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가의 아폴로니오스(Apollonius of Perga)
기원전 3세기 알렉산드리아에서 배운 기하학자로, 여덟 권의 『원뿔곡선론』에서 타원(ellipse), 포물선(parabola), 쌍곡선(hyperbola)을 하나의 원뿔에서 얻고 이름을 붙여, 1,800년 뒤 케플러의 행성 궤도(orbit)와 데카르트의 해석기하(analytic geometry)가 딛고 설 땅을 만든 사람.
아폴로니오스는 기원전 3세기 후반 소아시아 남쪽 팜필리아 지방의 도시 페르가(페르게)에서 태어났습니다.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뒤 지중해 동부는 그의 장군들이 세운 왕국들로 나뉘었고,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소아시아의 페르가몬 왕국은 도서관과 학자를 두고 서로 겨루었습니다. 아폴로니오스는 젊어서 알렉산드리아로 가 유클리드의 제자들과 함께 오래 공부했다고 4세기의 파포스가 전하고, 뒷날에는 페르가몬과 에페소스를 오가며 그곳 학자들에게 책을 보냈습니다. 생애에 대해 확실한 것은 그의 책 머리말에 적힌 몇 줄뿐입니다. 그가 남긴 여덟 권의 『원뿔곡선론』은 그리스 기하학이 이른 가장 높은 봉우리로 꼽히고, 고대부터 그는 '위대한 기하학자'라 불렸습니다.
나이
머리말에 남은 사람들. 『원뿔곡선론』의 권마다 붙은 편지 형식의 머리말은 당시 수학자들이 어떻게 일했는지 보여 줍니다. 1권 머리말에서 그는 알렉산드리아를 찾아온 기하학자 나우크라테스의 부탁으로 이 연구를 서둘러 정리했는데, 그가 곧 배를 타고 떠나야 해서 다듬지 못한 원고가 돌기 시작했다고 털어놓습니다. 2권은 아들 아폴로니오스 편에 페르가몬의 에우데모스에게 보냈고, 에페소스에서 에우데모스에게 기하학자 필로니데스를 소개했다는 이야기도 적었습니다. 에우데모스가 죽은 뒤 4권부터는 아탈로스라는 사람에게 바쳤는데, 페르가몬의 왕 아탈로스 1세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과를 편지로 알리고 원고를 베껴 돌리는 방식은 같은 시대 아르키메데스가 알렉산드리아로 결과를 보내던 방식과 같았습니다. 파포스는 그가 남의 공을 깎고 자기 공을 부풀리는 사람이었다고 투덜거렸는데, 칭찬만 남지 않은 것도 오히려 사람 냄새를 풍깁니다.
그 전의 원뿔곡선(conic section). 원뿔을 평면으로 잘라 곡선을 얻는 생각은 그보다 한 세기 앞서 플라톤 둘레의 메나이크모스에게서 나왔다고 전합니다. 부피가 두 배인 정육면체의 변을 구하려다, 오늘날의 말로 두 포물선이나 포물선과 쌍곡선의 교점이 그 길이를 준다는 것을 알아낸 것입니다. 그 뒤의 수학자들은 꼭짓점(vertex)의 각이 예각, 직각, 둔각인 세 가지 원뿔을 모선에 수직인 평면으로 잘라 세 곡선을 얻었고, 그것을 '예각 원뿔의 단면', '직각 원뿔의 단면', '둔각 원뿔의 단면'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르키메데스도 이 옛 이름을 썼습니다. 아리스타이오스와 유클리드가 쓴 원뿔곡선 책도 있었지만, 아폴로니오스의 책이 나오자 더 베껴지지 않아 사라졌습니다.
하나의 원뿔, 세 곡선. 아폴로니오스는 세 가지 원뿔 대신 한 원뿔을 쓰고 자르는 평면의 기울기(slope)만 바꾸었습니다. 밑면이 원이기만 하면 꼭짓점이 비스듬히 기운 원뿔이어도 되었고, 꼭짓점 위아래로 이어진 두 겹의 원뿔을 생각해 쌍곡선의 두 가지를 하나의 곡선으로 다루었습니다. 꼭짓점을 지나지 않는 평면이 모선과 나란하면 포물선, 원뿔을 한쪽으로만 가로지르면 타원, 두 겹을 모두 자르면 쌍곡선입니다(원뿔곡선). 이렇게 한 가족으로 묶자 세 곡선에 대한 정리를 한꺼번에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모자람, 딱 맞음, 넘침. 곡선의 이름도 그가 붙였습니다. 곡선 위의 한 점에서 축 역할을 하는 지름으로 선을 내리고, 그 선의 길이를
여덟 권의 내용. 1–4권은 기초입니다. 접선(tangent line)과 지름, 쌍곡선이 한없이 다가가는 직선인 점근선(asymptote)을 다루고, 3권에서는 오늘날 초점이라 부르는 두 점을 이름 없이 다룹니다. 타원 위의 점에서 이 두 점까지의 거리의 합이 늘 같고, 쌍곡선에서는 차가 늘 같다는 정리가 여기 있습니다. 4권은 두 원뿔곡선이 많아야 네 점에서 만난다는 것을 보입니다. 가장 독창적인 것은 5권입니다. 한 점에서 곡선까지 그은 선분 가운데 가장 짧은 것과 가장 긴 것을 찾는 문제를 다루는데, 가장 짧은 선분은 곡선과 직각으로 만납니다. 그는 곡선 안쪽의 점에서 이런 수선(perpendicular)을 몇 개 그을 수 있는지가 점의 위치에 따라 2개, 3개, 4개로 달라진다는 것을 보였고, 그 경계를 정확히 구했습니다. 오늘날의 말로 그 경계는 곡선의 곡률(curvature) 중심들이 그리는 곡선, 곧 축폐선입니다(최적화(optimization), 가장 좋은 것 고르기). 6권은 같은 곡선과 닮은 곡선을, 7권은 짝이 되는 지름들의 관계를 다루고, 8권은 사라졌습니다.
