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메옹 드니 푸아송(Siméon Denis Poisson)
프랑스의 수학자·물리학자. 전기와 중력의 퍼텐셜(potential)이 따르는 푸아송 방정식(Poisson's equation), 드문 사건(event)의 횟수를 세는 푸아송 분포(Poisson distribution)를 남기고, '큰 수의 법칙(law of large numbers)'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시메옹 드니 푸아송은 1781년 파리 남쪽의 작은 도시 피티비에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7년 전쟁 때 하노버 전선에서 싸운 병사 출신으로, 혁명 뒤 그 고장의 행정 일을 맡았습니다. 푸아송이 여덟 살 때 일어난 혁명은 그의 세대에게 새로운 길을 열었습니다. 1794년 세운 에콜 폴리테크니크는 가문이 아니라 시험 성적으로 학생을 뽑았고, 그곳에는 라그랑주와 라플라스 같은 유럽 최고의 수학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시대 파리 과학의 큰 계획은 라플라스가 세운 것이었습니다. 행성의 운동을 중력으로 설명했듯, 빛과 열과 전기와 모세관 현상까지 모두 입자 사이의 힘으로 설명하고 그 결과를 수학으로 끝까지 계산하겠다는 것입니다. 푸아송은 이 계획의 가장 충실한 계승자였습니다.
나이
어린 그는 퐁텐블로에서 외과 의사인 삼촌에게 보내져 의술을 배웠지만, 손재주가 없어 곧 그만두었습니다. 퐁텐블로의 중앙학교에서 수학을 배운 그는 1798년 에콜 폴리테크니크에 수석으로 들어갔고, 학생 때 쓴 차분(finite difference) 방정식에 관한 논문으로 라그랑주와 라플라스의 눈에 들었습니다. 1800년 졸업과 함께 학교의 복습 교사가 되었고, 1806년에는 그르노블의 지사로 떠난 푸리에의 뒤를 이어 교수가 되었습니다. 1812년 과학 아카데미에 들어갔고, 뒤에는 남작의 작위와 귀족원 의원의 자리까지 얻어 프랑스 과학 행정의 중심에 섰습니다. 삶이 좋은 것은 두 가지, 수학을 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 때문이라는 말이 그가 한 말로 전합니다.
그의 이름이 붙은 방정식은 중력과 전기의 이론에 있습니다. 질량이나 전하가 만드는 힘은 퍼텐셜이라는 하나의 양 V로 적을 수 있습니다. 힘의 방향과 세기는 V가 가장 빠르게 변하는 방향과 그 가파르기로 정해집니다. 18세기 말 라플라스는 질량이 없는 빈 곳에서 V가
역학에서는 1809년 오늘날 푸아송 괄호라 부르는 식을 내놓았습니다. 두 물리량 f와 g를 위치와 운동량(momentum)으로 편미분(partial derivative)해 엇갈려 곱하고 빼는 식인데, 운동하는 동안 보존되는 두 양이 있으면 그 둘로 만든 괄호도 보존된다는 성질이 있습니다. 이 식의 뜻은 한 세대 뒤 야코비와 해밀턴의 역학에서 드러났고, 20세기에는 양자역학의 교환자(commutator)로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가 가장 유명하게 틀린 일은 빛에 관한 것입니다. 1818년 과학 아카데미는 빛의 회절을 주제로 현상 공모를 걸었고, 젊은 기술자 프레넬이 빛을 파동으로 보는 논문을 냈습니다. 빛을 입자의 흐름으로 보던 라플라스 학파의 푸아송은 심사 위원으로서 프레넬의 식을 따라가다, 둥근 원판의 그림자 한가운데에 밝은 점이 생긴다는 결론을 끌어냈습니다. 원판 가장자리를 돌아 들어온 파동들이 그림자 중심에서 모두 같은 거리를 지나 만나 서로 보강하기 때문입니다. 푸아송은 이것이 터무니없는 결론이라 여겼지만, 같은 위원회의 아라고가 실험을 해 보자 밝은 점이 정말 나타났습니다. 프레넬은 상을 받았고, 이 점은 오늘날 아이러니하게도 '푸아송의 점'이라 불립니다.
말년의 푸아송은 확률(probability)로 눈을 돌렸습니다. 1837년의 『형사와 민사 판결의 확률에 관한 연구』는 배심원이 몇 명의 다수결로 유죄를 정해야 무고한 사람이 벌받을 위험과 죄인이 풀려날 위험을 함께 줄일 수 있는가를, 프랑스 법무부가 해마다 펴내던 재판 통계(statistics)로 따진 책입니다. 여기서 그는 두 가지를 남겼습니다. 하나는 이름입니다. 많은 시행에서 사건이 일어나는 비율이 그 확률에 다가간다는 야코프 베르누이의 정리를 그는 '큰 수의 법칙'이라 부르고, 시행마다 확률이 달라도 성립하도록 넓혔습니다(큰 수의 법칙). 다른 하나가 오늘날 푸아송 분포라 부르는 공식입니다.
