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개념 지도
인물

플라톤(Plato)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아테네 아카데메이아의 설립자로, 스스로 증명한 정리는 전하지 않지만 수학을 교육의 중심에 놓고 '수학의 대상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을 누구보다 날카롭게 던진 철학자.

플라톤은 기원전 427년 무렵 아테네의 이름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자라는 동안 아테네는 스파르타와 27년 동안 싸운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졌고(기원전 404년), 스파르타가 세운 '30인 참주'의 공포 정치와 민주정의 복귀를 차례로 겪었습니다. 기원전 399년 되살아난 민주정은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를 신을 믿지 않고 젊은이를 타락시켰다는 죄로 사형에 처했습니다. 정치에 나설 생각을 접은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주인공으로 한 대화편을 쓰기 시작했고, 기원전 387년 무렵 아테네 서북쪽 성벽 밖의 아카데메이아 숲⁠(forest)⁠에 학원을 열었습니다. 스스로 증명했다고 확실히 전하는 정리는 하나도 없지만, 그는 수학을 교육의 중심에 놓았고 수학의 대상이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를, 남아 있는 기록으로는 처음으로 날카롭게 물었습니다. 그 물음은 지금도 수학 기초론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굵은 막대가 이 사람의 생애이고, 흰검은 점은 페이지 끝 연표에 적은 일들입니다. 가는 막대는 같은 시대를 산 이 위키의 인물들입니다. 나이를 끌어 보세요.

나이 세 ·

수학자들이 모인 학원. 5세기의 프로클로스는 기원전 4세기 에우데모스가 쓴 기하학의 역사를 요약하면서, 플라톤 둘레에서 일한 수학자들을 길게 꼽았습니다. 무리량⁠(irrational magnitude)⁠을 분류하고 정다면체⁠(regular polyhedron)⁠를 연구한 테아이테토스, 비례론⁠(theory of proportion)⁠과 실진법⁠(method of exhaustion)⁠을 세운 에우독소스, 원뿔을 잘라 원뿔곡선⁠(conic section)⁠을 처음 찾았다고 전하는 메나이크모스가 그 목록에 있습니다. 아카데메이아는 오늘날의 대학처럼 학위를 주는 곳이 아니라 함께 식사하고 토론하는 공동체였고, 수학자들은 그곳에서 서로의 결과를 다듬었습니다. 문 위에 '기하학을 모르는 사람은 들어오지 말라'는 글이 걸려 있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지만, 이 글은 플라톤보다 수백 년 뒤의 기록에 처음 나타나 전설로 봅니다. 플라톤이 천문학자들에게 '행성의 겉보기 움직임을 어떤 고른 원운동들로 설명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냈다는 이야기도 6세기의 심플리키오스가 전하는 후대의 증언입니다.

노예 소년과 정사각형. 대화편 『메논』에서 소크라테스는 기하학을 배운 적 없는 노예 소년에게 넓이⁠(area)⁠가 두 배인 정사각형을 그려 보라고 합니다. 한 변이 2이고 넓이가 4인 정사각형이 있을 때, 소년은 먼저 변을 두 배인 4로 늘리자고 하지만 그러면 넓이는 16으로 네 배가 됩니다. 3으로 하면 넓이 9로 여전히 8이 아닙니다. 소크라테스는 원래 정사각형의 대각선을 한 변으로 삼으라고 이끕니다. 대각선은 정사각형을 두 직각삼각형⁠(right triangle)⁠으로 나누는데, 대각선 위에 세운 정사각형은 그런 삼각형 네 개로 이루어지니 넓이가 원래의 두 배인 8입니다. 오늘날의 말로 그 변의 길이는 222\sqrt2이고, 이는 어떤 정수⁠(integer)⁠의 비로도 쓸 수 없는 무리수⁠(irrational number)⁠입니다(피타고라스 정리⁠, Pythagorean theorem⁠). 플라톤이 이 장면으로 보여 주려던 것은 배움이란 영혼이 이미 알던 것을 떠올리는 일이라는 '상기설⁠(theory of recollection)⁠'이었지만, 이 대목은 그리스 사람들이 수 대신 길이와 넓이로 무리수를 다루던 방식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 주는 기록으로도 읽힙니다.

