔습니다. 1953년 노르웨이 출신 수학자 오위스테인 오레가 『도박하는 학자 카르다노』에서 이 책을 영어로 옮기고 분석하면서, 확률을 체계적으로 다룬 첫 책이라는 평가가 굳었습니다. 앞선 발견이 제때 읽히지 못해 흐름을 바꾸지 못한 예는 수학사에 드물지 않습니다.

그는 당대 유럽에서 가장 이름난 의사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1552년에는 스코틀랜드까지 불려 가 세인트앤드루스 대주교의 천식을 치료했고, 돌아오는 길에 런던에서 열다섯 살의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6세의 별점을 쳐 장수를 예언했지만 왕은 이듬해 죽었습니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도 나침반을 수평으로 유지하는 짐벌⁠(gimbal)⁠과 자동차의 동력을 꺾인 축으로 전하는 이음매에 그의 이름(카르단)이 붙어 있는데, 그가 만든 것은 아니고 책에서 소개했기 때문입니다. 말년은 불행했습니다. 1560년 맏아들이 아내를 독살한 죄로 처형되었고, 1570년에는 종교재판소에 체포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별점을 친 일이 문제가 되었다고 전합니다. 풀려난 뒤 로마로 옮겨 자서전을 썼고, 1576년 그곳에서 죽었습니다. 자기가 예언한 죽음의 날짜를 맞추려고 음식을 끊었다는 이야기는 후대의 소문입니다.

스스로 쓴 초상. 로마에서 쓴 『내 인생에 관한 책』은 자기의 병과 악덕, 도박과 원한, 꿈과 징조를 거리낌 없이 털어놓은 기묘한 자서전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성미가 급하고 앙심을 품는 사람이라고 적었고, 아들을 잃은 슬픔과 자기를 모함한 이들에 대한 분노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그는 타르탈리아의 비밀을 훔친 사람으로 그려지기도 했지만, 『아르스 마그나』가 델 페로와 타르탈리아의 공을 분명히 적었다는 점, 그리고 음수와 음수의 제곱근을 계산 속에 들인 첫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는 점이 오늘날 더 무겁게 평가됩니다.

이어지는 곳. 그가 '쓸모없다'며 계산에 끌어들인 수는 복소수와 그 기본 단위인 허수 단위에서 이어집니다. 똑같이 일어날 만한 경우를 세어 비율을 구하는 생각은 확률의 고전적 정의가 되었고, 여러 번 던진 결과 가운데 특정한 경우가 몇 가지인지 세는 수가 이항계수⁠(binomial coefficient)⁠입니다. 그를 키운 셈법 학교의 전통은 피보나치의 『산반서』에서 시작했습니다. 그가 '꾸며 낸' 해라 부른 것은 음수였고, 그가 쓸모없다고 넘긴 음수의 제곱근 같은 수에 '상상의 수'(허수⁠, imaginary number⁠)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은 데카르트였습니다. 그는 알킨디를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열두 사람 가운데 하나로 꼽기도 했습니다.

관계.

가운데가 이 사람, 둘레가 이어진 인물들입니다. 선의 색은 관계의 종류(초록 스승·제자, 파랑 함께 연구, 보라 편지, 빨강 논쟁, 주황 영향)이고, 다른 인물의 페이지에 적힌 관계도 함께 모았습니다.

  • 영향을 줌 르네 데카르트 — 데카르트는 『기하학』 3권에서 3차방정식을 다루며 카르다노가 스키피오 델 페로의 것이라고 밝힌 풀이 규칙을 언급했습니다.

연표.

  • 1525년 파도바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다
  • 1534년 밀라노 피아티 재단의 공개 수학 강좌를 맡다
  • 1539년 『실용 산술』을 펴내고 타르탈리아에게서 3차방정식 풀이를 듣다
  • 1543년 볼로냐에서 델 페로의 원고를 직접 확인하다
  • 1545년 『아르스 마그나』를 펴내다
  • 1548년 제자 페라리와 타르탈리아가 밀라노에서 공개 논쟁을 벌이다
  • 1550년 『섬세함에 관하여』를 펴내다
  • 1552년 스코틀랜드로 가 세인트앤드루스 대주교를 치료하다
  • 1560년 맏아들 잠바티스타가 아내를 독살한 죄로 처형되다
  • 1564년 『주사위 놀이에 관한 책』을 쓰다(무렵)
  • 1570년 볼로냐에서 종교재판소에 체포되다
  • 1571년 로마로 옮기다
  • 1575년 자서전 『내 인생에 관한 책』을 쓰다
이 개념이 나오는 큰 생각무작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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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분에서 회전까지 · 4편 · 오일러 공식 원을 그리는 지수함수 지수함수에 허수를 넣으면 원이 된다. 가장 유명한 등식은 어디서 왔을까? 미분에서 회전까지 · 5편 · 복소수와 행렬 곱셈은 회전이다 복소수를 곱하는 일과 행렬로 평면을 돌리는 일은 같은 일이다. 확률 도박판에서 온 편지 1654년, 도중에 멈춘 내기의 판돈을 어떻게 나눌까? 두 수학자가 주고받은 편지에서 확률론이 태어났다. 불가능성 정리 불가능의 증명 각의 삼등분, 5차방정식의 근의 공식, 모든 파일을 줄이는 압축, 멈춤을 판정하는 프로그램, 공정한 투표 규칙. 없다는 것은 어떻게 증명할까? 서로 먼 분야의 불가능성 증명들은 거의 모두 불변량, 세기, 대각선이라는 세 가지 무기 가운데 하나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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