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와 폐암
상관관계(correlation)는 인과관계가 아니라고들 합니다. 그렇다면 담배가 폐암을 일으킨다는 것은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요?
이 글의
20세기 초만 해도 폐암은 드문 병이었습니다. 1912년 미국 의사 아이작 애들러는 폐의 악성 종양을 다룬 책에서 이것을 가장 드문 질병 가운데 하나로 꼽았습니다. 그런데 반세기도 지나지 않아 폐암은 영국과 미국 남성의 암 사망 원인 맨 앞자리에 올랐습니다. 영국의 의사 리처드 돌과 통계학자 오스틴 브래드퍼드 힐의 1950년 논문 첫머리에 따르면,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폐암으로 기록된 사망은 1922년 612명에서 1947년 9,287명으로 25년 사이에 열다섯 배쯤 늘었습니다.
무엇이 원인일까요? 새로 깔린 아스팔트 도로의 타르 먼지, 늘어난 자동차의 배기가스, 공장 매연, 엑스선 덕분에 진단이 좋아졌을 뿐이라는 설명까지 용의자는 많았습니다. 담배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1880년대에 궐련을 말아 내는 기계가 나오면서 담배는 값싸고 흔해졌고, 두 차례 세계대전 동안 병사들에게 배급되며 남성의 습관이 되었습니다. 궐련 소비의 곡선 뒤로 20–30년쯤 늦게 폐암 곡선이 따라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곡선이 함께 올라간다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증명되지 않습니다. 같은 시기에 자동차도, 라디오도 늘었으니까요. 1926년 영국의 통계학자 우드니 율은 1866년부터 1911년까지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국교회 예식으로 올린 결혼의 비율과 사망률의 상관계수(correlation coefficient)가 0.95나 된다는 것을 보이고, 이것을 '말도 안 되는 상관'이라 불렀습니다. 상관계수는 두 수가 얼마나 나란히 오르내리는지를 −1부터 1까지의 수 하나로 잰 것입니다. 1에 가까우면 한쪽이 클 때 다른 쪽도 거의 언제나 크다는 뜻이고, 계산법은 3절에서 봅니다. 두 수는 그 45년 동안 나란히 줄었을 뿐, 서로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시간을 따라 함께 오르거나 내리기만 하면, 무관한 두 곡선도 높은 상관을 냅니다.
실험으로 가리면 좋겠지만, 사람들을 두 무리로 나누어 한쪽에만 30년 동안 담배를 피우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이 글의 물음은 이것입니다. 그 실험 없이 담배가 폐암의 원인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그리고 '함께 변한다'와 '일으킨다'는 수학으로 어떻게 구별될까? 이 글은 그 불가능한 실험 없이 원인을 밝혀낸 이야기이자, 함께 변하는 것과 원인을 가르는 방법이 100년에 걸쳐 만들어진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1854년 런던의 콜레라에서 시작합니다.
1 · 1854년 소호브로드 가의 펌프
이 절의 물음은 이것입니다. 병의 원인이 눈에 보이지 않을 때, 병이 어디에 생겼는지만으로 원인을 가리킬 수 있을까?
콜레라는 1817년 인도 벵골 지방에서 시작된 대유행으로 처음 세계에 퍼졌습니다. 병은 교역로와 군대의 이동을 따라 번졌고, 다음 대유행 때는 러시아를 거쳐 1831년 10월 발트해에서 온 배를 타고 잉글랜드의 항구 선덜랜드에 닿았습니다. 그 뒤 19세기 런던에는 콜레라가 몇 차례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심한 설사와 탈수로 하루 이틀 만에 사람을 죽이는 병입니다. 당시 의학의 주류는 병이 썩은 것에서 나오는 나쁜 공기, 곧 독기(미아즈마)로 퍼진다고 보았습니다. 가난한 동네에 병이 많은 것도, 냄새나는 템스강 가까이에서 병이 많은 것도 이 설명과 잘 맞았습니다.
마취과 의사 존 스노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콜레라는 먼저 장을 공격하니, 병을 옮기는 무언가는 입으로 들어오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는 1849년 작은 책에서 콜레라가 환자의 배설물로 더러워진 물로 퍼진다고 주장했지만, 그 '무언가'를 보여 줄 수는 없었습니다. 콜레라균은 1854년 피렌체의 해부학자 필리포 파치니가 보고했으나 주목받지 못했고, 1883년 독일의 세균학자 로베르트 코흐가 확인한 뒤에야 널리 인정받았습니다.
1854년 8월 31일 밤, 런던 소호의 브로드 가 둘레에서 콜레라가 폭발했습니다. 스노의 표현을 빌리면 케임브리지 가와 브로드 가가 만나는 지점에서 250야드 안에서만 열흘 사이에 500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습니다. 스노는 등록소에서 사망자 명단과 주소를 받아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물을 어디서 길어 먹었는지 물었습니다. 그리고 거리 지도 위에 사망자를 집마다 짧은 막대로 쌓아 표시했습니다.
아래는 그런 지도를 흉내 낸 가상의 동네입니다. 펌프(큰 색 점)마다 '그 펌프가 가장 가까운 집들'을 한 구역으로 묶어 같은 색으로 칠했습니다. 볼 것은 빨간 사망자 점이 어느 구역에 몰려 있는가입니다. 아래 작은 그래프는 날마다 몇 명이 죽었는지입니다.
지금
펌프를 끌어서 옮겨 보세요. 브로드 가 펌프를 멀리 옮기면 그 펌프의 구역이 바뀌면서 구역 안의 사망자 수가 뚝 떨어지고, 이웃 펌프의 숫자가 늘어납니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펌프'를 어떻게 재느냐도 문제입니다. 지금은
예외들도 오히려 증거가 되었습니다. 펌프에서 몇 걸음 떨어진
9월 7일 스노는 교구 위원회를 설득했고, 이튿날 펌프의 손잡이가 떼어졌습니다. 흔히 이 장면이 전염병을 멈춘 순간으로 이야기되지만,
정리하면, 스노는 사망자가 한 펌프 둘레에 몰려 있고 그 펌프 물을 마시지 않은 사람들은 가까이 살아도 무사했다는 것으로 물을 가리켰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 동네의 관찰이어서, 다른 설명이 끼어들 틈이 남았습니다.
2 · 두 수도 회사누가 고르지도 않은 실험
이 절의 물음은 이것입니다. 두 무리를 견주어 원인을 가리려면, 두 무리가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할까? 한 동네의 지도는 강력했지만 반론의 여지가 남았습니다. 펌프 둘레의 공기가 유난히 나빴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스노가 더 설득력 있다고 본 증거는 템스강 남쪽에 있었습니다. 남런던의 여러 구역에는 두 수도 회사가 물을 대고 있었습니다. 사우스워크·복스홀 회사는 런던의 하수가 흘러드는 배터시 앞 강물을 그대로 끌어 왔고, 램버스 회사는 1852년 취수구를 하수가 닿지 않는 상류의 템스 디턴으로 옮겼습니다.
두 회사의 물길(분홍과 청록)이 템스강 남쪽의 같은 동네로 모입니다. 위쪽 소호에 브로드 가 펌프가, 블룸즈버리에 힐과 돌의 대학원과 피어슨의 대학이, 북쪽 하펜던에 피셔의 로담스테드 시험장이 있습니다. 이 글의 이야기 대부분이 반지름 40킬로미터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중요한 것은 두 회사의 관이 같은 거리 밑을 나란히 지나갔다는 점입니다. 어느 집이 어느 회사의 물을 받는지는 오래전 계약으로 정해졌을 뿐, 그 집이 부자인지 가난한지와는 거의 상관이 없었습니다. 주민들은 자기 집 물이 어느 회사 것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스노는 물의 소금기(염화물)를 재어 두 회사의 물을 가려냈습니다.
