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
부모와 자녀의 키에서 평균으로의 회귀(regression to the mean)를 발견하고 상관의 개념을 만든 영국의 과학자로, 동시에 우생학(eugenics)을 주창해 깊은 해를 남긴 사람.
프랜시스 골턴은 1822년 잉글랜드 버밍엄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찰스 다윈과는 할아버지 이래즈머스 다윈이 같고 할머니가 다른 사촌 사이였습니다. 그가 살던 빅토리아 시대 영국은 온갖 것을 재고 세는 데 열중했고, 1859년 사촌의 『종의 기원』이 나온 뒤에는 생물의 변이가 어떻게 대물림되는지가 큰 질문이 되었습니다. 골턴은 이 질문에 숫자로 답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평균으로의 회귀와 상관이라는 통계학(statistics)의 기본 개념을 만들었습니다. 같은 연구를 인간을 '개량'하자는 우생학으로 밀고 나가 20세기에 큰 해를 끼친 사람이기도 합니다.
나이
의사가 되려던 공부는 마치지 않았지만, 1844년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 평생 생계 걱정 없이 연구할 수 있었습니다. 1850–52년 오늘날의 나미비아 일대를 탐험해 왕립 지리학회의 메달을 받았고, 여행 안내서를 썼습니다. 1860년대에는 유럽 각지의 날씨 기록을 모아 지도에 그리다가, 바람이 저기압과 반대 방향으로 도는 고기압을 찾아 '반사이클론'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지문이 사람마다 다르고 평생 변하지 않음을 통계로 보인 1892년의 책은 지문 감식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그의 탐험과 여행 안내서는 대영 제국의 팽창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1855년의 『여행의 기술』은 낯선 땅에서 불 피우는 법부터 짐 싣는 법까지 적은 실용서로, 탐험가와 군인, 이주민들이 오래 들고 다녔습니다. 그가 통계로 눈을 돌릴 무렵 영국에는 1834년 창립된 런던 통계학회처럼 사회를 숫자로 파악하려는 기관들이 자리를 잡았고, 벨기에의 케틀레는 병사들의 가슴둘레 같은 치수가 오차의 법칙, 곧 정규분포(normal distribution)를 따른다며 '평균(mean)인'이라는 개념을 퍼뜨렸습니다. 골턴은 케틀레에게서 이 곡선을 배웠지만 관심의 방향은 달랐습니다. 케틀레가 평균을 사회의 참모습으로 보았다면, 골턴은 평균에서 벗어난 사람들, 특히 뛰어난 쪽 끝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사촌 다윈과의 관계도 실험으로 이어졌습니다. 다윈은 몸의 각 부분에서 나온 작은 입자가 생식 세포로 모여 대물림된다는 '범생설'을 내놓았는데, 골턴은 1869년부터 털색이 다른 토끼들 사이에 피를 수혈한 뒤 새끼를 낳게 해 이 가설을 시험했습니다. 새끼의 털색은 바뀌지 않았고, 다윈은 자기 이론이 입자가 꼭 피를 타고 다닌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1875년에는 쌍둥이의 삶을 비교해 타고난 것과 자란 환경의 몫을 가르려 했고, '본성과 양육'이라는 짝말을 널리 퍼뜨렸습니다. 설문지를 돌려 자료를 모으는 방법도 그가 일찍 과학에 들여온 도구입니다.