테아이테토스의 일반화. 대화편 『테아이테토스』는 기원전 369년 무렵 코린토스 전투에서 다치고 병든 채 실려 오는 수학자 테아이테토스를 두고 시작합니다. 대화 속의 젊은 테아이테토스는 스승 테오도로스가 넓이가 3, 5, … 17인 정사각형의 변이 한 변 1과 공통 단위로 잴 수 없다는 것을 하나씩 보여 주었다고 회상하며, 이를 하나의 규칙으로 묶으려 했다고 말합니다. 정수를 같은 수를 두 번 곱한 '정사각형 수'(1, 4, 9, 16, …)와 그렇지 않은 수로 나누면, 넓이가 정사각형 수가 아닌 정사각형의 변은 언제나 1과 공통 단위로 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말로 까닭은 이렇습니다. n=p/q\sqrt n = p/q라면 nq2=p2nq^2 = p^2인데, 소인수분해⁠(prime factorization)⁠에서 p2p^2과 q2q^2의 소인수는 모두 짝수 번 나타나니 n의 소인수도 모두 짝수 번 나타나야 하고, 그러면 n은 정사각형 수입니다. 이 정리는 『원론』 10권 9번 명제로 남았고, 전승은 『원론』 13권의 정다면체 이론도 테아이테토스에게 돌립니다. 플라톤의 대화편은 이렇게 동시대 수학의 몇 안 되는 직접 증언이기도 합니다.

선분의 비유와 수학의 자리. 『국가』 6권에서 플라톤은 앎의 단계를 선분 하나를 네 토막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맨 아래는 그림자와 물에 비친 모습, 그다음은 눈에 보이는 사물, 셋째 토막이 수학, 맨 위가 이데아(형상)입니다. 기하학자는 눈에 보이는 도형을 그려 놓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생각하는 것은 그려진 선이 아니라 '정사각형 자체'와 '대각선 자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하학자는 홀수와 짝수, 여러 도형, 세 종류의 각 같은 것을 누구나 아는 것으로 놓고 출발할 뿐, 그 출발점을 따로 정당화하지 않는다고 그는 지적했습니다. 증명에는 증명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출발점이 있다는 이 관찰은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쳐 유클리드의 정의와 공준⁠(postulate)⁠으로, 멀리는 오늘날의 공리⁠(axiom)⁠ 개념으로 이어집니다.

철인 통치자의 교과 과정. 『국가』 7권은 나라를 다스릴 사람이 스무 살부터 서른 살까지 배울 과목으로 산술, 평면기하, 입체기하, 천문학, 화성학을 차례로 꼽습니다. 산술을 배우는 까닭은 장사꾼처럼 사고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혼을 눈에 보이는 것에서 참된 것으로 돌리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그는 입체기하가 이 나라에서 제대로 연구되지 않는다고 불평했는데, 부피가 두 배인 정육면체의 변을 구하는 문제가 바로 그 무렵의 숙제였습니다. 화성학에 대해서는 줄을 괴롭히며 귀를 대고 음정을 재는 실험가들을 비웃고, 어떤 수의 비가 어울림을 만드는지를 수 자체에서 따지라고 했습니다. 경험보다 수를 앞세운 이 태도는 수학에 큰 위신을 주었지만, 관찰을 낮춰 본 탓에 뒷날 실험 과학의 전통과 긴장을 빚었습니다. 이 과목 구성은 피타고라스 학파의 네 학문과 함께 중세 대학의 교양 과목으로 이어졌습니다.

정다면체로 지은 세계. 말년의 대화편 『티마이오스』에서 플라톤은 우주를 만든 장인이 네 원소⁠(element)⁠를 정다면체로 지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불은 정사면체, 공기는 정팔면체, 물은 정이십면체, 흙은 정육면체이고, 남은 정십이면체는 '전체를 위해', 곧 하늘의 별자리를 수놓는 데 썼다고 했습니다. 이 입체들의 면은 다시 두 종류의 직각삼각형으로 쪼개집니다. 정삼각형을 반으로 자른 30°–60°–90° 삼각형과, 정사각형을 반으로 자른 직각이등변삼각형입니다. 정삼각형으로 된 세 입체는 같은 삼각형으로 이루어졌으니 서로 바뀔 수 있습니다. 물 한 알(정이십면체, 면 20개)이 깨지면 공기 두 알(면 8개씩)과 불 한 알(면 4개)이 될 수 있는데, 20=2×8+420 = 2 \times 8 + 4로 면의 수가 맞기 때문입니다. 정사각형 면의 흙만은 다른 원소로 바뀌지 않습니다. 틀린 화학이지만, 물질의 성질을 도형의 대칭과 개수 세기로 설명하려 한 이른 시도였고, 2,000년 뒤 케플러는 같은 다섯 입체를 행성 궤도⁠(orbit)⁠ 사이에 끼워 넣었습니다. 오늘날 정다면체가 '플라톤의 입체'라 불리는 까닭이 이 대화편입니다.