남녀노소, 온갖 직업과 신분의, 위로는 신사 계급에서 아래로는 극빈층까지 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스스로 고르지도 않았고 대부분은 알지도 못한 채 두 무리로 나뉘었다. 한 무리는 런던의 하수와 그 속에 섞인 콜레라 환자의 배설물이 든 물을 받았고, 다른 무리는 그런 불순물이 전혀 없는 물을 받았다.— 존 스노, 『콜레라의 전파 방식에 관하여』 개정판(1855)
스노가 모은 1854년 유행 초기 7주의 수치는 이렇습니다. 사우스워크·복스홀 회사의 물을 받은 집 1만 채당 콜레라 사망은 315명, 램버스 회사의 물을 받은 집은 37명이었습니다. 두 회사가 물을 대는 집의 수가 달라서 사망자 수를 그대로 견주면 안 되고, 이렇게 같은 1만 채에 맞춘 비율로 견주어야 합니다. 나누어 보면 여덟 배 넘는 차이입니다.
이 비교에 힘이 있는 까닭은 두 무리가 물 말고는 거의 같았기 때문입니다. 1843년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논리학 체계』에서, 두 경우가 한 가지만 빼고 모두 같은데 결과가 다르다면 그 한 가지가 원인이라는 '차이법(method of difference)'을 정리했습니다. 남런던에 적용하면, 두 무리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 강가와 언덕, 공기까지 섞인 모양이 거의 같고 다른 것은 물뿐이니, 사망의 차이는 물 탓이라는 결론이 됩니다. 도시 전체를 실험실로 쓸 수는 없지만, 스노의 남런던은 역사가 우연히 차려 준 실험실이었습니다. 이런 경우를 자연 실험이라고 부릅니다.
같은 무렵 사망 기록을 관리하던 등록청의 의사이자 통계학자 윌리엄 파는 1848–49년 유행을 분석해, 동네의 해발 고도가 낮을수록 콜레라 사망률이 뚜렷하고 규칙적으로 높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낮은 곳일수록 강의 독기(miasma)가 짙다는 독기설과 딱 맞는 결과였고, 관계 자체도 사실이었습니다. 다만 강가의 낮은 동네일수록 더러운 강물을 끌어 쓰는 회사의 물을 마셨습니다. 고도가 사망을 일으킨 것이 아닙니다. 고도와 얽혀 있으면서 실제로 사망을 일으킨 제3의 요인, 곧 물이 고도와 사망 사이의 겉보기 연관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원인 후보와 얽힌 채 결과에 영향을 주어 겉보기 연관을 만드는 요인을 교란 변수(confounding variable)라고 부릅니다.
관계를 나누어 적으면 이렇습니다. 낮은 동네와 더러운 물은 함께 다녔고(강가 동네일수록 하류의 물을 받았으므로), 사망을 일으킨 것은 더러운 물이었습니다. 파의 표는 '낮을수록 많이 죽는다'를 보여 주었지만, 그 연관은 물을 거쳐 생긴 것입니다. 그렇다면 같은 회사의 물을 받는 집끼리 견줄 때 고도에 따른 차이는 크게 줄어들어야 합니다. 스노의 두 회사 비교는 거꾸로 '고도와 동네는 두 무리에 고루 섞여 있고 물만 다른' 비교였습니다.
정리하면, 두 무리를 견주어 원인을 가리려면 두 무리가 견주려는 한 가지 말고는 같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원인 후보와 얽힌 다른 요인, 곧 교란 변수가 차이를 만들 수 있습니다.
1858년 여름, 템스강의 오물 냄새가 의사당까지 덮친 '대악취'가 일어났습니다. 독기설을 믿던 의원들은 서둘러 예산을 통과시켰고, 기술자 조지프 배절젯이 하수를 도시 동쪽 하류로 빼내는 거대한 하수도를 지었습니다. 틀린 이론이 옳은 공사를 낳은 셈입니다. 파는 1866년, 하수도가 아직 닿지 않은 동런던에서 일어난 유행을 보고 물 쪽으로 생각을 바꾸었다고 전해집니다.
스노의 증거는 당대에 곧바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1854년 유행을 조사한 보건국의 과학 조사 위원회는 1855년 보고서에서 그의 물 이론을 물리치고, 지면의 대부분을 기온과 공기 같은 기상 요인에 썼습니다. 오늘날 교과서에 실리는 스노의 콜레라 지도도 그해 나온 『콜레라의 전파 방식에 관하여』 개정판에 실린 것으로, 처음부터 널리 읽힌 그림은 아니었습니다. 이 지도가 역학(질병이 사람들 사이에 어떻게 퍼지고 무엇 때문에 생기는지 연구하는 학문)의 상징처럼 널리 알려진 것은 주로 20세기 들어서입니다.
3 · 함께 변한다는 것골턴과 피어슨의 상관계수
이 절의 물음은 이것입니다. '함께 변한다'를 수 하나로 어떻게 잴까? 그리고 그 수가 크다는 것은 원인에 대해 무엇을 말해 주고, 무엇을 말해 주지 않을까?
스노는 사망자를 세고 비교했지만, '함께 변하는 정도'를 하나의 수로 재는 방법은 아직 없었습니다. 자료에서 결론을 끌어내는 학문인 통계학(statistics)의 이 기본 도구를 만든 사람들은 유전을 연구하던 영국인들이었습니다. 찰스 다윈의 사촌 프랜시스 골턴은 1886년 부모와 자녀의 키 자료에서, 키가 아주 큰 부모의 자녀는 대개 크지만 부모만큼 크지는 않고, 아주 작은 부모의 자녀는 부모만큼 작지는 않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다음 세대는 평균 쪽으로 돌아옵니다. 오늘날 평균으로의 회귀(regression to the mean)라고 부르는 현상입니다. 이것은 키가 세대마다 평균으로 줄어든다는 뜻이 아닙니다. 평균 가까운 부모에게서도 아주 큰 자녀와 아주 작은 자녀가 나오므로, 자녀 세대 전체의 흩어짐은 부모 세대와 비슷하게 유지됩니다.
회귀는 원인에 대한 흔한 착각의 뿌리이기도 합니다. 시험을 유난히 못 본 학생은 무엇을 하든 대개 다음 시험에서 나아집니다. 실력에 운이 더해진 점수에서, 운이 유난히 나빴던 사람은 다음에는 평범한 운을 만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 사이에 보충 수업을 받았다면 보충 수업이 효과가 있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가장 아플 때 병원을 찾는 환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조군(control group) 없이 전후만 견주면 회귀를 효과로 착각하게 됩니다.
골턴은 1888년 논문 「상관과 그 측정」에서 두 양이 '함께 변하는'(co-relation) 정도에 처음으로 수 하나를 붙였습니다. 사람의 키와 팔뚝 길이처럼 몸의 여러 치수가 얼마나 함께 크고 작은지를 재려던 것입니다. 골턴의 제자이자 동료였던 칼 피어슨은 1896년 논문에서 두 변수가 함께 변하는 정도를 재는 공식을 다듬으면서, 이 식의 형태는 1846년 프랑스의 물리학자 오귀스트 브라베가 한 점의 위치를 잴 때 생기는 오차를 다루며 먼저 적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다 1920년 상관의 역사를 다시 쓰면서, 브라베가 '상관'이라는 생각까지 가진 것은 아니었다고 평가를 고쳤습니다. 식은 오차 이론에 있었지만, 그것을 서로 다른 두 양의 관계를 재는 도구로 읽은 것은 유전을 연구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피어슨은 1901년 골턴, 동물학자 월터 웰던과 함께 학술지 『바이오메트리카』를 세웠고, 이 무리가 통계학을 한 분야로 키웠습니다(골턴 연구소와 로담스테드).