그의 대표적인 발견은 키에서 나왔습니다. 1886년 그는 부모 205쌍과 그 성인 자녀 928명의 키를 모아 표로 만들었습니다. 키가 아주 큰 부모의 자녀는 대개 크지만 부모만큼 크지는 않았고, 아주 작은 부모의 자녀는 부모만큼 작지 않았습니다. 다음 세대는 평균 쪽으로 돌아옵니다. 골턴은 이것을 '평범함으로의 회귀'라 불렀습니다. 그는 거꾸로 키가 아주 큰 자녀의 부모도 자녀만큼 크지 않다는 것을 보고, 이 현상이 유전의 신비한 힘이 아니라 두 값이 완전히 함께 움직이지 않는 데서 생기는 통계의 성질임을 알아챘습니다. 두 값을 각자의 표준편차(standard deviation) 단위로 재면, 한쪽이 평균에서 1만큼 벗어날 때 다른 쪽은 평균적으로 r만큼만 벗어납니다. r이 1보다 작으면 예측은 늘 평균 쪽으로 당겨집니다. r = 0.5라면, 평균보다 표준편차 2만큼 큰 부모의 자녀는 평균적으로 표준편차 1만큼만 큽니다. 위의 식이 이것을 원래 단위로 적은 것으로,
회귀는 사실 사람보다 식물에서 먼저 보였습니다. 1875년 골턴은 스위트피 씨앗을 무게별로 일곱 묶음으로 나눠 친구들에게 보내 기르게 했고, 돌아온 다음 세대 씨앗에서 큰 씨의 자손은 덜 크고 작은 씨의 자손은 덜 작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1877년 왕립 연구소 강연에서 이것을 처음 발표했고, 사람의 키로 같은 현상을 확인한 것이 1886년이었습니다. 상관의 개념은 범죄 수사에서 자극을 받았습니다. 프랑스 경찰의 베르티용은 팔 길이, 머리 길이 같은 여러 신체 치수로 범죄자를 가려내는 체계를 만들었는데, 골턴은 이 치수들이 서로 얽혀 있어 같은 정보를 여러 번 세는 셈이라는 데 주목했습니다. 키와 팔뚝 길이가 얼마나 함께 움직이는지를 한 수로 재려던 그는, 두 치수를 각자의 흩어짐 단위로 재면 어느 쪽에서 다른 쪽을 예측하든 기울기(slope)가 같은 한 수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종 모양의 분포를 눈앞에 쌓아 보이는 장치도 만들었습니다. 못을 엇갈려 박은 판에 구슬을 떨어뜨리면 구슬은 못마다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튕기고, 바닥에는 파스칼의 삼각형(Pascal's triangle)의 이항분포(binomial distribution)가 쌓여 정규분포에 가까운 모양이 됩니다. 1889년 『자연 유전』에 소개된 이 장치(골턴 보드, Galton board)는 드무아브르가 계산으로 보인 것을 나무판으로 옮긴 셈입니다. 그는 판을 두 단으로 만들어, 윗단의 각 칸에서 다시 떨어진 구슬들이 모여도 전체가 여전히 종 모양이라는 것을 보이며 한 세대의 분포가 다음 세대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설명했습니다.
골턴은 무엇이든 재려 했습니다. 1884년 런던의 박람회에 인체 측정 실험실을 열어 9,000명 넘는 방문객의 키, 팔 길이, 시력, 반응 속도(velocity)를 쟀습니다. 1907년에는 시골 가축 박람회에서 황소의 무게를 맞히는 대회의 표 787장을 분석해, 표들의 중앙값(median)이 실제 무게와 1퍼센트도 차이 나지 않는다는 짧은 글을 『네이처』에 실었습니다. 평균 대신 극단값에 흔들리지 않는 중앙값을 고른 것도 그다웠습니다. 흩어진 개인차를 한데 모아 분포로 보는 이런 눈은 무작위성을 다루는 통계학의 기본 자세가 되었습니다.
말년의 골턴 둘레에는 새 학파가 모였습니다. 동물학자 웰던과 수학자 피어슨은 그의 방법으로 게와 달팽이, 사람의 치수를 대량으로 분석했고, 1901년 골턴의 후원으로 학술지 『바이오메트리카』를 창간했습니다. 1904년에는 그의 기부로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 우생학 기록 사무소가 생겼고, 이것이 뒤에 골턴 연구소가 되었습니다. 이 무렵 완두 교배로 유전 법칙을 찾은 멘델의 1866년 논문이 재발견되자, 형질이 연속적으로 변한다고 보는 생체 측정학파와 불연속적인 유전 인자를 강조하는 베이트슨의 멘델파가 격렬하게 다투었습니다. 둘이 사실은 같은 이야기라는 것을 보인 사람은 1918년의 피셔였습니다. 작은 멘델 인자가 수없이 더해지면 키처럼 연속적인 형질이 정규분포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골턴 연구소와 로담스테드: 통계학의 탄생에서 이어집니다.
그러나 그는 1869년 『유전적 천재』에서 재능이 유전된다고 주장했고, 1883년 '우생학'이라는 말을 만들어 '우수한' 사람들이 자녀를 더 많이 낳게 하자고 했습니다. 『유전적 천재』에는 인종을 능력의 등급으로 줄 세운 장도 있었고, 그가 말한 '우수함'은 판사와 학자와 귀족을 배출한 빅토리아 시대 상류층의 기준을 그대로 옮긴 것이었습니다. 이 생각은 20세기에 미국 여러 주의 강제 불임법과 나치 독일의 정책으로 이어져 수많은 사람을 해쳤습니다. 1909년 기사 작위를 받았고, 1911년 세상을 떠나며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 우생학 석좌교수 자리를 남겨 피어슨이 첫 교수가 되었습니다. 2020년 이 대학은 골턴의 이름을 건물과 강의실에서 떼어 냈습니다. 상관과 회귀의 수학이 틀린 것이 아니라, 무엇을 재고 어떻게 해석할지 정한 전제가 틀렸던 것입니다.
