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르 하이얌(Omar Khayyam)
셀주크 시대 페르시아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로, 3차방정식(cubic equation)을 원뿔곡선(conic section)의 교점으로 풀어 분류하고, 평행선 공준(parallel postulate)과 비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따졌으며, 잘랄리력(Jalali calendar)을 만든 사람. 서양에서는 그의 이름으로 전하는 4행시집으로 더 유명하다.
오마르 하이얌은 1048년 무렵 페르시아 동북부 호라산의 도시 니샤푸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몇 해 전 중앙아시아에서 온 튀르크계 셀주크 가문이 호라산을 차지했고, 1055년에는 바그다드에 들어가 아바스 칼리프에게서 술탄의 칭호를 받았습니다. 셀주크의 술탄들은 페르시아인 재상 니잠 알물크에게 나라의 살림을 맡겼고, 그는 제국 곳곳에 니자미야라 불리는 학교들을 세웠습니다. 바그다드의 번역 운동(translation movement)이 끝난 지 오래였지만, 학문은 이제 지방의 궁정과 후원자들 곁에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바그다드 지혜의 집). 하이얌은 아랍어로 수학과 천문학과 철학을 썼고, 살아서는 무엇보다 뛰어난 수학자이자 천문학자로 알려졌습니다. '하이얌'은 천막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집안의 생업에서 온 이름으로 보입니다. 서양에서 그를 유명하게 만든 4행시집은 그가 죽고 700년 뒤에야 영어로 옮겨졌습니다.
나이
세 동문의 전설. 하이얌과 재상 니잠 알물크, 그리고 뒷날 암살단으로 알려진 니자르파를 이끈 하산 사바흐가 니샤푸르에서 같은 스승 밑에서 배우며 먼저 출세한 사람이 나머지를 돕기로 맹세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전합니다. 19세기에 4행시집의 영어판 서문을 통해 서양에도 퍼진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니잠 알물크는 하이얌보다 서른 살쯤 위였으니 셋이 동문이었을 수는 없고, 역사가들은 이것을 후대의 전설로 봅니다. 하이얌이 말리크샤와 니잠 알물크의 후원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대수학의 정의. 스무 살 남짓에 사마르칸트에서 그 도시의 수석 법관 아부 타히르의 후원을 받아 쓴 『대수 문제의 증명에 관한 논고』의 머리말에서, 그는 학문에 전념할 수 없는 시대의 어려움을 한탄하며 이 책을 썼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대수학을 미지의 수와 미지의 양을 알려진 것들과의 관계로 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리고 알콰리즈미가 2차까지의 방정식을 여섯 꼴로 나눈 방식을 3차까지 넓혀, 모든 항이 양수인 방정식을 25가지 꼴로 나누었습니다. 그 가운데 몇몇은 2차방정식으로 줄일 수 있었지만, 나머지 14가지 꼴의 3차방정식은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두 곡선이 만나는 곳. 그 방법이 원뿔곡선의 교점입니다. 그의 첫째 꼴 '정육면체와 변들이 수와 같다', 곧
남긴 숙제. 그의 풀이에는 한계도 있었습니다. 그는 양수인 근만 다루었고, 어떤 꼴에서는 양수 근이 두 개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놓쳤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3차방정식의 근을 2차방정식처럼 수의 계산, 곧 사칙연산과 거듭제곱근만으로 구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고, 뒤에 오는 사람들이 찾아낼지도 모른다고 적었습니다. 그 방법은 400여 년 뒤 16세기 이탈리아에서 델 페로와 타르탈리아가 찾았고 1545년 카르다노의 『위대한 술법』으로 발표되었습니다(르네상스 이탈리아의 대수학 경연). 1637년 데카르트는 『기하학』에서 다시 포물선과 원의 교점으로 3차와 4차방정식(quartic equation)을 풀었는데, 이번에는 좌표와 식이 있었습니다.
거듭제곱근과 이항계수(binomial coefficient). 대수 논고에서 그는 따로 쓴 책에서 인도 사람들의 방법을 넓혀 수의 네제곱근, 다섯제곱근, 여섯제곱근 같은 높은 거듭제곱근을 구하는 법을 보였다고 적었습니다. 그 책은 사라졌지만, 높은 거듭제곱근을 자릿수별로 구하려면
평행선 공준을 증명하려다. 1077년 이스파한에서 쓴 『유클리드 공준(postulate)의 어려움에 관한 주해』에서 그는 유클리드의 다섯째 공준을 다른 원리로부터 증명하려 했습니다(평행선 공준). 그는 밑변 AB의 양 끝에 같은 길이의 선분 AD와 BC를 수직으로 세우고 윗변 DC를 이은 사각형을 생각했습니다. 위의 두 각 C와 D가 서로 같다는 것은 공준 없이 증명됩니다. 그러면 두 각이 모두 직각이거나, 모두 예각이거나, 모두 둔각이라는 세 경우가 남습니다. 직각이면 유클리드의 기하(geometry)가 됩니다. 그는 예각과 둔각의 경우를 없애려고 '철학자', 곧 아리스토텔레스의 것이라며 서로 가까워지는 두 직선은 결국 만나고 가까워지는 쪽에서 멀어질 수 없다는 원리를 끌어왔습니다. 그런데 이 원리가 바로 평행선 공준과 같은 내용이어서, 증명은 제자리를 돌았습니다. 그가 버린 두 경우는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각의 경우는 19세기의 쌍곡기하(hyperbolic geometry), 둔각의 경우는 구면기하(spherical geometry)와 같은 굽은 기하에서 실제로 성립합니다. 같은 사각형은 13세기 투시의 저작을 거쳐 1733년 이탈리아의 사케리가 다시 다루었고, 오늘날 '하이얌–사케리 사각형(Khayyam–Saccheri quadrilateral)'이라 불립니다(로바쳅스키).