피어슨이 다듬은 수가 오늘날 상관계수라고 부르는 수입니다. 만드는 법을 세 사람짜리 작은 예로 먼저 따라가 봅시다. 세 사람의 두 값이 (
- 각 값에서 평균을 뺍니다.
의 평균도 의 평균도 2이므로, 평균에서 벗어난 양(편차)은 가 −1, 0, 1이고 가 −1, 1, 0입니다. - 사람마다 두 편차를 곱해 더합니다. (−1)(−1) + 0 × 1 + 1 × 0 = 1입니다. 한 사람의 두 값이 모두 평균보다 크거나 모두 작으면 곱이 양수, 엇갈리면 음수이므로, 이 합의 부호가 '함께 오르는지, 엇갈리는지'를 알려 줍니다.
- 합의 크기는 값의 눈금(센티미터로 재느냐 미터로 재느냐)에 따라 달라지므로 눈금을 없앱니다. 각 변수의 편차를 제곱해 더한 것의 제곱근으로 나눕니다. 여기서는 둘 다 √(1 + 0 + 1) = √2이니, 1 ÷ (√2 × √2) = 1/2입니다.
그래서 이 세 사람의 상관계수는 0.5입니다. 셋째 단계에서 나누는 수는 흩어진 정도를 잰 값입니다. 편차의 제곱을 평균 낸 것을 분산(variance), 그 제곱근을 표준편차라 하고, 표준편차(standard deviation)는 '값들이 평균에서 보통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를 값과 같은 단위로 나타냅니다. 셋째 단계의 수는 표준편차에 사람 수의 제곱근을 곱한 것입니다. 이렇게 나누면 결과는 늘 −1과 1 사이에 들어옵니다(까닭은 바로 아래의 각도 그림에서 보입니다). 식으로 적으면 아래와 같고, 오른쪽 끝의 수는 아래 그림의 가상의 300명으로 계산한 값입니다.
이 식에는 기하학이 숨어 있습니다. 세 사람의
점들을 가장 잘 지나는 최소제곱 회귀(least-squares regression) 직선(점들에서 직선까지의 세로 거리를 제곱해 더한 값이 가장 작은 직선)의 기울기(slope)도 같은 재료로 만들어집니다. 각 변수에서 평균을 빼고 표준편차로 나누어 눈금을 맞춘 자료(표준화(standardization)한 자료)에서는 회귀 직선의 기울기가 바로
이제 상관계수가 원인에 대해 무엇을 말하지 않는지 봅시다. 통계학자 로널드 피셔가 훗날 제기할 물음을 미리 그림으로 만들어 보는 것입니다. 가상의 300명에게 흡연량
두 세기를 정할 수 있습니다. 체질이 흡연과 손상을 함께 밀어 올리는 세기(
기본값은 흡연의 직접 효과가 0입니다. 그런데도
두 경우의 상관계수는 비슷합니다. 상관계수 하나만 보아서는 둘을 가를 수 없고, 무엇으로 나누어 보아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체질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 그림의 체질 자리에는 무엇이든 넣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이 반세기 뒤 담배 논쟁의 핵심이 됩니다.
흔히 '상관이 아주 크면 원인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상관계수는 두 값이 함께 움직이는 정도만 잴 뿐 그 움직임이 어느 길로 왔는지는 담지 않습니다. 정리하면, 상관계수는 두 편차 벡터 사이 각도의 코사인이고, 같은 상관계수가 인과(causation)에서도, 숨은 공통 요인에서도 나올 수 있습니다.
피어슨 자신은 원인이라는 말을 미심쩍어했습니다. 1892년 『과학의 문법』에서 그는, 과학은 현상들이 어떻게 함께 일어나는지 기술할 뿐이라는 실증주의를 폈습니다. 1911년 판에서는 원인이라는 낡은 관념을 더 넓은 범주(category)인 상관으로 바꾸어야 한다고까지 썼습니다. 18세기 데이비드 흄의 회의를 이은 생각입니다. 흄은 우리가 원인과 결과 사이의 필연적 연결을 결코 보지 못하고, 한 일 뒤에 다른 일이 늘 따라오는 것을 볼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피어슨의 무리가 원인을 묻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피어슨의 제자 율은 1899년, 잉글랜드의 구빈 구역들에서 빈민의 수가 왜 바뀌었는지를 물었습니다. 구빈원에 들이지 않고 집으로 돈을 주는 '원외 구호'가 빈곤을 늘리는지가 당시의 정치 논쟁거리였습니다. 율은 원외 구호의 비율뿐 아니라 노인 인구의 비율과 인구 변화를 함께 넣은 식으로 빈민 수의 변화를 설명했습니다. 이 연구는 여러 변수를 한꺼번에 넣는 다중 회귀(multiple regression)를 출판된 연구에서 처음 쓴 사례로 꼽힙니다. 다른 요인을 식 안에서 붙잡아 두려 한 것이니 앞 그림의 '체질로 나누어 보기'와 같은 생각입니다. 그런데 율은 본문에서 빈곤의 변화가 원외 구호 '때문'이라고 쓰면서, 각주에는 "엄밀히 말하면 '때문에'를 '연관된'으로 읽으라"고 적었습니다. 식에 넣지 않은 요인이 남아 있는 한, 회귀 계수는 원인의 크기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 도구들에는 어두운 그늘이 있습니다. 골턴은 1883년 '우생학(eugenics)'이라는 말을 만들었습니다. 사람의 유전적 '자질'을 개량하겠다며 누가 아이를 낳을지를 통제하려 한 사상과 운동입니다. 피어슨은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첫 우생학 교수가 되었고, 뒤에 나올 피셔도 평생 우생학을 옹호했습니다. 상관과 회귀는 인종과 계급의 우열을 '측정'하는 데 쓰였고, 그 주장들은 미국 여러 주의 강제 불임법과 나치 독일의 정책을 뒷받침하는 데 이용되었습니다. 2020년 이 대학은 골턴과 피어슨의 이름을 건물과 강의실에서 떼어 냈습니다. 수학이 틀린 것이 아니라, 무엇을 재고 어떻게 해석할지 정한 전제가 틀렸던 것입니다.
4 · 합치면 뒤집힌다버클리 대학원의 합격률
이 절의 물음은 이것입니다. 부분마다 한쪽이 앞서는데, 합치면 다른 쪽이 앞설 수 있을까? 있다면 어느 쪽 비교를 믿어야 할까? 교란이 만드는 가장 큰 착시는 경향이 아예 뒤집히는 경우입니다. 1973년 가을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의 대학원 입학 자료에서 남성 지원자 약 8,400명 가운데 44%, 여성 지원자 약 4,300명 가운데 35%가 합격했습니다. 차별처럼 보이는 차이였고, 대학 당국은 소송을 걱정했다고 전해집니다. 통계학자 피터 비켈과 동료들이 학과별로 자료를 나누어 보았고, 그 분석이 1975년 『사이언스』에 실렸습니다. 아래는 지원자가 가장 많았던 여섯 학과의 실제 수치입니다. 볼 것은 학과마다 분홍 원이 파란 원보다 높은지 낮은지, 그리고 오른쪽 '합계'에서는 어떤지입니다.
지금은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 두 학과만으로 손으로 따라가 봅시다. '학과별로' 볼 때 원에 마우스를 올리면 나오는 실제 수치입니다.
- A 학과: 남성 825명 가운데 512명(62%), 여성 108명 가운데 89명(82%) 합격. 여성이 높습니다.
- C 학과: 남성 325명 가운데 120명(37%), 여성 593명 가운데 202명(34%) 합격. 거의 같습니다.