이어지는 곳. 키의 표에서 찾은 현상은 평균으로의 회귀에서, 두 값이 함께 움직이는 정도를 잰 수 r은 상관계수(correlation coefficient)에서, 예측하는 직선은 선형 회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의 구슬 판이 보여 주는 이항분포는 이항분포에서, 작은 무작위 요인들의 합이 종 모양이 된다는 이유는 중심극한정리(central limit theorem)에서 이어집니다. 두 값이 함께 움직여도 한쪽이 다른 쪽의 원인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까닭은 교란 변수(confounding variable)에서 봅니다. 그의 공식을 다듬은 칼 피어슨, 멘델 유전과 그의 통계를 화해시킨 로널드 피셔, 앞서 숫자로 원인을 쫓은 존 스노를 함께 읽으면 좋습니다.
관계.
- 함께 연구 칼 피어슨 — 피어슨은 골턴의 회귀와 상관을 오늘날의 공식으로 다듬었고, 골턴의 후원으로 『바이오메트리카』를 창간했으며, 그가 남긴 우생학 석좌의 첫 교수가 되고 세 권(네 책)짜리 전기를 썼습니다.
- 영향을 줌 로널드 피셔 — 피셔는 1918년 수많은 멘델 인자로 골턴이 잰 연속적인 형질과 그 상관을 설명했고, 1933년 골턴 석좌교수 자리를 피어슨에게서 이어받았습니다.
연표.
- 1844년 아버지의 유산을 받고 의학 공부를 그만두다
- 1850년 남서아프리카 탐험을 떠나다
- 1855년 『여행의 기술』을 펴내다
- 1863년 『기상도』를 펴내고 고기압(반사이클론)에 이름을 붙이다
- 1869년 『유전적 천재』를 펴내고, 토끼 수혈로 다윈의 범생설을 시험하기 시작하다
- 1875년 스위트피 씨앗을 친구들에게 나눠 기르게 하고, 쌍둥이를 연구하다
- 1877년 왕립 연구소 강연에서 스위트피 씨앗의 회귀를 처음 발표하다
- 1883년 '우생학'이라는 말을 만들다
- 1884년 런던의 박람회에 인체 측정 실험실을 열다
- 1886년 키의 평균으로의 회귀를 발표하다
- 1888년 두 측정값의 상관(co-relation)을 정의하다
- 1892년 『지문』을 펴내다
- 1901년 웰던, 피어슨과 함께 『바이오메트리카』 창간을 돕다
- 1907년 황소 무게 맞히기 대회의 표를 분석하다
- 1909년 기사 작위를 받다
이 인물이 나오는 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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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항분포
골턴 보드는 영국의프랜시스 골턴이 1870년대에 만든 기구입니다. 비스듬히 세운 판에 못을 삼각형 모양으로 줄지어 박고, 위에서 공을 …
- 정규분포
… 라플라스가 작은 오차들의 합이 이 모양이 된다는 것, 곧 중심극한정리의 한 형태를 내놓았습니다.골턴은 부모와 자식의 키를 정규분포로 다루다가, 키가 큰 부모의 자식이 평균 쪽으로 돌아오는 경향을 …
- 최소제곱 회귀
… 밝혔습니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인지를 두고 다투었습니다. 이 방법에 '회귀'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골턴때문입니다. 1880년대 그는 키가 큰 부모의 자식이 대개 부모만큼 크지는 않고 평균 쪽으로 돌아온다는 …
- 상관관계
… 노란 점이 많을수록 r은 1 쪽으로, 그런 파란 점이 많을수록 −1 쪽으로 갑니다. 이 수는 1888년프랜시스 골턴이 몸의 여러 치수가 함께 변하는 정도를 재려고 처음 생각했고, 1896년 칼 피어슨이 지금의 식으로 …
- 평균으로의 회귀
… 받지 않은 비교 집단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무작위 대조 시험의 대조군입니다. 이름은 1880년대프랜시스 골턴의 유전 연구에서 왔습니다. 그는 키가 아주 큰 부모의 자녀가 평균적으로 부모보다는 작다는 것을 보고 …
- 통계학
… 보였습니다. 둘째 갈래는 유전입니다. 케틀레의 곡선은 한 세대 안의 흩어짐만 말했습니다. 19세기 말프랜시스 골턴은 이 흩어짐이 부모에서 자식으로 어떻게 넘어가는지 물었고, 부모와 자식의 키에서 평균으로의 회귀와 …