푸아송 분포는 드문 사건의 횟수를 셉니다. 한 번 한 번은 일어날 확률 p가 아주 작지만 기회의 수 n이 아주 많고, 평균 횟수 λ = np는 적당한 크기인 경우입니다. 한 해 동안 한 부대에서 일어나는 사고, 책 한 쪽의 오자, 1초 동안 가이거 계수기에 잡히는 방사선이 그렇습니다. 이때 사건이 정확히 k번 일어날 확률은 이항분포(binomial distribution)의 공식에서 n을 한없이 키우고 p를 그만큼 줄인 극한(limit)으로 얻어지며, 그 값이 위의 식입니다(지수함수(exponential function)).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을 확률은
그는 평균이 언제나 믿을 만하지는 않다는 것도 알아챘습니다. 1824년 그는 확률 밀도(probability density)가
그는 프랑스 과학의 문지기이기도 했습니다. 1820년부터 공교육 위원회의 위원으로 교과와 인사에 힘을 썼고, 아카데미에 들어오는 논문을 심사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1831년 열아홉 살의 갈루아가 낸 방정식 논문이었습니다. 푸아송은 라크루아와 함께 쓴 보고서에서 논증이 충분히 명료하지도 충분히 전개되지도 않아 옳은지 판단할 수 없다며, 저자가 이론 전체를 완성해 내면 다시 보겠다고 적었습니다. 이 판정은 뒷날 자주 비판받지만, 그 원고가 실제로 몹시 압축되어 있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푸리에와는 열 이론을 두고 오래 다투었습니다. 푸리에가 잴 수 있는 양만으로 방정식을 세운 데 반해, 푸아송은 같은 결과를 입자 사이의 힘에서 다시 유도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평생 300편이 넘는 논문을 썼고, 1840년 파리 근교에서 죽었습니다. 오늘날 수학과 물리학의 곳곳에 그의 이름이 남아 있습니다. 푸아송 방정식과 푸아송 분포 말고도, 무작위한 시각에 일어나는 사건들의 흐름을 나타내는 푸아송 과정(Poisson process), 정수점에서의 함숫값의 합을 푸리에 변환 값의 합으로 바꾸는 푸아송 합 공식, 늘인 고무줄이 가늘어지는 비율인 푸아송 비가 있습니다. 에펠탑의 첫 층 둘레에 새겨진 프랑스 과학자 72명의 이름 가운데 그의 이름도 있습니다. 그가 믿은 입자와 힘의 물리학은 파동과 장의 물리학에 자리를 내주었지만, 그 물리학을 위해 만든 수학은 그대로 살아남았습니다.
이어지는 곳. 드문 사건의 분포는 이항분포와 지수함수에서, 평균이 참값에 모이는 조건은 큰 수의 법칙과 중심극한정리에서 볼 수 있습니다. 퍼텐셜의 방정식과 같은 모양의 식들은 열방정식에 있고, 우연을 세는 여러 방법은 무작위성에, 이항분포를 지수함수로 어림하는 생각은 근사와 오차에 이어집니다.
관계.
- 스승 피에르시몽 라플라스 — 에콜 폴리테크니크 학생 때 라플라스의 눈에 들었고, 아르쾨유 모임에서 모든 물리 현상을 입자 사이의 힘으로 설명하려는 라플라스의 계획을 이어받았습니다.
- 스승 조제프루이 라그랑주 — 에콜 폴리테크니크에서 라그랑주의 강의를 듣고 그의 해석 역학을 이어 1809년 역학의 괄호식을 내놓았습니다.
- 논쟁 조제프 푸리에 — 푸리에의 열 이론을 자기 방식으로 다시 유도해 발표하며 여러 해 동안 우선권과 방법을 두고 다투었습니다.
- 영향을 줌 파프누티 체비쇼프 — 체비쇼프는 1846년 확률이 시행마다 달라도 성립한다는 푸아송의 큰 수의 법칙을 간단하고 엄밀하게 증명했습니다.
연표.
- 1798년 에콜 폴리테크니크에 수석으로 들어가다
- 1800년 학생 때 쓴 논문이 인정받아 에콜 폴리테크니크의 복습 교사가 되다
- 1806년 이집트에서 돌아와 그르노블로 간 푸리에의 뒤를 이어 교수가 되다
- 1809년 역학에서 오늘날 푸아송 괄호라 부르는 식을 내놓다
- 1812년 과학 아카데미 회원이 되고, 도체 위의 전기 분포를 계산하다
- 1813년 물질 속의 퍼텐셜이 따르는 방정식을 발표하다
- 1818년 프레넬의 빛의 파동 이론을 심사하며 원판 그림자 속의 밝은 점을 예측하다
- 1831년 라크루아와 함께 갈루아의 논문을 심사해 돌려보내다
- 1837년 『판결의 확률에 관한 연구』를 내고 프랑스 귀족원 의원이 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