두 학과를 합치면 남성은 (512 + 120) ÷ (825 + 325) = 632 ÷ 1150 ≈ 55%, 여성은 (89 + 202) ÷ (108 + 593) = 291 ÷ 701 ≈ 42%입니다. 까닭은 지원한 곳에 있습니다. 남성은 1150명 가운데 825명(72%)이 합격률 높은 A에 지원했고, 여성은 701명 가운데 593명(85%)이 합격률 낮은 C에 지원했습니다. 합친 합격률은 두 학과의 합격률을 '지원자가 어디에 몰렸는가'로 섞은 값이어서, 여성의 합계는 C의 34% 쪽으로, 남성의 합계는 A의 62% 쪽으로 끌려간 것입니다.
선택지를 눌러 '모두 합쳐서'로 바꾸면 원들이 합계로 모여듭니다. 합계는 각 학과의 합격률을 지원자 수로 가중한 평균입니다. 남성은 합격률이 높은 A, B 학과에 많이 지원했고, 여성은 합격률이 낮고 경쟁이 치열한 C, E 같은 학과에 많이 지원했습니다. 어느 학과에 지원했는가가 성별과도, 합격 여부와도 얽힌 교란 변수였던 것입니다. 조건부 확률(어떤 일이 주어졌을 때의 확률(probability))로 쓰면(세로 막대
식을 말로 읽으면 '여성의 전체 합격률은, 학과마다 (그 학과에서 여성의 합격률) × (여성 지원자 가운데 그 학과에 지원한 비율)을 구해 모든 학과에 대해 더한 것'입니다. 두 학과 예로는 0.824 × 0.154 + 0.341 × 0.846 ≈ 0.415로, 위에서 직접 센 42%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공정한 비교는 무엇일까요? 가중치를 똑같이 맞추면 됩니다. 지원 분포를
그렇다면 늘 나누어 본 쪽이 옳을까요? 흔히 그렇게 생각하지만, 답은 자료만으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학과로 나누어 보는 것이 옳은 것은 학과가 '성별과 합격을 함께 움직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때입니다. 무엇으로 나누어야 하는지는 8절에서 그래프로 다시 따집니다. 정리하면, 합친 비율은 부분의 비율들을 무게를 달리해 평균한 것이어서, 두 무리의 무게가 다르면 부분의 경향과 반대로 나올 수 있습니다.
이런 뒤집힘은 새로운 발견이 아니었습니다. 1899년 피어슨, 1903년 율이 이미 지적했고, 1951년 영국의 통계학자 에드워드 심슨이 짧은 논문에서 명료하게 정리했습니다. '심슨의 역설'이라는 이름은 1972년 통계학자 콜린 블라이스가 붙였습니다. 심슨은 2차 세계대전 때 블레츨리 파크에서 암호 해독에 참여한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블레츨리 파크의 암호 해독가들이 한 일은 「나머지로 지키는 비밀」 7절에 있습니다.
버클리 사례에서 비켈 등은 차별의 흔적이 입학 심사가 아니라 그 앞 단계, 곧 여성이 어떤 학과로 이끌렸는가에 있을지 모른다고 보았습니다.
5 · 동전에게 맡기기로담스테드의 밭과 무작위 배정(random assignment)
이 절의 물음은 이것입니다. 교란 변수를 모두 알지 못해도, 두 무리를 '견주려는 한 가지 말고는 같게' 만들 수 있을까? 교란 변수를 하나하나 찾아 나누어 보는 방법에는 끝이 없습니다. 모르는 교란 변수는 나눌 수조차 없습니다. 이 문제를 뿌리째 해결한 생각은 뜻밖에도 밀밭에서 나왔습니다.
런던에서 북쪽으로 40킬로미터쯤 떨어진 하펜던의 로담스테드 시험장은 인조 비료로 사업을 일군 존 로즈가 1843년 자기 영지에 세운 농업 연구소입니다. 같은 밭을 여러 구획으로 나누어 비료를 달리하며 밀의 수확량을 기록하는 시험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집니다. 1919년 이곳에 온 로널드 피셔는 70년 넘게 쌓인 자료를 분석하다 근본적인 어려움에 부딪혔습니다. 흙의 비옥도, 물 빠짐, 그늘이 구획마다 달라서 비료의 효과와 뒤섞입니다. 비옥한 구획에 좋은 비료를 주면 비료가 좋은 것인지 땅이 좋은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피셔의 해법은 어느 구획에 어떤 처리를 할지를 제비뽑기로 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작위로 정하면 흙의 비옥도든, 아직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요인이든, 모든 교란 요인이 평균적으로 두 무리에 고르게 나뉩니다. 예를 들어 구획 20개 가운데 비옥한 것이 10개라면, 제비뽑기로 10개에 새 비료를 줄 때 새 비료 쪽에 비옥한 구획이 대개 4~6개쯤 들어갑니다. 연구자가 어느 구획이 비옥한지 몰라도 그렇습니다. '평균적으로'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한 번의 배정에서는 우연히 한쪽이 기울 수 있지만(비옥한 구획이 8개 몰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 우연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는 확률로 계산할 수 있습니다. 연구자가 모르는 요인까지 설계만으로 한꺼번에 끊는 방법으로는 이것이 가장 확실합니다. 그는 이 원리를 1925년 『연구자를 위한 통계적 방법』과 1935년 『실험 설계』에 정리했습니다.
『실험 설계』의 둘째 장은 차 한 잔으로 시작합니다. 어떤 부인이 찻잔에 우유를 먼저 부었는지 차를 먼저 부었는지 맛으로 알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잔
핵심은 이 확률의 근거가 부인의 머릿속이 아니라 실험자가 섞은 순서에 있다는 점입니다. 부인에게 능력이 없다면 부인의 답은 섞은 순서와 아무 상관이 없고, 실험자가 70가지 가운데 하나를 고르게 뽑았으니 둘이 우연히 맞을 확률이 정확히 1/70입니다. 부인이 모두 맞히면 '능력이 없는데 1/70의 우연이 일어났다'와 '능력이 있다' 가운데 하나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무작위 배정이 확률을 실험 안으로 들여온 것입니다.
피셔의 딸이자 전기 작가인 조앤 피셔 박스에 따르면, 이 예는 1920년대 로담스테드의 오후 차 시간에 흙 속의 미세조류를 연구하던 뮤리엘 브리스틀이 한 말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서 실제로 시험을 해 보았고 그녀가 거의 다 맞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확인할 기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무작위 배정이 사람의 병에 처음 크게 쓰인 것은 전쟁 직후 영국입니다. 1943년 미국 럿거스 대학의 셀먼 왁스먼 연구실에서 결핵균을 죽이는 스트렙토마이신이 발견되었지만, 달러가 모자랐던 전후의 영국은 이 약을 조금밖에 들여올 수 없었습니다.
영국 의학연구위원회는 모든 환자에게 줄 약이 없다는 사정을 오히려 기회로 삼았습니다. 런던 위생·열대의학 대학원의 통계학자 오스틴 브래드퍼드 힐의 설계에 따라, 폐결핵 환자 107명을 봉투 속 난수로 약을 받는 무리와 침상 안정만 하는 무리로 나누었습니다. 환자를 받는 의사는 다음 봉투의 내용을 알 수 없었고, 엑스선 사진을 판정하는 의사도 누가 약을 받았는지 몰랐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요? 봉투 대신 의사가 고르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봅시다. 가상의 환자 200명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중증도가 있고, 중증도가 높을수록 회복 점수가 낮습니다. 약의 참 효과는
이번 시험에서 약을 받은 환자는
의사가 가벼운 환자에게 먼저 약을 주면, 약을 받은 무리는 원래 회복이 잘될 사람들로 채워져 효과가 크게 부풀려집니다. 중한 환자일수록 약을 원하면 반대로 효과가 줄고, 참 효과가 있는데도 약이 해로워 보일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환자를 늘리면 분포가 좁아질 뿐 엉뚱한 자리에서 좁아집니다. 봉투로 정할 때만 분포가
흩어짐은 환자 수의 제곱근에 반비례해 줄어듭니다. 서로 독립(independence)인 값 n개의 평균은 분산이 한 값의 1/n로 줄어, 표준편차는
1948년 10월 『영국 의학 저널』에 실린 결과는 뚜렷했습니다. 6개월 동안 약을 받은 55명 가운데 4명(7%), 받지 않은 52명 가운데 14명(27%)이 죽었습니다. 이 시험은 무작위 대조 시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의 이정표로 꼽힙니다.