시라쿠사의 실패. 플라톤은 철학자가 다스리는 나라를 실제로 만들어 보려 한 적이 있습니다. 기원전 388년 무렵 남이탈리아와 시칠리아를 여행하며 타렌툼의 정치가이자 수학자 아르키타스를 만났고, 시라쿠사에서는 참주 디오니시오스 1세의 처남 디온과 가까워졌습니다. 기원전 367년 디온의 권유로 젊은 새 참주 디오니시오스 2세가 그를 스승으로 불렀지만, 궁정의 음모 속에서 디온은 쫓겨났고 플라톤도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기원전 361년의 세 번째 방문에서는 사실상 붙잡혀 있다가 아르키타스가 보낸 배로 겨우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대부분 플라톤의 이름으로 전하는 『일곱째 편지』에서 오는데, 이 편지가 정말 그가 쓴 것인지는 지금도 논쟁거리입니다.

델로스의 제단. 부피가 두 배인 정육면체 문제에는 플라톤의 이름이 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염병에 시달리던 델로스 사람들이 신탁에서 제단을 두 배로 키우라는 말을 듣고 플라톤에게 물었더니, 그는 신이 바라는 것은 제단이 아니라 그리스인들이 기하학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답했다는 것입니다. 플루타르코스는 또 플라톤이 이 문제를 기계 장치로 푼 에우독소스, 아르키타스, 메나이크모스를 기하학의 품위를 떨어뜨렸다며 나무랐다고 전합니다. 둘 다 수백 년 뒤의 이야기라 사실인지 알 수 없습니다. 자와 컴퍼스만으로는 이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것은 1837년 프랑스의 방첼이 증명했습니다. 자와 컴퍼스로 얻는 길이는 2차방정식을 거듭 풀어 나오는 수뿐인데, 한 변이 1인 정육면체의 두 배 부피를 갖는 변 23\sqrt[3]{2}는 유리수⁠(rational number)⁠ 계수로는 더 낮은 차수로 줄일 수 없는 3차방정식⁠(cubic equation)⁠ x3=2x^3 = 2의 해입니다. 2차방정식을 몇 번 거듭해 얻는 수가 만족하는 가장 낮은 차수의 방정식은 언제나 차수가 2, 4, 8, … 같은 2의 거듭제곱이니, 차수가 3인 수는 그 가운데 있을 수 없습니다(다항식⁠, polynomial⁠).

아카데메이아 뒤의 900년. 플라톤이 죽은 뒤 아카데메이아는 조카 스페우시포스가 이어받았습니다. 학원은 기원전 86년 로마의 술라가 아테네를 포위할 때 큰 타격을 입었지만, 플라톤을 읽고 가르치는 전통은 이어져 3세기 플로티노스의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로 되살아났습니다. 5세기 아테네에서 그 학파를 이끈 프로클로스가 쓴 『원론』 1권 주석은 오늘날 그리스 기하학의 역사를 아는 가장 중요한 자료 가운데 하나입니다. 529년 비잔틴 황제 유스티니아누스가 아테네에서 이교 철학을 가르치는 것을 막으면서 이 전통은 흔히 끝났다고 봅니다. 플라톤의 대화편은 비잔틴 사본으로 살아남았고, 1484년 피렌체에서 마르실리오 피치노가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아 옮긴 라틴어 전집이 인쇄되면서 르네상스 유럽에 널리 읽혔습니다. 자연이 수학의 언어로 쓰였다는 갈릴레이의 믿음과 케플러의 조화로운 우주는 모두 이 부활의 공기 속에서 자랐습니다.

플라톤주의⁠(Platonism)⁠라는 이름. 오늘날 수학 철학에서 '플라톤주의'는 수와 도형과 집합⁠(set)⁠이 사람의 마음이나 종이 위의 기호와 무관하게 있고, 수학자는 그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발견한다는 입장을 가리킵니다. 수학자 가운데에는 이 입장에 끌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수를 논리적 대상으로 본 프레게, 연속체 가설⁠(continuum hypothesis)⁠처럼 기존 공리로 결정할 수 없는 물음에도 참과 거짓이 있다고 믿은 괴델(연속체 가설), 수학적 실재가 우리 밖에 있다고 쓴 하디가 대표적입니다. 반대편에는 수학을 기호를 규칙대로 다루는 일로 본 힐베르트의 형식주의⁠(formalism)⁠와, 수학적 대상은 마음이 구성한 만큼만 있다고 본 브라우어르의 직관주의⁠(intuitionism)⁠가 있습니다. 20세기 초 이 입장들이 부딪친 이야기는 수학 기초론 논쟁⁠(debate on the foundations of mathematics)⁠에 있습니다. 2,400년 전의 물음이 아직 답을 기다리고 있는 셈입니다.