사라진 책들. 파포스의 요약에서 이름과 내용을 아는 책이 더 있습니다. 『접촉』은 주어진 세 원에 모두 접하는 원을 작도하는 문제를 다루었는데, 이 '아폴로니오스의 문제'에는 답이 많게는 여덟 개 있습니다. 책은 사라졌고, 1600년 프랑스의 비에트가 그 풀이를 복원해 『갈리아의 아폴로니오스』라는 책을 냈으며, 1643년 데카르트는 보헤미아의 엘리자베트 공주에게 보낸 편지에서 서로 접하는 네 원의 반지름 사이의 관계식을 적었습니다. 『비의 절단(cut)』은 아랍어 번역으로 남았고, 『평면 자취』는 17세기에 페르마 등이 복원했습니다. 6세기의 에우토키오스는 아폴로니오스가 『빠른 셈』이라는 책에서 원주율(pi)을 아르키메데스보다 더 좁은 범위로 가두었다고 전합니다. 에우토키오스는 또 아르키메데스의 전기를 쓴 헤라클레이데스가 아폴로니오스를 두고 아르키메데스의 미발표 결과를 제 것으로 냈다고 비난했다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원뿔곡선의 기초(basics)는 아르키메데스 자신도 이미 알려진 것으로 다루었다며 그 비난을 물리쳤습니다.
하늘의 기하학. 그는 천문학에도 이름을 남겼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알마게스트』 12권에서, 큰 원 위를 도는 작은 원, 곧 주전원(epicycle) 위의 행성이 앞으로 가다 멈추고 거꾸로 가기 시작하는 자리를 구하는 정리를 아폴로니오스의 것으로 소개합니다. 지구를 중심으로 도는 큰 원에 작은 원을 얹는 방식과 중심에서 벗어난 원 하나를 쓰는 방식이 같은 겉보기 움직임을 만든다는 사실도 그 무렵에 알려져 있었습니다. 겹겹의 동심 천구(homocentric spheres)로 행성을 설명한 에우독소스의 체계가 행성의 밝기 변화를 설명하지 못하자, 천문학은 아폴로니오스의 원들로 옮겨 갔습니다. 정작 그가 가장 깊이 연구한 타원이 하늘의 참된 곡선이라는 것은 1,800년 뒤에야 밝혀졌습니다.
그리스어, 아랍어, 라틴어. 『원뿔곡선론』 1–4권은 에우토키오스가 주석을 달고 편집한 그리스어본으로 전합니다. 5–7권은 그리스어 원문이 사라지고 9세기 바그다드의 아랍어 번역으로만 남았습니다. 부유한 후원자였던 무사의 세 아들(바누 무사)이 사본을 구해 1–4권은 힐랄 알힘시에게, 5–7권은 사비트 이븐 쿠라에게 옮기게 했습니다(바그다드 지혜의 집). 11세기 카이로의 이븐 알하이삼은 사라진 8권을 스스로 복원하는 책을 썼고, 페르시아의 오마르 하이얌은 원뿔곡선의 교점으로 3차방정식(cubic equation)을 풀었습니다. 라틴 유럽에서는 1566년 코만디노가 1–4권을, 1661년 보렐리가 아랍어본에서 5–7권을 옮겼고, 1710년 옥스퍼드에서 에드먼드 핼리가 그리스어와 라틴어 대역에 8권의 복원까지 붙인 전집을 펴냈습니다.