정리하면, 누가 처리를 받을지를 우연에 맡기면 아는 요인도 모르는 요인도 두 무리에 평균적으로 고루 나뉘고, 남는 차이가 우연만으로 얼마나 생길 수 있는지도 계산할 수 있습니다.
무작위 배정은 윤리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1947년 뉘른베르크의 미국 군사 법정은 나치 의사들을 심판하며 인체 실험의 원칙을 밝혔고, 그 첫째가 자발적 동의였습니다. 효과가 있을지 모르는 약을 제비뽑기로 누군가에게 주지 않는 것이 정당하려면, 그 약이 정말 듣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이 원칙이 짓밟힌 사례도 있습니다. 미국 공중보건국은 1932년부터 1972년까지 앨라배마주 터스키기에서 가난한 흑인 매독 환자들에게 병을 알리지도, 페니실린이 나온 뒤에도 치료하지도 않은 채 경과를 지켜보았습니다. 원인을 알려는 욕심이 사람을 수단으로 삼은 사건입니다.
견주어 보는 실험 자체는 훨씬 오래되었습니다. 1025년 무렵 페르시아의 의사이자 철학자 이븐 시나는 『의학정전』에 새 약을 시험하는 규칙 일곱 가지를 적었습니다. 한 가지 병에만 써 볼 것, 여러 경우에 써서 늘 또는 대부분 같은 효과가 나는지 볼 것, 약효가 나타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따질 것, 끝내는 사람의 몸에서 시험할 것 같은 규칙입니다. 이 책은 12세기 톨레도에서 라틴어로 옮겨져 오랫동안 유럽 의학의 교과서로 쓰였습니다. 1747년 영국 군함 솔즈베리호의 의사 제임스 린드는 괴혈병에 걸린 선원 12명을 두 명씩 여섯 무리로 나누어 서로 다른 처방을 주었고, 오렌지와 레몬을 먹은 두 사람이 가장 빨리 나았습니다(1753년 책으로 발표). 다만 누가 어느 처방을 받을지는 린드가 정했습니다. 1884년 일본 해군에서는 배 한 척을 통째로 견주는 시험이 있었습니다. 런던의 세인트토머스 병원에서 의학을 배우고 돌아온 군의관 다카키 가네히로는, 한 해 전 훈련함 류조가 아홉 달 항해하는 동안 376명 가운데 169명이 각기병에 걸리고 25명이 죽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이듬해 같은 항로로 떠나는 쓰쿠바의 식단에 보리, 고기, 우유, 빵, 채소를 늘렸고, 333명 가운데 환자는 스무 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원인을 단백질 같은 영양소의 부족으로 보았는데 이것은 틀렸습니다. 진짜 원인인 비타민 B1(티아민)의 부족은 뒤에 밝혀졌습니다. 그래도 식단을 바꾼 뒤 몇 해 사이에 해군의 각기병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반면 각기병을 감염병으로 여긴 육군은 식단을 바꾸지 않았고, 러일전쟁(1904–1905)에서 20만 명이 넘는 병사가 각기병을 앓아 2만 7천 명이 죽었습니다. 원인의 정체를 몰라도 무엇을 바꾸면 결과가 바뀌는지는 알아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순서를 사람 대신 우연에 맡긴 이른 기록으로는 1885년 미국의 철학자 찰스 샌더스 퍼스와 제자 조지프 재스트로의 실험이 꼽힙니다. 두 사람은 무게의 아주 작은 차이를 느끼는지 시험하면서, 잘 섞은 카드의 색으로 자극의 순서를 정했습니다. 피셔가 더한 것은 이것을 실험 설계의 원리로 세우고, 무작위로 배정해야만 우연으로 생길 수 있는 차이의 크기를 확률로 계산할 수 있다는 논리를 붙인 일입니다.
6 · 1950년두 대륙의 두 연구
이 절의 물음은 이것입니다. 무작위 배정을 쓸 수 없을 때, 관찰만으로 원인에 얼마나 다가갈 수 있을까? 담배에는 무작위 배정을 쓸 수 없습니다. 제비뽑기로 누군가에게 30년 동안 담배를 피우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남은 길은 스노처럼 관찰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것이었습니다. 1950년, 대서양 양쪽에서 거의 같은 설계의 연구가 나란히 발표되었습니다.
5월,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 대학교에서 의대생 에른스트 윈더와 흉부외과 의사 에바츠 그레이엄이 폐암 환자 684명의 흡연력을 조사한 논문을 『미국 의학협회지』에 실었습니다. 그레이엄은 폐 한쪽을 통째로 떼어 내는 폐암 수술에 처음 성공한 사람인데, 애초에는 담배 가설을 미심쩍어했다고 전해집니다.
9월에는 런던의 리처드 돌과 브래드퍼드 힐이 『영국 의학 저널』에 결과를 냈습니다. 돌은 훗날, 처음에는 도로 포장용 타르나 자동차 배기가스를 의심했다고 회고했습니다.
돌과 힐은 런던의 여러 병원에서 폐암 환자마다 나이와 성별이 같은 다른 병의 환자를 한 사람씩 짝지어 흡연 습관을 물었습니다. 이것을 환자–대조 연구라고 합니다. 논문의 표에 따르면 폐암에 걸린 남성 649명 가운데 담배를 피운 적이 없는 사람은 단 2명이었고, 짝지은 대조 환자 649명 가운데서는 27명이었습니다. 이 차이를 수 하나로 줄이려고 오즈(odds)를 씁니다. 오즈는 어떤 일이 일어난 수를 일어나지 않은 수로 나눈 비입니다. 예를 들어 10명 가운데 2명이 피웠다면 피운 쪽의 비율은 2/10이지만 오즈는 2 : 8, 곧 1/4입니다. 폐암 환자 쪽에서 피운 사람과 안 피운 사람의 오즈는 647 : 2, 대조 환자 쪽은 622 : 27이고, 두 오즈를 나눈 것이 오즈비입니다.
계산을 풀어 쓰면 폐암 환자 쪽 오즈는 647 ÷ 2 = 323.5, 대조 쪽은 622 ÷ 27 ≈ 23.0이고, 323.5 ÷ 23.0 ≈ 14입니다. 흡연과 폐암이 아무 관계가 없다면 두 무리의 오즈가 비슷해 오즈비(odds ratio)는 1 근처여야 합니다.
이 비는 무엇을 뜻할까요? 환자–대조 연구(case-control study)가 직접 재는 것은 "폐암 환자 가운데 흡연자의 비율", 곧
환자–대조 연구에는 약점이 있었습니다. 병에 걸린 사람은 과거를 다르게 기억할 수 있고, 대조 환자를 어떻게 골랐느냐에 따라 결과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돌과 힐은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1951년 가을 영국 의사 명부의 의사들에게 흡연 습관을 묻는 편지를 보냈고, 약 4만 명이 답했습니다. 병에 걸리기 전에 습관을 묻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기다리는 코호트 연구입니다. 첫 보고는 1954년에 나왔고, 추적은 50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대서양 건너편에서도 같은 방향의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미국 암 협회의 E. 커일러 해먼드와 대니얼 혼은 1952년부터 2만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의 손을 빌려, 건강한 50–69세 남성 약 18만 8천 명에게 흡연 습관을 묻고 그 뒤를 지켜보았습니다. 1954년 여름 20개월 남짓 만에 낸 첫 보고에서, 궐련을 꾸준히 피운 사람들은 피우지 않은 사람들보다 모든 원인을 합친 사망률도, 폐암 사망률도 뚜렷이 높았습니다. 두 나라의 코호트 연구(cohort study)가 서로 다른 사람들을 따로 조사해 같은 모양을 보였습니다. 뒤에 힐이 말한 '일관성'이 바로 이것입니다.