이어지는 곳. 『메논』의 대각선은 무리수와 피타고라스 정리에서, 증명의 출발점에 대한 물음은 공리와 공준⁠(axioms and postulates)⁠과 평행선 공준⁠(parallel postulate)⁠에서 이어집니다. 다섯 정다면체는 유클리드의 『원론』 13권과 케플러의 우주 모형으로, 모양과 규칙성으로 세계를 설명하려는 생각은 대칭과 불변량⁠(invariant)⁠으로 이어집니다. 아카데메이아에서 자란 수학은 에우독소스의 비례론과 실진법, 원뿔곡선에서, 그가 대화편에 그린 역설의 철학자는 엘레아의 제논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관계.

가운데가 이 사람, 둘레가 이어진 인물들입니다. 선의 색은 관계의 종류(초록 스승·제자, 파랑 함께 연구, 보라 편지, 빨강 논쟁, 주황 영향)이고, 다른 인물의 페이지에 적힌 관계도 함께 모았습니다.

  • 영향을 받음 피타고라스 — 『국가』 7권에서 천문학과 화성학이 '피타고라스 학파의 말대로' 자매 학문이라고 적었고, 피타고라스 학파의 아르키타스와 가까이 지냈습니다.
  • 제자 아리스토텔레스 — 아리스토텔레스는 스무 해 가까이 아카데메이아에서 배우고 가르쳤고, 스승이 죽은 뒤에는 수학적 대상이 따로 있다는 이데아론을 가장 날카롭게 비판했습니다.
  • 영향을 줌 유클리드 — 5세기의 프로클로스는 유클리드가 플라톤주의자였고 『원론』이 이른바 플라톤의 다섯 입체로 끝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적었습니다. 후대의 해석이지만 널리 읽혔습니다.
  • 영향을 줌 쿠르트 괴델 — 괴델은 1947년과 1964년의 연속체 가설 논문에서 집합 같은 수학적 대상이 우리와 무관하게 있고 우리는 그것을 일종의 지각으로 알아본다는 플라톤주의를 공개적으로 옹호했습니다.
  • 영향을 줌 G. H. 하디 — 하디는 1940년 『어느 수학자의 변명』에서 수학적 실재는 우리 밖에 있고 수학자는 그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발견해 적을 뿐이라고 썼습니다.

연표.

  • 기원전 404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아테네의 패배로 끝나다
  • 기원전 399년 스승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죽다
  • 기원전 388년 남이탈리아와 시칠리아를 여행하며 타렌툼의 아르키타스를 만났다고 전하다
  • 기원전 387년 아테네 교외의 아카데메이아 숲에 학원을 열다(무렵)
  • 기원전 375년 『국가』에서 철인 통치자가 10년 동안 배울 수학 과목을 정하다(무렵)
  • 기원전 367년 디오니시오스 2세의 초청으로 시라쿠사에 가다
  • 기원전 361년 세 번째로 시라쿠사에 갔다가 어렵게 돌아오다
  • 기원전 360년 『티마이오스』에서 네 원소를 정다면체로 설명하다(무렵)
관련된 시대와 장소알렉산드리아 무세이온

이 인물이 나오는 긴 글

소수 소수를 세는 사람들 소수는 제멋대로 흩어져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멀리서 세어 보면 로그가 보인다. 최소제곱과 선형대수 잃어버린 소행성 1801년, 발견 몇 주 만에 태양 뒤로 사라진 세레스. 스물네 살의 가우스는 흩어진 관측값에서 궤도를 되찾았다. 비유클리드 기하 평행선의 반란 유클리드의 다섯 번째 공준은 2,000년 동안 증명되지 않았다. 증명을 포기한 사람들이 찾은 것은 새로운 우주였다. 계산언어학 말을 세는 기계 문법은 규칙일까, 확률일까? 파니니의 문법에서 촘스키의 위계, 섀넌의 영어 엔트로피, 오늘날의 언어 모델까지. 불가능성 정리 불가능의 증명 각의 삼등분, 5차방정식의 근의 공식, 모든 파일을 줄이는 압축, 멈춤을 판정하는 프로그램, 공정한 투표 규칙. 없다는 것은 어떻게 증명할까? 서로 먼 분야의 불가능성 증명들은 거의 모두 불변량, 세기, 대각선이라는 세 가지 무기 가운데 하나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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