17세기의 부활. 1604년 케플러는 광학 책에서 원뿔곡선을 다루며 반사된 빛이 모이는 점에 '초점'(focus, 라틴어로 화덕)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5년 뒤 화성의 궤도가 해를 한 초점에 둔 타원이라는 것을 발표했습니다. 같은 광학 책에서 그는 타원에서 포물선을 거쳐 쌍곡선으로 곡선이 끊김 없이 바뀌고, 포물선의 둘째 초점은 무한히 먼 곳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 생각은 1639년 데자르그와 1640년 열여섯 살의 파스칼이 원뿔곡선을 한 점에서 비춘 그림자로 다룬 사영기하(projective geometry)로 이어졌습니다. 데카르트는 1637년 『기하학』에서, 파포스가 아폴로니오스도 다 풀지 못했다고 전한 여러 직선 자취 문제를 대수로 풀고 그 답이 원뿔곡선임을 보였습니다. 페르마는 『평면 자취』를 복원하다가 x와 y 사이의 1차식은 직선을, 2차식은 원뿔곡선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다항식, polynomial). 1687년 뉴턴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을 받는 물체가 원뿔곡선을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프린키피아』에서 아폴로니오스식 기하(geometry)로 증명했습니다.
오늘의 원뿔곡선. 포물면 거울은 축과 나란히 들어온 빛을 모두 초점 한 곳으로 모읍니다. 위성 안테나와 반사 망원경, 자동차 전조등이 이 성질을 씁니다. 두 점까지의 거리의 차가 일정한 점들이 쌍곡선을 이룬다는 3권의 정리는, 두 송신소에서 동시에 보낸 전파가 도착하는 시간의 차로 배의 위치를 쌍곡선 위로 좁히던 20세기의 전파 항법에 쓰였습니다. 행성과 혜성과 인공위성의 궤도가 모두 원뿔곡선이고, x와 y에 대한 2차방정식이 그리는 곡선은 겹친 직선 같은 퇴화된 경우를 빼면 모두 이 세 가족 가운데 하나입니다. 2,200년 전 넓이의 모자람과 넘침으로 붙인 이름을 우리는 지금도 그대로 씁니다.
이어지는 곳. 세 곡선의 정의와 성질은 원뿔곡선에, 곡선을 좌표의 식으로 바꾸는 생각은 표현 바꾸기와 다항식에, 그림자로 원뿔곡선을 다루는 기하는 사영기하에 있습니다. 5권의 가장 짧은 선분 문제는 최적화로 이어집니다. 그의 곡선을 하늘에서 찾은 사람은 케플러, 그의 문제를 대수로 푼 사람들은 데카르트와 페르마이고, 그의 책이 거쳐 간 도시는 알렉산드리아와 바그다드입니다.
관계.
- 영향을 받음 유클리드 — 4세기의 파포스는 그가 알렉산드리아에서 유클리드의 제자들과 오래 공부했다고 전하고, 그 자신은 『원뿔곡선론』 1권 머리말에서 유클리드가 '세 직선·네 직선 자취' 문제를 일부만 풀었다고 적었습니다.
- 영향을 받음 아르키메데스 — 6세기의 에우토키오스는 그가 원주율을 아르키메데스보다 더 좁은 범위로 가두었다고 전하는 한편, 아르키메데스의 미발표 결과를 가로챘다는 옛 비난은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 영향을 줌 프톨레마이오스 — 프톨레마이오스는 『알마게스트』 12권에서 행성이 멈춰 보이는 자리를 주전원으로 구하는 정리를 아폴로니오스의 것으로 소개했습니다.
- 영향을 줌 오마르 하이얌 — 하이얌은 아랍어로 옮겨진 『원뿔곡선론』을 바탕으로, 포물선과 원, 쌍곡선의 교점으로 3차방정식의 근을 작도했습니다.
- 영향을 줌 요하네스 케플러 — 케플러는 1604년 광학 책에서 원뿔곡선의 특별한 두 점에 '초점'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1609년 화성의 궤도가 해를 한 초점에 둔 아폴로니오스의 타원임을 보였습니다.
- 영향을 줌 피에르 드 페르마 — 페르마는 파포스의 요약만 남은 아폴로니오스의 『평면 자취』를 복원하다가, 자취를 방정식으로 다루는 해석기하에 이르렀습니다.
- 영향을 줌 르네 데카르트 — 데카르트는 1637년 『기하학』에서 아폴로니오스가 끝내 다 풀지 못했다고 파포스가 전한 여러 직선 자취 문제를 대수로 풀어 보였습니다.
연표.
- 기원전 246년 프톨레마이오스 3세가 이집트의 왕위에 오르다. 후대의 기록은 아폴로니오스가 이 왕 때 이름을 떨쳤다고 전하다
- 기원전 241년 아탈로스 1세가 페르가몬의 통치자가 되다
- 기원전 212년 로마군이 시라쿠사를 함락하고 아르키메데스가 죽다
- 기원전 210년 『원뿔곡선론』 1–3권을 페르가몬의 에우데모스에게 보내다(무렵)
- 기원전 200년 에우데모스가 죽은 뒤 4권부터를 아탈로스에게 보내다(무렵)
이 인물을 언급하는 페이지
- 원뿔곡선
… 이 곡선들을 그는 원뿔을 잘라 얻었습니다. 원뿔곡선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기원전 200년 무렵페르가의 아폴로니오스는 여덟 권의 『원뿔곡선론』으로 이 곡선들을 집대성했습니다(네 권은 그리스어로, 세 권은 아랍어 번역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