환자–대조 연구가 어림으로만 얻던 상대위험을 코호트 연구는 직접 잽니다. '흡연자 가운데 폐암에 걸린 비율 ÷ 비흡연자 가운데 폐암에 걸린 비율'입니다. 상대위험이 3이면 흡연자가 같은 기간에 폐암에 걸릴 가능성이 비흡연자의 세 배라는 뜻입니다.
이 연구가 준 가장 설득력 있는 증거는 두 가지 모양이었습니다. 하나는 양–반응 관계입니다. 원인이라면 많이 피울수록 위험이 커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끊은 뒤의 변화입니다. 원인이라면 끊은 뒤 위험이 줄어들어야 합니다. 하루
하루
실제 수치도 이 모양이었습니다. 영국 의사 연구와 미국의 비슷한 연구들에서 폐암 사망 위험은 피우는 양에 따라 꾸준히 커졌고, 많이 피우는 사람은 비흡연자의 스무 배 안팎이었습니다. 2004년 돌과 역학자 리처드 피토가 낸 50년 보고에 따르면 계속 피운 의사들은 평생 피우지 않은 의사들보다 평균 10년쯤 일찍 죽었고, 서른 무렵에 끊은 사람은 그 손실을 거의 모두 피했습니다.
정리하면, 관찰 연구(observational study)는 한 번의 비교로 원인을 증명하지 못하지만, 설계가 다른 연구들(환자–대조, 코호트)이 같은 크기의 연관을 보이고, 많이 피울수록 커지고 끊으면 줄어든다는 원인다운 모양까지 맞으면 다른 설명이 설 자리가 좁아집니다.
사실 담배와 폐암의 연관을 처음 체계적으로 보인 것은 독일 연구자들이었습니다. 1939년 쾰른의 프란츠 뮐러, 1943년 예나의 샤이러와 쇠니거가 환자–대조 연구로 폐암 환자에 비흡연자가 드물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이 연구들은 나치 정권의 반흡연 운동과 얽혀 있었고, 전쟁 뒤 영어권에서는 오랫동안 거의 인용되지 않았습니다.
7 · 반론과 의심피셔의 체질 가설, 그리고 담배 회사들
이 절의 물음은 이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요인이 연관을 모두 만들었다는 반론에, 관찰 자료만으로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가장 날카로운 반론은 무작위 배정의 아버지에게서 나왔습니다. 1957년부터 피셔는 『영국 의학 저널』과 『네이처』에 글을 보내고 1959년 소책자를 내며 돌과 힐을 공격했습니다. 논점은 3절의 그림 그대로였습니다. 흡연과 폐암을 함께 일으키는 체질(유전형)이 있다면 담배가 무해해도 둘은 함께 나타납니다. 그는 일란성 쌍둥이가 이란성 쌍둥이보다 흡연 습관이 더 비슷하다는 자료를 들었습니다. 원인과 결과가 거꾸로일 가능성도 제기했습니다. 폐암의 전 단계인 염증이 오히려 담배를 찾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논리 자체는 옳았습니다. 다만 피셔는 스스로 파이프 담배를 즐겼고, 영국 담배 제조업체 단체의 자문을 맡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은 지금까지도 그의 반론을 평가하는 눈을 흐립니다. 그가 반론을 편 것은 돈보다는 유전학자로서의 신념, 그리고 불완전한 증거로 공중을 겁주는 '선전'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체질 가설에는 수학적인 답이 필요했습니다.
답은 1959년 코른필드와 동료들이 냈습니다. 숨은 요인
까닭을 따라가 봅시다. 피셔의 가설대로 담배 자체는 아무 해가 없고, 폐암 위험은
이고, 따라서
부등식을 곱셈 몇 줄로 확인하기
요인이 흡연자 쪽에 더 흔하다고 합시다(
이제 직접 넣어 봅시다. 관찰된 상대위험(
흡연자 가운데
정리하면, 숨은 요인 하나가 상대위험 RR을 혼자 만들어 내려면 그 요인이 흡연자 쪽에 적어도 RR배 흔해야 합니다. RR이 10일 때 비흡연자 가운데 그 요인을 가진 사람이 10%를 넘으면, 흡연자 쪽 비율은 100%를 넘어야 하니 그런 요인 하나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피셔만 의심한 것은 아닙니다. 메이오 클리닉의 통계학자 조지프 버크슨은 이미 1946년,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만으로 자료를 모으면 실제로는 아무 관계가 없는 두 병이 서로 연관되어 보일 수 있음을 보였습니다. 두 병 가운데 하나라도 있어야 병원에 오므로, 둘 다 없는 사람이 표본(sample)에서 통째로 빠지기 때문입니다. 병원 환자끼리 견준 환자–대조 연구에 곧바로 겨눌 수 있는 걱정이었습니다. 버크슨은 그 뒤로도 오랫동안 흡연이 폐암을 일으킨다는 결론을 의심했습니다. 병원 밖의 사람들을 미리 등록해 두고 기다리는 코호트 연구는 이런 선택의 함정을 피하는 길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버크슨의 역설(Berkson's paradox)'이라 부르는 이 현상은, 8절의 인과 그래프(causal graph)로 보면 두 화살표가 한 점(입원)으로 모여드는 곳을 조건으로 삼았을 때 생기는 일입니다.
논쟁은 공식 판정으로 이어졌습니다. 1962년 영국 왕립의사협회, 1964년 1월 미국 공중보건국장의 자문 위원회가 잇달아 결론을 냈습니다. 미국 위원회는 7천여 편의 문헌을 검토한 끝에 흡연이 남성 폐암의 원인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무작위 시험 없이 '원인'이라고 말할 근거를 정리한 사람이 힐입니다. 1965년 강연에서 그는 아홉 가지 관점을 내놓았습니다. 괄호 안은 이 글에서 본 예입니다.
- 강도: 연관이 얼마나 센가(코른필드의 부등식).
- 일관성: 여러 나라와 여러 방법에서 같은 결과가 나오는가(영국과 미국의 코호트 연구).
- 특이성: 원인이 여러 병이 아니라 특정한 병과 짝지어지는가.
- 시간 순서: 원인이 결과보다 먼저인가(병에 걸리기 전에 습관을 물은 코호트 연구).
- 양–반응 관계(dose–response relationship): 많을수록 더한가(6절 왼쪽 그림).
- 개연성: 생물학적으로 그럴 법한가(담배 타르를 쥐의 피부에 바르면 종양이 생긴다는 실험).
- 정합성: 병에 대해 이미 알려진 사실과 어긋나지 않는가.
- 실험적 증거: 끊으면 위험이 줄어드는 것 같은 증거가 있는가(6절 오른쪽 그림).
- 유비: 비슷한 원인이 비슷한 병을 일으킨 앞선 사례가 있는가.
그러면서 이것들이 엄격한 규칙은 아니라고 거듭 말했습니다.
