랠프 하틀리(Ralph Hartley)
진공관 발진기를 발명하고, 1928년 정보의 양을 가능한 메시지 수의 로그로 재자고 제안해 섀넌의 정보 이론에 출발점을 준 벨 연구소의 전자 공학자.
랠프 하틀리는 1888년 미국 네바다주의 광산촌 스프루스몬트에서 태어났습니다. 1909년 유타 대학을 졸업하고 로즈 장학생으로 옥스퍼드에서 3년을 공부한 뒤, 1913년 뉴욕에 있는 웨스턴 일렉트릭의 연구실에 들어갔습니다. 웨스턴 일렉트릭은 미국 전화망을 거의 독점하던 AT&T의 장비 제조사였습니다. 그 무렵 AT&T는 전화를 대륙 끝에서 끝까지, 나아가 바다 건너까지 잇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었고, 그 열쇠는 약해진 신호를 되살리는 진공관 증폭기였습니다. 1915년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사이에 대륙 횡단 전화가 개통되었고, 같은 해 버지니아의 알링턴에서 파리의 에펠탑으로 사람의 목소리를 무선으로 보내는 시험이 성공했습니다. 하틀리는 이 대서양 횡단 무선 전화 시험에서 수신기를 맡은 젊은 기술자였습니다(전신과 해저 케이블의 시대).
나이
같은 1915년 그는 오늘날 하틀리 발진기라 불리는 회로를 만들었습니다. 무선으로 소리를 보내려면 먼저 일정한 진동수(frequency)로 떨리는 전기 신호, 곧 사인파(sinusoid)를 만들어야 합니다. 발진기는 증폭기의 출력 일부를 알맞은 때에 다시 입력으로 되돌려 떨림이 스스로 이어지게 하는 장치입니다. 그네를 타는 아이를 흔들 때처럼, 올라가는 순간에 맞춰 밀어 주면 작은 힘으로도 흔들림이 계속됩니다. 하틀리는 코일 하나의 중간에 탭을 내어 되돌리는 양을 맞추는 간단한 방법을 찾았고, 떨림의 진동수는 코일의 인덕턴스(inductance)
1920년대 전화 회사의 기술자들에게는 새 물음이 생겼습니다. 한 가닥의 전선에 전신, 여러 통화의 전화, 무선, 사진 전송, 막 시험되던 텔레비전이 한꺼번에 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 통화에 쓰는 진동수의 폭을 좁히면 같은 전선에 더 많은 통화를 실을 수 있었으므로, 진동수의 폭, 곧 대역폭(bandwidth)이 전화 회사의 돈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전선 하나가 1초에 나를 수 있는 '양'은 무엇이고, 그 양을 어떻게 재야 할까요? 모스 부호(Morse code)의 점과 선, 사람의 목소리, 사진의 명암처럼 전혀 다른 것을 한 저울에 올려야 했습니다. 동료 해리 나이퀴스트는 1924년 논문에서 전신의 속도(velocity)가 대역폭에 비례하고, 한 신호에 쓸 수 있는 전류의 단계가 많을수록 빨라진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하틀리는 1927년 이탈리아 코모에서 열린 국제 전신 전화 회의에서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발표했고, 이듬해 「정보의 전송」으로 『벨 시스템 기술 저널』에 실었습니다. 그는 먼저 '정보'에서 뜻과 심리적인 요소를 걷어 내자고 했습니다. 받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메시지가 무슨 뜻인지가 아니라, 보낸 사람이 가능한 여러 메시지 가운데 어느 것을 골랐는지입니다. 기호가
다음으로 그는 속도를 물었습니다. 전선을 지나는 신호는 대역폭이 허락하는 것보다 빨리 모양을 바꿀 수 없습니다. 나이퀴스트가 밝힌 대로, 대역폭이
그렇다면
이 식이 오늘날 섀넌–하틀리 정리(Shannon–Hartley theorem)라 불리는 까닭은 하틀리의 셈과 견주어 보면 드러납니다. 하틀리의 속도
하틀리는 1930년대에 오랜 병으로 연구의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다고 전하지만, 돌아온 뒤에도 새로운 생각을 내놓았습니다. 1942년 그는 푸리에 변환을 고쳐 쓴 하틀리 변환(Hartley transform)을 발표했습니다. 보통의 푸리에 변환은 신호를 코사인(cosine) 성분과 사인(sine) 성분으로 따로 나누고, 둘을 복소수(complex number) 하나로 묶어 다룹니다. 하틀리는 코사인과 사인을 더한
그의 흔적은 정보를 다루는 거의 모든 곳에 있습니다. 국제 표준은 정보의 단위로 섀넌(비트), 내트(nat)와 함께 하틀리를 정해 두었고, 정보 이론에서 가능한 경우의 수(number of cases)의 로그만 보는 가장 단순한 엔트로피를 '하틀리 엔트로피'라 부릅니다. 무엇보다 '정보란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것이고, 그 양은 가능성의 수의 로그'라는 그의 출발점이 섀넌의 이론과 오늘날의 압축과 통신 공학의 첫 문장이 되었습니다(표현 바꾸기).
이어지는 곳. 그가 정보를 잰 방법은 로그이고, 그것을 확률로 넓힌 것이 엔트로피입니다. 대역폭과 속도의 관계는 표본화 정리와 나이퀴스트에서, 잡음이 있을 때의 한계는 섀넌–하틀리 정리와 통로 용량에서 이어집니다. 그가 일한 곳은 벨 연구소이고, 전선 위의 신호를 둘러싼 앞 시대의 이야기는 전신과 해저 케이블의 시대에 있습니다.
관계.
- 함께 연구 해리 나이퀴스트 — 같은 AT&T 연구 조직에서 일하며, 나이퀴스트가 1924년에 밝힌 전신 속도와 대역폭의 관계를 1928년 정보의 양을 재는 일반 이론으로 넓혔습니다.
- 영향을 줌 클로드 섀넌 — 섀넌은 1948년 논문 첫머리에서 정보의 로그 척도를 하틀리가 제안했다고 밝히고, 그의 1928년 논문을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 영향을 받음 조제프 푸리에 — 1942년 푸리에 변환의 사인·코사인을 하나로 묶어, 복소수 없이 실수만으로 계산하는 대칭적인 변환을 내놓았습니다.
연표.
- 1909년 유타 대학을 졸업하다
- 1910년 로즈 장학생으로 옥스퍼드에 가다
- 1913년 뉴욕의 웨스턴 일렉트릭 연구실에 들어가다
- 1915년 하틀리 발진기(Hartley oscillator)를 만들고 대서양 횡단 무선 전화 시험의 수신기를 맡다
- 1925년 벨 연구소가 세워지면서 그 연구원이 되다
- 1927년 이탈리아 코모의 국제 전신 전화 회의에서 정보의 측정을 발표하다
- 1928년 「정보의 전송」을 『벨 시스템 기술 저널』에 싣다
- 1942년 실수만으로 계산하는 하틀리 변환을 발표하다
- 1946년 무선 공학자 협회의 명예 메달을 받다
- 1950년 벨 연구소에서 은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