비를 수로 보기. 같은 주해의 뒷부분은 『원론』 5권의 비례론(theory of proportion)을 다룹니다. 에우독소스에게서 온 유클리드의 정의는 모든 정수(integer) 배수(multiple)를 견주어 두 비의 같음을 판정합니다. 하이얌은 이를 두 양에서 작은 쪽을 큰 쪽에서 되풀이해 덜어 내는 과정, 곧 유클리드 호제법(Euclidean algorithm)을 끝없이 계속할 때 나오는 몫의 열로 비를 정의하는 방법과 견주고, 두 정의가 같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이 몫의 열은 오늘날의 연분수(continued fraction)입니다. 그는 나아가 공통 단위로 잴 수 없는 두 양의 비도 하나의 수처럼 다룰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무리수(irrational number)를 수로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한 걸음 나아간 생각으로 평가됩니다(수 체계, number system).
33년에 여덟 번. 1074년 무렵 술탄 말리크샤는 하이얌을 비롯한 천문학자들을 이스파한으로 불러 천문대를 짓고 달력을 고치게 했습니다. 1079년에 시행된 잘랄리력은 해가 춘분점(vernal equinox)에 드는 날, 곧 페르시아의 새해 노루즈를 한 해의 첫날로 삼는 태양력이었습니다. 그 윤년 규칙은 흔히 33년에 여덟 번 윤년을 두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그러면 한 해의 평균(mean) 길이는
후원이 끊긴 뒤. 1092년 니잠 알물크가 암살되고 몇 주 뒤 말리크샤도 죽자, 천문대는 후원을 잃고 문을 닫았습니다. 하이얌의 말년에 대해서는 흩어진 이야기만 전합니다. 13세기의 전기 작가 알키프티는 그가 신앙이 의심받자 메카로 순례를 떠났다고 적었지만 확인할 수 없습니다. 가장 믿을 만한 이야기는 그를 직접 만난 니자미 아루지의 것입니다. 그는 1112년이나 1113년 발흐에서 하이얌이 '내 무덤은 북풍이 불 때마다 꽃잎이 흩날려 덮이는 곳에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고, 하이얌이 죽고 몇 해 뒤 니샤푸르의 무덤을 찾았을 때 담장 너머 과일나무의 꽃잎이 무덤을 덮고 있었다고 적었습니다. 그를 우러러본 사람의 회고라 다듬어진 대목이 있을 수 있지만, 동시대인이 남긴 몇 안 되는 증언입니다.
시인 하이얌. 하이얌의 이름으로 전하는 페르시아어 4행시(루바이)들은 삶의 덧없음과 운명, 포도주와 지금 이 순간을 노래합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붙은 시들은 그가 죽고 한참 뒤의 기록부터 나타나고, 뒤의 사본으로 갈수록 수가 늘어 수백 편에 이르며, 그 가운데 어디까지가 그의 작품인지는 학자마다 판단이 다릅니다. 1859년 영국의 에드워드 피츠제럴드가 이 시들을 자유롭게 옮긴 『오마르 하이얌의 루바이야트』는 처음에는 거의 팔리지 않다가 뒤늦게 큰 인기를 얻었고, 하이얌은 서양에서 무엇보다 회의적인 시인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원뿔곡선으로 3차방정식을 푼 수학자와 포도주를 노래한 시인이 같은 사람인지는 오래된 물음이지만, 둘 다 같은 이름 아래 900년을 살아남았습니다.
이어지는 곳. 원뿔곡선의 교점은 원뿔곡선에, 방정식의 꼴과 근은 다항식(polynomial)에, 3차방정식의 대수적 풀이는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대수학 경연과 카르다노에 있습니다. 그의 사각형은 평행선 공준, 쌍곡기하, 구면기하로, 비를 수로 보는 생각은 연분수와 무리수로, 달력의 8/33은 근사와 오차로 이어집니다. 그의 앞사람은 알콰리즈미와 아폴로니오스입니다.
관계.
- 영향을 받음 알콰리즈미 — 알콰리즈미가 2차까지의 방정식을 여섯 꼴로 나눈 것을 이어받아, 3차까지의 방정식을 25가지 꼴로 나누고 각각의 풀이를 주었습니다.
- 영향을 받음 유클리드 — 1077년의 주해에서 『원론』의 평행선 공준을 증명하려 했고, 5권의 비례 정의를 다른 정의와 견주어 둘이 같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 영향을 받음 아리스토텔레스 — 평행선 공준을 증명하려 할 때 '철학자'의 원리, 곧 서로 가까워지는 두 직선은 만나야 한다는 원리를 끌어왔는데, 그것이 증명하려던 공준과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연표.
- 1055년 셀주크의 투그릴 베그가 바그다드에 들어가 술탄의 칭호를 받다
- 1070년 사마르칸트에서 『대수 문제의 증명에 관한 논고』를 쓰다(무렵)
- 1074년 술탄 말리크샤의 부름으로 이스파한의 천문대에서 일하기 시작하다(무렵)
- 1077년 『유클리드 공준의 어려움에 관한 주해』를 쓰다
- 1079년 그가 참여해 만든 새 태양력 잘랄리력이 시행되다
- 1092년 재상 니잠 알물크가 암살되고 말리크샤가 죽어 후원을 잃다
- 1113년 발흐에서 만난 니자미 아루지에게 자기 무덤 자리에 대해 말했다고 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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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항식
… 점토판에 이미 있고, 9세기 바그다드의 알콰리즈미가 풀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했습니다. 11세기오마르 하이얌은 3차방정식의 양의 근을 두 원뿔곡선의 교점으로 작도했습니다. 3차와 4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