이 관점들은 피셔의 말과도 통합니다. 통계학자 윌리엄 코크런의 회고에 따르면 피셔 자신도 관찰 연구를 어떻게 인과에 가깝게 하느냐는 물음에 "이론을 정교하게 만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원인이 옳다면 참이어야 할 결과들을 여러 갈래로 미리 말하고 모두 맞는지 보라는 뜻이니, 힐의 관점들이 바로 그 갈래들입니다.
모든 과학적 작업은 불완전하다. 관찰이든 실험이든 그렇다. 모든 과학적 작업은 지식이 늘면서 뒤집히거나 고쳐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미 가진 지식을 무시하거나, 그 지식이 지금 요구하는 듯한 행동을 미룰 자유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오스틴 브래드퍼드 힐, 「환경과 질병: 연관인가 인과인가?」(1965)
담배 회사들은 이 불완전성을 사업으로 삼았습니다. 1954년 1월 4일 미국 수백 개 신문에 「흡연자들에게 드리는 솔직한 성명」이라는 광고가 실렸습니다. 자기들은 제품이 해롭지 않다고 믿으며, 업계가 연구 위원회를 세워 진실을 밝히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뒤 수십 년 동안 업계는 인과가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는 목소리를 키웠습니다. 1990년대 소송과 내부 고발로 공개된 한 담배 회사의 문서는 그 전략을 스스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의심이 우리의 상품이다. 대중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사실의 덩어리'와 겨루는 가장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논쟁을 만들어 내는 수단이기도 하다.— 브라운앤드윌리엄슨 사 내부 문서 「흡연과 건강 제안」(1969)
'상관관계는 인과관계가 아니다'라는 옳은 말이 여기서는 과학의 신중함을 흉내 내어 결론을 한없이 미루는 무기가 되었습니다. 과학사학자 나오미 오레스케스와 에릭 콘웨이는 2010년 책 『의심의 상인들』(원제 Merchants of Doubt)에서 같은 방법이 산성비, 오존층, 기후 변화 논쟁에서 되풀이되었음을 추적했습니다. 1998년 미국 46개 주와의 합의로 담배 회사들은 2천억 달러가 넘는 돈을 내기로 했고, 2003년 세계보건기구는 기구의 첫 국제 협약인 담배규제기본협약을 채택했습니다.
8 · 인과의 언어화살표와 개입
이 절의 물음은 이것입니다. '함께 변한다'와 '바꾸면 변한다'를 수식에서 어떻게 다르게 적을까? 그리고 무작위 배정이 통하는 까닭, 나누어 보아야 할 때와 나누면 안 될 때를 그 언어로 가릴 수 있을까?
피셔와 힐의 논쟁을 다시 보면, 양쪽 모두 무엇이 무엇에 영향을 주는지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그림을 적을 수학 기호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확률론에는 "
이 그림을 처음 수학으로 쓴 사람은 미국 농무부의 유전학자 수얼 라이트입니다. 그는 1921년 「상관과 인과」라는 논문에서 요인들 사이의 영향을 화살표로 잇고 화살표마다 계수를 붙여, 관찰된 상관들을 연립일차방정식(모르는 수 여러 개를 식 여러 개로 한꺼번에 푸는 것)으로 풀었습니다(경로 분석, path analysis). 모르는 수는 화살표의 계수들이고, 식은 '두 요인의 상관 = 둘을 잇는 길마다 계수를 곱해 더한 것'이었습니다. 기니피그의 털 무늬가 유전과 환경에서 각각 얼마만큼 오는지를 가리려던 방법이었습니다.
반론은 곧바로 나왔습니다. 1922년 헨리 나일스는 학술지 『유전학』에 글을 실어 라이트를 비판했습니다. 인과와 상관을 맞세우는 것부터 잘못이고, 인과란 완전한 상관일 뿐이라는 취지였습니다. 피어슨의 『과학의 문법』 그대로의 반론이었습니다. 라이트는 이듬해 같은 학술지에서, 화살표는 자료에서 끌어낸 것이 아니라 자료 밖의 지식으로 미리 적어 넣은 가정이라고 답했습니다.
이 생각은 오래 주변에 머물렀고, 1990년대에 컴퓨터 과학자 주디아 펄이 확률의 언어로 다시 세웠습니다. 펄은 먼저 1980년대에 불확실한 믿음을 그래프 위에서 계산하는 베이즈 네트워크(Bayesian network)와, 이웃한 변수끼리 확률을 주고받는 '믿음 전파(belief propagation)'를 만들었습니다(「같은 계산, 다른 덧셈」 7절). 그러다 그래프의 화살표를 '영향이 흐르는 방향'으로 읽기로 하면서 인과로 나아갔습니다. 2011년 튜링상(Turing Award)은 이 두 일에 주어졌습니다. 펄은 가정을 인과 그래프(방향이 있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고리가 없는 그래프)로 적고, 관찰
두 기호의 차이를 말로 풀어 둡니다. 여기서 그래프는 요인들을 점으로 두고 '영향을 준다'를 화살표로 이은 그림입니다.
아래 그래프 뒤의 두 선택지를 바꿔 가며, 어느 화살표가 끊기고 흡연과 폐암의 연관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세요.
지금은
동전을 던질 수 없을 때는 어떻게 할까요? 뒷문 길을 모두 막는 변수
식을 말로 읽으면 '
4절에서 버클리의 여성 합격률을 '남성과 같은 지원 분포'로 다시 계산한 것도 같은 꼴의 공식입니다. 기준 분포로 전체의
그러나 무엇으로 나눌지는 그래프가 정합니다. 흔히 '변수는 많이 나누어 볼수록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흡연과 폐암을 타르의 양으로 나누어 보면 앞문 길이 막혀 담배의 효과가 사라져 보입니다. 타르가 같은 사람끼리 견주면, 담배가 폐암을 일으키는 유일한 통로를 스스로 막아 버린 셈이기 때문입니다. 버클리에서도 학과 선택이 성별의 결과라면, 학과로 나눈 비교는 입학 심사 단계의 효과만 잽니다. 올바른 계산은 어떤 그림을 믿느냐에 달려 있고, 그 그림은 자료가 아니라 과학이 정합니다.
인과를 적는 다른 언어도 있습니다. 잠재적 결과(potential outcomes)의 틀입니다. 1920년대 폴란드 출신 통계학자 예지 네이만이 농사 실험을 두고 쓴 생각을, 1970년대 미국의 통계학자 도널드 루빈이 넓혔습니다. 사람마다 '담배를 피웠을 때의 결과'와 '피우지 않았을 때의 결과' 두 가지가 있고, 인과 효과는 그 차이입니다. 문제는 한 사람에게서 둘 중 하나만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피운 사람의 '피우지 않았을 때'는 영영 관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개인의 효과 대신 무리의 평균 효과를 노리고, 무작위 배정은 두 무리를 평균적으로 같게 만들어 '받지 않은 무리'가 '받은 무리가 받지 않았다면'의 대역을 하게 합니다. 흄은 1748년에 이미 원인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원인이란 다른 대상이 뒤따르는 대상으로서, 첫째와 비슷한 모든 대상에 둘째와 비슷한 대상이 뒤따르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첫째 대상이 없었더라면 둘째 대상도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그런 것이다.— 데이비드 흄, 『인간 지성에 관한 탐구』(1748), 7절
흄의 문장에는 두 정의가 나란히 있습니다. 앞의 것은 '늘 뒤따른다', 곧 상관의 정의이고, 뒤의 것은 '없었더라면', 곧 반사실(counterfactual)의 정의입니다. 흄은 둘을 같은 말로 여겼지만, 그 뒤 250년이 넘는 역사는 둘이 얼마나 다른지 보여 주었습니다. 펄은 2018년 『인과의 책』에서 이를 세 칸의 사다리로 그렸습니다. 보는 것(연관), 하는 것(개입), 상상하는 것(반사실)입니다. 스노의 지도와 피어슨의 상관계수는 첫 칸에, 피셔의 밭과 힐의 봉투는 둘째 칸에 있고, 법정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았더라면 이 사람은 폐암에 걸리지 않았을까?"를 물을 때는 셋째 칸에 서 있습니다.
정리하면, 관찰
'원인'이라는 말을 두고 철학자들도 같은 길을 오갔습니다. 쾨니히스베르크의 칸트는 1783년 『형이상학 서설』에서, 흄의 회의가 자신을 '독단의 잠'에서 깨웠다고 적었습니다. 칸트의 답은 1781년 『순수이성비판』에 있습니다. 인과는 경험에서 배워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겪는 일들을 하나로 이어진 세계로 엮을 때 미리 쓰는 틀이라는 것입니다. 반대쪽 끝에는 버트런드 러셀이 섰습니다. 1912년 강연 「원인의 개념에 관하여」에서 그는, 발달한 물리학은 원인을 찾지 않고 서로 다른 때의 상태를 잇는 함수(function) 관계(방정식)만 적는다며 인과율을 '지나간 시대의 유물'이라 불렀습니다. 3절에서 본 피어슨의 『과학의 문법』과 같은 쪽입니다. 흄의 두 번째 정의를 되살린 사람은 미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루이스입니다. 1973년 논문 「인과」에서 그는 'C가 없었더라면 E도 없었을 것'이라는 말을, 지금 세계와 가장 비슷하되 C만 없는 가능한 세계에서 E가 일어나는지로 따지자고 했습니다. 펄의 사다리 셋째 칸이 계산하려는 것이 이런 반사실입니다.
9 · 이어지는 길한 세기의 지도와 그 너머
콜레라 지도에서 인과 그래프까지의 한 세기를 한눈에 모아 보면 이렇습니다.
통계학의 도구들(수학)과 의학의 연구들(과학)이 같은 몇몇 도시에서 번갈아 나옵니다. 역사 줄에서는 우생학, 터스키기, 담배 회사들의 캠페인처럼 같은 도구가 잘못 쓰이거나 공격받은 사건(event)들을 함께 보세요. 지도의 선은 사람과 보고서가 오간 길입니다.
이 이야기가 유난히 런던 둘레에 몰린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1837년부터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사망은 중앙 등록소에 등록되었고, 사망 원인도 함께 적혔습니다. 스노가 사망자의 주소를, 파가 고도별 사망률을, 돌과 힐이 폐암의 증가를 알 수 있었던 것은 이 행정 기록 덕분입니다. 의사들이 모두 한 명부에 올라 있었기에 영국 의사 연구가 가능했고, 1948년 출범한 국민보건서비스는 전국 병원에서 한꺼번에 시험을 돌릴 바탕이 되었습니다.
그 바탕은 지금도 쓰입니다. 2020년 옥스퍼드 대학이 이끈 RECOVERY 시험은 코로나19 입원 환자 수만 명을 무작위로 나누어, 값싼 스테로이드 덱사메타손이 중증 환자의 사망을 줄인다는 것을 몇 달 만에 보였습니다.
- 경제학의 실험실: 스노의 남런던 같은 자연 실험(natural experiment)은 오늘날 경제학의 중요한 방법입니다. 데이비드 카드, 조슈아 앵그리스트, 휘도 임번스는 최저임금을 올린 주와 이웃 주의 고용을 견준 연구 같은 일로 202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습니다. 그 두 해 전에는 가난 퇴치 정책을 무작위 대조 시험으로 검증한 바네르지, 뒤플로, 크레이머가 같은 상을 받았습니다. 인기 학교의 마지막 자리를 동점자끼리 추첨으로 가르는 학교 배정 제도도 이런 실험실이 되어, 경제학자들은 보스턴과 뉴욕의 추첨 자료로 학교의 효과를 추정했습니다(「짝을 찾는 알고리즘」 7절). 웹 서비스가 방문자를 무작위로 두 화면에 나누어 견주는 'A/B 시험'도 피셔의 밭과 같은 원리입니다.
- 회귀와 투영: 3절에서 체질로 나누어 본 기울기는,
를 와 두 변수로 한꺼번에 회귀한 계수와 같습니다. 여러 변수의 최소제곱(least squares)은 자료 벡터를 변수들이 펼치는 공간에 정사영(orthogonal projection)하는 일, 곧 그 공간 위로 수직으로 그림자를 내리는 일이고, 그 이야기는 「잃어버린 소행성」에서 이어집니다. 많은 변수 가운데 자료가 가장 넓게 퍼진 방향을 찾는 주성분 분석(principal component analysis)도 피어슨이 1901년에 처음 내놓았습니다. - 확률의 뿌리: 5절의 300번 되풀이한 시험은 무작위 시뮬레이션으로 분포를 구하는 몬테카를로 방법(Monte Carlo method) 그 자체입니다. 골턴이 종 모양 분포를 보이려고 만든 골턴 보드(Galton board)는 「도박판에서 온 편지」에 나옵니다. 같은 글 8절에는 '우연뿐이라면 이만큼 드물다'는 계산으로 우연의 가설을 물리친 첫 사례, 1710년 아버스넛의 출생 성비 논증이 있습니다. 5절에서 차 맛을 가린 피셔의 계산이 그 논리를 실험 설계와 묶은 것입니다.
- 누구의 평균인가: 심슨의 역설은 서로 다른 무게로 낸 평균들이 부딪히는 일입니다. 두 야구 선수의 타율이 해마다는 한쪽이 앞서는데 합치면 뒤집히는 예를 화살표의 덧셈으로 보는 그림, 그리고 버스 회사와 승객이 같은 배차 간격을 서로 다르게 평균하는 '검사의 역설(inspection paradox)'은 모두 「재는 순간 바뀐다」 4–5절에 있습니다. 지표를 목표로 삼으면 지표와 목표 사이의 연관이 무너진다는 굿하트의 법칙(Goodhart's law)도 같은 글의 8절에서, 원인이 아닌 상관을 조작하는 일로 다시 나옵니다.
- 결과에서 원인으로: 라플라스는 1774년 결과를 보고 원인의 확률을 따지는 '역확률(inverse probability)'을 세웠습니다. 흐린 사진과 CT처럼 관측된 결과에서 원인을 되찾는 계산이 왜 불안정하고, 사전 지식을 어떻게 더해 안정시키는지는 「거꾸로 푸는 문제는 왜 어려운가」에서 이어집니다. 다만 그곳에서 '원인'을 찾는 일은 물리 법칙이 정해 준 식을 거꾸로 푸는 것이라서, 무엇이 무엇을 일으키는지 자체를 묻는 이 글의 물음과는 결이 다릅니다.
- 그래프 위의 확률: 인과 그래프는 결합 분포(모든 변수의 값이 한꺼번에 나올 확률)를 "각 변수는 자기 부모(자기에게 화살표를 보내는 변수)에만 달려 있다"는 조건부 확률(conditional probability)의 곱으로 쪼갭니다. 한 줄로 이어진 가장 단순한 경우가 마르코프 연쇄(Markov chain)입니다. 그래프 이론(graph theory)의 탄생 이야기는 「일곱 다리의 도시」에 있습니다.
- 원인을 가리기 어려운 세계: 작은 차이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혼돈(chaos) 계에서는 "무엇이 폭풍의 원인인가"라는 물음 자체가 흐려집니다(「나비의 날갯짓」).
- 가장 가까운 펌프: 스노의 지도처럼 평면을 "가장 가까운 곳"별로 나누면 보로노이 다이어그램(Voronoi diagram)이 됩니다. 걸어서 잰 거리와 직선거리 가운데 무엇으로 재느냐에 따라 경계가 달라지는 이야기는 「까마귀와 택시」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